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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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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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본 조비
Phil X
티코 토레스
데이비드 브라이언
휴 맥도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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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scograph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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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조비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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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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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본 조비
Bon Jovi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존 본 조비, 리치 샘보라, 티코 토레스, 데이비드 브라이언, 앨릭 존 서치, 휴 맥도날드
입성 연도
2018년
후보자격 연도
2009년
후보선정 연도
2011년, 2018년

















본 조비
Bon Jovi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결성
1983년
미국 뉴저지 주 세이어빌
현재 멤버
존 본 조비 (리드 보컬)[1]
Phil X (리드 기타, 백킹 보컬)
티코 토레스 (드럼, 타악기)[2]
데이비드 브라이언 (키보드, 백킹 보컬)[3]
휴 맥도널드 (베이스 기타, 백킹 보컬)
이전 멤버
리치 샘보라 (리드 기타, 백킹 보컬)[4]
알렉 존 서치 (베이스 기타, 백킹 보컬)[5]
데이브 사보 (기타)[6]
장르
팝 록, 하드 록, 글램 메탈
활동 기간
1983년 – 현재
데뷔
1984년 정규 ‘Bon Jovi
레이블
파일:아일랜드 레코드 logo.png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VEVO 로고.svg

1. 개요
2. 상세
3. 커리어
3.1. 데뷔
3.2. 전성기
3.3. 본 조비의 시대는 지났다?
3.4. 새천년, 화려한 컴백
3.5. 컴백 후 활동
3.6. 내한 공연
4. 그들이 정녕 '아이돌' 밴드로 불려야 하는가
4.1. 훌륭한 록/메탈 입문서
5. 디스코그래피
5.1. 앨범
5.1.1. 정규 앨범
5.1.2. 기타 앨범
6. 빌보드 핫 100 차트인 목록




1. 개요[편집]



본 조비는 1980년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미국의 록 밴드이자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설이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메탈 밴드로 꼽힌다.


2. 상세[편집]


밴드명은 리더인 존 본 조비의 이름에서 따왔다.[7] 헤비 메탈계에 대중화의 바람이 불던 1983년에 결성되어 이듬해 데뷔 앨범 Bon Jovi로 정식으로 음악 신에 등장했다. 그후 팝 메탈의 주역으로 올라서고,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대부분의 밴드들이 모습을 감춘 지금까지도 여전히 음악 신의 중심부에 서있다.

데뷔 초기 시절 당시 주류이던 정통 메탈에서 벗어나 블루스를 가미한 독특한 사운드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그들의 출신지인 뉴 저지의 이름을 따서 뉴 저지 사운드라는 타이틀을 얻는다.[8] Lost Highway 앨범 등에서는 컨트리 사운드를 가미한 음악을 시도하는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선보이며 이제는 어엿하게 음악계의 고참 밴드로 명성을 잇는 중.

밴드 결성 계기는 10대 시절부터 록 음악에 빠져있던 존 본 조비는 친구이자 현 본 조비 멤버인 데이비드 브라이언[9] 등과 밴드 활동을 하던 중 존이 그의 사촌[10]이 운영하던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곡을 만들었는데 , 존이 만들었던 노래 중 하나인 Runaway가 뉴저지 라디오 방송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게된다. 그리고 그 인기를 바탕으로 존은 정식으로 밴드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멤버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 때 모인 멤버는 데이비드를 포함해 데이브 사보[11], 알렉 존 서치, 티코 토레스였다.[12] 결국 리치로 변경된 이 멤버 중 알렉 존 서치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로 20년이상 활동하다 2013년 8월 말에 리치 샘보라가 이혼 후 남겨진 딸과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탈퇴했다.[13] 이후 This House Is Not For Sale 앨범을 기점으로 오랫동안 객원 베이시스트였던 휴 맥도널드와 새로 영입한 기타리스트 필 엑스로 밴드를 꾸며 활동하고 있다.

보컬인 존 본 조비와 기타리스트인 리치 샘보라는 2009년 Songwriters Hall Of Fame (작곡가 명예의 전당) 에 선정될 정도로 인정받는 작곡가들이다.

2017년 12월 13일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이 결정되었다.
헌액 행사에선 원년멤버인 리치 샘보라와 알렉 존 서치도 참여해 마침내 7인의 본조비를 보여주었다.

2016년 발매된 This House Is Not For Sale 앨범의 홍보를 위해 진행되는 월드투어 중 19년만에 2019년 6월 21일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을 성황리에 진행하였다.

2022년 현재로 데뷔 38주년을 맞이했다.

2022년 6월 5일, 원년 베이시스트 알렉 존 서치가 사망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3. 커리어[편집]



3.1. 데뷔[편집]


1983년 밴드 결성 후 얼마 지나지 않아 Polygram/Mercury 레이블과 계약을 맺은 이들은 기타리스트를 리치 샘보라로 교체한다. 이듬해 데뷔 앨범 Bon Jovi를 발표하고 이 앨범 소속 노래중 첫번째 싱글 Runaway[15]가 빌보드 차트 39위에 오르고 두번째 싱글 She Don't Know Me[16]가 빌보드 차트 48위에 오르면서[17] 히트를 친다.

이어 1985년, 2집 7800˚ Fahrenheit 으로 골든 레코드(!)를[18] 기록하고 히트 메이커인 프로듀서 데스몬드 차일드를 영입하고 본격적인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19]


3.2. 전성기[편집]


1986년, 데스몬드 차일드가 프로듀서 겸 작곡가로 참여한 3집 Slippery When Wet은 꽃미남이었던 존 본 조비를 앞세워(...) 뮤직비디오를 열심히 틀어댄 MTV의 지원을 등에 업고선...


You Give Love a Bad Name[20]과,


Livin' on a Prayer 등의 빌보드 싱글 차트 넘버 원 곡을 터뜨렸다. 앨범도 대박을 쳐서 빌보드 차트 8주 연속 1위를 기록하고 미국에서 약 1200만장을 팔아치워 일약 톱스타가 되었다.
성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88년에 발매한 4집인 New Jersey 앨범도 미국 시장 판매량 500만을 넘어서며 차트 정상에 오르고


Bad Medicine과,


I'll Be There For You 등 두 곡의 넘버 원 싱글을 만들었다.

이렇게 데뷔 이후 5년여만에 4장의 앨범을 쏟아낸 뒤 약 1년 반 간의 세계 투어를 가졌고[21][22] 5집 앨범을 내기까지의 휴식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존 본 조비는 혼자서 영화 영 건스 2의 사운드트랙 작업을 하게되는데 여기서 작업하다가 나온 앨범이 1990년에 나온 Blaze of Glory 앨범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서도 타이틀 곡인 Blaze of Glory가 빌보드 싱글 차트 넘버 원을 달성하고 아카데미상과 그레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때까지가 본 조비 최고의 전성기이다.

본 조비는 투어를 마치고 1992년에 5집인 Keep the Faith를 내놓았다. 하지만 음악계의 판세는 얼터너티브 록의 득세로 바뀐 상황이었다. 결국 전작만큼의 성공을 거둬들이지는 못했지만 타이틀 곡 Keep the Faith와 본 조비 특유의 스타일의 발라드 곡 Bed of Roses 등을 빌보드 톱 10 히트곡에 올려놓으며 여전한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2년 후인 1994년, 첫 베스트 앨범인 Cross Road를 발매한다. 여기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있는 본 조비의 노래 2곡 중 하나인 Always가 신곡으로 등장한다. 이 곡은 빌보드 메인 스트림 Top 40 차트 2위에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23]

그리고 같은 해 1994년, 알렉 존 서치가 밴드를 떠나게 된다.[24]

1995년에 나온 6집 앨범 These Days에서는 역시 본 조비 스타일 발라드 곡인 This Ain't a Love Song이 빌보드 싱글 차트 14위에 오르는 선전을 펼쳤다.[25]


3.3. 본 조비의 시대는 지났다?[편집]


6집 발매 이후 내한 공연까지 하며 각광받는 라이브 밴드임을 보여주었지만 음반 판매와 차트 성적은 1980년대의 전성기와 비교했을 때 현저하게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로 인해 이제 본 조비의 시대는 지났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한동안의 휴지기가 이어지며 밴드 해체설까지 나돌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이 기간 동안 이어진 밴드 멤버들의 개인 활동들이 소문을 더 증폭시켰다.

존 본 조비는 Moonlight And Valentino와 Leading Man 등의 영화에 출연까지 하고[26] Blaze of Glory에 이은 두 번째 솔로 앨범 Destination Anywhere를 선보였다. 기타리스트 리치 샘보라 역시 솔로 앨범 Undiscovered Soul을 발표하고 키보디스트 데이비드 브라이언도 피아노 작품집 On A Full Moon을 내는 등 멤버들 모두가 각자의 갈 길을 가는 듯 보였으나..


3.4. 새천년, 화려한 컴백[편집]


시간이 흘러 2000년이 되고 본 조비는 주위의 우려를 싹 날려버리고 음악계로 컴백!

2000년 7월에 컴백 앨범 Crush를 발매하게 된다. 하지만 음악계는 틴 아이돌과 블랙 뮤직이 주류를 타고있었고 본 조비 활동의 오랜 공백으로 인해 음악계의 시선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본 조비는 그런 시선은 신경쓰지 않는듯이 전형적인 본 조비 스타일의 노래 It's My Life[27]와 Thank You For Loving Me를 쌍두마차로 앞세워 음악계 일선에 나섰다.


본 조비의 대표곡 It's My Life 뮤직 비디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아는 본 조비 노래 중 한곡인 It's My Life#[28] 싱글 차트 성적은 33위로 의외로 신통하지 않았지만 Crush 앨범이 꾸준한 판매량으로 미국 시장에서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영국에서는 연속 다섯 번째 차트 넘버 원 앨범이 되었다. Crush 앨범의 세계 판매량은 800만 장으로 전성기 수준의 판매량을 되찾았다는 수치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도 본 조비를 몰랐던 젊은 세대들이 새롭게 팬으로 편입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를 지닌다.

인기세를 타고 러시아어판도 나왔다 카더라[29]

올드 팬들 역시 본 조비의 귀환을 환호했고 세계 투어의 성공으로 여전히 각광받는 라이브 밴드라는 것을 입증하였다.


3.5. 컴백 후 활동[편집]


Crush 앨범으로 멋지게 컴백한 본 조비는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다. 2002년에 발매한 Bounce 앨범과 2003년에 발매한 히트곡들을 어쿠스틱 어레인지한 This Left Feels Right가 망하긴 했지만.[30] 라이브 투어 활동도 굉장히 활발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5년, 음악 스타일의 많은 변화가 나타나게된 앨범 Have a Nice Day를 발매하게 된다. 이 앨범의 곡 Who Says You Can't Go Home 은 슈가랜드의 보컬 제니퍼 네틀즈와 듀엣으로 부른 버전이 있는데 이 듀엣 버전이 그레미상 컨트리 듀엣부분 상을 받게된다. 그 동안 본조비에게 유난히 인색했던 그레미상을 처음으로 수상하게 된 것이다.[31]
Who Says You Can't Go Home은 본조비의 고향 뉴저지 주에서 관광홍보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 영상은 본 조비가 후원하는 무료 집 지어주기 봉사활동의 활동을 활용해서 제작되었다. 가사와 봉사활동의 내용의 조화가 일품이다. 그리고 이 앨범도 600만장이란 엄청난 판매고를 거두게 된다. 사실 빌보드와 영국 차트에서 앨범 차트 2위를 했지 일본을 비롯한 다른 여러 국가에선 1위를 차지한 앨범이다.

2007년에는 더욱더 컨트리풍이 묻어나는 앨범 Lost Highway를 발표했다. 예전부터 음악적 스타일이 고정돼있지 않았던 본 조비였지만 2000년대 들어선 더욱더 변화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이 앨범은 그리고 차트 1위를 다시금 탈환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2009년에는 The Circle 앨범을 발매. 타이틀곡 We Weren't Born to Follow의 뮤직비디오도 굉장히 일품이다. 이 앨범 역시 빌보드 1위를 차지 했다. The Circle 앨범 발매와 함께 2년간 세계투어를 다녔으며 2011년 8월의 리스본 투어를 마친 뒤 본 조비는 2년간의 휴식기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투어 중에는 본 조비의 두번째 베스트앨범 Greatest Hits가 발매되었다.

12년 10월 새로운 투어 (Because We Can - The Tour)를 발표했고 2013년 3월 8일에 12번째 정규 앨범 What About Now가 발매되었다.

그리고 2년후인 2015년 8월 21일, 새 앨범 Burning Bridges가 발매 되었다. 팬 서비스 앨범이라는 컨셉인지 앨범아트도 굉장히 투박한 느낌이다. 미완성으로 남겨져 있던 곡, 미발표곡, 신곡을 모은 음반이다.[32] 처음으로 리치 샘보라가 참여하지 않은 앨범이기에 감회가 새롭다. 장르를 연연해 하지 않는것이 특징인 밴드지만 1집과 13집인 이 앨범을 비교하면 "참 많이 변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국내외 팬들 너나 할 거 없이 존의 솔로 앨범 처럼 되는거 아니냐라는 우려를 하며 리치를 그리워 하는 여론이 형성되었지만, 둘의 결정을 인정하는 훈훈한 분위기.
근데 이 앨범의 수록곡 중 하나인 'Saturday Night Gave Me Sunday Morning'이라는 곡이 니켈백의 Gotta Be Somebody라는 노래와 상당히 유사하여 살짝 논란이 되었다. 노래는 니켈백 쪽이 먼저 나왔지만 하필 이 앨범이 미완성곡, 미발표곡 등을 모은 음반이라 어느 쪽이 먼저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유튜브 링크 참조. 일종의 팬서비스 앨범이라 그런지 큰 논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2016년 11월 4일 This House Is Not For Sale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발매되자마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였다.


3.6. 내한 공연[편집]


본조비의 첫번째 내한 공연은 1995년 5월 10일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에서 열렸다. 당시 입장관객은 약 1만여명으로 추산되었다.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고무되어 공연이 20분간 연장되었다느니, 개런티가 1억원이었는데 티셔츠나 모자 등 캐릭터 상품 판매로 8백 3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느니 하는 후일담이 기사화되기도 했다.[33] 공연실황은 같은해 7월 MBC에서 방송되었다.

이후 1996년 다시 한번 내한공연이 추진되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2013년 "Show of Piece" 아시아투어 첫 공연지로 한국이 결정되어 18년만에 내한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루머로 밝혀졌다.[34]
그리고 2013년 12월 17일 호주 브리스번에서 Because We Can 투어가 끝났다.

2014년 리치 샘보라의 내한이 결정되었다. 락 페스티벌로서 단독 공연은 아니지만 20년 만의 내한으로 그에게 잘 보이면 그의 귀띔으로 그룹의 내한에 영향력이 있을것으로 기대되었으나...그의 공연차례에 비가 오는 바람에 공연이 연장되고 어수선함+ 그의 그룹 탈퇴로 내한의 가망성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2015년 7월 7일 본 조비의 20년만의 내한이 확정되었다. #

Alright. Alright. It's been a long time since I've sang this motherfucker!(알았어. 알았어. 나 이 X같은거(Always) 불러본지 진짜 오래됐단말이야!)-내한 당시 Always를 부르기 직전에.


That almost sounds like korean word. Doesn't it? Bon.Jo.Vi! (웃음) (거의 한국어처럼 들리네요. 봔조비!)- 본.조비! 본조비! 라며 모든 사람들이 환호해줄 때[35]


2015년 9월 22일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두번째 내한공연에서 10~20대의 어린 팬부터 중년팬,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팬[36][37]들 등 총 1만 4천여 팬들 앞에서 총 2시간 30분동안 16곡의 셋리스트와 7곡의 앵콜 곡을 선보였다.[38] 한국 공연 특유의 제창과 함께한 이번 공연 역시 성공적이었다. It's My Life 공연때는 팬들이 다같이 노래제목이 적힌 종이를 펼치는 퍼포먼스를 선보여 감동을 주었으며#, Bad Medicine 때는 보컬인 존도 흥겨웠는지 마지막 노래부분을 3번이나 이어 불러서 관객들과 호흡을 함께했다.[39] 특히 앵콜곡은 원래 3곡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이어 3곡이 추가되었고 앵콜무대가 끝나고도 관객들은 최고 히트곡인 Always를 불러달라 아우성이었고 이미 한계인 목을 가다듬고 다시 스테이지에 올라 위의 저 말을 외친 뒤 'Always'를 불러서 관객들에게 화답했다.#[40] 공연이 끝나고도 경기장내에서 나오는 노래에 맞춰 또 다시 제창을 부르기도 하였다.


4. 그들이 정녕 '아이돌' 밴드로 불려야 하는가[편집]


시작은 아이돌 밴드가 맞다. 본 조비가 락 음악계에서 가진 의의 중 하나로 '여성들이 락 공연장에 찾아오게 만들었다'라는 농담 섞인 평가도 있었을 정도. 게다가 초창기에는 라이브에서 어이 없는 실수도 많았다. 아이돌로 시작해서 경험을 쌓아가며 아티스트로 발전한 전형적인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비틀즈롤링 스톤즈도 시작은 아이돌 밴드였다. 80년대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오며[41] 이제는 노장 밴드로 자리잡고 있지만 비평과 평론측에서는 반응이 좋지 않다. 80년대 전통적인 메탈을 고수해 오던 뮤지션 측과 그의 추종자 팬들의 비평을 산것이 원인. 이유는 위에서 설명되어 있듯이 히트친 3집이 작곡가 데스몬드 차일드의 공동 참여로 음악이 대중적인 라인이고 MTV의 지원으로 뮤직비디오의 홍보가 되자 여성팬의 대거 양성이 비난의 요점이라 할 수 있다.

리치 샘보라의 기타 플레이는 인정받는 안정적인 플레이. 바쁘다면 7분 26초부터 볼것. 이 공연이 팬들에게 샘보라의 역대 최고의 공연이라 회자된다. 그 후, Cross Road 콘서트에서도 애드립을 발휘하며 전성기를 뽐내었고 6집에서는 블루스를 더욱 가미해서 대중성 보다는 작품성을 더욱 살려 호평을 받았다. 2000년 이후로는 시도해보지 않았던 헤비메탈, 컨트리, 언플러그드등의 시도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4.1. 훌륭한 록/메탈 입문서[편집]


그들의 음악의 최고의 장점은 다양한 음악을 자신들의 스타일에 맞게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도전한 장르로는 대표적으로 LA 메탈, 블루스, 헤비 메탈[42], 컨트리 뮤직, 장르라 보긴 애매하지만 언플러그드 음반을 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그들의 블루지한 느낌이 마음에 든다면 에릭 클랩튼이나 비비 킹,스티비 레이 본, 버디 가이 더욱 가서 로버트 존슨까지 들어보고 80년대 감성이 좋다면 건즈 앤 로지스, 스키드로우, 익스트림이나 미스터 빅 등으로 빠지는 식으로 들으면 된다. 전성기인 1980~90년대는 물론 2000년대 이후에도 본 조비로 록에 입문하는 사례가 꽤 보편적인만큼 록 입문자라면 재미삼아 한번 이상 들어본다고 손해보지는 않을것이다.


5. 디스코그래피[편집]



5.1. 앨범[편집]



5.1.1. 정규 앨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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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본 조비
Phil X
티코 토레스
데이비드 브라이언
휴 맥도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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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scography ]





5.1.2. 기타 앨범[편집]


연도
음반명
1990년
Blaze of Glory[43]
1991년
Stranger In This Town[44]
1994년
Cross Road[45]
1995년
On A Full Moon[46]
1997년
Destination Anywhere[47]
1998년
Undiscovered Soul[48]
2000년
Lunar Eclipse[49]
2001년
One Wild Night Live 1985-2001[50]미공
2003년
This Left Feels Right[51]
2004년
100,000,000 Bon Jovi Fans Can't Be Wrong[52]
2010년
Greatest Hits[53]
2012년
Aftermath of the Lowdown[54]
2012년
Inside Out[55]


6. 빌보드 핫 100 차트인 목록[편집]


Bon Jovi Billboard HOT 100 차트인 목록
연도
곡명
최고 순위
수록앨범
1984년
Runaway
39위
Bon Jovi
She Don't Know Me
48위
1985년
Only Lonely
54위
7800˚ Fahrenheit
In And Out Of Love
69위
1986년
You Give Love a Bad Name
1주 1위
Slippery When Wet
1987년
Livin' on a Prayer
4주연속 1위
Wanted Dead or Alive
7위
1988년
Bad Medicine
2주연속 1위
New Jersey
1989년
Born To Be My Baby
3위
I'll Be There For You
1주 1위
Lay Your Hands On Me
7위
Living In Sin
9위
1992년
Keep The Faith
29위
Keep the Faith
1993년
Bed of Roses
10위
In These Arms
27위
I'll Sleep When I'm Dead
97위
1994년
Always
4위
Cross Road
1995년
This Ain't A Love Song
14위
These Days
Lie To Me/Something For The Pain
76위
2000년
It's My Life
33위
Crush
2001년
Thank You For Loving Me
57위
2005년
Have a Nice Day
53위
Have a Nice Day
2006년
Who Says You Can't Go Home
23위
2007년
(You Want To) Make A Memory
27위
Lost Highway
2009년
We Weren't Born To Follow
68위
The Cir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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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혹 기타도 친다. 주로 어쿠스틱.[2] 백킹 보컬을 한적도 있었다.[3] 가끔 노래도 부른다.[4] 2013년 탈퇴.[5] 1994년 탈퇴, 2022년 사망.[6] 데뷔 직전인 1983년 탈퇴, 이후 스키드 로우 결성.[7] 본명 John Francis Bongiovi Jr.[8] 리치 샘보라가 팀을 탈퇴하기 전까지 그는 본조비의 음악풍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각자의 솔로 앨범을 들으면 알 수 있는데, 존 본조비는 대중화된 팝메탈적인 음악에 초점을 둔 반면 리치 샘보라는 에릭 클랩튼 등의 영향으로 블루스,블루스 락 성향이 짙다. 자신도 블루스 기타리스트 반열에 올랐으면 한다는 오래된 발언도 있다.[9] 원래 데이비드는 예비의대를 재학중이던 학생이었고 존이 본조비의 레코딩 계약을 따낸 후 데이비드에게 전화를 걸어 정식으로 밴드로 영입하게 된다. 존이 락앤롤 명예의 전당시상식 때 데이비드가 계속 밴드활동을 할 수 있게 허락해준 데이비드의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는 것을 보면 좀 노는 학생이었던 존이 수재인 아들을 락밴드에 넣은것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했을 듯.[10] 이 사람은 토킹 헤즈의 1집 앨범을 프로듀스했다.[11] 스키드로우#-3의 기타리스트. 그리고 83년에 존 본 조비가 레이블과 계약할 때, 데이브 사보가 어리다는 이유로 레이블에서 거부의사를 밝히자, 이 때 기타리스트를 리치 샘보라로 바꾼다.[12] 사실 데이브 사보는 64년생이고, 드러머인 티코 토레스는 53년생, 베이시스트인 알렉도 51년생이었다. 키보드인 데이빗이나 리더 존도 62년생인데, 팀 밸런스가 맞지 않을 것이라는 레이블의 우려 때문에 멤버가 59년생인 리치로 변경되었다.[13] 수익분배 이야기가 있었으나 2013년 당시에 리치와 나머지 밴드멤버 모두 함구하던 상황에서 나온 루머다. 부차적으로 연인인 오리안시와의 밴드를 짜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모양. 나쁜 관계로 밴드를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후 양측의 인터뷰에서 밝혔으며 명예의 전당에 리치샘보라가 초대되면서 완전히 증명되었다.[14] 단, 2010년 서클 투어때 정말 오랜만에 정규 1,2집 수록곡을 몇곡 부른적이 있었는데, 거기 까지였다[15] 정규 1,2집 통틀어서 유일하게 매 투어때마다 부르는 곡.[14][16] 원래는 She Doesn't Know Me가 맞는 표현이다.[17] 사실 이 노래를 작곡한 사람은 존 본 조비 자신이 아니었고 레이블에서 작곡해 준 노래였기 때문에 자신이 셋리스트를 작성하게 될 86년 이후로는 이 노래를 단 한 번도 라이브로 부르지 않았다. 레이블이 개객기[18] 사실 반응이 좋은 편도 아니었고 심지어 본 조비 멤버들은 이 앨범의 곡들을 아주 싫어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19] 사실 이 때 존 본 조비는 애인이랑 결별하고 1집 수익도 레이블이 거의 다 뺏어가서 정말 힘들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다.[20] 기타프릭스 6thMIX와 드럼매니아 5thMIX에 수록된 바 있다.[21] 허나 이 투어로 인해 본 조비는 체력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녹초가 되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정규 앨범 트랙의 길이보다 2배 더 길게 공연을 했다고 했으니(...)[22] https://en.wikipedia.org/wiki/New_Jersey_Syndicate_Tour 일정을 보니까 힘들만했네...[23] Hot 100에서는 4위[24] 후임은 휴 맥도날드, 2016년까지 비공식 멤버로 활동하다가 공식 멤버로 들어가게 된다[25] 이 곡은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빌보드 차트 성적에 비해서 많이 연주된 곡이 아니다.[26] 이시절 이후로도 꾸준히 영화배우로 활동하여 필모그래피도 꽤 방대하다. 포탈 사이트 영화란에서 검색해보면 이 사람이 가수인가 영화배우인가 잠깐 헷갈릴 수도 있다. 여담으로 웨스트 윙 시즌 7에선 본인 역으로 나와 산토스 후보 유세를 돕는다. 민주당 지지자인듯.[27] 본 조비가 직접 손 댄 곡이지만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맥스 마틴이 공동 참여한 곡이다.[28] 이렇게 된 게, 뉴저지 앨범을 기억하고 부르던 세대와 이 새 앨범이 나올 때 음악을 즐겨 듣던 세대 사이에 이 쪽 음악 인기가 한 번 죽었기 때문이다. 올드팬들에게 이 노래는 어, 아직 정정하시네요!^^ 참고로 성시경이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이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29] 가사는 사실 영어를 슬라브어파 언어식 발음으로 읽은 것뿐이다. 우크라이나의 Село i Люди라는 밴드가 리메이크 한 것이다. 영상[30] 어디까지나 본 조비의 지난 앨범에 비해서 망한거다. 판매량은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특히 이 앨범의 You Give Love a Bad Name은 원곡과는 색다른 맛이 있다.[31] 슈가랜드와 본 조비는 합동 공연도 하게 될정도로 친밀한 관계가 됐다. Bon Jovi & Sugarland - Crossroads 라는 공연에선 본 조비의 히트곡들과 슈가랜드의 히트곡들을 같이 부른다.[32] 이러한 컨셉의 앨범은 처음이 아닌데 2004년 발매된 100,000,000 Bon Jovi Fans Can't Be Wrong이란 앨범에서 데모곡 들을 모아 특전 포함 CD 5장이란 무시무시한 용량으로 발매한 적이 있다.[33] 참고로 리더 존 본조비가 입고 내한한 별그림 티셔츠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34] 사실 이 소식을 밝힌 건 자이브 프로덕션이라는 회사였는데, 이 회사는 닥터드레 내한공연을 성사시켰다며 티켓팅도 했지만 결국 취소되었다. 거기에다가 본조비 내한의 명목은 Show of Piece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투어였는데, 이 회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단독 투어는 아니라고 했다. 게다가 이 발표를 했을 때는 본조비가 새 투어를 발표한 상태라 공신력은 더 떨어졌다.[35] 외국에서는 보통 우리네와 같이 음절은 같지만 조오비!(jo~vi!)라고 사람들이 성원을 보내준다. 그 부분이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이다.[36] 아니나 다를까 외국인 비율은 미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한국이후에 공연이 있었다가 중국의 일방적인 취소(그 당시 중국이 미국과의 외교적으로 껄끄러운 점이 있었기에 미국 밴드인 본 조비의 공연을 취소시켰다는 말이 있었다.)로 쩔 수 없이 보러 한국까지 온 중국인이 그 다음으로 많았었다.[37] 심지어 건즈 앤 로지스 티셔츠를 입고 온 노년의 미국인도 있었다.[38] 보통 자주 공연을 하는 나라인 경우 신곡 중심으로 공연을 하지만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방문하지 않은 국가이기에 지난 30년간 앨범의 히트곡만을 뽑아 공연을 하였다.[39] 하지만 라이브에서 Bad Medicine의 끝부분은 반복하는건 오랜 전통이긴하다.[40] 평상시에는 치명적인 고음 때문에 라이브 무대에서 거의 부르지 않는 곡이다.[41] 2013 콘서트 수익 1위[42] 성골 헤비메탈에 비하면 소프트한 편이긴 하다.[43] 존 본 조비의 첫 솔로 앨범이자 영화 Young Guns 2의 OST[44] 리치 샘보라의 첫 솔로 앨범[45] 첫 컴필레이션 앨범[46] 데이빗 브라이언의 첫번째 솔로 앨범[47] 존 본 조비의 두번째 솔로 앨범[48] 리치 샘보라의 두번째 솔로 앨범[49] 데이빗 브라이언의 두번째 솔로 앨범[50] 첫 라이브 앨범[51] 어쿠스틱 앨범[52] 1억장 판매 기념으로 나온 미공개+데모 박스셋[53] 두번째 컴필레이션[54] 리치 샘보라의 세번째 솔로 앨범[55] 두번째 라이브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