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생 (r2020030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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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의 역대 황제
1대 고조 경명제 부건

2대 여왕 부생

3대 세조 선소제 부견
묘호
없음
시호
여왕(厲王)[1]
연호
수광(壽光, 355년 ~ 357년)

부(苻)

생(生)
생몰 기간
335년 ~ 357년
재위 기간
355년 ~ 357년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전진의 제2대 황제. 본성은 포씨(蒲氏)였으나, 조부인 부홍(苻洪) 때에 유행했던 예언서의 내용에 따라 부씨(苻氏)성으로 바꾸었다. 경명제(景明帝)의 아들로 생모는 명덕황후(明德皇后)이다.
태어날 때부터 한쪽 눈이 매우 작은 짝눈이었는데, 이를 불길하게 여긴 조부 부홍(苻洪)에게 멸시당했고 부홍이 외눈박이 아이는 한쪽 눈으로 눈물을 흘린다는데 믿어도 되겠냐고 말하자 화가 나서 패도를 끄집어내어 스스로 찔러 피를 내면서 이것도 한 줄기 눈물이라 했다. 부홍이 크게 놀라 회초리로 때리자 성격상 칼이나 창은 참겠지만 회초리로 맞는 것은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부홍이 부생이 패역하여 없애지 않으면 집안을 파괴할 것이라면서 부건에게 부생을 죽이라 했으나 숙부 부웅(符雄)의 만류로 부생은 목슴을 구했다. 그 외에 부생은 힘이 장사였으며 무예, 기마술에 뛰어난 솜씨를 보였고, 351년 아버지 부건이 전진 건국 후 회남왕(淮南王)에도 봉해졌다.
351년, 동진환온이 전진을 공격해오자 부생은 형 부장(苻萇), 숙부인 부웅과 함께 군대를 이끌고 환온을 물리치는 큰 공을 세웠다. 전쟁 중 태자인 부장이 전사하자 부건은 355년, 부생을 태자로 책봉하였다. 이듬해 아버지 부건이 병이 들었을 때 부청(苻菁)이 부생을 죽이고 황제가 되려 하였으나 모반은 실패하였다. 그리고 7월 10일 아버지 부건이 죽자 황제로 즉위했다.
하지만 부생은 늘 술에 취해 정사를 다스리지 않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폭정을 일삼았으며, 애꾸눈이었기에 나머지, 모자람, 치우침, 한 짝, 적음, 없음, 갖추지 못함 같은 말을 꺼려 잘못해 이런 말을 했다가 죽은 사람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즉위하자마자 그해가 지나기 전에 연호를 바꾸면 안 된다고 의논을 주관한 우복야 단순을 죽였다. 간신들의 참소를 믿고 356년에 승상 뇌약야, 사공 왕타, 낙주자사 두욱 등을 죽였으며, 태극전에서 억지로 사람들에게 술을 먹이지 않아 앉아만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이유로 상서령 신뢰를 죽였다.
삼보의 백성들을 이용해 다리를 만들게 했다가 간언한 금자광록대부 정굉을 죽였으며, 장안에서 재해가 일어났을 때 이에 대해 간언하 좌광록대부 강평을 죽였으며, 대추를 많이 먹고 병이 났다가 태의령 정연이 진찰해 다른 질병은 없고 대추를 너무 많이 먹었을 뿐이라 하자 성인도 아니면서 자신이 대추 먹은 것을 어찌 아냐면서 죽였다.
357년에 요양(姚襄)이 강족을 이끌고 전진을 공격해오자 부황미(苻黃眉)를 보내 막게 하였다. 부황미는 대승을 거두었고, 요양의 동생 요장(姚萇)까지 복속하는 큰 공도 세웠으나 돌아오는 건 부생의 모욕 뿐이였다. 그러자 부황미는 반란을 일으킬 준비를 하였으나 부생은 이를 알고 부황미를 비롯한 수많은 황족을 죽였다.
꿈에서 큰 물고기(魚)가 창포풀(苻)을 먹는 것을 보았고 장안에 동해의 큰 물고기가 용이 되었는데 남자는 모두 왕, 여자는 공이 되었다는 요언이 퍼졌는데, 꿈에 대해 어씨가 포와 관련된 부씨를 잡아먹은 걸로 해석해 태사, 녹상서사, 광녕공인 어준과 아들 일곱 명, 열 명의 손자를 죽였다.
그러자 대신들은 부견에게 부생을 죽이고 제위에 오를 것을 권하였고, 부생은 부견에게 폐위되어 월왕(越王)으로 봉해진 뒤, 곧 사망하였다.

[1] 살아 생전에 폐위되어 죽었기 때문에 황제로서 받은 시호나 묘호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