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구 을(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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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북구(대구광역시)/정치
북구의 금호강 북부(동서변동·연경지구[1] 와 칠곡지구) 지역에 있으며 3호선이 지나가는 지역구다. 20대 총선 전까지 북구 을 선거구의 관할이었던 복현동, 검단동은 갑 선거구로 이전됐다[2] . 현 국회의원은 국민의힘 소속의 김승수 의원이다.
홍의락 의원이 당선되기 전까지는 민주당계 정당 후보가 당선된 적이 없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칠곡지구 등 대규모 신도시가 개발되고 젊은 외지인들의 유입으로 인해 대구에선 보수세가 상대적으로 약한 축에 속하며, 인구 구성 역시 주로 가까운 구미, 칠곡으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이나 경상북도청에 직장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칠곡지구에 많이 거주한다.[3][4] 다만 2020년대에 들어 북구 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칠곡지구가 낮은 도심 접근성 및 신규 아파트의 공급 부족과 노후화로 서서히 고령화가 진행 중인데 비해 북구 갑 지역의 고성동, 칠성동, 침산동, 복현동 등지에서 대대적인 재개발, 재건축으로 토박이 고령층들이 떠나고 3040 외지인들이 들어오고 있어 장기적으로 갑구와 을구의 정치 성향이 뒤바뀔 가능성도 있다. 구미나 칠곡 등지의 산업단지 통근도 대구권 광역철도가 개통하면 갑구나 을구 모두 소요시간 면에서 큰 차이도 없게 되고 북구 갑에는 경북대학교 대구캠퍼스, 영진전문대학도 있고 대구 도심과도 가깝다.
20대 총선 당시 야권 무소속의 홍의락 후보와 새누리당 양명모 후보 간의 대결에서 홍의락 후보가 과반 이상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선거구이다. 외지인들의 유입 외에도 당시 복현동[5] 에 기반을 둔 양명모가 북구 을에 출마해서 불리했던 반면 홍의락은 이 지역 내에서 기반을 다져 유리했다.[6] 물론 같은 시기 김부겸이 수성구 갑에서 승리했지만, 김부겸은 3번이나 대구에서 도전했고, 20대 총선 당시 김문수를 꺾으며 이루어 낸 것이고, 당시 홍의락은 더불어민주당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컷오프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된 것이다. 이러한 선거 구도가 나온 이후,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도 북구 을을 격전지로 보고, 대구 북구 을 당협위원장이 되어서 상당히 신경 쓰는 눈치었으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참패에 따라 사퇴했다. 그리고 21대 총선을 앞두고 김재원 전 의원 역시 이 선거구에 관심을 가졌으나 컷오프되었다.[7]
다만 21대 총선에서는 다른 대구 지역구들과 비슷한 압도적인 득표율로 미래통합당 후보가 승리해서 민주당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험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구·남구[8] , 동구 을, 수성구 갑과 같이 민주당 후보가 30%를 넘긴 지역구였기에 대구에선 그래도 보수세가 덜한 지역이란 사실도 다시금 입증되었다.
한편 금호강 이남의 북구 갑과 달리 시민사회단체가 꽤 많이 활동해서 진보정당세도 강하다. 그래서 아직도 진보정당 후보가 당선된 적 없는 갑 지역과 달리, 민주노동당 - 진보신당 - 정의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정당 기초의원이 3선까지 했던 지역이다. 정의당 소속 이영재가 바로 여기에서 3선을 했던 인사다. 또한 21대 총선에서도 비록 홍의락 후보가 졌지만 대구에서 2번째로 높은 33.54%를 받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선거구 신설 후 당내 중진급이라고 할 수 있는 3선 이상 의원이 한 명도 나오지 않은 옆 북구 갑과 달리 안택수, 서상기라는 3선 의원을 배출한 지역구다. 21대 총선에서는 홍의락 의원이 3선에 도전했으나 김승수에게 패하며 재선에서 끝내게 되었다.
여담으로 김용태, 안택수 두 후보 다 서울대학교, 신문기자 출신이다. 두 후보 다 과거 민정계였으나 김용태는 조선일보 기자 시절부터 김영삼과 가까웠고, 14대 대선 국면에서 김영삼을 지지한 일명 신민주계였으며 문민정부에서 장관을 지내며 승승장구했지만 안택수 후보는 14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후 민자당을 탈당하고 이종찬의 새한국당, 야당 연합 공천 과정에서 민주당을 거쳐 자민련으로 합류한 반 YS에 가까운 인사였다.
안택수 전 의원의 회고록 '나의 도전' 에선 서상기 후보가 예비후보이던 당시 자신에게 찾아왔는데, 북구 갑에 출마하려고 하였는데 위에서 을구로 보냈다 말했다 한다. 실제로 서상기 후보의 고향인 산격동은 당시에도 갑구에 속했다.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홍의락 후보가 넉넉한 표차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다. 심지어 정의당 후보가 8% 넘는 득표를 올려 새누리당 양명모 후보는 40%도 넘기지 못하고 30%대 득표율을 기록하고 말았다.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도 동정표를 준 것, 서상기 의원에 대한 심판론이 컸다.
한편 북구 을 탈환을 노리는 미래통합당은 지난 총선에 출마했던 양명모 당협위원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이후 당협위원장을 맡은 홍준표 전 대표도 지방선거 패배로 떠난 후 무주공산이 된 채 9명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김승수 전 대구광역시 행정부시장, 권오성 전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장, 서상기 대한체육회 상임고문, 이범찬 전 국가정보원 차장보, 주성영 변호사, 황영헌 전 국회 정책연구위원, 이달희 전 경상북도청 정무실장, 강연재 국민통합연대 대변인, 장갑호 학원장이 나왔다. 이 와중에 김재원 정책위의장이 기존 자신의 지역구인 상주시·군위군·의성군·청송군를 떠나 북구 을에 출마할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컷오프 이후 서울시 중랑구 을 경선을 치르게 되면서 무산되었다. 결국 치열한 경선 끝에 김승수 전 대구광역시 행정부시장이 낙점되었다.
정의당에선 지난 총선 때 북구 을에 출마했던 조명래 후보가 북구 갑으로 지역구를 옮기고, 이영재 지역위원장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후보 등록이 완료된 후, 진행된 북구 을 선거구 토론회 도중 미래통합당 공천에 반발해 탈당하여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후보에 등록 했던 주성영 후보가 급작스럽게 사퇴하고 미래통합당 김승수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주성영 후보가 지역구 첫 여론조사에서 선거비용 보전선을 확보(15.5%)할 정도로 지지가 적지 않은 편이었기에 김승수 후보에게는 호재가, 그만큼 안그래도 지지율에서 상당한 격차로 뒤쳐져 있는 민주당 홍의락 후보에게는 상당한 악재가 될 전망. 투표용지 인쇄 전에 사퇴했기에 찍는 란에 '사퇴'라고 써졌다. 그리고 실제 투표 결과 더블스코어 격차로 김승수 후보가 무난히 승리했다.[11] 세부적으로 보면 동서변지구가 있어서 젊은 인구가 많았던 무태조야동에서 무려 64% 이상의 몰표가 나왔고, 나머지 지역에서도 60%대 후반의 압도적인 득표율이 나왔고, 관외사전투표에서도 700여표 차이로 김승수 후보가 이김으로써 사실상 무게추가 김승수 후보로 기울어졌다. 하지만 홍의락이 얻은 33.54%는 21대 총선에서 김부겸 다음으로 2번째로 높은 득표율이기에 그나마 대구에서 북구 을 지역이 그나마 덜 보수적이란 것도 입증되었다.
한편, 낙선한 홍의락은 선거 이후에 권영진 대구광역시장의 부탁으로 대구시 경제부시장을 맡게 되었다. 목포에서 낙선한 뒤, 국가정보원장에 임명된 박지원과 비슷한 사례이다.[12] .
1. 개요[편집]
북구의 금호강 북부(동서변동·연경지구[1] 와 칠곡지구) 지역에 있으며 3호선이 지나가는 지역구다. 20대 총선 전까지 북구 을 선거구의 관할이었던 복현동, 검단동은 갑 선거구로 이전됐다[2] . 현 국회의원은 국민의힘 소속의 김승수 의원이다.
홍의락 의원이 당선되기 전까지는 민주당계 정당 후보가 당선된 적이 없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칠곡지구 등 대규모 신도시가 개발되고 젊은 외지인들의 유입으로 인해 대구에선 보수세가 상대적으로 약한 축에 속하며, 인구 구성 역시 주로 가까운 구미, 칠곡으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이나 경상북도청에 직장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칠곡지구에 많이 거주한다.[3][4] 다만 2020년대에 들어 북구 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칠곡지구가 낮은 도심 접근성 및 신규 아파트의 공급 부족과 노후화로 서서히 고령화가 진행 중인데 비해 북구 갑 지역의 고성동, 칠성동, 침산동, 복현동 등지에서 대대적인 재개발, 재건축으로 토박이 고령층들이 떠나고 3040 외지인들이 들어오고 있어 장기적으로 갑구와 을구의 정치 성향이 뒤바뀔 가능성도 있다. 구미나 칠곡 등지의 산업단지 통근도 대구권 광역철도가 개통하면 갑구나 을구 모두 소요시간 면에서 큰 차이도 없게 되고 북구 갑에는 경북대학교 대구캠퍼스, 영진전문대학도 있고 대구 도심과도 가깝다.
20대 총선 당시 야권 무소속의 홍의락 후보와 새누리당 양명모 후보 간의 대결에서 홍의락 후보가 과반 이상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선거구이다. 외지인들의 유입 외에도 당시 복현동[5] 에 기반을 둔 양명모가 북구 을에 출마해서 불리했던 반면 홍의락은 이 지역 내에서 기반을 다져 유리했다.[6] 물론 같은 시기 김부겸이 수성구 갑에서 승리했지만, 김부겸은 3번이나 대구에서 도전했고, 20대 총선 당시 김문수를 꺾으며 이루어 낸 것이고, 당시 홍의락은 더불어민주당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컷오프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된 것이다. 이러한 선거 구도가 나온 이후,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도 북구 을을 격전지로 보고, 대구 북구 을 당협위원장이 되어서 상당히 신경 쓰는 눈치었으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참패에 따라 사퇴했다. 그리고 21대 총선을 앞두고 김재원 전 의원 역시 이 선거구에 관심을 가졌으나 컷오프되었다.[7]
다만 21대 총선에서는 다른 대구 지역구들과 비슷한 압도적인 득표율로 미래통합당 후보가 승리해서 민주당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험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구·남구[8] , 동구 을, 수성구 갑과 같이 민주당 후보가 30%를 넘긴 지역구였기에 대구에선 그래도 보수세가 덜한 지역이란 사실도 다시금 입증되었다.
한편 금호강 이남의 북구 갑과 달리 시민사회단체가 꽤 많이 활동해서 진보정당세도 강하다. 그래서 아직도 진보정당 후보가 당선된 적 없는 갑 지역과 달리, 민주노동당 - 진보신당 - 정의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정당 기초의원이 3선까지 했던 지역이다. 정의당 소속 이영재가 바로 여기에서 3선을 했던 인사다. 또한 21대 총선에서도 비록 홍의락 후보가 졌지만 대구에서 2번째로 높은 33.54%를 받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선거구 신설 후 당내 중진급이라고 할 수 있는 3선 이상 의원이 한 명도 나오지 않은 옆 북구 갑과 달리 안택수, 서상기라는 3선 의원을 배출한 지역구다. 21대 총선에서는 홍의락 의원이 3선에 도전했으나 김승수에게 패하며 재선에서 끝내게 되었다.
2. 역대 국회의원 목록 및 역대 선거 결과[편집]
3. 북구 (13~14대)[편집]
3.1. 제13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3.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4. 북구 을 (15대~현재)[편집]
4.1. 제15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선거구 분리 전 북구 단일 선거구에서 내리 4선을 지내고 민주자유당 원내총무, 내무부장관도 역임한 신한국당 김용태 후보와 정치 신인[9] 자유민주연합 안택수 후보가 접전을 벌였고, 출구조사에서는 김용태 후보가 앞섰으나 당시 대구의 반 신한국당 정서로 인하여 자민련 안택수 후보가 승리했고, 김용태는 이후 YS의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하고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구광역시장 출마를 고려하다가 포기하고 정계를 완전히 떠났다. 승리한 자유민주연합 안택수 후보는 자민련 대변인에 임명되지만 이후 DJP 연합에 반대하여 신한국당으로 간다.
여담으로 김용태, 안택수 두 후보 다 서울대학교, 신문기자 출신이다. 두 후보 다 과거 민정계였으나 김용태는 조선일보 기자 시절부터 김영삼과 가까웠고, 14대 대선 국면에서 김영삼을 지지한 일명 신민주계였으며 문민정부에서 장관을 지내며 승승장구했지만 안택수 후보는 14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후 민자당을 탈당하고 이종찬의 새한국당, 야당 연합 공천 과정에서 민주당을 거쳐 자민련으로 합류한 반 YS에 가까운 인사였다.
4.2. 제16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4.3. 제17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탄핵 역풍으로 초반 여론조사에선 한나라당 안택수 후보와 열린우리당 배기찬 후보가 접전을 벌였지만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던 정동영이 노인 폄하 논란을 일으켜 결국 본선에서 안택수 후보가 무난하게 승리했다.
4.4. 제18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현역 안택수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하고 비례대표 서상기 의원이 공천을 받았다. 안택수 의원이 공약했던 경북대사대부고 칠곡 이전이 유치전에서 실패해 달서구 이전[10] 으로 결정되고, 대구혁신도시 입지 선정에서 검단동이 동구 신서동에 밀려 탈락하고 경부고속도로 검단동 나들목 건설에도 실패하며 민심이 좋지 않았던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안택수 전 의원의 회고록 '나의 도전' 에선 서상기 후보가 예비후보이던 당시 자신에게 찾아왔는데, 북구 갑에 출마하려고 하였는데 위에서 을구로 보냈다 말했다 한다. 실제로 서상기 후보의 고향인 산격동은 당시에도 갑구에 속했다.
4.5. 제19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4.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0대 총선 때부터 인구 상한선 초과로 복현동과 검단동이 북구 갑으로 이관되었다. 당시 복현동과 검단동을 북구 갑에 이관하지 않고 북구 을 일부를 북구 병으로 분리하자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무산됐다.#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홍의락 후보가 넉넉한 표차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다. 심지어 정의당 후보가 8% 넘는 득표를 올려 새누리당 양명모 후보는 40%도 넘기지 못하고 30%대 득표율을 기록하고 말았다.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도 동정표를 준 것, 서상기 의원에 대한 심판론이 컸다.
4.7. 제21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더불어민주당에선 별다른 지역구 도전자도 없는 형국이라 현역 홍의락 의원이 예비후보로 등록하면서 재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대 총선과 달리 무소속 출마를 선택하지는 않고,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한다.
한편 북구 을 탈환을 노리는 미래통합당은 지난 총선에 출마했던 양명모 당협위원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이후 당협위원장을 맡은 홍준표 전 대표도 지방선거 패배로 떠난 후 무주공산이 된 채 9명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김승수 전 대구광역시 행정부시장, 권오성 전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장, 서상기 대한체육회 상임고문, 이범찬 전 국가정보원 차장보, 주성영 변호사, 황영헌 전 국회 정책연구위원, 이달희 전 경상북도청 정무실장, 강연재 국민통합연대 대변인, 장갑호 학원장이 나왔다. 이 와중에 김재원 정책위의장이 기존 자신의 지역구인 상주시·군위군·의성군·청송군를 떠나 북구 을에 출마할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컷오프 이후 서울시 중랑구 을 경선을 치르게 되면서 무산되었다. 결국 치열한 경선 끝에 김승수 전 대구광역시 행정부시장이 낙점되었다.
정의당에선 지난 총선 때 북구 을에 출마했던 조명래 후보가 북구 갑으로 지역구를 옮기고, 이영재 지역위원장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후보 등록이 완료된 후, 진행된 북구 을 선거구 토론회 도중 미래통합당 공천에 반발해 탈당하여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후보에 등록 했던 주성영 후보가 급작스럽게 사퇴하고 미래통합당 김승수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주성영 후보가 지역구 첫 여론조사에서 선거비용 보전선을 확보(15.5%)할 정도로 지지가 적지 않은 편이었기에 김승수 후보에게는 호재가, 그만큼 안그래도 지지율에서 상당한 격차로 뒤쳐져 있는 민주당 홍의락 후보에게는 상당한 악재가 될 전망. 투표용지 인쇄 전에 사퇴했기에 찍는 란에 '사퇴'라고 써졌다. 그리고 실제 투표 결과 더블스코어 격차로 김승수 후보가 무난히 승리했다.[11] 세부적으로 보면 동서변지구가 있어서 젊은 인구가 많았던 무태조야동에서 무려 64% 이상의 몰표가 나왔고, 나머지 지역에서도 60%대 후반의 압도적인 득표율이 나왔고, 관외사전투표에서도 700여표 차이로 김승수 후보가 이김으로써 사실상 무게추가 김승수 후보로 기울어졌다. 하지만 홍의락이 얻은 33.54%는 21대 총선에서 김부겸 다음으로 2번째로 높은 득표율이기에 그나마 대구에서 북구 을 지역이 그나마 덜 보수적이란 것도 입증되었다.
한편, 낙선한 홍의락은 선거 이후에 권영진 대구광역시장의 부탁으로 대구시 경제부시장을 맡게 되었다. 목포에서 낙선한 뒤, 국가정보원장에 임명된 박지원과 비슷한 사례이다.[12] .
4.8. 제22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1] 단, 동서변동과 연경지구는 칠곡지구와는 다른 생활권이다. 함지산이 동서변동, 연경지구와 칠곡지구를 분리하고 있어 국우터널 외에는 교통로가 없어 금호강 이남의 산격동, 복현동과 같은 생활권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구강북경찰서가 칠곡지구뿐 아니라 이들 지역까지 모두 관할하고 있고, 2030 대구도시기본계획에서도 칠곡지구와 같이 분류되어 있는 등 어느 정도 칠곡지구와도 생활권을 공유한다.[2] 사실 이게 맞다. 검단동과 복현동은 칠곡과 행정구역만 북구로 같고 생활권상 별개의 지역이다. 복현동과 검단동은 산격동, 대현동 생활권이다. 처음 북구가 갑/을로 분구된 15대 총선 당시엔 금호강을 기준으로 나누기엔 인구 균형이 맞지 않아서 금호강 이남 동네를 붙였는데 이게 19대까지 이어진 것.[3] 타 지역 출신도 많지만 대경권 주민들이 칠곡지구나 동서변지구로 온 경우도 많다. 주로 대구광역시 서구, 군위군, 경상북도 안동시 의성군, 칠곡군 등 경북 서북부 지역에서 유입되는 경우가 많다. 개발 초창기에는 금호강 이남 북구에서도 유입되는 인구가 많았지만 2010년대 이후 고성동, 칠성동, 침산동, 복현동 등지에 신축 아파트가 대거 들어서며 유입이 꽤 줄어들었다.[4] 구미나 왜관의 경우는 도로상거리로 다사읍이 가장 가깝다.[5] 19대 총선까지 북구 을 소속이었고 20대 총선부터는 갑구로 이관되었다.[6] 양명모도 생활권과 선거구 조정에 맞춰 19대 총선에서 북구 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등 북구 갑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서상기를 밀어낸 빈 자리에 전략공천되어 북구 을에 출마했다.[7] 이 지역구 내에는 김재원과 같은 의성군 출신 주민들이 많다. 의성과 가깝고 의성이 과거 경북의 군 중 제법 규모가 있었기 때문이다.[8] 이 쪽은 이재용의 인지도로 인해 국민의힘의 득표율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다. 젊은 인구나 외지인이 많다는 이유로 그런 것이 아니다.[9] 다만 13대 총선과 14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후보로 예천군에 출마하려다가 유학성에 밀려 공천받지 못했으며, 1993년 동구 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경력이 있다.[10] 현재 호산고등학교 자리에 들어설 예정이었으나, 대봉동 부지의 감정가가 예상보다 낮게 책정되어 신축교사 부지 매입비, 건축비 충당이 불가능해 무산되었다.[11] 선거 유세전에서 홍의락 후보는 굳은 얼굴로 지나가는 차량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선거 전날 김승수 후보는 가족 전부 다 데리고 선거차에 올라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이미 선거 유세 막판 쯤 되면 여론조사든 분위기든 승패는 결정난 거나 다름이 없었고 두 후보도 내심 결과를 예측했을 것이다.[12] 차이가 있다면, 홍의락의 경우, 해당 직급이 국회의원일 때보다 낮을 뿐더러 당시, 코로나19 상황에서 야당 소속 시장인 권영진의 지지율이 낮은데다가 김부겸과 홍의락의 낙선으로 지역에서 정부에 목소리를 대변할 인물이 사라진 것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고, 박지원은 당시 경색된 남북관계로 인해서 외교, 통일, 안보라인에 대한 교체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고심 끝에 선택한 인사이자, 낙선 전까지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야당 의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