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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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뒤인 1910년 10월 1일부터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인 1949년 8월 15일에 부가 폐지되고 시로 전환될 때까지 만 39년 동안 존속한 경상남도의 행정구역으로, 현재 부산광역시의 전신이다. 일본어로는 후잔후(ふざんふ)라고 했다.
본래 이 지방은 경상남도에 속한 동래부(東萊府) 지역이었으나,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인 10월 1일 부로 조선총독부지방관관제가 시행되며 동래부가 부산부로 개칭되어 일시적으로 동래라는 지명이 사라졌다가, 1914년 부군면 통폐합을 하며 현재 부산의 원도심 지역인 당시 개항장 일대만 부산부로 남고 나머지 지역은 동래군으로 분리되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대확장 이후에는 대략 현재 부산광역시의 금정구, 북구, 강서구, 기장군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2. 역사[편집]
대한제국 시기인 1906년 동래부로 승격하였으나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지방관관제가 공포되며 다시 부산부로 개칭하게 되었다.
1914년 4월 1일에는 개항지 지역만을 남기고 나머지 지역은 동래군으로 이관시켜 면적이 대폭 축소되었다.
개항 이후 일본과 가까운 도시의 특성상 많은 일본인들이 이주했다.[2] 다른 도시와 달리 부산에는 왜관이 이미 조선시대부터 존재했기 때문에 정착 기반과 인프라가 있었고[3] 이 위치에 일본인 구역이 형성되었고 일본에서 조선으로 들어오는 관문으로서 발전하였다. 대체로 오늘날의 중구(부산)은 일본인 구역, 동구(부산) 등은 조선인 구역이었다
산업이 형성되어 타 지방의 조선인들도 유입되었고 화교 인구도 유입되었다.[4] 결국 경상도의 평범한 고을이었던 부산은 구한말~일제강점기에 경성부에 이어 평양부와 제2의 도시 지위를 엎치락뒤치락하는 조선 3대 도시로 성장하였다.[5] 부산부가 전통적인 경상도의 중심지였던 상주, 경주, 진주 등 보다도 더 성장하게 되면서 1925년에는 진주에 있던 경상남도청이 부민정으로 옮겨왔다.
1936년 4월 1일에는 1차 시역확장을 하게되어 서면 전체와 사하면 일부를 편입했다.
1942년 10월 1일에는 2차 시역확장을 하여 동래읍, 사하면, 남면 전체와 북면 일부를 편입되었으며 동래 출장소, 사하 출장소, 수영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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