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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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한국이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
3. 유형
4. 원인
5. 사례
6. 분단국가의 국력 비교
7. 분단국가가 아닌 예
7.1. 분리주의
7.2. 특이 케이스
7.3. 아예 서로 무관한 나라들
8. 출처


1. 개요[편집]


분단국가(, divided nation)는 본래는 하나의 국가를 지향하나, 실제로는 그 영역 전체를 지배하는 단일 통치 기구가 없어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의해 복수의 지역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통치 기구가 공존하는 불안정한 상태를 말한다.

또 한 가지 특징으로 분단국가는 양측 모두 궁극적으로 단일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본래는 하나의 국가였다가 갈라진 국가라 할 지라도, 서로의 주권을 인정하거나, 상대국의 주권을 부인하고 환수하려 주장하는 쪽이 일방적이고 다른 쪽의 공식적인 생각은 그와 다르다면 분단국가라 말할 수 없다. 이 문서에서는 분리되었지만 분단국가는 아닌 사례도 일부 다루었다.


2. 한국이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편집]


한국 내에서 간혹 한국을 현재 세계에 남은 유일한 분단국가라고 말할 때가 많이 있는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한국과 가까운 이웃나라인 중국 역시 냉전시대때 국공내전으로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된 이후 현재까지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키프로스-북키프로스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현 국제적 지위로 봤을 때에는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 대만, 북키프로스는 분단의 한 축이기는 하나 상대 측에 비해 국세가 매우 밀리는 처지에 있는 미승인국인 반면, 북한은 세계적인 불량국가일지언정 유엔에 가입된[1] 명실상부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외교적으로도 북한은 수교국이 대한민국만큼은 아니어도 매우 많이 존재하며, 남북한 동시 수교국도 아주 많다. 공산국가였던 베트남, 중국, 몽골, 독립국가연합, 동유럽국가들이 그 예이다. 심지어 6.25 참전 16개국 일부 국가들 중에도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 있다. 때문에 대만, 북키프로스는 대외적으로 분단국가라는 이미지보다 분리주의 단체로 정의당하는 신세다. 북키프로스는 한 술 더 떠서 튀르키예괴뢰국으로 여기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위와 같은 차이점으로 인해 중국-대만의 경우 서로가 서로를 통일하려고 하기보다는 중국이 일방적으로 대만을 통일하려고 시도하고, 대만은 수동적인 입장에서 이를 거부하고 있는 형국을 띄고 있다. '나라가 반으로 갈라졌다'는 느낌보다는 '거의 모든 지역을 통일했지만 일부 지역이 아직 통일되지 않고 항전하는 것 같은' 느낌에 가까워서 국력의 불균형이 남북한과는 아득한 차이가 있다. 단, 서로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합법적인 하나의 중국은 자기라고 주장하면서도 일정 부분 대화나 교류를 시도하는 등의 양상은 남북한과 유사하다.

이외에 남북한이나 중국-대만에 비해 멀리 떨어진 지중해라 우리의 관심도에서는 떨어지지만 키프로스 -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도 분단국가로 분류된다. 이곳도 그리스와 터키의 대리전 성격이 강한 곳으로, 북키프로스 측이 압도적으로 밀리는 미승인국 처지라는 점은 대만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


3. 유형[편집]


1990년 통일원 통일홍보국이 낸 홍보만화책 《통일로 가는 길》[2]에 따르면, 분단국가의 유형은 두 가지로 크게 나뉜다.

  • 국제형 분단 - 특정 국가가 너무 강대해서 주변국에 위협이 될 시(독일), 혹은 특정 국가의 위치가 두 세력의 사이에 위치할 시(대한민국) 각종 이권국들이 분할하여 생겨난 분단국가이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3], 독일연방공화국-독일민주공화국이 대표적 사례이다.
  • 내쟁형 분단 - 같은 나라 안에서 뜻이 안 맞아 계속 다투다 갈라지게 되는 유형을 말하는데, 이런건 분단보다는 흔한 국가분열에 더 가깝기는 하나, 양측 모두 각자의 독립선언이 아닌 통일을 궁극목표로 하는 차이가 있다. 북키프로스-키프로스,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의 사례가 있다.


4. 원인[편집]


1922년 러시아 혁명으로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탄생하고 공산주의가 세계 곳곳에 퍼지면서 좌우 대립이 극심해졌다. 공산주의는 기존 자본주의 사회를 뿌리부터 엎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장하였고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들 공산주의자들을 사회 불온세력으로 다루었다. 때문에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를 한 사회의 틀로 묶어두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4]

이 대립은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미국과 소련 공동의 적 나치 독일이 패망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미국과 소련은 세계 곳곳에 자신들의 세력을 투사했다. 독일은 패전의 결과로 점령되어(연합군 점령하 독일) 미국과 소련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으면서 분단된 예이다. 한편 세력권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미소 양국은 현지의 우익과 좌익을 포섭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어떤 지역들에서는 단일한 정치체를 형성/유지했지만, 좌익과 우익의 세력이 비등비등한 경우 둘 다 강대국을 끼고 있어 상대를 온전히 몰아내지 못하는 교착 상태, 즉 분단에 이르렀다. 그나마도 갈등이 격화돼 바로 전쟁이 일어났다면 하나의 국가를 세우려는 압력에 의해 군사적 우위에 있는 측이 상대 측을 몰아냈겠지만, 핵전쟁의 위협으로 전쟁의 확산을 피하는 현대의 추세에 의해 더욱 현상유지적 경향이 강화되었다.[5]

이처럼 분단국가는 주변 강대국의 영향을 크게 받기에 이를 빌미로 상대국을 괴뢰 정권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자신들은 진정한 민족국가이지만 다른 진영은 강대국의 사주를 받아 억지로 세워진 꼭두각시 정권이니 타도하여 자신들의 온전한 영향권 아래에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북한을 소련의 괴뢰 정권으로 규정했었고(북괴), 북한은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을 미국의 괴뢰 정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민족국가의 이념에 따라 한 민족에게 두 개의 국가가 있을 수 없으므로 상대 정권은 정통성이 없는 가짜 국가라고 주장해야 하는데, 이때 "상대 측은 외세의 조종을 받는 괴뢰이다"라는 논리가 유용했기 때문이다.

그외에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 베트남 공화국-베트남 민주 공화국[6], 서독-동독[7] 모두 자유진영 측에서는 상대국을 소련의 괴뢰 정권으로, 공산진영 측에서는 상대국을 미국의 괴뢰 정권이라고 주장했다. 키프로스는 자본주의-공산주의 간의 이념대립으로 분단된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계와 터키계간의 민족 분쟁으로 분단되었기에 남키프로스는 북키프로스를 터키의 괴뢰 정권이라 주장하고 북키프로스는 남키프로스를 그리스의 괴뢰정권이라 주장하여 다른 분단국가와 양상이 유사하다.


5. 사례[편집]


다음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분단된 국가 사례이다.

외세에 의해 나뉘었으나 아직까지 별개의 국가로 남아있는 루마니아몰도바의 경우도 있다. 루마니아와 몰도바는 개개인 단위로 따지면 통일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상당히 크다. 정부 차원에선 몰도바측에서 통일에 나섰던 적이 있었지만 가가우지아트란스니스트리아가 루마니아와의 통일에 반발하면서 전쟁이 일어난데다가 몰도바 중앙정부가 패하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인도파키스탄의 분리, 파키스탄방글라데시의 분리도 넓은 의미에서의 분단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또한 분단된 한쪽 국가가 주변국에 점령당하여 통일이 요원한 몽골(중국 치하의 내몽골)이나 아일랜드(영국 치하의 북아일랜드)와 같은 케이스도 있다. 게다가 영국령 북아일랜드는 스코틀랜드계 북아일랜드인이, 중국령 내몽골한족 인구가 이미 많이 유입된 상태라 통일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5.1. 현재의 분단국가[편집]



5.1.1. 대한민국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남북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45년 일제 식민지배의 그늘을 막 벗어난 한반도에 미군소련군이 분할 주둔하면서 분단의 원인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원래는 미소군정의 신탁통치를 당분간만 받다가 사회가 안정되면 완전히 독립하기로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두 진영으로 커뮤니티를 양분한 꼴이 되었다.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한반도 남부에서 건국되었고, 이어 한반도 북부에서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탄생하면서 본격적인 분단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후로도 양측은 서로의 주권을 부인하며 통일을 주장하여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급기야 1950년에는 북한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하였고, 제3차 세계 대전으로의 확전을 막고자 한 국제사회의 노력 끝에 1953년 7월 27일에 정전협정이 이루어지면서 전쟁 상황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기본적으로는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자국이 모두 환수하려는게 핵심이고 전쟁까지 치렀기 때문에 적대관계로 평가되며,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조상에서 비롯된 가장 가까운 이웃이 웬만한 이름모를 먼나라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 일반적인 왕래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다만 중국-대만보다는 상대방의 권리에 대해서 의외로 용인해주는 면이 있다. 가령 2022년 낸시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중국 측은 "자국의 주권을 훼손한 행위"라며 격한 반응을 내고 제4차 해협 위기까지 거론될 정도로 전운이 감돌고 있다. 그에 반해 외국정상 누군가가 방북하든 남한에서는 딱히 논평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마찬가지로 북한도 남한에 어떤 손님이 오든 딱히 논평하지 않는다. 냉전이 극한에 치달을 무렵에는 동시수교는 꿈도 꾸지 않았지만, 데탕트 분위기와 함께 전격적으로 남북이 별도로 동시에 수교를 맺는 국가도 굉장히 많아졌다. 중국과 대만 관계였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사실 이건 국력의 한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용인할 수밖에 없는' 것에 가깝기는 하다. 북한의 유엔 가입도 동시가입을 조건으로 1991년에야 겨우 성사됐을만큼 국제적으로 중국과 같은 태도로 압력을 행사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북한이야 각종 대북제재 속에서 경제적으로 빈궁한 처지이니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여력이 없고, 그나마 경제력이 세계 순위권에 들어가는 남한도 결국 무역이 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여 가능하면 더욱 많은 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유리하기에 중국처럼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입김을 넣기는 어렵다.

긴 대치가 이어지면서 양측의 천문학적인 군비지출이 이어졌고, 북한은 WMD나 잠수함 같은 비대칭 전력 개발에 목숨을 걸게 되었다. 그렇다고 양측의 관계 개선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남북고위급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올림픽단일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화와 협력을 시도하였다. 한편으로는 휴전중임에도 불구하고 서해교전, 천안함 격침, 연평도 포격 등 직간접적 군사적 충돌도 발생하였다.

대만과 마찬가지로 분단의 세월이 오래되면서 이산가족이나 실향민 1세대가 저물어가고, 상대 지역에 피붙이나 별다른 애향심을 가지기 어려운 신세대를 중심으로 통일에 대해 비관 내지는 부정적인 시각이 증가하고 있다. '통일'은 그저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는 맥거핀이 되어가는 모양새다.

특히 정전 70주년인 2023년에는 지속된 남북경색 속에서 전환점으로 여겨질 수 있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북측 최고위급 인사인 김여정은 2021년 경부터 대남기구인 조평통의 역할 축소를 시사하는 발언을 한 바 있었는데, 실제로 현정은의 방북 요청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이 거절의사를 밝히고 급기야 김여정은 담화에서 《대한민국》[8]으로 지칭하는 등 외국으로 취급해버리는 듯한 정황이 있어 앞으로의 평화적 통일 전망은 지극히 낮아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도 통일부의 개편, 즉 최대 폐지까지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한 바 있으며, 대한민국 외교부도 북한에 대한 맞불의 성격으로 대변인브리핑에서 통일부를 대신해 북한을 직접 언급하는 일이 많아지는 듯하다.# 양측의 톱니바퀴가 점점 독립으로 가는 것처럼 보여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그러던 와중 북측 조선중앙통신의 2023년 12월 보도에 의하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이 직접 남북 관계를 '적대적 양국관계'로 규정하였다.# 당연히 남측 통일부는 이에 반발하였다.# 이로써 공식적으로 북한은 분단국가가 아닌 양국임을 선언, 대한민국 여전히 통일을 목표로 삼는 분단국가임을 주장하는 형세가 되었다. 다만 북한이 대한민국을 별개의 국가로 규정한 것은 상대국으로서의 승인행위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통치체제와 선긋는 행위[9]일 뿐이므로 1950년대 극한 대치 상황의 연장선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5.1.2. 중화인민공화국 - 중화민국[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양안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위의 남북한과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2차 대전 이후 정치이념의 차이로 비롯된 분단임에는 비슷하다. 그러나 남북한은 미소의 분할 신탁통치의 영향을 받아 정권이 각각 수립된 케이스고, 이쪽은 중화민국 국민정부중국 전체를 통치하고 있었으나, 2차대전이 남긴 막대한 내상으로 불안한 내정을 틈탄 신흥권력이 기존 권력과 다투며 지금과 같은 형세가 되었다는데서 큰 차이가 있다. 보통 신흥세력이 기존세력을 완전히 축출한 경우 쿠바처럼 정권교체로 보는 경우가 많으나, 완전히 없앤게 아니라 기존세력의 통치영역을 끝내 남겨두었기 때문에 오히려 미국같은 독립의 형태에 가깝다. 그러나 양측 모두 중화의 정통을 주장하기에 분단국가로 취급되고 있다.

물론 중국 공산당의 입장에서는 혁명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정권이 국민당에서 공산당으로 교체되었고 국호를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변경했을 뿐이지만, 국민당의 입장에서 권력이양으로 인정하지 않고 찬탈된 권리를 수복하기 위하여 대만에 남아 항전하고 있는 형세. 간혹 국부천대를 '망명'으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대만 섬은 분단 이전인 1945년부터 중화민국 영토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망명정부와는 결이 다르고, 비유하자면 낙동강 방어선 전투 도중에 휴전이 체결된 셈으로 보는게 정확하다.

국공내전 초반에는 서방의 지원을 힘입은 국민당 정부에게 유리했으나, 점차 세력을 확장하는 공산군을 막지 못하고 후퇴를 거듭하게 되었다. 싸움의 승기가 자신에게 가까이 왔음을 느낀 마오쩌둥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선포하기에 이르렀고, 파죽지세로 영역을 넓혀갔다. 난징에 있던 국민당 정부는 피난을 거듭하다 결국 지금의 타이완섬까지 몰려나게 되었고 이윽고 푸젠성 일부를 제외한 대륙에 대한 통치권을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모두 빼앗기고 섬나라로 전락하였다. 그때부터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과 타이완섬의 중화민국이 각자도생하며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자기 정권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중국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 통일의 필요성을 각자의 논리에 입각해 주장한다.

비록 내전에서는 대만 섬까지 밀리는 수모를 겪었지만, 중화민국은 1945년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상임이사국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유엔을 중심으로 외교적으로는 China로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반면, 대륙을 제패한 중화인민공화국은 한국 전쟁에 개입하여 북한을 원조하고 유엔군에 대적했다는 이유로 오랜 기간을 이른바 '죽의 장막'에 갇혀 있었다. 덕분에 대륙에 비해 턱없이 소수의 중국인만 거주하는 작은 섬 몇 군데를 통치하는 중화민국이 세계 무대에서 '중국'을 대표하고, 정작 절대다수의 중국인이 거주하는 대륙을 통치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고립되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약 20년 가량을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점차 중화민국이 아닌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돌아서는 국가가 증가해 1970년대에 이르면 유엔 내에 심상치 않은 전개가 펼쳐졌는데, 1971년에는 표결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 대표로 인정받고 의석부터 상임이사국 지위까지 모두 승계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 결정으로 축출된[10] 중화민국은 보잘 것 없는 초특급 약소국이 되어 많은 것을 중화인민공화국에게 양보당하며 고립되기 시작했다.

이후 양측의 격차는 극단적으로 벌어지고, 중화인민공화국은 지난 20여 년간 중화민국 주도로 당해왔던 국제적 따돌림을 배로 되갚아주기 시작하였다. 유엔 의석의 필요성을 느낀 대만은 여러번 재가입을 타진했으나, 상임이사국인 중화인민공화국의 문전박대와 회원국 다수의 외면으로 무산되어 현재는 재가입 의지가 거의 꺾였다. 또,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의 나라와 수교맺는 국가와는 수교맺지 않거나 수교국이 딴 생각을 품으면 칼같이 단교하여 '중화민국'이라는 이름 자체를 국제적으로 철저히 매장하였다. 이런 상황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향을 받는 국제기구나 행사에서 중화민국은 가명이라도 써서 제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세계무역기구에서 중화민국이 쓰는 이름은 대만팽호금문마조 개별관세구역이니 말 다 했다.

이 곳은 대만 해협이라는 자연적인 경계가 양측을 갈라놓은 모습이라, 서안과 동안의 관계라 하여 양안관계라고 불린다. 육지가 직접 맞닿아 대치하는 남북한 못지않게 이 해협도 줄곧 긴장 상태가 유지되었고, 여러 차례 대만 해협 위기가 발생하여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았다. 등소평의 개혁개방 이래 중미수교가 이루어지면서 대만 해협의 군사적 긴장감도 상당부분 해소되었으나, 2022년 이후 다시금 초긴장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그래도 남북한보다 상황이 많이 나은 편이어서, 상호왕래가 허용되면서 타이완의 기업들이 대륙으로도 많이 진출했으며, 대륙 관광객들도 타이완이나 진먼 섬을 여행하기도 하는 등 나름 훈훈한 교류 분위기를 연출되었다. 어쨌든 양측의 긴장감이 전보다 많이 완화된 것은 사실이다. 이를 상징하듯 중화인민공화국은 이미 징병제를 폐지했으며[11] 중화민국도 징병제를 폐지하는 수순을 밟았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징병제를 고수하며 시시각각으로 대립하는 남북한에 가려져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양안의 경계는 상당히 느슨해졌음을 실감케 한다. 다만 2022년 들어 양안관계가 악화되면서 대만은 2024년부터 다시 복무기간을 1년으로 늘린 징병제를 시행하는 등 다시금 정세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다만 양안통일에 대한 이견이 근래에 많이 엇갈리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이념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고 국내에서 이에 반하거나 다른 방식의 관점을 용납하지 않지만[12], 상대적으로 민주주의가 정착된 중화민국에서는 대륙처럼 획일화된 통일에 대한 어떤 이념이나 관점을 강요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타이완 문제에는 항상 '독립'이라는 키워드가 따라오는데, 이건 타이완을 지배한 적도 없는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독립이 아닌, 중화민국이든 중화인민공화국이든 모르겠고 통일 대신 자기들끼리 잘 살아보자는 의미인 '중화로부터의 독립'이 되는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입장에서는 타이완을 자국의 영토로 여기기 때문에 타이완 독립파를 크게 경계하고 있다.

범록 강경파 중에는 타이완이 아예 중국에 속했던 적이 없다거나 앞으로도 그러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역사적으로 대만은 청나라 영토가 되었던 시기가 가장 길기는 하지만, 타이완 토박이들 입장에서는 그냥 지배자만 바뀌어 온거지 나중에 들어온 중화의 정체성까지 요구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13]

확실히 대만은 오랫동안 역사적, 언어적 동질성을 공유해왔던 한반도의 남북한과 달리 근현대를 제외하면 역사적인 연관성이 느슨한 편이다. 이전까지는 한족과는 다른 대만 원주민들이 거주했고, 민족적으로 한족의 피가 가장 많이 섞여들어간 시기는 현재 명 말경부터가 유력하다. 하지만 대만의 독립 주장을 무조건 동질성 문제라고만 단정짓기 어려운데, 대만은 중화권으로 볼 법한 요소가 충분히 강하며 본성인이든 외성인이든 둘 다 민족적 차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교류가 꽉 막혀있는 남북관계와는 달리, 양안은 그럭저럭 괜찮은 교류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통일의 역사가 길었다고 해서 무조건 동질성이 더 깊은 건 아니다. 결국 대만의 이러한 반응은 '현 시점에서 절대로 대륙을 먹을 형편은 못 되니 차라리 대륙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서 독립하겠다.'는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또한 현재의 2030은 더더욱 본토와의 연이 없기 때문에 통일에 무관심한 현상은 앞으로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한민국 젊은 층도 비슷한 상황.

중국은 대만홍콩, 마카오[14]와 동급인 자신들의 일부로 간주한다. 대만도 마찬가지로 중국 대륙을 자신들의 일부로 간주한다.[15]


5.1.3. 키프로스 -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키프로스-북키프로스 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키프로스 섬은 언어, 민족, 종교가 완전히 다른 튀르키예계그리스계가 공존하고 있고, 불운하게도 여기에 오랜 앙숙으로 있는 튀르키예그리스의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 개입돼 분단국가가 되었다.[16] 현재 튀르키예계가 주축인 북키프로스는 튀르키예만이 승인했을 뿐 국제적으로는 미승인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때문에 국제 행사 등에서는 그리스계가 주축인 남키프로스만이 '키프로스'라는 이름을 당당히 달고 참여한다. 분단 전 키프로스 국기는 현재 남키프로스 국기로 쓰이고 있고, 북키프로스에서는 북키프로스공화국 국기와 함께 튀르키예의 국기가 함께 게양될 때가 많고 남키프로스에서도 그리스의 국기가 함께 게양되면서 각각 튀르키예그리스를 등에 업고 강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위에 이어져 온 남북한이나 양안의 사례처럼 이 지역 또한 만만치않은 기류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생각보다 서로간의 왕래와 상호 연락은 가능하여 긴장상황은 훨씬 양호한 편이다. 키프로스에도 전쟁이 있었기 때문에 휴전선이 존재하며, 바로샤는 이 휴전선 내부로 들어가는 바람에 유령도시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수도인 니코시아는 휴전선으로 인하여 반토막이 나서 북부와 남부가 모두 수도로 삼는 제2의 베를린이 되었다.

국제연합에서 북키프로스를 튀르키예가 키프로스 북부지방을 불법 점령하여 탄생한 괴뢰정권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국제연합 회원국 사이에는 그렇게 통용되는게 일반적인 인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다만 국제연합 회원국 중 하나인 튀르키예는 남키프로스 정부에 대한 승인을 취소하고 북키프로스 정부만을 인정하는 특이점이 있다.

가뜩이나 튀르키예가 북키프로스를 포기하면 전략적 요충지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사실상 그리스에게 내주는 꼴이 되어 튀르키예의 턱밑에 세워지는 전진기지가 될 수 있기에 그리스와의 기싸움 상황에서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키프로스는 그리스도, 튀르키예도 아닌 독립국가지만 양측 모두 키프로스를 자국 영향권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뿌리깊은 앙숙인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대리전이 벌어지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사도 있으니 참고하자. 워낙 국제적 영향력이 적은 소국이다보니 상대적으로 관심은 덜하지만,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관계에서도 매우 중요한 분량을 담당하고, 나아가 튀르키예의 유럽연합 가입에 있어 걸림돌이 되는 지역이기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분단국가이다. 근래 통일 협상이 타결 직전까지 급물살을 타는 듯 싶다가 또 다시 역경을 맞은 듯하다. 그래도 남북 양측이 모두 의지가 강했고 많은 이견들을 절충했던터라 희망의 불씨마저 없애지는 않은 듯하다.

5.2. 과거의 분단국가[편집]



5.2.1. 서독 - 동독[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독일 재통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45년 아돌프 히틀러나치 독일 정권이 패망하고 독일은 패전국 신세가 되면서 엘자스-로트링겐, 동프로이센, 슐레지엔 등 많은 본국 영토를 주변국에 할양한 것도 모자라서 축소된 영토마저 연합국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분할 점령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분할 점령하에서 통일된 정부 수립에 의견을 모은 미국, 영국, 프랑스와 달리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던 소련이 대립하여, 결국 통일된 정부를 세우지 못하고 1949년 미국, 영국, 프랑스 점령지역에 독일연방공화국(서독), 소련 점령지역에 독일민주공화국(동독) 정권이 따로 들어서게 되었다.

심지어 일정한 기준선을 따라 분할점령한 한반도와 달리 이쪽 지역은 4개국의 점령지가 뒤섞여있었기 때문에, 의견이 같았던 미영프의 점령지는 하나의 정부 관할로 통합됐지만 당시 소련의 점령지에 에워싸여 있던 베를린의 미영프 점령지도 서독의 관할에 들어가게 되면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분할되어 두 개의 베를린 시청이 들어섰고, 냉전이 공고화되면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에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마셜 플랜 등 서방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발전한 서독과 달리 소련은 세계 전쟁의 원흉이었던 독일이 다시금 재기하지 못하도록 동독의 산업을 철저히 통제해 사실상의 농업국가화를 이루려 하면서 점차 낙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했던 동독 주민은 나라를 등지고 다른 곳으로 탈출하는 등 국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그에 맞물려 동구권의 개혁, 개방 열풍속에 공산정권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면서, 동독 정부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동독이 아무리 공산체제를 유지하려 해도 주변의 모든 동유럽 국가들이 자유화되면서 체제를 유지하기가 극히 어렵게 되었다. 정 체제를 유지한다면 북한처럼 나라 전체를 거대한 감옥 수준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당시 동독 정부는 이런 무리수를 둘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990년 10월 3일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하면서 분단시대는 막을 내렸다.

사실 동서독이 분단국가라는 관점은 결국 마지막의 승자인 서독의 입장에서나 그렇지 동독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1960년대까지는 헌법에 통일을 명시하는 등 동독도 통일을 추구했으나, 1970년대부터는 동독 정부가 자국과 독일 연방 공화국인 서독이 그냥 남남인 것으로 취급하여 독일 연방 공화국을 독립국으로 승인하기까지 했다. 물론 독일 연방 공화국인 서독에서는 자국이 분단 국가라고 인식해서 통일을 목표로 삼고 독일 민주 공화국을 공식적으로 국가라고 승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독 혁명도 사실 통일을 방점에 둔 것이 아니고 그저 자유국가화를 향한 투쟁이었지만 어쩌다보니 급작스러운 서독의 흡수통일로 번졌던 것.

독일 연방 공화국은 건국 초기에 할슈타인 원칙에 따라 외국이 독일 민주 공화국을 국가로 승인하면 그 나라와는 외교 관계를 맺지 않기도 했었을 정도였다.[17] 독일 연방 공화국은 나중에 이 원칙을 철회하고 다른 나라가 독일 민주 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묵인하게 되지만, 스스로는 독일 민주 공화국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소련폴란드가 차지한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以東)의 옛 영토까지 회복해야 할 땅으로 간주했었으며 분단 시절 서독의 교과서 등 서적에서도 1937년 이전의 영토를 독일령으로 간주했다.[18] 잃어버린 고토 회복까지 운운했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들의 사례와는 사정이 약간 다르다.


5.2.2. 북베트남 - 남베트남[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베트남 통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였던 베트남제2차 세계대전 중 침략을 받다가, 호찌민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성향의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이 북반부에 수립되고, 남반부에는 옛 왕조를 모시는 베트남국이 성립되었으나, 프랑스와의 전쟁이 일어났고, 결국 통일된 정권을 수립하지 못하고 1954년 제네바 협정으로 북위 17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하여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1955년 남반부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이 성립되어 남북베트남 간의 이념대립이 계속되었다.

몆 번의 군사충돌이 있다가 결국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고, 미국과 대한민국 등까지 참전하는 국제전으로 확대되었으나, 최후에는 북베트남이 승리하게 되면서 남베트남은 망하고 사회주의 통일로 분단에 종지부를 찍고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성립되어 현재에 이른다.

사실상 북쪽의 흡수통일이고 통일 베트남 정권도 구 북베트남과의 연속성을 두고 있지만, '명칭'이나 '형식'만 놓고 보면 흡수통일은 아니다. '베트남 민주 공화국'과 '남베트남 공화국'이 합쳐지면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게다가 남베트남 정권이 무너지자 바로 통일이 된 것이 아니라 남베트남에 새 정권이 생기고 이 새 정권이 북베트남과 통일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래서 남베트남 정권이 무너진 후 통일이 될 때까지는 1년 2개월이 걸렸다.


5.2.3. 북예멘 - 남예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예멘 통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예멘16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19세기에 남부지방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북부 지방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왕국으로 먼저 독립했으며, 1962년 쿠데타로 왕당파와 공화파 간의 8년간의 내전이 벌어졌고 공화파가 승리하여 1970년 왕정이 완전히 폐지되고 예멘 아랍 공화국(북예멘)이 성립되었다.

남부지방은 1967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 예멘 인민 민주 공화국(남예멘)이 성립되었다. 남예멘과 북예멘은 성향은 달랐지만, 통일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며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고,[19] 공산권의 쇠퇴로 북예멘 쪽이 협상에 유리한 위치에 있었고 1990년 통일하여 예멘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통일 후 구 북예멘 출신과 구 남예멘 출신들의 갈등으로 구 남예멘이 재분리를 선언하자 다시 내전이 터져서 북예멘의 승리로 끝났다.

북키프로스[20]와 함께 분단 국가 중 북쪽이 공산진영이 아닌 케이스다.[21] 북한, 북베트남은 사회주의 진영 국가인데 비해서 차이가 있다.

현재 예멘은 내전 상태로 시아파 후티 반군이 수도 사나를 비롯한 북부 지역을 장악하고 예멘 정부는 남쪽으로 후퇴, 아덴을 임시 수도로 삼으면서 사실상 남북으로 다시 나뉘려는 모양새다. 후티 반군이 독립을 선언하지는 않아서 북부에 따로 국가 형태의 무언가가 성립되지는 않았지만 다시 나뉜다면 분단보다는 남수단같은 독립의 형태에 가까워질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아랍연합군이 결성되어 후티 반군과 전쟁을 벌이고는 있지만 후티 반군의 저항이 워낙 거세 사우디아라비아는 굴욕만 맛보고 있다.



6. 분단국가의 국력 비교[편집]


지역
기준년도
면적
(백분위)
인구
(백분위)
명목GDP
(백분위)
대한민국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2014년
100,210㎢ : 123,138㎢
(44.87 : 55.13)
5127만 : 2524만
(67 : 33)
1조 1,296억$ : 144억$
(98.74 : 1.26)[22]
중화인민공화국 : 중화민국
2010년
9,640,821㎢ : 35,980㎢
(99.63 : 0.37)
13억 7,053만 : 2315만
(98.34 : 1.66)
9조 4,691억$ : 4,891억$
(95.09 : 4.91)[23]
키프로스 : 북키프로스
2012년
5,896㎢[24]: 3,355㎢
(63.73 : 36.27)
83만 : 30만
(73.45 : 26.55)
219억1,000만$ : 17억6,600만$
(88 : 12)
서독 : 동독
1990년
248,577㎢ : 108,333㎢
(69.65 : 30.35)
6217만 : 1630만
(79.23 : 20.77)
9,457억$ : 1,595억$
(85.57 : 14.43)[25]
북베트남 : 남베트남
1973년
157,880㎢ : 173,809㎢
(47.60 : 52.40)
2393만 : 1937만
(55.27 : 44.73)
23억5000만$ : 33억$
(41.59 : 58.41)
북예멘 : 남예멘
1990년
195,000㎢ : 360,133㎢
(35.13 : 64.87)
716만 : 259만
(73.44 : 26.56)
550억$ : 120억$
(82.09 : 17.91)

모두 인구가 많은 쪽이 체제경쟁에서 이겼거나 우세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남베트남은 체제경쟁에서 진 쪽임에도 유일하게 경제를 앞섰다.


7. 분단국가가 아닌 예[편집]



7.1. 분리주의[편집]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문화적으로 유사하지만, 모두 또는 일부가 공식적으로 통일을 지향하지 않는 사례들이다. 어느 한 쪽이 독립을 불인정할 경우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쪽은 ☆ 표시.

  • \ [[호주|{{{#!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호주}}}{{{#!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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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뉴질랜드|{{{#!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뉴질랜드}}}{{{#!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뉴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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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틀:국기|
    ]]
호주-뉴질랜드 관계 : 독립 당시 호주는 뉴질랜드에 연방 가입을 권했으나 뉴질랜드는 가입하지 않았다. 현재도 호주 헌법은 뉴질랜드와의 통일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하지만 뉴질랜드 측에서는 호주 대륙과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기에 한 나라로서 함께 하기에 다소 부담을 느끼는 편이다.
통합을 하진 않았지만 양국은 상호 왕래와 국적 취득, 귀화 등의 측면에서 이미 그 어떤 국가들보다 가까운 사이이다. 이는 '이럴 거면 통합하자'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반대로 '어차피 별 차이 없을 거면 굳이 현 상태에서 벗어나지 말자'라는 식으로 통일 의욕을 낮추는 요인도 된다.

  • \ [[인도|{{{#!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인도}}}{{{#!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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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키스탄|{{{#!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파키스탄}}}{{{#!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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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글라데시|{{{#!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방글라데시}}}{{{#!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방글라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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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관계 : 영국령 인도 제국 해체 후 인도와 파키스탄이 각각 독립, 다시 서로 월경지였던 파키스탄으로부터 방글라데시(동파키스탄)가 독립했다. 애초에 영국 이전의 인도가 한 나라도 아니었고, 현재 사이도 안 좋다. 국소지역에 대한 영유권 분쟁 외에 통일에 대한 인식 자체도 없어서 분단국가로 보는 견해가 현재는 없다.

  • \ [[수단 공화국|{{{#!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수단 공화국}}}{{{#!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수단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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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남수단|{{{#!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남수단}}}{{{#!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남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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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민지 시절부터 문화적, 종교적으로 차이가 큰 서로 다른 민족이 한 나라에 강제로 묶였던 경우로, 독립 투표가 가결되어 남수단이 독립하였다. 통상 분단국가처럼 서독, 동독 같은 명칭이 아니라, 동티모르처럼 진짜 국호가 남수단이다. 애초에 수단도 1956년에 독립한 나라다.

  • \ [[모로코|{{{#!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모로코}}}{{{#!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모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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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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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래 모로코 지역은 프랑스령, 서사하라 지역은 스페인령이었다. 모로코는 서사하라 지역까지 자국의 영토로 간주하는데,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은 서사하라 지역 전체만 자국 영토로 간주할 뿐 모로코 영토까지 자국의 영토라 하지는 않기에 분단국가는 아니다.

  • \ [[체코|{{{#!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체코}}}{{{#!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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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로바키아|{{{#!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슬로바키아}}}{{{#!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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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코슬로바키아

  • \ [[소말리아|{{{#!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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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말릴란드|{{{#!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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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두 지역은 북부는 영국령, 남부는 이탈리아령이었다. 1960년에 두 지역이 합병된 채 독립하였다. 그러나 남부 중심의 지역불균형과 소말리아 내전까지 더해지자 1991년 북부의 소말릴란드가 다시 한번 독립을 선언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당연히 소말리아는 소말릴란드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2020년 6월, 지부티에서 이뤄진 소말리아와 소말릴란드 양자 간 최초의 정상 회담에서도 인식 차가 드러난다. 소말리아는 내무부가, 소말릴란드는 외교부가 회담을 주재했다. 소말리아 입장에서만 분단국가인 셈. 오히려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받은 남부 소말리아의 내정은 여전히 불안한 상태이며, 수교국이 전무하다시피하는 북부의 소말릴란드가 오히려 여러 측면에서 안정적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외교부의 정책 상 국가 단위로 여행금지 또는 제한 조치를 내리므로 북부까지 소말리아로 간주하기에 북부 소말릴란드를 방문하여도 여권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으니 주의.

  • \ [[브라질|{{{#!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브라질}}}{{{#!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틀:국기|{{{#!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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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틀:국기|
    ]]
    -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의 도움으로 브라질을 무찌르고 독립한 나라이다. 당연히 과거 이야기이며, 현재는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하며 메르코수르 형성을 주도하기도 하는 등 서로에 대한 통일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 \ ☆ -
친서방 알바니아계 민족이 주축인 세르비아 남부 지역에서,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으나 세르비아는 인정하지 않고 있고 코소보도 세르비아 영토 전체를 자국 영토로 간주하지 않는다. 당연히 세르비아 입장에서만 분단국가인데, 정작 세르비아도 유고슬라비아가 1992년 해체되며 독립한 나라다. 코소보는 신생 독립국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세계 98개국이 독립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세르비아의 입장도 의식해야 하는 대한민국, 폴란드는 수교를 보류하고 있다.

  • \ -
과거 열강에 의해 동서로 분할되었으나 서사모아만 독립하고 동사모아는 지금도 미국령이다. 사실상 지명만 비슷한 동네라고 봐도 될 정도로 통일에 대한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 \ -
역사적으로는 같은 몽골인의 땅이었지만, 애초에 유목민족이라 수많은 계파로 나뉘어 있었던 특성상, 외몽골의 할하인과 내몽골의 차하르인도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고, 중국에 속한 내몽골은 현재 사실상 지명만 몽골이지 거주하는 민족은 한족이 훨씬 많다. 통일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국은 단 한 점도 작아질 수 없다는 입장이고 중국과 몽골의 국력 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몽골에 칭기즈칸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통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 \ -
같은 콩고족의 땅이지만 콩고족만 거주하는 것은 아니며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접경하는 이웃 국가다. 수단이나 기니 등처럼 지명만 비슷한 나라라고 보는게 타당하다. 콩고민주공화국이 더 큰 나라라서 일반적으로 '콩고'라 하면 콩고민주공화국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 \ - - -
네 나라 모두 마인어를 쓰는 말레이권이라는 거대한 문화권으로 묶여 있던 한 공동체였으나 열강에 의해 두 지역으로 크게 분할되면서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가 형성되었고 브루나이, 싱가포르는 이후 말레이시아에서 분리되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으며, 브루나이는 전제군주제 정치체제가 유지되고 있고 싱가포르는 아예 말레이권 대신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같은 영미권 이민국을 표방하고 있으므로 말레이시아에 다시 편입될 가능성은 없다. 애초에 싱가포르는 강제로 독립당한 특이 케이스였다.

  • \ -
같은 언어를 쓰는 게르만 국가인데다 딱 붙어 있어서 민족적 동질성도 크지만, 과거사로 인해 양국간 통합은 거론조차 금기시되고 있다. 그리고 1997년 12월 1일에 오스트리아가 솅겐 조약에 가입하여 사실상 국경이 없다봐도 무방한 상태라 국가 통합에 실익이 적어 굳이 남들을 자극하면서까지 무리수를 둘 필요도 없어졌다.

  • \ ☆ - -
조지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국가다. 물론 조지아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들의 독립을 지원하는 러시아로부터 2008년에 전쟁까지 겪었다. 남오세티야는 친러 성향이 강해 러시아 연방으로의 편입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압하지야는 중도적인 성향이 있어서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 \ -
히스파니올라 섬을 동서로 양분하고 있는 두 국가. 19세기에 도미니카 공화국이 아이티로부터 독립했다. 지금은 아이티 내정이 불안하여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혹시나 자국에 불똥이 튈까봐 국경 경계를 강화하고 있을 뿐 통일 관련 이야기는 없다. 자세한 건 도미니카 공화국-아이티 관계 참조.


7.2. 특이 케이스[편집]


  • \ - -
루마니아-몰도바 관계 : 둘 다 루마니아인이 주축이 되어 세워졌고 본래 같은 나라였다가 몰도바 쪽이 소련에 강제합병되면서 분리되었다는 점때문에, 양국의 루마니아 민족주의자들은 양국간 관계를 분단국가로 인식한다.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몰도바의 국가는 "우리들의 언어"를 뜻하는 Limba noastră인데, 국가 제정 당시에는 "우리들의 언어"가 무엇인지 규정하지 않았지만 후일 몰도바에서는 국어를 루마니아어로 지정했다.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양국은 서로 다른 나라라고 주장하면서, 양국간 통일을 결사반대한다. 미승인국트란스니스트리아가 이 문제때문에 몰도바 내 러시아계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독립하면서 생겨난 나라이며, 몰도바에 잔류한 자치공화국인 가가우지아루마니아와의 통일을 강행할 경우에는 즉각 독립을 선언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루마니아는 통일에 호의적이고, 몰도바는 과거에는 통일 반대 여론이 우세하였다가 현재는 반반 정도이다. 앞으로 찬성여론이 더 많아지면 국가 대 국가 통합을 성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몰도바는 EU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는 더더욱 몰도바로부터의 독립의사를 굳히고 있다.

  • \ -
영국-아일랜드-북아일랜드 관계 : 영국과 아일랜드는 독립국임을 서로 인지하고 있어 분단국가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영국령 북아일랜드의 존재 때문에 '아일랜드 섬이 분단된 상태'라고 할 수는 있다. 벨파스트 협정으로 북아일랜드인들의 다수가 원한다면 투표를 거쳐 통일을 허용하기로 영국이 합의했으며[26] 통일 여론 조사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아일랜드 통일 문서 참고.

  • \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 : 같은 지역에만 있을지언정, 민족과 언어,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는 완전히 다르다. 이스라엘 정부관료들은 지역으로서의 '팔레스타인'이라는 낱말만으로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스라엘 본토에서 거론하는 팔레스타인은 요르단 강 서안 지구가자 지구를 다스리는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체제만 가리키는 호칭이다.

  • \ - - -
후자의 국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기 위해 급조한 괴뢰국가라는 평가가 강하다.

  • \ - -
돈바스 전쟁 이후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러 성향의 우크라이나 동부 주민들이 임시적으로 만든 미승인국가이다. 두 나라 모두 설립 1일만에 해체되었다.


7.3. 아예 서로 무관한 나라들[편집]


  • \ - - -
지명 유래만 같다. 이 중 기니-기니비사우를 제외하면 서로 붙어있지도 않으며, 그나마 같은 아프리카에 있다는 공통점 이외에 별다른 게 없다. 심지어 파푸아뉴기니는 오세아니아에 있는데, 해당 섬에 사는 사람들이 기니에 사는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마치 카리브 제도가 과거 서인도로 불렸던 것과 비슷한 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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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비슷하고 딱히 위에 비해서도 지리적으로 인접하지 않은 먼 나라이다. 절대적인 지리적 거리는 가까울 수 있지만 섬나라 특성상 일반적인 내륙국가보다는 먼 편이라 볼 수 있다. 동명이국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정도.


8. 출처[편집]


[1] 1991년유엔에 남북한 모두 가입하게 되었다. 한국의 유엔 가입은 소련중국, 동독, 베트남, 폴란드, 쿠바 등의 공산권에서 계속 방해를 놓고 반대를 했기에, 냉전이 끝날 90년대 무렵이 되어서야 유엔에 가입이 가능했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유엔 가입은 미국, 대만, 영국, 서독,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국가가 계속 반대했다.[2] 교양만화가 이원복 교수가 집필/작화에 참여했으며, 일부 내용은 <먼나라 이웃나라> 우리나라편에 인용됐다.[3]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 수십년간 일제 강점기와 신탁통치 과도기를 거친 뒤에 각각 별도의 정부로 출범하여 하나의 나라가 갈라졌다고 보기에 애매할 수 있는 특이 케이스기도 하다. 어쨌든 고려-조선-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한나라 국민으로서의 공통인식이 있었고 일제에 강제병합된 시기에도 적어도 분단되지는 않았기에 일제가 물러가고 미소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할한 때를 사실상 한나라를 양분했다고 보는 시각이 대세이고 지금까지 그 인식이 주류이기에 분단국가다.[4] 오늘날 의회민주주의 내에서 공산당으로 활동하는 정당들이 있으나, 공산주의에서 이야기하는 생산 시설의 국유화 같은 개념은 경제적 자유를 지나치게 해치기 때문에 시도하기 어렵다. 오늘날 좌우대립은 자본주의의 틀을 해치지 않는 사회민주주의와 전면적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스펙트럼 내에서 나타나고 있다.[5] 6.25 전쟁이 마무리된 것 역시 이 때문이다. 20세기 이전의 시기였다면 그 누구도 전쟁을 멈출 요인이 없으므로 전쟁은 양측이 온전히 전력을 소진할 때까지, 혹은 한쪽이 무너질 때까지 더 지리멸렬하게 이어졌을 것이다.[6] 현재도 베트남에서의 공식적인 사관이다. 베트남에서는 남베트남을 미국의 괴뢰정권이었다고 가르친다.[7] 동독이 통일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건 1970년대 이후고 1970년대 이전에는 동독도 통일을 추구했다. 1968년 동독 헌법을 보면 미제국주의에 의해 독일이 분단되었다는 내용이 있다.[8] 북한이 사용하는 겹화살괄호는 보통 '인용'의 의미가 강하므로 발언의 의도를 단정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소한 남북의 심리적 거리가 전보다 훨씬 더 멀어졌음은 확실하다.[9] 적대국으로 명시하면서 '대한민국을 평정'하고 그 지역을 차지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적화통일의 기본적인 모양새를 유지하면서 '통일'이 아닌 '정복'만을 남긴 것이다.[10] 당시 중화민국 측은 표결 결과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탈퇴'를 선언하였으나, 결의 조건 자체가 장개석 일당을 추방한다고 명시되었기 때문에 중화민국 측의 선언은 이미 추방된 이후의 공허한 외침이나 다름없었다.[11] 명목상으로는 한동안 유지하였다. 어차피 여기는 워낙 인구가 많아서 필요한 병력보다 징병 대상자가 더 많고 군대 나오면 출세하는 분위기라 군에 앞다퉈 지원하기 때문에 가기 싫으면 자연스럽게 빠질 수 있는 구조였다. 그래서 명목상 징병제이고 사실상 모병제였으나 이제는 명목상으로도 징병제가 완전히 폐지된 것이다.[12] 다만 정부의 강요 때문이 아닌 중국인들 스스로가 통일이 되면 국력이 더 강해진다는 생각으로 양안통일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대만이 중국보다 인구가 훨씬 적고 경제력도 높으므로 통일 이후의 혼란에 대한 우려도 거의 없는 편이다.[13] 물론 이들 중 원주민은 소수고 좀 더 일찍 대만으로 건너간 한족(본성인)들이 대다수이기는 하다. 그러나 '타이완섬'이라는 지리적 장소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네덜란드-정성공-청나라-일본-중화민국 순으로 지배자가 바뀌었을 뿐이라고 볼 수도 있기는 하다.[14] 물론 홍콩과 마카오는 현재로서는 중국의 특별행정구인 만큼 그 두 곳은 중국 영토가 맞다. 홍콩의 경우 현재는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일국양제는 있으나마나인 상황이다.[15] 최근에는 중국 대륙을 아예 별개의 국가인 중국으로 부르는 경우도 많지만 여전히 방송 등에서는 별개의 국가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한 관계라는 의미에서 대륙으로 부르고 있다.[16] 그리스 군사정권이 키프로스에 군대를 파견해 쿠데타를 일으키자, 튀르키예도 강경대응하여 키프로스를 침공해 키프로스 북부를 점령한다. 이로 인해 그리스 군사정권은 실각한다.[17] 단 당대의 양대 강대국이자 상임이사국이었던 소련은 예외로 수교했는데, 이건 소련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소련은 자신들이 건국에 관여한 동독을 독일의 유일 합법 정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과 동독의 수교는 소련과 서독의 수교로부터 한참 지난 뒤다.[18] 후대로 갈수록 이 관념이 희박해지고 결국 독일 통일 때 완전 포기했지만.[19] 다만 1972년/1979년 2차례 국경 분쟁이 있긴 했다.[20] 여긴 이념 문제가 아니라 민족간 갈등으로 분단됐다.[21] 다만 제1세계 자유진영은 아니었고, 제3세계 아랍사회주의 성향이었다.[22] UNSD 2012년 자료 기준[23] IMF 2013년 자료 기준[24] 흔히 알려진 9,251㎢는 키프로스 공화국의 명목상 면적이므로 여기서 북키프로스의 면적을 빼야 한다. 기억하자. 국제사회는 북키프로스를 (남)키프로스의 땅으로 간주한다.[25] CIA World Factbook 1990 기준[26] "북아일랜드의 정치적 미래는 북아일랜드 사람 다수의 동의에 따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