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저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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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저우역 광장 앞에 세워진 조조의 석상
보저우는 중국의 지명으로 안후이성의 지급시이다. 안휘성 최북단의 도시로서 동쪽으로는 화이베이, 남쪽으로는 벙부에 접하고 북쪽은 바로 허난성이다. 2010년 인구는 480만여명이다. 대체로 농촌지역으로서 소득수준은 낮다. 위무제 조조의 고향으로 삼국지에서는 초라고 주로 언급된다.
예로부터 이 지역은 박(亳), 초(蕉) 라고 불렸다. 하나라 시절에 나뉜 구주에서 예주에 속했다. 탕왕이 상나라를 세우고서 처음 잡은 수도 또한 이 곳이었다가, 상나라가 계속되면서 수도가 상추시, 은허로 북상했다.
춘추시대에 이곳은 진(陳)나라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기원전 478년 진나라는 초나라를 공격했다가, 역공을 당하여 망해버리고 진나라의 민공은 살해되었다. 이후 이곳은 초나라의 영역이 된다.
이곳은 전국시대 내내 초(楚)나라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진(秦)나라는 초나라를 멸망시키고, 대륙을 통일했다. 이후 통일 진나라는 군현제를 실시하면서 정복된 초나라에 군현을 설치했는데, 이곳은 이웃한 옛 위(魏)나라의 영토 대부분을 차지하는 탕군(碭郡)에 소속된 초현(譙縣)에서 관할했다.
전한이 세워진 이후 군현제를 개편하여 군국제를 실시했는데, 탕군은 팽월의 제후국인 양(梁)나라의 영토가 되었다. 팽월이 죽은 후 황실의 일족이 양나라 왕이 되었다. 양나라 왕실 내부에 분쟁이 일어나자 중앙에서는 관련자들을 처벌하면서 양나라 영토를 삭감했고, 이때 초현은 패군으로 옮겨졌다. 전한 말 기준으로 하면 패군에서 초현과 유방의 고향 패현을 모두 관할하므로 유방과 조조는 동향인이지만, 유방이 태어났을 때 기준으로는 아닌 셈.
그러나 후한에는 다시 패군을 개편하여 일부는 패국으로, 나머지는 여남군이 되었다. 위무제 조조의 고향이었으며 건안시대 위나라 5대 도시 중 하나. 위나라 시절 창업자의 고향이었기 때문에 푸쉬를 받았다. 나머지 4대 도시가 낙양, 장안, 업, 허창이니 초의 번성함을 짐작할 수 있다. 패국 초현 출신인 조조가 자신이 집권해 위왕에 오른 이후 건안 말년에, 즉 아직 후한이 공식적으로는 존속하고 있을 때(...) 한고조처럼 자기 고향을 높이고자 초현을 패국에서 분리 및 승격시켜 초국으로 삼았고 이에 따라 패국은 당연히 축소되었다.[1] 개편 때마다 초현 또는 초군은 영역이 늘어나거나 축소되거나 하였는데, 어쨌든 유방과 조조의 고향인 패와 초는 약 150km 정도의 거리로 개편때마다 같은 행정구역에 묶이거나 또는 각각 나뉘거나를 반복했다.
화타, 하후돈, 호질, 문앙의 고향이기도 하다.
서진시절에는 조조가 개편한 것이 계속 내려와 초국의 도읍이 되었으며, 북위 시절에는 남연주(南兖州)라고 불렸다. 하지만 다시 북주시절 박주라고 개칭되었다.
당나라 시절 박주는 다시 초군으로 개칭되었는데, 최종적으로 당고종 시절 박주(보저우)라고 개칭된 이래 계속 이 이름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시내 지역 전체를 포함하고 있는 차오청(譙城:초성)구의 이름으로 초라는 옛 지명 또한 아직도 현역으로 쓰이고 있다. 원나라 시절에는 한때 반원지도자인 유복통이 이곳에서 칭제하였으나, 곧 다른 반원세력에 의해 진압되고 살해되었다.
이렇게 조조의 고향 초현(현재 보저우시)와 유방의 고향인 패현(현재 페이현)는 같은 행정구역에 자주 묶였지만 현재는 소속 성(省)이 다르다. 조조의 고향인 초현은 안후이성 보저우이고, 유방의 고향인 패현은 장쑤성 쉬저우시(서주) 아래의 페이현에 속한다. 거리도 생각보다는 멀게 느껴질 수 있는데, 약 150km 가량 떨어져 있다. 하지만 중국의 거리 개념으로는 충분히 썩 멀지 않은 근처 동네 맞다.(...)
중화인민공화국 시절에도 이곳을 둘러싸고 여러번 행정개편이 있었는데 2000년에 지급시인 보저우시를 설립하였다.
보저우시 철도교통은 크게 보저우역(亳州站)과 보저우 남역(亳州南站)으로 나뉘는데, 보저우역은 징주철도(京九铁路)가 지나가는 재래선 역이고 보저우 남역은 샹항여객운전선(商杭客运专线)이 지나가는 준고속철도 역이다.
공항은 없지만 2024년까지 개항을 목표로 공사중이며, 현재 보저우 공항(亳州机场)이라는 가칭을 사용중이다.
보저우역 광장 앞에 세워진 조조의 석상
1. 개요[편집]
보저우는 중국의 지명으로 안후이성의 지급시이다. 안휘성 최북단의 도시로서 동쪽으로는 화이베이, 남쪽으로는 벙부에 접하고 북쪽은 바로 허난성이다. 2010년 인구는 480만여명이다. 대체로 농촌지역으로서 소득수준은 낮다. 위무제 조조의 고향으로 삼국지에서는 초라고 주로 언급된다.
2. 역사[편집]
예로부터 이 지역은 박(亳), 초(蕉) 라고 불렸다. 하나라 시절에 나뉜 구주에서 예주에 속했다. 탕왕이 상나라를 세우고서 처음 잡은 수도 또한 이 곳이었다가, 상나라가 계속되면서 수도가 상추시, 은허로 북상했다.
춘추시대에 이곳은 진(陳)나라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기원전 478년 진나라는 초나라를 공격했다가, 역공을 당하여 망해버리고 진나라의 민공은 살해되었다. 이후 이곳은 초나라의 영역이 된다.
이곳은 전국시대 내내 초(楚)나라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진(秦)나라는 초나라를 멸망시키고, 대륙을 통일했다. 이후 통일 진나라는 군현제를 실시하면서 정복된 초나라에 군현을 설치했는데, 이곳은 이웃한 옛 위(魏)나라의 영토 대부분을 차지하는 탕군(碭郡)에 소속된 초현(譙縣)에서 관할했다.
전한이 세워진 이후 군현제를 개편하여 군국제를 실시했는데, 탕군은 팽월의 제후국인 양(梁)나라의 영토가 되었다. 팽월이 죽은 후 황실의 일족이 양나라 왕이 되었다. 양나라 왕실 내부에 분쟁이 일어나자 중앙에서는 관련자들을 처벌하면서 양나라 영토를 삭감했고, 이때 초현은 패군으로 옮겨졌다. 전한 말 기준으로 하면 패군에서 초현과 유방의 고향 패현을 모두 관할하므로 유방과 조조는 동향인이지만, 유방이 태어났을 때 기준으로는 아닌 셈.
그러나 후한에는 다시 패군을 개편하여 일부는 패국으로, 나머지는 여남군이 되었다. 위무제 조조의 고향이었으며 건안시대 위나라 5대 도시 중 하나. 위나라 시절 창업자의 고향이었기 때문에 푸쉬를 받았다. 나머지 4대 도시가 낙양, 장안, 업, 허창이니 초의 번성함을 짐작할 수 있다. 패국 초현 출신인 조조가 자신이 집권해 위왕에 오른 이후 건안 말년에, 즉 아직 후한이 공식적으로는 존속하고 있을 때(...) 한고조처럼 자기 고향을 높이고자 초현을 패국에서 분리 및 승격시켜 초국으로 삼았고 이에 따라 패국은 당연히 축소되었다.[1] 개편 때마다 초현 또는 초군은 영역이 늘어나거나 축소되거나 하였는데, 어쨌든 유방과 조조의 고향인 패와 초는 약 150km 정도의 거리로 개편때마다 같은 행정구역에 묶이거나 또는 각각 나뉘거나를 반복했다.
화타, 하후돈, 호질, 문앙의 고향이기도 하다.
서진시절에는 조조가 개편한 것이 계속 내려와 초국의 도읍이 되었으며, 북위 시절에는 남연주(南兖州)라고 불렸다. 하지만 다시 북주시절 박주라고 개칭되었다.
당나라 시절 박주는 다시 초군으로 개칭되었는데, 최종적으로 당고종 시절 박주(보저우)라고 개칭된 이래 계속 이 이름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시내 지역 전체를 포함하고 있는 차오청(譙城:초성)구의 이름으로 초라는 옛 지명 또한 아직도 현역으로 쓰이고 있다. 원나라 시절에는 한때 반원지도자인 유복통이 이곳에서 칭제하였으나, 곧 다른 반원세력에 의해 진압되고 살해되었다.
이렇게 조조의 고향 초현(현재 보저우시)와 유방의 고향인 패현(현재 페이현)는 같은 행정구역에 자주 묶였지만 현재는 소속 성(省)이 다르다. 조조의 고향인 초현은 안후이성 보저우이고, 유방의 고향인 패현은 장쑤성 쉬저우시(서주) 아래의 페이현에 속한다. 거리도 생각보다는 멀게 느껴질 수 있는데, 약 150km 가량 떨어져 있다. 하지만 중국의 거리 개념으로는 충분히 썩 멀지 않은 근처 동네 맞다.(...)
중화인민공화국 시절에도 이곳을 둘러싸고 여러번 행정개편이 있었는데 2000년에 지급시인 보저우시를 설립하였다.
3. 교통[편집]
보저우시 철도교통은 크게 보저우역(亳州站)과 보저우 남역(亳州南站)으로 나뉘는데, 보저우역은 징주철도(京九铁路)가 지나가는 재래선 역이고 보저우 남역은 샹항여객운전선(商杭客运专线)이 지나가는 준고속철도 역이다.
공항은 없지만 2024년까지 개항을 목표로 공사중이며, 현재 보저우 공항(亳州机场)이라는 가칭을 사용중이다.
4. 기타[편집]
- 조조의 고향이기 때문에 현재 큰 석상이 세워져 있다. 썩 넓고 크지는 않은 편이지만 시내에 조조공원. 조조기념관, 조조가족묘도 있고 여기에는 조등 조숭 조인 등의 묘가 다 있다고 한다. 시가지의 약간 외곽 지역의 길 이름 중에는 조인로(曹仁路)도 있다.(...)
-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여남과 진류, 서주를 이어주는 땅으로 자주 등장하지만 삼국지연의에서는 예주의 등장이 별로 없는 관계로 왠지 "어디야?" 싶은 지명. 그런데 사실 익숙한 동네인데, 패국 패현의 별칭이 소패다. 결국 소패 옆동네다. 진류와 서주 사이 끼어있다. 물론 옆동네라고 해서 한국의 거리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 대군사 사마의에서는 황족인 조&하후씨 일족들이 농민들에게 횡포를 부리고, 둔전을 실시하려는 등애와 대립하는 곳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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