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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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 관계
문화어: 관계
러시아어: Российско-северокорейские отношения
영어: North Korea-Russia relations

1. 개요
2. 역사
2.1. 분단 전
2.2. 김일성 시대
2.3. 김정일 시대
2.4. 김정은 시대
3. 교통 교류
4. 대사관
5. 관련 문서
6. 관련 기사


1. 개요[편집]


북한소련, 북한러시아의 관계.

북한과 러시아는 전통적인 우방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외교 정책 변화와 소련의 경제난으로 관계가 다소 소원해졌으며 소련 해체 후에는 관계가 굉장히 데면데면해졌다. 심지어 과거에는 대한민국과의 관계가 더 좋았을 정도.

신냉전, 특히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다시 사이가 좋아지고 있다.

2. 역사[편집]



2.1. 분단 전[편집]


러시아는 이미 러일전쟁 전후 한반도 북부에 관해서 각별한 이해관계가 있었다. 러시아의 외교관 '로만 로마노비치 로젠'과 주러 일본 대사관 '쿠리노 신이치로'는 서로 각국의 이익을 대변한 입장문을 교환했는데 러시아는 '북위 39도선 이북에 있는 한국 영토의 일부를 계약 당사국 중 어느 쪽도 군대를 도입해서는 안 되는 중립 지대로 간주'한다는 협약을 맺도록 종용했다.


2.2. 김일성 시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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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소관계

1945년 8월 소련군은 북한 전역에 진주하여 일제를 패망시킴과 동시에 소련의 영향력 확산을 노렸는데, 그 중에는 상당수의 조선계 소련 공민, 즉 고려인 실무자들도 있었고 훗날 김씨조선의 시조가 될 김일성도 동행하였다. 스탈린소련군정은 차츰 북한을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려고 하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와 인공기의 제정에도 소련의 강한 입김이 작용했다.

북한 최고권력자가 된 김일성모스크바로 날아와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남한의 이승만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강한 무력이 필요하다며 남침을 위한 무장 지원을 절실히 요청했는데, 이오시프 스탈린은 처음에는 미국과 충돌해서 좋을 게 없다고 보류하였지만 김일성이 무려 48번이나 남침을 조르자 결국 승인하고 북한에 무기와 군사고문을 지원했다고 한다. 김일성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남한의 풍부한 농수산물과 북한의 풍부한 광물을 소련에 바치겠다고 장담했다고 한다. 니키타 흐루쇼프의 회고록에서도 이와 같은 증언이 나왔다. 6.25 전쟁 이틀 전에 스탈린이 '남조선 작전'을 소련에게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전쟁에서 김일성의 그런 야욕이 저지된 데다 6.25 전쟁 이후 소련의 북한에 대한 관심은 다소 옅어졌지만, 여전히 북한과 소련과의 우호관계는 지속되었다.

그런데 1956년 스탈린 격하 운동[1]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북한과 소련이 서로에게 밉보이기 시작하고, 기묘한 독자노선을 수립해가는 데다 노골적인 줄타기 외교를 하면서 손만 벌리는 북한을 소련은 차츰 좋지 않게 보게 되었다. 1959년까지 북한은 8.15 광복위대한 쏘볘트 군대에 의한 8.15 조선 해방이라고 규정했지만 1960년부터 '위대한 쏘베트 군대'라는 표현을 삭제하며 소련의 역할을 축소하기 시작했으며, 북소 친선 기관들의 활동도 점차 중지되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조선인민혁명군을 날조하여 8.15 해방을 김일성의 공으로 돌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마찰도 양국의 우호를 근본적으로 해칠 정도는 아니였고 되려 1961년에는 유사시 소련군의 자동 개입을 규정한 조소동맹조약이 체결되기도 했다[2][3]. 1960년대 이후 북한이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몰아치던 중국과 관계가 멀어지면서 다시 소련과 긴밀한 관계가 된다.[4]

한편 경제적으로 소련은 북한을 계속 지원했고 인적교류[5]도 꽤 잦았다. 소련은 북한에게 수차례 차관을 제공하고, 수시로 채무를 변제해 주었으며 사회주의 진영의 일원으로서 경제상호 원조회의에 옵서버로 참여하고 있던 북한에게 원자재 생산국의 역할을 맡기되 일부 공업 기술을 전수해주었다. [6]1960년대 이후 흐루쇼프 정권 소련 때 즈음, 중국이 소련을 수정주의라며 비판하면서 중소관계가 냉각되고 거의 전쟁 직전까지 가는 동안 북한은 등거리 외교를 하며 이익을 잘 챙겼다. 중간에 중국과 친하게 지낸다고 1962년 경제보복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는 했지만,[7][8] 2017년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1953년부터 1984년 말까지 소련의 대북한 군사원조 규모는 16억 달러(약 1조8,260억원)에 달했다고 나왔다.# 1980년대 중반까지 소련은 계속 북한을 지원·지지했다.

사회주의 국제분업 이탈 직후에도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소갈등이 격화되던 시기에 경제상호 원조회의에 정식 가입하라는 소련의 요구를 거절한 것은 소련으로서 우호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소련의 군사협조 거절은 북한이 “경제 발전에서 일부 제약을 받더라도 우선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4대 군사노선 방침을 결정한 계기가 되었다. 사회주의 국제 분업 이탈과 더불어 자립적인 민족 경제를 구축하려던 북한은 이로써 소련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자립성을 키우게 되었다.

외교적으로도 북한과 소련은 서로를 우호적으로 지지하였다. 특히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소련은 북한을 배려해 대한민국의 유엔가입에서 거부권을 행사해 종종 엿을 먹여왔다. 소련-아프간 전쟁을 까닭으로 1세계가 보이콧한 1980 모스크바 올림픽 당시 중국은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았으나 북한은 참가했으며, 1980년의 보복+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을 까닭으로 2세계가 보이콧한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북한은 소련을 따라 기권했다. 중국과 달리 북한이 모스크바 올림픽에 나간 자체가 북소 관계가 우호적이었단 증거다. 이런 우호관계는 김일성이 1984년 소련을 방문하여 체르넨코 서기장과 회담을 갖고 소련 해·공군의 북한 영공과 항구 이용권 제공, 북한의 군사 원조 획득[9]과 군사 유학생 파견[10], 대규모 경제적 및 기술적 협력 등등을 골자로 하는 협정을 체결하면서 절정에 달하는 듯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관계이고, 소련 민간에서 북한은 조소 대상일 뿐이었다. 일찍이 1960-80년대부터 소련인들은 북한의 선전물이나 출판물들을 유머모음집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으며, 이와 관련해서 국내의 대표적인 러시아계 학자들인 박노자 교수와 안드레이 란코프[11] 교수 등이 직접 증언한 바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소련이 1988 서울 올림픽에 공식 참가하여 선수단을 서울특별시에 파견하겠다는 의사를 대한올림픽위원회(KOC)에 통보하고, 소련 정부도 1988 서울 올림픽 기간 동안 대한민국 국적 항공기의 소련 영공 통과를 승인함에 따라 양국간의 관계는 적대지간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반면 북소관계는 본격적으로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북한은 소련에 대한민국에서 열리고 미국이 참가하는 올림픽에 참가하지 말라고 간곡히 요청했지만 소련은 결국 서울에 선수단을 파견하여 1988 서울 올림픽에 미국과 한 자리에서 참가하게 되었다. 이 때는 한소, 한중 상호 간 수교를 위한 교섭이 열렸고 비공식적으로 프랑스일본을 통해 삼각무역도 했는데 여기에는 알바니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도 참가하였다.

그 결과 마침내 1990년 소련은 대한민국을 승인함과 동시에 양국 간의 국교가 수립되었고[12], 1년 후 소련의 해체로 러시아 연방이 출범하게 되면서 계속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소련에서는 남한에 대해서 친미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나쁘게 인식된 적은 드물어서 남한과의 수교를 나쁘지 않게들 생각했던 눈치였다고. 그렇게 1990년 대한민국과 소련이 외교 관계를 맺게 되자 북한은 강력히 반발했는데, 당시 한소 수교에 대한 문건과 증언을 살펴보면 북한이 얼마나 소련에 배신감을 느꼈는지 잘 나와있다. 북한이 "이제 와서 두 개의 조선을 인정하는 소련이야말로 조국 통일을 방해하는 배신자"라는 말까지 하고, 당시 방북중이던 소련 외무상 셰바르드나제[13]가 이에 맞서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도 아닌 세습 국가"라고 응수했을 정도로 분위기가 매우 험악했다.

북한의 남한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소련의 잡지가 비판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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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김정일 시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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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김정일을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이때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북한은 우리 친선 영원하리라는 제목의 곡을 제작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우리 친선 영원하리

두만강 사이두고 펼쳐진 두나라

오가는 친선의 정 깊고도 뜨겁다

새 세기 평화친선 넓은 길 열어주신

김정일 뿌찐 뿌찐 김정일

김정일 뿌찐 뿌찐 김정일

평양과 모스크바 멀리에 있어도

서로의 마음속엔 가까이 있어라

친근한 상봉속에 손과 손 굳게 잡은

김정일 뿌찐 뿌찐 김정일

김정일 뿌찐 뿌찐 김정일

력사의 전통 이어 맺어진 우정은

두나라 강산우에 영원히 꽃피리

친선의 노래되여 그 이름 울려가는

김정일 뿌찐 뿌찐 김정일

김정일 뿌찐 뿌찐 김정일

러시아와 북한은 정식으로 수교한 상태이다. 애초에 소련의 외교관계를 러시아가 승계했으니.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진 뒤로는 보리스 옐친이 1996년에 김영삼과의 정상회담 끝에 조소동맹조약을 아예 파기해버렸는데, 2000년 이후, 북러관계는 점차 회복되긴 하지만[14] 북한의 핵개발, 북한이 소련에 진 큰 빚 등으로 소련때와 같은 관계가 되기는 한계가 있다.[15]

북러관계의 약화는 러시아의 국제적 영향력 약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따라서 러시아는 푸틴 집권 이후 북한과의 관계 복원을 통해 영향력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러시아의 대북정책은 특히 경제 협력과 북핵 6자회담에서 적극적이었으며, 경제와 안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삼각경제협력에도 관심이 많았다. 철의 실크로드 사업의 경우 북한이 철도 여건의 열악함을 공개하고 싶지 않아 해서 진전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가스나 전기의 경우 2008년 한러정상회담에서 한국가스공사와 러시아 가즈프롬이 북한을 지나는 파이프라인 통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도입하는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한 바 있다.

2차 북핵위기 당시 러시아는 가장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섰다. 2003년 1월 20일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이 북한을 방문했다.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3가지 방안을 제안하고, 2.13 합의사항의 이행을 위해 마카오 은행 방코델타아시아에 있던 북한의 자금 이체 문제를 해결하였다. 다만 이것이 러시아가 북한의 핵 개발에 우호적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2006년 실험 발사한 미사일이 러시아 영해로 떨어지고 지속적으로 미사일 발사를 실험하자 이를 요격하기 위해 S-400을 극동지역에 배치하는 등 내부적으로는 군사적으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2009년 9월 11일에 평양에서 러시아 상품 전문상점이 생겼다.#

2011년 김정일이 중국에게 전투기를 달라고 했다가 퇴짜맞았고 이번에는 러시아에게 요청했지만 실패하였다. 뉴스

그러자 무기 밀수를 시도했으나 걸리는 바람에 북한 첩자들이 체포되고 무기는 압수되었다 #

반미, 반서방 외교 입장을 고수하면서 관계를 맺는다는 양상이다. 또 러시아는 경제적인 이유로 북한보다 한국에 더 관심이 많은 편이며 북한 핵개발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다. 2009년 2차 핵실험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고 대북 경제제재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북한도 러시아보단 북한을 노골적으로 비호하고 있는 중국에 더 의존적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북러관계는 계급적 동맹에서 실용적 의사동맹 관계로 바뀌었다. 이데올로기적 동질성을 기반으로 수직적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소련의 해체로 체제나 이데올로기적 동질성을 잃어 양국 관계는 일반적인 국가 간의 관계나 다를 바 없게 되었다.


2.4. 김정은 시대[편집]


김정은 정권 들어 북중관계가 부실해지면서 북한은 러시아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가까워져 관계 개선에 힘쓰고 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정보를 잘 아는 편이다. (유로마이단 사태로 러시아가 반미 비서방 국가들과 관계를 모색하고 있는 점도 크다) 경제적으로 2010년 ~ 2016년까지 331억원을 지원하였다.# 북한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당시 러시아의 크림합병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북한이 강행하는 잦은 핵실험과 한국과의 무역량 증가로 북한을 멀리하고 있다.[16] 당장 유엔 제재는 상임이사국들이 모두 찬성해야 결정이 되는데 이 말은 현재까지 내려진 모든 북한 제재에 러시아가 찬성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북한이 핵실험을 할때마다 러시아는 북한에 경고를 하고 있다.#

무기체계에 대한 금수조치를 김정일 정권 때부터 유지하고있어 다급해진 북한이 전투기 부품을 밀수 시도하다가 2019년 FSB에게 체포되기도 했다.#

러시아의 젊은층과 언론은 북한과의 외교를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러시아인 10명 가운데 4명은 북핵이 러시아의 안보도 위협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2016년 2월 러시아와 북한이 불법체류자 송환에 대해 체결하였다. 이로 인해 탈북자들은 강제북송될 가능성이 상승하였다.## 같은 달, THAAD 도입과 완전 적극적인 북한 제재는 중국처럼 반대하고있다. ##

2016년 5월 14일 부산에서 대회 후 러시아로 돌아가던 요트가 북한에 나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 러시아어 기사 원문 해안에서 무려 160km 떨어진곳에서 나포되었으며, 선원5명 모두 억류중였으나 2일만에 석방되었다. ## 게다가 작년에 이어서 다시 나포되었다.#

러시아 군사기술에 꾸준히 눈독을 들이고 있는데,# 러시아에 파견한 북한근로자들이 중국 다음으로 많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벌목 등과 같은 3D 업종에서 일하는 실정이다. #

2016년 10월 북한 어선이 러시아쪽에서 불법어업 하다가 총격을 당했다 #

11월, 수형자 이송 조약을 체결하여 러시아 내 탈북자 지위를 더 불안정하게 만들고있다.# 그래도 어느정도 대북제재를 하고 있긴 하지만... # 그리고 북한이 항만사용료를 미납하자 만경봉호의 입항을 금지시키도 했다.#

2017년 1월 나진 - 하산 간 철도 인프라 확충 논의가 진행 중이다.#

북한의 교역 비중에서 러시아는 4위다. 네이버 뉴스

그리고 2017년 5월 17일부터 라진 ~ 블라디보스토크 간 만경봉호가 오가고 있다.뉴스

2017년 6월 푸틴이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면서 북핵을 옹호하는듯한 말을 했었다 #

북한 미사일 관련해서는 오히려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2017년 7월 28일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올렸을 때 러시아는 이를 중거리탄도미사일로 평가했다.#[17] 이에 대해 8월 9일 북한은 연구사라는 직책에 있는 이의 주장을 통해 러시아에 ‘소경’이란 표현까지 쓰며 맹비난했다. “대국이면서도 대국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이 영원히 숙명으로 될 것”이라고 폭언에 가까운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 오히려 러시아측에서는 화성-12형 같은건 S-400이 있어 러시아 대공망이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고 러시아 국방부에서 발표했을 정도다.#

2017년 상반기 북한과 러시아 무역액이 2016년 상반기 보다 72.9%나 증가했으며, 심지어 여행사까지 허가해주었다. 2017년 8월 24일, 주러시아 북한대사관은 북당국이 승인한 공식 여행사 '엔코리안(NKOREAN)'이 이날부터 러시아에서 영업을 개시했다고 밝혔는데, 재밌는 점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 중 하나뭐?(...)라고 홍보하고 있다는 것. 오토 웜비어 사건으로 미국이 9월 1일부터 미국인의 북한여행을 전면 금지하여 돈줄이 막히자 러시아가 관광객을 넣어주기로 작정한 듯.

그러나 2017년 8월 28일에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갈루슈카 극동개발부 장관은 북한의 잇다른 도발탓에 북러간의 경제협력이 중단되고 있다고 밝혔다.#그런데 북한측은 유엔제재를 받는 동안에도 북한을 방문하는 러시아 관광객들의 비자발급을 2일로 단축시키면서 러시아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밝혔다.#

10월 24일에는 러시아어 경연대회가 열렸다.#

최근에는 북중관계, 북미관계가 악화되면서 러시아 역할론이 부상하고있다. 기사 11월 27일 러시아 외무차관 모르굴로프는 "북한이 두 달 넘게 핵미사일 도발을 자제하고 있는 만큼 한국과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는데# 이틀 뒤인 29일 북한은 미사일을 쐈다(...) 누굴 바보로 아나?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를 2019년 말까지 송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8년 2월에 북러 수교 70주년을 맞아 각종 회담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사할린 남부 홀름스크 항구가 석탄 밀거래의 거점으로 판명되었다.[18]

일리야스 우마하노프 러시아 상원 부의장은 "北, 제3국 핵공격 보호대상 동맹국 아니다" 라면서 동맹국이 아니라고 밝혔다.#

최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장관이 평양에서 김정은과 만남을 가졌다. 또한 푸틴은 김정은을 동방포럼에 공식적으로 초청하였다. 그리고 러시아측은 중국에 이어 대북제재를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측이 북미정상회담 직전인 6월 11일에 열차로 밀 150t을 북한에 지원했다.#

러시아 내무부에서는 러시아에 2만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남아있고 이들이 9월이전에 러시아 당국의 체류허가를 받았다면 2019년말까지 계속 체류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18년 9월 26일에 타스 통신은 모스크바의 북한 대사관 대지내에서 불법으로 카지노를 운영하던 업체가 적발되었다고 보도했다.##

2018년 11월 15일에 알렉산드르 마고체라 북한 주재 러시아대사는 러시아내 북한 노동자의 수가 3분의 1로 줄었다고 밝혔다.#

2019년 1월 15일에 러시아의 올렉 코줴먀코 연해주 주지사는 북한 총영사와 만난 자리에서 양국간 교통·운송 및 관광 분야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는 문제를 논의했고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자동차 교량 건설도 협의했다.# 그리고 북한 정부 대표단은 경제 교류를 위해 러시아 극동을 방문했다.#

2019년 1월 18일에 알렉산드르 마고체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는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MD를 획득해 자체 기술을 개발했다는 미국 정부의 주장에 대해 강력 부인했다.#

2018년에 러시아가 북한에게 핵포기 대가로 원자로 건설하겠다는 제안이 있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2019년 1월 31일에 인테르팍스는 러시아와 북한이 3월 6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북러 통상경제·과학기술협력위원회 회의에서 북한물품을 교환하는 물품거래소 개소를 승인한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2019년 3월 중순에는 러시아 상원의원들과 지방 정부 수장들이 북한과의 협력방안을 위해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고 타스 통신이 전했다.# 2019년 2월 9일에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인 알렉산드르 마고체라는 러시아가 북한의 핵물질을 자국으로 반입할 가능성은 작다고 밝혔다.#

2019년 2월 13일에 러시아와 북한은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2019년 ~ 2020년 기간 양국 문화협력계획서에 서명했다.#

러시아 유조선 한척이 2017년 ~ 2018년 사이 최소 네차례나 북한 선박에 유류를 환적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러시아는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구호물자로 밀을 전달했다고 주북한 러시아 대사관이 밝혔다.#

주미 러시아 대사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북한산 화장품과 건강식품, 건축자재 등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를 개설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19년 3월 17일에 북한과 러시아는 북러 수형자 이송조약을 체결했다.#

2019년 4월 11일에 러시아 극동개발부는 러시아 극동과 북한과의 교역이 약 70%까지 증가했다고 밝혔다.#

파일:김정은푸틴.jpg

2019년 4월 24일, 김정은이 최초로 방러하였다. 기차를 타고 육로로 국경을 넘었다고 한다. 4월 25일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였다.

그리고 북한과 러시아는 멸종위기에 처한 아무르표범공동연구 및 보존작업에 나섰다.# 타스통신은 북한 외교관들이 소련 장교 묘지를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모스크바 前 시장인 루쉬코프가 북한을 방문했다.#

2019년 5월 17일에 러시아 법원은 허가없이 연해주에서 조업을 한 북한 선원 3명에게 징역 2년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연해주 정부는 북한 근로자들의 송환을 절차대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9년 7월 3일에 러시아 국방차관이 방북하면서 북러 양국간 군사협력을 증진하겠다고 밝혔다.# NHK는 러시아 외무부 고위관계자들이 북한을 방문해서 북러정상회담을 위한 회의를 할것이라고 밝혔다.#

알렉산드르 마고체라 대사는 2019년 12월까진 러시아내 북한 노동자들을 내보내겠다고 밝혔다.# 그 이전에 친러 미승인국 압하지야에 보내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러시아 국경수비대는 러시아내 배타적경제수역에서 불법조업을 한 북한 어선 3척과 어부 262명을 나포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가 시행된 이후 지난 2년간 학생 및 관광비자로 러시아에 입국하는 북한인이 급증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이 보도했다.#


2.4.1. 2020년대[편집]


2020년 1월 21일, 미국의 소리에서는 북한과 러시아간의 교역이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2020년 2월 6일 신임 주러시아 북한대사로 신홍철 전 외무성 부상이 지명되었다고 타스통신이 밝혔다.#

2월 7일에 알렉산드르 마고체라 대사는 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짧은 시일 안에 새 전략무기 시험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2019년에 북한이 러시아산 순종마 12마리를 약 9천만원에 산 것으로 확인되었다.# 2020년에도 30마리 산것으로 확인되었다.#

지난 1월 북한과 러시아간의 무역액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미국의 소리가 보도했다.#

러시아의 북한식당이 다시 영업을 재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노동자가 아닌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영업 방식을 바꿨지만, 북한 관계자가 업소에 빈번이 출입하는 등 경영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코로나19로 인해 북러간의 무역액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하산 근처 국경도 일시적으로 닫힌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한 러시아 대사는 코로나19로 인해 러시아내 북한 노동자들이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6월에 러시아측이 북한에 보리를 보낸다고 인테르팍스가 보도했다.#

러시아 수역에서 불법조업을 하다 단속하는 러시아 국경수비대원들을 폭행한 혐의를 받는 북한 선원 3명이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북한 당국이 코로나19확산으로 중단했던 러시아와의 철도운행을 7월부터 시행한다고 자유아시아방송이 보도했다.#

이고리 모르굴로프 외무부 차관은 북한으로 진단키트를 보낼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7월 19일에 북한은 북러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러시아와 국제문제 등 여러 부문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친선관계를 과시했다.#

북한은 북한내에 체류중인 러시아인들의 귀국을 허용했다.#

2020년 6월에 북한이 러시아에 의약품 수입을 늘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광복절을 맞아 축전을 교환하며 협력 의지를 다졌다.#

북한측이 중국에 이어 러시아에서의 설탕 수입을 늘렸다.#

러시아가 최근 태풍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에 2만5천t의 밀을 구호물자로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해커들이 러시아 범죄자들과 랜섬웨어와 다른 악성 소프트웨어에 대해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하바롭스크에서 김정일 방문 기념비 제작식이 열렸다.#

러시아 법원이 2019년 자국 해역에서 불법으로 조업하다 단속원을 폭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북한 선원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러시아의 석유기업 로스네프트는 2018∼2019년에 북한에 석유제품을 판매한 일이 없다고 밝혔다.#

러시아측은 태풍의 영향을 받는 북한을 돕는다고 밝혔다.#(러시아어)

북한 해커조직 '김수키'(Kimsuky)가 피싱 이메일 방식을 이용해 러시아 방산업체 등에 여러 차례의 해킹 공격을 시도했다고 전했다.#

최근 9년간 탈북민 207명이 러시아에 망명신청을 했지만, 정작 인정은 단 한명만 되었다.#

북, 러 해커조직이 코로나19 백신 정보 해킹 시도가 있었으며, 대부분 실패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위원장인 크리스토프 호이스겐 유엔 주재 독일 대사는 북한의 석유 정제품 수입을 감시하는 것을 러시아와 중국이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의 지난 3분기 러시아 의료용품 수입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러시아와의 무역 규모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주재 러시아 외교관들이 코로나19로 국경이 봉쇄되자 귀국길에 직접 수레를 밀며 국경을 건너는 진풍경이 연출됐다.#[19]

러시아측이 북미대화, 남북대화를 지원할 준비가 되었다고 밝혔다.#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코로나19 백신 샘플을 입수한 것이 알려졌다.# 그리고 북한내 러시아인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올렉 코줴먀코 연해주지사는 북러 자동차용 교량 건설사업은 코로나19 이후에 협의를 재개한다고 밝혔다.#

7월 18일에 워싱턴포스트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노동자들의 외화벌이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7월 19일에 주 러시아 북한 대사관 수리를 위해 파견됐던 북한 건설 노동자 2명이 모스크바 외곽 강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북한 외무성은 북러공동선언 21주년을 맞아 양국관계를 강조했다.#

7월 27일에 인테르팍스통신은 연해주에 약 1천명의 북한인이 남아있다고 보도했다.#

주 블라디보스토크 북한 영사의 아내가 코로나19로 사망했다.#

북한측이 러시아와의 문화교류 등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광복절을 계기로 축전교류를 했다.#

2021년 10월 10일에 러시아 연방 공산당이 김정은에게 조선로동당 창건 76주년 축전을 보냈다.#

북한 외무성은 박명호 외무성 부상이 리진쥔 주 북한 중국대사를 만났고 임천일 외무성 부상이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 북한 러시아대사와 만났다고 밝히는 등 북한측이 북중관계, 북러관계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에게도 해킹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러시아내 해외 파견자의 탈북 시도를 근절하기 위해 북한 탈북을 돕는 활동가에 대한 신상 파악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11월 1일. 2년8개월 동안 중단된 북한-러시아 간 철도 화물 운송이 재개됐다.#

2023년 7월. 모스크바에서 주러 북한대사관에 근무하는 30대 남성이 차량에서 흉기에 찔린 채 발견됐다.#

북한 해커집단이 러시아 주요 미사일 개발업체의 방화벽을 비밀리에 뚫는 데 성공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2023년 8월 폭우로 주택, 도로 등이 침수된 러시아 극동 연해주 피해 현장에 북한 주민들이 직접 나와 복구 작업을 도왔다.#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면서도 동시에 군사 역량 강화를 위해 러시아 정부와 방산업체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장했다.#

9월 28일. 윤정호 북한 대외경제상이 러시아 모스크바를 실무방문했다.#

2.4.1.1.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국면 관련[편집]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서는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유엔 규탄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국가는 총 5개국이며, 북한 이외의 국가는 러시아는 당연하고, 벨라루스, 에리트레아, 시리아다.

5월 17일에 주 북한 러시아 대사관이 북한의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엄격한 관리 상태에 놓였다.#

북한이 러시아 극동 지역과의 교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2022년 7월 13일, 북한이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반군 세력이 건국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을 주권 국가로 승인했다. 이로써 북한은 러시아, 시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을 승인한 유엔 회원국이 되었다. # (러시아어)

8월 5일, 러시아 군사전문가 이고르 코로셴코는 “10만명의 북한 의용군이 (우크라이나에) 와서 분쟁에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주장했다.#

8월 8일,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는 북한과 도네츠크인민공화국·루간스크인민공화국 간 협력 관계 수립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8월 11일, 러시아 외무부가 북한이 우크라이나에 10만명의 병력을 파견하겠다고 제안한 보도를 부인하였다.#

8월 15일, 김정은이 푸틴 대통령과 축전을 교환했고 북러관계가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8월 26일,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는 북한의 모든 코로나19에 대한 공식 입장을 지지하였으며, 김여정의 코로나19 남한 유래설과 0.0016%의 코로나 사망률은 모두 참이라고 주장했다. #

9월 5일, 미 정보당국이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포탄과 로켓 수백만 발을 구입하였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9월 6일, 북한이 러시아에 시베리아 호랑이 보존 지원 의사를 밝혔다.#

9월 7일, 러시아 외무부 제1아주국의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국장은 북한 요청 시 원유 공급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9월 7일, 바실리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 상임대표는 러시아가 북한에서 무기를 구매했다는 주장은 가짜 뉴스라고 밝혔다.#

9월 16일, 마라트 쿠스눌린 러시아 부총리는 러시아 건설 현장에 북한 노동자들을 투입할 계획을 발표했다.#

9월 20일 푸틴이 부분동원령을 내리자 북한은 러시아에 탄약을 넘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2023년 1월 3일, 러시아 측은 북한이 러시아를 계속 지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사의를 표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문제를 논의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되어 버렸다. 러시아는 한반도의 긴장 고조가 한미의 군사훈련 탓이라고 주장했다.#

3월 30일, 한 러시아군 총참모부 소속 장교가 북한군이 우크라이나에 투입될 수 있다고 밝혔다.#

6월 12일, 김정은이 푸틴에게 러시아의 날을 맞아 축전을 보냈다.#

7월 25일 야밤에 러시아 국방장관 세르게이 쇼이구가 북한의 전승절 퍼레이드 참여라는 명분으로 러시아군 고위층이 오랜만에 북한에 방북한 것이다.

러시아 공군기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방북 5일 뒤인 이달 1일 평양에 모습을 드러내 북한과 러시아 간 모종의 협상이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항로 추적 데이터와 위성 사진을 토대로 평양에 들어간 항공기의 외관과 크기 등을 분석한 결과 러시아 공군이 보유한 일류신(IL)-62M 기종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이 러시아 수송기가 평양에서 군수물자를 수송해 러시아로 옮겼다고 밝혔다. 또한 쇼이구와의 회담에서 북한은 서방 무기 샘플을 요구했다고도 밝혔다. #

2023년 9월, 4년여 만에 북러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2023년 북러정상회담 문단을 참고할 것.

3. 교통 교류[편집]


두 나라를 잇는 철도(두만강역 - 하산역), 다리(두만강철교)가 있다. 그리고 북러간 항공노선이 존재한다.

2020년부터 코로나19 팬데믹이 퍼지면서 양국간 항공노선과 철도노선이 단절됐다. 9월 29일, 북한이 블라디보스토크 노선을 개설할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2023년 2월 22일, 러시아가 일본, 북한, 중국, 인도, 세르비아와 더불어 심지어 유럽연합의 모든 회원국에게도 55개 국가들을 대상으로 비자 간소화 조치를 취했다.# 전자비자를 신청해 최대 15일간 러시아에 체류할 수 있다는 말. 단, 핵심 서방 국가인 파이브 아이즈는(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해당 사항에서 제외시켰다.

4. 대사관[편집]


평양시에 주 북한 러시아 대사관, 모스크바시에 주 러시아 북한 대사관이 존재한다. 그외에도 일부 도시에 영사관이 존재한다.

5. 관련 문서[편집]




6. 관련 기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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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탈린 이후 권력을 잡은 흐루쇼프는 스탈린의 행보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며 자신의 권력에 대한 정당성을 얻고자 하였는데, 대표적으로 반대되는 행보가 평화 공존론이다. 권력 유지를 위해 자본주의 진영을 적극적으로 비난했던 북한으로서는 흐루쇼프의 공존이라는 행보가 좋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2] 이때까지 소련은 김일성에 신뢰가 있었지만, 한국전쟁을 일으킨 북한과 대놓고 동맹을 맺으면 국제적 지위가 불리해지기 때문에 동맹을 꺼리고 있었다. 오히려 며칠 차이를 두고 북한은 중국과도 조중동맹조약을 체결하며 중·소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펼쳤다.[3] 이상우,'북한 40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특성과 변천',을유문화사,1990,pp395-396[4] 북한과 소련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긴 했지만 1960년대 김일성의 권력 기반이 확고해지고 자립 경제·자주 국방을 표방하면서 이는 얄팍한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5] 고려인 중엔 스탈린이 중앙아시아로 데려간 좁은 의미의 고려인들, 사할린재일교포로 머물다가 소련령이 되면서 소련인이 된 사람들과 또 구별되는 제3그룹이 있는데, 이들은 바로 소련에 송출노동자, 유학생, 외교관 등으로 갔다가 정착하거나 망명한 북한인들이다. (원래 고려인으로 북한에 갔다가 소련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아니다!) 현재 북한의 상태를 보면 러시아에 남은 게 백 번 잘 한 일이다. [6] 북한이 북한의 중공업 발전이 사회주의 국제 분업에 의거하였음을 강조한 바 있다. 조선 로동당 출판사, 『정치 경제학 참고 자료』, 로동 신문 출판 인쇄소, 1960, p.208[7] 1962년 북한은 중국과 함께 경제상호 원조회의를 탈퇴했다. 이는 단순히 중소갈등에서 중국의 편을 든 것이 아니라 중공업 발전, 핵무기 개발 등에서 소련과 의견이 달랐던 북한이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했던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소련에게는 중국의 편을 드는 것처럼 보여 경제 및 국방 지원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8] 이상우,'북한 40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특성과 변천',을유문화사,1990,pp395-396[9] 북한 공군MiG-29도 이때 들어왔다고 한다.[10] 그런데 이때 파견된 유학생들이 훗날 프룬제 군사대학 쿠데타 모의 사건에 연루되면서 크나큰 피바람을 보게 된다. 해당 사건 이후로 북한은 절대 외국에 군사 유학생을 보내지 않는다고.[11] (칼럼)북한을 불쌍하게 보던 소련사람들, (칼럼)북한을 조롱거리로 만든 조선화보.[12] 당시 아시아에서 소련과 외교관계가 없었던 나라는 대한민국과 중화민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전부였다. 이 중 중화민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단교했고, 지금까지도 외교 관계는 복원되고 있지 않다.[13] 훗날 조지아 대통령으로 취임.[14] 북한 내부에서는 권력의 공고화, 경제 개선이 이루어 졌고 외부로는 푸틴의 출현, 6.15 남북 공동선언 등 강경 노선을 변경할 계기가 이어졌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수교를 통해 일본,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여 국제적 지원을 확보하고자 하였고,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하였다.[15] 양국이 서로에게 중요도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군사경제적으로 러시아 단독의 지지와 협력은 충분치 않아,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군사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러시아는 이를 위한 통로일 뿐이었다. 러시아 역시 경제 협력을 통해 얻어갈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으나 동북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할 수단으로써 북한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였다.[16] 단적인 예로 북한 엘리트 장교들이 위탁교육을 받던 프룬제 군사대학에는 현재 북한군 장교들이 아니라 한국군 장교들이 위탁교육을 오고 있다.[17] 북한 미사일의 위협을 축소 은폐하려는 의도가 강하다고 평가된다.[18] 日언론 "北, 러시아 통해 석탄 밀수..한국도 포함"[19] 북한에서 중국 외교관을 제외하면 그나마 대접받는 러시아 외교관도 북한에서 탈출할 정도면 북한과 그다지 관계가 크지 않은 타국의 외교관의 상황은 말할 것도 없을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