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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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어린 시절
3. 정계 입문 전
4. 대통령 당선
5. 대통령 재임기


1. 개요[편집]


現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생애에 관해 적은 문서.


2. 어린 시절[편집]


1978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크리비 리흐(Кривий Ріг)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는 소련군 소속으로 2차대전에 참전했었다. 1947년생 전기공학자인 아버지 올렉산드르 젤렌스키는 크리비리흐 경제 연구소에서 사이버 네트워크 및 컴퓨터 하드웨어학과 교수로 근무했으며 그의 어머니인 림마 젤렌스카도 공학자이다. 아버지가 몽골 에르데네트에서 20년간 근무하게 되자 아버지를 따라 몽골에서 4년을 살다가 어머니에게 건강 문제가 생겨 우크라이나로 귀국하였다. 10대 시절에는 역도, 레슬링, 사교댄스를 배우기도 했고 학교 앙상블의 기타리스트로 있기도 했다. 16세 때 이스라엘에서 공부하고자 토플 시험을 보고 자격을 갖추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떠나지 못했다. 이후 키이우 국립경제대학에서 경제학 학사와 법학 석사를 취득했으나 법조인이 되지는 않았다.


3. 정계 입문 전[편집]


코미디언을 꿈꾸었던 그는 17세 때 처음으로 코미디 경연 프로그램으로 TV에 등장했으며, 1997년 코미디 경연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며 주목받는 신예 코미디언이 되었다. 이후 크바르탈 95(Квартал 95) 팀을 만들어 KVN 등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아갔다.

2003년 KVN을 떠나 TV에서 콘서트를 열기 시작했고 아예 동명의 제작사를 설립하여 총괄프로듀서로 활약했다. 중학교 동창이자 제작사에서 작가로 일했던 올레나 키야슈코와 8년 연애끝에 결혼하였다. 2006년에는 우크라이나판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1]

이후 본인이 감독, 제작, 각본, 심지어 주연배우로 참여하는 여러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그리고 영화를 만들어 다방면에서 활동을 이어갔고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러시아, 벨라루스, 몰도바 등에서도 어느정도 이름값을 날리게 되었다.

2015년, 역시 본인의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시트콤 ⟪국민의 일꾼⟫ 에서 역사 교사 출신으로 대통령이 되어 부정부패에 저항하는 청렴한 주인공을 친근한 모습으로 연기했는데 시트콤이 우크라이나 내에서 최대 시청자 수 2,000만명을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국민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 잘 나가는 코미디언이자 배우에 불과했다.


4. 대통령 당선[편집]


인민의 종에서 대통령 역을 맡게 되면서, "혹시 진짜로 대통령이 될 마음은 없나?"는 질문을 수시로 받았다. 이에 본인의 답은 "아니오"에 그쳤고, 대통령 역할이 현실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인민의 종 출연진들이 2018년 3월 동명의 정당을 창당하면서 젤렌스키 후보도 대권주자로 부상하기 시작했으며, 고심 끝에 새해를 하루 앞둔 12월 31일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기득권만을 위한 분위기를 탈피하고 싶다"고 밝히며 대선 도전을 선언한다. 이리하여 일개의 코미디언에 그쳤던 젤렌스키 후보는 단숨에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한다.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 준 드라마 인민의 종을 방영한 채널 ‘1+1(один плюс один)’은 우크라이나의 금융재벌인 이호르 콜로모이스키(Ігор Валерійович Коломойський) 소유의 방송국이다. 콜로모이스키는 포로센코 때문에 이스라엘에 망명 중일 정도로 둘의 사이가 매우 나쁘다. 일개 배우가 뭔 돈으로 전국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었는지 의문이고 그래서 젤렌스키가 콜로모이스키의 배후 조종을 받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이후, 콜로모이스키의 은행 사유화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을 보면 예상과 달리 재벌에게 휘둘리는 정치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계속된 실책으로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아진 상태였기 때문에, 젤렌스키 후보는 거기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피라는 점을 어필하여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다가, 3월 31일 1차 투표에서 30.24%를 얻어 15.95%를 얻은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과 함께 결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당초 어느 정도 접전이 예상되었으나, 2차에서 73.19%를 얻어 24.48%를 얻은 포로셴코를 약 50%p에 가까운 큰 표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2019년 기준 만 41세인 그는 우크라이나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으로 기록되며, 5월 20일 공식 취임하였다.영상. 인민의 종 소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법적으로 대통령의 당적 보유가 금지되어 있으므로 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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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대 우크라이나 대통령 취임식[2]
대통령 취임식에선 본인 집에서 취임식 현장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파격을 보였다. 그리고 취임날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Протягом свого життя я намагався робити все, щоб українці усміхалися. Це була моя місія. Тепер я робитиму все, щоб українці принаймні більше не плакали.

나는 평생 동안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해왔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었다. 이제 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최소한 울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것이다.



5. 대통령 재임기[편집]



5.1. 2019년[편집]


취임 후 곧바로 조기 총선을 실시해 의회를 장악하려던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의회 내 반대 세력 반발이 워낙 커서 조기 총선이 어렵게 되었다. 그러자 취임 직후 의회를 해산하고 내각 총사퇴를 요청했다. 그 후 바로 다음날 2019년 7월 21일에 조기 총선 실시를 명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이에 의원들은 위법이라고 반발하며 헌법재판소에 제소했다. 게다가 대통령 사임을 촉구하는 청원운동과 이에 반대하는 청원운동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조지아 전 대통령이자 오데사 주지사였던 미헤일 사카슈빌리의 우크라이나 국적을 회복시켰다.# 취임 후 첫 정상회담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가지며, 돈바스 전쟁에 대한 문제를 의논했다.# 다음으로 독일을 방문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문제 등을 논의했다.# 전반적으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지향에 맞춘 친서방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편 체르노빌 사고 현장을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종의 원전과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해 연구하고 경고하는 학술 연구 및 관광 지역으로 개발하겠다는 뜻이다.

7월 21일에 열린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인민의 종이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지역별로 봐도 기본 40%가 넘는 상황이다.# 이로써 거대여당 덕분에 국정 동력이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관련해서 최근 문제가 된 우크라이나 통화 스캔들의 장본인이기도 한다. 한동안 이에 대해 노코멘트로 유지하다가 공식적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는 아무 문제 없다고 해명했다.# 이 기자회견이 14시간 동안 진행되어 세계 최장 시간을 세웠다.#

내각에 임명한 사람들이 연예계 시절의 사람들과 관련 있다보니 논란이 있는 편이다.#

취임 당시에 우크라이나 내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러시아 시민 12명을 사면해 포로 교환을 하려고 하였다. #


5.2. 2020년[편집]




2020년 신년사[3]

2020년 1월에 올렉시 혼차루크(Олексій Гончарук) 총리의 뒷담화 파문이 일어난다. 총리가 젤렌스키 대통령이 경제에 대해 문외한 수준이라고 비공개회의에서 뒷담화를 깠던 내용이 녹음되어 SNS에 공개되어 버렸다. 이 때문에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혔으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반려했다.#

우크라이나 국제항공 752편 격추 사건이 격추 사고임을 알고도 구체적인 정황과 증거 확보를 위해 발표를 늦추었는데 유연한 대처를 했다며 지지를 받았다.

2월. 러시아에 병합된 크림 반도에서 자국으로 이주하는 타타르인 등의 주민들을 위한 소도시를 반도에 인접한 헤르손주(州)에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6월 9일 본인이 코로나-19에 걸려 병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의 공포를 달래고 싶다는 황당발언을 하였다.# 그런데 웃기게도 정확히 5개월 뒤에 확진판정을 받았고 위독한 상태로 입원까지 갔다가 결국 완치에 성공했다.

7월 26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나누었으며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의 논의 방안에 대하여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간의 전쟁이 터진 지 약 한달 쯤 된 시점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아제르바이잔 간 P-18 레이더 공급 계약(우크라이나가 아제르바이잔한테 수출하는 것)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 조치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양국에 통보됐다고 한다. 이 조치는 전쟁이 시작된 지 약 한 달 정도 된 시점에 나왔다고 한다. 기사.


5.3. 2021년[편집]


4월에 국경 지대에 러시아군 배치가 늘어나고 있다며, 서방에 군사적 지원을 촉구했다.# 6월에는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최대한 빨리 받아주길 희망한다는 발언을 했다.#

2021년 7월 1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통화에서 중국-우크라이나의 양국간의 경제•비자 등에 관하여 협력방안을 논의 하였다.#

2021년 8월에는 폴란드의 안제이 두다 대통령, 스웨덴의 스테판 뢰벤 총리 등 44개국 대표들을 초청해 크림반도 반환을 위해 '크림 플랫폼'이라는 반러 연대를 출범시켰다.#

2021년 10월 폭로된 판도라 페이퍼스에서,다른 국가원수 들과 함께 탈세 의혹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

크림 위기돈바스 전쟁 때 반인권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을 기소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안 2689에 서명하는 데 시간을 끌어 유족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해당 법안은 7년간의 진통 끝에 2021년 5월에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 젤렌스키 대통령은 15일 내로 서명을 하거나 거부해야 하는데, 그 6배인 3개월이 지난 8월까지 서명을 하지 않아서 유가족들이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 #[4] 2021년 11월까지 젤렌스키는 해당 법안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명하지 않았더라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투자 등을 받았을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 12월에도 서명하지 않아서 인권단체가 촉구 서한을 올리기도 했다. #

2021년 12월 러시아가 17만 5천 대군을 동원해 2022년 초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지자 서방과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뉴욕타임즈에서 젤렌스키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냈다. 군과 정부, 정보부의 요직에 비전문가(코미디언, 배우, 연출가, 극작가들)인 젤렌스키 측근들이 잔뜩 있어서 국가대사를 망치고 있다는 요지다.#[5]


5.4. 2022년[편집]



5.4.1. 1월[편집]


1월 1일, 신년사에서 돈바스 전쟁을 끝내는 것이 주요 목표라고 밝혔다.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전쟁이 발발하였고, 전쟁 중 보여준 모습으로 인해 지지율이 90%를 돌파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그리고 독일 최대 미디어그룹인 악셀슈프링어그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를 2022년 악셀슈피링어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1월말 미국과 영국, 독일, 호주, 캐나다, 일본이 우크라이나 주재 외교관 일부와 그 가족을 철수하자, 젤렌스키는 1월 28일 기자회견을 갖고, 외국 사절의 철수가 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며 외교관 철수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외교관들은 선장과 같으며, 그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마지막으로 떠나야 한다”며 “우크라이나는 타이타닉호가 아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또 "서방에서 내일 당장 전쟁이 날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우리 경제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를 보전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 것은 감사한다"면서도 "러시아에 선제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접경 지대에 13만여 명의 러시아군이 집결된 상황에 대해서도 “작년 봄에 비슷한 규모의 병력이 배치됐을 때와 비교해 더 큰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 #


5.4.2. 2월[편집]


2월 19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MSC)에서 러시아와의 최전방에서 맞서온 우크라이나의 희생, 유럽과 나토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하고 유럽 안보 구조 재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 전문해석[6]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대한 서방의 대응이 부족하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즉각적인 제재를 촉구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인사들이 매일같이 침공 가능성을 경고하는 것과 관련, 젤린스키 대통령은 이러한 행위가 외국인 투자와 우크라이나 환율을 불안하게 하고 자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고 비판하였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나토) 가입에 대한 러시아의 반대와 관련해서는 나토 가입 의사를 재확인하면서 서방이 주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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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TN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파트너들의 지지가 있든 없든 우리는 조국을 지킬 것"이라면서 "(무기·장비 등) 지원에 대해 감사하지만, 이는 우크라이나가 독촉하거나 구걸해야 하는 기부가 아님을 모두가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우크라이나가 머리를 조아려야 할 게 아니다"라면서 "우크라이나가 (크림 반도 합병 이후) 8년간 방패막이 역할을 해온 유럽과 국제 안보를 위한 여러분의 기여"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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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일 대국민 담화에서의 모습

2월 22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루간스크 인민공화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에 대한 독립을 승인하자 긴급 안보회의를 소집했다. 동시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고,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와도 대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월 22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러시아의 행동은 우크라이나의 온전성과 주권에 대한 침해"라면서 "러시아가 어떻게 결정하든 우크라이나의 국경선은 현재에서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러시아와의 국교 단절을 검토 중이라고도 밝혔고, 예비군 징집령을 내렸다.


러시아가 침공을 개시하기 약 6시간 전인 2월 24일 자정, 젤렌스키 대통령은 직접 러시아 국민들을 향해 러시아어로 평화를 호소하는 연설을 했다. 젤렌스키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통화를 시도했으나 침묵만이 돌아왔다고 밝힌 후, 러시아의 침공은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인들은 평화를 원한다", “러시아 국민 여러분들이 평화를 호소해야한다”고 호소했다. #

5.4.3.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편집]



5.4.3.1. 2월[편집]

2월 24일 새벽 6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우크라이나 전역에 러시아의 미사일 폭격이 동시다발로 이뤄졌으며, 가하기 시작했으며, 러시아 지상군은 벨라루스, 돈바스, 크름반도 등 우크라이나의 3면에서 국경을 넘었다.# 집권 이래 젤렌스키 개인을 넘어 21세기 우크라이나 최대의 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완전 점령할 경우 인접국인 폴란드, 헝가리 등도 전쟁에 휘말릴 수 있어 2차 대전 이후 유럽의 최대 위기, 나아가 세계 최대 위기로 번지게 된다.

2월 24일 개전 직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키이우를 떠나지 않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서방 정상들과 통화한 후 SNS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며 "조금 전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미국은 이미 국제적인 지지를 결집하기 시작했습니다."고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오늘 여러분 각자에게 침착할 것을 당부합니다. 가능하면 집에 머불러주시길 부탁합니다."고 주문했다. 이어 "우리 정부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군대도 제 역할을 잘하고 있습니다. 국방과 안보의 전 분야가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겁 먹지 마십시오. 우리는 모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우리는 강합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이기 때문에 꼭 이길 것입니다."이라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어떤 국민이든 조국을 방어하고자 한다면 싸울 수 있도록 무기 소유와 관련한 규제를 없애 무기를 지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젤렌스키는 러시아와 국교 단절을 선언했다. 또한 러시아군에 대응하기 위해 총동원령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18~60세의 남성 출국이 금지되었다. 60세까지의 징병을 통과시키고, 곧이어 연령제한 없는 징병으로 변경하면서 총력전 상황으로 돌입하게 되었다. # #

전쟁에서 패배 시 타국으로의 망명, 혹은 강제 퇴임 당하거나, 최악의 경우 종전 혹은 전쟁 도중에 러시아측에 의해 사망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7]

개전 후 러시아의 치밀한 사이버 심리전과 프로파간다 전술이 펼쳐지며, 젤렌스키가 도주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외신들이 이를 보도하기도 했다.


2월 25일 새벽 0시 30분 젤렌스키는 키이우에서, 이후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될 국방색 군용 티셔츠를 입고 면도를 하지 않은 얼굴로 대국민 연설을 했다. 그는 "적은 나를 지목해서 제일의 타겟으로 설정했다. 나에 이어 나의 가족들이 두번째 타겟이다. 러시아는 정부 수반을 전복시킴으로써 우크라이나를 정치적으로 파괴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나는 수도에 남을 것이다. 나의 가족도 또한 우크라이나에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군대와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 말했다. # 하지만 서방 국가들이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우리는 홀로 남져서 국가를 방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움을 주고 있는 모든 국가에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도 "오늘 유럽의 지도자 27명에게 우크라이나가 나토(NATO)에 가입할 수 있는지 여부를 직접 물었다. 모두가 두려워 하며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누가 우리와 함께 싸울 수 있느냐. 내게 그런 국가는 보이지 않는다"며 "그들은 우크라이나를 동맹으로 데려갈 준비가 돼 있지 않다."라고 말하며 서방 국가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촉구했다. 이어 “우크라이나는 어느 때보다 동맹의 도움이 절실하며 대러 제재는 훨씬 강화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러시아는 사람들을 죽이고, 평화로운 도시를 군사 표적으로 바꿔놓고 있다"면서 "이는 더러운 짓이며,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

2월 25일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의 해외 대피 지원을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영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같은 내용을 확인해 주었다. 미 당국은 러시아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최우선 제거 목표로 삼고 있다고 경고했고, 그가 러시아에 생포된다면 양보를 강요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는 뜻을 전했다. 또 미국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지속성을 위해 젤렌스키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도록 권했다. 하지만 젤렌스키는 "내게 필요한 것은 탈 것이 아니라 탄약이다."라면서 이를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 # #




좋은 저녁입니다, 여러분.

교섭단체 대표(다비드 아라하미야)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여기에 있습니다.

시미할 총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포돌랴크 고문(대통령 자문기구 소속)도 여기에 있습니다.

대통령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군이 여기에 있고 시민들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국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럴 것입니다.

우리의 수호자들에게 영광을! 우리의 영웅들에게 영광을!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2월 25일 고위 관료들과 수도 키이우에서 찍은 영상에서


2월 25일 정부, 군사 고위 관료들과 함께 키이우에서 찍은 영상을 통해 자신이 여전히 키이우에 남아있으며, 우크라이나를 방어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또한 오늘 밤이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8]

러시아가 키이우를 공략하기 전, 러시아의 제안으로 러시아와 평화적 회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회담 장소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입니다.

2월 26일 아침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병사들에게 항복을 명령하고 대피하고 있다는 가짜뉴스[9]를 반박하며 "우리는 아직 여기에 있고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자신이 아직도 키이우에 남아 있음을 인증했다.

현재 전쟁이 났으며 패배 가능성이 꽤 크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국인 우크라이나에 계속 남아 국민들을 독려한다는 점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아슈라프 가니와 대비되어 전 세계인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10] 또 반-러시아 여론이 세계적으로 많다는 점, 젤렌스키 측에서 SNS 등으로 전시와[11] 그 전부터 꾸준히 좋은 이미지를 남겼다는 점도 작용한다.

2월 28일, EU 가입신청서에 서명하고, TV 연설에서 “우리는 특별 절차를 통한 즉각적인 유럽연합 가입 승인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의 목표는 모든 유럽인들과 함께 하는 것이며 특히 중요한 것은 공평한 토대 위에 함께 서는 것”이라며 “이것이 정당할 뿐 아니라 가능한 일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식 요청 이후 체코·폴란드·불가리아 등 동유럽 8개국은 공동 성명을 내어 우크라이나에 즉각 후보국 지위를 부여하고 가입 논의를 시작할 것을 촉구했다.#


5.4.3.2. 3월[편집]


3월 1일, 벨기에 브뤼셀 유럽의회에서 긴급히 열린 EU 특별회의에서 화상 연설을 했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는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땅과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싶다. 저는 그것이 공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EU는 우리와 함께 더 강해질 것이다. 우리는 유럽의 동등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절박함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힘을 증명했고, 최소한 EU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여러분이 우리와 함께라는 것을 증명해달라. 여러분이 우리를 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증명해달라. 여러분이 정말로 유럽인이라는 것을 증명해달라. 그러면 삶은 죽음을 이길 것이며 빛은 어둠을 이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젤렌스키의 호소에 EU 국가의 외교관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3월 1일, 외신을 벙커로 초청하여 CNN, 로이터와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의미있는 협상을 하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폭격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소한 사람들에 대한 포격을 중단한 뒤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NATO 회원국에 러시아 공군을 저지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는 예방적 조치이며 동맹을 러시아와의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또,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회원 가입을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도 "만약, 나토가 러시아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를 가입시킬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동 안전 보장 조치를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만약 우크라이나가 함락된다면, 모든 (러시아) 군대는 나토 회원국 국경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당신들은 지금과 똑같은 질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는 매일 지원이 절박하다. 의논할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공격에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 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버티는 게 아니라, 싸우고 있는 거다. 끝까지 싸울 것"이라면서 "이곳은 우리의 집이며, 우리는 우리의 땅과 가정, 아이들의 미래를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켜내는, 세계를 위한 전쟁입니다.”라고 말했다. # #

3월 1일, 비디오 성명을 통해 러시아가 협상 도중인 전날 하르키우 민간인 거주 지역에 집중 포격을 가한 것을 규탄했다.# "하르키우에 대한 공격은 전쟁 범죄입니다. 이것은 러시아 연방의 국가 테러입니다. 러시아는 테러 국가이며 이것은 명백하고 공식적으로 선언되어야 합니다."하고 말했다. “이런 테러 행위는 우리를 파괴하고, 우리의 저항을 부수려는 것”, “하르키우와 키이우가 현재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목표물”, “수도를 방어해 내는 것이 오늘 우크라이나의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3월 3일, 벙커에서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직접 만나 담판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영토 주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협상할 수 있는 사안들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푸틴과 대화하길 원하는 게 아니다. 나는 푸틴과 대화할 의무가 있을 뿐이고 세계는 푸틴과 얘기해야만 한다. 이 전쟁을 멈추기 위한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18, 19살에 불과한 러시아 군인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러시아 군인들이 자신의 딸 또래임을 상기시키며 "군복을 입은 이들의 결정 때문에 이들은 군복을 입고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러시아가 자국 내 반전 여론이 확산할 것을 우려해 전사자 송환에도 나서지 않는다며 "이건 악몽이다. 그렇게 행동을 계획하는 이들을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잠시 질문을 놓치자, 최근 하루에 세 시간 정도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는 “나도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사람”이라며 두려움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인) 나는 두려워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또 “만약 우크라이나라는 나라가 없어진다면 다음에 표적이 되는 것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그리고 몰도바, 조지아, 폴란드”라면서 “러시아는 베를린 장벽에 도달할 때까지 세력을 계속 확장시킬 것”이라고 말하고, 우크라이나 위기는 유럽 전체의 위기라고 호소하며 군사적인 지원을 강화하도록 국제사회에 요청했다. #

3월 3일, 영국 더 타임스는 전쟁 발발 후 일주일 동안 최소 3차례나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푸틴이 크게 신임하는 친러 용병 와그너그룹 암살 시도도 피했다.

3월 5일, 미국 상하원 의원 300명과 화상 통화를 갖고 우크라이나 상공 비행금지 구역 설정을 요청했고, 그것이 불가하다면, 전투기와 드론 등을 지원해달라고 호소했다. 또한 러시아산 석유 수입 금지 등 대러 제재를 강화해달라고 요청했다.# 젤렌스키는 미국 의원들에게 자신이 살아있는 모습을 보는 마지막이 될 수 있다며 전쟁 종식을 위해 군사 지원과 러시아 제재 등 더 많은 일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미국과 NATO가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이번 사태가 유럽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우크라이나인이 겪는 고통을 언급하면서 러시아 국민도 제재의 고통을 느낄 필요가 있다고 한 뒤 비자와 마스터카드 결제망에서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 연방 상하원 의원들과의 화상 통화에서 요청한 사항에 대한 미국의 대처는 즉각적이었다. 비자 카드와 마스터카드는 당일인 3월 5일 러시아에서의 영업 중단을 발표했다. 또 유럽을 방문 중인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우크라이나, 폴란드와 3자 외무회담을 갖고 폴란드 공군이 보유한 소련산 미그-29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 위한 스와프 협의가 시작했다고 보도되었고, 3월 8일 폴란드 외무부는 자국 공군이 보유한 미그-29 28대 전량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3월 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유럽과 독자적으로 러시아산 모든 원유, 가스, 에너지 수입 중단을 발표했다.

3월 5일,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와 화상 통화를 갖고,# 우크라이나에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를 지원해준 데에 감사를 표명했다. 젤렌스키는 “우린 우주 프로젝트에 관해서도 얘기 나눴다”며 “하지만 이에 대해선 전쟁을 치른 후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머스크를 우크라이나에 공식 초청하겠다고 말했다.


3월 7일, 러시아가 포격으로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고 있는 현 상황을 의도적인 살인(Conscious Murder)이라고 규탄했다.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이렇게 죽었습니까? 우리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우리 땅에서 잔혹한 행위를 저지른 모든 사람을 응징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땅에서 우리 국민에게 총격을 가한, 우리 땅에 폭격을 가한, 미사일을 발사한, 그러한 명령을 하고 지시를 내린 모든 악한들을 찾아낼 것입니다. 당신들을 위한 고요한 땅은 무덤을 제외하면 지구상에 없을 것입니다."


3월 7일, 키이우 집무실에서 연설을 했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침략자들에 맞선 우크라이나 남녀 모두가 영웅”이라고 우크라이나 시민에 격려를 보냈다. 그는 “우리는 모두 무기와 군대로, 말과 외교의 힘으로, 우리 각자의 정신력으로 전쟁에 참여 중”이라며 “우리는 모두 이곳에서 방어하고 있으며 우리의 땅, 우리의 도시, 우리의 우크라이나를 절대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민간인 대피를 위해 '인도주의 통로 개설'을 합의했지만, 이를 어기고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개시한 것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평화에 이를 때까지 계속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저는 지금 여기 키이우에,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반코바 거리에 머물고 있습니다. 저는 숨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누구도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의 애국적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한 이곳 키이우에 남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군에 맞선 96명의 우크라이나군 장성들에 국가표창을 수여했다.#

3월 8일, 영국 하원에서 화상 연설을 했다.# 젤렌스키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운 것을 언급한 후,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언급하며 "우리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이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그리고 지금 이 질문에 대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분명 우리는 자유롭게 살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윈스턴 처칠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행한 명연설을 인용하여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의 땅을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숲에서 들판에서, 해안에서[12], 도시와 마을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들판에서 싸울 것입니다. 칼미우스 강과 드네프르 강의 강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문명 국가들인 당신들의 도움을 고대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여 영국 여야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용기 있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얻고 있으며, 영국과 동맹국들이 러시아를 계속 압박하겠다고 말했다.


3월 13일, 직접 군 병원을 찾아 부상 군인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이 병원을 방문한 모습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수호자’들을 찾아 그들의 용기에 감사한다며 훈장을 수여하고, 쾌유를 기원했다”고 밝혔다. 또한 병사와 의료진에게 직접 훈장을 전달했다. 또 러시아군 제1의 표적임에도 불구하고 시내를 활보하며 군 병원을 직접 찾는 모습을 공개했다. 러시아측은 젤렌스키가 키이우에서 탈출했으며, 그의 영상은 키이우의 진짜 관저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찍은 것이라는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3월 15일,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폴란드 부총리,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 야네스 얀샤 슬로베니아 총리 등 3개국 정상이 EU를 대표하여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하여,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을 가지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지지와 폭넓은 지원책을 제시했다.# # 이들 3개국 정상이 키이우로 이동한 경로는 보안상의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으나 기차편을 통해 이동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3월 15일, 캐나다 의회에서 화상 연설을 하였다. 그 동안 제공해준 지원에 깊은 감사를 표했고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거듭 촉구하였다.

2022년 3월 16일 젤렌스키는 미국 하원에서 화상 연설을 진행했다.[13] 미국인이 좋아할 만한 말을 엄선하여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자유를 향한 투쟁이라는 역사를 공유하며 우크라이나가 당신을 위해 싸운다는 점을 철저히 피력하고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방공구역이 안된다면 방공장비를 지원해달라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자유를 위해 싸우는 우크라이나인의 희생을 보여주기 위해 전쟁 전후를 대조시키는 프로파간다 영상을 틀고 마무리는 직접적 감정 호소를 위해 영어로 말했다. 기승전결이 완벽하고 어느 포인트를 노려야 감정을 터트릴 수 있는지 이해하고 있는 연설로 미국 정치인만이 아니라 미국 국민들도 타겟으로 삼은 연설이었다. 정치인만 대상이었다면 외교수사 정치수사를 갖다 붙이면서 얼마든지 늘어질 수 있었는데 단어의 평이성, 공감폭, 길이, 영상 사용 등을 보면 집중도가 떨어지는 일반 대중이 대상으로 보이는 것이 분명하고, 딱 SNS에 영상 공유되기 좋은 시간 구성을 차용했다.

영국 의회 연설에서 윈스턴 처칠의 그 유명한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연설을 인용하여 공감대를 이끌어낸 것처럼, 이번에도 미국인에게 익숙하며 감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역사적 사실과 연설을 인용했다. 진주만을 기억하라, 9.11 테러와 같은 일이 우리에게는 지난 3주간 매일 일어났다는 말을 통해 위기의식을 고취시키고 이 두 사건이 하늘로부터의 공격을 통해 일어난 사실을 인용해 방공 체계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마틴 루터 킹의 그 유명한 I have a dream 문구를 인용하면서 I have a need라고 우크라이나의 절박함을 피력하고, 윈스턴 처칠의 Finest Hour 연설에서 Darkest Hour라는 표현을 빌려와[14] 지금이 가장 암울한 순간이지만 극복할 수 있음을 피력하며, 그 다음 러시아의 전쟁 기계[15]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아이젠하워오버로드 작전 연설 또한 인용하며 러시아군을 몰아내겠다는 의지 또한 보였다. 이후 전쟁의 야욕으로부터 유럽국을 지킬 수 있는 공동체의 설립을 주장한 후, 어린 아이들까지 폭격하여 사살하는 러시아군의 만행[16]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튼 뒤 영어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직접 미국이 세계의 지도자로서 역할을 다하여 평화의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부탁하며 마무리지었다.

즉, 젤렌스키는 연설을 듣는 목표 계층을 미국 국민과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 명확히 설정하고 역사와 성향을 철저히 연구한 뒤 연설 구성을 한 것이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패전 이후 국제적 위상이 실추된 미국을 다시 국제 사회의 지도자로 적극 띄워주며 호소했으며, 그의 의도대로 연설이 끝나자 미국 국회의원들은 전원 기립해 박수를 보냈으며 미국인들의 반응도 감동을 받았다는 반응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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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토폴 시장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젤렌스키 대통령
협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러시아군에게 납치되어 고문당했던 멜리토폴 시장이 포로 교환으로 석방되어 우크라이나로 귀환했는데, 고문을 꽤 심하게 당했는데도 끝까지 굴하지 않은 점을 높게 산 젤렌스키가 훈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3월 24일 ~ 28일까지 치뤄진 대통령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81%라는 압도적인 점이다. 이는 결선투표제 채택한 국가에서 보통 여론조사로 잘 나오지 않는 수치로 2위 포로셴코 5.9%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같은 시기 자당 인민의 종도 52.4%가 나왔다는 것에서 이미 일당 우위 국가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5.4.3.3. 4월[편집]



러시아군이 부차에서 철수한 뒤, 2022년 4월 4일 부차를 방문했다. 고문당하고 강간당해 잔인하게 훼손된 민간인 시체들이 도시 곳곳에 즐비한 모습을 보며 그 어느 때보다도 격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해당 사태를 제노사이드, 집단 학살로 규정했으며 러시아군이 저지른 잔혹행위의 정도를 알게 되면서 러시아와의 협상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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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현장을 직접 둘러보러 왔던 젤렌스키의 굳은 표정이 찍혀 화제가 되었다. 안 그래도 전쟁이 시작된 이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초췌해졌는데, 부차 학살이 알려진 후 단 이틀만에 폭삭 나이를 먹은 모습을 보이면서[17] 문자 그대로 경악과 분노, 원통함이 뒤섞인 참담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차 학살의 현장이 정말 참혹하기 그지 없었기 때문이다.[18]

이로 인해 평정심을 많이 잃었는지, 과거 자국의 NATO 가입을 반대했던 앙겔라 메르켈 前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前 프랑스 대통령을 초청해 이 참상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이들에게 품은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간 서방 세계에 원조를 요청하면서 더 적극적인 원조를 요구하긴 했으나, 서방 세계에 대한 립서비스와 감사함을 늘 표현해왔기에 이러한 발언은 이번 사태가 젤렌스키에게 얼마나 큰 좌절감과 충격으로 다가왔는지를 알려준 셈이다.[19]

4월 5일에는 UN 안전보장이사회 연설에서 학살를 일으키고 안보를 위협하는 러시아가 안보리의 상임이사로 남아있는 것이 모순이라고 비판하며 UN에 대책을 마련하고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부차 학살의 참혹함을 직접 목격해서인지, 예전과는 달리 상당히 강경한 어조로 발언했다.

4월 6일에는 아일랜드 의회(상원, 하원 합석)에서 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인해 농사를 짓지 못하고 항구가 봉쇄되어 식량을 수출하지 못해서 발생하고 있는 식량 위기가 곧 세계의 식량 위기임을 강조하고[20], 우크라이나의 난민을 받아준 것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강경한 어조로 아직 완전한 반러 입장을 표하지 않은 아일랜드에 더 확고히 러시아를 반대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줄 것을 강조했다. (#)

4월 9일에는 미국 CBS의 60 Minutes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가졌다. 위의 사진이 찍혔을 때 느낀 감정은 학살 명령을 내린 사람들에 대한 분노였고, 이후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격앙된 어조로 이야기한 것도 국민들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사소한 국가간 사정 때문에 조치를 취하는 것에 주저하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핵전쟁의 위협 때문에 서방 국가에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요청할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고, 그 대신 추가적인 공세 병기에 대한 지원을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EU 집행위원장으로부터 질문지를 건네받는 모습
4월 10일 우크라이나 EU 가입 절차가 시작되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직접 키이우를 방문해 EU 가입 절차에 쓰이는 '집행위원회 질문지'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건냈다.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사회 제도나 경제 구조 등이 EU의 평가 기준에 부합하는지 수천개에 달하는 '질문지'에 답해야 하며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를 신속하게 답변을 완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질문지를 건네면서 평소처럼 여러 해가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긴밀히 협력한다면 몇 주 안에 결과를 볼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다른 국가에 경우 EU 가입을 진행하는데 최소 수년이 걸린 것을 생각해 보면 이번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절차는 유례없이 빠르다.

EU 회원국들이 강력히 반러시아 전선을 형성하는 만큼, 그리고 EU 집행위원장이 EU 가입에 매우 긍정적인 답변을 한 만큼,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은 무난하게 승인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유럽 정상들이 직접 키이우를 방문해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드러내고 있다. 10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직접 키이우를 방문하여 젤렌스키와 함께 키이우를 둘러보며 키이우 시민들과 대화의 하기도 하고, 기자회견 자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사자의 용기를 보여주었다고 발언하며 120대의 장갑차와 새로운 대함 미사일 시스템을 포함한 새로운 군사지원 및 우크라이나에 대한 세계은행의 대출보증을 최대 10억 달러까지 끌어올리는 등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 체코와 폴란드, 슬로베니아 등 동유럽 정상들의 방문에 이어 9일 카를 네함머 오스트라이 총리가 키이우를 방문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요구한대로 NATO 가입만 하지 않을 뿐, EU가입 신청을 시작으로 미국 및 각 유럽국가들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시작하고 있으며, 이는 아직 러시아의 영향력을 받는 다른 국가들에게도 큰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부차 학살 이후 서방 세계의 우크라이나 지지와 지원이 끊이지 않는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승리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긍정적으로 점쳐지고 있다.

한국시간 2022년 4월 11일 오후 5시, 볼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연설이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진행되었다. 연설 전문(한국어 보도)[21] 연설 원문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의 공식 영어 번역 국회방송 중계

우크라이나어 동시통역이 가능한 전문 인력이 없는지[22] 우크라이나어가 모국어인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가 통역을 맡았으며, 빔프로젝터 화면 두개를 띄운 상태로 약 15분 간 이뤄졌다.

파일:우크라이나대통령_국회화상연설.png

비록 화상연설이라고는 하나 어느 정도 의례를 갖춘 환경에서 연설을 중계했던 세계 각국의 의회, 심지어는 대중 영화제와도 다소 비교되는 모습이다. 심지어 국회의원 참석수도 아주 가관이었는데, 영국과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는 만석이 될 정도로 의원 대다수가 참석할 정도였으나 우리나라는 좌석의 절반을 채 못 채웠으며 그마저도 단 40명 밖에 참석하지 않았고, 심지어 몇몇은 경청하기는 커녕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연설 이후 고려인마을이 지역구에 있는 이용빈 (광주광역시 광산갑) 민주당 의원이 고려인 난민 지원이 필요하다는 연설을 할 때 단체로 나가버리는 등 나라망신을 제대로 일으켰다.#[23] 자세한 것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국회 연설 홀대 논란 참조

국회 및 한국 국민에 대한 인사 후 처음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 실태, 러시아군의 전장 약탈 행태[24]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정복으로 자신들의 독립을 무너트리고, 국가를 분열시키고, 유럽과 아시아로 이런 행태를 넓히고자 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정복지에서 일삼는 경제기반 파괴와 민족말살 정책 같은 행위를 거론하며 마리우폴의 상황이 가장 끔찍하다고 하였다.

신사 숙녀 여러분!

한국의 여러분!

이러한 모습은 20세기에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여러분은 기억합니다. 여러분은 당신의 땅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1950년대에 당신의 자유를 짓부수고자 한 자들이 공격한 때를 기억합니다.

그들은 부수고, 죽였습니다. 그들이 성공했다면 여러분의 정체성에 무엇을 남겼겠습니까? 끔찍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견뎌내었고, 세계는 여러분을 도왔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도움을 원합니다.

그 다음에는 스스로 전쟁을 멈출 수 없는 러시아에는 전쟁을 멈출 압력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석유를 비롯한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을 제한시키고 러시아 은행을 국제금융체계에서 고립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한국이 갖고 있는 대체불가능한 무기로 장갑차, 대공 무기, 대전차화기, 대함 무기[25]를 언급했다. 모든 나라는 독립을 원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음을 강조하며 다시 한번 지원을 요청한 뒤 연설 말미에 포위당한 마리우폴의 상황을 취재한 영상을 공개하였다.

영상에는 아파트에 직사 사격을 가하는 러시아군 전차의 모습이나 공습에 희생당한 것으로 보이는 사망한 아동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겼으며, 영상이 종료된 후 젤렌스키 대통령의 마무리 인사를 통역해야 할 통역사가 울먹이는 목소리가 중계에 그대로 담겼다.

한편 이스라엘이 중재자를 자처하며 러시아 제재에 가담하는 걸 거부하자 우크라이나는 이를 비판했는데,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에게 군사 지원을 요청하면서 우크라이나는 같은 처지에 놓인 팔레스타인은 나 몰라라 한다고 독설을 퍼부었으며, 남아공도 세계가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이중적이라고 비판하고, 아일랜드 의원 리처드 보이드 바렛 역시 공감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한편, 4월 22일에 올해의 '케네디 용기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4월 23일에 독립 광장[26] 지하철 역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가디언의 원본 동영상)
  • 28분 35초: CGTN이 "미국과 NATO 측으로부터 무기와 군사 지원을 받으면 크렘린과의 평화 협상이 어려워지지 않겠느냐"고 질문하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무기 지원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은 알 바 아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전쟁 초반부터 병력이 전차를 전장에 두고 가는 형식으로 우리에게 무기 지원을 해주었고, 그 점에 대해서 감사하다"고 답변했다.
  • 1시간 18분: 젤렌스키 대통령은 23일 당일 오데사에 감행된 미사일 공격으로 인해 8명이 사망하고 그 중에는 고작 3개월된 아기도 있었다면서 러시아를 개자식(Bastards), 아무런 인륜적, 기독교적 가치도 지키지 않는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비판했다.#


5.4.3.4. 5월[편집]

5월 15일에 우크라이나 국토방위군 제127여단 227대대 소속 장병들이 하르키우 방면에서 러시아와의 국경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하자, 오랜만에 웃음을 지으며 장병들의 공로를 치하했다.

5월 18일에는 칸 영화제에서 화상 연설을 하였다. 찰리 채플린을 언급하면서 위대한 독재자를 통해 독재자에 반대하고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영화계의 대세가 옮겨간 것에 비유하여, 현재의 영화계도 현실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소리와 영상을 담아줄 것을 요청했다.

5월 23일. 다보스포럼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에 대한 최대한의 제재를 촉구했다.#


5.4.3.5. 6월[편집]




6월 3일에 전쟁 발발 100일째를 맞이하며 2월 25일 밤에 찍었던 영상의 구도를 그대로 따와 각료들과 인증 동영상을 올렸다. 해당 영상을 낮에 촬영함으로써 우크라이나군에게 승산과 희망이 있음을 상징적으로 알리고 있다. 실제로 당시까지만 해도 수도 키이우까지 공격당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격을 밀어낸 끝에 현재 전쟁은 돈바스에서 벌어지고 있다.

8일. 워렌 버핏의 아들 하워드 버핏을 만나 러시아와 교전 중인 자국의 재건 방안을 논의했다.#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지도자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27일. G7 정상회의에서 화상으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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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2] 목에 매고 있는 목걸이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취임식 선서마다 목에 거는 것이다.[3] 한국어 번역[4] 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당시 러시아와 크림 반도 등과 관련된 협상을 앞두고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는 법안을 부담스러워 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민스크 협정 6조에서 도네츠크나 루간스크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사면을 보장하는 법률을 제정하라고 기술하고 있는 점도 우크라이나의 유족들을 우려케했다.[5] 하지만 뉴욕타임즈가 깠던 이 비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침공했을 전문 정치가들과 달리 도망가지 않고 결사항전을 하고 있다.국민의 일꾼에서 처럼 친러 세력이나 올리가르히와 연결된 부패 정치가들을 제외하려고 보니 답이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만약 기존 정치가, 군인들을 그대로 두었으면 러시아의 침공 초기 또는 침공 직전에 친러 쿠데타에 의해 실각되었거나 심한 경우 이들과 동조하는 푸틴의 용병집단 바그너 그룹에 의해 1979년 아프가니스탄의 아민 대통령처럼 암살당했을 확률이 높았다고 한다. 뉴욕타임즈키신저처럼 오히려 우크라이나를 한반도처럼 서부의 우크라이나 민주정부와 동부의 러시아 괴뢰정권로 분할하는 것을 지지하는 쪽이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기존 정치꾼들을 몰아내고 비전문가로 채운 것이 오히려 신의 한 수 였다.[6] 다만 번역기를 돌렸으므로 번역 질은 좋지 않다.[7] 하지만 러시아와 구 소련 역시 잔혹한 스탈린 시절에도 체포된 에스토니아 대통령 콘스탄틴 패츠라트비아 대통령 카를리스 울마니스를 직접 죽이지는 않았고, 스탈린 사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났던 프라하의 봄으로 실각했던 체코의 전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알렉산데르 둡체크도 죽이지 않았다. 다만 불가리아의 전 총리이었던 보그단 필로프와 헝가리 전 총리인 너지 임레제2차 세계대전, 헝가리 의거 당시 체포되어 제2차 세계대전과 헝가리 의거가 소련군의 승전과 진압으로 끝난 뒤인 1945년과 1958년 소련의 지시를 받은 불가리아 공산당헝가리 인민 공화국 정권에 의해 사형된 바 있으며, 하피줄라 아민 전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대통령 역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소련군에게 사살당했다. 조지아의 전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사카슈빌리는 남오세티야 전쟁으로 러시아를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임을 당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도 조지아 국민들이 반러 성향이 상당히 강한 탓에 까딱하면 제 2의 아프가니스탄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아 살려둔 것이었다. 만약 젤렌스키가 키이우 전투에서 죽거나 러시아군이 젤렌스키를 생포 후 살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푸틴이 이번 전쟁에서 둘 수 있는 최악의 자충수가 될 것이다. 그럴 경우 젤렌스키는 순국선열이 되고, 우크라이나 민중이 분기탱천해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이 우크라이나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후술할 '휴전 협상 언급'도 분명히 이런 이유일 것이다.[8] 반면 여러 기성 정치인이나 기업의 CEO들은 일찌감치 우크라이나에서 도주한 상황이다.# 물론 기성 정치인 중에서도 아르세니 야체뉴크 전 수상(유로마이단 혁명으로 야누코비치 정권이 무너지고 수립된 임시정부의 총리를 맡았다.)같이 우크라이나에 남아 러시아와 싸운 사람도 많다. 일반화하기는 곤란하다.[9] 출처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러시아발로 추정되고 있다.[10] 특히 제대로 된 정규군이 아닌 반군집단에 불과한 탈레반에게 항복하고 도주한 가니와 달리, 젤렌스키는 세계 2위 군사강국인 러시아에 결연히 맞서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대조된다.[11] SNS로 현재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특히 저 "아직 키이우에 남아 있다"는 우크라이나와 세계 여론에 엄청난 효과를 만들었다는 평.[12] 처칠의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연설에서 따온 것임을 이 부분으로 강조하고 있다.[13] 가디언의 원어 연설 및 자막 동영상, CNN의 통역사 통역 전문 및 각주, 한국어 번역 동영상(성인인증 필요)[14] 미 하원 통역: "darkest time"[15] 미 하원 통역: "military machine"[16] 미국인들은 아이들은 무조건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심지어 어지간한 범죄자들도 애들은 안 건드린다. 당연히 이 또한 역지사지를 이끌어내려는 의도다.[17] 전쟁 이후로도 한동안은 얼굴에 피로함이 가득 묻어나고, 면도를 못 해서 수염이 늘어난 걸 빼면 그럭저럭 실제 나이대에 맞는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차 학살이 알려지고 이틀 만에 언론에 찍힌 모습을 보면 최소 10년은 더 늙은 모습이다.[18] 젤렌스키가 부차 학살 현장에 도착해을때는 미처 수습하지 못한 시민들의 시신들이 처참하게 널부러져 있었다.[19] 혹은 그동안 묵혀오던 경멸감이 마침내 터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전쟁 직전과 초기에 젤렌스키는 여러 유럽 국가들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러시아와의 충돌을 두려워한 각 나라는 지원에 미지근한 태도를 일관했고, 심지어 주독일 우크라이나 대사는 "며칠 뒤에 (러시아의 괴뢰인) 새로운 우크라이나 정부가 설립되어서 새로운 대사가 올텐데 너랑 얘기해서 뭐하냐"라는 모욕까지 들었다. 서방 국가들의 지원 하나하나가 절실했던 젤렌스키는 이런 모욕을 듣고도 일단은 참고 다른 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립서비스를 했지만, 부차 학살이 터지면서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모양.[20] BBC에서는 아일랜드 대기근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말이 맞다면, 사람이 워낙 많이 죽은 대참사였다 보니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걸 젤렌스키가 꺼렸던 듯. 마침 우크라이나도 비슷한 역사가 있다.[21] 번역이 급하게 되어 뜻이 통하도록 의역을 위주로 번역되었다.[22] 한국에서 우크라이나어는 특수외국어로, 많은 사람이 배우는 언어가 아니다. 더구나 통역은 양쪽 언어를 단순히 할 줄 아는 수준이 아니라 매우 능통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23] 지방선거 직전이라는 변명도 못하는게 프랑스에서는 대선 직전인데도 좌석이 꽉꽉 찼다.[24] 정확히는 이 난장판 속에서도 각종 가전기기들을 탐하고, 노트북, 태블릿을 숨기겠다고 방탄조끼에서 방탄판을 꺼내고 이걸 대신 넣는 짓거리들을 '아시다시피(You know/Ви знаєте)'라고 언급하였다. 인터넷 매체로 이미 보았다고 생각했거나 소설 꺼삐딴 리에서도 묘사되었듯 해방 후 한반도 북부에 진군한 소련군들의 만행을 남한 사람들도 알 것이라고 생각하고 쓴 듯 보인다.[25] 실제로 이 연설이 있기 전 대공무기체계 지원 요청이 있었지만 한국 정부가 ‘살상무기 지원 불가' 방침을 거듭 밝히고 거절했다. 대신 인도적 지원은 이루어지고 있다. ## 젤렌스키 대통령 본인도 무기 공급에 대한 '평범한 규칙(usual rules/звичайні правила)'이 재고되어야 한다며 연설에서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인정했다.[26] 유로마이단 혁명의 중심이 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