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애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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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애쉬비
Bruce Ashbey · ブルース・アッシュビー

파일:attachment/bruce_ashbey.jpg
OVA
인물 정보
신체 정보
남성, 186cm, ?형
생몰년
SE 710 ~ SE 745. 12. 11. 19:09 (35세)
가족 관계
아델레이드 애쉬비(첫 번째 배우자),
루신다 애쉬비(두 번째 배우자)
국적 및 소속
자유행성동맹 자유행성동맹군
최종 계급
자유행성동맹군 대장(사후 원수 추서)
최종 직책
자유행성동맹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기함
하드럭
미디어 믹스 정보
성우
파일:일본 국기.svg OVA 카자마 모리오
1. 개요
2. 상세
3. 작중 행적
3.1. 오만한 천재
3.2. 출세와 활약
3.3. 분열과 의심
3.4. 군무성이 눈물을 흘릴 40분
3.5. 영웅의 죽음
3.6. 사후
4. 후세에 미친 영향
5. 모살설
6. 작중 명대사
7. 기함


파일:attachment/Free_Planets_Alliance.jpg 자유행성동맹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파일:mxx5q0t3ulw0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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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애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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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자유행성동맹의 장교로 최종 계급은 대장. 양 웬리가 활동하기 반세기 전에 활동한 인물로 '다곤의 영웅' 링 파오&유수프 토패롤 콤비에 비견되는 동맹의 전쟁영웅이자 명장이다.

을지해적판에서는 브루스 아슈비 또는 부르스 아슈비, 서울문화사판은 브루스 애슈비란 번역을 했지만 이타카판에서 애쉬비로 번역했다.


2. 상세[편집]


링 파오&유수프 토패롤 콤비를 이어 동맹군의 명장 계보를 장식한 전쟁영웅. 그에 대한 전기만 100권 넘게 출판되었고 그의 생애는 입체 TV나 영화의 소재가 되었다.[1] 그가 죽은 12월 11일은 동맹의 공식 기념일이자 공휴일로 지정되었으며, 죽고 반세기가 지난 뒤에도 그 용명은 동맹군 전쟁사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186cm의 장신과 기백을 갖춘 미남으로, 남을 위압하고 군사를 지휘할 만한 외모를 가졌다. 이에 대해서는 '소위였는데도 대령보다 높아 보였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2] 전략적인 안목은 그리 좋지 못했지만 전술 능력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뛰어났기에 전투에 나설 때마다 무수히 많은 제국군을 발할라로 보내버리며 사신으로 군림했다. 특히 전투의 기회를 가늠하는 능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했으며, "승리의 여신이 아니라 시간의 여신이 애쉬비의 편을 들었다"고 평하는 자들도 있다. 또한 행동이든 결과든 극적인 것을 좋아해 연극으로 치면 명배우가 아니라 대스타에 빗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개인적인 성격은 오만하고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등 그다지 좋지 못했으며, 가정생활에도 실패를 거듭했다. 애쉬비는 결혼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 두 번이나 이혼했고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는 고압적인 태도로 동료들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해서 730년 마피아의 분열을 확대시켰다.

애쉬비는 전투나 행동에 있어서 항상 극적인 것을 선호했으며, 이 때문에 "애쉬비가 태어난 후에 전투가 태어났다"는 평가도 있다.


3. 작중 행적[편집]



3.1. 오만한 천재[편집]


브루스 애쉬비는 우주력 710년에 태어났다. 사관학교에 입학한 애쉬비는 사관학교 개교 이래 수재라고 평가받았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는 3학년 때 딱 한번 차석으로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애쉬비는 이를 평생의 치욕이라고 외치며 억울해했다고 한다.[3]

브루스 애쉬비는 우주력 730년 6월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 그는 승진을 거듭했지만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오만한 태도와 패기 때문에 종종 상관과 마찰을 빚었다. 소령 시절 한 상관이 "애초에 귀관은 지나치게 오만한 것 아닌가? 이제까지 거둔 승리가 모조리 실력이고 운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나? 자신에게는 불가능이 없다고 생각하나!"라고 분통을 터트리자 애쉬비는 냉담하게 대꾸하여 상관의 분노를 자극했다.

"물론 제게도 불가능은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보다 더한 실패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5권 <나선미궁>, 김완, 이타카(2011), p.45


당연히 상관은 폭발했고 곁에 참모들도 따져들었지만 애쉬비는 전혀 사과할 생각도 하지않았고 화내던 상관과 참모들을 말리고 대신 사과하던 것은 곁에 있었던 730년 동기들이었다. 그 자리에서 진땀빼던 알프레드 로자스는 "그런 말 듣고 화내지 않으면 뭔가 이상한 사람일 것이다."라고 양 웬리에게 이 일을 회고하면서 화내던 상관을 당연시했다. 로자스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리도 녀석은 오만하고 두려움이 없었지'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세상 무서울 것 없던 애쉬비도 바람기가 심해서 '가정 문제'에 대해서는 실패했다. 애쉬비는 23살 때 아델레이드라는 여성과 결혼했지만 애쉬비는 결혼해서 가정에 속박당하는 것을 싫어했으며 자신이 아델레이드에게 구속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애쉬비는 결혼하고 3년 뒤 친구 알프레드 로자스에게 간절히 부탁해서 이혼 중재를 부탁했고, 애쉬비를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이혼을 받아들인 아델레이드 애쉬비는 다음과 같이 말해서 애쉬비를 오한에 떨게 했다.

"당신은 내게 돌아올걸. 당신이 돌아올 곳은 나밖에 없으니까."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5권 <나선미궁>, 김완, 이타카(2011), p.60

이 역시 로자스가 곁에서 생생하게 보았기에 후에 로자스가 남긴 애쉬비에 대한 책자에서 상세히 서술하기도 했다. 로자스는 전쟁터에서 전혀 두려움 자체를 안 보이던 애쉬비가 처음으로 창백해지고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이때 보았다고 한다.

이후 브루스 애쉬비는 3년 뒤 루신다라는 여성과 재혼했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1년 만에 이혼으로 끝나고 말았다. 루신다는 이혼한 뒤에도 애쉬비라는 성을 썼고, 그 때문에 브루스 애쉬비와 험악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훗날 브루스 애쉬비의 기록을 살펴본 양 웬리는 이걸 보고 "거참, 부지런한 분이셨군."라고 평했다. 애쉬비는 한 여자와 진득하게 관계를 이어나가는 타입이 아니라 여러 여자랑 두루 어울리는 사람이었고 때문에 애인이나 정부 등 혼외관계에 있던 여자들이 자타공인 1개 중대[4] 규모였다고 한다.


3.2. 출세와 활약[편집]


브루스 애쉬비는 사관학교 동기생을 중심으로 730년 마피아라고 하는 그룹을 만들고 스스로 지도자가 되었다. 이들은 우주력 738년 파이어저드 성역 회전에서 15:1이라는 상식을 벗어난 교환비로 제국군을 격파했다. 브루스 애쉬비는 프레드릭 재스퍼가 확보한 우위를 활용하여 제국군을 격파했으며, 이 전투로 순식간에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5]

브루스 애쉬비의 활약은 당연하게도 제국군에 알려졌다. 특히 브루스 애쉬비는 제국군을 격파할 때마다 "너희를 물리친 인물은 브루스 애쉬비다. 다음에 너희를 물리칠 인물도 브루스 애쉬비다. 잊지 않도록."라고 자신의 승리를 자랑했으며, 이걸 수신한 제국군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지경이었다. 제국 군무성은 공식기록에 "브루스 애쉬비라는 반도들의 거괴[6]"라고 기록했으며 당시 제국 군무상서 켈트링 원수는 장수들에게 생사를 불문할 테니 브루스 애쉬비를 황제 폐하 어전에 끌고 오라고 훈시했다.[7] 하지만 켈트링 원수의 질타에도 제국군은 애쉬비에게 이기지 못했고, 켈트링 원수는 제2차 티아마트 회전 직전에 병에 걸려 죽어가면서 조카 빌헬름 폰 뮈켄베르거 중장에게 "애쉬비를 쓰러뜨려라!"라고 두 번 외친 뒤 사망했다. 이 일화는 완전히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제국군이 애쉬비를 증오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애쉬비는 전선에서 승리를 거듭하는 한편 당시 소규모 군사기지만 산재해 있던 이제르론 회랑에 요새를 건설한다는 구상을 정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애쉬비는 요새보다는 자신이 직접 지휘할 수 있는 함대를 선호했기에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에서 함대전력 강화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요새건설계획을 폐기했다.

제국군을 격파하며 승진에 승진을 거듭한 애쉬비는 우주력 745년 3월 우주함대 사령장관에 취임했다. 그리고 동년 6월에 알프레드 로자스가 우주함대 총참모장에 취임한 것을 시작으로 730년 마피아는 어느새 동맹군 수뇌부를 독차지할 정도로 거대해졌다. 몇몇 사람들은 애쉬비와 로자스의 승진을 두고 또 730년 마피아냐고 볼멘소리를 냈지만 애쉬비와 로자스 콤비는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동맹군 우주함대의 작전행동능력을 신장시켜 비판론을 일축시켰다.


3.3. 분열과 의심[편집]


하지만 730년 마피아의 팽창은 동맹정부 정치인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충분했다. 그들은 730년 마피아가 군벌이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으며, 브루스 애쉬비가 '다곤의 영웅' 링 파오와 유수프 토패롤의 전철을[8] 밟고 싶지 않다고 한 발언은 정치가들의 의심을 자극했다.[9]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브루스 애쉬비는 딱히 정계 진출을 염두에 두고 말한 건 아니었다. 한편 브루스 애쉬비가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 나서면서 전사를 각오했다는 증언과, 귀환 후 정계에 진출할 생각이었다는 상반된 증언이 남아 있다.

또한 끈끈한 것 처럼 보이던 730년 마피아도 점점 분열하기 시작했다. 그 분열의 씨앗은 1년 전, 파이어저드 성역 회전 6주년을 기념한 기념 파티에서 잉태되었는데 프레드릭 재스퍼는 자신도 공훈을 세웠음에도 애쉬비만 주목한 현실에 분노하며 애쉬비와 다퉜다. 이때는 재스퍼가 사과하고 애쉬비가 받아주면서 좋게좋게 마무리되었지만 1년 뒤, 제2차 티아마트 회전을 앞두고 분열의 씨앗은 본격적으로 자라났다.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 임할 때 애쉬비는 고압적인 태도로 작전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은 채 자신의 말에 따르라고 강요했다. 이 때문에 애쉬비는 존 드링커 코프 중장과 다퉜고 사령부 분위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렇게 분열되어가는 730년 마피아는 우주력 745년 12월,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 나서게 된다.


3.4. 군무성이 눈물을 흘릴 40분[편집]


730년 마피아가 분열될 무렵, 제국군의 애쉬비에 대한 증오심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빌헬름 폰 뮈켄베르거 중장은 부하들에게 애쉬비의 목을 베어 군무상서의 원한을 풀어야 한다고 훈시했다. 제국군은 사령장관 치텐 원수를 중심으로 5만 척이 넘는 대함대를 티아마트 성역에 파견하여 동맹군과 대적했다.

전투에 나선 애쉬비는 우선 비토리오 디 베르티니의 제9함대와 존 드링커 코프의 제11함대에게 적의 중앙과 우익 사이를 돌파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제11함대가 고립되자 애쉬비는 "제11함대는 모조리 술꾼,drinker,이 되고 말았군. 머리 꼭대기부터 냉수를 들이부어 취기를 깨워 줘라"며 월리스 워릭의 제5함대를 파견에 11함대를 구원했다.

전투 중반부에 이르자 사령부 내 갈등은 폭발 직전에 이르렀고, 각 제독들은 불만을 터트렸다. 그 와중에 애쉬비는 팡 추링에게 제8함대 중 3천 척을 차출하여 총사령부로 옮기라고 명령했는데, 팡 추링은 난색을 표했지만 애쉬비와 짧은 말다툼을 한 끝에 3천 척을 보내주었다.

이후 애쉬비는 각 함대의 전력을 차출하여 대규모 부대를 편성한 뒤, 동맹군이 위기에 빠진 12월 11일 18시 10분 대규모 공세에 나서 제국군을 순식간에 패퇴시켰다. 애쉬비는 제국군의 좌측면을 깎아내듯이 접근한 뒤 방향을 바꿔 단숨에 제국군 중앙을 돌파하여 제국군을 패배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불과 40분 사이 제국군은 코젤 대장, 슐리터 대장 등 60명에 달하는 장성급 전사자를 냈고, 이는 제국군 고급장교단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이 시간은 훗날 '군무성이 눈물을 흘릴 40분'이라고 일컬어졌으며 제국군은 이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10년을 소모해야 했다.

자신의 전과에 흡족해진 애쉬비는 소식이 끊긴 베르티니의 행방을 물었지만 베르티니는 제국군의 포화에 휘말려 전사한 뒤였다. 애쉬비는 베르티니가 나보다 먼저 원수에 올랐다고 짧은 감상을 남긴 뒤 제9함대의 후퇴와 재편성을 명령했다.


3.5. 영웅의 죽음[편집]


18시 50분, 제국군은 더 이상 저항할 여력을 상실했다. 이따금 최후의 발악에 나선 함정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반격을 당해 모조리 우주먼지로 전락했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부대는 하우저 폰 슈타이어마르크 대장이 지휘하던 부대였지만 이들도 18시 52분에 항전을 포기하고 패주했다.

브루스 애쉬비의 기함 하드럭은 순양함 3척과 구축함 6척의 호위를 받으며 전진했다. 그런데 적함의 포격에 응전하기 위해 순양함 1척이 하드럭에서 잠시 떨어진 순간, 유탄[10] 날아와 단숨에 하드럭의 장갑을 뚫고 내부에 막대한 타격을 가했다. 폭발로 인한 피해는 함교까지 미쳤고 일부 요원들은 균열 때문에 우주로 빨려나가버렸다. 이때가 19시 07분이었다.

브루스 애쉬비는 폭발이 일어나고 나서도 서 있었다. 그러나 15초 뒤 2차 폭발이 발생했으며 애쉬비는 110cm 짜리 세라믹 파편에 복부가 배여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당시 함교에 있었던 히스 소령은 "흥, 요즘 전투는 여자와 마찬가지로 질이 나빠졌군."라고 누군가 중얼거리는 걸 들었는데 이 목소리가 브루스 애쉬비인지, 정보주임참모 페르난데스 소장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남긴 말은 애쉬비가 한 말이었다.

"이봐, 로자스. 미안하지만 군의관을 좀 불러주게. 이대로 상처를 내버려둔다면 사람들이 내 시커먼 속을 다 알 거 아냐."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5권 <나선미궁>, 김완, 이타카(2011), p.81

로자스 중장은 급히 군의관을 불렀지만 애쉬비는 이미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 때문에 사망한 뒤였다. 사망 시각은 12월 11시 19시 09분이었다.


3.6. 사후[편집]


비보를 접한 동맹군은 대승에도 불구하고 패잔병처럼 처량한 모습으로 수도로 귀환했다. 해를 넘긴 우주력 736년 1월 4일에 성대한 국장이 치러졌으며 브루스 애쉬비는 1계급 특진하여 원수에 추서되었다. 이는 동맹군 최단기록으로 훗날 양 웬리가 32세의 나이로 원수에 서임될 때까지 깨지지 않았다.

군 수뇌부는 애쉬비의 기록을 전설로 만들기 위해 가벼운 정치적 배려를 했다.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같이 사망한 비토리오 디 베르티니 제독은 전사자에 보통 2계급 특진을 시켜주는 관례에 따라 원수에 추서되어야 했겠지만 군 수뇌부는 1계급만 특진시켜 대장에 추서했으며, 6년 뒤 우주력 751년에서야 다시 1계급 특진시켜 원수에 추서했다.

반면 제국군은 애쉬비의 죽음을 접하자 크게 기뻐했다. 제국군은 애쉬비에게 정의의 철퇴가 떨어졌다고 기뻐했으며 대신(大神) 오딘에게 올바른 도리가 존재했다고 비는 자도 있었다. 심지어 어느 제독은 기쁜 나머지 부하들에게 샴페인을 돌리다가 50만 제국마르크에 달하는 빚을 지기도 했다.[11] 유일하게 조의를 표한 자는 하우저 폰 슈타이어마르크 중장이었지만, 이 때문에 미운털이 박혀 뛰어난 능력 덕분에 상급대장까지 승진했음에도 제국원수와 제국군 3대 장관에는 오르지 못했다.

애쉬비의 죽음으로 730년 마피아는 해체의 길을 걸었다. 구성원들은 이후 통합작전본부장과 우주함대 사령장관, 또는 국방위원장까지 역임하며 출세가도를 달렸지만 다시는 뭉치는 일이 없었으며, 예전처럼 강대한 파괴력을 보여주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알프레드 로자스를 제외한 나머지는 하나같이 불행한 만년을 맞았고, 알프레드 로자스도 스스로 수면제를 과다복용하여 목숨을 끊었다.


4. 후세에 미친 영향[편집]


브루스 애쉬비는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군무성이 눈물을 흘릴 40분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제국군 고급장교단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일단 역전의 노장들을 포함한 총 60명의 장성급 지휘관들을 이 40분 동안 잃었고, 이들을 보좌하던 참모집단 역시 최소 세 자리, 심하면 네 자리까지 쓸려나갔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당장 작중에 등장한 함장들은 구축함조차도 최소 소령 이상, 그나마 은영전에서 등장한 소령 함장은 라인하르트 폰 뮈젤 한 명뿐이다. 즉 함정 손실 1척당 영관급 장교가 1명 이상, 많으면 5~10명까지도 죽어나간다. 당장 브루스 애쉬비와 같은 기수인 730년 6월에 사관학교를 졸업하여 임관한 생도 중 62.5%가 2년 내에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만 봐도 장교단의 극심한 소모를 보여준다.

즉, 일선의 영관급 장교단은 애초에 매년 수만 명 단위로 소모되고 있었다.

게다가 작중 묘사로 볼 때 동맹군이고 제국군이고 참모는 별도 병과로 관리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편인데, 참모는 구 프로이센 육군이나 구 일본군의 경우 우수한 장교를 대량으로 뽑아 3년짜리 교육을 별도로 시켜서 전체 교육이수 인원의 약 10% 정도를 쓸 만한 참모로 길러내는 식이었다. 바꿔 말하자면 참모단 100명이 죽었다면 이것은 우수하다고 평가된 함장 1000명 이상을 상실한 것과 맞먹는 타격이다. 평범한 함장까지 계산하면...이것만으로도 작중 설정된 우주함대 하나 수준의 쓸 만한 인재가 전멸했다는 뜻이다. 만약 1000명 수준이라면...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제국군이 이 손실을 만회하는 데 10년이 걸렸다고는 하는데 라인하르트 폰 뮈젤이 등장할 때를 즈음해서 보여주는 제국군 고급장교단, 특히 은하제국군 수뇌부의 심각한 질적 저하로 볼 때 저 10년은 양적으로 만회했다는 거지 질적으로는 그때까지도 회복 중이었다고 봐야 한다.[12]

일례로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도 아버지 빌헬름 폰 뮈켄베르거가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전사했기 때문에 제국군인이 되었으며, 이런 경우에는 처우가 일반 제국군인보다 더 좋으므로 자신이 가진 실력보다 고속승진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제국군 우주함대 사령장관까지 오를 정도면 그 밑의 장성들의 실력이 아주 낮았다는 것을 보여준다.[13]

현실에서도 전투의 손실로 인해 주요 참모단의 손실이 심했다면 차기 참모진을 길러낼 교관단도 대폭 손실됐다는 뜻이고, 아울러 그 손실을 메우기 위해 무자격자 또는 현격히 능력이 떨어지는 자들을 대량 채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참모는 능력이 되지 않더라도 일단 숫자는 채워야 하는데 지휘관 혼자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독일군은 원래 참모장교 소요가 비교적 적은 구조를 구축한 상태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 때의 참모대학 이수자를 모조리 긁어모으고도 모자라서 무자격자를 대량 채용하고, 덤으로 교육과정 자체를 간소화시켜서 억지로 참모단을 길러내야 했다. 따라서 이들로 인한 전반적인 질적 저하 역시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본편의 시작을 알리는 아스타테 회전에서 제국군 선봉대로 본래 참모나 군사학 교수에 어울리지 실전지휘관으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슈타덴이 발탁될 정도로 제국군의 수뇌부는 기형적인 형태였다.[14]

그러므로 은영전 본편에 와서도 과거보다 현격하게 약체화된 제국군은 라인하르트가 그동안 괄시받았던 평민과 하급 귀족들 위주로 아예 새로 구성한 청년장교단[15]을 제외하고는 그때까지도 제2차 티아마트 회전의 인적 손실의 영향, 나아가 브루스 애쉬비의 악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인 것이다. 이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일으킨 립슈타트 전역 당시 문벌귀족파 사병단과 반 로엔그람파 정규군 연합의 심각한 지휘계통 문제로 증명된다. 당장 해군 장교단만 해도 몇 세대에 걸쳐서 길러지는데, 그들을 통제 운용할 참모단이라면 대체 얼마나 더 많은 교육기간이 필요할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함대결전 한두 번 망한 것 정도로 해군 장교단 자체가 철저히 무너지진 않지만, 강제적인 지휘전문 인력 감소는 그게 설사 전사나 사망이 아니라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군처럼 강제 퇴역되어 언젠가는 복귀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 군 조직 자체에 장기적인 후유증을 남기는 것이다. 당장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독일군 지휘부가 딱 그 꼴이었다. 육해군 공통으로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었고, 그나마 육군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실무 경험을 쌓아 어떻게든 복구가 되었으나 해군은 말 그대로 멸종 수준이다. 특히 함선 건조 관련 전문기술진 교육구조는 완전히 박살났다. 하물며 저런 식으로 전투에서 참모진을 대량으로 잃었다면 복구는 요원하다.

더군다나 제국의 특성상 문벌귀족들은 아무리 무능하더라도 가문빨로 영관급에 장군 승진이 일단 보장되어 있었고, 반대로 하급귀족이나 평민들은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문벌귀족이란 장벽에 가로막혀 출세에 한계가 있다 보니 질적인 회복은 더더욱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원수 자리에 올라 원수부를 개설하고 불러들인 뒤 활용한 인재 풀만 봐도 모두 능력이 있음에도 여러 이유로 중앙군에 제대로 붙어있지 못했던 인물들이다.
다만 반대로 문벌귀족들의 무능화와 평민파의 대두를 불렀다고도 평가된다. 평민 괄시와 별개로 그럭저럭 명문 무가의 전통을 가졌던 문벌귀족 장성들이 싸그리 갈리며 혈통만 귀족인 똥별들이 쏟아졌고, 동시에 텅 비어버린 실무진을 채우기 위해 하급귀족, 평민층의 인재들이 진급하기 시작했다.(물론 장성급은 대부분 문벌귀족 몫이지만, 라인하르트가 발굴한 평민 인재들도 위관이나 영관급까진 올라와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쉽게도 애쉬비 자신이 전사했고 그의 사후 730년 마피아는 해체되었으며 동맹과 제국의 극명한 국력 차이도 있고 해서 암릿처 회전 때와 달리 국가의 흥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그에게는 싸움만 잘하는 싸움꾼이란 평이 있으며, 실제 싸움질(전술적 능력)만 떼어놓고 따지면 양 웬리도 라인하르트도 발라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였다. 그러나 그가 맡았던 총사령관(사령장관)이란 직책은 전투에서 이기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게 아니라 전쟁에서 이기는 것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애쉬비는 전술적 승리에 치우친 나머지, 그만큼 전략적인 면모는 다른 지휘관들에 비해 떨어졌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전술적 능력이 너무 커서 전략적인 곳까지 영향을 줄 정도였다. 양 웬리의 "전술적 수준의 우연은 전략적 수준의 필연이 남긴 잔광에 불과하다"는 말의 정면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당장 제2차 티아마트 회전의 성과만 살펴보더라도 얼핏 보면 단순한 전술적 승리에 불과하지만, 제국의 대(對) 동맹 전략 자체가 수정되어야 할 정도로 피해가 컸다. 물론 라인하르트나 양 웬리와는 달리 애쉬비는 이런 상황을 조성할 의지도 없었고, 만에 하나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더라도 이런 제반 상황을 활용할 사고방식 자체가 결여되어 있었긴 하지만...
다만 인구와 산업생산 등에서 월등한 규모의 제국군이 쳐들어올 때마다 압도적인 교환비로 찢어버리길 반복한 애쉬비가 평가절하될 이유는 없다. 강대국을 상대하는 약소국 장군이 야전에서 연승을 거두며 수십년간 그 야욕을 차단한 건 큰 성과다.

그러나 제국군은 다곤 성역 회전 이래로 근 100년간 줄곧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공세를 취하는 입장이었고, 동맹은 짧은 보급선을 활용하여 제국군을 막아내고 역습을 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제2차 티아마트 회전 이후 21년이 지난 제국력 457년에 제국군은 결국 이제르론 회랑무지막지한 요새를 건설했다. 요새라는 것 자체가 거점 방어를 위해 건축되는 걸 생각하면 그걸 제국-동맹 국경지대에 지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제국군은 동맹군의 제국령 침입 시 함대전만의 방어 능력 상실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쉬비는 제국-공격, 동맹-방어라는 제국-동맹 전쟁의 근본적인 양상은 결국 뒤집지 못했다. 그의 후배라 할 수 있는 양 웬리단 한번의 승리로 전황을 뒤집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아쉬운 점이다.

그러고 동맹은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대승리를 거뒀음에도 51년 뒤 한 마술사마술과도 같은 승리를 가져다 주기 전까지 전쟁의 주도권을 못 잡았다. 이제르론 요새의 존재도 존재지만 제국군이 이 전투에서 입은 막대한 인적자원의 손실로 질이 하락했다면 동맹군은 자기네들이 알아서 질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쉬비의 활약 덕이 명줄을 연장한 한 제국민이 있었는데, 바로 크리스토프 폰 미켈젠 제독. 동맹군에게 군사기밀을 빼돌렸다는 사실이 들켜 제국군 수뇌부가 코젤 대장을 통수본부 차장에 임명하여 미켈젠 제독을 숙청하고 스파이망을 발본색원하려고 했는데, 제2차 티아마트 회전의 패배로 제국군 장성들이 떼죽음을 당한 데다 코젤 대장도 전사하여, 얼마 안 남은 제국 장성을 처벌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야 숙청했겠지만, 미켈젠의 뛰어난 은폐능력으로 결정적인 증거를 잡지 못했고 미켈젠도 위협을 느끼고 스파이 활동을 일시중단했기 때문에 결국 숙청하지 못했다. 그러나.......


5. 모살설[편집]


그의 죽음으로부터 43년 뒤인 우주력 788년, 그가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전사한 게 아니라 실은 모살,謀殺,당했다고 주장하는 투서가 매주 화요일마다 36주 동안 자유행성동맹군 통합작전본부로 날아들었다. 통합작전본부는 이 모살설에 대해 모살 가능성이 없다고 입증하기 위해 민간인 탈출작전의 성공으로 막 소령으로 진급한 양 웬리를 비공식 조사위원에 선임했고, 양 웬리는 이 모살설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730년 마피아의 마지막 생존자, 알프레드 로자스를 만난다. 이게 외전 5권 <나선미궁>의 줄거리.

통합작전본부에 온 투서는 의문점이 있었는데, 투서를 한 사람이 브루스 애쉬비의 두 번째 부인 '루신다 애쉬비'로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9년 전 59세의 나이로 수면제 복용량을 착각하는 바람에 죽었는데, 이 사실을 카젤느로부터 들은 양은 투서를 보낸 사람이 그녀가 죽은 걸 모르고 썼거나 또는 죽은 걸 알면서도 그녀의 이름을 도용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조사 도중 알프레드 로자스가 수면제 양을 착각해버리는 바람에 죽었다. 그의 사후 양 웬리는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 참가했던 중견 사관이나 하급병사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출장신청서를 냈으나 사흘 뒤 상부는 양을 한직인 에코니아 포로수용소의 참사관으로 발령냈다. 양은 애쉬비 조사 따문이라고 추측했지만 카젤느가 어떻게든 빨리 돌아오도록 할 테니 지금은 귀가해서 짐 싸라고 하자 돌아가서 짐을 쌌다.

그런데 뜻밖에도 양은 에코니아 포로수용소에서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상당수 만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크리스토프 폰 쾨펜힐러라는 제국군 포로도 있었는데, 그를 통해서 과거 제국군 미켈젠 제독의 암살과, 제국군 지크마이스터 제독의 망명, 브루스 애쉬비의 화려한 활약 뒤에 있는 또 다른 가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양은 제국의 첩보조직이 동맹의 권력자들에게 브루스 애쉬비에 대한 의구심을 심어 모살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으나 일단 이 가설의 근거는 어디까지나 쾨펜힐러가 모은 자료로 추측한 거라 결정적인 증거도 없었고, 제국군이 동맹에 상호불신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일부러 모살설을 제기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결국 브루스 애쉬비가 모살되었는지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는 아무래도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이 군사기밀이라는 명목으로 은닉한 역사적 사실 속에 있을 것이었으므로, 양은 지크마이스터 망명-미켈젠 암살-브루스 애쉬비 전사라는 세 사건을 잇는 진상이 밝혀지려면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이 멸망한 이후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 때문에 브루스 애쉬비 모살설의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쾨펜힐러가 남긴 자료들은 B급 중요자료로서 25년간 봉인되었으며, 양은 제8함대 사령부 작전과로 발령나갔다.

결국 브루스 애쉬비가 모살되었다는 것과 투서를 보낸 범인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양 웬리는 모살설에 대하여 몇몇 아는 이들에게만 털어놓았는데 다들 글쎄.....? 라는 반응이었다. 파트리체프는 그래봐야 정치인들 스스로 목에 줄을 거는 행위라고 평가했고 더스티 아텐보로도 적어도 제국을 아주 멸망시킨 다음이라면 모를까, 아직도 제국이 강대하게 있거늘 애쉬비 제독을 모살한다는 짓을 동맹 측 정치인이 벌였다는 건 스스로 관짝에 못 밖는 짓이라고 미덥지 않아했다. 양 본인도 강력하게 모살설을 굳게 믿던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브루스 애쉬비 원수 모살설 투서 사건 문서 참조.

6. 작중 명대사[편집]


너희를 물리친 인물은 브루스 애쉬비다. 다음에 너희를 물리칠 인물도 브루스 애쉬비다. 잊지 않도록.[16]


브루스 애쉬비는 제국군에 승리할 때마다 패배한 제국군에게 위와 같은 타전을 보내 자신의 용전을 자랑했다. 당연히 애쉬비를 만날 때마다 개박살 나고 위와 같은 패기 넘치는 전문을 본 제국군의 분노는 우주를 뚫어버릴 듯 타오르게 되었다. 킹 받네 제국의 공식 기록에 애쉬비는 '반도들의 우두머리'라고 기록되었고 하다 하다 당시[17] 군무상서 켈트링 원수 내 밑으로 모두 집합 제국군 장성들을 집합시켜놓고 "생사는 불문한다! 애쉬비라는 반란군 장수를 황제 폐하 어전에 끌고 오라. 이 명령을 완수하는 자에게는 신민으로서 바랄 수 있는 최고의 명예와 부귀가 주어질 것이다!"란 연설을 하며 애쉬비에 대한 분노를 불살랐으나 공교롭게도 켈트링 원수는 제2차 티아마트 회전을 앞두고 병사했다. 공식적으로는 격무에 의한 과로사지만 실제로는 장남 헤르만과 차남 칼 하인츠를 모두 애쉬비한테 잃은 데서 온 화병으로 인한 분사로 추정된다. 빌헬름 폰 뮈켄베르거도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군무상서님의 원한을 풀어드리자!"라며 전투에 열렬히 참여했다가 전사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제2차 티아마트 회전 당시 약 40분 만에 제국군 고위장성 60여 명을 전사시켰다는 점을 보면 애쉬비에게 강제 멸문당한 제국 군인 가문이 한 두 개가 아닐 듯싶다(...). 뭐, 뮈켄베르거처럼 자식이 있었다면야 멸문까지 가지는 않았겠지만...

켈트링 원수의 사망 당시 원수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조카 빌헬름 폰 뮈켄베르거 중장이 켈트링 원수의 임종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켈트링 원수는 사망 직전 조카 뮈켄베르거의 손을 덥석 잡고는 "애쉬비를 쓰러뜨려라!"란 유언을 남겼다. [18]

하지만 양 웬리는 이런 기록을 보면서 페잔을 통해 왔다는 이 정보들이 정말 사실일까? 동맹 측이 애쉬비 찬양을 위하여 조작하거나 과장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7. 기함[편집]


하드럭
Hard Luck · ハードラック

파일:294px-HardLuck.jpg
OVA
함선 정보
함명
하드럭
식별 번호
0001(OVA)
함종
전함
선적
자유행성동맹 자유행성동맹군
선주
브루스 애쉬비
크기
불명
무장
함수 광선포 24문
승무원
불명
건조
SE ???. ?. ?
침몰
불명
함장
불명

하드럭은 브루스 애쉬비의 기함이자 자유행성동맹군 총기함이다. 여타 장성들의 기함들 처럼 화력증강을 위해 전면 주포를 늘리는게 아니라 동력부, 기관부를 확장시킨 구조로, 그 모습이 흡사 기타처럼 생긴 기묘한 모습이 특징. 또한 함선명도 신화에서 따오지 않고 하필이면 불운이라는 뜻의 하드럭, 기묘할 따름이다. 참고로 하드럭의 식별번호는 100여년 전 동맹군의 전설적인 명장 링 파오의 기함 산타이사벨과 식별번호가 같다. 대부분의 동맹군 제독들의 기함은 아킬레우스급 전함이지만 하드럭은 아킬레우스급 전함이 등장하기 40여년 전의 전함이었으므로 아킬레우스급 전함이 아니다.

우주력 745년 발발한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 하드럭은 동맹군 총기함으로서 참전했고, 제국군의 전열이 붕괴하고 퇴각하자 구축함 3척과 순양함 6척의 호위를 받으며 전장을 전진하고 있었다. 미처 퇴각하지 못하도 전장에 고립된 제국군 전함이 포격하자 호위하던 순양함이 기함에서 조금 떨어져 주포로 격퇴했다. 그때 유탄이 하드럭에 날아와 선체 중앙부 우측 하단을 강타했다. 이때 폭발로 하드럭의 3개 층이 뚫렸으며 함교의 바닥이 갈라졌고, 이 구멍을 통해 함교요원 앳킨스 대위와 스퍼리어 소위가 우주공간으로 빨려나갔으며, 브루스 애쉬비는 폭발로 발생한 파편에 몸이 베여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함선명 처럼 승승장구 끝에 불운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후 하드럭의 행방은 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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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OVA에서는 브루스 애쉬비 관련 서적이 123편 드라마와 영화 12편[2] 양 웬리는 후자에 대해서 과장되었다고 평하면서도 젊은 나이에 군을 통솔할만한 풍모가 있으며 예리하고 빛나는 눈은 타인을 위압하고 그 결점을 미소를 담은 입가가 부드럽게 해주어 부드러움, 위압, 은위를 함께 겸비했다는 말에 어울린다고 하였다.[3] OVA에서는 애쉬비의 성적도 일부 공개되었는데 대부분의 과목이 AAA등급이고 언어쪽이 그나마 AA라는 다소 낮은 등급이다. 차석으로 떨어졌을 때는 수학이 AAA에서 AA로 떨어졌다.[4] 대한민국 육군 기준 약 100명 정도.[5] 브루스 애쉬비는 우주력 740년에 제국군의 기록에서 반도들의 우두머리라 기록되었다고 하는데 이 시기부터 브루스 애쉬비가 지금과 같은 악명(?)을 떨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6] 巨魁. 도둑의 두목을 뜻하는 말.[7] 켈트링 원수는 장남 헤르만과 차남 칼 하인츠를 브루스 애쉬비의 손에 잃어서 애쉬비에 대한 증오가 더 심했다.[8] 링 파오와 유수프 토패롤은 원수로 승진하고 1년 뒤 퇴역하여 각종 명예직만 수행하면서 여생을 보냈다.[9] OVA에서는 이 말을 한 뒤 정계 진출을 선언한 것이냐고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떠났다.[10] 서울문화사판, 이타카판에서는 기함을 호위하던 순양함이 그 포화에 대응하면서 기함에서 멀어진 사이, 유탄이 날아와 함체 우측 중앙 하단에 명중해서 내부에서 작렬했다고 나온다. 을지서적판에서는 순양함이 떨어져나갔다는 묘사가 커트되어 있어서 유탄이 호위함을 제끼고 들어온 마법의 파편이 되어버렸다.[11] 이 액수는 엄청난데 프리드리히 4세는 황제일 때도 그랬지만 대공 시절에도 방탕하였는데 이에 아버지인 오토프리트 5세는 생활비를 끊어버렸고 이 때문에 54만 제국마르크에 달하는 빚을 졌다. 왕족쯤 되는 사람이 진 빚을 한꺼번에 진 것이니 그 액수를 짐작할 수 있다.[12] 다만 질적 회복이 더뎠던 것은 똥별 문벌귀족들 때문이다. 실제로 라인하르트가 이들을 쳐낸 후 자신의 부하들로 수뇌부를 짠 결과 이들은 160년간 끌었던 제국-동맹 전쟁을 끝내버렸다. 즉 이미 우주력 790년대 즈음에는 제국군은 질적 회복이 될 가능성이 충분했지만 문벌귀족 때문에 불가능했고 립슈타트 전역이 아니었다면 이 질적 회복은 매우 느려졌을 것이다.[13] 물론 여기에는 정치적인 요소까지 가미되어 있었다. 당장에 메르카츠만 해도 동기인 뮈켄베르거보다 군사적 재능이 앞섰지만 지위는 낮았다.[14] 다만 제1, 2차 세계대전에서의 독일과 이 경우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두 세계 대전 사이의 간격은 21년이라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초급간부단이 그대로 현역 고급장교단일 가능성이 높지만, 제2차 티아마트 회전아스타테 회전 사이의 간격은 무려 51년이다. 설정상 영관급도 65세가 정년이니 장군 진급자 외에는 한 명도 없다는 것이고, 제2차 티아마트 회전 당시 19세였던 알렉산드르 뷰코크 중사가 70세까지 군문에 남아 중장까지 승진해 있었던 것이 유일한 예외. 수백만 명 중 1명이라면 영향력이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비슷한 예로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장교단이 수도 없이 갈려나갔지만 그것이 21세기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한국군의 경우 70년간 최소한 전면적인 전쟁은 없었던 탓에 이 경우에 대입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15] 파렌하이트나 몇몇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새로 뽑은 인선이다.[16] 외전에서 양 웬리가 브루스 애쉬비 모살설을 밝히기 위해 조사하던 도중 브루스 애쉬비가 제국군에게 시비를 거는 영상을 찾아냈을 때 나왔다. 이걸 본 양 웬리는 제국군에서 느꼈을 불쾌감이 이해가 된다고 반응했다. OVA에서는 우주력 742년의 드라고니아 성역 회전 이후 한 말이라고 나온다.[17] OVA에는 제국력 433년, 우주력으로 742년의 일로 나와 있으며 이 때에 앞서 말한 도발문을 보낸 드라고니아 성역 회전(OVA 한정)이 있었다.[18] 뮈켄베르거 중장도 켈트링 원수의 원수를 갚아야 된다면서 전의를 불태웠으나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전사하면서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당시 뮈켄베르거 중장의 7살 난 아들이 훗날 군대에 입대하니, 그가 바로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 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