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게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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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게레로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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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게레로명전.jpg
블라디미르 게레로
헌액 연도
2018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92.89% (2회)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4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MVP
알렉스 로드리게스
(텍사스 레인저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애너하임 에인절스)


알렉스 로드리게스
(뉴욕 양키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9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그렉 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모이세스 알루
(휴스턴 애스트로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몬트리올 엑스포스)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몬트리올 엑스포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블라디미르 게레로
(몬트리올 엑스포스)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몬트리올 엑스포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루이스 곤잘레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루이스 곤잘레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몬트리올 엑스포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게리 셰필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4 ~ 2005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버논 웰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매니 라미레즈
(보스턴 레드삭스)
개럿 앤더슨
(애너하임 에인절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애너하임 -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게리 셰필드
(뉴욕 양키스)
매니 라미레즈
(보스턴 레드삭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저메인 다이
(시카고 화이트삭스)
매니 라미레즈
(보스턴 레드삭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6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블라디미르 게레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게리 셰필드
(뉴욕 양키스)
매니 라미레즈
(보스턴 레드삭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저메인 다이
(시카고 화이트삭스)
매니 라미레즈
(보스턴 레드삭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매글리오 오도녜즈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7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블라디미르 게레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저메인 다이
(시카고 화이트삭스)
매니 라미레즈
(보스턴 레드삭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매글리오 오도녜즈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조시 해밀턴
(텍사스 레인저스)
카를로스 쿠엔틴
(시카고 화이트삭스)
그래디 사이즈모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10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지명타자 부문 실버 슬러거
애덤 린드
(토론토 블루제이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텍사스 레인저스)


데이비드 오티즈
(보스턴 레드삭스)


파일:MLB 로고.svg 2007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게임 홈런 더비 우승자

라이언 하워드
(필라델피아 필리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저스틴 모노
(미네소타 트윈스)

몬트리올 엑스포스 등번호 27번
부치 헨리
(1993~1995)

블라디미르 게레로
(1996~2003)


잭 데이
(2006)
애너하임 -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등번호 27번
트렌트 듀링턴
(2003)

블라디미르 게레로
(2004~2009)


마이크 라이언
(2010)
텍사스 레인저스 등번호 27번
프랭크 카탈라노토
(2000~2008)

블라디미르 게레로
(2010)


레오니스 마틴
(2011~2012)
볼티모어 오리올스 등번호 27번
마크 헨드릭슨
(2009~2010)

블라디미르 게레로
(2011)


맷 린드스트롬
(2012)



파일:1000003711.jpg

블라디미르 알비노 게레로 시니어
Vladimir Alvino Guerrero Sr.

생년월일
1975년 2월 9일 (49세)
국적
[[도미니카 공화국|

도미니카 공화국
display: none; display: 도미니카 공화국"
행정구
]]
|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출신지
페라비아 주 니자오
가족
아들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윌튼 게레로
조카 가브리엘 게레로
신체
190cm / 106kg
포지션
우익수, 지명타자[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3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MON)
소속팀
몬트리올 엑스포스 (1996~2003)
애너하임 -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2004~2009)
텍사스 레인저스 (2010)
볼티모어 오리올스 (2011)
기록
파일:MLB 로고.svg 30-30 클럽 2회 (2001, 2002)
파일:MLB 로고.svg 사이클링 히트 (2003.09.14)


1. 개요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연도별 성적
5. 수상 경력
6. 게레로에 대한 말, 말, 말
8. 이모저모




1. 개요[편집]



파일:Guerrero.jpg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의 외야수. 별명은 이름에서 따온 'Vladdy'로 한국에서는 주로 '괴수'[2]라고 불린다.

2000년대 후반들어 지명타자로 전향하기 전까지는 우익수로 활약했었고, 뛰어난 툴을 바탕으로 젊은 시절 공격과 수비, 주루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냈고, 나이가 든 뒤에도 빼어난 활약을 펼친 2000년대 MLB를 대표하는 강타자. 특히 배드볼 히터로 명성을 떨쳤다.

통산 성적은 16시즌 2,147경기 9,059타석/8,155타수 2,590안타 449홈런 477이루타 1,496타점 1,328득점 181도루 737BB/985K 250고의사구 .318/.379/.553 .931OPS/140OPS+ 136wRC+ 59.5bWAR. 200안타 시즌이 4번-40홈런 시즌이 2번 있었고 고의사구 1위 시즌이 5번(2000, 2005~2008)이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편집]



파일:Vladimir_MON.jpg

원래는 LA 다저스 캠프 소속의 선수였다. 형인 윌튼 게레로가 다저스 캠프에서 훈련받을 때, 매일 점심을 나르면서 자신도 언젠가는 다저스 유니폼을 입게 될 거라고 확신했고, 실제로 LA 다저스 훈련 캠프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다저스는 그의 맏형인 엘리시에 게레로의 실패를 보면서 엘리시에와 많이 닮았던 블라디미르를 잡는데 망설였고 도미니카 캠프에서 다리 부상을 당한 채로 장타를 뻥뻥 날리는 대활약을 하고도 그에게 풀타임 계약을 제시하지 않았다. 30일 계약을 제시하며 체크하겠다는 반응.

파일:external/www.baseball-almanac.com/vladimir_guerrero_autograph.jpg
화가 난 블라미디르는 1993년 3월 1일에 몬트리올 엑스포스[3]에서 테스트를 받고 입단하게 되었다. 테스트 자리에서 블라디미르는 송구와 달리기만 했는데, 몬트리올의 스카우트는 그 툴을 보고 다른 테스트를 생략하고 바로 입단시키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이너리그에서 3할을 넘는 타격을 보이며 뛰는 레벨마다 MVP를 타내면서 마이너리그를 초토화, 일찍부터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것으로 점쳐졌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베이스볼 아메리카 유망주 순위 2위에 선정되었다. 비슷한 수준의 (역대) 톱급 유망주들의 성적은 메이저 리그 유망주 순위를 참조.

그리고 마침내 1996년 9월 19일에 메이저리그 타석에 섰고, 5타수 1안타를 기록하며 데뷔 경기에서 데뷔 첫 안타를 기록했다. 이틀 뒤에는 메이저리그 데뷔 첫 홈런을 터뜨렸다.

1997년에는 부상으로 고전하며 90경기 325타수에 그쳤지만 타율 .302 11홈런 40타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고,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풀타임 시즌을 뛰기 시작했으며 이 해에 38홈런을 기록하며 괴수의 탄생을 세상에 알렸다.

그 뒤로는 쭉 몬트리올의 주포로 군림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매년 3할, 30홈런 이상, 100타점 이상을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투수들의 공포로 군림했다. 뛰어난 컨택 능력 때문에 온갖 코스의 공을 다 공략하는 신기를 보여주면서 위력을 떨쳤다. 2001년 34홈런만 아니었다면 5년 연속 35홈런 이상이라는 대 기록을 세울 뻔하기도 했다. 다만, 이 시기 몬트리올이 팀 전력이 그리 강하지 않아서 PO과 인연은 한번도 맺지 못했지만, 게레로의 위력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발도 빨라 2001년에 34홈런-37도루, 2002년에 39홈런-40도루를 달성하여 2년 연속으로 30-30을 기록한다. 그런데 2002년 당시 홈런 한 개가 오심으로 인해 2루타로 판정되어(엄격하게 보자면 2루타가 맞긴 함) 아깝게 40-40 클럽에 가입하지 못하고, 이후 주루 능력이 격감했다. 인조잔디구장인 홈구장 스타드 올랭피크에서 오랜 시간 뛰며 무리한 주루플레이를 자주 하다가 척추와 무릎에 무리가 가서 몸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되었고 결국 이 때문에 주루 능력이 급감한 것.

당연한 이야기지만 거물로 성장한 블라디미르 게레로를 잡을 능력은 재정난에 시달리는 몬트리올에게 없었고, 그는 FA가 되는 2004년 초대박도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하필이면 FA를 앞둔 2003 시즌, 스타드 올랭피크에서 오랫동안 뛰어온 피로누적으로 인한 등 부상으로 인해 고작 112경기에서 타율 .330 25홈런 79타점을 기록하는데 그친 것. 부상을 안고도 이 정도 성적을 낸 것 자체는 놀라웠지만 이때의 부상은 커리어를 위협할 정도로 고질병이 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이런 큰 부상 경력으로 인해 몸값이 떨어졌다. 여기에 공교롭게도 2004년 FA 시장은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지나친 연봉 인플레에 대한 조정심리 때문에 시장 자체가 얼어붙었다. 결국 연평균 1,500만 달러 이상 투자해도 아깝지 않았을 것으로 평가와는 달리 계약 말년에나 1,500만 달러를 받았을 정도로 나름 염가 연봉을 받고 LA 에인절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 안타까운건 딱 한시즌 지나고 나자 조정심리따위는 없었고 시장은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보다 연봉 인플레가 더 심해졌다.


2.2. LA 에인절스 시절[편집]



2004년 1월 14일에 애너하임 에인절스에 합류했다. 계약 기간은 5년으로, 총합 7000만 달러를 받는다.

어쨌거나 2004년 에너하임 에인절스에 입단한 후에도 꾸준한 실력을 발휘하며 건재함을 과시하며 팀의 타선을 이끌어 나간다. 입단 첫 해인 2004년 129득점으로 득점왕에 오름과 동시에 156경기 0.337 39홈런 126타점 15도루 OPS .989을 기록하며 2003년의 떨어진 성적이 단순히 부상으로 인한 일시적인 것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특히 9월에 타율 .371 24득점, 2루타 6개, 10홈런, 23타점을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이달의 선수상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시즌 마지막 7경기 동안 6홈런 11 타점을 기록하면서 팀도 2002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찾아온 상승기를 놓치지 않고, 오랜만에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했고[4],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아메리칸리그 MVP에 올랐다.[5]

2005년 시즌 초반에는 행크 애런, 지미 폭스, 미키 맨틀, 에디 매튜스, 하먼 킬러브루, 멜 오트, 프랭크 로빈슨, 알렉스 로드리게스, 켄 그리피 주니어 와 함께 30세 이전에 통산 300번째 홈런을 기록한 12번째 선수가 되었다. 그 뒤로도 LA 에인절스의 주포로서 맹활약하였으며, 정규시즌 최종성적은 141경기 타율 .317 32홈런 108 타점 13도루 OPS .959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 시즌에도 서부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뉴욕 양키스를 상대한 디비전시리즈에서는 .333 2도루를 기록하면서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여기서 5경기 동안 20타수 1안타 타출장 모두 .050 .100OPS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팀의 탈락을 막지 못했다.

3년차였던 2006년에는 156경기 타율 .329 156경기 33홈런 116타점 15도루 OPS .934를 기록하면서 지난 시즌 작은 부상으로 약 20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것과 비교했을 때 더욱 건강하게 보낸 시즌이었다. 하지만 게레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이는 게레로가 에인절스에 6년 동안 머문 기간 중 유일하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시즌이 되었다. 한편, 7월 15일 경기에서 타점을 뽑아내면서 MLB 커리어 1000타점을 기록했다.

2007년부터는 주루 능력이 쇠퇴하면서 천하의 게레로도 서서히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되었지만, 그 외에 타격은 여전했다. 그리고 올스타전 홈런더비에도 나와 503 피트짜리 홈런을 터뜨리는 등 홈런더비 우승을 차지하는 영예를 누렸다. 그리고 시즌 내내 기복없이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어 정규시즌에 150경기 .324 27홈런 125타점 OPS .950을 기록하면서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디비전시리즈에서 3전 전패로 광탈한 데 이어, 게레로 본인도 10타수 2안타 타율 .200을 기록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렇게 게레로는 2004-2005-2007 세 포스트시즌 모두 부진하면서, 가을 야구에 약한 것이 아니냐는 여론도 많았다.

한편, 게레로는 쇠퇴한 주루 능력으로 인해 기존에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던 수비력마저 더더욱 나빠지면서 수비에 나서는 빈도가 2008년부터 서서히 줄더니 결국 2009년부터는 사실상 지명타자로 전업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며 점차 잔부상이 늘어서 2008년 0.303 27홈런 91타점으로 쇠퇴의 기미가 보이더니 결국 2009 시즌 15홈런 50타점에 그치면서 시즌을 망치고 말았다. 그래도 2009년에는 8월에 통산 400홈런을 기록한 데 이어, 포스트시즌에서 9경기 37타수 14안타 1홈런 7타점 .378 .425 .541이라는 좋은 활약을 펼쳤다.[6]

물론 점점 하락세를 보이긴 했어도 여전히 위력적인 타자임에는 틀림없었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점점 성적이 하락세라는 것과 은근히 잔부상에 시달리고 있는 점이 팀에게 부담이 되었다. 결국 2009년 시즌이 종료된 후 에인절스는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를 영입하였고, 게레로와는 결별했다.

게레로는 에인절스에 6년간 있는 동안 올스타, 실버슬러거 4회 수상, MVP 1회 수상, 지구 우승 5회를 기록하면서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2.3. 텍사스 레인저스[편집]



파일:20201230_095435.jpg


메이저리그의 많은 선수들이 꾸준한 활약을 하거나 FA로이드 등으로 FA 대박을 터뜨리기 일쑤이나, 게선생은 마가 꼈는지 FA를 앞두고 꼭 무슨 일이 터져서 연봉대박을 못쳤다. 첫 FA를 앞두고는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염가에 계약하더니 시즌이 활황세를 타고 있는 2010년에는 본인이 부진하며 돈 복을 차 버렸다. 결국 2010년 1월 11일, 2009년 대비 연봉이 1/3정도 깎이고 1년 500만 달러에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텍사스도 그리 기대하지 않고 영입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영입은 대박이 터졌다. 서서히 기량이 떨어지고 있다는 세간의 평을 비웃듯이 팀의 중심타선에 위치하여 본인의 이름값에 걸맞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5월 16일까지 36경기 139타수 47안타 7홈런 31타점 .338 .373 .525를 기록하고 있을만큼 부활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얼마 뒤 5월 19일, 친정팀이었던 LA 에인절스제러드 위버를 상대로 원바운드성 투구를 후려쳐 홈런을 때려내 복수혈전을 찍었다.



5월 25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는 멀티홈런을 터뜨렸다.

6월 30일, 친정팀인 LA 에인절스를 상대로 비수를 꽂았다. 우선 멀티홈런을 포함하여 총 4타수 4안타 5타점을 기록하면서 그야말로 대학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활약을 인정받아 2007년 이후 간만에 올스타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그렇게 2010년 정규시즌을 타율 3할, 출루율 .345, 장타율 .496, 29홈런에 115타점으로 마무리하며 회춘에 성공한 것이다. 참고로 이 성적조차 시즌 중반까지는 출루율 4할에 장타율 5할 중반이었던 것이 체력이 고갈되며 끌어내려진 것이다.

10월 22일, 뉴욕 양키스와의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 경기에서 큼지막한 2타점 적시타를 비롯 3타점 경기를 펼치며 텍사스의 첫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우승을 이끌어냈다. 그렇게 텍사스 레인저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며 생애 첫 월드시리즈를 밟는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월드시리즈에서는 18타석 1안타 타율 .071 OPS .196으로 망해버렸다.

결국 이 문제가 발목을 잡아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2010년 겨울에 FA로 풀린 선수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받은 이들 중 한 명이었으나 노쇠화의 우려 때문인지 쉽게 진로를 잡지 못했다.

2.4. 볼티모어 오리올스[편집]


파일:external/www2.pictures.zimbio.com/Vladimir+Guerrero+Baltimore+Orioles+v+Kansas+E5rHQPRS4A_l.jpg
결국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800만 달러의 1년 계약을 체결하는데는 성공했다. 계약이 성사되면 볼티모어는 일단 2011년 시즌을 앞두고 꽤 위협적인 타선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4월 7일 디트로이트전에서는 볼티모어 소속 첫 홈런을 터뜨렸다. 거기에다 멀티히트를 기록하였다. 이후 4월 19일과 20일에 펼쳐진 미네소타전에서는 두 경기 연속 홈런을 터뜨리기도 했다. 다만 4월에 볼넷이 무려 단 한차례도 없었고 이 때문에 타율과 출루율이 똑같이 .269였다.

볼티모어에서의 활약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수준. 예년만큼의 폭발력은 아니지만, 먹튀라고 불릴 정도도 아니다. 팀의 주전 지명타자로 계속해서 출전 중이다. 거기에 올스타브레이크 이후 첫 토론토 3연전에서 홈런을 터뜨렸다. 이틀 뒤 양키스 원정에서는 4타수 4안타 1홈런 2타점을 기록했다.

2011년 최종 성적은 .290 .317 .416 13홈런 63타점.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모두 풀시즌을 소화한 98년 이후 가장 낮다. 그래도 기념비적인 시즌이라고 평할 수 있는 것은 11시즌 163안타를 쳐내며 통산 2590안타를 달성, 도미니칸 야구 선수중에서 가장 많은 안타를 친 선수로 등극했다![7] 지금은 그 기록이 깨졌다. [8]


2.5. 이후, 은퇴[편집]


파일:external/mlb.mlb.com/yrXZ5MgR.jpg
그러나 2011년 이후 새 팀을 찾지 못하며 백수가 될 위기에 처했고 게레로 본인은 일본행까지 고려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2012년 5월, 토론토 블루제이스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부진을 거듭하더니 방출되고 말았다.

2013년 4월에는 미국 독립리그의 팀인 롱 아일랜드 덕스와 계약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선수생명연장은 더이상 힘든지 은퇴를 선언했다. 게레로의 말에 의하면 가족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두차례 수술받은 무릎때문에 더이상 선수생활 연장은 힘들다고 판단했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파일:게레로 배드볼.gif[9]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배드볼 히터로 이거다 생각하면 배리 지토의 폭포수 커브나 원바운드성 투구도 후려갈겨 홈런(속칭 골프홈런)을 때려낼 정도. 따라서 게스 히터는 아니다. 게스 히터는 볼넷이 적고 삼진이 많으나, 게레로는 볼삼비가 상당히 좋다.[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컨택으로 꾸준히 3할을 마크하고 매년 30개 언저리의 홈런을 쳐 낼 정도로 펀치력도 수준급. 한국에서는 이런 배팅장면을 "게선생의 골프강좌"라 부르며 업로드를 하기도 한다. 이런 표현은 가끔 메이저리그 현지 중계에서도 강력한 드라이브 샷이라고 종종 사용하기도 했다.

현대 야구에서 대부분의 타자들은 손의 보호 및 방망이 미끄러짐 방지를 위해 장갑을 끼고 타격하지만 게레로는 맨손타격을 고집한다. 맨손으로 도끼 후려패듯 스윙하는 모습이 그의 야수와 같은 이미지 구축에 한 몫 단단히 했다.[11] 그리고 워낙 컨택이 좋아서 별 희한한 공도 다 때려내는 재주까지. 대신 이런 타입의 타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볼넷을 많이 얻지는 못한다. 다만 삼진을 많이 당하는 타입도 아니다. 커리어 내내 세자릿수 삼진이 단 한번도 없을 정도.[12] 한 마디로 들어오는 공은 일단 다 쳐내고 보는 타입. 그런데도 기막힌 컨택과 파워를 바탕으로 전성기에는 정말 모든 투수들의 공포로 군림했다.[13]

게레로의 볼넷 비율은 8.1%로 아주 적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비슷한 수준의 다른 강타자와 비교하면 볼넷이 확실히 적은 편이다. 공갈포형 거포인 새미 소사도 볼넷 비율 자체는 게레로보다 많으며, 통산 홈런 400개 이상의 강타자들 중 볼넷이 게레로보다 적은 선수는 아드리안 벨트레, 후안 곤잘레스 정도. 동시에 삼진 역시 아주 적어서 홈런타자들 중에서 게레로의 10.9%보다 삼진 비율이 낮은 타자 역시 행크 아론, 앨버트 푸홀스 등 극소수이다.

신인 시절에는 전형적인 5툴 플레이어로 불렸다. 장타력과 빠른 발, 강한 어깨를 겸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루 능력은 인조잔디였던 몬트리올의 홈구장에서 뛰면서 점차 줄어들었고 수비력의 발전은 없었다. 물론 어차피 코너 외야수는 어깨만 강해도 수비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니까 상관없다고도 하지만.

파일:게레로 송구.gif

적어도 송구능력은 당대에 '레이저' 소리를 듣던 스즈키 이치로와 더불어 리그 정상급을 자랑했다. 다만 몬트리올에서 뼈빠지게 고생한 결과 천사네 와서는 송구 정확도가 갈수록 안 좋아졌다는 게 문제지만... 2011년까지 현역 외야수 중 실책 1위와 보살 2위라는 기록을 동시에 가진 선수였다는 점에서 그의 수비력을 짐작할 수 있다. 어깨가 대단히 좋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수비수치 자체는 나쁘게 나오는 편. 말년에는 그 덩치로 바닥이 딱딱한 인조잔디 구장에서도 물 불 안가리는 전력질주와 허슬 플레이를 펼치던 것이 누적된 대가로 무릎 부상에 신음하였고, 갈수록 지명타자 출장이 늘었다.


4. 연도별 성적[편집]


파일:MLB 로고.svg 블라디미르 게레로의 역대 MLB 기록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96
MON
9
27
5
0
0
1
2
1
0
0
3
.232
.264
.408
.672
-0.1
-0.1
1997
90
354
98
22
2
11
44
40
3
19
39
.302
.350
.483
.833
1.5
1.8
1998
159
677
202
37
7
38
108
109
11
42
95
.324
.371
.589
.960
6.7
7.4
1999
160
674
193
37
5
42
102
131
14
55
62
.316
.378
.600
.978
4.5
4.4
2000
154
641
197
28
11
44
101
123
9
58
74
.345
.410
.664
1.074
6.2
6.0
2001
159
671
184
45
4
34
107
108
37
60
88
.307
.377
.566
.943
4.8
4.9
2002
161
709
206
37
2
39
106
111
40
84
70
.336
.417
.593
1.010
7.1
7.1
2003
112
467
130
20
3
25
71
79
9
63
53
.330
.426
.586
1.012
3.0
3.2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4
ANA
-
LAA

156
680
206
39
2
39
124
126
15
52
74
.337
.391
.598
.989
5.9
5.6
2005
141
594
165
29
2
32
95
108
13
61
48
.317
.394
.565
.959
5.3
5.7
2006
156
665
200
34
1
33
92
116
15
50
68
.329
.382
.552
.934
3.5
3.8
2007
150
660
186
45
1
27
89
125
2
71
62
.324
.403
.547
.950
3.2
4.6
2008
143
600
164
31
3
27
85
91
5
51
77
.303
.365
.521
.886
1.9
2.4
2009
100
407
113
16
1
15
59
50
2
19
56
.295
.334
.460
.794
0.5
0.7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10
TEX
152
643
178
27
1
29
83
115
4
35
60
.300
.345
.496
.841
1.1
1.8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11
BAL
145
590
163
30
1
13
60
63
2
17
56
.290
.317
.416
.733
-0.6
0.2
MLB 통산
(16시즌)
2147
9059
2590
477
46
449
1328
1496
181
737
985
.318
.379
.553
.931
54.5
59.5


5. 수상 경력[편집]




6. 게레로에 대한 말, 말, 말[편집]



파일:20201230_123542.jpg

All-Time No.1 Bad-Ball Hitter.

역대 최고의 배드볼 히터.

제이미 모이어


본즈가 최고라고들 하지만, 나한테는 게레로가 가장 무서운 타자다.[14]

박찬호


게레로는 맨손으로 스윙을 하기 때문에 손 여기저기에 늘 물집이 있었다(중략).

브라이언 슈나이더[15]


도무지 던질 곳이 없다. 그는 원바운드에 가까운 공도, 머리 높이로 날라오는 공도 모두 쳐낸다.

존 스몰츠


내가 본 최고의 배드볼히터.

칼 립켄 주니어




7. 명예의 전당 입성[편집]


연도
득표율(%)
2017
71.7
2018
92.9
허슬 플레이로 인한 부상 탓에 에이징 커브가 빨라 누적이 아쉽지만[16] 반대급부로 임팩트와 수상 실적이 확실했고 통산 타율이 .318에 달하는지라 은퇴 직후에도 머지 않은 기간 내에 입성이 유력하다고 평가받았었다.

일단 2017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 처음으로 후보로 올랐는데, 71.7%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아깝게 첫 해 입성에는 실패했다.

이후 2018 명예의전당 투표인단의 투표 내역이 공개되었는데 공개된 투표에서 94.4%의 표를 받으며 두 번째 해에 들어갈 가능성이 유력해졌다.공개 중인 ‘2018 H.O.F.’ 투표… 존스-토미-게레로 유력(스포츠동아 기사) 그리고 1월 24일(현지시간), 최종적으로 92.9%를 득표하며 치퍼 존스, 짐 토미, 트레버 호프먼과 함께 입성에 성공했다. #

이제 남은 것은 무슨 모자를 쓸 것이냐였다. 데뷔하여 8년을 몸담은 몬트리올 엑스포스일지, 6년 동안 함께 다섯 번의 지구우승을 경험하고 개인적으로도 한 번의 MVP를 수상한 LA 에인절스일지. 2015년 1월 13일(한국 시각) 인터뷰에서는 엑스포스를 고르겠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이전에 명예의 전당 위원회의 권고로 엑스포스 모자를 쓰고 입성한 게리 카터안드레 도슨과는 달리, 게레로는 스스로 엑스포스 소속으로 들어가길 원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희망한 것이다.[17]

그러나 2016년 2월 27일 LA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모자를 고를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제 몬트리올에는 야구팀이 없으니, 에인절스이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 한편 이로부터 보름 후 본인이 트위터에 직접 "내가 명전에 입성하면 어느 팀 모자를 썼으면 좋겠냐"고 질문했는데, 약 25,000명의 응답자 중 81%가 몬트리올이라고 답했다. # 이 외에 게레로의 공식적인 입장발표는 없었다.

그리고 1월 26일(한국시간), 게레로는 에인절스를 선택했다. 평소에도 몬트리올에 대한 각별함을 드러냈지만, 몬트리올이 그 후신(後身)인 워싱턴 내셔널스와는 아무 접점이 없다는 점을 고려한 듯. 이로써 게레로는 에인절스 구단이 배출한 첫 명예의 전당 선수가 되었다. 아르테 모레노 구단주를 비롯한 에인절스 팬덤은 첫 명예의 전당 입성자 배출로 기쁨에 찼지만, 상당수 팬들은 "몬트리올 시절 누적성적이 훨씬 좋았다", "키워준 팀 버리고 돈 많이 준 팀 선택한 거냐" 하며 2년 전의 압도적인 설문조사 결과만큼이나 실망감을 드러냈다.

다만 에인절스에서 영구결번은 애매한 상황이었는데, 왜냐하면 그가 에인절스에서 썼던 27번을 마이크 트라웃이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18] 물론 마리아노 리베라의 경우처럼 트라웃의 27번을 유지한 채 게레로의 27번을 영구결번 시키고 트라웃이 은퇴할 쯤 그도 역시 같이 영구결번 시키는 방법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에 대해서는 언론에서 찬반여론이 갈렸다.


7.1. 명예의 전당 통계[편집]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블라디미르 게레로
6
166
209
58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 JAWS - Right Field (21st)

career WAR
7yr-peak WAR
JAWS
블라디미르 게레로
59.4
41.2
50.3
우익수 HOF 입성자 평균
72.7
42.9
57.8


8. 이모저모[편집]


  • 그의 형 윌튼 게레로도 메이저리거였다. 박찬호 풀타임 초기에 다저스에서 내야 유틸리티로 뛰었던 그 사람 맞다. 다만 형은 동생보다 체격이 작고 신인시절 신인왕 후보에서 코르크뱃 사건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동생에 비해 그저 그런 선수가 됐다. 현재는 도미니카에서 공장 여러 개를 돌리며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 조카인 가브리엘 게레로 역시 야구선수로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한 유망주인데, 삼촌을 닮아 역시 맨손 타격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2018년, AAA에서 확실히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9월 4일 신시내티 레즈 유니폼을 입고 MLB 데뷔전을 가졌다. 이후 9월 22일 마이애미전에서 MLB 첫 홈런을 터뜨렸다. 1993년생. 2018 시즌 끝나고 마이너리그 FA 자격을 얻었다. 주 포지션은 1루수와 외야수.

파일:raw.jpg[19]
  • 그의 아들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도 야구선수이다. 1999년생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의 전성기를 떠오르게 하는 파워 포텐과 건장한 체격으로 이미 아마추어 시절부터 스카우터들이 군침을 흘리게 만드는 유망주였고, 2015년에 390만 달러 규모의 국제 계약으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입단했다. 입단 이후 엄청난 타격 포텐셜로 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유망주가 될 정도. 2018년 3월 27일, 시즌을 앞둔 토론토의 프리시즌 몬트리올 시리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경기에서 끝내기 홈런을 쳐내 몬트리올 팬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아들은 아버지와는 다르게 맨손타격을 하지 않는 듯.
2021년 9월 13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홈 경기에서 아들이 시즌 45호 홈런을 때려내며 2000년 아버지의 44개 홈런 기록을 뛰어넘으면서 아버지를 뛰어넘는 아들로서 극찬을 받았다.




  • 2014년 3월 31일, LA 에인절스의 홈에서 열린 개막전 겸 은퇴식에서 시구를 했는데, 나쁜 의미로 화제가 되었다. 게레로가 던진 공을 에인절스의 타격코치인 돈 베일러가 받아주기로 했는데, 게레로의 바깥으로 빠지는 공을 베일러가 잡으려고 하다가 그만 베일러의 다리가 꺾이면서 부러져 버린 것. 이후 게레로는 베일러가 장난치는 걸로 알고 해맑게 달려갔다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화면에 잡히지도 못하고 쓸쓸하게 퇴장했다.

파일:external/wpmedia.news.nationalpost.com/bbl_reds_blue_jays_20150403.jpg

  • 한편 2015년 시즌을 앞두고 몬트리올 스타드 올랭피크에서 열린 신시내티 레즈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시범경기에서 옛 동료인 올랜도 카브레라와 드니 코드르(Denis Coderre) 몬트리올 시장과 함께 시구를 했다.[20]


  • 무시무시한 외형 때문에 본의 아닌 오해를 많이 샀지만 실제 함께했던 선수들의 증언으로는 의외로 상당히 온건하고 신실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스페인어 권에 속한 선수들과 함께 클럽하우스 내에서 주말마다 꼬박꼬박 성경읽고 묵상했다고 하는데, 이는 다름아닌 홀어머니의 영향이라고 한다. 생계 때문에 떨어져서 메이드 등으로 여러 나라에서 일해 얻은 돈을 블라디가 거주하던 도미니카로 꼬박꼬박 보내며 뒷바라지를 했고, 이후 엑스포스에 진입한 아들을 따라가 꾸준히 마인드컨트롤을 시켜주고 신앙심을 잃지 않도록 교육시켰다고 블라디가 다큐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래서 한 언론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경기장에서 투수를 공포에 떨게하는 괴물이 실제로는 예수쟁이 마마보이라 카더라' 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21] 이와는 별개로 2012년도에 본토 디스코클럽에서 일행이랑 놀던 중 경찰과 충돌해 잠시 체포된 흑역사가 존재한다.

  • 메이저리거 생활을 오래했음에도 영어를 전혀 안 쓰는 선수로 유명했다. 사실 북미 지역에 많이 거주하는 히스패닉 때문에 스페인어를 사용해도 사는데 지장이 없으니 그리 이상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다만 트위터에서는 영어를 쓰긴 하는 듯.

  • 그의 사생활은 현역 때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사실 엄청난 바람둥이였다. 타블로이드 지 TMZ에 따르면 무려 5명의 여성에게서 8명의 자식을 보았을 정도로 난잡한 사생활의 보유자라고 한다. 2012년 기사에 따르면 8명의 자식에게 나가는 양육비만 월 25000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게레로 주니어가 화제가 되면서 한 명의 아버지로서 게레로의 인간적인 면모가 종종 언론에 회자되곤 하는데,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뭔가 기분이 묘해진다. 국내 한 언론에서 주니어의 동생 파블로 게레로의 계약 사실을 언급하면서 자세하게 다루었다. #

[1] 2009년 이후 주로 지명타자 출전[2] 그를 상징하는 별명 중 하나로, 강한 어깨힘과 존을 무시하는 어마어마한 타격 등 괴물같은 활약을 펼친 데에서 비롯되었다.[3] 지금은 새로운 구단주를 맞이하고 연고지까지 이전하여 워싱턴 내셔널스가 되었다.[4] 2002년은 와일드카드로 PO에 진출해서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5] 파일:external/imgc.allpostersimages.com/vladimir-guerrero-2004-american-league-mvp.jpg[6] 이 활약 덕분에 LA 에인절스가 2009년 디비전 시리즈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를 스윕하면서 무려 1986년부터 22년간 이어진 포스트시즌 대 보스턴전 11연패 기록을 완전히 날려버릴 수 있었다.[7] 2위는 삼성에서도 뛰었던 훌리오 프랑코의 2586안타, 3위는 약을 드신 매니 라미레즈의 2574안타다. 그 분이 약을 안 먹었더라면 1위는 그 분의 것이었겠지만..[8] 1위는 3384안타의 알버트 푸홀스, 2위는 3166안타의 아드리안 벨트레, 3위가 게레로다. [9] 움짤의 투수는 에인절스의 전 투수 제러드 위버이다[10] 어떤 기자가 "당신은 왜 그렇게 다 쳐낼라고 합니까?"라고 물어보자 "볼넷으로 걸어나가기 싫어서요"라고 답했다는 카더라가 있다.[11] 한국이나 일본 프로야구에서 맨손 스윙선수는 거의 없지만 메이저리그에는 꽤 있다. 게레로 이외에는 뉴욕 양키스의 포수였던 호르헤 포사다가 대표적. 참고로 배팅장갑 없이 맨손으로 방망이를 잡고 스윙하다가 공을 잘못 맞힐경우 손에 엄청난 통증이 찾아온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맨손 스윙 선수는 박석민이 있으나, 이쪽도 잦은 손가락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다.[12] 첫 풀타임인 1998년 95개가 최다. 풀타임 시즌 삼진 48개를 기록한 적도 있다.[13] 박찬호도 신급으로 변신한 본즈보다 게레로가 더 무섭다고 했다. 박찬호의 텍사스 시절을 본 사람들이라면 오클랜드와 에인절스의 개럿 앤더슨-게레로는 아직도 악몽으로 남아있다.[14] 2001년 당시[15] 과거 엑스포스 팀 동료였고 2016년에 말린스에서 포수 코치로 활동하였다.[16] WAR도 의외로 60 언저리에 그친다. 이는 게레로보다 더 나쁜 누적을 가진 체이스 어틀리보다도 낮은 수치다.[17] 도슨의 경우 웨이드 보그스 건과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소멸 때문에 시카고 컵스의 모자를 쓰고 명전에 헌액되고 싶은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지 못해 다소 억울한 사례지만, 카터의 경우에는 엑스포스와 뉴욕 메츠 모자 반반씩을 쓰고 명전에 들어가고 싶다는 의견을 표해 도슨과는 사정이 좀 다르다.[18] 정확히는 영구결번을 하냐 마냐가 애매한 것이 아니고, 영구결번 자체는 당연히 해주는거지만 트라웃 은퇴하고 나서 둘을 같이 할지 그 전에 게레로 먼저 해줄지가 애매한 것이었다.[19] 게레로 주니어가 3살 때이다.[20] 2013년 몬트리올 시장에 취임한 드니 코드르는 몬트리올에 메이저리그 팀을 재유치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래서 2014년부터 시범경기 시즌 때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홈으로 하는 2연전 경기를 유치했다. 마침 2014-15 오프시즌에 탬파베이 레이스가 탬파·세인트피터스버그 지역에 신축구장을 짓지 않는다면 연고지 이전도 고려하겠다는 발언이 나온 상태라 몬트리올 야구팬들로서는 신생팀이든 연고이전이든 메이저리그 팀을 다시 유치하기를 바라고 있다.[21] The man many American League pitchers dread most is, at heart, a God-fearing, Bible-toting mama’s 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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