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가세스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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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아 제국 38대 샤한샤
𐭅𐭋𐭂𐭔 | 볼로가세스 4세
파일:볼로가세스 4세.jpg
제호
한국어
볼로가세스 4세
파르티아어
𐭅𐭋𐭂𐭔
영어
Vologases IV
존호
샤한샤
생몰 년도
? ~ 191년
재위 기간
147년~191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파르티아의 제38대 샤한샤.

연이은 내란으로 혼란에 빠진 제국을 수습하고 카라케네를 정벌하는 등 군사적으로 유능한 모습을 보였으나, 아르메니아를 놓고 로마와 전쟁을 벌이다 큰 타격을 입었다.


2. 생애[편집]


미트리다테스 5세의 아들로, 147년경 아버지를 폐위시킨 볼로가세스 3세가 사망할 무렵 세력을 일으켜, 오랫동안 서방과 동방으로 나뉘었던 파르티아를 통합하고 단독 샤한샤로 등극했다. 그러나 볼로가세스 4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과정에 관해서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150/151년 카라케네의 지배자 메르다테스를 격파하고, 오라바제스 2세를 카라케네의 새로운 왕으로 삼았다. 이때 카라케네의 수호신 헤라클레스의 청동상을 탈취한 뒤 셀레우키아의 아폴로 신전에 옮겼다. 또한 볼로가세스 4세가 카라케네를 정복한 과정을 담은 그리스어와 파르티아어의 이중언어 비문이 조각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 462년(서기 151년), 미트리다테스의 아들, 왕중왕 아르사케스 볼로가세스가 전 통치자 파코로스의 아들인 미트리다테스 왕을 상대로 메세네(카라케네의 다른 이름)를 원정했다. 미트리다테스 왕이 메세네에서 쫓겨난 후, 볼로가세스는 전 메세네의 통치자가 되었고, 헤라클레스의 청동상을 아폴론 신의 이 성소에 두었다.


161년, 볼로가세스 4세는 여세를 몰아 아르메니아를 침공하여 소헤모스 왕(1차 144~161, 2차 163~180 재위)을 축출하고 아들 파코로스(161~163 재위)를 아르메니아 왕으로 옹립했다. 이와 동시에 시리아로 별동대를 보내 히스파니아 제8군단 또는 데이오타리아나 제22군단을 섬멸했다. 당시 제위에 막 오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배다른 동생 루키우스 베루스에게 동방 원정군을 맡겼다.(베루스의 파르티아 원정) 이후 충격에서 회복된 동방 로마군은 163년 루키우스의 부관이자 실질적인 지휘관인 스타티우스 프리스쿠스의 지휘하에 아르메니아를 탈환하고, 소헤모스를 왕위에 복귀시켰다.

뒤이어 아비디우스 카시우스가 파르티아 본토로 쳐들어갔고, 164년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메소포타미아를 휩쓸었다. 165년 또는 166년에는 셀레우키아, 크테시폰까지 아비디우스 카시우스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며, 비슷한 시기에 메디아와 아디아베네도 로마 별동대의 공격으로 파괴되었다. 그러나 로마군은 철수 과정에서 전염병에 시달렸다. 이 역병은 제국 전역으로 퍼지면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재위 기간 내내 수많은 인명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안토니누스 역병이라는 명칭으로 일컬어진다.

이때 큰 타격을 입은 파르티아는 14년간 조용히 지내다 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사망한 직후 재차 아르메니아로 쳐들어가 소헤모스를 폐위하고 볼로가세스 4세의 아들 볼로가세스 5세[1]를 왕위에 앉혔다. 로마 제국은 게르만족과 오랜 기간 전쟁을 치르느라 지칠대로 지쳤고, 콤모두스가 또다시 전쟁을 벌이길 원하지 않았기에 파르티아의 이같은 행위를 용인했다. 다만 파르티아는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대부분을 잃었고, 하트라 시가 파르티아의 서쪽 국경이 되었다.

190년 오스로에스 2세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또다시 내란이 발발했으나, 191년 볼로가세스 4세는 이를 미처 제압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아들 볼로가세스 5세가 아르메니아에서 돌아와 샤한샤로 등극한 뒤 오스로에스 2세의 반란을 평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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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르메니아 왕으로는 볼로가세스 2세. 180~191 재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