베인 가족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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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2.1. 사건 발생
2.2. 조사
2.3. 재판
2.4. 누명 생활
2.5. 항소
2.6. 평가
2.7. 재조사


1. 개요[편집]


1994년 뉴질랜드 더니든의 한 가정집에서 5명의 가족이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이다. 그치만 유일한 생존자인 장남 데이비드 베인이 용의자로 지목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15년을 감옥에서 보내다가 무죄인 것이 밝혀진 사건이다.


2. 상세[편집]



2.1. 사건 발생[편집]


1994년 6월 20일 베인 가족의 장남인 데이비드 베인은 조간 신문 배달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집에 돌아오자 자신의 가족들이 모두 살해된걸 보고 괴로운 상태에서 119에 신고하였다.

2.2. 조사[편집]


베인의 집에 있는 컴퓨터에서 "죄송합니다. 머물 자격이 있는 유일한 사람은 당신입니다[1]"라고 적힌 메모장이 발견된걸 보아 유일한 생존자인 장남 데이비드를 의심하였다. 그렇게 데이비드는 사건 발생 4일후 5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리고 사건 발생 2주후 주민들을 요청으로 베인 가족이 살던 집은 철거되었다.

2.3. 재판[편집]


베인의 변호인은 이 사건이 베인의 아버지가 자신의 가족을 모두 살해한 뒤 본인도 자살한 일가족자살 사건이라 주장하였으나, 변호인의 주장은 너무나도 말이 맞지 않는 점이 많았다. 그렇게 데이비드는 재판 결과 징역 16년을 살게 되었다.

2.4. 누명 생활[편집]


그러다가 뉴질랜드의 럭비 선수인 조 카람은 우연히 이 사건을 알게되었다. 조 카람은 이 사건을 보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여 데이비드가 항소를 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2] 그렇게 데이비드는 조 카람덕에 항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2.5. 항소[편집]


데이비드는 자신은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항소요청을 하였으나 어째서인지 판사가 항소를 거절하여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다음 데이비드는 2007년에 비록 보석금을 내어 감옥생활을 끝내었지만 아직 살인자라는 누명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레서 데이비드가 누명을 썼다는걸 밝히기 위해 조 카람을 포함한 법무팀은 열심히 증거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 증거를 다시 모아 2009년 3월 6일에 다시 항소하였다. 그렇게 3개월을 거친 끝에 이번에는 판사는 전의 판결에 오점이 너무 많았던걸 인정하고 데이비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2010년에는 데이비드가 부당한 옥살이에 대한 배상금 신청서를 재출하였다. 그렇게 법원에서 1년을 논의한 결과 데이비드에게 배상금을 지불해야한다고 결론리 났다.

2.6. 평가[편집]


이 사건은 대체로 뉴질랜드 범죄 역사상 가장 널리 논의되고 분열을 불러일으킨 사건으로 불린다. 억울한 피해자를 옥살이 시켜놓고 배상금 지불에 대해 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뉴질랜드 경찰은 심각한 실수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한다.

2.7. 재조사[편집]


데이비드가 범인이 아닌게 밝혀지면서 진범을 찾기 위해 재조사가 시작되었다. 그치만 조사 문단에서 말했듯이 이미 베인의 집은 철거된 상태라서 어떤 증거도 남지 않게되었다. 그렇게 재조사라 할 것도 없이 이 사건은 범인을 잡지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뉴질랜드 경찰은 엄청난 실수를 두번이나 저질렀다고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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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문 : sorry, you are the only one who deserved to stay[2] 이때 조 카람이 데이비드에게 항소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금액이 400만 달러(약 30억) 정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