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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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 북일관계
문화어: 조일관계
일본어: 日朝関係(にっちょうかんけい[1]
영어: Japan-North Korea relations

1. 개요
2. 상세
2.1. 양국의 관계
2.2. 1994년 무라야마 총리의 김일성 조전
2.3. 1991년~2002년까지 평양-나고야간 항공 노선 운행
2.3.1. 2018년
2.3.2. 2019년
2.3.3. 2020년
2.3.4. 2021년
2.3.5. 2022년
2.3.6. 2023년
3. 기타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북한일본의 외교관계. 한일관계보다 훨씬 좋지 않은 불구대천 관계로, 이 두 나라는 아직까지도 미수교 관계이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면에서 적대적 관계를 맺으면서도 서로를 정략적 목적에 이용하기 위해 서로 간의 물리적 충돌을 최대한 피하는 적대적 공생관계이다.


2. 상세[편집]


북한과 일본의 관계는 적대적 공생의 매우 극단적인 예시이다.[2] 북한은 정권 수립시에 친일파에 대한 숙청으로 지지를 모았는데, 실제로는 친일파 청산이 그리 철저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자세한 건 친일반민족행위자/북한 문서 참고.

일본 입장에서도 가히 최악의 외교 관계로 보이는 것이 북일관계이다. 일단 일본한일기본조약 제3조에 의거, 대한민국 정부만을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인정하며, 따라서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는커녕 북한국가로도 승인하지 않은 상태이다. 만약 일본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게 되면 대한민국에게 지급한 독립축하금을 북한에게도 줘야하기 때문에 관계수립을 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대한민국 헌법 제3조의 입장처럼 일본이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을 대한민국 영토로 인정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일본의 공식 입장은 대한민국 영토는 군사분계선 이남이고, 이북지역은 공백지라는 것이다. 즉, 이 부분에 있어 대한민국과 일본의 입장은 모호하게 다르며, 한일기본조약도 한국과 일본의 입장 어느 쪽을 따라도 모순이 되지 않게 미묘하게 작성되었다.[3][4]

한편 북한은 잊을만하면 동해상 미사일 발사 등 무력도발을 통해 일본의 보통국가화에 중국과 함께 힘을 실어준다. 자위대의 창설의 배경은 반공 전선의 형성으로 국공내전으로 반공국가인 중화민국의 축소미소관계의 악화가 주요했지만 북한의 남침으로 주일미군한반도에 투입되면서 치안 공백을 막기 위해 조직의 설비가 빨라진 경향이 있다.

북한은 소련, 중국과 더불어 자위대의 산파 가운데 한 명이라 불릴만 하다. 북한은 미사일 실험을 할 때도 일본 열도 쪽으로 날리는 경향이 있는데 1990년대일본 인근에 떨어진 미사일은 일본 사회에 굉장히 큰 충격을 줬다. 그리고 2006년 10월 북한의 핵 실험 후 일본에선 방위 문제가 급물살을 탔고 이듬해인 2007년 1월 9일에 방위청은 방위성으로 격상됐다. 여전히 북한은 미사일 실험 때마다 동해안으로 발사하고 있으며, 이는 핵무기 트라우마를 가진 일본에게 경계심을 자극한다.

2018년 이후에는 그야말로 북한에게 공공의 적, 일본에게 난감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북한 어선들이 일본과 자주 부딪치면서 지자체에서는 정부의 행동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이다.#

2019년 7월에는 남북미정상회담 이후 아베 신조가 지속적으로 북일정상회담 개최를 피력하자, 북한은 로동신문을 통해 "태도가 너무 뻔뻔스럽다"며 "일본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파괴하는 악성종양"이라는 강력한 수위의 발언을 날렸다.# 사실상 과거 청산을 하지 않을 거면 당장 꺼지라는 반응이어서 관계개선 자체가 요원한 상황.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8월 1~3일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무장관회의 기간 북한 리용호 외무상과 별도로 회담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교도통신이 7월 18일 보도했다. 그러나 북한은 외무상 대신 주태국 북한대사 김제봉을 보내 일본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했다.

2019년 9월, 최근 북한이 몽골에서 일본 측과 만나 평양~원산 구간에 일본의 고속철, 신칸센을 놔달라고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그와는 별개로 일본의 조건 없는 정상회담 제안에 대해 "후안무치한 섬나라 족속들과 무턱대고 마주앉는데 전혀 흥미가 없다"며 깔끔하게 무시해버렸다.#

그리고 일본과 북한이 서로 외교를 수교하려면 대한민국의 중재 거쳐서 외교를 맺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데 대한민국과 이해관계가 얹혀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본이 납북 일본인를 해결하려 북한에 접근하려고 하면 대한민국의 거쳐서 해결하려고 하는마당에 일본과 직접 외교는 당연히 불가능 하다는 소리이다. 북한도 일본과 수교를 맺으려고 해도 대한민국이 거쳐야 한는데 그 이유는 바로 과거사와 식민지 배상문제이다. 북한도 일본과 수교하면 당연히 과거사와 식민지배 배상을 배상하라고 나올텐데 만약에 협상 결렬하면 100% 루비콘강이기 때문이기에 북한도 이를 잘 알기에 수교를 맺기전에 대한민국에 접촉해 일본과 북한을 이해관계를 조정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2.1. 양국의 관계[편집]



새망을 똔 일본의 섬나라족속에 대한 지탄의 목소리 또한 거세게 터져나오고 있다. 천년숙적 왜놈들의 꼴을 볼수록 눈에 부린다. 우리 인민에게 천추에 씻지 못할 죄를 짓고도 사죄 한 번 제대로 하지 않고 •••(중략)••• 미국의 제재 장단에 춤추며 가증스럽게 놀아대는 간악한 쪽바리들을 가만 두어서는 안된다. 일본 렬도 상공을 날아높는 우리의 대륙간탄도로케트를 보고도 아직 정신을 덜 차리고 못 되게 나오는 일본놈들에게 단단히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 보잘 것 없는 일본 렬도의 네 개의 섬[5]

을 주체의 핵탄으로 바닷 속에 쳐넣어야 한다. 일본은 더 이상 우리 가까이에 둘 존재가 아니다. 이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의 격앙된 목소리이다.

-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대변인 성명


재일교포 북송 등 북한과 일본의 잇속이 맞아떨어지는 때도 어쩌다 가끔 있었지만 일본인 납치라든가 일제강점기, 북핵문제 등으로 한반도 이북에 북한 정권이 들어선 이래로 현재까지 일본과 북한의 사이는 전적으로 나쁘다. 재무장을 노리는 일본 우익들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을 이유로 일본의 안보 위협을 강하게 어필한다. 일본인 납치 등의 일로 일본인들의 대북감정은 좋지 않고 조총련에 대한 지원 삭감 등에서 잘 나타난다.

2010년대 이후로 한국의 경제력과 국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성장하는 걸 일본이 계속 견제하기 시작하고, 일본 정부의 우경화로 인해 한국과 중국이 가까워질 때마다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이 북한에게 접근하는 경향이 가끔 있다. 실제로 2019년 일본 정부는 북한 정부와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수교관계를 맺으려 했지만 여러번 베이징을 방문하여 시진핑 중국 주석과 조중수뇌회담을 하는 등 중국과의 관계가 괜찮은데다 남한과의 관계도 남북정상회담 성사로 괜찮아질 분위기여서 일본에 붙을 이유를 느끼지 못한 북한이 시원하게 까버렸다. 여담으로 2005년에 일본 UN대사가 납치 일본인, 핵무장 관련으로 북한을 비판하자 북한 UN대사는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서 나 몰라라 하고 있는데 우릴 꾸짖는 자격이라도 되나?하고 반격하였다.

이전에 일본 우익들은 북한에 대해서 중국의 동맹국이라는 걸 감안해도 큰 위협도 없고 중국과 큰 마찰도 없는 상태이며 중국의 위협이 있더라도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서 개헌과 재무장에 대한 목소리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이후 이 사건이 일본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기 시작하면서 재무장과 개헌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여 재무장과 관련한 안보법에 대해 꾸준히 주장하였다. 미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시쿼스터 군비 감축에 들어감과 동시에 대중국포위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일본에 대한 중요도가 상승했고, 그 결과 개헌과 재무장과 관련한 안보법에 대한 주장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게 되어 현재는 안보법안이 통과하면서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재무장에 대해 북한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요코타 메구미가 대표적인 북일갈등의 상징이다. 일본에서 전공투가 날뛰다가 과격화된 1970년대에는 요도호 사건 같은 게 일어나기도 했다. 육영수 저격 사건 당시에는 범인인 재일교포 문세광이 북한의 개입이 있긴 했지만 것보다 일본의 극좌단체와 연계됐던 탓에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닿기도 하였다. 일본 입장에선 북한 때문에 돌아버릴 일이었다. 사죄조로 외교관을 보내고 난리났었다.

일본의 정당들도 사민당과 일본공산당은 같은 좌익 계열의 성향이지만, 일본의 사민당은 북한과 교류를 계속하는 친북 성향이지만, 일본공산당은 북한에 상당히 비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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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는 일본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하고 납치자를 데리고 일본으로 귀환했다. 사진을 보면 관방장관이었던 아베 신조가 보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2004년에 한 번 더 방북했다. 2013년에는 아베 신조 내각의 특명담당인 이지마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아베가 이로 인해 방북할 것이란 얘기가 돌았으나 무산된 듯.

일본 언론에서는 소련이 무너진 뒤로는 북한을 주로 이슈 타겟으로 삼고 있다. 많은 카더라 통신이 일본발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편이다. 김정남도 일본인 기자랑 인터뷰를 자주 했고. 방위백서에서 소련이 주적에서 삭제된 뒤에 자위대중국북한을 가상 적국으로 보고 있다.

2014년 5월 29일에 일본 정부는 북한과 납북 일본인 재조사를 합의했다. 그로 인해 대북경제제재도 해제될 예정. 반북감정이 강한 일본임에도 불구하고 아베 신조 등을 위시한 일본 정부에서는 일본의 역할 강조를 위해 북일관계 개선을 노리고 있으며 북한도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탈출구로 일본을 찾고 있다. 한중관계가 호전을 보일 때마다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물론 이런 상황은 한-일을 사이좋게 만들어 중-북-러를 견제하려는 미국이 보기엔 정말 환장할 상황이지만...

하지만 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에 대북제재가 추가제재를 받으면서 다시 북일관계는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 아오모리 현에 있는 롯카쇼무라(六ヶ所村) 핵연료주기(사이클) 시설 기술이 북한으로 유출됐다는 의혹을 수년 전 유엔이 현지 조사하려고 했으나 일본 정부가 거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

2000년 8월 27일에 일본의 민간단체 평화의 배 친선방문단이 평양을 방문해 북한 단체들과 종군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토론회를 가졌다.#

이후엔 김정일은 일본의 하토야마 신내각과 물밑 협상이 결렬되고 북일관계가 악화되자 일본차를 압수해서 폐차시키는둥 일본 상품을 배척하는 지시를 내리며 분풀이를 하기도 했다.


2.2. 1994년 무라야마 총리의 김일성 조전[편집]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일본총리 무라야마는 일본 사회당 명의로 김일성의 사망을 애도하는 조전을 보냈다.[6]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일본 사회당북한 노동당과의 오랜 우호관계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일본 특유의 국익을 위한 남과 북에 대한 줄다리기식 외교라고 분석했다.

당시 조전에서 무라야마총리는 "'위대한 지도자 김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에 가슴깊이 우러나오는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라고 밝혔다.[7][8][9]

2.3. 1991년~2002년까지 평양-나고야간 항공 노선 운행[편집]



이렇게 서로 철천지 원수와 같은 북일관계 사이에서도 북한 평양과 일본 나고야간 고려항공 직항노선이 존재하기도 했다.



평양일본 나고야를 잇는 직항노선은 1991년에 개통되었는데 아직 국교가 없는 두 나라사이에서 관광용 민강항공의 직항편이 운항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로 당시 총리 가네마루의 중간외교가 큰 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운수성이 오늘 정식으로 허가한 북한 민간항공의 이름은 에어코리아로 북한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금강산 국제공항이 운영하는 이 비행기는 5월 17일부터 평양과 나고야를 오가며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게 되었다.[10] 이 당시 처음으로 일본북한을 직결시킨 최고의 상업용 전세편이 된 북한항공기는 138인승인 소련제 스보레트 1호사다. 이 항공기는 오늘 낮 1시반 95명의 초대객을 싣고 나고야공항을 떠나 3시간 만에 평양공항에 도착했다. 첫 비행편에 초대된 승객은 대부분이 일본여행사의 관계자와 재일 조총련계 인사들이었다.[11]

1996년 북한은 일본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북한 국적기인 고려항공전세기 편수를 대폭 늘려 나고야(名古屋)~평양을 직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관광 업무를 취급하고 있는 일본 중외여행사는 조총련계 조선신보에 게재한 북한 관광단 모집광고에서 96년 4월부터 11월까지 나고야~평양간을 직항하는 고려항공 전세기편이 모두 14편 있다면서 관광코스별로 전세기 출발일자 및 요금을 게시했다. 중외여행사는 나고야~평양 직항에 3시간 가량 소요되며 4~6일이 걸리는 6개 코스별로 요금이 16만9천엔~29만9천엔이라고 관광상품을 소개했다.여행사측은 또 중국을 경유하는 북한관광의 경우 2개 코스에 9개 운항편 이 있다고 게시했다.북한과일본은 지난 92년 1월 나고야~평양간에 전세기를 연간 80회가량 운항한다는 데 합의했으나 북한 핵문제 돌출등으로 실제로 운항된 횟수는 수차례에 불과했다.[12]

1998년~2000년 사이엔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등으로 운항이 중단되었다가 2000년 4월에 다시 운항이 재개되기도 했다.[13]

이렇게 명맥을 유지한 북일간 직항노선은 결국엔 2002년 4월부로 고려항공 여객기의 노후화 및 북일관계 악화로 평양-나고야간 직항노선은 운행이 중단되어 현재까지도 북한-일본간의 직항노선은 운행하지 않고있다. [14][15]


2.3.1. 2018년[편집]


로동신문삼일절 사설로 일본을 미국기생충이라고 비난하여 일본을 주권국으로 아니 인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2018년 들어서서 남북한관계가 급호전되고 북한의 핵, 미사일 중단. 4월 남북정상회담, 5월에 북미정상회담 가능성까지 나오자 외교적으로 소외된 형국으로 가고 있다. 심지어 북핵 시찰 비용낼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베 총리는 여기에 내부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데 돌파구를 찾기 위해 납북자 문제를 거론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하는 등 아주 안달이 난 상태다. 사실 이건 북일 관계로 지들이 알아서 풀어야 하는 사안이지만 매우 급한 모양새이다. 이는 아베총리가 북일정상회담 및 북일관계 개선을 통해서 현재의 내부 스캔들과 정국을 돌파하려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일본의 적극적인 구애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저들에게 일체 대응하지 말라고 밝혔다. 결국 북한이 대화 거부함에 따라 대화 가능성은 완전히 끝났다. 삼일절 사설에서 일본을 미국의 기생충 운운한 것은 일본을 더는 주권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건데 이것은 일본을 외교 대상으로 안 생각하겠다는 것이니[16] 2018년 삼일절부터 북일외교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판문점 선언에서 명시되듯 남북미 정상회담과 남북미중 정상회담 추진이 있지만 북일정상회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로동신문 4월 27일자 정세론해설에서 시라이 사토시(白井聰)가 쓴 『영속패전론(永續敗戰論)』 및 시라이 사토시와 우치다 다쓰루(內田樹)의 대담집인 『속국민주주의론(屬國民主主義論)』을 들먹여 일본을 미국의 속국이라고 비난했다. #

그리고 며칠 동안 일본의 대북정책에 대해서 숟가락 얻지 말라는 사설을 내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하는 데도 일본 기자들을 초청받지 못했다.

북미정상회담 도중 김정은트럼프와 함께 일본과 접촉할 의향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리고 6월 14일 북한과 일본 관계자가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비밀리에 접촉을 하였다고 한다.

정상회담 이후, 북한을 방문하는 일본인 관광객들의 수가 늘어났다.#

일본의 플루토늄을 보유함으로 인해 북핵 폐기 어려움을 꺾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북한이 이 문제를 걸게되면 북핵 정당성만 가지게 될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2018년 8월에 북한이 일본인 관광객을 석방 해주었다.#[17] 후속 기사로 억류되었던 스기모토 도모유키(杉本倫孝) 씨는 현지에서 댐 등을 촬영한 것이 문제가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들어서, 북한김정은을 중심으로 정상국가화를 꾀하면서 사이는 더더욱 나빠지고 있다. 이전까지는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을 발사하면, 일본이 이를 문제삼아 동북아에서 대북 강경책을 주도하여 북한을 고립시키는 형상이었지만, 북한이 이에 대해 반격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 실제로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어느정도 개선하게 되면서, 미국입장에서는 일본보다는 한국에 접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는 일본 입장에서는 외교적 소외의 우려도 나오게 된 이유이다. 일본의 아베 신조 내각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노릇인것이, 북한을 고립시켜 국제사회 및 동북아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납치자등 북한과의 문제에서 우위에 서고자 했던 전략이, 북한에 의해 보기좋게 빗나가고 심지어 어퍼컷까지 맞은 상황인것이다.

때문에 미국의 일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북한을 등에 업은 한국이 상대적으로 일본에 고압적인 자세로 나오고, 국제사회에서 점점 그 지위를 넓혀가는 현상이 일본입장에서는 굉장히 안좋게 보이는 것이다. 수십년간 대립하던 북한한국이 민족주의로 강하게 뭉치고, 그들의 공공의적이 일본이 되면서 남북한vs일본의 구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베총리도 이를 인식했는지, 북한에 대해 연일 대화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북한의 김정은은 식민지배와 위안부에 대해서 사죄나 하라며 일본의 대화요청을 무시하는 중이다. 이같이 북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와중에, 북한의 목적은 일본과의 협상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배상금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위에서 서술된 바와 같이 현재 북한은 일본을 매우 애간장 태우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북한에게 계속 구애를 펼치고 있다. 이번 년도에 북한과 일본이 비밀리에 접촉 중인것으로 파악되었으며 7월초 베트남에서 일본 내각 정보관(한국으로 치면 국정원장) 기타무라 시게루와 북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김성혜가 비밀리에 회담을 가졌으며, 또한 10월 초 몽골에서도 비밀 회담을 가졌다고 한다. # 일본이 외무성이 아닌 정보 기관으로 접촉한 점이 부각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걸로 보아 북한은 일본과 대화 의지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일본 내에서는 조총련 등 북한에 우호적인 단체들이 꽤 있다보니 매년 방북을 가져 국교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8월 27일에 교도통신은 평양에서 북한 대학생들과 일본 대학생들이 만나 토론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2.3.2. 2019년[편집]


2019년 북미정상회담이 합의문 없이 결렬이 되면서 '미국에 어설픈 협상을 하지않아 다행이다'라며 대놓고 아베가 직접 발언하여 북미회담의 재를 뿌리기만을 기다렸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트럼프나 김정은 둘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북한도 제2차북미회담 실패를 일본탓으로 돌렸다. 북미회담 중 일본인 납치자 문제가 논의된 것으로 보도되었는데 아무래도 아베의 의사가 어느 정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영된 것 같다. 제2차 북미회담이 파토나며 한반도 정세가 다시 주춤하고 있는 가운데 아베 신조는 북일회담 개최 및 북일관계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북한은 계속 무반응을 보이고 있다.

2019년에는 일본 정부가 2020 도쿄 올림픽의 북한 참가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지 아예 전자정보도 안줬다고 한다.# 그러면서 외교청서에는 북한 압력 글이 없어졌다.# 5월 말에는 일본 정부가 조총련을 조사대상 규정에 올리면서 # 이에 대해 북한이 자주권 침해라고 비난하였다.

7월 북한이 로동신문을 통해 "일본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파괴하는 악성종양"이라며 정상회담에 극도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사실상 단시간내의 관계개선이 불가능한 상황. 게다가 일본이 제3국을 통한 밀수출이 드러나고 같은 반미국가 이란에게도 수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한에게는 외교적 카드가 생긴 셈이다. 북한도 아베가 납북 일본인 문제를 꺼내며 정치적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 잘 알기 때문에, 아베가 집권하고 있는 이상 북일정상회담을 아예 안할수도 있다.

이를 의식한건지, 현재에도 계속되는 단거리 미사일 시험과 대남비난 중에도 일본이 정상회담을 위한 신호를 계속 내보내자 온갖 말폭탄을 퍼부으며 일본의 요청을 꾸준히 무시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수출제재에 대해 엄청난 비판을 하며 '가련한 4개의 섬조각'(...)이 “평양행 차표 떼보려고 온갖 요사를 다 부려댔다”는 희대의 명언(?)까지 남겼다. # 최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종료에 관련하여 지소미아 종료에 찬성하며 일본의 전쟁광 야욕을 갖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2019년 9월 11일부로 아베 내각이 더 보수적인 인사로 개각된 이후로 북일정상회담 개최가 더 불투명해졌다. 이와중에 기관총으로 무장한 북한 고속정이 대화퇴에 자주 등장하여 일본측이 이에 항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같은 시기 1990년 방북했었던 가네마루 신(金丸信·1914∼1996) 전 자민당 부총재의 차남 가네마루 신고(金丸信吾·74) 씨를 대표로 하는 일본 방북단 60여 명이 5박6일의 방북 일정을 가진다.# 사실상 북일정상회담은 거절했다.# 의료진들까지 방북을 가졌다.#


2.3.3. 2020년[편집]


제44회 프랑스 안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룬 트루 노스를 출품한 시미즈 한 에이지 감독은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권침해가 심각한 북한의 실정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으로 인해 일본 해안에서 북한인들의 시신이 발견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로 들어서고 납북 일본인 가족들과 면회를 가졌으며, 그 직후 북한이 해결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2.3.4. 2021년[편집]


3월 13일 북한 외무성은 일본의 해군력 강화 움직임에 대해 재침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며 경계하고 나섰다.#

코로나19 이유로 북한이 도쿄 올림픽 불참한다.#

4월 6일 일본 정부는 수출입 금지 등 대북 독자제재를 2년 연장하기로 했다.#

2020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 사이트 독도 및 쿠릴열도 표기 논란에 대해 일본의 영토강탈 야망이라며 비난했다. #

10월 4일 기시다 후미오수상으로 취임하고 첫 기자회견에서 납북 일본인 문제를 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이 마주하겠다"고 밝혔다. #


2.3.5. 2022년[편집]


9월 20일 기시다 후미오유엔 총회에서 "평양선언에 근거해 납치·핵·미사일 등 여러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불행한 과거를 청산해 국교정상화를 목표로한다는 방침은 변함이 없다"고 연설했다. #


2.3.6. 2023년[편집]


5월 27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납북 일본인의 귀국을 촉구하는 국민 집회에 참석해 “2002년 이후 단 1명의 납치 피해자도 귀국하지 못해 몹시 안타깝다. 피해자도 가족도 고령이 돼 가는 가운데 납치 문제는 느슨하게 할 수 없는 인권 문제”라며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고 언제든지 김정은과 직접 만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

5월 29일 북한은 이에 화답으로 외무부상 박병길 명의의 담화에서 "만일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된 국제적 흐름과 시대에 걸맞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대국적 자세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모색하려 한다면 조일(북일) 두 나라가 서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공화국 정부의 입장"라 하여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고 변화된 국제적 흐름과 시대에 어긋나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아니 하는 소국적 자세에서 새로운 결단을 아니 내리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아니 모색하므로' 두 나라가 서로 못 만난다며 외교적 수사를 써서 거절했다.[18] #

같은 날 기시다 후미오는 북한의 담화 발표 뒤에 취재진과 인터뷰하면서 "자신이 직접 맞선다는 각오로 납북 문제에 임해왔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진전시키고자 한다"며 대북 대화 의지를 또다시 피력했다. #

7월 3일, 일본 정부가 중국, 싱가포르에서 북한과 실무 접촉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일본 측이 부인했다.#

9월 28일. 3월, 5월 동남아에서 비밀리에 실무접촉이 있었다고 보도되었다.#

3. 기타[편집]


북한과 일본 국가간 사이는 매우 나쁘지만 일본 내 재일교포들, 특히 한국이 아닌 조선적을 가진 재일조선인들은 북한에 대해 우호적이다. 실제로 한국전쟁 이후 많은 재일교포들이 북한으로 돌아가길 희망했고, 대략 9만 5천명 정도가 북한 원산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현재까지 명맥을 잇고 있는 조총련의 존재만 봐도 일본 내 북한에 우호적인 조선적 재일교포들이 여전히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으로 북한 내에서 재일교포 및 재일교포 출신들은 "째포"라 불리우며 멸시를 당하는 계층이다.

북한이탈주민 출신 기자 주성하의 말에 의하면 북한 지도부에서 한중일을 대하는 교시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고 한다. '중국은 계란을 굴리듯 조심스럽게 대하고, 일본은 중국보다 한 수 아래로 취급하고, 남조선은 그냥 무시하라.'



한편 한국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조선중앙TV에서 주기적으로 잊을만 하면 일본에게 뿜어내는 욕설이 화제가 되고는 한다. BBC News 코리아에 따르면 이런 막말 퍼레이드는 북한에서 실제로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유튜브 shorts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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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닛쵸칸케이(일조관계). 일본은 북한을 표기할 때 朝鮮(ちょうせん; 쵸센) 또는 北朝鮮(きたちょうせん; 키타쵸센)이라고 부른다.[2] 둘은 모든 면에서 물과 기름의 관계이기 때문에 얼핏보면 유혈충돌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나, 사실은 서로를 이용해먹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와 똑같다. 공교롭게도 둘다 반한 성향을 갖고 있다.[3] 극우잡지 등에서 가끔 '고도의 통치능력을 가진 무장세력인 조선로동당'으로 규정하기는 한다.[4] 사실 한일기본조약에 근거하여 정말 대한민국의 입장을 철저하게 존중한다면 조약 이후로는 북한을 北朝鮮(きたちょうせん; 키타쵸센)이 아닌 北韓(ほっかん; 홋칸)이라고 불러야 하긴 하다.(홍콩, 마카오, 대만은 北韓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본은 바로 그 한일기본조약에 따라 공식적으로 구 대한제국을 합법적으로 계승한 나라는 휴전선 이남의 대한민국이고, 한반도 이북 지역은 조선반도(일본에서 한반도를 부르는 명칭)의 북부 지역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는 단순히 명분적인 이유 외에 외교적인 이유도 얽혀 있는데, 먼저 휴전선 이북 지역을 대한민국의 영토로 인정할 경우 추후 불거질지도 모르는 해당 지역에 대한 배상 문제를 피하려는 의도(즉, 국가간 청구권은 부정된다 할지라도 식민지배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은 남아있는데, 이를 북한 지역에 적용시키지 않으려는 것), 그리고 자국 내 조총련재일 조선인을 대한민국 국적자로 취급할 수 없다는 문제 때문에 국가적 합법성은 인정하되 영토 조항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5] 혼슈, 규슈, 시코쿠, 홋카이도[6] 무라야마 일본 총리, 사회당 위원장 자격 북측에 조전 보내 mbc[7] 일 총리 북측에 애도 전문 동아일보[8] 무라야마 북한에 조전 한겨레[9] 알 총리 사회당 명의로 북한 조전 경향신문[10] 일본나고야-평양 직항로 개설 1991.5.13 kbs뉴스[11] 북한 전세기 첫 취항 1991.5.17 kbs뉴스[12] 평양 나고야 운항노선 현황 1996.6.23 중앙일보[13] 日, 평양∼나고야 北전세기 29일부터 운항 허용[14] 日, 평양-나고야 전세기 운항중단[15] 日,북한-일본 직항로 운행중단[16] 그러니까 북한은 일본한테 "똘마니는 꺼지고 너네 두목 나오라고 그래."라는 거다.[17] 일본인 관광객들 중에서 예술 종사자들도 많은데, 보통 다큐멘터리나 사진을 찍으러 가는 경우들이 있다.[18] 외교적 수사에서 썼다시피 (상대가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을 다는 건 거절 의사다. 북한의 경우 '이미 다 해결된 랍치문제와 우리 국가의 자위권'이라 하여 납북 일본인북핵을 침묵하라는, 일본이 못 받아들일 조건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