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일그너

덤프버전 :




보도 일그너의 수상 이력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독일의 前 축구 선수


파일:보도 일그너.jpg

이름
보도 일그너
Bodo Illgner
출생
1967년 4월 7일 (57세)
서독 라인란트팔츠코블렌츠
국적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신체
190cm
직업
축구 선수 (골키퍼 / 은퇴)
소속
선수
1. FC 쾰른 (1985~1996)
레알 마드리드 CF (1996~2001)
국가대표
54경기 (독일 / 1987~1994)

1. 개요
2. 클럽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독일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1997-98, 1999-00 시즌 2차례의 UCL 우승을 이끌었으며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전 골키퍼로 1990 월드컵 우승과 유로 1992 준우승에 기여했다.

월드컵 결승전과 UCL 결승전에서 모두 무실점을 기록한 최초의 골키퍼이며, 1991년에는 유럽 최고의 골키퍼에게 수여하는 베스트 유러피언 골키퍼를 수상했다.


2. 클럽 경력[편집]



2.1. 1. FC 쾰른[편집]



파일:D3hni71XsAEvh4L.jpg


1. FC 쾰른의 유스시스템에서 성장한 일그너는 1985년 성인팀으로 발탁되어 1986년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원정경기에서 그의 프로 첫 데뷔전에 출전한다.

첫 해에는 주로 백업 골키퍼의 역할에 만족해야 했지만 다음 시즌인 87-88 시즌부터는 하랄트 슈마허를 제치고 클럽에서 주전 골키퍼 자리를 차지한다. 1991년에는 유럽 최고의 골키퍼에도 선정되는 영예를 누리며 일그너는 1985년부터 1996년까지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326경기에 출전하면서 쾰른의 골문을 든든하게 지킨다.


2.2. 레알 마드리드 CF[편집]



파일:2020-03-24-bodo-illgner.jpg


1996년 여름 이적시장의 마지막 날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일그너는 첫 해 리그 경기를 포함해 40경기에 나서면서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주전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다음 시즌에는 산티아고 카니사레스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말았고 그 다음 시즌에는 샛별같이 등장한 18살의 이케르 카시야스에게 주전 자리를 내준다.[1]

그렇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 쾰른 시절때는 차지하기는 커녕 꿈도 못꿨을 빅 이어를 두 차례나 들어올렸던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나쁜 커리어는 아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00-01 시즌 이후 일그너는 현역에서 은퇴를 선언한다.

2013년에 마르카는 일그너를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골키퍼로 선정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7abr17c.jpg


대표팀에서도 역시 토니 슈마허의 뒤를 이었는데, 1987년 처음으로 국가 대표에 뽑힌 일그너는 UEFA 유로 1988에는 세컨드 골키퍼로 참가한다. 이후 1990년부터 독일 국가 대표의 주전자리를 차지한 일그너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로타어 마테우스, 위르겐 클린스만, 안드레아스 브레메게르만 삼총사, 귀도 부흐발트, 위르겐 콜러 등으로 구성된 안 그래도 사기급인 수비진에서 든든하게 최후방을 책임지며 팀의 통산 세번째 우승을 이끈다.

특히나 토너먼트에서의 활약이 눈부셨는데 잉글랜드와의 4강 전에서는 승부차기에서 스튜어트 피어스의 실축을 이끌어냈고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는 당시 기준으로 결승전 사상 최초의 클린시트를 만들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UEFA 유로 1992에서도 팀의 준우승을 이끌었던 일그너는 1994년 미국 월드컵 8강전에서 불가리아에게 패배한 직후 골키퍼로는 이제 전성기가 막 시작될 나이인 27세에 안드레아스 쾨프케에게 주전 자리를 넘겨주고[2]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다.

사실 1994년 미국 월드컵 직전 독일은 FIFA 랭킹 1위였으며 이에 따라 자국을 위시한 축구팬들의 기대가 워낙 컸던지라 조기 탈락에 대한 책임 소재를 뒤집어 쓴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다. 8강전에서의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의 프리킥은 아예 건드릴 수도 없이 구석으로 향했고 레치코프에게 허용한 헤딩골도 중앙 수비진의 구멍 + 완전히 구석으로 정확하게 꽂힌 헤딩 으로 어쩔 수 없는 실점들이라고 볼 수 있으나 당시 5경기 종합 7실점을 얻어맞아 경기력 자체로도 부진했던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1994년 미국 월드컵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독일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허용한 최다 실점 대회이다.[3]


4. 플레이 스타일[편집]




뛰어난 순발력과 더불어 일대일 위기에서의 정확하면서도 빠른 판단력으로 명성을 떨쳤다. 다만 땅볼성 슛엔 은근히 약해서 이런 류의 슛에 꽤 많이 당하기도 했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 독일 U-16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U-16 챔피언십: 1984


5.2. 개인 수상[편집]




6. 외부 링크[편집]


파일:레알 마드리드 CF 로고.svg 레알 마드리드 클럽 레전드 명단

[1] 그렇지만 둘의 사이가 카시야스로페스처럼 험악한 관계는 아니었다. 대인배였던 일그너는 벤치에서 여러 노하우를 전수해주면서 카시야스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고 하며, 카시야스도 후일 자신의 롤모델로 일그너를 꼽기도 했다.[2] 정작 쾨프케가 일그너보다 5살이나 많았다.[3] 심지어 크로아티아전 리옹 참사(3-0 참패)가 터진 1998년 프랑스 월드컵도 5경기 6실점이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30 17:45:43에 나무위키 보도 일그너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