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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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粉靑沙器 象嵌雲龍文 立壺. 조선 세종~세조 재위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의 분청사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259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편집]
높이 49.7㎝, 입지름 15㎝, 밑지름 21.2㎝.
15세기, 1400년대 전반에 걸쳐 만들어진 한국의 분청사기로 그 중에서도 특히 인화점문 기법과 상감 기법이 극한으로 발전했던 세종조~세조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매병과는 달리 주둥이가 넓고 양감있는 안정된 모양을 가진 이런 종류의 항아리는 15세기 중반부터 크게 유행한 것으로, 흑백 상감기법과 일부 인화기법(印花技法)을 사용하여 여의주를 문 용과 파도를 새겼다. 그리고 여의두문 밖에는 작은 국화문이 인화기법으로 시문되어 있다.
약 600여년 전에 만들어진 한국의 자기로, 조선 전기의 분청사기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3. 외부 링크[편집]
4. 국보 제259호[편집]
조선시대 만들어진 분청사기 항아리로 아가리가 밖으로 살짝 말리고 어깨에서부터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서서히 좁아진 모습을 하고 있다. 크기는 높이 49.7㎝, 아가리 지름 15㎝, 밑 지름 21.2㎝로 기벽이 두껍고 묵직하다.
도장을 찍 듯 반복해서 무늬를 새긴 인화기법과 상감기법을 이용해서 목 둘레를 국화무늬로 새겼으며, 몸통에는 세군데에 덩굴무늬 띠를 둘러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위쪽 부분은 다시 꽃무늬 모양의 굵은 선을 둘러 구획을 나누고 위, 아래로 국화무늬와 파도무늬를 꽉 차게 찍어 놓았다. 몸통 가운데에는 네발 달린 용과 구름을 활달하게 표현하였으며, 맨 아래쪽은 연꽃 무늬를 두르고 있다.
15세기 전반 분청사기 항아리의 전형으로 안정된 형태와 용 문양 표현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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