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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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미국 국기.svg 미국의 4대 방위산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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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The Boeing Company

파일:보잉 로고.svg
회사명
The Boeing Company
더 보잉 컴퍼니
국가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다국적 기업)
창립일
1916년 7월 15일 (107주년)
창업자
윌리엄 보잉
대표자
데이비드 칼훈(CEO)
래리 캘너(의장)
상장여부
상장기업
상장시장
뉴욕증권거래소
본사 소재지
100 N Riverside Plaza, Chicago, IL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보잉코리아) | 보잉 스토어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LinkedIn 아이콘.svg

1. 개요
2. 역사
2.1. 상업용 항공기
2.2. 우주
2.3. 선박
2.4. 방위 산업 부문
3. 2000년대 이후의 보잉
4.1. 합병후 후폭풍
5. 설계 특징
6. 보잉의 주 고객
7. 생산 제품
8. 기타
8.1. 관련 영상
9. 관련 문서
10.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더 나은 비행을 위한 선택[1]

Building The Future Together[2]


If It's Not Boeing, I'm Not Going

보잉이 아니라면 난 가지 않는다

1916년 7월 25일 윌리엄 보잉이 시애틀에서 창립한 미국항공기 제작 회사이자 방위산업체이다. 세계 최대의 항공기 제작 회사이자 동시에 세계 굴지의 방위산업체이다. #[3] 록히드 마틴, 노스롭 그루먼과 함께 미국의 3대 항공우주 방위 산업체이며 미국 바깥에서는 민간, 군사, 우주 영역을 모두 커버하는 유럽의 에어버스 그룹 정도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수준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기 제작사인 만큼 사업도 매우 다양한데, 상업용 항공기, 미사일, 우주선까지 항공우주에 관련된 것이라면 대부분 사업을 진행중이다.

일리노이시카고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이는 기존 시애틀에 있던 본사를 맥도넬 더글라스 합병 이후 옮긴 것이다. 워싱턴주 시애틀 일대,[4]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캘리포니아주 롱비치,[5], 미주리세인트루이스[6]미국 전역에 지점과 공장이 있는데다가 해외지부도 세계 곳곳에 두고 있다. 대부분의 상업용 여객기는 시애틀 일대에서 생산을 진행하며, 보잉 787 드림라이너의 일부와 787-10 드림라이너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턴에서 전량 생산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737의 동체, 767의 전면부, 787 드림라이너의 대다수 부품은 다른 곳에서 제작되어 보잉의 공장으로 딜리버리 되고 있다.

보잉은 5가지 주요 부서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부서들로는 보잉 상업항공기, 디펜스 우주&안보, 엔지니어링 오퍼레이션&테크놀로지, 보잉 캐피탈, 보잉 서비스 그룹이 있다. 이 중 가장 높은 수익을 벌어들이는 곳은 보잉 상업용 항공기로, 워싱턴 주 시애틀 근처에 있는 랜튼에 본사를 두고 있다. 랜튼은 보잉의 협동체 공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보잉의 주 공장은 5곳이 있다. 각각 에버렛(페인 필드, KPAE), 렌튼(렌튼 시립 공항, KRNT), 보잉필드(킹 카운티 국제공항, KBFI),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찰스턴(찰스턴 국제공항, KCHS), 세인트루이스에 위치해 있다. 앞의 4개의 공장은 상업용 항공기를 제작하며, 세인트루이스 공장에서는 군용기, 전투기 등을 제작하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굴지의 대기업이자 세계 항공업계의 선두주자이나, 2020년대 현재는 후술하는 여러 문제점 때문에 품질, 안전성, 사업관리 능력에서 의구심 섞인 눈길을 받고 있는 처지이다.


2. 역사[편집]


보잉은 1916년, 시애틀에서 창립주인 윌리엄 E. 보잉(William Edward Boeing, 1881~1956)[7]에 의해 세워졌으며 이때의 이름은 '태평양 항공기 제작사(Pacific Aero Products Co.)'였다. 1917년에 비로소 '보잉 항공기 회사(Boeing Airplane Company)'로 이름을 바꾸었다. 보잉은 초창기에 주로 수상비행기를 만들었다. 당시 항공기는 주로 나무로 된 뼈대에 방수천을 덧대서 기체를 만들었는데, 보잉은 예일대에서 목재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었고, 또 한 동안 목재회사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있어서 이런 항공기용 나무 뼈대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보잉의 창립에도 일화가 있다. 윌리엄 보잉은 당시 비행기의 발명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고, 1910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American Air Meet 이라는 곳에서 비행기를 타보려 했으나 자리가 하나 뿐인 비행기라 타지 못하고 5년 뒤인 1915년에 유니언 강에 조종사 테라 마로니에게 날개에 붙어서라도 탈테니 태워달라고 사정을 하면서 비행기를 탄게 원인. 그리고 비행기를 타 본 뒤에 한 말이 "자리도 부족한데 태워주시느라 수고 많았소. 이제부턴 제가 뚝딱뚝딱 조립해서 타겠소이다." 라고 하고서는 그 뒤에 시애틀로 돌아와 보잉을 차렸다고 한다. 2016년에 무려 보잉 창립 10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였다. 또한, 미국의 거대한 항공기 제작사 중 유일하게 파산하지 않고 수많은 회사들을 인수하였다. 대표적인 인수한 항공기 제작사로는 맥도넬 더글라스, 노스 아메리칸 록웰 등이 있다.

보잉은 회사를 창립하고 첫 엔지니어인 웡 트수를 영입, B&W로 불리는 보잉 최초의 항공기를 제작하였다. 초창기의 보잉은 제작한 항공기로 우편물을 배달하는 사업에 진출하였고, 시애틀 - 밴쿠버간의 에어 메일 서비스를 진행하면서 세계 최초의 국제 항공화물 운송을 진행하게 되었다. 1929년에는 유나이티드 에어크래프트 & 트랜스포트로 이름을 변경하였고, 유나이티드 항공으로 여객 사업, 엔진 사업 등을 진행하여 입지를 넓혀갔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항공기 제작사의 항공사 소유 금지법이 개정됨에 따라 유나이티드 항공프랫&휘트니를 매각하게 되었고, 창립자인 윌리엄 보잉 역시 은퇴한다. 따라서 보잉은 다시 보잉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항공기 제작을 진행하게 된다.

세계대전은 보잉을 가장 강력한 군용기 제작사로 거듭나게 해 주었다. 다양한 명작 군용기를 판매하며 군용기 사업에 대한 의존도도 자연스럽게 넓어지게 되었다. 이때 주로 생산된 보잉의 군용기로는 전설폭격기로 불리는 B-17, B-29, B-47 등이 있다. 하지만, 군용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머지 상업용 여객기에 대해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보잉은 247이라는 세계 최초의 현대식 여객기를 개발하였지만, 더글라스DC-3에 밀려 매우 저조한 판매량을 보여주었고 그 이외에도 247, 307, 보잉 314, 377 등의 여러 가지 여객기를 개발하였지만 경쟁사인 더글라스가 완전히 민항기 시장을 위해 개발한 것과 다르게 대부분이 군용기를 민항기로 판매하기 위해 수정한 것이고 성능도 좋지 못했기 때문에 여객기 제조사로써의 보잉은 인지도가 높지 못했다.

하지만, 보잉을 여객기 제조업의 자타공인 최고로 만든 계기가 있었다. 바로, 세계 최고의 명작 제트 여객기이자 모든 제트 여객기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707의 개발이다. 707의 개발은 보잉의 사장이 민항기 개발을 놓고 고민하던 중, 자사의 폭격기B-47을 탑승해보게 되었고 제트 항공기의 편안함과 정숙성에 감명받은 것이 큰 원인이었다. 경쟁사인 더글라스와는 달리 제트 여객기가 미래의 주 교통 수단이 될 것이라 예측하여 중장거리를 운항할 수 있는 당시로써는 대형 여객기였던 707을 내놓으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707의 초기 판매량은 그렇게 좋지는 못했다. 바로, 보잉은 군용기 제작사라는 이미지가 매우 강했고[8], 보잉의 여객기는 좋은 성능을 보여주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잉 707이 명작 여객기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항공사들이 707을 구매하기 시작했고 이는 더글라스DC-8을 재빨리 제트 여객기로 전환하여 개발하게 만들었다. 보잉의 707DC-8보다 높은 성능과 승객 만족도를 보여주며 더글라스를 누르게 되었고, 이때부터 보잉은 세계 최고의 여객기 제작사로 거듭나게 된다.

707의 대성공에도 보잉은 군용기 사업 역시 버리지 않았다. 보잉은 707의 원형인 367-80을 기반으로 C-135라는 미합중국 공군의 최초의 제트 수송기를 개발하며 수주를 따냈고, 이를 기반으로 한 공중급유기KC-135가 엄청난 판매를 진행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미국 공군의 차세대 폭격기 사업에도 진출하여 B-52라는 명작 폭격기를 개발하였고 이 두 기종은 현재까지도 미국 공군의 주요 기종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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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주기되어 있는 707, 737, 747의 프로토타입들[9]
파일:K9441.jpg}}}
공장에서 출고되는 727의 프로토타입[10]
보잉 707의 대성공 후 보잉은 중거리 여객기를 제작해 달라는 항공사들의 요청에 따라 바다 위에서도 운항할 수 있도록 3발기로 제작한 보잉 727을 개발하며 대성공을 거두었고, 더글라스에서 개발중이던 차세대 소형 제트 여객기DC-9와 경쟁하기 위해 보잉에서 가장 성공적인 항공기가 된 737을 개발하게 된다[11].

1970-1980년대에는 미국 공군의 차세대 수송기 사업에서 수주를 따내기 위해 록히드의 C-5와 경쟁하는 화물기를 제작하였으나 C-5에게 패배하였고, 망연자실한 보잉은 이 기체를 폐기하려고 했지만 팬 아메리칸 항공의 요청에 따라 여객기로 개발하게 되고 이는 보잉 747로 명명되어 현재까지 수많은 항공사에서 운용되는 중이며 항공업계에 큰 획을 그은 행보를 인정받아 '하늘의 여왕(Queen of The Sky)'이라는 명예로운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들면서 슬슬 일선에서 물러나던 707, 727의 대체 항공기 요구와 신흥강자인 에어버스A300이 성공을 거두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쌍발 여객기 2종을 개발하기로 하였고, 이는 보잉 757, 보잉 767이라는 이름으로 빛을 보게 된다. 협동체와 광동체라는 점만 제외하면 쌍둥이나 다름없던 두 기종 중 757은 본가인 미국 항공사들에게 707과 727의 대체 및 대서양 횡단 노선용으로, 767은 적절한 사이즈와 성능 및 효율로 불티나게 팔려나갔으며 KC-767, KC-46, E-767 등의 군용기로도 생산되었고 현재까지 상업용 항공기로도 수주를 따내며 생산되고 있다. 또한, 여러 방위산업체들을 인수하기도 하였다.

1990년대에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보잉은 에어버스의 성공과 A320, MD-80이 매우 많은 수주를 따내게 되면서 보잉 737의 입지가 좁아지게 되었고, 747의 판매량 역시 줄게 되었다. 이에 따라 보잉은 747의 개량형인 747-400을 출시하게 되었고 이 모델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또한, 록히드와의 컨소시엄으로 F-22라는 세계 최강의 전투기 개발을 맡게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세계 최강의 전투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게 된다. 또한, 맥도넬 더글라스가 최초의 중대형 항공기인 MD-11을 개발하자 보잉은 이에 맞서 777이라는 명작 항공기를 탄생시켰고 이 항공기는 맥도넬 더글라스에어버스의 항공기를 압도하면서 보잉의 위상을 더욱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A320과 더욱 치열한 경쟁을 위하여 Next-Generation 737 항공기를 개발하여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맥도넬 더글라스의 MD-90은 처참하게 망하게 되었다.

1990년대에 보잉에게 일어난 가장 큰 일은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맥도넬 더글라스와의 합병이다. 맥도넬 더글라스는 DC-10의 연이은 심각한 추락사고, MD-11의 성능 부족으로 인한 판매 부진과 주문 취소, MD-80의 주문량 감소와 MD-90의 실패, 그리고 맥도넬 더글라스에게 엄청난 타격을 입힌 미국 공군의 공격기 사업 취소로 인하여 회사 자체가 휘청거리던 상황이었다. 보잉은 맥도넬 더글라스의 군용기를 상당히 탐내었고, 맥도넬 더글라스를 인수하기로 결정한다. 상황이 더욱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진 맥도넬 더글라스는 보잉의 인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1997년 맥도넬 더글라스와의 합병이 성공적으로 성사되면서 엄청난 규모의 초거대 방위산업체로 거듭났다. 이 합병에 대해서 유럽에서는 상당히 말이 많았는데, 에어버스의 미래 항공기 판매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보잉 로고 옆의 날개 모양은 맥도넬 더글라스에서 가져온 것이다.

보잉은 맥도넬 더글라스와의 합병으로 수많은 생산 라인들은 확보하였다. 먼저, 맥도넬 더글라스 상업용 항공기를 제작하던 캘리포니아 롱비치 공장을 소유하면서 MD-11, MD-80, MD-90, MD-95의 생산 라인을 보유하게 되었고, 보잉은 경쟁력이 없는 MD-11, MD-80, MD-90은 모조리 단종시키고 개발이 거의 끝나가 첫 비행을 앞두고 있었던 MD-95를 폐기하기 아까웠던 보잉은 보잉 717이라는 이름으로 MD-95를 리브랜딩 하면서 롱비치 공장에서 보잉 717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보잉의 맥도넬 더글라스 인수의 주 목표는 군용기 라인업 보유였으므로, 현재 보잉은 상당히 많은 군용기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먼저, 맥도넬 더글라스캘리포니아 롱비치 공장에서 생산되는 미국 공군의 차세대 수송기인 C-17 글로브마스터 II, 명작 전투기인 F-15, F/A-18, F/A-18E/F의 생산 라인과 맥도넬 더글라스의 전투기 생산 공장인 미주리 주의 세인트루이스 공장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AH-64, 하푼, 팬텀 웍스 등을 보유하게 되어 기존의 매우 부실한 군용기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었던 보잉이 록히드 마틴에 이어 2번째로 큰 군용기 라인업을 보유하게 해 주었다.


2.1. 상업용 항공기[편집]




보잉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업이자, 가장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독점에 가까운 사업이기도 하다. 상업용 항공기는 보잉이 707을 개발한 후 본격적으로 라이벌인 맥도넬 더글라스를 꺾고 세계 1위의 상업용 항공기 제작사가 되었으며, 아직까지도 다양한 항공기와 여러 서비스를 진행하면서 상업용 항공기 부분의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전투기 사업에서 연일 물먹자 보잉이 진지하게 전투기 사업을 포기할까 생각한 이유도 이 상업용 민항기 사업이 매우 잘 나가기 때문이다.

보잉의 현재 생산중인 상업용 항공기로는 Next-Generation 737[12], 737 MAX[13], 767[14], 777, 777X[15], 787 드림라이너가 있다. 이 중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항공기들로는 737 MAX787 드림라이너이다. 2019년 가장 많이 판매된 보잉의 상업용 항공기는 787 드림라이너이며[16], 현재 가장 많은 주문이 남아있는 상업용 항공기는 737 MAX 이다. 그러나 737 MAX의 경우 대규모 결함 사태로 운항 중단이 되어 A320neo 패밀리가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17].

보잉의 단종된 상업용 항공기로는 707, 717, 727, 737 오리지널, 737 클래식, 보잉 747, 보잉 757이 있다. 보잉이 단종 결정을 한 맥도넬 더글라스의 상업용 항공기 라인업으로는 MD-11, MD-80, MD-90이 있다.

보잉의 상업용 항공기 제작 공장은 다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 에버렛[18] (페인 필드): 광동체기 (747, 767, 777, 787) 의 부품 생산,[19] 조립, 마감, 테스트 및 인도
  • 렌턴: 737의 부품 생산, 조립[20]
  • 시애틀 (보잉 필드): 737의 부품 생산, 마감, 테스트 및 인도
  • 찰스턴: 787 드림라이너 최종 조립, 마감, 테스트 및 인도

맥도넬 더글라스의 상업용 항공기가 생산되던 캘리포니아의 롱비치 공장도 보유하고 있었지만, 보잉 717C-17의 생산 중단으로 인해 공장을 매각하게 되었다.


2.2. 우주[편집]


우주 분야에서는 아폴로 계획, 스페이스 셔틀 등에서 많은 수익을 올렸다. 대표적으로 저 유명한 새턴 로켓의 1단부(S-IC)를 보잉이 제작했다.[21] 얼마전까지도 델타 로켓으로 상업용 인공위성 시장을 꽉 잡고 있었으나, 러시아가 소유즈 로켓으로 떨이를 하면서 민간시장을 털리고 있다. 현재 민간 우주관광시장마저 잡힘으로서 에네르기아[22]와 아리안 스페이스사에게 민간위성발사를 거의 빼앗긴 상태다. 미국의 군사위성 및 첩보위성 수요가 상당하기 때문에 망하지는 않는다는 관측도 있었지만 스페이스X도 NRO 미션 일부와 X-37 미션 등 공군 미션들을 연달아 따내면서 위험해지고 있다. 보잉의 로켓 개발에 관한 기타 내용은 ULA 문서로.

스페이스X와 경쟁하는 민간 우주선 개발에서도 2015년에 끝끝내 CST-100 스타라이너를 발표하면서 끝발이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물론 드래곤에 비해 너무 늦게 첫 삽을 뜬 만큼 개발도 지지부진했지만 스페이스X와는 다르게 재활용에 목숨을 걸지 않아 2019년 12월 첫 발사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발사 중 문제가 발생하여 국제우주정거장까지는 도달하지 못하였고, 다시 지구로 복귀하여 재발사를 준비중이다. 그러나 2차 발사는 도전도 해보지 못한 채 2020년이 다 지나갔고, 같은 기간 동안 스페이스X가 유인 발사에 성공하고 정규 미션까지 소화하고 있는 반면, 보잉은 2021년 2분기가 되도록 무인 발사 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아르테미스 계획의 달착륙선 제작 사업에 제안서를 냈다가 성능은 떨어지는데 비용은 제일 비싸게 부른다는 이유로 NASA에서 퇴짜 맞고 사업자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는 굴욕을 당했다. 해당 사업은 결국 스페이스X가 단독 계약자로 선정됐다.


2.3. 선박[편집]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보잉은 한때 배도 만들었다. 이름은 보잉 929로, 1973년에 개발된 수중익선이다. 미 해군페가수스급 고속정으로 6척이 납품되었고(현재는 모두 퇴역), 26척이 건조되어 현재까지 민간용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나중에는 일본 가와사키 중공업에서 15척과 중국 Shanghai Simno Marine(上海新南船廠公司)에서 2척이 라이선스 생산하기도 하였다. 일명 '제트포일'이라고도 하며, 현재 전세계에서 37척이 아직 운항 중이다. 부산광역시-후쿠오카 하카타 항로를 운항했던 비틀·코비[23], 홍콩-마카오 항로를 운항하는 터보젯 등이 바로 이 모델이다. 현재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으나, 가와사키에서 사후 지원을 담당하는 자회사를 설립·운영 중이다.


2.4. 방위 산업 부문[편집]


보잉은 초창기에 방위사업 부문에도 여러번 기웃거리던 중, 1930년대 초에는 전투기 개발에도 참여하여 미 육군항공대가 운용한 최초의 단엽전투기, P-26 피슈터(Peashooter : 콩알총. 전투기 조종사란 뜻도 있다.)를 개발하였다. 미군은 기체 자체에 불만은 없었으나 지금과 달리 당시의 미군은 해군쪽을 제외하면 그리 강력한 편이 아니었던지라 생산수량은 고작 150대정도였다.[24]

보잉이 방위사업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낸건 B-17 폭격기를 개발하면서부터였다. 사실 이 B-17은 보잉이 그간 여객기를 만들며 얻은 대형기 제작의 노하우를 모두 집대성하여 사활을 걸고 만든 폭격기였다.[25] 그러나 B-17은 당시 경쟁기종으로 참여한 B-18보다 지나치게 비싼 가격 탓에 미국 공군도 구매를 망설이게 되었고, 심지어 B-17 구매계획이 취소될 위기에 놓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B-17의 뛰어난 비행능력에 미군은 B-17을 버리기 아까워했고,[26] 마침내 전쟁에 참전하게 되자 B-17을 대량주문했다.[27] 이렇게 보잉은 초대형 방위산업체가 되었고, 한동안 여객기 라인업이 상당히 부진하여 고전한 바가 있다. [28] 이후 개발한 B-29 역시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을 상대로 대활약하는 등, 2차대전을 통해서 보잉은 고만고만한 항공기 제작업체에서 명실상부한 정상급 폭격기 개발업체로 발돋움하였다.

이후 제트항공기 시대가 열리자 보잉은 발빠르게 B-47을 개발하였으며 이후 대형 제트 폭격기인 B-52를 다시 개발하여 군수분야에서 승승장구하였다. 이런 폭격기 이외에도 자사의 여객기를 기반으로 조기경보기, 공중급유기, 수송기, 대잠초계기 등을 생산하여 군수분야의 최고로서 이미지를 굳혀갔다.

1960년대에는 헬리콥터 제작사인 버톨(Vertol)을 인수, 보잉-버톨 헬리콥터 회사를 설립하였으며 이후 이 회사는 보잉에 완전히 합병되어 '보잉 헬리콥터 시스템'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보잉 버톨은 CH-46, CH-47 등 간판급 군용 헬리콥터를 개발하였으며 또 헬리콥터 제작사인 과 한 팀을 이루어 최초의 군용 틸트로터기인 V-22를 개발하였다.[29] 하지만 미공군의 차세대 폭격기 사업을 노스롭 그루먼이 따가면서 방산분야 매각설이 나왔다. 매각되지 않는 부분은 지원기 부분이다. 전 세계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 미니트맨 3도 보잉의 개발품이다.

보잉의 707 개발 이후, 보잉은 방위산업체의 의존도가 지나치게 떨어지고 말았다. 한동안 상업용 여객기 라인업을 주력으로 판매하던 보잉은 맥도넬 더글라스를 인수하여 다양한 군용기 라인업을 다시끔 갖추게 되었다. F-15, F/A-18, C-17 등의 주력 군용기가 보잉의 품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2000년대에는 P-8, E-737, KC-46 등의 민항기를 기반으로 한 군용기를 개발하는 곳에는 성공하였지만, X-32록히드 마틴X-35에게 패배하는 등 전투기 사업에서는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10년대 보잉은 사브와 함께 컨소시엄을 맺어, T-7이라는 전투훈련기를 제작해 미국 공군에게 약 300기 가량을 납품하게 되었다. 따라서, 보잉은 세인트루이스 공장의 가동률을 다시 살아나게끔 할 수 있었다.


3. 2000년대 이후의 보잉[편집]


보잉은 맥도넬 더글라스와의 합병 이후 여러가지 군용기 사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사업인 상업용 여객기 제작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맥도넬 더글라스 합병 이후에는 미국의 전투기 사업에 진출하여 록히드 마틴X-35와 경쟁하게 되었지만, 보잉의 X-32가 록히드의 X-35에 패하면서 사업에 실패하고 만다.

보잉의 상업용 항공기에도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보잉 상업용 항공기에 717이 추가된 것이다. 보잉 717은 맥도넬 더글라스의 롱비치 공장에서 생산되었고, 주로 리저널 젯을 대체할 수 있도록 판매를 진행하였다. 롤스로이스 plc의 BR715 엔진을 장착하고 글래스 칵핏을 도입하는 등 여러 가지 개선사항이 있는 좋은 항공기였지만, 매우 저조한 판매량으로 2006년에 단종되고 만다. 따라서, 보잉의 캘리포니아 롱비치 공장에서는 C-17의 생산만 진행되게 된다.

737 NG의 출시와 에어버스 A321의 출시 이후 낮은 효율성으로 고전하던 보잉 757 역시 2005년 단종되어 보잉의 협동체 전문 제작 공장인 랜튼 공장에서는 오직 보잉 737만 생산하게 된다. 2004, 2005년에는 새로운 차세대 항공기인 보잉 747-8과, 보잉 787 드림라이너를 런칭하였다. 또한, 777-200LR과 777-300ER을 출시하면서 777-300ER이 매우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747-400은 이에 영향을 받아 단종되게 된다.

2010년 12월에는 보잉 787 드림라이너의 첫 비행이 이루어졌으나 취역 후 발견된 여러 결함으로 인해 인도 스케줄이 모조리 꼬여버리게 된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보잉 747-8도 지연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롤스로이스Trent 1000엔진의 폭발로 인하여 롤스로이스 엔진이 장착되는 보잉 787 드림라이너의 인도 계획이 모조리 꼬여 버리게 된다.

787 드림라이너의 결함은 이에서 그치치 않았는데, 배터리에서 결함이 생기면서 불이 붙는 등 수많은 회항 사고로 인해 결국 FAA에서 유나이티드 항공에게 787의 운항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하며 787은 운항이 일시적으로 금지된다. 787의 운항 정지가 풀리고 난 뒤에도 자잘한 결함으로 인해 보잉은 곤혹을 치뤄야 했다. 한동안 잠잠하다가 2019년부터 다시 결함 문제가 터져 나오더니 2021년에는 노즈 부분 결함문제로 인해 아예 인도가 중지되어 버렸고 2022년 7월말에야 인도가 승인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 보잉이 망조가 들게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787의 개발이다.

보잉 747-8은 4발 항공기의 쇠퇴와 777-300ER의 영향을 받아 여객기인 747-8 Intercontinental의 판매량은 매우 저조하여 단종되었지만, 747-8F는 꾸준한 수요로 2022년까지 생산이 진행되었다. 주 운용사로는 루프트한자, 중국국제항공, 대한항공, UPS, 카고룩스, 아틀라스 항공 등이 있다. 2010년 후반에는 787-10을 런칭하여 싱가포르항공에 1호기가 전달되어 상업 운항을 시작하였고, 2018년에는 보잉의 항공기 인도 신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 하는 듯했다.

2000년대 진행된 보잉의 주 군용기 사업으로는 EA-18G, KC-46, P-8, T-7 등이 있다. EA-18G는 F/A-18E/F를 기반으로 제작된 전자전기로, 현재까지 세계 최강의 전자전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미국과 호주가 보유하고 있다.

미국 공군KC-135를 대체하기 위한 공중급유기 사업에도 진출하여 에어버스A330 MRTT를 누르고 미국 공군에게 선정되었다. KC-46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으나 결함이 발생하여 제대로 된 인도가 진행되고 있지 못하고 있고, 공군역시 제대로 된 운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시점에서도 결함 언제 없어지냐고 갈굼받고 있는 상황이다.[30]

미국 해군의 차세대 대참초계기 사업에도 성공하여 737-800을 기반으로 한 P-8을 개발하여 미국 해군에게 전달하고 있다. 기존 록히드 마틴P-3 오라이언보다 월등히 뛰어난 성능으로 미국 해군을 만족시키고 있으며, 여러 나라에서 도입하는 등 상당히 성공하게 되었다. 대한민국도 P-8을 도입하기로 결정하였다.

보잉의 전투기 생산라인인 세인트루이스 공장은 주력 하이급 전투기 사업인 ATF, JSF에 연달아 실패한 것과 미국의 군축으로 F-15F-22F-16 개량형으로, F/A-18 시리즈 중 슈퍼호넷과 같은 해군/해병대에 판매하던 함재기도 F-35C로 점차 대체되고 기존 슈퍼호넷을 수명 연장시켜 운용하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판매가 줄어들면서 전투기 사업에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반면 경쟁사인 록히드 마틴은 보잉제 전투기를 밀어내고 자사 전투기로 채워지면서 승승장구 하고 있자 보잉은 위태로워졌다.

이렇게 보잉이 전전긍긍 할 무렵 때마침, 미국 공군의 차세대 훈련기를 선정하는 사업이 진행되었다. 보잉으로써는 전투기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수주를 해야하는 최중요 프로젝트였고 경쟁사 록히드 마틴KAI와 손잡자 보잉은 스웨덴의 사브와 컨소시엄을 맺어 록히드 마틴과 KAI의 T-50 골든이글와 함께 경쟁하게 되었다. 사실 성능은 T-50이 우수했지만 미국 의회에서도 보잉이 이번 사업에 실패하면 록히드 마틴의 전투기 사업 독점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록히드마틴을 견제하고 보잉을 밀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고 애초에 훈련기에 고성능까지 필요하지 않았기에 T-50보다 낮은 가격과 훈련에는 지장없는 성능을 제공한 사브&보잉의 T-7이 최종적으로 선정되었다.

2019년 3월에 벌어진 에티오피아 항공 302편 추락 사고로 737 맥스에 중대한 결함이 발견되면서, 현재 보잉은 보잉 737 MAX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는 중이다. 보잉 737 MAX의 MCAS 오류에 따른 총 2건의 결함으로 추락 사고가 벌어졌고, 전 세계에서 737 MAX의 운항이 중단되어 많은 항공사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보잉 737 MAX/결함 참조. 그리고 해당 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데니스 뮐렌버그 CEO가 불난 데 기름을 붓는 발언을 계속 하여 신뢰도를 계속 깎아가면서 비행 금지 명령 해제일마저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결국 이를 보다못한 이사회가 2019년 12월 23일 데니스 뮐렌버그를 CEO 자리에서 해임한 후 데이브 캘훈 이사장을 CEO로 임명했다. 덤으로 리스사들과 항공사들로부터 보잉 737 MAX의 주문 취소가 크게 늘어났다.[31]

보잉 737 MAX의 결함 사태로 시작된 보잉의 내리막길은 스타라이너 우주선의 무인 시험 비행의 실패[32]까지 겹쳐 경쟁자들에게 크게 밀리게 되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프로젝트 선라이즈에서도 에어버스에 패해 장거리 여객기 시장 본좌의 위치마저 흔들릴 상황까지 이르렀다.

여기에 더해 2020년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물론 이 사태로 세계 경제 자체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보잉이 직접 입은 타격도 크다. 전세계적으로 전염병이 유행하면서 각국이 항공기 운행을 속속 중단하였고, 이로 인해 보잉의 주가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2020년 2월 중순까지도 대략 주당 300~350달러 사이를 유지하던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기 시작해서, 3월 11일(미국 현지 시간 기준)에는 200달러 아래로, 3월 19일에는 100달러 선이 무너지며 95달러까지 내려갔다.

결국 보잉은 연방정부에 무려 600억 달러(한화 77조 6,00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이 필요하다고 긴급 요청하는 상황까지 왔다. 미국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보잉이 직고용하는 노동자만 10만 명에 달하는데다 록히드 마틴과 더불어 양대 항공기 방위산업체에 속하기 때문. 게다가 이전에 제너럴 모터스가 137억 달러를 연방 정부에서 지원했지만 결국 파산하고 공기업화된 전례까지 있어서 더더욱 그렇다.

3월 25일, 미국 상원이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만장일치로 의결한 2조 2,000억 달러(약 2,700조 원) 규모 경기부양 패키지 법안을 보면, 이 중 최대 170억 달러(약 21조 원)가 ‘국가안보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기업’을 위한 대출금으로 쓰일 예정이라고 전 했는데, 사실상 이 자금이 ‘미국 정부가 보잉을 살리기 위해 준비한 돈’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국가 안보에 꼭 필요한(critical to maintaining national security)’이라는 미국 정부의 수식어가 항공기뿐만 아니라 각종 군용기와 로켓, 미사일도 만드는 보잉을 겨냥했다는 것.

하지만 정작 예산이 편성되자 데이비드 칼훈 CEO는 ‘정부가 자금 지원 대가로 지분을 요구하면, (정부 돈을 받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똥배짱을 부리고 있다. 미국 정부가 보잉을 결코 버릴 수 없다는 것은 전세계가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저런 발언이 가능한 것이다.

칼훈은 전날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유동성(돈)을 제공해 주기를 바라지만, 지분을 요구하진 않았으면 한다"며 "(대출) 조건을 이것저것 붙이면 당연히 다른 대안을 밟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4월 30일에는 아르테미스 계획 달 착륙선 업체 선정에서도 스페이스X, 블루 오리진, 다이네틱스 사 등 경쟁자들에게 광탈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 이유는 후보들 가운데 가격은 최고가지만 성능은 최악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와중에 보잉은 미 공군과 12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고, 8대의 F-15EX 전투기를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2021년 들어 한국과 일본이 각각 보유중인 F-15의 개량을 검토했으나 비용문제로 논란이 많다.한국일본

이 와중에 2021년 6월에는 T-7A 레드호크에서 FA-18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윙락 문제가 발생해 1년 이상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2021년 9월 23일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인 보잉은 2040년까지 중국 항공사에 미화 1조 4,700억 달러 규모의 항공기 8,700대를 판매할 계획이다. 이것은 보잉 웹사이트를 인용하여 타스 통신이 공식 발표하였으며, 자세한 건 보잉 웹사이트에도 링크 되어 있다. # #


4. 맥도넬 더글라스와의 합병[편집]


맥도넬 더글라스는 냉전이 끝나고 겹친 여러 가지 악재 때문에 회사의 상황이 좋지 못했다. 맥도넬 더글라스의 상업용 항공기였던 DC-10엄청나고 심각한 결함에 의해 맥도넬 더글라스는 소송과 벌금 등으로 엄청난 지출을 하게 되었고, DC-10의 판매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다. 중대형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 개발한 MD-11은 성능 부족으로 인해 항공사들로부터 외면받았고, MD-80은 주문이 떨어져가고 있었으며 MD-90은 매우 저조한 판매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맥도넬 더글라스의 큰 비중을 차지했던 방위산업 부분에서도 좋지 못했는데, C-17에서 수많은 결함과 자금 부족으로 인해 개발이 꼬여버려 공군의 구매 희망 대수는 계속 줄어들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차세대 공격기 사업마저 최소되고 만다.

보잉은 맥도넬 더글라스의 상황이 매우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보잉은 맥도넬 더글라스의 군용기 라인업을 눈여겨보았고, 맥도넬 더글라스에게 인수 제의를 한다. 맥도넬 더글라스의 해리 스톤시퍼 CEO는 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고, 우리가 원하는 딜을 하기 위해 협상 중이라는 소식을 알렸다. 결국, 맥도넬 더글라스는 1997년 보잉으로 흡수되게 된다.

보잉은 맥도넬 더글라스를 합병하여 여러 상업용 여객기 생산라인과 군용기 생산라인을 보유하게 된다. 맥도넬 더글라스의 상업용 항공기가 생산되던 캘리포니아의 롱비치 공장에서는 MD-11, MD-80, MD-90, MD-95 등이 생산되고 있었고, 경쟁력이 없었던 MD-11과 MD-90, 그리고 1세대 전의 여객기였기 때문에 단종 예정이었던 MD-80은 1999-2000년에 모두 단종되었고 개발이 거의 끝나가 첫 비행을 앞두고 있었던 MD-95를 폐기하기에는 아까웠던 보잉은 MD-95를 보잉 717이라는 이름으로 재출시하게 된다. 이로 인해 맥도넬 더글라스 인수 후 유일하게 남은 상업용 항공기는 보잉 717이 되었다.

보잉의 맥도넬 더글라스 인수의 주 목적은 상업용 항공기가 아닌 방위산업이었으므로, 보잉은 상당히 많은 군용기 생산라인을 보유하게 된다. 맥도넬 더글라스의 캘리포니아 롱비치 공장에서 생산되던 C-17 글로브마스터 III를 보유하게 되면서 수송기 생산라인을 보유하게 되었다. 또한, 여러 가지 명작 전투기 생산라인도 보유하게 되었다. 보유하게 된 전투기로는 아직까지도 보잉의 주요 전투기 라인업으로 속해 있는 F-15, F/A-18E/F 등이 있다.

이 외에도 AH-64, 하푼 등과 맥도넬 더글라스의 군용기 개발팀인 팬텀 웍스까지 흡수하면서 군용기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보잉 707의 성공 이후 군용기 라인업이 부실해졌던 보잉에게 다시금 기회가 찾아온 것이기 때문에, 보잉은 맥도넬 더글라스 합병 전보다 더욱 많은 수와 적극적인 군용기 제작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보잉이 F/A-18E/F, EA-18G 이후로 개발하고 있는 전투기는 좋은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4.1. 합병후 후폭풍[편집]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맥도넬 더글라스와 합병한 1996년 이전까진 보잉은 무조건 엔지니어가 먼저인 회사였다. 보잉 737 MAX 결함사태 이전 순전히 보잉의 설계과실인 사고는 보잉 737 방향타 결함 사건 중 추락사고 2건과 준사고 1건, 그리고 라우다 항공 004편 추락 사고 정도 뿐이었다.[33] 그 이전에도 기체에 문제가 있어 추락한 사고들은 분명히 있지만 해당사고들은 당시 항공기술상 한계 때문에 발생한 사고가 대부분이었고 엔지니어들과 보잉은 그러한 사고가 날 때마다 개선책을 서둘러 내놓았다. 또한 만약 개발 중이거나 제조 중인 기체에 아주 사소한 문제가 생겨도 즉시 개발과정과 제조를 중단하고 문제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회사였다. "다운폴: 더 보잉 케이스"[34] 다큐를 보면, 이전의 보잉은 말단 기술자라 하더라도 해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얼마든지 상부에 문제점을 건의할 수 있는 회사였으며, 의사결정을 하는 상부 또한 엔지니어링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그러한 건의사항을 적극 수용했다는 여러 전직 직원들의 인터뷰가 나온다. 보수도 후했으며 직원 대우도 좋았고 소속 회사에 대한 자부심도 뛰어났다고.[35] 말 그대로 한 가족 같은 느낌으로 말단 엔지니어부터 이사진까지 함께 일했던 기업이 보잉이었다.

그러한 엔지니어 우선 기조 덕분에 보잉 747이라는 항공역사에 큰 획을 그은 항공기가 단 한건의 중대 설계결함[36] 없이 하늘을 누빌수 있었고, 보잉 777이라는 명품 여객기가 세상에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맥도넬 더글라스 합병과 제너럴 일렉트릭 출신 인사들이 이사회에 편입되면서 보잉의 변화가 시작됐다.

1996년, 보잉과 맥도넬 더글라스의 합병 이후 멕도넬 더글라스 출신 임원들은 보잉을 좀먹기 시작했다. 멕도넬 더글라스 CEO였던 해리 스톤사이퍼는 경영악화 상태였던 MD사를 잭 웰치식 구조조정을 통해 주가를 4배나 뻥튀기 한뒤 보잉에 팔았다. 원래 스톤사이퍼는 GE에 27년간 재직했고 MD의 CEO에 오르자 마자 구조조정과 금융확장이라는 GE의 경영방식을 활용하여 MD의 경영개선에 성공했다. 스톤사이퍼를 위시한 구 MD이사진들은 보잉과 합병하자 마자 보잉 이사진을 장악한 뒤 2003년 바지사장이였던 필 콘딧이 물러나자 실세였던 스톤사이퍼가 결국 보잉의 CEO가 되었다. 2001년 보잉 경영진들은 보잉이 창립할때부터 있던 시애틀을 떠나 시카고로 옮긴다는 발표를 했다. 당연히 보잉직원으로 오랫동안 일한 직원들은 미친거 아니냐며 난리가 났다. 본사를 시카고로 옮기는 이유는 임원들이 시애틀의 엔지니어들의 방해 없이 재정 관련 결정을 편히 내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보잉은 직원 약 4만여명을 해고했고 항공기를 만들다 문제가 발생해도 이를 보고했다는 이유 만으로 품질 담당자를 해고하거나 징계를 하기도 했다. 스톤사이퍼는 2005년 스캔들로 물러나지만 그 후임으로 보잉 777GE90엔진을 독점 장착하는데 공을 세운 GE의 사장이였던 제임스 맥너니[37]가 취임하면서 2015년 물러날때까지 금융확장과 구조조정이라는 GE, 즉 잭 웰치식 경영문화를 이어나갔다. 이들은 보잉의 강력한 엔지니어 인력풀을 점차 해체하면서 월가의 금융인들과 딜 할 수 있는 금융인력을 확충하는 변화를 택했고 공돌이들의 회사였던 보잉은 결국 탁상공론이나 하는 상경계 출신의 비전문가들로 회사가 채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제조업 회사가 본업이 아닌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두는 것은 어찌보면 제품의 품질과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고 또한 안전이 최우선인 항공기 생산에는 맞지않는 경영방식이였다.

이후 보잉은 끊임없이 추락을 거듭했다. 2014년 알자지라에서는 보잉의 작업자들이 랜딩기어 부품을 안끼운채 조립을 해버리는 등 품질문제[38]를 폭로한 적이 있다.# 특히, 보잉의 전성기시절 엔지니어 사상을 그대로 갖고있는 후발주자인 에어버스가 2003년 보잉의 연간판매량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이후 수년간 보잉과 에어버스는 판매량을 갖고 엎치락 뒤치락 하다 2010년, 에어버스가 야심작 A320neo 패밀리를 출시했다.

이후 다급해진 보잉은 이미 40년동안 사용한 보잉 737을 한번 더 사용하기로 하고 보잉 737 MAX를 출시했다. 보잉 737 MAX는 이후 A320neo 패밀리의 판매량을 가파르게 쫓다가 라이온 에어 610편 추락 사고에티오피아 항공 302편 추락 사고를 냈다. 이후 미공군과 계약한 KC-46의 품질과 결함, 보잉 787의 동체 제조공정 결함과 불량부품으로 인한 인도중지 (보잉 787의 양산 초기에 있던 각종 불량과는 별개의 건이다.), T-7A 훈련기 윙락 문제로 인한 납기 지연, 777X의 노즈들림현상으로 인한 납기 지연 등 온갖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어찌보면 GE의 쇠락과 유사한 길을 걷고 있으나 차이점이 있다면 GE는 다우 존스 지수에서 퇴출되고 회사가 쪼개지는 선에서 끝났다면 보잉은 737 MAX 사고로 인해 수백명의 인명이 희생된 더욱 끔찍한 결과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

보잉 737 MAX 사고와 관련된 망언으로 사퇴압력을 받은 끝에 데니스 뮬렌버그가 해임된 뒤 새로 취임한 데이브 칼훈도 GE출신 인사로써 스톤사이퍼나 맥너니가 범했던 실수를 되풀이 할 것인지 아니면 시대가 변한 만큼 둘과는 다른 경영을 할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일단 칼훈은 취임하자마자 보잉의 자사주 매입을 중지했고 737 MAX 또한 그라운딩이 풀리고 2022년 기준으로 주문량이 2018년 수준으로 돌아왔다. 2023년 2월에는 스톤사이퍼와 맥너니가 기존에 보잉의 자산이였던 엔지니어를 해고하고 확장시켜놓은 재무-금융부서 직원들을 인사과 직원과 함께 2000여명 해고하기로 함으로써 망가져있던 엔지니어링과 제조부분에 대한 인력확충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5. 설계 특징[편집]




보잉 737 / 에어버스 A320 조종석 비교

설계의 특징으로는 글래스 콕핏과 플라이 바이 와이어 등 항공기 조종이 전자화되는 가운데에서도 고전적인 기계식 조작을 병행 유지하며 조종사의 결정이 우위에 서는 점이다. 경쟁사 에어버스가 적극적으로 전자식 시스템으로 변경하면서 규정된 조작 범위를 조종사가 넘어서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과 대비되며 실제 조종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보잉은 기종별로 조종특성도 많이 다르고 자동화가 덜 되어있어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아 운항은 불편하지만 비상상황에 대응하기 쉽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에어버스는 자동화가 잘 되어있어 기종별 조종특성도 비슷하고 조작계도 쉽게 쓸 수 있도록 만들어져있어 편하게 운항할 수 있지만 비상상황시 조종사가 비행기를 움직이는데 한계가 있어서 불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초심자가 봐도 가장 잘 보이는 차이점은 A320 이후의 에어버스가 전투기 같은 사이드스틱 조종간을 적용하는 데 비해 보잉은 전통적인 요크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민항기 제조사 중 보잉과 엠브라에르와 봉바르디에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이드스틱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조종석 측면 유리 모양이 거의 사다리꼴에 가까우며, 조종석 측면 유리의 귀퉁이가 약간 접혀 있는 에어버스 기종과 구분할 수 있다.


5.1. vs 에어버스[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에어버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보잉의 주 고객[편집]


미국 항공사 대부분은 보잉을 주로 선호한다.[39] 미국 아래 멕시코아에로멕시코도 대표적인 보잉빠 항공사다. 미국과 인접한 캐나다의 항공사들도 대부분 에어버스보다 보잉을 주로 선호한다.

일본의 양대 항공사인 일본항공전일본공수도 보잉을 주로 주문하는 항공사다. 특히 전일본공수보잉 787의 최다 운용사다. 일본항공은 2013년 A350을 주문한 것이 보잉과 맥도넬 더글라스 이외의 중, 대형기를 주문한 첫 사례이며, 전일본공수는 사실상 스카이마크 항공에서 승계하여 A380을 도입했다. JAL이 에어버스 기종을 운용한 적은 있었다. 2002년에 인수한 일본에어시스템(JAS)에서 A300을 함께 들여온 것이다. 1960년대에는 JAS의 전신인 일본국내항공에서 제너럴 다이내믹스콘베어 CV-880 코로나도를 임차한 적도 있다. 그러나 직접 주문으로는 보잉과 맥도넬 더글라스 기종을 혼용하는 데 치중했으며, 합병으로 취득한 A300 또한 비교적 조기에 정리하였다. 한편 ANA는 보잉의 대형기 도입 전에 록히드L-1011 트라이스타를 운용했었으며, A340을 주문했다가 취소한 적이 있다. 현재 소량 운용하고 있는 A320은 이 때 대신해서 산 것이다.

비교적 에어버스를 잘 들여오는 싱가포르항공에미레이트 항공도 보잉에 지르는 주문량이 상당하며, 에어버스빠인 루프트한자737, 보잉 777X, 747-8i의 런치 커스터머이다. 또한, 보잉 787-9도 20대 주문하였다. 대한항공도 주 고객 중 하나.[40]

그리고 나라나 주변 국가의 사정 때문에 보잉의 주 고객이 된 항공사도 몇몇 있는데, 엘알 이스라엘 항공이 대표적이다.[41] 대신 유럽의 항공사들이나 구 공산권, 특히 러시아중국의 항공사는 미국에 대한 반발 심리가 있어서인지 보잉 기종의 도입이 비교적 적은 편이었지만, 중국의 항공사에도 차츰 마수가 뻗치는 중이고[42] 소련 붕괴 후 아에로플로트같은 러시아 항공사에서도 서서히 보잉제 여객기를 도입하고 있다.[43] 얼마 전 중국국제항공이 자사의 800번째 보잉기 도입을 축하하는 행사가 있었고, 중국남방항공 계열의 샤먼항공은 아예 보잉 원 메이크다. 2002년 4월 15일 김해국제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다가 경상남도 김해시 지내동의 야산에 추락한 중국국제항공의 기종은 보잉 767이다. 북한미국과 적대 관계라 보잉을 주문할 리도 없거니와, 주문한다고 쳐도 유엔의 대북 제재 문제와 더불어 미국의 적성국 금수 규정에 걸려서 받아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보잉은 미국방위산업체다.)[44]

유럽의 항공사들 중 대표적인 보잉빠 항공사는 KLM 네덜란드 항공, LOT 폴란드 항공, 아이슬란드항공 등이다. 특히 LOT는 1991년 소련이 붕괴되자 마자 발빠르게 소련제 여객기를 퇴역시키고 보잉 767을 시작으로 보잉제 여객기로 모두 바꿔 버릴 정도. 미국과 폴란드의 긴밀한 관계가 작용했을 수 있기에, LOT 폴란드 항공은 미국의 방위산업체인 보잉의 기종을 고민하지 않고 도입 중이다. 그러나 보잉 767을 점차 퇴역시키고 올인에 가깝게 도입한 보잉 787LOT에서도 예외 없이 기체 말썽을 일으켰다.[45]


7. 생산 제품[편집]


파일:보잉 로고.svg

보잉 항공기 목록 [ 펼치기 · 접기 ]
민항기

협동체
광동체
쌍발기
717(MD95) · 737(오리지널 · 클래식 · NG · MAX) · 757
767 · 777(-200 · -300 · 777X) · 787 드림라이너
3발기
727
-
4발기
707
747(-100 · -200 · SP · -300 · -400 · -8 · 특수목적용)
초창기 모델
247 · 307 · 314 · 377 · 367-80
개발 중단 / 개발 중
2707 · 7J7 · 소닉크루저 · NMA
군용기
훈련기
T-7
전투기
P-26 · F-15E/후기 개량형 · F/A-18E/F
전자전기
EA-18G
폭격기
B-9 · B-17 · B-29 · B-47 · B-52
수송기
C-135 · C-137 · VC-137 · VC-25 · C-32 · C-17 · C-40
조기경보기 / 지휘관제기
OC-135 · RC-135 · WC-135 · EC-135 · E-3 · E-6 · E-8 · E-767 · E-4 · E-7
공중급유기
KC-97 · KC-135 · KC-767 · KC-46
대잠초계기
P-8
무인기
MQ-25 ·MQ-28
헬리콥터
CH-46 · CH-47 · A/M/EH-6 · AH-64D/E
개발 중단 / 컨셉 / 실험기
YC-14 · X-32 · X-48 · YAL-1 · B-1R · F-15SE · 팬텀 레이
인수 합병 및 공동 개발
맥도넬 더글라스의 항공기 · F-22 · B-1 · V-22 · 디파이언트 X
※ 제조사별 항공기 둘러보기




  • 보잉 247: 최초의 현대식 여객기
  • 보잉 2707: 초음속기, 원형기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계획이 취소됐다.
  • 보잉 307: 스트라토라이너(Stratoliner), B-17 폭격기를 기초로 개발.
  • 보잉 377: 스트라토크루저(Stratocruiser), C-97 수송기를 기초로 개발.
  • 보잉 707: 전설의 시작. 여러 항공기의 플랫폼으로 쓰인 걸작 제트 여객기.
  • 보잉 717: 맥도넬 더글라스에서 MD-95로 개발하던 것을 MD 인수 후에도 계속 개발하여 보잉 717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 보잉 727: 보잉 707이 들어가기에는 수요가 적은 노선을 위해 개발한 여객기. 737의 기록 갱신 이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여객기였다.
  • 보잉 737: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여객기. 지금도 하늘을 날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생산할 장수만세 여객기이다.[46] 그러나 보잉 737 MAX 기종이 2019년 전후로 5개월 사이에 이나 기체결함에 의한 추락사고가 발생하여 보잉의 이미지를 깎아내림은 물론, FAA와 보잉의 유착 관계가 드러나면서 나라 망신까지 일으켰다.
  • 보잉 747: 점보여객기로 유명. 상기한 737과 마찬가지로 반세기 넘게 하늘을 날고 있는[47] 대형 여객기의 클래스 대표. 허나 21세기에 들어서 보잉 777을 필두로 한 쌍발 여객기들에게 밀려 2017년에 여객형이 먼저 단종되었고 2022년에 화물형도 단종되면서 53년의 역사를 마무리지었다.
  • 보잉 757: 세계에서 제일 큰 수송량(-300 기준)을 가진 협동체 여객기이다. 하지만, Next-Genereation 737과 A320이 등장하면서 경쟁력과 연비가 떨어져 2005년 단종되었다.
  • 보잉 767: 세계에서 가장 동체 폭이 좁은 광동체 여객기.[48] 수송량, 항속거리, 연비 등 적절한 스펙으로 세계 각지에서 활약 중인 기종.
  • 보잉 777: 쌍발 제트 여객기의 한계를 초월한 패왕. 에어버스에게 추월 당하던 보잉을 다시 일으켜 세운 기종.
  • 보잉 787: 현재 보잉의 신세대 여객기인 드림라이너. 2020년 현재는 보잉 777과 함께 보잉을 먹여살리는 제품이다.
  • 보잉 929: 보잉이 개발한 유일한 배로, 수중익선이다. 제트포일(Jetfoil)이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 P-12
  • P-23
  • P-26:미국 최초의 전금속제 전투기.
  • B-17: 유럽을 구함과 동시에 독일을 초토화시킨 폭격기. B-29와 더불어 2차대전 참전 용사.
  • B-29: 현재까지 유일하게 실전에서 을 떨어뜨린 폭격기다. 2차대전 종결자.
  • B-47: 미군 최초의 제트 폭격기.
  • B-52: 초기 모델인 B-52A부터 후기형인 B-52H까지 합치면 '아버지도 타고, 아들도 타고, 손자도 탄' 장수만세 폭격기. 현재도 현역이다.
  • C-32: 757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수송기
  • C-40: 737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수송기
  • C-97: B-29 기반의 수송기, 엔진, 주익등은 동일. 한국전쟁에 참전한 전과도 있다
  • VC-25: 미국에어포스 원
  • CH-46: 씨나이트. 미 해병대의 주력 중형(Medium) 수송헬기.
  • CH-47: 치누크. 미 육군 주력 대형 수송헬기. 우리나라군도 운용중이다.
  • E-3 조기경보기: 보잉 707을 기반으로 만들었다.
  • E-7: 보잉 737을 기반으로 만들었다.
  • E-767 조기경보기: 보잉 707이 단종됨에 따라 같은 시스템을 보잉 767에 얹었다.
  • E-4: 보잉 747기반 공중 지휘소. 핵전쟁으로 지상이 막장이 되면 여기서 총 지휘를 한다.
  • E-6: 장거리 통신중계기. 주로 하는 일은 탄도탄을 발사하는 핵잠수함들에게 내려지는 통신을 중계해주는 일. 보잉 707을 기반으로 제작됨.
  • E-8: 일종의 지상군을 위한 조기경보기. 강력한 대 지상레이더로 적 지상군의 동향을 파악하여 아군에게 알려준다.
  • F/A-18E/F 슈퍼호넷: F/A-18 호넷의 발전형 전투 공격기.
  • EA-18G 그라울러: F/A-18E/F 슈퍼호넷을 기초로 개발된 전자전기.
  • F-15SE: F-15E에서 스텔스 기술을 적용/개량한 전투기.
  • KC-135 공중급유기: 보잉 707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 KC-46 공중급유기: 보잉 767을 기초로 만들어졌고, 전작인 KC-767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2011년 2월에 미 공군이 KC-135를 대체할 기종으로서 노스롭 그루먼에어버스가 추진하는 KC-45(A330 MRTT)를 이기고 최종 선정되었다.
  • KC-767 공중급유기: 보잉 767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현재 일본과 이탈리아가 운용중인 기종이다.
  • P-8 대잠초계기. 737 기반이며, P-3 오라이언을 대체할 예정이다.
  • X-32: JSF 참여기종
  • SLRV: 경전철 차량. 보잉-버톨에서 제작하였다. 한때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경전철 노선에서 사용되었으나 여러 가지 결함으로 인해 현재는 전부 퇴역하였다.
  • 시카고 전철 2400형 전동차: 마찬가지로 보잉-버톨에서 제작하였으나 2010년대 초반에 전량 퇴역.

다음은 인수합병한 회사에서 제작한 항공기들 및 타 회사와 공동 개발한 물건들의 목록이다.
  • AH-64: 맥도넬 더글라스
  • AV-8: 맥도넬 더글라스
  • B-1: 록웰
  • F-15: 맥도넬 더글라스
  • F/A-18: 맥도넬 더글라스
  • F-22: 록히드 마틴과 컨소시움 구성(록히드 마틴이 주 계약자)
  • YF-23: 정확히는 맥도넬 더글라스가 참여함.
  • V-22 틸트로터기: 벨과 합작.
  • KC-10: 맥도넬 더글라스가 개발.
  • C-17: 대형 전략수송기. 맥도넬 더글라스가 개발.
  • 하푼: 대함 미사일. 맥도넬 더글라스가 개발.
  • SLAM: 하푼을 기초로 개발된 지상공격용 미사일.
  • 토마호크: 유명한 크루즈 미사일. 맥도넬 더글라스가 개발.
  • 헬파이어: 대전차 미사일. 맥도넬 더글라스가 개발.
  • JDAM: GPS 유도폭탄. 맥도넬 더글라스가 개발.
  • LGM-118 피스키퍼: 보잉, 마틴-마리에타(현 록히드 마틴), TRW 등이 개발
  • 보잉 블랙: 보잉이 만든 스마트폰
  • F-4:맥도넬 더글라스
  • A-4:맥도넬 더글라스
  • 머큐리 우주선: 맥도넬
  • 제미니 우주선: 맥도넬
  • 새턴 2, 3단 로켓: 노스 어메리칸, 더글러스[49]
  • 우주왕복선 오비터:노스 어메리칸 록웰[50]
  • SB-1 디파이언트: 현재는 록히드 마틴의 자회사가 된 시코르스키 사와 함께 개발한 UH-60 블랙호크의 동축반전 로터+수평추진체계 바리에이션. 현재 협력사인 시코르스키 사의 모회사인 록히드 마틴이 벨 헬리콥터사와 함께 만든 V-280 밸러와 JMR 사업[51]에서 경쟁중이다. 재미있게도 헬리콥터 주제에 기체 제어 시스템으로 FBW를 박아넣은 비범한 물건으로, '헬리콥터 역사상 최초로 FBW를 적용한 기종'이라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 F-100:노스 아메리칸
  • F-86:노스 아메리칸
  • P-51:노스 아메리칸
  • T-7:사브


7.1. 커스터머 코드 (BCC)[편집]


이 회사의 경우 각 항공사마다 커스터머 코드를 할당해서 항공기를 인도할 때마다 처음으로 인수하는 항공사의 코드를 붙인다. 가령 대한항공의 경우 코드가 B5이므로 대한항공 주문 보잉 777-300ER은 커스터머 코드를 붙여 B777-3B5(ER)로 표기한다.

코드가 할당된 국내 항공사로는 대한항공(B5), 아시아나항공(8E), 제주항공(LC)이 끝이고, 국내 일반 기업으로는 삼성그룹(EG)이 유일하며, 대한민국 공군 역시 코드가(Z8) 할당되어 있다.

보잉 787 이후로 커스터머 코드는 붙지 않고 787-9 같이 파생형만 표기한다.


8. 기타[편집]


한국에서 홍보사업에 열심인 업체이다. FX 사업 당시 라팔을 꺾고 F-15K가 선정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홍보사업을 펼쳤다.[52] 세계적으로는 방위산업체가 국방부 관계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까지 홍보를 하는 건 매우 드문 편인데, 한국에서 이 방식이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이후에도 열심히 한국에서 홍보사업 중이다. 반대로 F-35를 개발한 록히드 마틴은 그리 열성적이지는 않은 편이다.[53]

1~2차 FX 사업에서 F-15K가 선정되어 어지간히 기뻤던지 한국 공군과 합작해서 한국인 대상 팬서비스 동영상을 만든 적이 있다. 3차 FX 사업에서도 F-15SE 사일런트 이글을 위해 각종 군사잡지나 항공잡지에 홍보사진을 내보내는 것은 물론이고[54] F-15 Silent Eagle for South Korea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중이다. 유튜브

2008년부터 람보르기니탄소 섬유 모노코크 구조물 충돌 연구를 위해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2010년에 골프 클럽 제조사 캘러웨이, 람보르기니와 같이 플라스틱과 카본 파이버를 결합한 포지드 컴포짓(Forged Composite), 단조 복합재를 공동 개발하였다.[55]

에 보잉 미국 본사에서 보잉 787기 생산 관련직을 담당하고 있는 한 남성이 출연한 적이 있는데, 연봉 말고 월급이 한국돈으로 7000만원 이상이라고 밝혀 화제가 된 적 있다.[56]

보잉의 창립 100주년을 기념으로 해서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보잉의 역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5부작으로 방영한 바가 있다.

보잉의 시설 중 에버렛의 광동체기 공장은 조립 라인의 조망이 가능한 공개 투어를 열고 있으며 입구에 전시장과 커다란 기념품점까지 갖추고 있다. (사이트) 교통 편이 마땅치 않아서 렌터카를 하든지 렌터카 값에 단체 투어에 참가해야 하는 게 흠. 시애틀 남부의 보잉 필드와 세인트루이스에는 공장은 공개하지 않으나 각각 시애틀 항공 박물관과 쇼룸(James S. McDonnell Prologue Room)을 공개하고 있다. 특히 시애틀 항공박물관에는 보잉 기종 외에도 707 시절의 에어 포스 원콩코드[57]의 기내 관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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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는 여기

보잉스토어라는 상점도 운영하고 있다. 목걸이도 팔고, 의류도 팔고, 사무용품도 팔고, 비행기 창문도 팔고, 조종간, 스로틀 레버, 각종 패널, 기내용 갤리 카트에 전투기 사출좌석까지 판다. 에어버스에서도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는 에어버스 샵이라는 곳도 있지만 보잉스토어보다 상품이 많지 않다. 발송은 툴루즈 블라냐크 사업장에 위치한 에어버스샵에서 한다.

보잉스토어는 미국의 아마존닷컴에서도 똑같은 제품을 팔고 있는데 아마존닷컴에서 구입하면 대한민국까지 직배송이 된다. DHL 특송으로 오며, 미국의 폴라에어 카고의 화물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들어와서 배송된다. DHL 특송이니만큼 한국 내에서도 DHL 직원이 배달해준다. 배달은 어지간하면 주문한지 2일 내지 3일 안에 도착한다.

보잉스토어로 구입하면 페덱스로 배송된다. 다만, 특송이 아닌 일반 배송[58]으로 오기 때문에 약 일주일 정도 기다려야된다.[59] 시애틀 에버렛 페인 필드에 위치한 보잉스토어에서 발송되며, 페덱스 에버렛 사무소》페덱스 시애틀 사무소》페덱스 오클랜드 사무소》페덱스 앵커리지 사무소》인천국제공항 순으로 들어오게된다.[60] 직접배송지역은 페덱스 배송직원이 배송하고, 나머지는 롯데택배가 위탁배송을 하게된다. 인천국제공항에 들어오기 전에 페덱스에서 개인통관고유부호와 이름, 전화번호, 운송장번호[61], 물품 구매 가격[62]과 사용 용도[63]를 제출하라고 오는데, 제출하지 않으면 통관이 불가능하니 꼭 제출하자.

또한 보잉 이미지라는 보잉 항공기의 사진의 라이센스를 판매하는 사이트도 있다.# 보잉이 자사 상업용으로 사용하는 이미지를 각 기사나 잡지등에서도 사용하거나, 혹은 개인 보관, 편집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사진을 판매하는 것인데 사진 품질은 엄청나게 좋은 것은 사실. 그러나 군수 시장 쪽 라이벌 록히드 마틴이 공식 플리커를 통해 높은 수준의 각종 항공기 사진들을 무료로 원본까지 업로드 해주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찝찝한 것은 어찌할 수 없다. 보잉도 공식 플리커를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보통 자사 행사 사진 정도가 대부분이라 양질의 사진을 건지기는 어렵다.#

2019년 11월 1일 차세대 첨단 항공우주 분야를 연구하는 '보잉한국기술연구센터'를 서울에 유치했다고 밝혔다. 2018년 9월 서울시와 보잉사가 보잉한국기술연구센터 설립과 관련해 MOU를 체결한 이후 이번에 결실을 맺었다. 2022년까지 고급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오후 6시 보잉한국기술연구센터가 입주하고 있는 강남구 삼성동 '아셈타워'에서 개소식을 진행했다. #1 #2 #3

2023년 4월 6일, 한 때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일했던 스티븐 비건이 수석부사장이 되었다. 기사

2023년 11월, 나는 솔로 16기 상철이 보잉사 재직 사실이 허위라고 의심 받자, 증거 인증샷을 통해 논란을 잠재웠다. 기사

8.1. 관련 영상[편집]




2009년 Boeing 기업 소개 영상[64]



1979년 Boeing Getting People Together 광고[65]


9.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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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용기 지면광고에서 많이 쓰던 슬로건이다.[2] 최근 들어 사용하는 슬로건이다.[3] 민간부문과 방위부문의 매출액을 합치면 항공우주·방위산업체 중에서는 1위이다.[4] 권역에 주 공장 두 곳, 보잉 필드, 비행기 박물관과 구 본사가 위치한다.[5]맥도넬 더글라스의 민항기 및 군용 수송기 공장이 있었으며 현재는 정비 거점이다.[6]맥도넬 더글라스, 현 보잉 방위우주부문 본사 및 군용기 공장. 과거 NASA 우주비행사 엘리엇 시, 찰스 배셋이 이 곳 제미니 우주선 공장에 추락해 사망한 바 있다.[7] 고향은 디트로이트이며 아버지는 독일 출신이다. 원래 성씨도 잉(Böing)이었으나 움라우트를 oe로 풀어쓰면서 지금과 같은 철자가 되었다.[8] 제 2차 세계대전때 이름을 떨친 B-17B-29는 다 보잉사 제품이었고 특히 B-29는 진정한 의미의 전략 폭격기였다.[9] 각 등록번호는 N70700, N73700, N7470으로 현재 N70700은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 별관에, N73700, N7470은 뮤지엄 오브 플라이트에 정태보존되었다.[10] 등록번호는 N7001U로 유나이티드 항공에서 1991년까지 운항한 후 뮤지엄 오브 플라이트에 정태보존되었다.[11] 현재는 이 일로 인해 이미지가 많이 까였다.[12] 여객기는 KLM 737-800 인도분 후 생산 중단, 군용기로는 생산되고 있다.[13] 결함으로 인한 운항 중단으로 일시적으로 생산이 중단됐으나 지금은 재개되었다.[14] 현재 화물기로만 생산 중[15] 생산 예정[16] 월등한 항속거리에 사이즈도 적절해서 개발도상국이나 중소 항공사에겐 안성맞춤의 항공기다. 일부 지역 항공사들은 국제 장거리 노선용으로 인기리에 구매 중이다.[17] 게다가 후속조치라며 보인 병크와 삽질로 인해 신뢰도가 상당히 손상받았다.[18]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건물로 (부피 기준) 기네스북 등재. 세계 최후의 747 시리즈인 N863GT가 출고됨으로 에버렛 공장에서 출고되는 상업용 항공기는 777 시리즈가 유일하게 될 것이 유력하다.[19] 동체, 주익 등. 이탈리아, 일본, 한국 등에서 납품되는 모듈을 1차 조합한다. [20] 동체는 캔자스 주 위치타의 Spirit AeroSystems (과거 보잉 공장을 인수한 것)에서 철도편으로 납품된다.[21] 참고로 2단 로켓은 노스아메리칸, 3단 로켓은 더글라스 사 제작.[22] 러시아 우주발사체 발사 회사. 세르게이 코롤료프 설계국의 후신이다.[23] 현재는 양 국가 모두 퇴역했으며, 한국 측은 네덜란드 DAMEN 사의 "니나"를, 일본은 호주 AUSTAL 사의 "퀸 비틀"을 운용 중이다.[24] 그리고 이 P-26을 끝으로 보잉은 그 뒤로 한 번도 제대로 된 전투기를 개발해내지 못했으며, 번번히 각종 전투기 사업에 참여했다가 물을 먹었다.[25] B-17 이전에도 YB-15 등, 몇 가지 폭격기를 제작하였으나 전부 시제기 1, 2대 정도를 만들고는 취소되었다.[26] 유럽이 불타오르는 와중에도 찔금찔금 주문할정도였고, 진주만 공습 이전 무기대여법을 위한 생산량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보잉 입장에서는 희망고문 수준이었을 것이다.[27] 전쟁이 끝날 때까지 무려 1만 2천 7백 대가 생산되었다. 1941년까지만해도 막 늘기 시작한 물량은 고작 수백대였으나, 1942년부터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다른 회사에 물량을 맡길 정도가 되었다.[28] B-17 개발에 워낙 사활을 걸어 놔서 만약 미군이 B-17을 사주지 않았으면 보잉은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문닫을 뻔했다고 한다.[29] 보잉에서 V-22의 안정성을 증명한답시고 오바마를 태우고 비행하기도 했는데 V-22는 이런 쇼가 필요할 정도로 개발과정에서 잦은 사고를 많이 겪었었다. 해당 항목으로.[30] 가장 대표적인 문제점은 급유봉 조작 문제인데 이게 여전히 년단위 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31] 한 술 더 떠서 에어버스는 단종시킨 A380의 생산라인을 A320neo용으로 바꾼다고 한다.[32] 발사 및 귀환은 성공적이었으나 아틀라스 V 로켓에서 분리된 직후 버그로 인해 추진 연료를 낭비하면서 비정상 궤도에 진입했고, 결국 주 임무였던 국제우주정거장 도킹을 포기하고 발사 후 48시간도 못 채우고 귀환하는 바람에 2020년 중으로 한 번 더 무인비행을 해야 한다. 한편 크루 드래곤 무인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스페이스X는 지상 테스트 중 폭발사고에도 불구하고 재설계 과정을 거쳐 2020년 1월에는 비상 탈출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2020년 5월에는 유인비행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33] 다만 엔지니어가 우선되던 시절에도 경영진들은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행태를 보여 문제가 되기도 했다. 위의 두 사건 모두 보잉이 초반에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다가 주변 압박에 의해 뒤늦게 인정한 케이스이다.[34]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35] 해당 다큐를 보면, 보잉에서 회사 로고가 찍힌 단체복을 나눠줬는데 다들 "누가 이걸 입고다니냐 ㅋ" 라고 하면서도, 정작 그 옷을 입고나가면 보는 사람들마다 "보잉 다니는군요!!라고 해서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는 전직 직원의 인터뷰도 있다.[36] 유나이티드 항공 811편 사고의 경우 유나이티드 항공의 과실로 결론지어졌다.[37] 1982년부터 2000년까지 GE에 재직했으며 2001년부터 보잉 CEO가 되기전인 2005년까진 3M의 CEO로 재직했다. 3M에서도 GE재직중에 배웠는지 강력한 구조조정 정책을 실시했지만 그 원인으로 회사가 탈이 난건지 현재 참전용사들의 불량 귀마개 관련 집단소송으로 시총을 뛰어넘는 배상금을 지급해야할 위기에 처했다.[38] 이외에 B787 스테빌라이저트림 작동부에 작업자들이 오르내릴때 쓰는 사다리를 넣은채 비행기를 날리거나 파손된 배선을 그대로 사용하는등의 폭로가 있었다.[39] 다만 이 양반께서는 미국 국적 항공사임에도, 라이벌 회사제 빠돌이가 되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쪽 최고봉은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있다. 다른 항공가는 320시리즈나 350등에 눈길을 주는동안 오직 737사랑을 외치고 있다.[40] 그나마 대한항공일본 국적사들에 비해 골고루 운용한다. 그래도 보잉이 에어버스보다 조금 더 많으며, 2018년 이전까지 협동체는 오직 보잉 737만 가지고 있었으며 2015년이 되어서야 A321neo를 주문했고, 2018년에 A220을 도입했다. 게다가 그놈의 엔진 때문에, 대한항공A350의 도입 계획이 아예 없으며 오히려 아시아나항공에어버스로 점차 돌아서는 중이다. 다만 737맥스가 속을 썩여 320으로 넘어가 비중이 변할것으로 보인다.[41] 이스라엘의 특성상 주변 국가들과의 싸움이 꽤 잦기에, 그 국적사 역시 그 위협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에 엘알은 온갖 조건을 비행기 주문시에 내걸었고, 이를 들어줄만한 회사가 보잉뿐이기에 보잉에서만 주문할 수 밖에 없다. 간단히 서술하면 민항기라 쓰고 군용기라 읽는 물건을 요구하고 있다.[42] 무엇보다 이 친구의 존재는 중국 민항업체들에 참을 수 없는 유혹과 같다. 적절한 탑승 인원에, 매혹적인 항속거리로 업계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43] 다만 러시아에서는 보잉보단 에어버스를 더 선호한다. 반발심리야 어차피 등록을 엄한 땅에 한다.[44] 훗날 대한민국 주도로 통일이 되고 고려항공이 통일 한국의 민항이 된다면 또다른 얘기가 된다. 물론 이는 불확실한 미래의 얘기지만..[45] 다만 보잉빠 항공사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보잉의 베스트셀러라 할 수 있는 777 계열은 한 대도 없다.[46] 위키피디아의 737항목에 의하면, 전세계에서 평균 5초당 한 번씩 737 한대가 이착륙하고 있다고 한다.[47] 물론 737처럼 꾸준히 개량이 이루어졌다.[48] 가장 작지는 않다. A310이 있기 때문.[49] 제작 도중 맥도널 더글러스로 합병했다. 1단은 보잉에서 만들었는데 반세기가 지나니 전부 보잉이 흡수했다 어쩌다보니 미국 우주개발사의 필수요소가 된 셈이었다. 맥도널 더글러스에서 우주발사체로 만든 델타도 히트작이고 2010년대에도 스타라이너를 개발하며 우주선, 로켓 사업의 전통은 이어질 전망이다.[50] 부스터는 모턴 타이오콜, 연료 탱크는 마틴 마리에타가 제작. 이들 중 90, 00년대 이후에도 살아남은 곳은 없으며 각각 이런저런 M&A를 거쳐 현재는 각각 보잉, 오비털 ATK, 록히드 마틴에 합병되었다.[51] 현재 미 국방부에서 진행 중인 미군의 차세대 회전익기 사업.[52] 당시 군사잡지나 항공잡지에 광고사진을 도배하다시피 내보냈고(이때 라팔을 개발한 다소도 마찬가지였다.) 일간신문지에까지 홍보 사진을 걸었다.[53] 록히드는 그럴만도 한 게 이미 그 자체로 성능이 입증된 것이 차고 넘쳐 굳이 홍보를 하지 않아도 알아주기 때문이다.[54] 사실 다른 2개사도 마찬가지로 열심이다. 때문에 모 잡지 한 페이지에는 사일런트 이글 광고, 한 장 넘기면 타이푼 광고, 또 한 장 넘기면 F-35 광고가 보이는 것이 매달 지속된다[55] 람보르기니는 이를 바탕으로 세스토 엘레멘토를, 보잉은 스노우보드 바인딩을 만들어 출시, 2014 ISPO 올해의 제품 상을 수상했다.[56] indeed.com에 포스팅된 급여 자료로는 조립작업자 시급이 평균 25달러 수준 (보잉의 주 5일 3교대 기준이라면 연간 4~5만달러 수준이 된다), 품질 검사자가 연 7~8만 달러로 올라와 있다.[57] 뉴욕의 인터피드 박물관과 함께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편.[58] FedEx International Economy.[59] 될 지는 모르겠지만 빨리받고싶다면 메일로 페덱스 특송으로 보내달라고 해보자.[60] 오클랜드에서 멤피스로 이동 후 앵커리지로 가는 경우도 있다.[61] 보잉스토어에서 발송을 하면 문자로 운송장번호가 온다. 이걸 입력하면 된다.[62] 보잉스토어에서 산 물건의 가격이다.[63] 개인용으로 사용할 것인지, 상업용으로 사용할 것인지 묻는것이다.[64] 당시 롤아웃 된지 얼마 안된 보잉 787이 나온다.[65] 광고 차례로 보잉 747, 보잉 727, 보잉 707, 당시 신형 항공기인 보잉 737, 그리고 개발중이였던 보잉 757보잉 767 기종 개발 영상이 잠깐 나온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