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영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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釜日映畫賞
1. 개요[편집]
부산일보사가 주최하는 영화 시상식이다.
1958년 3월 27일 부산 국제극장에서 제1회 시상식이 개최된 후 부산 지역 최대의 문화행사로 자리잡았으나 1970년대 들어 한국 영화계가 불황을 겪게 되면서 1973년 제16회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1996년 시작된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으로 부산이 영상 산업 도시로 부각되는 흐름 속에서 2008년 35년만에 부활하여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에 개최하고 있다.
국내 3대 영화상인 대종상(1962년), 청룡영화상(1963년), 백상예술대상(1965년)보다 먼저 시작하여 현존 국내 영화상 중에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영화상이다.
다만, 흔히 언급되는 것처럼 최초의 영화상은 아니다. 최초의 한국 영화상은 1955년 사망한 배우 이금룡(李錦龍)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붙인 금룡상(金龍賞)으로 1955년 10월 28일 제정되어 동년 12월 28일 제1회 금룡상 수상자가 선정되었으며, 1956년 1월 3일 시상식이 거행되었다.[1] 그러나 금룡상은 제2회 대회에서 아무도 심사위원 과반 득표라는 기준을 넘지 못해 시상 대상 없이 허무하게 끝났고 이후 재정 문제로 상 자체가 흐지부지 없어졌다. 그나마 제1회도 작품상도 없이 3명의 수상자가 전부라는 점에서 최초라는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존재감은 없다. 이외에도 1957년에는 (구)영평상[2] , 1958년에는 전남일보상[3] , 한국영화상[4] , 대종상의 전신인 우수국산영화상[5] 등이 있었다.
2. 역대 수상[편집]
2.1. 작품상·감독상[편집]
2.2. 주연상[편집]
2.3. 조연상[편집]
1959년 제2회부터 시상.
2.4. 신인상[편집]
1960년 제3회부터 시상.
3. 기록[편집]
- 감독상
- 남우주연상
- 여우주연상
- 남우조연상
- 여우조연상
- 트리플 크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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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회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작품상 없음. 감독상 이강천(피아골#영화). 시나리오상 없음. 연기상 노경희(막난이 비사). 녹음상 이경순(춘향전).[2] 지금의 영평상과는 주관 단체명까지 똑같지만 다른 상이다. 2회 시상 후 중단됨[3] 1회 시상 후 중단[4] 산업경제신문사 주최, 1회 시상 후 중단[5] 문교부 주관. 3회 시상 후 한국최우수영화상(1회)을 거쳐 대종상으로 개편됨.[6] 일부 언론에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나왔으나 주최측인 부산일보 기사에 따르면 '상록수'다.[7] 孔美都里. 본명은 공순경으로 재일교포다.[8] 1958년 잃어버린 청춘, 1959년 인생차압, 1963년 아낌없이 주련다, 1965년 잉여인간, 1972년 분례기[9] 1958, 1959년 2연속 수상[10] (1960년 비극은 없다, 1961년 박서방, 1962년 성춘향, 1965년 벙어리 삼룡, 1969년 카인의 후예)[11] 1960, 1961, 1962년 3연속 수상[12] 1959년 지옥화, 1962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6년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13] 1963년 연산군, 1968년 사격장의 아이들, 1970년 봄·봄, 1974년 소장수[14] 1959년 인생차압, 1966년 갯마을, 1968년 만선[15] 2017년 여우주연상 죽여주는 여자, 2010년 여우조연상 하녀, 1972년 신인상 화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