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고두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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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차르국 고두노프 왕조 초대 차르
보리스 고두노프
Бори́с Годуно́в


출생
1551년 2월 26일
루스 차르국 뱌지마
(現 러시아 중앙 연방관구 스몰렌스크주 뱌젬스키군 뱌지마)
사망
1605년 4월 23일 (향년 54세)
루스 차르국 모스크바
묘소
트리니티-세르지오 수도원
재위기간
루스 차르
1598년 2월 21일 ~ 1605년 4월 23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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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고두노프 가문
이름
보리스 표도로비치 고두노프
(Бори́с Фёдорович Годуно́в)
아버지
표도르 이바노비치 고두노프
어머니
스테파니다 이바노브나
형제자매
이리나 고두노바
배우자
마리아 그리고리예프나 스쿠라토바벨스카야 (1570년 결혼)
자녀
표도르 2세, 크세니야
종교
러시아 정교회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참고자료



1. 개요[편집]


루스 차르국차르.


2. 생애[편집]


고두노프 가문은 코스트로마 토박이 하급 귀족 출신이다. 일부 전설과 족보에서는 체트(Чет)라는 이름의 킵차크 칸국 출신 타타르인 귀족 혈통이라고 나와있고 이주엽 교수의 '몽골 제국의 후예들'에서 이를 채택해 고두노프가 몽골계 혈통이라고 기술했지만 신뢰성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다.[1]

보리스 고두노프는 1560년대 후반에 오프리치니크가 되어 이반 4세의 측근으로 시작했다.[2] 이반 4세 재위기의 고두노프는 큰 관직을 얻지는 못하고 이반 4세의 주변에서 말동무를 하거나 같이 체스를 두는 등의 일을 하였다. 그의 관직은 이반 4세의 음식을 감독하고 관리하는 역할이었는데 단순히 그 관직이 힘이 있는 그런 자리는 아니었다. 다만 이반 4세의 돌출된 행동을 고두노프가 말렸는데 함께 그와 측근으로써 영향을 행사했던 이가 아내 마리아 스쿠라토바의 사촌 보그단 벨스키였다.

표도르 1세가 즉위하자 고두노프는 황후 이리나 고두노바의 오빠로서 섭정이 되었다. 게다가 표도르 1세의 외삼촌이었던 니키타 로마노비치[3]가 표도르 1세 재위 초인 1586년에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유일한 섭정이 되었고 이 즈음 보그단 벨스키를 이반 4세의 막내아들이자 표도르 1세의 이복동생인 드미트리 이바노비치를 옹립하려했다 하여 반역죄로 노보고로드로 추방하고.[4] 막강한 힘을 가진 보야르인 슈이스키 가문을 숙청했다. 후사가 없던 표도르 1세가 죽고 류리크 직계가 끊기자 차르로 선출되었다.

하급귀족에서부터 차르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비범한 인물이었지만 오랜 흉년[5]으로 민심을 얻지는 못했다. 그래서 고두노프의 통치에 불만을 가진 세력들이 드미트리 이바노비치(1582~1591)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가짜 드미트리 설을 퍼뜨렸다. 보리스의 명에 따라 드미트리의 죽음을 조사한 바실리 슈이스키[6]는 드미트리가 칼을 가지고 놀다가 간질 발작으로 죽었다고 발표했으나, 귀족인 보야르들은 보리스가 드미트리를 암살한 뒤 사고로 조작했다고 믿었다.

보리스를 피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 간 가짜 드미트리는 폴란드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로 돌아왔고, 보리스는 가짜 드미트리의 난을 진압하던 1605년에 급사했다. 이후 아들인 표도르 2세가 즉위했으나 가짜 드미트리에게 피살되면서 혼란 시대가 열리게 된다.


3. 여담[편집]




4. 참고자료[편집]


[1] 고두노프가를 포함해서 중세 러시아 타타르, 몽골계 귀족가문은 대부분이 무지몽매한 이교도였으나 기적을 목도하고 세례를 받아 러시아인이 되었다는 검증 불가능한 시조전설을 공식 족보에 기술하고 있다. 때문에 아예 러시아에 편입된 황금씨족급이 아닌 이상 진짜일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출세한 하급귀족, 하층민 출신들의 족보조작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그 제정시대에도 진지하게 믿어지지 않았다.[2] 일설에는 이반 4세의 두번째 황후인 마리아 템류코브나가 죽을 당시 그녀의 장례를 치루는데 고두노프가 동원되었다고도 한다.[3] 이반 4세의 첫 아내인 아나스타샤 로마노브나 황후의 오빠이자 로마노프 왕조를 창건한 미하일 로마노프의 할아버지. 이반 4세는 황후가 죽을 때 마다 이전 황후들의 친정가문의 음모가 있다고 하여 그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는데 이반 4세가 가장 사랑한 아나스타샤 황후의 오빠였던 덕에 이반 4세 내내 숙청되지 않았다.[4] 아무래도 아내의 외사촌형제였던 탓에 죽이진 않았다. 보그단 벨스키는 이 일로 앙심을 품어서 표도르 1세가 자신을 용서하고 고두노프가 차르가 된 뒤에도 고두노프에 의해 보야르 다음 계급인 귀족까지 임명되었으나 고두노프를 차르에서 끌어내리려는 음모를 꾸미다(...) 수염이 뽑히는 형벌을 받고 카잔으로 추방되어 그곳의 총독으로 죽을 때 까지 있다가 폭정을 일삼아 주민들에게 살해당했다.[5] 소빙하기의 영향이라는 주장이 있다[6] 훗날 바실리 4세로 즉위.고두노프가 표도르 1세 재위기에 슈이스키 가문을 숙청할 때 잠시 지방으로 쫒겨났으나 돌아왔다. 원래부터 고두노프와는 친분이 깊은 사이었기에 숙청을 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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