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베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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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베컴의 역임 직책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앨런 시어러
(1996~2000)

데이비드 베컴
(2000~2006)


존 테리
(2006~2010)


데이비드 베컴의 수상 이력


1999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히바우두
2위
데이비드 베컴
3위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2001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루이스 피구
2위
데이비드 베컴
3위
라울 곤살레스
1999 Ballond'or
수상
히바우두
2위
데이비드 베컴
3위
안드리 셰브첸코
1999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히바우두
데이비드 베컴
지네딘 지단
2003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티에리 앙리
지네딘 지단
데이비드 베컴
파일:월드사커 로고.png
Player of the Year 1999
수상
히바우두

2위
데이비드 베컴

3위
안드리 셰브첸코
Player of the Year 2001
수상
마이클 오언

2위
데이비드 베컴

3위
라울 곤살레스


데이비드 베컴의 기타 정보

연도별 전 세계 축구 이적료 1위
2002년
리오 퍼디난드
(4600만 €)

2003년
데이비드 베컴
(3750만 €)


2004년
디디에 드록바
(3850만 €)










인터 마이애미 CF 구단주 / 회장
Club Internaćional De Fútbol Miami

파일:skysport_de-david-beckham-miami_4392062.jpg

이름
데이비드 베컴
David Beckham
본명
데이비드 로버트 조지프 베컴
David Robert Joseph Beckham
출생
1975년 5월 2일 (48세)
잉글랜드 런던 레이턴스톤
국적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
신체
180cm, 76kg, O형[1]
직업
축구선수 (윙어[2], 중앙 미드필더[3] / 은퇴)
축구경영인
에이전트
주발
오른발
등번호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 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28, 24, 10, 7
레알 마드리드 CF, LA갤럭시 - 23
AC 밀란, 파리 생제르맹 FC - 32
후원사
아디다스[4]
소속
유스
리즈웨이 로버스 FC (1985~1987)
토트넘 홋스퍼 FC (1987~1991)
브림스다운 로버스 FC (1982~198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88~1993)
프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3~2003)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1995 / 임대)
레알 마드리드 CF (2003~2007)
LA 갤럭시 (2007~2012)
AC 밀란 (2009 / 임대)
AC 밀란 (2010 / 임대)
파리 생제르맹 FC (2013)
경영
솔퍼드 시티 FC (2019~ )[5]
인터 마이애미 CF (2018~ )
국가대표
파일: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15경기[6] 17골 (잉글랜드 / 1996~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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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빅토리아 베컴 (1999년 결혼)
자녀
장남 브루클린 베컴 (1999년생)
차남 로미오 베컴 (2002년생)
삼남 크루즈 베컴 (2005년생)
장녀 하퍼 베컴 (2011년생)
부모
아버지 테드 베컴 (1948년생)
어머니 산드라 베컴 (1949년생)
형제자매
누나 린 베컴 (1972년생)
동생 조안 베컴 (1980년생)
종교
개신교 (성공회)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
3. 플레이 스타일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4.3. 서훈
4.4. 출전 기록
4.5. 홍보 대사
5. 베컴에 대한 말, 말, 말
6. 사건 사고
7. 여담
7.1. 영화 출연
7.2. 가정사
7.3.1. 20대
7.3.2. 30대
7.3.3. 40대
7.5. 영국 설문조사의 왕



1. 개요[편집]



파일:david-beckham-manchester-united.jpg

잉글랜드의 축구인. 선수 시절 주 포지션은 윙어이다.[7]

본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뛰어난 축구 실력과 조각같은 외모로 엄청난 부와 명예, 인기를 얻고, 세계적인 걸그룹 스파이스걸스의 멤버인 빅토리아 베컴과 결혼하여 단란한 가정까지 꾸린 인생의 승리자. 현역 시절부터 축구선수 뿐만 아니라 셀럽으로서의 이미지가 컸으며, 이로 인해 세계적인 대중적 인지도 측면에선 베컴만한 선수가 드물다.[8]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오랜 기간을 뛰며 주장까지 역임한 선수였다. 클럽팀에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1998-99 시즌에 역사적인 트레블을 달성했으며,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는 갈락티코스 1기를 결성하며 대활약을 펼쳤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유럽을 떠나 미국에서 뛰면서 미국MLS 붐을 주도했다.


2. 선수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데이비드 베컴/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내가 생각하는 미드필더에 필요한 능력은 먼저 넓은 시야와 플레이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전술안으로, 필드 내 다음 상황을 예측하여 수비시 포지셔닝, 공격시 정확한 필드 전개 선택을 할 수 있는 이행능력을 의미한다.(중략) 피지컬적으로는 90분 내내 움직이는 다이나미즘과 지구력, 투쟁심 역시 갖춰야 한다. 거기에 더해 정확한 숏패스워크, 가능하다면 롱패스 능력까지. 이 모든 자질을 높은 레벨로 갖춘 선수야말로 이상적인, 위대한 미드필더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축구계를 둘러보면 그에 해당되는 선수는 매우 드물다. 다만 그렇게 될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부여 받지 못 했던 선수로는 현재 AC 밀란에서 뛰고 있는 데이비드 베컴이 떠오른다. 맨유에서 데뷔했던 당시의 베컴은 길고 짧은 패스 워크, 전술안, 다이나미즘, 투쟁심 등 위대한 미드필더에게 요구되는 능력을 전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오른쪽 측면에 고정 기용되며 플레이스타일도 거기에 맞춰 다듬어지는 바람에 모든 자질을 개화시킬 기회를 부여받지 못 했다.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에는 중원에서 플레이했지만 이 역시 그에게 단기적인 결과를 요구하지 않고 강한 인내심을 갖고 기용했다면 아마 미드필더로서 새로운 경지를 열었을 것이라고 본다. 선수 황혼기에 밀란에서 반년간 보여준 안정된 공수 퍼포먼스를 보면서도 재차 그렇게 생각했다.

카를로 안첼로티


긱스피구가 드리블로 해결하는 일을 베컴은 크로스로 해결합니다.

한준희


뛰어난 킥은 하루만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천 수만 번의 노력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베컴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킥에서 나오는 패스 보급이 베컴의 가장 큰 장점이다. 오른쪽 윙어로 뛸 경우 크로스가, 중앙 미드필더로 뛸 경우 이리저리 뿌려주는 정확한 로빙 패스가 일품. 주력과 민첩성, 수비 스킬이나 공격에서의 테크닉은 비슷한 시기의 선수들과 비교하면 특출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떨어지지는 않는 편.

이미지나 외모, 장기인 킥력을 위주로 할 것 같은 스타일과 안 어울리게 굉장히 많이 뛰는 하드워커라는 점도 특징이다. 전성기 맨유 시절에는 리그 경기당 평균 뛴 거리가 14km[9]라는 말도 안 되는 활동량을 기록했던 적도 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렇게 빠른 공수전환의 뻥축구가 대세였던 EPL에서 활약하는 윙 플레이어가 활동량이 적은 게으른 선수였다면 천하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베컴을 에이스로 믿고 중용하기는 커녕 진작에 주전경쟁에서 밀렸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 지역예선 최종전 對 그리스전에서는 팀 동료들이 실망스러운 경기력으로 일관할 때 무려 16.1km[10]를 뛰면서 코너킥 어시스트에 이어 95분에 극적인 프리킥 골을 터뜨리며 2:2 무승부를 견인, 거의 혼자 힘으로 팀을 월드컵으로 보내다시피 했다.[11]

다만 2002년 월드컵 직전에 당한 부상 여파로 인해 운동 능력에 저하가 왔는지, 이후 예전 같은 무지막지한 활동량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래도 여전히 라리가에서는 많이 뛴다는 소리를 들으며 팀에서는 높은 활동량 기록을 보여줬던 베컴이었지만, 전성기 맨유 시절에는 정말로 오른쪽 사이드의 끝에서 끝까지 그리고 중앙까지도 너끈하게 커버하면서 뛰어다니는 미친 하드워커였다.[12]

넓은 활동 반경을 바탕으로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는데, 주로 오른쪽 미드필더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에는 풀백으로도 두 경기 출전하였으며 레알 마드리드 이적 이후에는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뛰었다. 다만 오른쪽 미드필더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고, 이 때문에 4-4-2 포메이션에만 한정된 선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킥력과 날카로운 프리킥 능력은, 본선 진출도 위태위태했던 잉글랜드 국대의 리썰 웨폰으로서 커리어 내내 활약할 수 있었다. 특히, 프리킥은 그의 상징과도 같은데 거의 직각에 가까운 대각선으로 도움닫기를 하여 팔을 크게 휘저으며 감아찬 공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골대에 빨려 들어가는 장면은 베컴의 클리셰라고 봐도 무방하다. 특이한 점이라면 다른 최상위 프리키커는 거리와 위치에 따라서 킥의 구종에 변화를 주지만[13] 베컴은 어느 위치에서든지 늘 똑같이 감아차는 킥을 구사했다는 점이다. 킥의 정확도야 본인의 인프런트가 정확할 것이고 워낙에 발목 힘이 좋다보니 감아차기를 해도 다른 선수들의 묵직한 파워 슛만큼 힘이 실려있기 때문에 굳이 다른 방식의 킥을 구사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역대 최고의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를 논할 때 주니뉴 페르남부카누, 지쿠 등과 함께 반드시 언급된다.

킥의 정확도도 정확도지만, 수비수를 앞에 두고도 여유 있게 로빙 패스가 가능하다는 점도 베컴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일반적인 윙어들이 마크를 뿌리치고 공격수에게 크로스 한 번을 올리기 위해서 드리블하는 것을 생각하면, 마크를 앞에 두고도 정확하고 여유 있게 올리는 베컴의 크로스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윙어들은 어느 정도 상대 페널티 박스 근처까지는 올라와서 크로스를 올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베컴은 거의 중앙선 근처에서 뜬금없이 공격수를 바라보고 크로스를 올리기 때문에 마크하는 상대 입장에서도 대처가 힘들다. 물론 베컴이라고 항상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특정 상황에서 가능하다는 것만 해도 가공할 수준이다.

롱킥을 할 때 뛰어난 발목 힘을 이용해 양팔을 아래 위로 휘저어 킥력을 올리면서도 밸런스를 잡는 특유의 폼은 그만의 전유물이다. 또한 베컴은 그의 킥에서 확 감기는 커브와 자세로 많이 유명하고 매번 강한 파워의 슈팅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마음만 먹으면 경악스런 힘의 슈팅을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베컴은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빠른 슈팅 10위 이내 기록을 2개나 가진 유일한 선수며, 1997년 맨유vs첼시 경기에선 157.5 km/h의 슈팅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주로 윙어로 뛰던 맨유 시절과 달리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했기에 그동안의 킥 스루 패스 스타일보다 경기장을 휘젓는 엄청난 활동량이 부각되어 그 해 라리가에서 제일 많이 뛰어다닌 선수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레알에서는 경기력에 대한 비난도 많이 받아 어려움을 겪었다. 베컴의 아쉬운 모습에는 부상으로 인한 운동 능력 저하와 더불어 제대로 된 수비수 없이 공격수로만 스쿼드를 채우던 갈락티코 1기의 불균형이 영향을 미쳤다. 또 라리가에 진출한 잉글랜드 선수들이 흔히 겪는 어려움 중 하나인데 느려진 템포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AC 밀란에서는 안첼로티 감독이 있을 때는 주 포지션인 윙어에 가까운 플레이(중앙 미드필더이긴 하지만)를 하였지만, 레오나르도 감독 아래에서는 전술적 이유로 윙어로 출장했다. 하지만 라이트백으로 출장하는 이냐치오 아바테의 수비력이 심각하게 엉망[14]인 관계로 윙어가 활발한 수비 가담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기도 했다.

단점은 속도가 다른 정상급 윙어보다 다소 느리고, 온 더 볼이 떨어지는 선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상대 수비진을 홀로 휘저을 수 있을만큼 뛰어난 편이 아니라 전술적인 제약이 다소 있었다는 점이다. 전성기이던 맨유 시절에도 반대편에서 뛰던 라이언 긱스만큼 다이나믹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윙포워드로서 부적합해 4-3-3이나 4-2-3-1 등의 포메이션에서 윙어로서의 활약은 미미했다. 또한 수비 가담이 좋긴 하지만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뛸 정도는 아니며 탈압박이나 드리블이 특출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중앙 미드필더 자리도 소화는 가능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맨유 시절 보여준 클래스에 비해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했다.[15][16] 물론 베컴이 넓은 시야와 넓은 활동 범위로 인한 경기 기여도, 높은 정확도의 뛰어난 킥력을 지닌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결국 종합적으로 보면, 베컴은 축구 역사상 유례가 없는 유니크한 스타일의 윙어였다. 오른쪽에 배치되었을 때는 클래식한 역할의 윙어에 충실했고, 중앙에 배치되었을 때는 중앙 미드필더로 할 수 있는 패스 정확도와 투지를 보여주면서 국가대표, 맨유, 레알 마드리드, AC밀란, PSG, LA 갤럭시 등 거쳐온 모든 팀에 기둥으로 활동하며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각도기와 같았던 크로스와 프리킥의 정확도에 있어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지단 등과 함께 비슷한 플레이스타일을 가진 새로운 축구선수가 나오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레전드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4. 기록[편집]



4.1. 대회 기록[편집]




  • LA 갤럭시 (2007~2012)
    • MLS컵: 2011, 2012
    • MLS 서포터즈 실드: 2010, 2011
    • MLS 서부 지구
      • 정규시즌: 2009, 2010, 2011
      • 플레이오프: 2009, 2011, 2012



4.2. 개인 수상[편집]


  • 발롱도르 2위: 1999
  •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2020 (RW 7위)
  • FIFA 올해의 선수 2위: 1999, 2001
  •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1998-99
  • UEFA 올해의 미드필더: 1998-99
  • UEFA 올해의 팀: 2001, 2003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1996년 8월
  • 프리미어 리그 도움왕: 1997-98, 1999-2000, 2000-01
  • 프리미어 리그 10시즌 베스트 XI: 1992–2002
  • 프리미어 리그 10시즌 최고의 골: 1996년 8월 17일 (윔블던 전)
  • PFA 올해의 영플레이어: 1996-97
  • PFA 올해의 팀: 1996-97, 1997-98, 1998-99, 1999-2000
  • PFA 세기의 팀[17]: 2007
  • FWA 공로상: 2008
  • MLS 최우수 선수: 2008, 2012
  • MLS 올해의 컴백 플레이어상: 2011
  • ESPY 어워즈 최고의 남자 축구 선수: 2004
  • FIFA 100: 2004
  • 맷 버스비 경 올해의 선수: 1996-97
  • FA 잉글랜드 올해의 선수: 2003
  • 레알 마드리드 올해의 선수: 2005-06
  • UEFA 회장상: 2018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08
  • AC 밀란 명예의 전당: 2017
  • BBC 올해의 운동 선수: 2001
  • 옹즈 드 옹즈: 1999, 2003
  • ESM 올해의 팀: 1998-99
  • IFFHS 레전드: 2017
  • 타임 100: 2008
  • BBC 올해의 스포츠인 평생 공로상: 2010
  • 프리미어 리그 명예의 전당: 2021


4.3. 서훈[편집]


  • 대영제국 훈장 4등급 (OBE):2003[18]


4.4. 출전 기록[편집]


  • 트랜스퍼마켓 기준.
시즌
클럽
리그
FA 컵
리그 컵
유럽 클럽 대항전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1994-95
프레스턴
5
2
0
0
0
0
0
0
0
0
0
0
0
0
0
5
2
0
시즌
클럽
리그
FA 컵
리그 컵
유럽 클럽 대항전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1992-93
맨유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1993-94
0
0
0
0
0
0
1
0
0
0
0
0
0
0
0
1
0
0
1994-95
4
0
0
2
0
0
3
0
0
1
1
1
0
0
0
10
1
1
1995-96
33
7
5
3
1
0
1
0
0
2
0
0
0
0
0
39
8
5
1996-97
36
8
7
2
1
0
0
0
0
10
2
1
1
1
2
49
12
10
1997-98
37
9
14
4
2
2
0
0
0
8
0
5
1
0
0
50
11
21
1998-99
34
6
9
7
1
0
1
1
0
12
2
8
1
0
0
55
9
17
1999-2000
30
6
15
0
0
0
0
0
0
12
2
4
5
0
0
47
8
19
2000-01
31
9
10
2
0
0
0
0
0
12
0
3
1
0
0
46
9
13
2001-02
28
11
1
1
0
0
0
0
0
13
5
3
1
0
0
43
16
4
2002-03
31
6
9
3
1
0
5
1
0
13
3
2
0
0
0
52
11
11
시즌
클럽
리그
FA 컵
리그 컵
유럽 클럽 대항전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3-04
레알
32
3
12
5
2
2
-
-
-
7
1
2
2
1
1
46
7
17
2004-05
30
4
8
0
0
0
-
-
-
8
0
4
0
0
0
38
4
12
2005-06
31
3
11
6
1
0
-
-
-
7
1
4
0
0
0
44
5
15
2006-07
23
3
6
2
1
0
-
-
-
6
0
1
0
0
0
31
4
7
시즌
클럽
리그
FA 컵
리그 컵
대륙 클럽 대항전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7
LA 갤럭시
5
0
2
0
0
0
-
-
-
2
1
1
0
0
0
7
1
3
2008
25
5
8
0
0
0
-
-
-
0
0
0
0
0
0
25
5
8
2009
11
2
2
0
0
0
-
-
-
0
0
0
4
0
0
15
2
2
2010
7
2
1
0
0
0
-
-
-
0
0
0
3
0
2
10
2
3
2011
26
2
13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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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
AC 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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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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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3
파리 생제르맹
10
0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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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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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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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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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홍보 대사[편집]


  • 2005년 ~ (현재) 유니세프 친선대사
  • 2005 ~ 2012년 2012 런던올림픽 홍보대사
  • 2008 ~ 2010년 "2018년 잉글랜드 월드컵" 홍보대사
  • 2010년 ~ (현재) 야후! 글로벌 축구 홍보대사
  • 2011년 ~ 2012년 삼성전자 런던 올림픽 글로벌 홍보대사
  • 2013년 ~ 중국 슈퍼리그 홍보대사
  • 2020년 ~ AIA 글로벌 앰배서더


5. 베컴에 대한 말, 말, 말[편집]


파일:20200606_134223.jpg

데이비드 베컴은 신이 내린 재능이어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재능이 덜한 선수들이 발상해내지 못하는 응용력을 가진 채로 쉬지 않고 연습하기 때문에 영국의 최고 공격 자원이다.

알렉스 퍼거슨


베컴은 열심히 노력한다. 용감하고 크로스 능력이 뛰어나다. 그는 아내를 대하듯이 축구를 다룬다. 사랑스럽게, 조심스럽게.

브라이언 클러프


베컴은 전통적인 축구의 개념을 뛰어넘었다. 쇼비즈니스의 중심에 서있다. 안나 쿠르니코바와는 달리 베컴은 경기장 안에서 쇼를 펼친다.

마르셀 드사이


베컴의 DNA에는 프리킥 본능이 있다. 그는 세계 최고의 프리키커다.

스벤예란 에릭손


선수들로부터 리더로 존경받는 베컴, 더 이상 증명할 게 없다.

펠레


내가 본 최고의 크로스를 하는 선수는 베컴이다.

파트릭 클라위버르트


베컴의 발에 잉글랜드의 운명이 결정될 것.

프란츠 베켄바워


(프리킥 찰 때)내가 한 쪽에 서고 베컴이 반대쪽에 섰지만, 나는 베컴이 공을 차는 궤적이 아름다웠기에 베컴이 차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호베르투 카를루스


베컴은 맨유에서 이적한 이후에 축구 외적인 활동에 몰두하면서 한 번도 전성기의 기량을 되찾지 못했다. 그가 정말 축구를 사랑했다면 미국으로 떠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알렉스 퍼거슨


베컴의 오른발은 마법의 지팡이.

스페인 언론 아스


브라질 대표팀이 단 한 명의 외국인 선수를 보유할 수 있다면 오직 베컴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베컴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었다. 볼 터치나 원하는 곳 어디든 공을 보내는 능력은 정말 뛰어났다. 또 나를 보고 있지 않았는데 공이 왔다. 나에게 연결한 수많은 패스에 대해 감사한다. 정말 놀라운 선수였다.

호나우두[19]


베컴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그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열광했다. 축구와 다른 영역에서 모두 최고가 된 베컴을 열망한다. 내가 따르는 유일한 사람이다.

앙투안 그리즈만



6. 사건 사고[편집]


  • 2002년 한일 월드컵 직전이었던 5월 21일 잉글랜드와 한국이 평가전을 가졌는데, 경기종료 후 한국선수들이 유니폼 교환을 위해 벤치에 앉아있는[20] 자신에게 다가오자 유니폼 교환을 거부하고 유니폼을 교환하려던 다른 선수에게 "얼른 라커룸에 들어가!"라며 호통을 친 일화로 논란이 되었다.

당시 베컴은 한국에서 그야말로 콩이 까이듯이 까이고 까여 가루가 되었다. 차범근도 칼럼을 통해서 대대적으로 비판했을 정도. 또한 얼마후 월드컵에서 일본과는 유니폼 교환을 한 덕에 다시 비난당했다.
결국 유니폼 교환 거부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시 한국과의 경기가 잘 안 풀렸던 데다 월드컵 개막이 불과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선수들이 다소 거친 플레이[21]를 펼쳤던 점 역시 대회 직전까지 회복을 맞추느라 신경이 날카로워진 베컴의 심기를 건드렸을 수도 있다. 베컴은 당시 시즌 중에 입은 발목부상을 치료 중으로,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에릭손 감독이 엔트리에 포함을 시켰지만, 회복이 더디어지면서 상당히 심기가 불편했던 상태였던 듯. 참고로 당시 경기 결과는 1:1 무승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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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David-Beckham-dan-Rebecca-loos.jpg.cf.jpg
2004년 4월 베컴은 불륜 스캔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자신의 비서였던 레베카 루스가 혼외정사를 폭로했는데, 루스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베컴은 열정적인 파트너였다. 우리는 진심으로 사랑했고 섹스 때마다 서로 부족함을 채워줬다"고 적나라하게 고백했다. 이 사건 이후 호주 국적의 모델 사라 마벡, 영국의 누드모델 케이티 프라이스 등도 베컴과의 혼외정사가 있었던 것을 폭로했으며, 베컴 부부는 한 때 이혼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 [23]

2010년에는 이탈리아 TV의 성추행을 당한 적 있다. 한국에서도 인터넷 신문들이 대서특필해서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탈리아 여자 리포터가 베컴에게 접근해 거시기를 꽉 쥐어버린 것.

  • 2012년 6월 30일 캘리포니아 스탠포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 프로축구 로스앤젤레스 갤럭시와 산 호세 얼스퀘이커와의 경기에서 누워있는 선수를 정확한 킥으로 맞혀 화제가 되었다. 베컴의 활약에도 경기는 3-4 LA가 뒤지는 상황에서 추가시간을 맞이했고, LA의 마지막 기회일수도 있는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이때 산 호세의 샘 크로닌이 LA 선수들과 문전에서 몸싸움을 벌이다가 부딪혀 쓰러졌는데, 그라운드에 그대로 누워 일어나지 않고 시간을 지연시키는 침대축구를 시전했다. 프리킥에 실패한 베컴은 그의 시간지연에 화가 났는지 사이드라인 부근에서 누워있는 크로닌을 향해 슛을 날렸고, 공은 크로닌의 몸에 정확히 맞았다.[24] 공에 맞은 크로닌은 벌떡 일어나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했고, 주심은 베컴에게 경고를 주었다. 하지만 양 팀 선수들까지 흥분해 서로를 밀치는 몸싸움 직전까지 갔다. 경기는 다시 속개됐으나, LA의 패배로 끝이 났다. 화난 베컴은 다시 상대 선수와 몸싸움을 벌이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고,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국의 프로그램을 홍보하러 그라운드에 진입한 마스코트를 밀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2012 런던 올림픽 대표팀에서 탈락해 심기가 불편해서 이랬던 거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때의 여담으로,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이 베컴을 자신의 사무실로 오게 해서 베컴에게 축구화를 던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을 했다는 설과 호베르투 카를루스와 광고를 찍을 때 카리스마에 반해서 이적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다만 축구화 사건은 라커룸에서의 우발적인 충돌로 드러났다.

  • 2019년 10월 내한 시, 서울의 한 레스토랑에 예약을 해놓고 예약 30분전 일방적으로 취소해서 논란이 되었다. 해당 레스토랑 오너셰프의 포스팅 기사 해당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가 자신의 인스타에 올린 바에 따르면 심지어 국내 대행사가 아닌 해당 인사의 직속 스탭이 직접 예약했다고 한다.


7. 여담[편집]


  • 파일:attachment/becksexpress_sub_pop.jpg
베컴의 택배 크로스 짤방이 유명하다.

  • 2006년에는 자신이 강박장애를 앓고 있음을 언론에 고백하기도 했다. 실제로 생활하는 모습이 공개되었을 때 냉장고를 열자 안에 캔 음료수가 한가득 가지런히 정렬돼있고[25] 그 중 한 개를 꺼내자마자 바로 박스에서 음료를 꺼내어 빈자리를 채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박스 안에 든 음료수가 바닥나서 냉장고 속 음료수의 열을 맞출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반대로 냉장고에 들어가있는 멀쩡한 음료수들을 내다버린다고 한다.

  • 왼쪽 팔뚝에 아내 빅토리아의 이름을 힌디어로 새겼으나 글자가 잘못 들어가 '비흑토리아'가 되어버렸다 한다. 베컴의 대변인은 이에 대해 힌어와 힌어는 다르다는 개드립을 쳤다.

  • 아들부자이다. 큰 아들 브루클린, 둘째 아들 로미오, 셋째 아들 크루즈[26] 모두 훈훈한 외모를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도 딸을 낳고 싶어서 여러모로 노력한 결과 드디어 딸을 갖게 되었다. 얼마나 좋았으면 태어나지도 않은 딸 방을 꾸미는데 무려 2억 3천만원을 들였다고. 2011년 7월 10일 드디어 딸 하퍼 세븐 베컴 출생[27]. 아빠가 레전드 축구선수, 엄마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걸그룹 출신, 오빠들은 꽃미남, 재산은 황금산인 다이아몬드 수저다. 유전자 라인을 생각하면 외모도 그다지 걱정없다. 하퍼를 낳은 이후엔 그야말로 딸바보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 브루클린과 크루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이지만 로미오는 아스날 팬이라고 한다. 로미오는 모델 활동도 하고 있으며 2014년 아스날 유스팀에 입단해서 뛰고 있다. 베컴은 인터뷰를 통해 세 아들 모두 아스날 유스팀에서 뛰고 있다고 밝혔다. 세 아들 중 축구선수로써의 재능은 로미오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중이었으나 셋 다 축구를 그만둔 듯 하다.

  • 아이들을 마냥 오냐오냐 키우는게 아닌지 첫째 아들 브루클린은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런던의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시급은 2.68 파운드로, 만 16세 미만이기 때문에 최저임금보다 적다. 커피숍 아르바이트 외에도 모델일을 하고 있다.

  • 파일:external/arsenal4u.com/romeo-beckham-arsenal-fan.jpg
로미오와 함께 아스날 경기를 관전중인 베컴. 아이들이 태권도를 배우게 했다고 한다.

  • '베컴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한 5분 동안은 실실 쪼갤 수 있다'는 식으로 네티즌들에게 놀림받았던 적이 있다. [28] 목소리가 엄청 이상한 편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외모만 보고 깊은 목소리를 예상했는데 의외로 하이톤이라서 더 부각된 면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발성법이 조금씩 바뀌기도 했고, 또 목소리 교정도 따로 받아서 그런지 현재의 목소리에서는 이전부터 지적(?)받아온 삐걱대는듯한 고음부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상태다. [29][30] 그래도 최근 영상들을 살펴보면 일부 영상에서는 보통의 목소리 톤을 띄지만 일부 영상은 하이톤이 나오는 등 전체적으로 목소리 톤에 기복이 있는 편이다. 그냥 컨디션에 따라 목소리 톤에 기복이 생기는 타입이거나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본래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목소리가 가늘다는 기믹은 빼도박도 못하는지 영화에서도 데드풀이 "헬륨가스와 오XXX한 듯한 목소리"라고 깠다. 이게 인연이 됐는지 데드풀 2 홍보영상에는 데드풀이 전작에서 자기 목소리를 까는 영상을 반복해서 보며 인상을 찌푸리던 베컴을 데드풀이 찾아와서 계속 화해를 시도하는 모습도 나온다. 이때 베컴은 데드풀을 연기한 라이언 레이놀즈의 흑역사 작품들을 줄줄히 언급하며 쌓였던 걸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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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인기가 장난이 아닌데,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출전했던 잉글랜드 대표팀은 조별 예선을 일본에서 치뤘는데, 어느 구장을 가든 간에 웸블리 스타디움에 버금가는, 홈에 가까운 일방적인 응원을 받았다. [31] 또한 베컴도 2018 러시아 월드컵 당시 일본을 방일하여 일본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기도 했다. 또한 본인도 스시를 좋아한다고 한다. 재밌는 일화로는 베컴 닮은 꼴로 활동하는 사람이 일본에 갔다가 대형 음반점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덕에 앙숙전인 아르헨티나전에서 잉글랜드가 공을 잡으면 관중들이 환호성을 지른 반면 아르헨티나가 공을 잡으면 관중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일본의 한 시골 초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학생들 반응이 '근데 아저씨는 누구세요?~' 식으로 영 좋지 않았는데,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블레어 총리가 "아저씨는 베컴과 같은 나라 사람이란다." 라고 말하자마자 학생들 반응이 갑자기 열광적으로 바뀌었다는 일화도 있다.

  • 2006 FIFA 월드컵 독일 때 베컴은 아르헨티나 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전을 관전했다.[32] 이 경기가 아르헨티나의 학살극으로 끝나자 베컴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내가 마라도나였어도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에서 손으로 골을 넣었다. 스포츠정신이고 뭐고 간에 우리와 아르헨티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승리가 절박한 상태였다. 지금 아르헨티나랑 맞붙으면 잉글랜드로서는 아르헨티나를 이길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33] 그리고 그 발언은 8년 후 2014 브라질 월드컵때 간접적인 정답이 되어 돌아왔다. 베컴의 조국인 잉글랜드는 1무 2패라는 시원찮은 성적의 조 꼴찌로 조별리그를 탈락한 반면 아르헨티나는 3전 전승의 조 1위로 올라가서 준우승을 찍은 것이다.[34]


명대사로, 2009년 모토로라의 MOTO V10 한국용 광고에 나왔던 "난 둘 다."가 있다. 들리는 대로 적으면 난 둘돠인데, 후자 쪽 표기가 더 유명하다.

  • 상체에 한문 문신을 하고 있다. 아니, 상체 전체에 문신이 엄청나게 많다. 왼쪽 상체 세로로 고사성어 '생사유명 부귀재천(生死有命 富貴在天)'이 초서체로 적혀 있는데, 뜻은 '생사는 수명에 달렸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으니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베컴은 첫째인 브루클린을 낳고 등에 천사 문신을 하고 아들의 이름을 새기는 것으로 문신을 시작했는데, 처음 문신을 했을때엔 너무 고통스러워서 다시는 안하리라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새겨진 것이 마음에 들어 점차 문신을 늘렸고, 이제는 상체 전체가 문신으로 뒤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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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바디웨어 광고를 찍는 중인 베컴. 상체 전체가 문신으로 덮여 있다.

  • 축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화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휴식시간엔 종종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슈퍼스타들이 그런 경우가 많지만 친절한 성품이라고 한다. 한국에도 이벤트로 LA 갤럭시로 가서 베컴을 만난 팬들이 있었는데 서슴없이 포옹도 하며 서글서글하게 대해주는 그 친절함에 녹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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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엔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에 초청되어 빅토리아 베컴과 함께 기품 있는 자태를 뽐냈다. 가슴에 달고 있는 것은 2003년에 받았던 4등급 훈장(OBE) 메달이다. 참고로 이 훈장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페널티 킥을 성공시켜 이기고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조별리그에서 탈락시켰기 때문에 받았다는 주장이 있다.[35]

  • 테니스에 관심이 많은지 매년 6월말~7월초에 열리는 그랜드슬램 대회중 하나인 윔블던 관중석(VIP만 앉을 수 있는 로얄박스석)에서 그를 쉽게 만날 수 있다.

  • 어째 굴욕광고를 많이 찍었다. 가장 유명한건 뭐니뭐니 해도 아디다스 광고로 당시에는 만화나 짤방 등으로 많이 패러디가 되었었다.


베컴: 제일 좋아하는 선수가 누구야?
소년: 제라드요.[36]
베컴: 어.......음.......어...... 그래?
소년: 음......
베컴: 그렇구나....

소년의 콜라를 얻어 마신 베컴. 갑자기 소년이 베컴에게 유니폼을 요구하길래 베컴이 멋지게 벗어줬것만 그걸로 소년은 콜라에 묻은 베컴의 침을 닦고 유니폼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뒤돌아선 소년은 유벤투스의 팬임이 밝혀진다.

아들 브루클린의 인스타그램 100만 팔로워 기념 영상에 기습 출연하여 자기는 팔로워가 5,200만명있다며 굴욕을 주었다.

  • 헬스 키친 시즌10의 에피소드11화에 아들 브루클린을 데리고 특별출연해서 주방이 가장 잘 보이는 VIP석에서 식사를 대접받았다. 영상.

  • 파일:external/www.thesun.co.uk/2876946.main_image.jpg
상당한 지네딘 지단의 빠다. 현재로 치면 가레스 베일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관계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지단을 역대 최고의 선수로 치켜세우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 친분이 깊다. 베컴의 빠심은 지단에 대한 인터뷰에서 드러난다.

함께 광고도 많이 찍었다.

  • 항상 긴팔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는데 그 이유가 자신의 팔에있는 타투를 어린아이들에게 보여주는게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서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후로도 (간혹 반팔 유니폼을 착용한 적이 있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기에서 긴팔 유니폼을 착용했다.

  • 스펀지 제로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은 태국에 "베컴 가루다"라고 하는 베컴 불상이 있다고 한다. 이 베컴 불상은 그 당시 가장 사회적인 이슈 가운데 주인공을 불상으로 만들려고 했엇는데, 그때 베컴이 당첨된 거라고. 원래, 태국이라고 하는 나라 자체가 축구광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축구를 무척 좋아하는 나라라는 것도 한 몫을 했을 듯 하다. 그리고 여기에서 압권인 게 당시 이휘재가 베컴 가루다를 따라오면서 "이휘재 가루다"라고 했는데, 평가원들이 내린 점수는 전원 0점이었다. 오죽했으면 당장 베컴 씨에게 사과하라는 말을 듣고 이휘재가 베컴에게 사과를 했을 정도다.

  • 파일:2002베컴.jpg
단순한 미남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패션의 선두주자이기도 했다. 2002년 당시의 데이비드 베컴의 헤어스타일이 아예 광풍이 불어서 사람들이 너도나도 속칭 '베컴머리'라고 해서 베컴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했다.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영화 까불지마에도 나오는데 개떡이 미용실 가서 유명한 축구선수의 헤어스타일로 깎아달라고 했는데 미용사가 유명한 축구선수의 헤어스타일로 깎아주는 바람에 개떡이 난동을 부리는 장면이 있다.

  •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매니아로 알려져 있다.[37] 물론 아내인 빅토리아는 국민 SUV를 오래 탔고 2020년 겨울부터는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2019년 10월 9일 서울에서 아디다스 창립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백가람" 이라는 한국 이름을 받았다. 문제는 이 행사의 또다른 게스트인 BLACKPINK가 약 20분 가량 지각을 하는 바람에 논란이 되었다.[38]

  • 2019년 10월 12일 스포츠 에이전트로 등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첫 고객 유치를 위해 킬리안 음바페 측과 접촉해보겠다고 밝혔다.

  • 영국남자 채널에 출연해 소고기 먹방을 찍었다. 된장찌개는 저날 처음 먹었는데 아주 좋아한다.


  • 큰 아들 브루클린이 2020년 7월 11일, 여자친구인 니콜라 펠츠와 약혼했다고 발표했다. # 머지 않아 결혼식도 올릴 예정이라 45세에 며느리를 둔 시아버지가 되었다.

파일:Screenshot_20200729-022452_Chrome.jpg

  • 은퇴 후에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일반 스포츠 종목 뿐만 아니라 e스포츠 분야에도 투자했다. 영국 e스포츠 신생기업 ‘길드 e스포츠’에 투자했고, 해당 팀은 로켓 리그, FIFA 시리즈, 포트나이트 등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런던 증시에 상장까지 했다고 한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폐회식은 다음 올림픽 개최국인 영국이 2층 버스에서 리오나 루이스와 함께 "Whole Lotta Love"를 연주하는 퍼포먼스였다.[39] 데이비드 베컴은 버스 위에서 공을 차는 퍼포먼스를 하였다.


  • 탈모의 저주는 베컴도 피해가지 못했는데, 30대 초반 즈음부터 정수리가 조금씩 휑해지기 시작하더니 커리어 후반부인 2010년대부터는 눈에 띄게 탈모가 진행되었다. 실제로 이 당시 베컴의 헤어스타일은 앞머리를 많이 길러서 뒤로 넘겨 정수리 탈모를 커버하는 형태 일변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탈모가 점점 심해지다 2018년 갑자기 풍성해져서 모두를 놀라게 했는데 베컴 측이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모발이식을 받았을 거란게 중론. 그런데 2년 후인 2020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이발도 집에서 스스로 하자는 챌린지의 일환으로 베컴이 삭발한 모습이 공개되었는데 여기서 또 다시 머리숱이 휑해졌다.


7.1. 영화 출연[편집]


자신의 이름을 단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40]에 와이프인 빅토리아와 카메오 출연이 아니라 대역으로 출연하고 실제 본인이 나온 것은 자료화면만 사용했다. 당시 9.11 테러로 인해 각나라별로 보안검색이 강화된 데다가 아내인 빅토리아가 임신중이어서 촬영이 어려웠다고 한다. 정작 베컴 본인은 영화가 나온 뒤 “왜 이런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나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느냐”며 아쉬워했다는 후문.



지금까지 축구와 관련된 영화 작품에만 출연하였던 베컴이지만, 2017년 개봉한 영화 킹 아서: 제왕의 검 에서는 감독인 가이 리치 감독과의 친분으로 카메오로 출연하였다. 극 중 블랙레그의 리더를 연기하였다.


7.2. 가정사[편집]


평민이지만 집안 자체가 부유했던 아내 빅토리아와는 달리 평범한 서민 집안이었다. 한마디로 자수성가형. 3남매 중 둘째이자 유일한 아들이었던 베컴은 누나 린과 여동생 조앤을 잘 돌보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자매들에게 물질적 지원을 많이 해줬다.

그러나 누나 린은 이런 슈퍼스타 동생만 믿고 자기 분수와 능력에 맞지 않게 과소비를 해대서 동생이 사 준 아파트들을 모두 날려버렸으며, 심지어 변변한 직업 하나 전혀 없다고 한다. 영국 언론에서 베컴은 초호화 집에서 사는데 누나는 저소득층 아파트에서 산다는 기사를 내놓자 베컴이 즉각 반박했을 정도.

게다가 연애운도 지지리도 없다. 애인들이 하나같이 다 범죄자다. 집에서 코카인 키우다가 걸리지를 않나, 폭력죄 전과범이지를 않나. 그래서 그런지 큰시누이의 첫 결혼 때 빅토리아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여동생 조앤은 남자관계에 별 문제도 없고 자립을 했다는 것.

빅토리아 베컴과의 사이에서 3남 1녀를 두었다. 브루클린, 로미오, 크루즈까지 3년 간격으로 내리 아들만 낳다가 크루즈 출산 이후 6년만에 늦둥이 딸 하퍼를 낳았다. 평소 자녀들을 모두 사랑하는 모범적인 가장이지만 늦둥이 막내딸인 하퍼를 특히 끔찍이 아끼는걸로 유명하다. 하퍼가 아기였을 때 부터 안고다니는 사진은 이미 유명하며 지금도 하퍼와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면 진짜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

과거 한국에서 한 인터뷰에서도 딸 하퍼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라고 했을 정도로 애정을 과시했다.


7.3. 외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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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대표 미남들과 비견되는 외모,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1위 등, 데이비드 베컴 하면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잘생긴 외모다. 또한 외모 관련 설문조사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여성 직원들이 선정한 최고의 미남 1위[41], '피플지' 30주년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1위, 100만명 이상이 참가한 미국 남성패션전문 '에그스멘닷컴'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남성 1위, '호주 엔터테인먼트 텔레비전'에서 전세계 전문가 20명의 조사를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1위 등 수 많은 외모 관련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잉글랜드에서 메트로섹슈얼의 선구주자로 꼽히는 인물로, 이것이 퍼거슨과의 불화에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옛날 사람인 퍼거슨으로서는 빅토리아와 연애를 시작한 이후 점점 계집아이처럼 변해가는 베컴의 외모를 참을 수 없었던 모양. 당시 영국에서는 남자가 머리와 옷차림으로 꾸민다는 것이 거의 금기시되는 풍조였다[42].

한국에서 데이비드 베컴 관련 글과 영상 댓글에서 가장 많이 언급이 되는 것은 '축구실력이 외모때문에 저평가됐다.'이다. 비슷한 예로는 안정환이 있다.

외모로 오해를 받아 기성용마냥 적은 활동량으로 볼을 예쁘게 차는 선수로 오해를 받지만 현역때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하드워커였다.


7.3.1. 20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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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베컴의 첫번째 리즈시절. 거짓말 굳이 안 보태도 웬 순정만화에 주인공으로 나올 것 같은 인물이 올드 트래포드를 미친듯 뛰어다녔다. 베컴의 꽃미남 시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때를 최고로 꼽는다.


7.3.2. 30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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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베컴의 두번째 리즈시절이다.
20대 시절보다 오히려 중후한 멋을 더한 30대의 데이비드 베컴이 더 멋있다는 의견도 많다.


7.3.3. 40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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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이 늘긴했으나[43], 여전히 잘생기고 멋지다. 늙어서 잘생기려면 젊어서 잘생기면 된다는 말을 직접 실천하고 있는 중. 어째 점점 키아누 리브스를 닮아가고 있다.


7.4. WAGs[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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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의 걸그룹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였던 빅토리아 베컴이다. 베컴과 빅토리아는 1999년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이 결혼식은 같은 해에 있었던 에드워드 영국 왕자 결혼식을 제치고 올해 최고의 결혼식으로 선정됐다.

빅토리아 베컴은 그저 데이비드 베컴의 이름값에 효과를 톡톡히 보는 아내 이미지로 오해를 많이 받는다. 그러나 둘이 처음 만났을때 데이비드 베컴은 유망주였으나 빅토리아 베컴은 세계 최고의 아이돌이였다. 물론 90년대 후반부터는 데이비드 베컴이 우리가 아는 시대의 아이콘이 됐고 인기는 확연히 역전됐다. 참고로 데이비드 베컴 인기에 빅토리아 베컴에 지분을 무시할 수 없다. 일단 슈퍼스타 아내이고 탁월한 패션 감각이 있어 옷만 입고 나오면 크게 화제가 되며 패션 트렌드를 이끌었던 데이비드 베컴 패션에 도움을 많이 주었고 또한 축구 외적인 부문에서 베컴이 인지도를 쌓는데 크게 기여했다.

빅토리아와 베컴의 첫 만남, 그리고 그 이후 러브스토리는 유명하다. 1996년 스파이스걸스의 히트곡 '세이 유 윌 비 데어의 뮤직비디오'를 본 데이비드 베컴이 첫눈에 사랑에 빠졌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개 구애했다. "그녀는 나를 위한 여자다. 나는 그녀를 잡으러 갈 것이다.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완벽한 여성이고, 그녀 역시 나를 원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며 그녀에 대한 마음을 용감하게 전했다. 빅토리아가 베컴의 맨유 클럽 선수 라운지를 찾으면서 평생의 연이 시작됐다.

''축구에 대해 조금 더 배워두도록 해. 특히 오프사이드 룰 말야"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진짜 존재하더라. 맨유 선수 라운지에서 첫눈에 반하는 그 일이 일어났지. 너는 약간 취해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디테일은 가물가물하겠지만" "선수들끼리 바 옆에 서 있었는데 너는 가족과 함께 서 있는 데이비드를 봤어. 당시 그는 1군팀이 아니었고, 너는 굉장히 유명한 스타였지. 그가 널 향해 특유의 귀여운 미소를 지어보였고, 너는 그의 가족 옆으로 다가갔어. 그 역시 너와 똑같은 느낌일 거란 생각이 들었을 거야. 곧 그가 너의 전화번호를 묻겠지."

- 빅토리아 베컴이 본인에게 쓰는 편지



7.5. 영국 설문조사의 왕[편집]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선정한 2000년대 첫 10년을 대표하는 아이콘 10개 중 하나로 데이비드 베컴이 선정됐다.

영국 '데일리 메일'에서 조사한 영국인들이 뽑은 '최고의 롤모델'에서 과반수가 넘는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OECD 회원국 30개국+ 중국 총 31개국 네티즌을 대상으로한 '각 나라별 대표 키워드'에서 영국의 키워드로 데이비드 베컴이 1위로 선정됐다.

미국의 유명 건강식품사이트이자 다이어트 프로젝트인 '소칼 클린스'에서 가장 깨끗한 남자 1위를 차지했다.

'호주 엔터테인먼트 텔레비전'에서 전세계 전문가 20명의 조사를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1위를 차지했다.

너무나도 대단한 영향력 탓에 "데이비드 베컴과 '신'중에 누가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설문조사가 있었다.
데이비드 베컴에 무려 37%가 나왔다.

'피플지' 30주년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1위를 차지했다

영국의 한 마케팅 업체가 실시한 "세계에서 가장 멋진 스타 가족"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영국의 패션잡지 '글래머'에서 '세계 최고의 남자 베스트드레서' 1위를 차지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여성 직원들이 선정한 '최고의 미남 1위'를 차지했다.

2003년 미국 AP통신이 전 세계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올해의 스포츠 뉴스'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데이비드 베컴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이 1위를 차지했다.

영국 보험회사 'UBC홈론'에서 '10대 청소년이 가장 되고 싶은 인물'이라는 설문조사 남성부분에서 데이비드 베컴이 선정됐다

영국 게이다 라디오 설문조사에서 '남성 동성애자들이 가장 결혼하고 싶어하는 파트너' 1위를 차지했다.

영국의 양육 관련 웹 사이트 '넷멈스'에서 자녀를 가진 4,000명의 남자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무려 85%가 데이비드 베컴처럼 완벽한 아버지의 모습을 기대하는 가족들과 다툰 적이 있다"라고 답했다.

100만명 이상이 참가한 미국 남성패션전문 '에그스멘닷컴'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남성 1위를 차지했다.

영국의 한 의료품업체가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스트레스가 가장 많을 것 같은 사람' 1위로 데이비드 베컴의 아내인 빅토리아 베컴이 선정됐다.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선수의 아내로 사생활이 매스컴에 쫓기고 있다"로 꼽혔다.

온스타일 '스타일매거진'은 패션 뷰티 관계자 100명에게 '청바지가 가장 어울리는 스타'를 조사했는데 데이비드 베컴이 1위를 차지했다.
[1] 통계적으로 가장 많은 혈액형은 A형이다. 묘한 건 스포츠 계 스타들 중에는 골프처럼 O형이 많다는 것. 축구가 그렇다. 대표적인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이나 웨인 루니는 당연히 O형일 터. 한때를 풍미했던 잉글랜드 출신 축구 스타 스티븐 제라드, 프랭크 램파드, 존 테리도 모두 O형이다. 스포츠 뉴스기사[2] 맨유 시절 4-4-2 포메이션의 오른쪽 윙어로 뛰었다.[3] 레알 마드리드, AC 밀란(임대), 파리 생제르맹 시절에는 (4-3-3 포메이션) 중앙 미드필더(하프윙 혹은 메짤라)로도 나름 뛰어난 활약을 했다.[4] 선수 생활이 끝난 뒤에도 자신이 선수 시절 신었던 프레데터 광고에 지단과 함께 출연, 엠버서더로도 활동하고 있다.[5] 10% 소유[6]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출전 역대 3위.[7] 오른쪽 윙어. 중앙 미드필더로도 뛰었다.[8] 20세기 펠레, 마라도나 2010년대 메시, 호날두와 함께 축구계를 대표하는 유명인사다. 심지어 펠레, 마라도나를 모르는 여성들도 베컴은 알고 있었다 할 정도로 여성들에게도 굉장히 높은 인지도를 가진 선수다. [9] 다만 이는 현대축구의 관점에서 말도 안되는 것이, 전후반 90분 평균거리 14km와 그리스전 전후반 90분 16.1km는 도저히 불가능에 가까운 기록이어서 신빙성이 떨어진다. 연장전 포함이라면 가능한 수치지만, 일반적으로 전후반 90분만을 생각한다면 13km만 뛰어도 어마어마한 활동량을 보여주는 것인데 평균 14km라는 수치는 말이 되지 않는다. 이 두 가지의 기록 모두 가디언의 케빈 미첼이라는 기자의 기사에서 인용된 것이고 정확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당시 엄청난 활동량으로 놀라게 했던 러시아 국가대표팀이 연장전 포함 14~15km의 거리를 기록했으며, 엄청난 활동량으로 유명한 디에고 시메오네아틀레티코 마드리드도 챔피언스리그 아인트호벤과의 경기에서 연장전 포함 17km라는 어마어마한 거리를 기록한 적이 있다.[10] 같은 문단 '14km' 부분의 각주와 마찬가지로 신빙성이 떨어지는 기록이다. 물론 그리스전에서 베컴은 어마어마하게 뛰어다니기는 하였다.[11] 참고로 카가와 신지의 맨유 소속 시절 에피소드 중 맨유의 셔틀 런 역대 최고기록 보유자가 베컴이라는 언급이 있다.[12] 중앙보다는 전력 질주나 방향전환 할 일이 많은 윙어의 체력소모가 같은 활동량에 비해 더 심하다.[13] 감아차기 프리킥으로 유명한 선수들도 조금 먼 거리에서는 회전보다는 강력한 직선으로 꽂히는 킥을 구사하거나 팀의 캐논슈터들한테 프리킥을 양보하는 경우가 많다.[14] 정확히 설명하자면 아바테는 빠른 주력과 저돌성만을 앞세운 수비로 안정성이 심히 부족했다.[15] 물론 이는 세분화된 계획 없이 무작정 슈퍼 스타 플레이어만 사 모으던 갈락티코 1기의 불균형적인 스쿼드가 낳은 탓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마켈렐레를 내보냄으로써 중앙에서의 수비적인 안정성이 사라졌는데 베컴처럼 원래 측면에서 주로 뛰던 선수를 중앙에 배치해놓고 수비부담까지 과중하게 실었으니 부진을 안 할 수가 없다. 실제로 베컴은 동 포지션 경쟁자였던 루이스 피구가 인테르로 이적한 이후 본래 포지션인 측면 미드필더로 뛰며 2006/07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극적인 라리가 우승을 이끌어냈다.[16] 부상이후 신체능력 하락과 익숙치 않은 중앙 포지션에서 뛰게 된게 부진의 이유였다. 레알 시절 초기의 부진을 베컴의 실력이나 단점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한 면이 많다.[17] 1997~2007[18] 2003년에 대영제국 훈장 4등급을 받았다. 4등급이므로 작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알렉스 퍼거슨, 바비 롭슨 등이 받은 기사작위(Knight Bachelor)는 2등급 훈장에 준하는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대영제국 훈장 문서 참조. 같은 4등급 훈장을 받은 또 다른 축구 선수로는 라이언 긱스, 앨런 시어러, 프랭크 램파드가 있고, 그들에게 또한 'Sir'는 붙지 않는다. 하지만 202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70주년 행사인 플래티넘 주빌레에서 기사 작위를 받을 예정으로 이후에 작위 수여 이후에는 공식 칭호로 'Sir'가 붙을 예정이다.# 앨런 시어러는 이후 2016년에 자선활동 공헌(For charitable services to the community in North East England)으로 3등급 CBE를 받았다.[19] 그 외[20] 베컴은 당시 시즌중에 입은 부상을 치료중으로, 경기에 출전하지는 않았다. 월드컵 출전이 불투명한 상태였지만 에릭손 감독은 전력의 핵심인 그를 엔트리에 포함했고, 베컴은 월드컵까지 회복하여 출전했다.[21] 이 때까지만 해도 히딩크 감독에 대한 이미지는 썩 좋지 못했다. 2001년에는 '오대영 감독'이라는 별명이 유행했을 정도였고 2002년 들어서도 우루과이에 패하고 CONCACAF 골드컵에서는 쿠바와 0:0 무승부캐나다를 상대로 1:2 역전패를 당했으며 심지어 4월 27일 중국과의 평가전에서조차 0: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본선에 대한 불안감이 컸던 상황. 이러한 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이후 평가전 때마다 선수들이 죽기 살기로 경기에 임하다보니 다소 거친 플레이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며칠 전이었던 5월 16일 스코틀랜드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4:1의 스코어로 한국이 이겼고 잉글랜드전을 무승부로 끝내면서 히딩크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싹 걷혔다.[22] 전반에 마이클 오언이 선제골을 넣었으나 후반에 맨유 후배가 헤딩으로 동점골을 기록.[23] 참고로 루스는 이후 여러 스포츠 스타들과 교제했고, 2008년 tv쇼에 나와 베컴과의 새로운 이야기를 말한 후 자신의 속옷 브랜드를 런칭해 많은 수입을 올렸다.[24] 조금만 옆으로 빗나갔으면 주심에게 맞아 옐로가 아닌 레드 카드가 나왔을 것이다.[25] 꼭 짝수로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26] 2016년 12월 가수로 데뷔하였다. 뮤비[27] 세 오빠들이 각각 1999년생, 2002년생, 2005년생으로 3살 터울인데 반해 막내 하퍼는 바로 윗 오빠인 크루즈와 6살 터울이다. 즉 늦둥이.[28] 오죽하면 축구의 신은 축구선수를 만들 때 꼭 하나씩 빼고 만든다는 우스갯소리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메시를 만들면서 키를 빼먹고, 호날두를 만들면서 패션감각을 빼먹고, 펠레를 만들면서 승부예측을 빼먹고라는 농담이 있다.[29] 베컴의 목소리와 화법의 변화에 대한 BBC 기사, 베컴의 목소리 변화에 대한 칼럼[30] 이전 목소리와 비교한 동영상. 톤 자체가 많이 변한 것을 알 수 있다.[31] 당시 주한미군내 여행사에서는 한국 경기를 포함한 거의 모든 경기의 티켓을 예약할 수 있었지만, 일본과 잉글랜드 경기는 불가능했다.[32] 이날 아르헨티나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를 상대로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6대0으로 털어버렸다.[33]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2002년 마이클 오언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인한 페널티 킥때문에 꺼낸 얘기인데 만약 아르헨티나가 2006년 경기력을 보여줬다면 가뿐하게 조별리그를 마무리하고 우승까지 해볼만 했을것이다.[34]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에서나 토너먼트에서의 경기력이 좋았던건 아니였으나 절대 지지는 않는 경기를 선보이며 결승에 올라갔으나 독일에게 아깝게 패했다.[35] 1982년 포틀랜드 전쟁 이후 국가간의 감정이 격화된 상황에 이후 월드컵에서 3번 만났는데 86년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으로 인해 분위기가 더 안좋아졌다. 98년에도 만나 잉글랜드는 베컴이 퇴장당하는 악재에도 명승부를 펼쳤지만 승부차기 끝에 잉글랜드는 패했다. 이후 2002년 마이클 오언의 할리우드 액션에 속아넘어간 콜리나 주심이 치명적인 오심을 저지르며 아르헨티나가 패했다.[36] 소년이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이 리버풀을 상징하는 빨간색이다. 결국 리버풀의 팬이라서 제라드를 좋아한다는 대답이 나올 것이 뻔하다. 처음부터 베컴은 본인을 좋아한다는 대답을 들을 수가 없는 상태에서 그냥 빈말로 물어본 것이다. 게다가 맨유와 리버풀이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을 생각하면 몰랐을리도 없다.[37] 여담으로, 후배 웨인 루니가 맨유 훈련장으로 에스컬레이드 몰고 가다가 대형트럭과 박았는데, 하나도 안 다쳤다. 하지만 루니는 사고 이후 자국의 국민 SUV로 바꿨다고 한다.[38] 당연하겠지만, 이는 블랙핑크가 잘못한 거지 베컴의 잘못은 전혀 아니었기에 베컴은 논란에서 자유롭다. 오히려 블랙핑크가 올 때까지 시간벌이를 위해 혼자서 팬 서비스를 하면서 이미지가 상승했다.[39] 리오나의 보컬은 라이브였지만 지미의 연주는 핸드싱크이다.[40] 인도계 영국 여학생 중심의 2002년도 롬콤, 스포츠 영화이다. 발리우드 영화는 아니고, 원제는 Bend It Like Beckam. 저예산 영화이지만 제작비의 10배 이상을 벌어들이는 인기를 누렸다. 키이라 나이틀리의 풋풋한 모습도 감상할수 있다.[41] 디즈니 역사상 최고의 미남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디즈니 여성 직원들에게 역사상 가장 잘생겼다는 남자들의 사진들을 쭉 나열했고 데이비드 베컴이 1위를 차지했다.[42] 당시만 해도 영국 남자들은 옷을 못 입기로 유명해서, 박지성이 한창 맨유에서 뛰던 당시 사진만 봐도 영국인 선수들의 외출 옷차림은 죄다 면티 or 스웨터 + 청바지로 끝이었다. 드럽게 못입긴 했지만 그나마 꾸미고 다니던 호날두가 괜히 패션 부심을 부리던게 아닌 것(…).[43] 베컴은 20대부터 잔 주름이 생겼는데 압도적인 외모로 부각이 되지 않았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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