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왕국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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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차르국
Царство България
Tsarstvo Bǎlgariya
Kingdom of Bulgaria
Tsardom of Bulg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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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Съединението прави силата
단결은 힘

상징
국가
Шуми Марица
(마리차의 전진)(국가)
Химн на Негово Величество Царя
(차르 폐하의 노래)(왕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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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당시 불가리아 왕국 [1]
파일:450px-Kingdom_of_Bulgaria_(1942).svg.png
1942년 당시 불가리아 왕국 [2]
지도
1908년 ~ 1946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불가리아 공국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지리
위치
발칸 반도 동남부
수도
소피아
면적
95,223㎢(1908년)
110,994㎢(1946년)
인문환경
인구
4,215,000(1908년)
7,029,349(1946년)
언어
불가리아어
종교
불가리아 정교회
민족
불가리아인
정치
정치체제
군주제
국가원수
차르
통치 가문
작센코브루크고타코하리 왕조
주요 국왕
페르디난트 1세(1908~1918)
보리스 3세(1918~1943)
주요 총리
알렉산더르 스탐볼리스키(1919~1923)
키몬 게오르기에프(1차: 1934~1935, 2차: 1944~1946)
게오르기 쿄세이바노프(1935~1940)
보그단 필로프(1940~1943)
경제
통화
불가리아 레프

1. 개요
2. 역사
3. 역대 차르
4. 여담



1. 개요[편집]


발칸 반도 남부에 있던 왕국으로 수도는 소피아. 군주의 칭호가 차르 (цар)였기 때문에 불가리아 차르국 또는 불가리아 제3제국 (또는 제3차르국)이라고도 한다.[3] 짧은 존속 기간 동안 굉장히 스펙타클한 변화를 겪은 것으로 유명하다.

2. 역사[편집]



2.1. 페르디난트 1세 치세[편집]


불가리아 공국이 1908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함과 동시에 왕국으로 승격되면서 통치자이던 페르디난트 공이 차르로 승격하였다.

팽창주의적이고 투쟁적인 국가였기에 오스만 제국에서 불가리아 민족주의자들은 그리스 민족주의자들만큼 골칫거리였다. 그리고 언어적으로 유대가 있는 마케도니아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두 차례의 발칸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왕국 선포 10년 만에 3번이나 전쟁을 치러(1차 발칸전쟁 - 2차 발칸전쟁 - 1차대전) '발칸의 프로이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딱 4개국에 불과한 동맹국의 일원 중 하나였다. 기본적인 국력차 때문에 후대에 별로 주목은 못 받았지만 그래도 2차 발칸 전쟁 때의 설움을 갚아주려고 독이 단단히 올랐었는지 참전하자마자 발칸 전선에서 세르비아, 그리스, 루마니아를 털어먹고 다녔으며, 심지어 원정 온 영국군과 프랑스군 상대로도 우위를 점했다. 지지부진하던 세르비아-오헝 전선이 1915년 불가리아가 전쟁에 뛰어들자마자 순식간에 동맹국에 유리해졌을 정도. 1918년에는 부쿠레슈티 조약을 체결하여 2차 발칸전쟁에서 빼앗겼던 남도브루자도 수복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런 분투에도 불구하고 패색이 짙어지자 결국 동맹국 중 제일 먼저 항복, 협상국뇌이 조약을 맺었고 그리스와 세르비아에게 영토를 빼앗겼으며 군비 제한까지 당했다.

페르디난트 1세는 1918년 왕태자 보리스에게 양위하고 고향 독일로 은거했다.

2.2. 보리스 3세 치세[편집]


1923년 쿠데타가 일어나 좌익 정권은 무너지고 알렉산더르 스탐볼리스키 총리는 암살당하였으며[4] 쿠데타의 주역 알렉산더르 찬코프가 총리가 되었다. 보리스 3세는 군경의 도움을 받아 전제 독재 정치를 펴게 된다.

1925년에 불가리아는 그리스의 침공을 받았는데, 비록 불가리아가 어찌어찌 승리하고 배상금까지 받아냈지만 찬코프는 조기대응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1926년 총리에서 실각당했다.

1927년에는 불가리아 왕국군 장교들이 극우 정치 조직인 즈베노(Звено)를 결성했으며, 1934년에는 즈베노가 쿠데타를 일으켜 1923년 쿠데타에 가담한 적이 있던 키몬 게오르기에프가 총리가 되었다. 그 이후 즈베노는 모든 정당을 해산시키고 군사독재 정권을 수립했다. 그러나 보리스 3세는 1935년 1월 22일 즈베노가 왕정을 폐지하려고 한다는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려 자신과 친밀한 불가리아군 장교들을 이용해 즈베노를 몰아낸다.[5]

제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자 나치 독일의 강압에 의해 추축국에 들어가서 독일의 그리스 침공유고슬라비아 침공을 돕기도 했다. 물론 나치의 위협에 의해 추축국에 들어가긴 했지만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땅이던 서부 트라키아를 점령하고 제2차 발칸 전쟁 당시 루마니아에게 빼앗긴 남부 도브루자를 루마니아로부터 되돌려받는 등 어느 정도 이득을 챙기기도 했다.[6] 그러나 독일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유대인과 집시족들을 독일에게 넘기지 않는 등 홀로코스트에 거의 동참하지 않았고[7] 같은 슬라브계 국가인 소련을 치는 독소전쟁에는 참전을 거부했다.

소련은 처음에 독일에 대패하자 불가리아를 중재로(당시까지 불가리아와 소련은 우호적) 독일과 강화를 하려고 했다. 이 때 주모스크바 불가리아 대사가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우랄 산맥까지 밀려난다고 해도 결국은 당신들이 (전쟁에서)이길 것"라고 말한 바 있다고. 그런데 소련군은 전세가 역전되어 루마니아의 항복과 전향을 받아내자 가만히 있던 불가리아에 선전포고하고 침공했다. 물론 양국의 전쟁상태는 사흘 정도 지속되다 끝났고 그 사흘간에도 제대로 된 교전은 없었다고 한다.

그보다 조금 전인 1943년에 국왕 보리스 3세는 아돌프 히틀러와 회담한 뒤 급서했고(독살설이 유력하다), 6살 난 왕태자 시메온이 뒤를 이었다.

2.3. 시메온 2세 치세[편집]


국왕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숙부 키릴 왕자, 니콜라 미호프 장군, 보그단 필로프 전 총리가 섭정단을 구성해 실권을 행사했다.

1944년 9월, 불가리아에서는 불가리아 조국전선이 쿠데타를 일으켜 키몬 게오르기에프가 총리가 되었으며[8] 섭정단도 모두 교체되었다. 이후 불가리아는 사흘만에 소련과 강화를 맺고 옛 동맹국 독일에 선전포고, 불가리아군은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축선에서 소련군을 보조했다.

불가리아는 이번에도 패전국이 되어 소련군에게 점령당하였다. 전쟁 이후에는 소련위성국으로 전락했고, 공산당 투표를 통해 1946년 9월 9일, 왕정 폐지가 결정되면서 불가리아 왕국은 종말을 맞았다. 그리하여 소련에 의해 점령된 타 유럽 국가들처럼 공산주의 국가인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었고, 시메온 2세는[9] 아직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모후와 함께 망명이 허락되었지만, 키릴 왕자를 포함한 1차 섭정단은 추축국 편에 선 책임을 지고 처형당했다.[10]

여담이지만 페르디난트 1세는 이때까지 살아 있었다.[11]

3. 역대 차르[편집]



4. 여담[편집]


세르비아 왕국과는 철천지원수 관계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직전 페르디난트 1세는 대놓고 "내 삶의 목적은 세르비아의 파멸"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불가리아가 세르비아의 영토를 점령한 뒤에는 세르비아인들을 학살하고, 마케도니아인들을 불가리아인들로 동화시키려고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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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차 발칸전쟁 이후, 제1차 세계 대전 직전[2]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최대강역[3] 불가리아 제3차르국이 성립된 시기 즈음에는 이미 차르의 의미가 의 의미로 격하된 상태였다. 그 예로 러시아 황제가 겸했던 폴란드 입헌왕국의 왕위 역시 공식 칭호는 폴란드 차르였고 러시아 제국 황제는 임페라토르로 불렸다. 이로 인해 서구권에서는 불가리아 제 1, 2차르국의 군주는 황제로, 불가리아 제 3차르국의 군주는 왕으로 번역한다. 현재도 폴란드세르비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차르임금 정도의 의미로 통한다.[4] 그것도 그냥 암살당한 게 아니라 마케도니아 혁명조직(IMRO)의 손에 넘겨져 처참하게 고문당하고 살해당했다고 한다. 그들이 이런 짓을 저지른 이유는 1923년에 스탐볼리스키가 IMRO를 억제하는 내용의 니시 조약을 체결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5] 즈베노 자체는 여전히 잔존해 있었고,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수립 이후에야 해체되었다.[6] 현재 불가리아 영토인 남부 도브루자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들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포기한다.[7] 초기에는 불가리아에서도 반유대주의가 성행하여 점령지의 유대인들을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로 보냈을 정도였지만 정교회의 압력에 더해서 디미터르 페셰프(Димитър Пешев)가 반유대주의를 진정시킬 것을 촉구하는 편지를 정부에 보낸 후 급속도로 진정되었다고 한다. 페셰프의 편지에는 무려 30명이 서명했으며 아무도 서명을 철회하지 않았다. 심지어 당시 독일에 거주하고 있었던 알렉산더르 찬코프 전 총리도 본인이 친독 인사였음에도 그 편지에 서명을 했다.[8] 이후 게오르기에프는 인민 공화국 치하에서 부총리 겸 외무장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사회주의노력영웅 칭호도 2번이나 수여받았다.[9] 참고로 시메온 2세는 불가리아 민주화 이후 불가리아로 돌아와 총리가 된 인물이다!!(재임 2001~2005)[10] 도브리 보질로프 전 총리를 포함한 67명의 국회의원들도 함께 처형당했다.[11] 망명지인 독일 코부르크에서 1948년 9월 10일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