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튀르키예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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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3. 문화 교류
4. 교통 교류
5. 대사관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벨라루스튀르키예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2. 역사적 관계[편집]


킵차크 칸국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벨라루스를 포함한 루테니아 일대로 영토를 급격하게 확장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15세기 전후하여 토크타미쉬 칸이 리투아니아의 비타우타스 대공에게 부하들을 이끌고 귀순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후술할 립카 타타르의 기원이 되었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킵차크 칸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크림 반도의 칸들을 지원하였는데 1430년부로 하지 기레이가 킵차크 칸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크림 칸국이 건국되었다. 하지 기레이는 처음에는 리투아니아 대공국 측에 지원을 구하였으나, 당시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보르스클라 강 전투에서 한 차례 대패했던 경험에다가 서쪽에서 독일 튜튼 기사단과의 전쟁에 몰두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크림 칸국을 예속화하는데 실패했다. 하지 기레이의 뒤를 이어 크림 칸국의 칸이 된 멩글리 기레이는 자청하여 오스만 제국번국이 되었다.

이후 크림 칸국이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루테니아 영토 각지를 약탈했는데, 벨라루스 지역 역시 우크라이나에 비하면 피해가 적었다 뿐이지 심지어 흑해 반대편 발트해 빌뉴스에서도 크림 타타르의 약탈과 인신매매를 피하기 위해 성벽을 건설해야 할 정도로 피해가 막심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벨라루스 각지에 정착한 립카 타타르인들의 경우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과 뒤이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충성하였다. 이들은 종교적으로는 오스만 술탄의 권위를 존중하였으나 이와는 별개로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군사 귀족 신분으로 폴란드-리투아니아에 충성하였다.

본격적인 두 나라의 외교 관계는 소련 해체 이후부터였다. 1992년 3월 25일에 양국은 수교를 맺었다. 벨라루스는 2020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튀르키예를 지지한 바가 있다.


3. 문화 교류[편집]


튀르키예를 방문하는 벨라루스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안탈리아 일대의 지중해 해변 관광지들이 물가가 무척 저렴하고 러시아어 사용자들을 위한 여러 편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술한 것처럼 벨라루스에도 튀르크계, 튀르키예계 주민들이 이주하기도 했었는데 대표적으로 립카 타타르인들이 대표적이다. 물론 립카 타타르인들은 킵차크 칸국에서 비타우타스토크타미쉬 칸 시절 이주해 온 사람들로 이주 배경은 오스만 제국과 직접적인 상관은 없지만, 대신 립카 타타르인들은 튀르키예 반도의 튀르키예인들과도 교류가 활발하였다.

립카 타타르인들의 문화는 근대 범튀르크주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한다.

4. 교통 교류[편집]


양국을 이어주는 항공노선이 존재한다.


5. 대사관[편집]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는 튀르키예 대사관이 설치되었고,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는 벨라루스 대사관이 설치되었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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