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 조약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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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북대서양 조약 기구(北大西洋條約機構)는 냉전이 시작된 1949년, 집단안전보장조약인 북대서양 조약에 의해 탄생한 북미와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의 군사동맹이다. 본부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위치한다. 수장은 북대서양 조약 기구 사무총장으로, 현임 사무총장은 옌스 스톨텐베르그[7] 이다.
2. 명칭[편집]
흔히 쓰이는 두문자어인 NATO는 영어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의 줄임말로, 언어에 따라 나토(/ˈnaːto/) 또는 네이토(/ˈneɪ.təʊ/)로 읽는다. NATO 표기를 사용하는 나라는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등 게르만어군에 속한 나라들이다.
반대로 프랑스, 스페인[8] 등 로망스어군에 속한 일부 국가에서는 'Organisation du Traité de l'Atlantique Nord'를 줄인 OTAN으로 읽는다.[9] 다만 로망스어군이라도 이탈리아[10] , 포르투갈, 루마니아 같은 경우 어순과 상관없이 두문자어를 영어와 마찬가지로 NATO로 칭한다. 때문에 특정 국적이 아닌 나토군 소속으로 참전하는 병력이나 공동소유하는 기체의 경우 NATO-OTAN이라는 두 개의 식별문을 모두 표기한 휘장을 사용한다.
3. 역사[편집]
3.1. 냉전과 창설[편집]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소련의 물밑 작업으로 1~2년 사이에 동유럽이 도미노처럼 모두 공산화되자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큰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한편 패전국 독일은 연합국이 4분할 점령하고 있었는데, 미영불 3국은 독일에서 군정을 끝내고 민주적 총선을 통해 새로운 민주 정부를 만들어 독립시키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소련은 타 동유럽 지역에서 했던 방식과 마찬가지로 이미 1946년 독일의 자국 점령 지역, 즉 동독에 사회주의통일당(SED)이라는 괴뢰 공산당을 만들어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부터 있던 기존 독일 공산당과 독일 사회민주당 등 동독의 좌파 세력을 복속 혹은 숙청하여 동독을 장악한 상태였으며 당연히 소련은 독일에 민주적 총선을 실시하여 독립시키자는 미영불 3국의 방안을 반대하였다. 결국 독일 총선 및 독립 방안이 미영불 측과 소련의 대립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며 좌초되고 있었다.
1947년이 되자 소련이 동독을 정치적으로 장악한 것이 자명해졌고, 이러한 상황에서 소련이 동독 지역에서 독일의 화폐인 라이히스 마르크화를 일방적으로 평가절하하는 조치를 취하자, 미영불은 이에 대항하여 3개국 점령 지역, 즉 서독 지역에서 아예 마르크화라는 새로운 화폐를 만들어 유통시켰다. 이로써 서독과 동독이 경제적으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서독의 마르크화가 서베를린에도 유통되자, 소련은 이에 반대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서베를린을 모두 차지할 목적으로 베를린 봉쇄를 단행했다. 당시 서베를린은 동독 한복판에서 수십만 명의 소련군과 동독군에 포위되어 있는 상태였으며, 소련은 서베를린에 대한 모든 물자 및 전기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아사 위기에 처한 서베를린이 소련과 동독에 굴복할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국을 필두로 영국, 프랑스, 그리고 캐나다, 호주 등 서방 국가들은 베를린 공수작전을 펼치며 220만 서베를린 시민들을 위한 막대한 생필품을 수송기를 통해 실어날랐다.
베를린 봉쇄로 소련의 팽창주의와 군사적 위협이 서방으로까지 확대되자 위협을 느낀 서유럽 국가들은 군사적 동맹을 창설하기로 긴급히 합의하고, 이에 양측 간에 냉전이 시작되며 베를린 봉쇄가 진행 중이던 1949년 4월 4일, 북대서양 조약이 조인되어 나토가 창설되었다. 8월 24일부터 조약의 효력이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일반적으로 4월 4일을 창설일로 본다. NATO 창설 국가는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등이었다. 처음에는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북미와 서부·중부 유럽 국가들 중심으로 창설 협의가 시작되었는데, 베를린 봉쇄로 위기감을 느낀 북유럽과 남유럽 국가들도 대거 참여를 희망해오면서 창설국이 늘어나서 중립국(스위스, 오스트리아, 스웨덴)을 제외한 서유럽 국가 대부분이 NATO 창설에 참여하게 되었다.
당사국은 유럽 또는 북미에서 발생하는 회원국 중 하나 이상에 대한 무력 공격이 회원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된다는데 동의하며, 따라서 그러한 무력 공격이 발생하는 경우 유엔 헌장 제51조에 의해 인정된 개별적 혹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북대서양 지역의 안보를 복원 및 유지하기 위해 무력의 사용을 포함한 필요하다고 간주되는 행동을 개별적으로 혹은 다른 당사국들과 협력하여 실행함으로써 당사국을 지원할 것에 합의한다. 이러한 무력 공격과 그 결과 취해진 모든 조치는 즉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조치는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 종료된다.
북대서양 조약 기구 헌장 제5조
이후 1952년 2월 18일 그리스와 튀르키예가 가입했다. 튀르키예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대가 도래하자 역사적으로 앙숙이었던 소련의 강력해진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서구 진영에 편입되기 위해 외교적인 노력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1950년 한반도에서 6.25 전쟁이 터지자 튀르키예는 지체없이 UN군의 일원으로 한국에 파병을 결정했다. 서구 사회로부터 한국전쟁 참전의 공로를 인정받은 튀르키예는 지리적으로 아시아 국가에 가까움에도 NATO에 가입이 승인되었다.
1955년 5월 9일, 그동안 소련의 눈치를 보느라 가입을 보류하고 있던 서독의 NATO 가입이 공식적으로 승인되었다.
NATO는 소련에 대항하는 서방의 군사동맹이지만 초기에는 그러한 성격이 명확하지 않았다. 소련은 유럽의 안보에 이바지하고 싶다며 1954년 3월 나토 가입을 신청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일언지하에 거절된 것도 아닌 당시 회원국 간 격론 끝에 반려되었다. 1953년 3월 5일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한 후 소련 정세가 급변하고 있었다. 일단은 게오르기 말렌코프를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가 들어섰지만, 그 밑에서 스탈린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차기 후보들의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권력을 두고 경쟁관계인 이들이었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숨도 제대로 못 쉬던 스탈린 시절에서 벗어나 억압적인 사회분위기도 풀고, 서방과의 긴장 관계도 풀고, 그동안 등한시했던 농업, 경공업도 양성해서 조금은 살만한 나라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때마침 중앙아시아에서 유전이 대거 터지자 석유 등 자원 수출을 위해서라도 서방과 화해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었다. 그래서 굴라크 수용자들을 석방하고 북한, 중국을 압박해서 서둘러 6.25 전쟁 휴전협정을 체결하게 하는 등 여러모로 미국에게 화해의 손짓을 보냈다. 소련이 나토 가입 신청 의사를 내비친 것도 이러한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었으며 1954년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도 소련에 대한 변화와 개방에 대한 기대가 잠시 있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소련의 권력 암투는 라브렌티 베리야의 처형 이후 흐루쇼프가 후계자 자리를 이어받는 것으로 빠르게 정리되어 갔고, 이후 소련은 동유럽의 민주화 움직임을 탄압하고 군비를 증강하는 등 냉전이 더욱 첨예해질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NATO는 1955년 5월 9일, 5년간 미뤄졌던 서독의 NATO 가입을 승인했다. 그러자 소련은 NATO가 반공 동맹을 형성했다고 맹비난하면서 불과 닷새 후인 5월 14일, 동유럽 위성국가들을 모아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창설했다. 이 구 바르샤바 조약기구 소속 국가들은 소련 붕괴로 인한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나토로 갈아타는 아이러니가 일어난다.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프란시스코 프랑코에 의해 중립국을 표방했던 스페인은 그의 사후 1981년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1982년 5월 30일 NATO에 가입하였다.
1990년 10월 3일 독일이 통일되었고, 당일부로 동독군이 바르샤바 조약 기구를 탈퇴함과 동시에 서독의 독일연방군에 흡수 통합되어 NATO에 흡수되었다. 소련제 무기 일색인 구동독군이 NATO에 들어오면서 그동안 서방 국가들과 전세계 밀리터리 매니아들이 궁금해 하던 각종 소련제 무기들이 점차 베일을 벗고 실제 성능이 공개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적지 않은 밀리터리 매니아들이 실망하기도 했다.
NATO군의 실전 참전은 냉전 시기에는 일어나지 않았고, 냉전이 끝난 후 1990년대 지옥도가 펼쳐졌던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코소보 전쟁 때 결국 NATO군이 개입했다.
3.2. 탈냉전[편집]
1990년대 초에 냉전은 끝났고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1991년 7월 1일 공식적으로 해체를 선언했다. 냉전이 끝나가면서 동독이 소멸하고 독일이 통일될 때, 미국과 소련은 NATO의 영역을 당시(1990년 수준)에서 확장하지 않는다는, 명문화되지 않은 약속을 했다.관련 기사
그러나 이와는 달리 NATO는 동유럽으로 확장되었다. 미국이 처음부터 NATO 확장에 긍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임기 초인 1993년 6월 10일 NATO 외무장관들과 개최된 회의에서 미국의 대표로 나온 국무장관 워렌 크리스토퍼(Warren Christopher)는 "언젠가 적절한 시기에 나토를 확장시킬 수는 있지만 현재의 의제는 아니다("In appropriate time, we may choose to enlarge NATO membership. But this is not now on the agenda.”)라면서 나토의 확장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나토의 확장보다 우크라이나의 비핵화가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 발언하였다. 나토의 확장은 자동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나토와 러시아간 완충지대(buffer)로 설정시키는데 이로 인하여 우크라이나의 비핵화가 무산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1994년 1월 11일에 개최된 백악관 각료들과 중부 유럽 외무장관들과의 회의에서, 러시아의 팽창에 큰 경계심을 가지고 있던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외무장관이 나토에 즉각적으로 가입하고 싶다고 요청하였지만 백악관 각료들은 이에 대해 러시아가 개혁에 성공해서 좋은 곰(good bear)이 될지, 아니면 팽창주의적인 나쁜 곰(bad bear)이 될지 지켜보자'면서 이들 국가의 나토 가입 요구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입장을 바꾸고 NATO를 동유럽으로 확장했다. 빌 클린턴 정부가 나토 확장론으로 급격히 기울게 된 원인으로는 다음이 있다.
-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역사적으로 러시아에 호되게 당한 동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팽창주의에 대해서 엄청난 염증을 느끼며 끈질기게 NATO가입을 요구했다. 이들 나라가 소련-러시아에 원한을 가지게 된 계기는 큰 사건만 대충 살펴봐도 카틴 학살, 발트 3국 침공, 프라하의 봄, 부다페스트 공방전, 헝가리 혁명 같은 것들이 있다.
- 보스니아 전쟁처럼 NATO가 아닌 나라에서 전쟁과 대량학살 사태가 벌어졌을 때 미국과 NATO가 무력하게 아무런 군사적 개입을 할 수 없었다.
- 소련이 무너지고 세워진 러시아 연방의 혼란도 영향을 미쳤다. 제1차 체첸 전쟁처럼 러시아와 그 주변국과의 갈등이 현실화되었는데 러시아가 이 갈등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또한 1993년 12월 거행된 러시아 총선거에서 러시아 극우주의 정당인 러시아 자유민주당이 최대 의석을 차지했다.
- 1994년 12월 실시된 미국 상원, 하원 선거에서 나토 팽창주의 정책을 추구하던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을 싹쓸이함으로써 나토 확장 정책을 펼치는 것은 미국 국내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이런 미국의 요구에 가장 적극적으로 응했던 것은 독일의 수상 헬무트 콜이었다. 재밌는 점은 헬무트 콜 역시 처음에는 나토 확장론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994년 1월 개최된 나토 회의에서 헬무트 콜은 "동유럽국들에게 지원은 해줄 수 있지만 나토 가입은 허용할 수는 없다"면서 공개적으로 나토 확장에 반대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그랬던 그도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다. 그 이유는 다음이 있다.#
- 보스니아 전쟁으로 인한 대량 인종학살과 그로 인한 난민 발생이 독일에 영향을 미쳤다. 독일에도 보스니아 난민이 쏟아졌기 때문. 1994년 12월 5일 헬무트 콜과 빌 클린턴 사이의 진행된 회담에 따르면 보스니아 전쟁 등 유고슬라비아에서 촉발된 분쟁과 민족학살로 인하여 독일에는 이미 40만명의 난민이 온 상태였다고 한다. #
- 콜은 친서방파인 당시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이 군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겼다. 헬무트 콜이 빌 클린턴과의 회담에서 얘기한 에피소드로, 러시아가 분쟁중인 국가에 폭격을 계속하자 헬무트 콜은 보리스 옐친에게 전화를 걸어 폭격을 중지하라고 요청한다. 보리스 옐친은 이에 응하여 폭격을 당장 멈추었지만 24시간이 지나자 폭격은 다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때 헬무트 콜은 보리스 옐친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러시아 군부가 보리스 옐친의 통제를 점차 이탈하는 것이 명백해 보였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헬무트 콜 역시 빌 클린턴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나토 동진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1999년 3월(체코, 헝가리, 폴란드)과 2004년 3월(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두 차례에 걸쳐 구 동구권 국가들이 NATO에 합류했다[11] .
2009년에는 크로아티아와 알바니아가 NATO에 가입했으며, 2017년 몬테네그로, 2020년에 북마케도니아가 NATO에 가입했다.
3.3. 신냉전[편집]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냉전 시기 중립국의 위치를 지켰던 스웨덴과 핀란드가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2022년 가입 신청서를 냈다. 2023년 3월 30일 핀란드의 가입을 튀르키예가 승인하며 회원국 전원이 핀란드의 나토가입을 승인했고 몇가지 행정절차 후 4월 4일 공식적으로 핀란드가 나토의 31번째 회원국으로 추가되었다. 스웨덴은 인준절차를 밟고 있다.
또한 나토는 대서양을 넘어 태평양의 또 다른 잠재적 적국 중국과의 군사적 대립에 대비하기 위해 2022년부터 대한민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4개국을 별도의 파트너 그룹으로 지정하여 지속적인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4개국 정상 및 장·차관급 회의 정례화, 4개국을 관할하는 주 일본 나토 연락사무소 개설 추진 등이 대표적 예시.[12]
4. 회원국[편집]
- 1955년 가입
- \ [21]
- 1982년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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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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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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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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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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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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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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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국 비준 절차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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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몰타, 몰도바, 키프로스 등은 NATO 회원국과 밀접하게 붙어있지만 NATO 회원국이 아니다.[22][23]
4.1. 회원국 정상[편집]
5. 협력국[편집]
5.1. 평화를 위한 동반자국 (PfP)[편집]
평화를 위한 동반자국 'PfP'(Partnership for Peace)#
냉전 해체후 NATO가 비(非) NATO국가들과 체결한 파트너쉽 협정이다. NATO와 파트너국간에는 훈련, 교육, 재난대처, 과학, 환경 등에 관한 군사적 교류를 수행한다.
빌 클린턴 등 미국 정치인에 의하여 제안된 이 아이디어는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천재적(genius)이라는 극찬을 받았는데 유럽 내에 또다른 경계를 설정하지 않으면서도 평화를 추구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토국과 비나토국을 대등한 동반자(partner) 관계로 설정시키는 점에서 러시아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형식이었기 때문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만약 러시아가 NATO에 진짜 가입하게 된다면, 러시아 군대는 다른 나토국 군대와 마찬가지로 실질적으로 미군의 지휘를 받게 되는데 이는 러시아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폴란드, 체코, 헝가리처럼 러시아에 강한 위협을 느껴 하루빨리 NATO에 가입하고자 했던 동유럽국가들은 NATO에 정식 가입되기에 앞서 PfP관계를 통하여 NATO와 군사적 교류를 트는 것으로서 NATO에 소속되고자 했다. 이후에도 NATO에 가입했던 대부분의 국가들인 루마니아, 발트 3국,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등은 일단 PfP에 가입하는 것으로 NATO와 관계를 텄고 차후 정식으로 NATO에 가입함과 동시에 PfP를 탈퇴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처럼 PfP 회원국간 NATO에 대한 태도가 달랐기 때문에 1994년 당시 미국과 러시아가 PfP를 어떤 성격이라고 이해하고 서로를 이해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다소 있는 편이다. 백악관 기밀해제자료 참고.
후일 NATO와 러시아의 관계가 나빠졌을 때도 NATO와 러시아는 PfP관계로서 많은 교류를 수행했다. 속내야 어떻든 양자가 표면에 내세우는 명분은 어디까지나 평화였기 때문에 '평화를 위한 동반자적 관계'를 굳이 대놓고 거부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0년과 2020년에 NATO 해군과 러시아 해군은 합동훈련을 수행하였는데l# 이는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과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이 발생한 이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2021년~2022년중에는 NATO와 러시아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2021년 10월, 러시아는 모스크바내 NATO 사무실을 폐쇄하고 NATO는 브뤼셀에서 러시아 외교관 8명을 추방했다. 그리고 2022년 2월부터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었다. 나토는 다시 러시아를 주된 적국으로 설정해놓게 되었다.
다만, 소련 붕괴 이후 해빙 무드를 타고 생성되었던 PfP였던만큼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짐에 따라 점차 존재감이 희석되고 있으며 자금 지원 역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줄고 있어서 앞날이 밝지 않은 편이다.
아래는 현재 PfP 회원국이다.
- \ (1994년 3월 16일 가입)
- \ (1995년 4월 26일 가입후 탈퇴, 2008년 4월 3일 재가입)
- \ (1995년 1월 11일 가입)
- \ (2006년 12월 14일 가입)
- \ (2006년 12월 14일 가입)
- \ (1996년 12월 11일 가입)
- \ (1994년 5월 9일 가입)
- \ (1994년 10월 5일 가입)
- \ (1999년 12월 1일 가입)
- \ (1994년 5월 4일가입)
- \ (1994년 7월 13일 가입)
- \ (1994년 2월 8일 가입)
- \ (1995년 2월 10일 가입)
- \ (1994년 3월 23일 가입)
- \ (1994년 5월 27일 가입)
- \ (1994년 6월 1일 가입)
- \ (2002년 2월 20일 가입)
- \ (1994년 5월 10일 가입)
참고로 키프로스와 코소보 역시 각각 2011, 2012년에 PfP에 가입 신청을 하였으나 다른 NATO 구성국(튀르키예, 그리스, 루마니아, 스페인 등)의 반대로 보류되고 있다.
5.2. 지중해 대화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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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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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이스탄불 협력 이니셔티브 국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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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글로벌 파트너국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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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22년 5월 5일 아시아 최초로 'NATO 사이버방위센터(CCDCOE)' 정회원에 가입했다. 비 나토 국가로는 다섯번째이며, 정회원 신규 가입국 중 나토 회원국이 아닌 유일한 국가였다. 현재에는 대한민국 가입 이후 다른 국가들도 더 가입했다. 대한민국의 국정원은 이번 정회원 가입으로 향후 나토가 주관하는 합동훈련·정책연구에 참여하게 된다.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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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 AP4[편집]
글로벌 파트너국가 가운데 대한민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4개국은 아시아-태평양 4개국(Asia-Pacific 4, AP4)으로 불리기도 한다. 중국의 전랑외교 및 러시아 옹호 등으로 인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NATO는 활동 반경을 기존의 북아메리카 - 북대서양 - 유럽 지역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넓히는 동진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22년부터 NATO에서 해당 4개국을 정상회의에 초청하기 시작했고, 나토 회의 기간 중 4개국 정상회동도 열리기 시작했다.
2022년 첫 AP4 정상회동은 특별한 의제 없이 회동했지만, 2023년 AP4 정상회동은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이 사회를 맡아 회동을 진행했다. 4개국이 일회성이 아닌 2년 연속으로 NATO 회의에 초대되어 AP4 정상회담이 열린 것으로 보아, 앞으로도 매년 NATO 회의 때마다 AP4 회동이 정례적으로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AP4 국가들은 NATO를 연결고리로 하고 있으며, 4개국끼리 별도의 협의체를 구성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관측된다.# #
참고로 Asia-Pacific 4 또는 AP4라는 표현은 한국 언론에서만 쓰이는 표현이 아니다. 대한민국 외교부, 일본 외무성, 니혼게이자이 신문, 미국 더 디플로맷(The Diplomat), 미국평화연구소(U.S. Institute of Peace) 등 외교가나 외신에서 해당 표현이 사용된 용례를 여러 건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아직까지 전 세계 언론에서 보편적이고 흔히 쓰이는 표현은 아니다. 그리고 NATO에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파트너들(partners in the Indo-Pacific region)'이라고 표현할 뿐, 공식적으로 해당 표현을 쓴 예시는 아직까지 없다.# # # # # # #
6. 대한민국과의 관계[편집]
대한민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가 처음 관계를 맺게 된 시점은 2005년 12월로, 당시 참여정부의 외교통상부 장관이였던 반기문이 나토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북대서양이사회(North Atlantic Council: NAC)에 참가하면서 부터이다. 그 바로 다음 해인 2006년부터 한국은 라트비아 리가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접촉국가로 지정되었으며, 한-NATO 정책 협의회 개최와 고위급 인사 교류등이 이루어졌다.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09년 12월, 한국과 나토는 정보교환 MOU를 체결하며 처음으로 서면 합의를 하였는데, 해당 MOU로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한국군이 ISAF와 정보 공유를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2012년에는 나토와 개별 파트너십 국가 프로그램에 합의하였다.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22년 4월, 한국이 NATO의 사이버방위센터(CCDCOE)[25] 에 정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윤석열 정부 시기인 2022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이 NATO 마드리드 정상회의에 초청되어 참석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것은 2022년이 최초이다.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한국 외에도 일본, 호주, 뉴질랜드 정상 역시 초청받아 참석했다. 이후 2022년 11월, 주 벨기에 대사관에 주 나토대표부를 설치[26] 했다.
2000년대 이후 약 20여년간 협력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주한미군과 협동하는 유엔군사령부의 몇몇 국가들이 나토 소속이라는 점에서 군사협력의 영역이 더 넓어지고 있다.[27]
7. 사무총장[편집]
8. 역대회의[편집]
9. 기능과 활동 이력[편집]
1950년 발발한 6.25 전쟁은 공식적으로 UN군이 참전한 전쟁이지만 UN군의 주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 NATO 회원국들이었고, 실질적으로 NATO가 참전했다고 봐도 어느 정도 무방했다. 당시 소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NATO 가입을 희망해 오던 튀르키예는 6.25에 파병했고, 덕분에 6.25가 진행 중이던 1952년 NATO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6.25전쟁은 창설된 지 1년 밖에 안된 나토군의 체제를 정비하는 기회가 되었다.
1961년 인도가 포르투갈령 인도 식민지인 고아, 디우, 다만을 돌려받기 위해 무력침공을 강행했을 때 이를 막아낼 역량이 없었던 포르투갈은 NATO의 회원국이므로 NATO의 공동대응을 역설하며 지원 요청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는 미국과 영국이 중심이 되어 그 지역은 NATO 관할이 아니라고 했고 포르투갈은 끝내 인도 식민지를 모두 버려야 했다.
현재까지의 실전은 코소보 전쟁이 한참이던 1998년 유고 공습 작전(Operation Allied Force)과 2011년 1차 리비아 내전 때의 공습 작전(Operation Unified Protector)뿐이다. 특히 코소보 개입은 NATO의 힘을 여실히 증명하면서도 오히려 NATO, 나아가 유럽 역내에서의 미국의 비중을 극명히 드러내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코소보 전쟁 때 유고슬라비아 전역에 공습을 하면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나토 회원국 사이에서 마찰이 일어났고 특히 미국과 프랑스의 사이가 안 좋아졌다. 실제로 폭격으로 인해 민간인 피해가 생겼으며, 대표적으로 나토의 세르비아 방송국 폭격과 미국의 중국 대사관 폭격 등이 있다.
소련 해체 이후 정치기구 성향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NATO의 군사적 기능에만 주목하던 미국 정치학계의 견해로 인해 크게 부각되는 것일 뿐, 실은 유럽 정치학계에서는 1950년대부터 NATO의 정치적 기능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것은 정치적 기구인 북대서양위원회의 의장을 겸직하는 NATO 사무총장(Seceretary General)이 모두 유럽에서 나왔으나 NATO군의 군령권을 쥐고 있는 유럽동맹군최고사령관은 죄다 미군 장성이 차지했다는 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2011년 3월에는 리비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카다피 정부군을 공격했다. 2012년에는 시리아 내전의 와중에 튀르키예 공군 전투기가 격추당하고 튀르키예 영내에 포탄이 떨어지자 NATO 차원에서 대응, 동맹국들이 튀르키예에 방공부대를 파병하기도 했다. 이후 시리아 정부군은 튀르키예 영내에 대한 공격을 일제히 멈추며 NATO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냈다.
전 세계적인 경제불황 때문에 NATO 주요국들 다 국방에 신경쓰지 못하고 있는 터라 예전만큼의 위세를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단적으로 2012~2014년 동안 세계에서 국방예산을 많이 감축시킨 20개국 중에 13개 국가가 NATO 가입국이었다.# 더욱이 가입국끼리의 동조도 예전같지 않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영어 약자를 비꼬아서 북대서양 이빨 빠진 기구(North Atlantic Toothless Organization)라고 풍자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점으로 유럽지역의 나토 회원국들에서 국방비 지출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창설 67년 만에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나토 '반러시아 대동단결'…"가맹국 속사정 많이 달라"
그러나 NATO 회원국의 무임승차 발언과 NATO 동맹국이 공격 받을 때 미국의 자동개입 조항을 재검토하겠다고 시사하는 등 NATO의 역할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던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11월 미합중국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NATO의 미래가 불분명한 상황이 됐다. 당장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NATO 회원국과 유럽연합이 긴장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NATO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었던 냉전 시기에는 미국과 그 외 가맹국의 나토 방위분담이 50대 50에 가까웠지만 리비아 폭격 때쯤에는 방위분담이 75대 25 수준으로 떨어졌다. 심지어 냉전시기에는 (경제력이 서유럽국가에 비해 매우 낮음을 감안해도) 동유럽국가들은 NATO가 아닌 WP 소속이었음에도 말이다. NATO에서는 GDP 대비 국방비를 2% 정도 부담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를 지킨 나라는 미국, 그리스, 영국, 에스토니아, 폴란드뿐이었다.# 에스토니아는 바로 코앞이 러시아 제2의 도시이자 해군의 요충지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이며, 폴란드는 칼리닌그라드를 통해 러시아, 친러 국가인 벨라루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다. 그리스는 같은 NATO 회원국인 튀르키예와 갈등이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경제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국방비는 제대로 지출하고 있다.
즉 미국 입장에서는 특별한 관계인 영국을 제외하면 서유럽 국가들이 국가안보 및 NATO에 대한 의무를 자신들보다 가난한 동유럽국가에 떠넘기거나 미국에 의지한다는 시각을 가질 수 있으며, 트럼프는 이런 불균등한 방위의무 참여에 대한 미군 장성진의 불만을 제대로 캐치한 셈이다.
2019년 12월 3일, 4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창설 70주년 기념 정상회담은 미국의 나토 운영비를 22%에서 16%로 삭감하고, 독일은 15%에서 16%로 미국과 같은 수준으로 증액하기로 합의했다. 추가적으로 독일과 프랑스는 GDP 대비 방위비 예산을 2%로 끌어올린다는데 합의했다. 그런데 정상회담 개최 전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나토 동맹국 사이의 불화, 튀르키예의 불확실성(S-400 도입과 같은 친러시아 정책)을 이야기하며 나토가 뇌사상태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또한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나토가 쿠르드 민병대(YPG)를 테러단체로 지정하지 않는다면 폴란드 및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 대한 집단방어 계획을 반대하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에 이란과 중동 지역의 긴장을 고려해 나토가 중동으로 확장하여야 하며 이에 따른 차원에서 'NATO ME'로 개명까지 주장했다.#
중국, 러시아 군사위성에 대응하여 독일에 우주센터를 세운다.#
2021년 3월부터 기후변화를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집단 안보 전략의 핵심 중 하나로 설정한다.#
옌스 스톨렌베르크 사무총장은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협력강화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또한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4개국과의 협력을 언급했다.#
2021년 6월 14일, NATO 정상회의에서 러시아, 중국과 벌일 수 있는 '우주전'에서도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합의했다.
2022년 11월 23일 NATO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명분없는 침략전쟁을 벌인 러시아를 테러국가로 지정한다.
2023년 나토 정상회담에서 방위비 지출 가이드라인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최소 2%로 합의했다.#
10. 확장 논의[편집]
10.1.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편집]
2011년에 나토는 차기 가입후보국으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조지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를 뽑았다. 이들 중 몬테네그로는 2017년 가입했고 뒤이어 2020년 마케도니아가 국명을 북마케도니아로 바꾸고 가입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 주민들은 90%가 찬성하지만, 스릅스카 공화국 주민들은 30%만 찬성하는 등 내부적으로 갈등이 있다.
10.2. 세르비아[편집]
코소보 전쟁 당시 적국이었던 세르비아는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적이기도 했던 NATO 가입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세르비아의 EU가입은 봐줘도 NATO 가입은 절대 용납 못 한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가까운 우크라이나와 달리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워낙 거리가 멀어 세르비아가 NATO나 EU에 가입한다 해도 러시아로선 물리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으나, 세르비아 역시 코소보 문제에 러시아의 협력이 필요하여 가입 추진은 잘 되지 않고 있다.
NATO 회원국간 세르비아와 코소보 분쟁도 상당하다. 스페인,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그리스는 코소보의 독립을 불인정하며, 프랑스는 세르비아가 프랑코포니 회원국이다 보니 나름 관계는 나쁘지 않지만 튀르키예는 코소보의 독립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국가이고, 튀르키예와 적대적인 아르메니아와 세르비아가 가까운 사이다 보니 튀르키예 때문에 가입이 힘들어 보인다.
10.3. 스웨덴[편집]
스웨덴은 1800년대부터 중립 노선을 택하여 NATO에 가입하지 않았다. 핀란드 역시 2차대전 이후 중립국이 되고 소련의 국가 이익을 존중하는 외교를 택하면서 나토에 가입하지 않았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동부 우크라이나 군사개입 이후 스웨덴과 핀란드가 갈수록 나토와 군사적으로 더 밀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러시아의 강경한 나토 가입 반대 요구는 오히려 스웨덴과 핀란드의 정치권과 여론이 갈수록 나토 가입에 호응하게 만드는 역효과만 만들고 있다. 핀란드 총리가 2022년 대국민 신년사에서 핀란드의 나토 가입은 핀란드 스스로 언제든지 정할 수 있는 주권의 문제라고 밝혔다.
그리고 진짜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자 핀란드의 친러 성향의원들도 죄다 반러시아 친 나토로 돌아섰으며 2022년 2월 25일에 브뤼셀에서 열렸던 나토 긴급 회의에 처음으로 핀란드와 스웨덴이 정식으로 참석했다. 이에 러시아는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한다면 그에 맞는 심각한 군사적, 정치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가 NATO 확대 저지인 것을 생각해보면 너도 우크라이나처럼 될 수 있다는 협박이나 다름없다. 우크라이나와 달리 두 국가는 유럽연합 회원국이다. 유럽연합 조약에도 엄연히 나토와 같은 공동방위조항이 있다. 이에 스웨덴은 NATO에 가입할지 말지는 우리가 정하겠다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2월 28일 핀란드 여론조사에서 찬성 53%, 반대 28%, 잘 모르겠다 19%로 발표되면서 처음으로 찬성표가 과반수를 넘었다. 한달 전인 1월 20일에만 해도 핀란드 총리가 NATO 가입 가능성 매우 희박하다고 발표했었으며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여론이 확실하게 바뀐 것이다. # 2주 뒤,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62%까지 높인 상황이다.# 그리고 5월 12일, 가입 신청을 공식화했다.#
한편,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가 나토 가입을 검토하라는 야당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다가 다시 가입 가능성을 열어놨다.# 그리고 6월에 가입하기로 희망했다.# 5월 16일, 핀란드에 이어 가입 신청을 공식화했다. 그리고 5월 18일, 가입을 위한 공식 신청서를 나토에 제출했다.#
본래 튀르키예가 스웨덴 및 핀란드의 쿠르드족 지원을 이유로 회원국 중 유일하게 가입에 반대했으나 6월 29일에 튀르키예가 조건부 찬성[30] 으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사실상 가입이 확정되었다.기사
회원국 각국의 비준 절차를 거치면 정식으로 가입한다. 다만 스웨덴, 핀란드가 협상조건 시행을 미적거리고 있는 판국이라 튀르키예 대통령 에르도안은 약속을 안지키면 두 나라의 가입 승인을 거부할 수 있다고 경고중이다.#
2022년 9월 27일 기준으로 28개 회원국이 비준 절차를 마무리를 지은 상황이다. 비준 절차가 진행 중인 국가는 헝가리, 튀르키예 2개국이다.#
하지만 헝가리가 2023년 초에 비준 절차를 마무리 짓기로 하여 튀르키예만 비준 절차가 남은 상황이다. 기사
이후 합의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튀르키예의 불만으로 가입절차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2023년 스웨덴 수도 한복판에서 쿠르드 단체의 에르도안 모욕 시위, 스웨덴 극우의 튀르키예를 향한 이슬람 경전 불태우기 시위 등이 연거푸 발생하면서 튀르키예와 아랍권의 분노를 발생시켰고 튀르키예는 스웨덴에게 나토가입 지지를 기대하지말라고 공개적으로 얘기하기도 하였다.[31]
핀란드 역시 기존의 스웨덴과의 동반 가입에서 단독 가입도 가능하다고 정부 관계자가 발표했다가 스웨덴의 불만에 철회하는 등 촌극을 보이기도 했다.
2023년 1월 말 스웨덴 외무장관은 코란 불태우기 시위 이후 튀르키예가 스웨덴, 핀란드와의 삼자협의를 전면 중지하면서 나토가입 절차가 사실상 중지되었다고 애기했다.
헝가리는 2월 중 비준 절차를 승인하기로 했고, 튀르키예 대통령은 핀란드에 대해서는 가입을 허용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스웨덴에 대해서는 나토에 가입하고 싶으면 쿠르드족 120명을 송환을 약속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
2023년 2월 2일,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와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스톡홀름에서 가진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동시 가입하겠다면서도, 두 국가 중 한 나라도 먼저 가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하지만 2023년 2월 6일 발생한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으로 튀르키예가 파괴적인 피해를 입으면서 안 그래도 어렵던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 협상은 사실상 올스톱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적어도 2023년 5월로 예정된 튀르키예 대선 및 총선 이전까지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 협상이 재개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2023년 3월, 헝가리는 3월 27일에 핀란드 나토 가입 비준안 투표를 진행해 비준안을 통과시켰고, 튀르키예도 3월 30일에 핀란드 가입 비준안을 통과시킴으로써 핀란드는 가입이 확정되었다. 이후 4월 4일, 핀란드는 나토 회원국이 되었다.
예르도안의 재선 이후, 스웨덴과 튀르키예 사이에 가입에 대한 협의가 이루어졌지만 양측의 입장차로 진행은 여전히 더디고 2023년 6월 스웨덴에서 또다시 쿠란을 태우는 시위(시위자는 이라크계의 스웨덴인라고 한다)가 스웨덴 법원의 허가를 받은후 발생했고 당연히 튀르키예는 물론이고 이슬람권의 광범위한 반발을 사게 되어 나토 가입협상은 더 힘든 상황이 되었다. 결국, 교황까지 비판하자 스웨덴 정부가 쿠란 소각 시위를 규탄하고 수사에 나섰다.#
7월 10일, 에르도안 대통령이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동의했다. # 다만 스웨덴의 나토 가입이 튀르키예 의회의 비준을 받아야 스웨덴이 최종적으로 나토에 가입할 수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에르도안 대통령과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의 회담을 중재한 후 기자회견을 열고 "에르도안 대통령이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안을 의회에 전달하고, 비준될 수 있도록 보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 헝가리에서도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 절차를 완료하는 것은 이제 단지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다"고 밝혔다.# 스웨덴 또한 에르도안의 동의에 감사해하며, 터키의 EU 가입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답하였다.#
10월 23일, 튀르키예 대통령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서명한 스웨덴의 나토 가입 관련 비준동의안이 의회에 제출됐다"라고 알렸다. 의회에서 동의안이 가결되면, 헝가리의 동의만이 남는다. 이에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결정을) 환영한다. (튀르키예) 의회 절차가 이제 시작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곧 스웨덴은 동맹국이 될 것"이라며 "(튀르키예 의회의) 비준을 위한 신속한 표결을 바란다"라고 밝혔다. #
10.4. 우크라이나[편집]
우크라이나는 독립 직후부터 NATO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친러파와 반러파로 나뉜 우크라이나의 정치 환경과 러시아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우크라이나 특성상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절반 이상이 NATO 가입에 반대하였다.[32]
아직 동구권으로 확대되지 않은 NATO 역시 우크라이나의 가입에 부정적이었다. 2010년대초 친러파인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이었던 시절에는 NATO 관련 협의가 전부 중단되기도 하였고, 이 당시 NATO 가입 반대여론은 극에 달해 우크라이나 국민의 60~70%가 NATO 가입에 반대한다는 다수의 여론조사 결과#가 뜨기도 하였다.
하지만 2014년 크림 위기와 돈바스 전쟁을 계기로 우크라이나 내 친러파의 영향력이 급격히 감소하고 반러 감정이 커지면서 NATO 가입은 재추진되고 있고 국민 여론도 압도적으로 이를 지지하게 되었다. 이에 러시아는 크게 반발하였고,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막으려 하고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전 NATO 동맹국들 사이에서는 서유럽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부정적이었다. 과거 앙겔라 메르켈을 비롯한 독일과 프랑스는 우크라이나의 가입 시도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시 서유럽 국가들은 만약 우크라이나가 회원국으로서 외부 공격을 받을 경우 조약 5조에 따라 자동적으로 참전하게 되는데, 이에 따른 안보 위협이 크다고 판단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국토 대부분이 평지라 방어자 입장에서는 매우 불리한 지형이었고, 당시 우크라이나의 국가 역량이나 군사력, 그리고 러시아의 군사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경우 불필요한 긴장이 초래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 정부 및 러시아군 수뇌부는 서유럽 국가들의 소극적인 모습을 지켜보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군사적인 침공을 개시해도 남오세티아 전쟁과 비슷하게 소극적으로 임할 것으로 판단했다. 결국 2022년 러시아가 NATO의 확장을 핑계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전쟁 발발 하루만에 우크라이나 정부가 공식적으로 NATO 가입을 요청했다.
전쟁 초기, 나토 회원국들은 상기 이유로 인하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약속해도 나토 가입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가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당분간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길은 없다고 발언했다.# 이에 3월 16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토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하며, "지난 수년간 우리는 나토의 문이 열려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젠 문이 닫혔다는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나토와 우크라이나군 사이 군사원조 및 협력이 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을 합병하면서 사실상 평화협상의 여지가 줄어들자 나토 가입의 당위성이 증가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2022년 10월 1일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정식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우크라이나가 가입을 선언하자, 구소련의 공화국과 구 동구권의 9개국[33] 이 가입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현재 가입이 유력시되는 스웨덴과 핀란드조차 관련 사무 조율이나 회원국들 간의 이해관계, 특히 튀르키예와의 갈등으로 절차기간이 길어지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우크라이나가 실제 가입 절차를 시작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NATO 가입에 필요한 최소한의 다섯 요건 중 주변국의 주권 존중이라는 네 번째 요건을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이는 우크라이나의 주변국 중 하나가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헝가리와의 갈등 관계 쉽게 넘어서기 힘든 장벽이다.
2023년 나토 정상회담에서도 나토 가입 절차가 시작된다면 신청국이 원칙적으로 거쳐야 하는 '회원국 자격 행동 계획'(MAP·Membership Action Plan) 절차는 면제하기로 했으나, 가입 조건이 모호하게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언제인지 알 수 없다.#
10.5. 러시아[편집]
미국은 "러시아가 원한다면 러시아도 NATO에 가입해도 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비슷하게 러시아의 유럽연합 가입도 떡밥이 된 적이 있다. 1998년에는 "우리의 동맹은 지리적 문제와는 관계없이 회원국으로서 전 유럽의 안보와 안정성을 증대시킬 의무를 질 능력과 의지가 있는 유럽의 모든 민주국가에게 열려있다."라고 열린 문(open door) 정책을 선언한 적도 있다. 러시아도 명목상 민주주의 국가인데 나토와 러시아가 서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러시아가 NATO 가입을 공식적으로 신청한 적도, NATO가 러시아의 가입을 공식적으로는 불허한 적도 단 한 번도 없다. 1990년대 나토확장 떡밥이 돌때 러시아의 가입도 논의된적은 있었다. 빌 클린턴이 보리스 옐친을 만나 나토 확장안을 논의하였을 당시, 빌 클린턴은 나토의 확장이 러시아같은 특정국가를 겨냥한게 아니라 범유럽적 안보기구로의 변화라는 식으로 보리스 옐친을 설득했다. 빌클린턴과 달리 앨 고어로 대변되는 백악관내 강경파는 나토의 확장이 결국 러시아 대항 전략이라는 점을 명백히 말하고 다녔다. 예를 들어 1994년 9월 베를린에서의 미군 철수를 맞아 개최된 "새로운 전통(New Traditions)"컨퍼런스에서 앨 고어가 한 연설 등이 있다.
보리스 옐친도 1994년 1월 저녁식사 자리에서 다른 동유럽국가들보다 먼저 나토에 가입해야겠다는 의사를 밝힌적 있으나(“Russia has to be the first country to join NATO") 중국의 반발가능성(potential Chinese reaction)을 우려해 공식 가입의사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외에도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1990년 독일 통일을 논의하러 온 미국 국무장관 존 베이커에게 나토 가입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존 베이커는 이를 "꿈"이라는 한 마디로 일축했고 블라디미르 푸틴은 2000년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한 빌 클린턴에게 나토 가입 가능성을 문의했다고 한다#. 1995년에도 영국 국방부가 러시아에 나토 준회원국 지위를 주려고 했던 적이 있으나 영국 전략회의의 반대로 불발되었다고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이렇듯 러시아는 나토 가입 가능성을 그냥 타진하는 정도였고 나토국에서의 반응도 별로 안좋았지만, 어쨌든 러시아는 나토와 평화를 위한 동반자관계(Partnership for Peace)였다. 공산진영이었던 구 소련국가 및 동유럽, 중부유럽 국가와 나토간 파트너쉽 프로그램으로 여기에 속했던 국가들 중 상당수가 후에 정식 나토회원국이 되었다. 때문에, 나토와 러시아는 이런저런 교류를 계속했다. 당시에는 NATO-러시아 합동 군사훈련이 4번 정도 있었을 정도였다#.
1997년에는 나토와 러시아는 Founding Act를 체결하여 협력적 관계를 약속하였고 9.11 테러 이후에는 테러리즘이 세계 주요 안보이슈가 되었기 때문에 2002년 로마에서 개최된 나토의 비상설 회의에 러시아도 참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이 끝나고 다시 미국의 관심사가 동유럽으로 돌아왔을때 다시 나토와 러시아의 갈등이 시작되었는데, 특히 2008년은 그중 최악의 해로 불린다. 이때에 협력적 취지에서 개최된 NATO-러시아의 회의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을 약속하여 러시아의 반발을 불렀다. 이후 발생한 남오세티야 전쟁에서 NATO가 조지아편을 들었던 반면 러시아 는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를 지원했다. 그리고 2008년에 코소보가 나토의 지원아래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했으나 이는 세르비아를 지원하던 러시아의 국익과 맞지 않았다. 코소보의 독립 단일 건 때문이 아니라 발칸 반도에서 벌어진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NATO가 개입했던 것을 러시아는 내내 불쾌해했다. 이런 사정이 맞물려 NATO와 러시아간 관계는 악화되었다.
결국 2014년 크림 위기를 기점으로 양자간 급격히 틀어지더니 2022년 러시아의 일방적인 명분없는 침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며 러시아의 대 나토 외교는 끝이 났다. 나토는 러시아를 ‘잠재적 전략적 파트너’(potential strategic partner)에서 ‘가장 중대하고 직접적인 위협’(most significant and direct threat)으로 바꿨다.
10.6. 조지아[편집]
남오세티야 전쟁으로 인하여 가입이 제한되어 있으나 꾸준히 가입 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국가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빨리 해당 분쟁을 해결하고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이라클리 가리바슈빌리 총리는 밝혔다.
11. 문제점과 반론[편집]
11.1. 나토의 팽창[편집]
나토를 확장하는 것은 냉전 이후 미국이 취한 정책 중 가장 치명적으로 잘못된 정책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러시아를 자극하여 그들이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외교를 하도록 만들 것이다.
(Expanding NATO would be the most fateful error of American policy in the post-Cold War era. Such a decision may be expected to impel Russian foreign policy in directions decidedly not to our liking.)
조지 프로스트 케넌(George Frost Kennan, 1904년 2월 16일 ~ 2005년 3월 17일) (미국의 외교관, 정치가, 역사가. 냉전기 미국의 대소정책의 핵심인 봉쇄전략의 아버지로 잘 알려져 있다.)
Well, if that would be the case that we join, my response would be that: you caused this. Look at the mirror.
글쎄요, 만약 우리가 (NATO에) 가입하게 된다면, 저는 이렇게 답변하겠습니다: 당신이 자초한 일입니다. 거울을 보시죠.
핀란드 대통령 사울리 니니스퇴(Sauli Niinistö) (2022년 5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 인터뷰 중 #)
본래 나토는 2차 대전으로 인해 국력이 바닥난 서유럽에 가장 큰 위협이었던 소련의 공산주의 확산을 방지하고 추축국이었던 독일(당시 옛 서독)을 통제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로 창설한 다국적 군사동맹이다. 즉, 소련을 막고 독일(서독)의 패권을 억제하며, 서유럽 안보를 안정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따라서 서유럽 국가들은 마셜 플랜과 함께 전후 재건에 역량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 서구권 군사동맹으로써 나토는 냉전 시기 동안 자기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1980년대 후반, 동구권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냉전이 끝날 무렵, 미국과 소련은 우호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1989년 말타 회담에서 공식적으로 냉전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또한 START 협정 등을 통해 군축을 확산시키면서 대립을 완화해가고 있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 재통일 협상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나토를 더 이상 확장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었다.[34] 사실 독일 통일 당시 나토에 대한 논의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결국 협상 단계에서 머물고 명문화된 외교문서나 조약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당시 소련 입장에서는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존재하던 시점이라 아직까지는 소련군이 동유럽에 주둔해 있었고, 당시 소련과 서방권은 비공식적인 협상에서 냉전 후 유럽에서 새로운 안보기구에 참여하려고 계획 중이었다.
하지만 1990년과 1991년에 들어 소련의 영향력이 급도로 약해지면서, 소련을 포함한 동구권 국가들은 1991년 2월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해체하는데 동의했고, 1991년 6월에는 코메콘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동유럽에서 소련은 급속도로 영향력을 잃고 결국 1991년 12월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소련이 무너지자 서방 국가들은 고르바초프의 연장선으로 친서방 정책을 펼치던 보리스 옐친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 했다. 나토는 소련이 무너진 이후로도 1999년까지 동유럽으로 회원국을 확장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1990년대 초, 중반에는 러시아와 여러 차례 나토 가입을 논의하면서 군사적으로도 협력관계를 구축하였다. 이와 더불어 1990년대 들어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가 국내정치 사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동안,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서방경제에 합류하기 위해 유럽연합, 나토 가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당시 나토는 한 때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에 속했던 동유럽 국가들과 옛 소련에 속했던 발트 3국을 가입시키면서, 동시에 러시아와 군사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었다.
정당성이라는 요소를 배제한 정치현실주의적인 시각으로 볼 때, 어떤 강대국도 국익의 약화를 얌전히 받아들이지 않으며, 따라서 비록 러시아의 패권주의적 행보가 동유럽 국가들의 '자발적' 나토 가입을 촉발했을지언정 러시아 입장에서는 국경을 맞대는 구소련 국가들의 나토 가입만은 결코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라고 여긴다. 게임 이론에 따른 원인과 결과만을 따졌을 경우[35] 동유럽 국가들이 연달아 나토 가입을 하는 것을 막는게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정치·외교적 위신의 하락을 감안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더 이득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11.2. 예산 갈등 및 내분[편집]
나토 예산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다. 미국 혼자서 나머지 국가들 다 합친 거보다 더 많이 쓰고 있다. 하지만,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이니만큼 유럽-대서양 방면에 투입되는 예산과 나머지 지역에 투입되는 예산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특이하게 나토에 부정적이고 친러적이었다. 트럼프는 미국이 세계 각지의 분쟁에 너무 개입하지 말고 미국 내부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에, 유럽 일은 유럽이 자기 돈과 힘으로 알아서 하게 하자는 입장이니 러시아와 죽이 잘 맞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취임 이후에는 후보 시절 내뱉던 강경한 발언들이 많이 줄었다. 트럼프 자체도 러시아 게이트가 있고, 유럽 극우들도 고립주의를 추구하면서 친러 성향을 띈다는 걸 생각하면 그렇게 이상하진 않다.
결국 2019년 터키 쿠르드 침공으로 인해서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정체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으로, 엄연한 NATO 회원국의 군대인 튀르키예군이 같은 NATO 회원국의 군대들인 프랑스군의 특수부대들이 주둔하고 있던 기지와 미군의 기지의 근방에 포 사격을 가하였고, 특히 전자의 경우에는 부상자까지 나온 상황이다. 같은 NATO 회원국인 그리스와의 마찰이 있긴 하였으나 이번에 발생한 사태의 경우에는 외교 및 역사적으로 크게 문제 없는 국가의 군대들 사이에서 발생한 사태인지라 더욱 충격이 크다.
그리고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NATO 국가인 튀르키예와 헝가리, 알바니아가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NATO 국가 대부분(영국, 프랑스, 캐나다,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가 아르메니아를 지지하면서 또다시 분열의 양상이 보였다. 다만 아제르바이잔의 승전으로 전쟁이 마무리된 이후 잠잠한 상태.
2021년에는 회담을 거치면서 다시 안정적인 방향으로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관계 문제가 커지고, 연말에는 아예 우크라이나 동부를 침공해 무력화할 모습이 보이자 미국이 무조건 개입한단 보장이 없다는 나토의 문제점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한편 우크라이나-러시아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프랑스의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이 자신이 집권하면 NATO를 다시 탈퇴할것 이라는 공약을 내세웠다. 마린 르펜은 "프랑스 군대로 자국 국방과 국익을 지키고 먼 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에 휘말리면 안된다."라며 트럼프와 똑같은 고립주의 정책을 내세우는등 각 국가의 우파세력의 대두로 NATO의 내분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헝가리는 나토 국가이지만 친러 행보를 보이는 등 나토 국가 안에서도 단결이 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1.3. 회원국 튀르키예의 폭주와 나토의 무책임한 방임[편집]
(연합뉴스)"터키를 어찌해야 하나"…골머리 앓는 나토
냉전 중 나토의 최전방에서 소련을 상대하던 회원국인 튀르키예가 탈냉전 이후 나토 내의 골치거리로 여겨지고 있다. 튀르키예가 일으킨 문제는 다음과 같다.
- 회원국인 그리스를 적대시하며 에게 해와 그에 속하는 여러섬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고있다.
- 2014년 리비아 내전에 개입하여 다른 나토회원국인 프랑스와 대립하고있다.
- 2019년 시리아를 침공을 하여 역내 평화를 해치고있다. 나토내에서도 튀르키예의 시리아 침공에 명분이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튀르키예에 대해 전혀 제재를 하지 못하고 있다. AFP통신에서 나토 회원국은 튀르키예의 시리아 침공을 비판하면서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튀르키예를 제재할 수단이 나토에 없다는 한계를 인정했음을 보도했으며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어떤 경우에도 나토 동맹국과 싸우지 않을 것"이라며, 시리아 북동부에서의 미군 철수는 튀르키예의 군사작전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미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었다고 주장했다.<인용 출처>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13일 CBS방송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해 튀르키예군에 의해 전쟁범죄가 자행됐음을 인정했는데 진행자가 “튀르키예군이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취지로 묻자 에스퍼 장관은 “그런 것 같다”면서 튀르키예를 비난했다.<인용 출처> 그러나 비난에 그쳤지 실질적인 제재는 없었다.
-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여 무조건 휴전을 주장하는 나토와 대부분의 회원국과 대립하였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은연중 러시아 편을 들며 나토의 대러시아 경제제재에 동참하지 않고있고 러시아와 교역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침공의 여파로 논의 중인 스웨덴의 나토가입에 딴죽을 걸고있다.
11.4. 반박측[편집]
11.4.1. 나토의 잘못이 아니다[편집]
하지만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이 집권하고 러시아가 서서히 경제가 회복되면서 푸틴 정부는 점점 패권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푸틴은 러시아가 소련 시절과 같은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옛 소련의 영향권을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푸틴의 시각은 필연적으로 점차 유럽연합으로 나아가던 동유럽 국가들은 물론, 서구권과 충돌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유럽 국가들과 러시아 원정과 제2차 세계대전같은 대규모 전면전을 겪으면서 큰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었고, 이런 경험을 토대로 유럽 러시아 지역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구권 국가들을 위성국으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대부분의 동구권 국가 및 발트 3국이 서방권에 편입되면서 러시아는 서방 국가들과 직접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 이는 초강대국으로써 소련을 그리워 하던 러시아를 자극했다.
러시아는 나토 확장을 자국을 위협하려는 시도로 여겨 남오세티아 전쟁과 2014년 크림 위기로 본격적으로 패권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정보기관의 여론공작이나 친러 정치세력 후원 등을 통해 나토와 유럽연합을 내부적으로 약화시키려 하는 한편, 남오세티아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노골적으로 동유럽과 옛소련 국가들을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복속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정말 러시아가 침공으로 얻은 이득이 장기적인 정치·외교적 위신의 하락으로 인한 손해를 매꿀 수 있는지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패권적 행동은 국제정세가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19세기, 20세기에는 크게 문제가 안 될지 몰라도 21세기 국제사회에서는 정치적 명분이 없음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20세기만 하더라도 미국의 피그만 침공, 베트남 전쟁과 이란-콘트라 사건, 소련의 헝가리 침공,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아프간 침공은 당장의 이득을 가져다 주었을 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두 강대국들의 정치적 위신을 손상시키고, 정치 및 외교에서 막대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아무리 단기적 이득을 우선시해도 명분을 고려하지 않은 패권주의 행동은 장기적으로 강대국의 정치적 명분을 손상시켜 정치,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러시아가 과소평가하였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러시아의 패권주의적 행보는 서방 국가들과 NATO에 가입한 옛 사회주의권 국가들 사이에서 러시아에 대한 위기심을 자극시켰다. 나토는 강제로 가입시키는게 아니라 주권국들이 원해서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국제기구다. 특히 동유럽 국가들 시각에서 이러한 러시아의 시각은 "사회주의권 전체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주권을 무시하고 수시로 내정간섭을 일삼은 브레즈네프 독트린과 다를게 없었다.
냉전 당시 소련과 현재 러시아는 패권주의를 휘두르는데 적극적이었고, 우크라이나 대기근, 카틴 학살, 프라하의 봄과 헝가리 혁명 그리고 발트 3국 점령 등의 갖은 유혈사태와 강짜를 벌였던 소련과 그 직접적인 후신인 러시아에 대해 동유럽 위성국들은 이를 갈아왔다. 이렇게 러시아가 자신들의 마음에 안드는 국가를 힘으로 굴복시키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던 동구권 국가들은 냉전 이후 러시아가 몰락하자 생존을 위해 나토에 가입하였다.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완전히 사라지자 바로 미국을 위시한 자유진영에 러브콜을 날린 것이니 사실 동유럽 국가들이 앞다퉈 나토에 가입한 근본적인 책임은 소련과 러시아의 패권주의에 있다고 반론할 수 있다. 여기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이란 희대의 병크짓을 터뜨리는 바람에 오히려 이들 국가로 하여금 서방측과의 유대를 공고하게 하는 역효과를 불렀고 중립국이었던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게 만드는 부작용까지 일으켰다[36] .
알다시피 이 두나라는 발트해를 연안으로 둔 국가들인데 이들이 나토에 가입해버리면 러시아 해군은 발트해를 이용한 작전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러시아에 치명적인 사실은 우크라이나를 친서반러의 선봉장으로 만들었다는 것인데 우크라이나의 경우, 종전 후, 반러 기조를 확실히 할 것은 기정사실화 된 셈이고 특히 미국과 서방의 무장으로 재무장될 것이기 때문에 러시아의 확실한 적성국이 되는것과 아울러 가장 경계해야 할 국가를 이웃으로 둔다는게 확정적이다. 아울러 발트 3국 역시 서방식 무장과 전술을 도입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에[37] 러시아로선 긁어 부스럼만 만든 꼴이다.
11.4.2. 나토의 내분은 해결 됐다[편집]
NATO 내분은 간혹 가다 나왔던 얘기지만 항상 NATO 회원국들 간의 회담으로 원만하게 잘 해결되는 편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태가 전면전으로 확대되자 NATO 회원국들은 심각한 위기의식 속에서 그간의 조별 과제 같았던 지리멸렬함을 벗어던지고 대 러시아 제재, 우크라이나 군사지원 등에서 냉전 이후로 오랜만에 단합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독일을 시작으로 각국이 그간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던 고질적인 유럽의 국방 문제를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며 보완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간 약해진 유럽의 전력과 통합되지 않은 시스템, 직접적 군사개입이 불가능한 정치상황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효력을 발휘하며 가망이 없어보이던 우크라이나군이 점차 미약하게나마 러시아를 상대로 승리를 점칠 수 있을 정도로까지 개선되며 지원 노력의 효능감을 증명해내기 시작하며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가속될 전망이다.
정치적으로도 그간 자국 독자노선을 주장하며 친러 성향을 보였던 유럽 각국의 정치 세력들이 급격히 몰락하고 있다. 전술한 마린 르펜 역시 이번 전쟁의 영향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앙겔라 메르켈이 십수년간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통합은 커녕 해체가 목전에 보인다는 지경까지 악화되었던 유럽인들 사이의 반목을 푸틴이 단 한 달만에 해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근데 정작 앙겔라 메르켈은 친 러시아, 친 푸틴적 발언과 러시아 종속적 구조를 만들었던 행보[38] 가 조명받으면서 친러 정치세력으로 재분류되버렸다.
11.4.3. 튀르키예는 문제가 없다[편집]
당연히 이건 튀르키예가 갖고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보스포루스 해협은 러시아의 남진을 막을 수 있는 천혜의 지형이고, 전 세계 식량 자원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우크라이나산 곡물을 전 세계로 운송하는 통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2. 주요 '비 NATO 동맹국'[편집]
미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지만 NATO 회원국은 아닌 국가들을 가리켜 미국에서 '주요 비(非) NATO 동맹국'(MNNA: Major Non-NATO Ally)이라고 하는데, 한국은 1987년에 일본, 호주, 이집트, 이스라엘과 함께 가장 먼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지명받은 이래 여기에 속한다.
다음은 주요 비 NATO 동맹국 목록으로, 순서는 각국의 지명 순서이다.
-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지명한 비 NATO 동맹국: , , , , (모두 1987년 이래)#
-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지명한 비 NATO 동맹국: (1996년 이래), (1997년 이래), (1998년 이래)
-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비 NATO 동맹국: (2002년 이래), , , (이상 2003년 이래), , , (이상 2004년 이래)
-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한 비 NATO 동맹국: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비 NATO 동맹국: (2019년 이래)
-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명한 비 NATO 동맹국: (2022년 이래)#, (2022년 이래)
2014년, 크림 위기 당시에는 우크라이나, 몰도바, 조지아를 비 NATO 동맹국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제안되었으며, 2015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오만, 카타르를 비 NATO 동맹국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다.
아일랜드, 몰타 또한 NATO와 교류를 맺고 있다. 실제로 아일랜드의 경우 미국 외교 정책 상 매우 중요한 국가다. 몰타 역시 영국, 이탈리아와 매우 돈독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이 중 한국, 필리핀의 경우 미국과 상호방위조약[39] 을, 호주와 뉴질랜드의 경우 미국과 삼자방위조약을 체결하고 있다.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를 포함한 18개국의 아메리카 국가들도 방위조약을 맺고 있다.
일본은 다른 동맹국들과 달리 상호방위조약이 아니라 미국이 일방적으로 안전을 보장해주는 조약인 미일안전보장조약을 체결하고 있는데, 자위대가 정식 군대가 아니라서 서로를 방위해준다는 개념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만의 경우 1949년 국부천대 이후 미국-중화민국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었으나 중국과의 수교로 인해 파기되었다. 현재 미국은 일단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군사적으로 비 NATO 동맹국에 준하는 대우를 하고 있으며, 타이완 관계법, 타이완 동맹 보호법, 대만 보증법으로 미국과 대만은 우방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22년 7월, 조 바이든 대통령은 탈레반이 재점령한 아프가니스탄을 주요 비 NATO 동맹국에서 제외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실제로 실현된다면 주요 비 NATO 동맹국 지정이 취소되는 첫 사례가 된다. #
13. NATO 표준 및 규격[편집]
NATO 회원국들 사이에서 무기와 시스템 체계가 표준화되는 것을 담당한다.
표준화는 원래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NATO 표준화 본부(NATO Standardization Agency)가 실시한 표준화 협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2014년부터는 나토 표준화 본부의 이름이 NATO 표준화 사무소(NATO Standardization Office)로 바뀌었다.
NATO 표준화 총탄 구경으로는 9×19mm 파라벨럼, FN 5.7×28mm, 5.56×45mm NATO, 7.62×51mm NATO, .50 BMG가 있다. 화포류 포탄까지 가면 전차포용 105×617mmR와 120×570mm NATO가 있다.
14. 군사조직[편집]
15. 기타[편집]
각종 군용품 및 손목시계 줄 등에 쓰이는 국방색 나일론 줄을 '나토 스트랩'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서방 진영이나 북대서양 조약기구를 비판하는 이들은 코소보 전쟁, 제1차 리비아 내전 등의 군사개입 사례를 두고 North Atlantic Terrorist Organization(북대서양 테러리스트 기구)라고 비꼬기도 한다.
16. 대중매체[편집]
세계 최강의 군사 기구란 타이틀이 있다보니 창작물들에선 적의 강력함을 보이기 위하여 털리거나 아예 파괴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창작물인 톰 클랜시의 베어 & 드래곤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정말 러시아가 가입해 미국과 힘을 합쳐 중국을 신나게 털어 버렸다. 다만 그 후 톰 클랜시의 엔드워에선 해체된다.
ARMA 3에서 BLUFOR 진영으로 등장. 사실상 미군 병력이 대다수인 미군이며 상당히 무력하게 나온다. 일단 그리스에게서 독립한 알티스군(AAF)에게 통수를 맞아 섬에서 쫓겨나고, 전력을 가다듬고 재 반격에 나서나 루트에 따라 진엔딩에서는 AAF를 항복시키는데 성공하지만, 다른 루트인 배드엔딩에선 기묘한 신병기를 주인공이 탈취하자마자 광둥 의정서 전략 동맹 조약(CSAT)이 압도적인 전력을 몰고 와 나토 소속 미군을 또 한 번 전멸시킨다. 고정익기와 포병장비인 MLRS를 제외하면 소총부터 전차, 헬기까지 모두 CSAT보다 심하게 불리하다.
월드 인 컨플릭트, 워게임: 레드 드래곤같은 제3차 세계 대전 물에서도 자주 나온다.
에어리어 88 만화판에서는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군 출신인 여성이 나토군 기체를 훔쳐 중동으로 날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슈퍼파워 2에서는 북미-유럽 집단방위체제(NATO)라는 이름하에 동맹 조약으로 등장한다. 1990년대말~2000년대 초반 나토라서 폴란드, 헝가리, 체코를 제외한 나머지 동유럽 국가들은 가입국이 아니다. 현실과 다르게 회원국들의 외교관계가 좋지 않으면 몇몇 국가가 탈퇴하고 나중에는 해체하는 경우가 생긴다. 터키가 가장 먼저 탈퇴하고 룩셈부르크가 다음으로 탈퇴하는 경우가 있다. 회원국간의 관계가 나빠지고 해체하는 경우가 흔하다. 나토가 해체하면 유럽지역 동맹은 서유럽 연합(WEU)만 남는다.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에선 NATO를 본 딴 PATO(태평양 조약 기구)란 조직이 등장한다. 존 포스터 덜레스의 주도로 미국, 호주, 중화민국, 일본, 통일 한국 등이 공산권을 견제하기 위해 설립했다고. 하필 조직 이름을 한국어로 읽으면 파토라고 읽혀서 유진 킴과 독자들은 잘도 돌아가겠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의외로 잘 돌아가면서 마오쩌둥에게 틈틈이 엿을 먹인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콜드 워에선 페르세우스와 그 동맹 세력들을 저지하기 위해, 여러 특수부대를 파견해서 맞선다.
솔트에선 에블린 솔트가 백악관에 침투할 때, 나토에서 파견된 장교로 위장해서 들어간다.
17. 언어별 명칭[편집]
18. 관련 문서[편집]
- NATO 공용 3색
- NATO군
- NATO 코드명
- NATO 표준 음성 기호
- 유럽연합
- 유럽군
- 유엔
- ASEAN
- 주한미군
- 주일미군
- 주독미군
- 해외 주둔 미군
- 국제기구
- 단체 관련 정보
- NATO vs 러시아군
- 미군 vs 소련군
- 바르샤바 조약기구
- 상하이 협력기구
- 집단안보조약기구
- 유라시아 경제 연합
- 동맹
- 연합국
- 연합군
- 아시아판 NATO
- 동남아시아 조약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