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r2021030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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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다민족국
Estado Plurinacional de Bolivia
Buliwya Mamallaqta

파일:볼리비아 국기.svg
파일:볼리비아 국장.svg
국기
파일:볼리비아 위팔라.svg
공동국기[1]
국장
La Unión es la Fuerza
통합이 힘을 만든다
국가 정보
국호
스페인어: Estado Plurinacional de Bolivia
케추아어: Buliwya Mamallaqta
아이마라어: Wuliwya Suyu
과라니어: Tetã Hetãvoregua Volívia
면적
1,098,581km²
인구
11,832,936명(2021년) | 세계 80위
수도
수크레(헌법상, 사법)
라파스(행정·입법)
정치 체제
대통령제
(5년 중임제, 연임은 불가, 3번 중임은 가능[2]하다)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94위(2020년)[혼합된체제]
대통령
루이스 아르세
(Luis Arce)
부통령
다비드 초케우앙카
(David Choquehuanca)
민족
아메리카 원주민 55%, 메스티소 30%, 백인 15%
종교
기독교 90%(가톨릭 73%, 개신교 17%) 등(2013)
공용어
스페인어[3], 케추아어, 아이마라어, 과라니어 외 37개 언어
국가
볼리비아 국가 (스페인어: Himno Nacional de Bolivia)
GDP
명목 $389억(2020)
1인당 GDP
명목 $3,823(2019)
국부
$780억 / 세계 89위(2019년)
화폐단위
볼리비아노
무비자 입국
한국→볼리비아 : 도착비자[4]
볼리비아→한국 : 무비자 불가
여행경보
특별여행주의보 : 태양의 섬을 제외한 전 지역[코로나19]
철수권고 : 태양의 섬[5]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99px-Bolivia_on_the_globe_%28South_America_centered%29.svg.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l-map.png





한국어: 볼리비아 다민족국
스페인어: Estado Plurinacional de Bolivia
케추아어: Buliwya Mamallaqta
아이마라어: Wuliwya Suyu
과라니어: Tetã Hetãvoregua Volívia
영어: Plurinational State of Bolivia

1. 개요
2. 역사
3. 지리
3.1. 기후
4. 정치
5. 경제
6. 사회
6.1. 법
6.2. 언어
6.3. 교통
7. 문화
7.1. 음식
7.2. 스포츠
7.3. 축제
8. 국방
9. 외교
10. 여행
10.1. 주요 관광지
11. 대중매체



1. 개요[편집]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내륙국[6]. 원래는 내륙국이 아니었고 칠레 방면으로 해안 영토(안토파가스타 주)가 있었는데 전쟁에서 패배해 내륙국이 되었다. 그 외에도 아르헨티나에게 1차례 영토(1893년)를 뜯기고, 브라질에게 2차례(1867년, 1903년), 또 시비 걸었다가 파라과이에게 차코 전쟁에서 져 1차례 (1938년) 영토를 뜯기면서 영토가 꽤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프랑스우크라이나, 터키 등보다 큰 109만 ㎢의 영토(한반도의 5배가량)를 자랑한다.

국명을 '볼리비아'로 정하기 전까지 이 지역은 높은 페루라는 뜻인 '알토 페루'라고 불렸다. 스페인의 통치하에서 페루 부왕령과 리오 데 라 플라타 부왕령(오늘날의 아르헨티나)에 번갈아 속해있었지만 독립 과정에서 이들 국가와 분리되길 원했고, 결국 분리독립에 성공한 후 국명을 독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따 볼리비아로 정했다. 볼리바르는 볼리비아의 1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지만 그는 곧 그의 대통령직을 수크레에게 넘기고 근거지인 그란 콜롬비아로 돌아갔다.

실질적인 수도라파스(La Paz)이나 헌법상의 수도는 수크레(Sucre)[7]이며 가장 큰 도시는 저지대에 위치한 산타크루스다. 다만 엘 알토(El Alto)[8] 같은 위성도시를 합하면 라파스의 인구가 산타크루스보다 많다.

체 게바라가 최후를 맞이한 나라로도 유명하다.


2. 역사[편집]


스페인의 지배를 받기 이전에 장구한 문명과 국가들이 있었고 잉카 제국이 세를 떨치기 이전에는 아이마라족들이 주도하는 왕국이 세를 잡았지만 15세기잉카 제국이 대대적으로 확장을 거두면서 동부 정글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 잉카 제국의 영향권에 들어갔고. 잉카 제국이 몰락한 이래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원주민에 대한 극심한 착취로 인해 인구가 급감하는 아픔도 겪었다. 독립 이후에는 남아메리카동네북이었다.

시몬 볼리바르가 누에바 그라나다를 독립시켜 그란 콜롬비아를 세울 때 페루와 볼리비아[9]도 볼리바르의 부하 장군인 수크레가 해방시켰고, 알토페루는 볼리바르를 기념하며 국호를 볼리비아로 정했다. 페루와 볼리비아는 그란 콜롬비아에 가입하지 않고 따로 독립했다가, 1836년에 페루와 통합하여 페루-볼리비아 연합[10]을 형성해서 칠레, 아르헨티나와 전쟁을 벌였다가 패배해 연합은 와해되었다.

그리고 1879년에 칠레와 벌인 태평양 전쟁에서 안토파가스타 항 등 태평양 해안 지대의 영토를 칠레에게 뭉텅이로 빼앗기고 바다 없는 내륙국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볼리비아는 내륙국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칠레가 전쟁으로 빼앗아 간 칠레령 안토파가스타 주 등 태평양 해안 영토와 항구도시들의 영유권을 돌려 내놓으라며 칠레와의 외교분쟁도 불사하고 있고, 해안 영토를 상실한 이후에도 해군을 폐지하지 않고 운영하고 있는데 볼리비아 해군은 티티카카 호수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칠레로부터 이 지역을 되찾아 바다로 나가기 위한 볼리비아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볼리비아 땅이었다가 볼리비아가 칠레와의 전쟁에서 패전해 칠레 땅이 된 이 지역의 주민들은 칠레 본국에서 이주해온 칠레인 이주민의 후손들이 대부분이라서 이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지역 주민들 상당수는 칠레 잔류를 주장, 볼리비아로의 재귀속을 결사 반대하고 있다.[11]

그리고 1893년과 1903년에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게 후후이 주와 살타 주, 아크레 주를 반강제적으로 빼앗겼고, 1932년에 파라과이와 차코 지역을 둘러싼 영토분쟁 갈등으로 차코 전쟁이 벌어졌는데 여기서 볼리비아는 10만 명에 육박하는 사상자를 낸 끝에 패하고 말았다. 그 결과 그란 차코 지방을 파라과이에게 빼앗겼다. 참고로 이 당시 파라과이는 1864년 삼국동맹전쟁에서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과의 싸움에서 철저히 패전해 나라가 멸망 일보직전까지 갔다가 어느 정도 회복한 남미의 약소국이었다.


3. 지리[편집]


북쪽과 동북쪽의 브라질, 동남쪽의 파라과이, 남쪽의 아르헨티나, 서쪽의 칠레, 서북쪽의 페루에 둘러싸여 있다.

국토는 크게 서부의 안데스 산맥 지역과 동부의 저지대로 나뉜다. 서부 지역은 위치가 안데스 산맥 중턱에 있다보니 평균 해발고도는 4,000m를 넘는다.[12] 안데스 산맥에서도 가장 넓은 부분[13]을 차지하고 있고, 그 부분에 비교적 넓은 고원이 펼쳐져 있다. 이 고원 지방에 인구의 다수가 거주하고 라파스나 코차밤바 등의 도시가 분포해 있다. 그중에서도 라파스는 해발고도 3,830m에 위치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잡은 수도로 알려져 있다. 이건 티베트라싸보다 높은 해발고도로,[14] 특히 라파스의 근교에 위치한 엘알토는 4,150m에 달한다. 근처의 도시 해발고도도 만만치 않아서, 수크레는 2,830m, 은광으로 유명한 포토시는 4,070m를 찍는다.

이 무지막지한 고도 때문에 FIFA고산병 등 선수들의 건강 문제를 명목으로 해발 2,500m 이상 고지대에서의 국제경기를 금지하는 규정 지침을 개정하자, 볼리비아를 필두로 콜롬비아, 에콰도르 등 안데스 일대 남미 국가들은 몽땅 들고 일어났다. 특히 이 나라의 모랄레스 대통령은 볼리비아 최고봉인 사하마 산(6,542m!) 정상 아래에서 정부 각료들과 축구를 하는 퍼포먼스[15]를 벌여 FIFA를 깠다. 결국 피파도 규정을 철회해 볼리비아에서는 라파스에서 축구 A매치를 열 수 있다. 그리고 생뚱맞긴 하지만 디에고 마라도나도 이 시위에 가담했다. 누구나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축구를 할 자유가 있다고... 맞는 말이기는 한데... 저지대에서 살던 사람들도 볼리비아 같은 곳에서 축구를 하게 되었을 때 고산병 안 걸리도록 충분히 적응하고서 축구를 할 자유가 있다는 거 문제는 마라도나는 이게 자기 무덤을 파버린 짓이었다. 조국의 감독으로 부임해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지역예선에서 볼리비아에 원정갔다가 볼리비아한테 1-6으로 후벼파여 버리고 말았다.

이런 높은 고도 덕분에 볼리비아는 홈 경기[16]에선 브라질이고 아르헨티나우루과이고 뭐고 죄다 발라버리는 위엄을 보여준다(...)[17] 실제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가 볼리비아와 축구 경기를 볼리비아에서 가질 경우 승률은 10%~20%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브라질의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 사상 첫 패배도 바로 1994년 미국 월드컵 때의 볼리비아 원정에서 나왔다.[18]

사실 국토가 고도가 높은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월드컵을 개최하면 반전이 많이 일어날 것 같은 나라이지만 FIFA에서 볼리비아에 개최권을 줄 리가 없다. 고산병을 이용한 환상적인 플레이로 독일이 0-8로 털리고 이탈리아가 1-10으로 털리는 이런 해괴한 현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수들이 고산 적응 문제로 인해 제 경기력을 못 발휘해서 대회의 흥행성도 매우 떨어진다.

이와 같이 볼리비아는 높은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전국적으로 이렇게 높은 것은 아니다. 국토의 동쪽 반 이상(전체 국토의 약 2/3 정도)은 아마존 강 수계에 속하는 저지대다. 동부의 중심도시 산타크루스는 해발 416m에 불과하다. 이곳의 대부분은 아마조니아 밀림의 일부분이라 그렇게 사람 살기에 좋진 않다.


3.1. 기후[편집]


저위도 지역인 만큼 저지대는 열대기후를 띈다. 아마조니아브라질-페루 접경지대인 리베랄타는 연평균기온 27℃에 연강수량은 1,740mm로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며, 역시 아마존의 열대우림인 산타크루스도 1월 평균기온 26℃, 7월 평균기온 20℃로 연강수량 914mm의 따뜻하고 적절한 강수량을 자랑한다.

산이 높아질수록 기후는 춥고 건조해져[19] 해발 2,750m의 수크레는 연평균기온 14℃, 강수량 729mm로 1년 내내 봄과 같은 상춘기후가 나타나나 수도 라파스에 이르면 연평균기온 7℃, 강수량 575mm로 1년 내내 11월 기온을 띠어 상당히 춥다. 그래도 라파스까지는 온대기후에 속한다.

그리고 우유니 사막으로 유명한 우유니는 연평균 기온이 0℃에 육박해 냉대기후 또는 한대기후를 띄며[20] 강수량도 150mm에 불과하다.

의외로 지구 온난화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 나라인데 2000년대까지 남미에서 최빈국으로 손꼽히던 대표적인 나라였던 만큼 기본적인 인프라가 확충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열악하여 제대로 된 대처가 힘들기 때문이다. 2016년 하반기에 심각한 가뭄으로 주요호수와 하천의 수위가 크게 낮아지면서 단수가 속속 일어나고 제한급수도 하는 등 한바탕 피해가 크게 일어났다.


4. 정치[편집]


세계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나라중의 하나로 꼽혔다. 주한 볼리비아 영사관 사이트에 소개되어 있는 역사 관련 페이지를 보면 볼리비아가 얼마나 격렬한 혼란을 겪어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1825년에 독립한 이후 정변이 185년간 200여 차례 일어났으며, 민간정부의 통치기간이 40여 년인 반면 나머지 기간 전체가 군사정권 기간이다. 군사정권이 군림하는 동안 평균 9개월에 1번 꼴로 쿠데타가 터지면서 정부가 전복된 것이 190여 번. 세계 최다 정변 발생 국가로 당당하게 기록되어 있다. 나머지 사전에 적발된 역적모의, 실패한 반란에 관해서까지 말하다간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21] 1980년대 초반에 군부독재와 쿠데타의 악몽에서 벗어나서 드디어 민주화 되었지만 하필 시기가 자원붐이 끝났고 볼리비아의 경제적인 체질이 영 안 좋았던 탓에 20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경제적으로 엄청난 고생을 겪게 된다. 1980년대 초중반에 외채난으로 말미않아 2만%에 달하는 초 인플레이션을 겪다가 제프리 삭스의 지도 아래에서 국가예산을 대규모로 깍는 극약처방을 통해 드디어 물가상슝률은 안정화 되었다만 그 효과는 소수의 기업가 등 부유층들에게나 돌아갔고 일반인들은 극심한 빈곤의 늪에 허덕여야했다. 그런 걸 따지면 우고 차베스와도 친한 전 대통령 모랄레스의 시대는 안정된 시대인 편이기도 했다.

허구한 날 쿠데타가 일어나고 정정이 불안정하다 보니 당연히 전쟁도 못한다. 남미 태평양 전쟁에서 칠레에게 해안지역을 잃고 내륙국가가 된 것이 가장 유명하며 칠레와의 전쟁에서 칠레한테 해안지대의 영유권을 잃고 내륙국가가 된 뒤에도 남미의 양대 강국인 아르헨티나브라질에게 각각 후후이와 아크레 등을 강탈당하고,[22] 거기에 더해 파라과이 전쟁으로 인한 치명타에서 회복하지 못한 파라과이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으나 전쟁을 치른 작은 파라과이에게조차 차코지방까지 거하게 털려버리며 그나마 있었던 내륙 영토들마져 주변 남미 국가들에게 빼앗겼다. 물론 그 와중에서 죄 없는 국민들만 숱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여하튼 1952년에 과두제 체제가 붕괴되었지만 10여 년간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다가 1960년대 중반에 쿠데타가 일어나서 혁명으로 수립된 민주정권을 뒤엎고 10여 년 동안을 독재정권이 지배했었는데(물론 단 한 명의 독재자가 집권한 건 아니었고 쿠데타, 역쿠데타가 여러번 일어나던 개판이었다.[23]) 그렇기 때문에 체 게바라가 이곳에서 혁명 게릴라 활동을 펼친 적이 있으나, 실패하고 체 게바라 본인도 사살당했다. 볼리비아 현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데다 당시 볼리비아 독재정권은 1952년 혁명을 통해 설립된 민주정권을 뒤엎었지만 그전 민주정권에서 시행했던 토지개혁을 폐기하지않아서 농민들은 정권에 대해 아주 부정적이진 않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백인' 체게바라를 '원주민' 농민들이 믿을 상황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후대의 평가는 체 게바라의 활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로 볼리비아가 격동의 현대사를 겪으면서 빈부격차 확산, 무분별한 민영화 등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체 게바라를 존경하는 여론도 상당한 편이고 에보 모랄레스도 체 게바라를 복권하는 데 적극적인지라 2013년에 체 게바라의 삶을 담은 기록물들이 볼리비아 정부의 지원하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페루와 함께 남미에서 가장 토착민(Indigenous), 즉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구비율이 높은 나라 중 하나로 국민의 60% 이상이 백인의 피가 섞이지 않은 아메리카 원주민 계통이다. 그러나 다른 남미 국가들이 그렇듯 원주민에 대한 차별은 상당했고 그동안 원주민의 정치-사회적인 지위가 낮았다. 볼리비아는 1952년 혁명 이전에는 원주민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을 정도로 식민주의 체제의 잔재가 남아있어서 백인우월주의적인 경향이 강한 나라였고[24] 현재도 그 잔재가 남아서 백인이 많이 사는 동부 지역은 부유하고 원주민이 많이 사는 서부 지역은 가난한 편이다. 볼리비아에서 가장 잘사는 도시인 산타크루즈는 백인이 많고 원주민들을 멸시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서쪽 라파즈와 함께 고원에는 원주민들이 대부분이다. 에보모랄레스의 정책들로 완화되었지만 그전에는 백인과 원주민 간의 빈부격차도 심각했다.

그러나 국호에서 공식적으로 다민족 국가를 표방하는 것도 그렇고, 특히 2006년 볼라비아 역사상 처음으로 원주민 출신인 에보 모랄레스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원주민과 메스티소 모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한 국민으로 포용해 나가는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2009년 재선에서도 64%의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2014년 3선에서도 61%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25] 그리고 지금 장기집권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모랄레스는 코카 재배농민회 회장 출신이기도 하여 미국이 코카농장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에 반대한다. 코카인마약이지 그 원료인 코카는 마약이 아니며 미국이 마약전쟁을 내정간섭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항의의 표시인지 모랄레스는 당선 후 미국방문 중 국무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에게 코카잎으로 장식한 우쿨렐레를 선물하는가 하면 2010년 5월 코카잎으로 만든 짝퉁 코카콜라인 '코카코야'를 내놓았다. 코코아 들었을 줄 알겠다 다만 재선된 이후에는 점차 지지율이 떨어져서 정권 재창출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가[26] 이후에는 안정적인 경제성장[27]으로 지지율이 높아졌다. 2014년 대선에서도 야권의 지리멸렬이 겹쳐지면서 압도적인 지지율로 3선에 성공했다.

다행히 경제는 그런대로 순항을 거두기는 했지만, 집권당 내 부패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2015년 지방선거에서 41%의 득표율을 얻는데 그쳐서 패배했고 2016년에 4선을 위한 개헌투표를 실시했지만 51.29%로 반대표가 찬성표보다 많아서 4선 도전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 때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가 (3:1 정도) 사이트가 다운되었다...[28] 그 후 나온 결과가 이것...[29]

그런데 2017년 11월 28일 볼리비아 헌법재판소에서 4선 도전(현행 헌법상으로 3선)이 합법이라는 판결을 받아내 모랄레스의 4선 출마가 가능해졌다. 모랄레스가 다시 출마한 가운데 #전 볼리비아 대통령이었던 카를로스 메사가 내년 2019년 치뤄질 볼리비아 대선에 대선출마를 선언했고, 8월 16일에는 볼리비아의 야당인 기독교민주당(PDC)에서 한국인 이민자(정치현)를 대선후보로 확정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9404224 다만 PDC가 주요정당은 아닌지라 모랄레스가 아니라도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없었지만(상원 2/36, 하원 10/130석 보유중), 목사이다보니 교회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고# 대선에서 3위라는 의외의 선전을 보여주었다. 19년 치러진 대선에서 에보 모랄레스는 가까스로 승리하였으나, 이 승리가 부정선거에 의한 것이라는 미주 기구의 지적과 군대의 중립선언 및 사퇴 권유로 결국 모랄레스는 선거 무효를 발표하고 사임하게 된다.

모랄레스 사임 이후에도 임시대통령은 에보 모랄레스가 소속되었던 사회주의운동당이 의회를 차지하고 있어 여전히 지명되지 못한 상태였다가# 추후 헌법재판소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친 모랄레스 세력은 미주기구의 부정 선거 조사결과도 의심스러워 하며 쿠데타라 주장하였으며, 친 모랄레스와 반모랄레스 세력들의 상호폭력 및 시위로 혼란스런 정국이 몇개월간 이어졌다. 자세한 사항은 에보 모랄레스 항목 참조. 이후 볼리비아 임시 정부는 모랄레스에 대한 과거 청산에 나서고 있다.#

임시 대통령이 된 제아니네 아녜스는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 휘하에서 재무장관을 지내다가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과 알버트 가르시아 부통령의 동반 하야로, 권한대행이지만 볼리비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직을 맡게 됐다. 아녜스는 원래 반 모랄레스 진영의 대표 인사로 볼리비아 상원의원이었다가 2019년 볼리비아 대선을 앞두고 어부지리 격으로 임시 선거 내각에 입각했다. 아녜스 재무장관이 일단 임시로 대통령 업무를 보고 있지만 2019년 11월 11일 기준 볼리비아 의회의 추인이 없어서(국회의장과 집권 여당 지도부, 대법원장,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전원도 총사퇴했음) 권한대행으로 정식 지명을 못받은 상태이다. 다만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일단 임시대통령으로 공인되고는 있지만 친 모랄레스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과 학살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데다가 장관들도 언론통제와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을 강조하고 있고, 볼리비아 현지 언론들 대다수도 이러한 조치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탓에 본래 역할인 선거관리보다는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부각되고 있다. 처음에는 관리용 대통령이라는것을 내세웠는데 생각보다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지지율이 생각보다 높게 나타나자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정식 대통령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1주일에 한번꼴로 나오는 각종 부정부패 사건과 코로나 19 대응 실패로 구설수에 오르며 지지율이 폭락하여 볼리비아 보수진영에서조차 표분산이나 시켜주는 X맨이라는 소리나 들을정도가 되어버렸고, 아르셰의 지지율이 1차에서 승리할 정도라는 여론조사가 나오자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선거일이 밀리자 에보 모랄레스가 있었던 정당 MAS이 반발하고 있다.# 볼리비아 임시 정부가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도로 봉쇄 시위와 관련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수사를 요청했다.# 선거 앞두고 정부 내분이 있는 상황이다.#

10월 18일부로 선거를 치렀고, 당초 여론조사 결과에서 아녜즈가 후보직에서 사퇴한 이후로 아르셰와 메사가 2차 투표에 갈것이고 결선에서 메사가 조금 더 앞서는 것으로 나왔지만 막상 출구조사와 실제 개표결과에서 숨은 표심이 대거 아르세에게 쏠리며 아르셰가 55,1%로 대승을 거두면서 당선되었고, 2019년 총선에서 하원 67석, 상원 21석을 얻었던 MAS도 하원에서 6석을 추가한 73석을 확보하며 차기정권을 노렸던 볼리비아 우파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용두사미격의 선거결과가 나와버렸다.[30]특히 볼리비아의 정권교체를 주도했던 미주기구가 타격을 입은것은 덤인데 특히 2019년 선거에서 모랄레스의 표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서 부정이라고 주장했던 선거구에서 아르셰의 득표율이 훨씬 높게 나왔기 때문이었다.[31] 거기에다가 알마그로 미주기구 총재가 볼리비아군이 강경진압하면서 수십명의 사람들이 사망한 사건이나 아녜즈 정권의 전횡과 부패에 대해 아무런 말도 안하면서 투표촉구 시위대에 대해서는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는 점때문에 망신을 거하게 사버렸다.


5. 경제[편집]




6. 사회[편집]



6.1. 법[편집]


세계 최초로 자연의 권리를 명문화한 법을 제정한 용자짓을 볼리비아가 해냈다. 법의 이름은 어머니 지구. 링크에서는 추진 중이라고 되어있지만 이미 채택되었다. 이게 대단한 게 경제부분에서도 읽었겠지만 이 나라는 자원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런 법을 채택했다는 게...

2014년 7월 들어 만 10세 이상이 되는 아동들의 노동을 합법화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가정 형편 때문에 일하고 있는 아동이 50만 정도에 달하는데 이런 어린이들에게 돈을 벌지말라고하자고 하기엔 거시기하고 그렇다고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하고 복지도 급속히 확충되고 있다고 하지만 볼리비아 자체는 여전히 풍족한 나라는 아닌지라 이들에게 돈을 주기에는 예산이 부족하니 아예 양성화를 하서 법의 도움을 받게하자는, 일종의 미봉책. 그렇지만 정부에서 사정이 나아지면서 아동노동 완전금지 및 미성년자 노동제한을 추진하고 있는데 막상 청소년과 아동층에서 이에 대한 반발이 있다고 하니, 볼리비아의 빈부격차가 여전히 크다는 반증이다.

볼리비아에도 대체 휴일 제도가 있는데, 현지에서 대체휴일제는 일본과 같이 일요일에만 적용되고 토요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볼리비아는 7월, 9월, 10월에 휴일이 아예 없고[32] 2월, 3월, 4월은 해에 따라서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때문에 2028년에는 볼리비아에서 2월 29일도 공휴일이 된다. 이유는 2월 29일이 마디그라이기 때문이다.

볼리비아 형법은 무죄추정의 원칙이 아니라 유죄추정의 원칙을 따른다. 이 때문에 수도 내 산 페드로 교도소는 초과수용된지 한참이며 교도소 경찰은 교도소 내 질서 유지에 손을 아예 놓아버렸다. #

중남미 기준으로 치안이 극히 나쁜것은 아니고 평범한 수준이지만 면적에 비해 인구가 적다보니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변방 지방에는 중앙 행정력이나 경찰력이 미치지 못해 지방유력자나 군벌이 사실상 그 지방을 지배를 하기도 한다. 대놓고 코카인의 원료인 코카를 재배하는 경우가 많고, 밀수도 잦다. 각국에서 사기 등 범죄를 저지르고 거액을 들고 도피한 망명자도 많아 국제 범죄자들의 단골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국제적으로 수배된 마약상도 돈만 있으면 내놓고 호화판으로 살 수 있다. 이런 사정이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독립 후 부터 100여년 이상 계속되다 보니 볼리비아에선 이게 상식이다. 그래도 경제사정은 2000년대 중반이래로 꾸준히 개선은 되고있기는 하다.

6.2. 언어[편집]


세계에서 공용어가 가장 많은 나라다. 무려 37개. 볼리비아 헌법 5-I 조에 진짜로 37개의 언어가 공용어로 명시되어 있다.[33] 이 가운데서 현재는 오래전부터 쓰이지 않은 언어도 포함하며, 이러한 공식어 가운데서 많이 쓰는 언어가 스페인어, 케추아어, 아이마라어이며 교육언어나 행정언어, 학술언어로는 스페인어가 가장 많이 쓰인다.

문자가 없는[34] 아이마라어를 보존하기 위해서 한글 표기법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마라어는 스페인어의 기세에 눌려 있긴 하지만, 볼리비아 제3의 언어이자 공용어로서 화자수가 200만 명이 넘는 큰 토착언어여서 사멸과는 거리가 멀며, 중남미 지역은 스페인, 포르투갈 세력이 들어온 이후에 토착언어들은 로마자로 표기하는 게 관습이었다. 당연히 아이마라어에 대한 로마자 정서법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고 1984년 볼리비아 정부가 아이마라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승인했으며, 현재 아이마라어 위키백과로마자로 잘 굴러가고 있다.*


6.3. 교통[편집]


최근에 와서야 어느 정도 정비작업에 들어가고 있지만, 도로의 경우에는 고산지대가 많고 많은 지역이 인구밀도가 극히 낮기 때문에 비포장도로가 많고 길이 구불구불거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행기 값 때문에 주요도시를 잇는 버스는 많이 돌아다닌다. 철도도 사정이 안 좋기는 매한가지라서 협궤인데다가 동부와 서부간 연결이 전혀 되어있지 않아서 철도를 통해 동부로 갈려면 아르헨티나를 거쳐야된다. 그나마 서부의 경우에는 사정이 나아서 라파스와 울루루, 유우나 사막을 지나는 철도노선의 경우에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보다 훨 낫다는 평이지만 그래도 동서간 연결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점은 커버할 수 없다. 남미횡단철도라고 해서 동서간 철도연결을 하려는 계획이 있지만 비용이 비용이다보니 계획만 나오고 있는 중이라 언제 개통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볼리비아의 융가스(Yungas) 도로 북단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차도(road)라는 죽음의 도로(Camino a Los Yungas)가 있다.(지도) 이 도로는 차코 전쟁(1932~1937년) 때 건설되었는데 건설된 지 오래되어 도로가 좁고 비포장이다보니 조금만 주의를 소흘히 하거나 비가 오면 절벽으로 떨어지거나 산사태로 인해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35] 하지만 그동안 볼리비아 정부가 돈이 없어 우회도로의 건설이 늦어진 데다가 볼리비아엔 비행기를 타고 다닐만한 재력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대다수의 볼리비아인들은 우회도로가 개통될 때까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이 도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2006년에 포장되어 있는 안전한 우회로가 개통해서 이 위험한 길을 왕래 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고 사망자 수도 급감했다고 한다.

배낭 여행객들은 이 도로를 자전거 타고 내려올 수 있지만 치명적인 사고도 많이 일어난다. 이곳을 자전거로 지나던 한 한국인은 도로에서 튄 자갈에 맞고 절벽으로 떨어졌지만 나무에 걸려서 정말 다행스럽게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우회로를 이용해서 안전해졌지만 북쪽의 정글 도시인 루레나바케에 가는 사람은 위 동영상 수준의 도로에서 버스를 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 버스가 밤 버스라는 거(...). 근데 최근 6년 동안 사고난 적이 없다고 하니 안심해도 되려나...


영국 BBC 방송국의 《탑기어》 프로그램에서 이 길을 이용했던 적이 있다. 급한 분들은 6분 30초 정도부터 보자.

볼리비아는 산악지대가 많아서 도로시설의 부족, 운전수칙 미준수, 차량노후 등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발생되고 있어서 2019년 1월 19일에 안데스 산악 지대에서 버스가 절벽으로 떨어져서 적어도 13명이 사망하고 26명이 다친 것이 이어 1월 20일에는 남부 고속도로에서 버스 2대가 정면 충돌하면서 최소 22명이 목숨을 잃고 37명이 부상하는 참사를 빚었다.#

대중교통의 경우에는 수도 라파스와 엘알토를 이어주는 케이블카가 있다. 고저차가 심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지하철을 건설하기 어려워 케이블카를 대체제로 선택했다. 자세한 것은 미 텔레페리코 참고.

7. 문화[편집]



7.1. 음식[편집]


남미 여행자들에게 음식이 맛없는 곳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기후가 한랭한 고산지대여서 그런지 요리가 매우 부실하다. 옆 나라인 페루나 아르헨티나는 세비체아사도 등 먹을 만한 요리들이 있기라도 하지만 볼리비아는 맛 있다고 평가받을 만한 요리가 아예 없다. 이곳을 여행하면 지겹도록 닭(Pollo)을 먹는 자신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버스에서 음식 먹으라고 내리면 모든 음식점이 다 똑같은 음식을 판다! 그것도 다 닭(...). 이 나라 대표 음식은 프라이드 치킨과 닭으로 만든 치킨까스 같은 Pollo Milanesa가 있다. 또 초리소라는 소시지도 많이 먹는다. 그래도 티티카카 호수에는 송어(Trucha라고 한다)를 파는데 아주 싸고 먹을 만하다. 또 주목할 만한 점은 감자튀김을 엄청나게 먹는다는 것. 거의 모든 음식은 감자튀김과 같이 나온다. 사실 페루와 함께 이 동네가 감자의 원산지다. 맛있을 거 같은데? 이걸 여행 한 달 내내 세 끼마다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 봐라

감자튀김은 많이 먹는다고 하지만 정작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맥도날드장사 안 된다고 사업을 때려치우고 철수한 국가이다.[36][37] 볼리비아에서도 한때 맥도날드 점포가 8곳 정도 있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농민들의 반감이 큰 데다가 장사가 잘 안 되다 보니 햄버거를 사 먹을 만한 계층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임에도 사업을 포기하고 2012년에 철수했다.[38]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버거킹은 장사가 꽤 잘 된다 하여 여전히 사업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다니다 보면 콜라를 엄청나게 마신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여행자는 어떤 볼리비아 여자가 1살도 안 돼 보이는 갓난아기한테 콜라를 마시게 하는 것을 보고 기겁했다고 한다. 무수한 가난한 나라에서 물보다 싼 게 콜라라서 그렇다. 오죽하면 만화 사랑해에서도 지옥에서까지 콜라는 이승과 값이 똑같다고 나오며 상업화를 깔까. 네팔이나 미얀마 산지 마을에서도 콜라를 물 대신 많이 마실 정도이기에 볼리비아만 이런 게 아니다. 페루 옆 나라인데도 잉카콜라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은 음식이 싸다는 것. 한 끼를 2천 원에서 3천 원 사이에서 간단히 끝낼 수가 있다. 티티타카 호수의 송어도 3천 원밖에 안 한다!


7.2. 스포츠[편집]


역대 최장기간 월드컵 본선 무승 기록을 가진 국가이다. 1930년 제1회 월드컵에 출전한 이래 총 3회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지만, 승리는 단 한 번도 거두지 못했다. 무려 80년 이상의 무승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는 셈. 승리는 커녕 1994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과 만나서 0-0 무승부를 거두면서 따낸 승점 1점이 유일한 승점이다. 1950년 월드컵에서는 우루과이와 단 둘이서 조별리그의 유일한 경기를 치뤘을 때는 0-8로 아주 기가 막히게 털리기까지 했다. 그나마 베네수엘라보단 나은 게 베네수엘라는 80년 넘게 FIFA 월드컵을 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남미 국가답게 축구가 최고 인기 종목이며, 인구 대비 선수 비율도 꽤 높다. 또 까마득한 과거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자국에서 열린 코파 아메리카를 제패한 적도 있다. 이 팀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볼리비아 국대 축구팀은 안방불패의 위엄을 보여줄 때가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이들은 고산지대에 적응을 못해서 허우적대는 아르헨티나를 개발살내는 이변을 연출해내기도 했다. 그리고 2011년 코파 아메리카 컵 개막전에서도 아르헨티나와 1:1 무승부를 기록하는 근성을 보여줬다. 이전 사례는 산동네여서 아르헨티나가 고생했다는 변명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2011년의 개막전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벌인 승부였다. 하지만 지아무리 홈이라도 같은 산동네 친구들한테는 영 맥을 못 추는 편이다(...). 2015년 코파 아메리카 컵에서는 1승 1무 1패로 8강에 올랐다. 볼리비아코파 아메리카 컵에서 승리를 거둔 건 1997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2008년 K리그 성남 일화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 아르체(본명 Juan Carlos Arce Justiano)[39]가 볼리비아 대표팀 출신이었다. 현역 국대 멤버였음에도 K리그에선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최초 등록명을 '아씨'로 정했다가 팬들의 항의로 수정하는 해프닝만 남기고 떠났다(...).

남미에서 유일하게 올림픽 메달을 못 딴 나라가 볼리비아다(...). 파라과이는 은메달도 땄는데, 이 나라는 아직도 어떠한 메달도 하나 못 땄다.


7.3. 축제[편집]


추수기념일에 마을 저지대와 고지대 사람들이 모여 일명 '틴쿠'라는 싸움을 연다. 이는 갈등 해소 방식으로 공격성을 분출하는 케추아족의 방식이라고 한다.#


8. 국방[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볼리비아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외교[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볼리비아/외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여행[편집]


쿠바와 함께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에게 비자를 면제해주지 않는 유이한 아메리카 국가이다. 공항 입국 시 도착비자 발급이 가능하다.

인스타그램등을 통해 잘 알려진 우유니 사막이 볼리비아에 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케이블카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자세한건 라파스 항목 참조.


10.1. 주요 관광지[편집]


  • 코파카바나: 페루와 국경지대에 있는 티티타카 호수옆에 있는 도시. 보통 태양의 섬 (Isla de sol)도 같이 간다. 다만 태양의 섬은 현재 여행경보 3단계 “철수권고”가 발령된 상태이다.[40]자세한 사항은 외교부 홈페이지 내 참조.
  • 라파즈: 볼리비아의 수도.
  • 수크레: 볼리비아의 헌법상 수도,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우유니 사막: 세계에서 가장 큰 소금 호수 사막. 단 우기에는 호수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물이 많이 차기도 한다.
  • 루레나바케: 정글에 있는 도시로 팜파스 투어를 하러 많이 오는 곳
  • 포토시: 옛 은 광산 도시. 광부들이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도 일하고 있으며 광산투어가 유명하다. 다만 광산의 환경자체가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모습이 충격으로 다가온다니 주의할것


11. 대중매체[편집]


고스트 리콘:와일드랜드에서 주 미션지역으로 등장한다. 볼리비아의 급커브 비포장 도로와 험준한 산맥을 욕 나올 만큼 현실적으로 반영한 것이 특징. 워낙에 사건 사고를 많이 일으키자, 볼리비아 정부가 아예 국민에게 손대지만 않는다면 존재를 묵인하겠다는 협정을 맺어버린 마약 카르텔 조직을 와해시키려는 고스트 팀의 활약이 주 내용이다. 상기한 티티카카 호수, 죽음의 도로 등을 충실히 구현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를 대표하는 서부극으로 폴 뉴먼, 로버트 레드포드가 열연한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에서 이들이 범죄를 지르고 쫒기다가 도피한 곳이 바로 볼리비아 투피자 지방이고 볼리비아군의 집중사격으로 쓰러진다.


[1] 2009년 전통 스타일의 국기 위팔라가 공동 국기로 지정되었다. 위팔라는 각 민족마다 그 형태와 색이 다르다. 공동 국기로 지정된 위팔라는 아이마라족의 위팔라다. 모자이크가 아니다 깃발을 구성하는 색들이 거의 무지개를 구성하는 색이고, 약간의 흰색이 중심인 게 특징이다.[2] 한 마디로 '20~21대 대통령' 처럼 임기를 연속할 수는 없지만 '20, 22, 24대 대통령' 하는 식으로 세 번 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을 반대하는 세력들의 강한 저항으로 인해 생긴 기괴한 정치적 타협의 결과물이다. 원래는 프랑스 대통령처럼 5년으로 2번까지만 중임 가능하다.[혼합된체제] 5.08점[3] 그나마 쓰는 비중이 높은 공용어이다.[4] 볼리비아는 남미대륙에서 유일하게 한국인이 무비자로 입국할 수 없는 국가이다.[코로나19] #[5] #[6] 현재 아메리카 대륙에서 내륙국인 국가는 볼리비아와 파라과이밖에 없다.[7] 1899년에 입법부와 행정부가 라파스로 이전했고 수크레에는 대법원만 남아 있을 뿐이다.[8] 라파스에 인접한 근교도시로서, 행정구역상으로는 라파스와는 다른 독립된 도시로 간주되며, 인구는 100만 명을 넘는다. 참고로 엘 알토는 인구 10만 이상 도시 중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엘 알토 국제공항이 여기에 있다.[9] 이 때 볼리비아는 알토페루(고지대 페루)로 불렸다.[10] # 이 연합은 국기도 갖고 있었는데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국기에 있는 5월의 태양이 여기에도 들어가 있다.[11] 실제 칠레도 볼리비아가 이전 볼리비아 땅이었다가 현재 칠레령인 칠레 북부의 태평양 연안 지대를 내놓으라고 해양 영토 반환을 주장하면 지역 주민들이 태평양 전쟁 전후 해당 지역에 이주해온 칠레인들의 후손들에 지역민 절대다수가 칠레령에 남고 싶어한다는 실질적 근거를 내세워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볼리비아 역시 칠레가 19세기 중후반 당시 남부 개척 정책으로 티에라델푸에고 섬과 칠로에 섬, 파타고니아 등 현재 칠레 중남부 지역에서 살던 셀크남과 쿵코, 알라카루페, 마푸체 같은 남미 원주민들을 무력으로 학살, 추방하고 칠레인 이주민들을 이식, 정착시켰던 역사적 사실을 거론하며 '그럼 니네들은 원래 원주민 땅이었다가 원주민들 쳐 죽이고 뺏어먹은 니네 나라 남부 영토들도 그 지역 사는 니네 나라 주민들이 칠레 땅에 남고 싶어서 원주민들한테 땅 반환 거부하는거냐?'라며 칠레를 맹렬하게 비난한다.[12] 간단히 말해서 한반도의 최고봉인 백두산조차 뒷산 취급도 안 해주는 수준이다(...). 볼리비아인에게 한국의 산을 산이라고 소개했다가는 "저런 건 볼리비아에서는 언덕이라고 하는 거다."는 반응을 보인다고.[13] 가장 높은 부분은 남부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에 있는 아콩카과 산이다.[14] 실제로 볼리비아를 가리키는 별명 중에 남아메리카의 티베트라는 별명이 있다.[15] 모랄레스 대통령은 축구를 워낙에 좋아해서 대통령 겸 축구선수로 투잡을 뛰려고 하기도 했으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결국 축구선수 데뷔를 포기하기도 했다.[16] 산타크루스 등지는 제외.[17] 에콰도르 대표팀도 이런 지리적 요건 때문에 홈 경기 승률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18] 물론 브라질이 지역예선에서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를 만난 것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지역예선 부터인데 그 월드컵부터 남미 예선은 풀리그로 했다. 그 이전까지 지역예선을 조별리그로 하던 시절에는 이 세 나라가 전원 톱시드인지라 서로 지역예선에서 만날 일 자체가 없었다.[19] 사실 해발 100m 상승 시 약 섭씨 0.6도가 떨어지는 효과를 보인다. 즉, 1,000m 높으면 0m 저지대보다 6도는 떨어짐을 깔고 가야 한다는 뜻. 이것도 모르고 왜 남미인데 춥냐고 징징대는 사람들이 꽤 된다. 진짜다![20] 우리나라에서 춥기로 유명한 개마고원보다 추운 수준.[21] 그런데 볼리비아 역대 대통령은 에보 모랄레스까지 80명이다. 물론 70-80년대엔 그야말로 막장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아마 대통령 하다 반란으로 쫓겨난 놈이 재반란을 일으켜 다시 대통령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22] 현재의 브라질 아크레 주와 아르헨티나의 후후이 주.[23]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에보 모랄레스 이전까지 그나마 경제적으로 안정되던 시기였기도 했다. 1970년대 중후반에 자원봄이 불면서 천연가스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에 상당한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부는 소수에게 돌아갔고 일반인들에게 돌아간 건 아니었기 때문에 반발도 거셌다.[24] 물론 비단 볼리비아에만 해당되지는 않았고 아르헨티나우루과이, 칠레처럼 아예 원주민들을 학살하거나 오지로 내모는 수준은 아니었다. 일단 백인에 비해 원주민 인구가 많으니 그렇게 할 수 없다.[25] 주한볼리비아대사관에서 재외투표는 10대 10으로 비겼다.[26] 특히 2011년도에 유가보조금 폐지조치를 발표했다가 역풍을 맞아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고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나서 결국 철회해야했던 굴욕을 당했다.[27] 천연가스 산업 국유화 조치로 정부재정이 크게 풍족해지면서 복지도 확충되고 자본이 통제되면서 국내투자가 활발해진 데다가 임금도 급속히 불어나(물가상승폭도 상당하지만 그 이상으로 임금이 오르고있다.) 빈민층이 크게 줄어들어 전반적인 구매력이 크게 상승한게 영향을 끼쳤다. http://snuilas.snu.ac.kr/pdfyear/2014snuilasiss013.pdf[28] 도시지역 부재자 투표함부터 먼저 까보고 시골지역 투표함은 나중에 까봤다. 시골지역의 개표작업이 비 때문에 늦어졌다는 것도 아니다. 물론 볼리비아가 베네수엘라나 브라질처럼 전자투표를 실시하는것도 아니고, 아르헨티나나 칠레처럼 교통망이 좋은 것도 아니라(그나마 이것도 많이 좋아진 거라지만) 전국 단위 선거에서 개표가 완료되는 데 며칠씩 걸리는 게 당연한 일이다.[29] 특히 모랄레스의 지지세력이었던 볼리비아 노조들도 장기집권에는 부정적이었다.[30] 에보에 대한 실망감으로 메사와 정치현을 지지했던 중산층 일부가 경기침체에다가 우파후보들의 분열속에서 아르셰를 지지했고, 대선에서 카를로스 메사도 경제대책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을 못내놓으면서 표가 이탈된데다가 산타크루즈 지역의 표가 경쟁 우파 후보인 카마초에게 쏠려나가면서 말 그대로 말아먹었다.[31] 참고로 해당 선거구에서 2019년 대선 당시에는 모랄레스가 91%의 득표율을 보인것으로 나왔는데 2020년 대선에서는 무려 97%의 득표율을 보이며 싹쓸이의 위엄을 보였다.[32] 이 때문에 볼리비아 교민들은 추석에도 학교에 간다. 추석은 9월이나 10월에 있는데 하필 볼리비아에서 쉬는 날 없는 달 (7월, 9월, 10월)에 껴 있기 때문.[33] ABC순으로 다 늘어놓으면 스페인어, 아이마라어, 아라오나어, 바우레어, 베시로어, 카니차나어, 카비네냐어, 카유바바어, 차코보어, 치만어, 에세에히하어, 과라니어, 과라수웨어, 과라유어, 이토나마어, 레코어, 카야와야어, 마치겐가어, 마로파어, 모헤뇨 트리니타리오어, 모헤뇨 이그나시아노어, 모레어, 모세텐어, 모비마어, 파카와라어, 푸키나어, 케추아어, 시리오노어, 타카나어, 타피에테어, 토로모나어, 우루치파야어, 웨나예크어, 야와나와어, 유키어, 유라카레어, 사무코어이다. 헌법 5-I 조의 원문은 여기 9쪽 (페이지 오른쪽 아래의 숫자를 기준으로는 2쪽)에서 볼 수 있다.[34] 사실 아이마라어의 경우 고유의 로마자 알파벳이 존재한다. 현재의 아이마라어 알파벳은 스페인어 알파벳을 따온 것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다. 가령 스페인어 ü는 "Agüero" 같은 단어에서 u가 실제로 발음됨을 표시하기 위해 쓰이는 글자이지만 아이마라어 ü는 u의 장음이고, 스페인어 q는 u와 함께 쓰여서 /k/나 /kw/ 발음을 표기하기 위한 글자지만 아이마라어 q는 /k/ 발음과 아예 다른 음운인 /q/ 발음을 표기하기 위한 글자다. 사실 로마자를 빌려쓰는 걸 문자가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한글을 빌려쓰면 문자가 있게 된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35] 오죽하면 도로 주변에 십자가들이 즐비할 정도라고 한다.[36] 반면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인 베네수엘라나 에콰도르, 콜롬비아, 페루, 니카라과, 과테말라, 파나마,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우루과이에서는 맥도날드가 철수하지 않고 멀쩡히 장사하고 있다.[37] 단 쿠바에는 맥도날드나 버거킹이 없다(...)[38] 노점이나 다른 가게에서 먹으면 햄버거를 훨씬 싸게 먹을 수 있어서라는 말도 있기는 하다. 비슷한 맛인데 맥도날드가 다른 나라와 비슷하게 가격을 받다보니 장사가 잘 안 되고 결국에는 철수했다는 것.[39] ce는 스페인어서 '세'로 발음하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아르세가 맞는 발음.[40] 이곳에서 한국인 여성이 피살된 사건이 벌어졌고 용의자가 부족민 족장으로 구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