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사바스(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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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사바스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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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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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블랙 사바스
Black Sabbath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오지 오스본, 토니 아이오미, 기저 버틀러, 빌 워드
입성 연도
2006년
후보자격 연도
1996년
후보선정 연도
1997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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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사바스
Black Sabbath


파일:블랙사바스.jpg

▲왼쪽부터 토니 아이오미, 오지 오스본, 기저 버틀러, 빌 워드
국적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결성
1968년
영국 잉글랜드 웨스트 미들랜즈 버밍엄
데뷔
1970년 1월 9일
싱글 "Evil Woman"
데뷔 앨범
Black Sabbath
해체
2006년, 2018년
재결성
2011년2018년, 2022년
멤버
클래식 라인업

토니 아이오미 (기타)
빌 워드 (드럼)
기저 버틀러 (베이스)
오지 오스본 (보컬)
장르
헤비 메탈, 하드 록, 둠 메탈
레이블
버티고, 버진 EMI, 워너 브라더스, IRS, 생추어리, 유니버설, 머큐리
링크
파일:blacksabbath logo.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
2. 상세
3. 역사
3.1. 오지 오스본 보컬 시절
3.3. 딥 퍼플 콜라보 & 토니 아이오미 1인 체제
3.4. 토니 마틴 보컬
3.5. 디오의 복귀, 토니 마틴의 복귀 그러나...
3.6. 20년 만의 재결합
3.7. 인고의 끝에 나온 신보
3.8. 공식 해체
4. 멤버
5. 디스코그래피
5.1. 정규 앨범
5.2. 라이브 앨범
6. 여담
6.1. 블랙 사바스의 비틀즈 사랑
6.2. 기독교와 사이가 나쁘다?
6.3. 대중 매체에서 나온 그들의 노래들



1. 개요[편집]



파일:black sabbath gig.jpg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끝내주는 리프는 블랙 사바스가 이미 다 써먹었어. 너희들은 그걸 빠르게 연주하거나 느리게 연주하거나 거꾸로 돌리거나 할 뿐이야.

롭 좀비[1]


블랙 사바스는 1968년에 결성되어 2018년에 해체한 영국록 밴드이다.


2. 상세[편집]


흔히 레드 제플린, 딥 퍼플과 함께 헤비 메탈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밴드이며[2], 세 밴드 중에서도 현대 헤비 메탈과 가장 흡사한 음악을 했던 밴드라고 할 수 있다.[3] 기수별로 록에 소울, 블루스, 펑키함 까지 다양한 장르를 믹스해서 보여주던 딥 퍼플과, 5집부터 인도 음악 등 실험적인 음악적 시도를 했던 레드 제플린에 비해 블랙 사바스는 데뷔 이래로 거의 바뀌지 않는 특유의 단순하고 암울한 사운드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8,90년대 헤비 메탈의 원형을 보여준 밴드라 평가 받는다.

통산 음반 커리어만 봐도 7천만장을 넘는 판매고를 올린 상업적으로도 대성공한 길게 말하면 입이 아픈 밴드. 1968년에 판매된 비틀즈화이트 앨범에 수록된 Helter Skelter, 크림헤비 메탈 사운드의 단초를 제공한 밴드들은 있었지만 현대의 헤비 메탈의 보편적인 특징인 헤비한 사운드를 위한 기타의 오버드라이브디스토션의 적극적인 활용, 단순하면서도 묵직한 리프를 기반으로 한 곡을 주로 만들기 시작한 밴드는 블랙 사바스가 유일하다고 보면 된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딥 퍼플은 헤비 메탈보다는 프로그레시브 메탈에 가까웠고, 레드 제플린은 블루스 록에 가까웠기 때문에, 레드 제플린을 헤비 메탈의 시초로 보는 미국과 달리 영국에서는 블랙 사바스를 헤비 메탈의 시초라고 본다.

록의 르네상스 시절인 70년대에는 동시대의 라이벌인 두 밴드 딥 퍼플이나 레드 제플린에 비해 음악성이 한 수 아래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 이유는 복잡한 구성의 두 밴드의 음악에 비해 비교적 단순하고 직선적인 음악을 했고,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은 원래부터 이름난 프로페셔널 뮤지션들 혹은 대중적으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영국 음악계에서는 누구나 다 인정하는 베테랑들이 만든 밴드였지만, 블랙 사바스는 4명 모두 완전 무명의 20대 초반 젊은이들로 구성된 밴드였기 때문이다.[4]

하지만 80년대로 들어서면서 상황은 역전 된다. 이미 라이벌이었던 두 밴드는 해체 된 상태였고 블랙 사바스는 디오의 가입으로 인한 제2의 전성기, 또한 오지 오스본 밴드의 상업적인 성공으로 그 명성을 계속 해서 지속해 나간다.

결국 비교적 신생 뮤지션이던 블랙 사바스는 짧고 굵게 활동하다가 76년에 해체한 딥 퍼플이나, 이보다 4년 더 밴드를 지속했지만 드러머 존 본햄의 사망으로 인해 이른 시기에 해체한 레드 제플린에 비해, 80~90년대까지 꾸준하고 왕성한 활동을 통해 둠 메탈이나 스래쉬 메탈 등 다양한 메탈이 탄생하는데 영향을 준 것은 물론, 주다스 프리스트, 메탈리카, 너바나 등 이후에 등장하는 모든 헤비 록 아티스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Paranoid나 Iron Man같이 80년대 헤비 메탈 전성기의 원형을 제시한 곡들을 꾸준하게 만들어왔고 헤비 메탈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세웠다는 점도 크게 평가되었다.

롤링 스톤 선정 100대 아티스트에도 포함되어 85위를 기록했다.


3. 역사[편집]



3.1. 오지 오스본 보컬 시절[편집]


1968년 영국 공업지대(버밍엄)에서 어스(Earth)라는 이름으로 결성되어 활동하다가[5] 같은 이름의 밴드가 존재한다는걸 알게 되면서,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기저 버틀러가 '우린 좀더 오싹한 이름으로 어필하는게 어떨까?'라는 의견과 함께 현재의 블랙 사바스라는 이름을 제시했고, 멤버들 전원이 찬성을 하며 1969년부터 블랙 사바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6] 이후 1970년 2월 13일 금요일에 셀프 타이틀 1집 Black Sabbath를 발매했고, 평론가들의 악평과 분명 망할거라는 점성술사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대 히트를 쳐서 본격적인 헤비메탈의 탄생을 알렸다.

사실 무서운 느낌이 나는건 1집에서 첫번째 곡인 Black Sabbath뿐이지만, 다른 곡들도 70년대 음악이라곤 믿을수없는 파워가 느껴진다. 파격적인 기저의 베이스 솔로로 포문을 여는 'N.I.B'[7],10분도 넘는 길이의 대곡 'The Warning'등을 포함한 수작이었다,

초창기 멤버는 오지 오스본 (보컬), 토니 아이오미 (기타), 기저 버틀러 (베이스), 그리고 빌 워드 (드럼).

멤버들 개개인에 관해 추가적인 소개를 좀더 하자면, 오지 오스본은 특유의 음울한 음색과 강렬한 무대매너로 밴드의 프론트맨 역할을 잘 해내었고, 메인 송라이터[8] 겸 리더인 토니 아이오미는 17살 무렵 공장에서 일하던중 오른손 손가락 두개의 끝을 잘렸음에도[9] 플라스틱을 녹여 골무처럼 손가락 끝에 붙인뒤에 계속 기타를 연주했고 손가락을 섬세하게 쓰기 힘들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타를 반음 낮춰 튜닝했다. 이후 다운튜닝은 메탈의 상징이 되었다. 끝이 플라스틱이라 자기 손가락이 어디에 닿는지도 모를텐데 능숙하게 기타를 치며, 피아노, 신디사이저는 물론 플룻 등 관악기까지 연주한다.[10] 베이시스트 기저 버틀러는 "기관총 베이스"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한 핑거 피킹과 더불어 베이스 기타에 오버드라이브를 건다는 획기적인 발상을 최초로 시도하였고 작사를 전담하여 밴드 특유의 악마적인 이미지를 정립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드러머 빌 워드 역시 다른 드러머들보다 무겁고 힘있는 사운드로 밴드의 기둥을 확고하게 잡아주었고, 70년대 후반의 블랙 사바스의 음반에서 한 곡 이상씩 리드 보컬을 맡아서 근사하고 아름다운 보이스의 노래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11] 또한 매니저와의 불화로 밴드 스스로 매니지먼트를 할 때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덕분에 오지 오스본의 해고 통보를 한 장본인이기도 해서 오지 오스본과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

1집이 성공을 이루자, 블랙 사바스는 같은 해에 2집을 내게 되는데, 그것이 헤비메탈계 역사에서 빼놓을수 없는 Paranoid이다. 본디 앨범 제목은 War Pigs[12] 가 될 예정이었지만 반전테마는 시대적 배경들도 그렇고 여러가지 원인으로 안 팔린다는 이유로 레코드사가 극구 반대했고 결국 앨범 러닝타임이 5분 정도 남아서 즉흥적으로 만든 곡인 Paranoid를 타이틀로 정했다고 한다. 비록 타이틀에는 짤렸지만 명곡으로 꼽히는 War Pigs[13]와 함께 잡지에서 역시 최고의 인기 메탈 넘버로도 꼽힌 Paranoid, 간단한 리프의 미학인 Iron Man[14]과 음침한 리프가 매력인 Electric Funeral 등이 인기를 끌었고 블랙 사바스는 수직상승의 가도를 달려간다.

이후 밴드는 3집 Master of Reality (1971), 4집 Vol.4 (1972), 5집 Sabbath Bloody Sabbath (1973), 6집 Sabotage (1975) 등의 명반들을 발표하고 긴 월드 투어를 도는 절정기를 맞이한다. 1974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대규모 락페스티벌인 California Jam 1974 의 무대에 서게 된다.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이글스, 블랙 사바스, 어스 윈드 앤 파이어, 그리고 딥 퍼플 등 영국, 미국의 슈퍼밴드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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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시에 매니저와의 불화, 마약의 남용[15]으로 인해 밴드의 상태는 점점 엉망으로 치닫고 있었고 그 중 특히 밴드의 프론트맨인 오지의 정신은 점점 쇠약해져가고 있었다. [16]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아버지마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자 오지 오스본은 70년대 중반부터 밴드 멤버 중 유일하게 헤로인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마약 중독이 날이 갈수록 점점 심해지자 1977년, 오지는 밴드 멤버들에게 잠시 밴드에서 탈퇴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오겠다고 통보한다.

오지가 밴드에서 잠시 나간 동안 밴드는 사보이 브라운 의 보컬리스트 였던 데이브 워커(Dave Walker)를 영입하여 새 앨범 준비를 한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던 오지가 돌아오자 밴드는 할 수 없이 데이브 워커를 내보내고 오지와 같이 작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밴드에 돌아온 오지는 자신이 없는 사이 밴드가 새 앨범의 작곡을 이미 끝내놓은 것을 보고 화를 내었고 결국 밴드는 작곡해 놓은 곡들을 듣고 오지가 흥얼거리는 멜로디 라인을 바탕으로 가사와 일부 곡들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이러한 앨범 녹음 과정 중에 오지와 다른 밴드 멤버들의 사이는 더욱 악화되었고 결국 1978년 <Never Say Die> 앨범의 투어를 마치고 밴드 멤버들은 오지를 해고한다. 이후 오지와 다른 멤버들은 거의 20년간 서로 생까는 사이가 된다.


3.2. 로니 제임스 디오 보컬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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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기저, 디오, 토니, 비니 어피스[17].

1980년 블랙 사바스는 새 보컬로 또 다른 거물 밴드인 레인보우의 보컬리스트인 로니 제임스 디오를 기용한뒤 Heaven and Hell을 내게 된다. 보컬인 디오는 오지 오스본보다 월등한 가창력과 출중한 작곡실력을 가진 멤버로 그가 참여한 Heaven And Hell과 Mob Rules 두 앨범은 싱글 히트곡들까지 만들어내며 오지 재직시절 음반들을 능가하는 명반이라고 평가받는다. [18] 실제로 오지 오스본 재적 시절까지의 음반들은 두 라이벌들에 비해 보컬의 한계 때문에 곡들이 단순해 질 수 밖에 없었지만 로니 제임스 디오와 함께한 두 장의 앨범에서 토니 아이오미의 역량도 최고조에 달한다. Heaven and Hell 작업 이전에 잠시 베이시스트 기저 버틀러가 탈퇴하면서 밴드는 그 대타로 제프 니콜스를 베이스 세션으로 고용하였는데 기저 버틀러가 앨범 녹음 직전 복귀하고 제프 니콜스는 이후 키보디스트를 맡게 되었다. 또한 디오의 ELF, 레인보우 시절 동료였던 베이시스트 크레이그 그루버도 합류 했었다. 토니는 초반에는 부인했지만 최근 인터뷰에서 크레이그가 앨범 전체를 녹음한건 맞지만 기저가 돌아오면서 기존 트랙을 듣지 않고 재녹음 했다고 말을 바꿨다. Heaven and Hell 활동 중이던 1980년 8월 21일 드러머인 빌 워드가 전화로 밴드 멤버들에게 탈퇴를 선언하고 잠적했고 밴드는 새로운 드러머로 비니 어피스를 고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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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ven and Hell 의 성공 이후 로니 제임스 디오는 블랙 사바스를 자신의 방식대로 끌고 가려 하였고, 당연히 리더인 토니 아이오미와 의견 충돌이 잦았다. 특히, 디오는 오지가 보컬로 있던 시절의 곡들을 부르기 싫어했다고 한다. 토니 아이오미는 이 시절을 회상하면서 디오를 작은 히틀러에 비유하기도 했다.[19]
또한 블랙사바스는 90년대 토니아이오미 단독 체제로 가기 전까지는 4명의 멤버 모두를 작곡 크레딧에 올리는 룰이 있었기에 당연히 이에 대한 불만도 컸다.

결국 디오는 드러머인 비니 어피스와 함께 자신의 밴드를 만들기 위해 탈퇴하고 블랙 사바스의 전성기는 끝을 맺는다. 보컬이 자주 바뀌면 밴드 입장에서 좋을 것이 없다. 보컬 바뀌었다가 밴드가 망할 뻔해서 원래 보컬을 다시 데려온 아이언 메이든의 경우가 대표적이고, 주다스 프리스트도 롭 할포드 대타로 들어왔던 탐 리퍼 오웬스 역시 기량이 우수했는데도 리퍼 시절 앨범이 죽쑨 것을 보면... 하지만 후술하듯 밴드는 몇 차례 중흥에 성공했다. 심지어 보컬이 수십년간 변경되지 않았던 Kiss, AC/DC 같은 밴드들도 후반기 앨범들은 팬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그냥 라이브에서 옛날 히트곡들만 연주하는 편인데, 계속되는 보컬 변경 악재 속에서도 밴드의 전성기를 연장시키고 버텨낸 토니 아이오미의 역량이 대단하다고 밖에...


Heaven and Hell - Die Young (1980년 라이브)


Mob Rules - Falling Off the Edge of the World (2007년 뉴욕 라이브시티 뮤직홀 라이브)

3.3. 딥 퍼플 콜라보 & 토니 아이오미 1인 체제[편집]


디오의 탈퇴 이후, 딥 퍼플 을 거친 화이트스네이크의 보컬 데이빗 커버데일을 먼저 컨택했으나 성사되지 않았고, 역시 딥 퍼플의 명 보컬 이안 길런을 영입해[20] 1983년 당시 딥 퍼플 + 블랙 사바스의 결합으로 큰 화제를 모으며 Born Again을 내놓는다. 애초에 이 프로젝트는 블랙 사바스가 아닌 새로운 프로젝트로 기획되었으나, 이안 길런의 영입후 음반사의 압박으로 블랙 사바스의 이름을 걸고 작업이 들어가게 된것이다.

그러나 딥 퍼플과 블랙 사바스의 결과물 치고는 기대에 못미치는 음반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큰 기대에 못 미쳤을뿐 졸작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명반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21] 앨범의 반응은 뜨뜻 미지근했지만 앨범 발매후 열린 Born Again tour는 대성공이었다. 이 투어에는 또 다시 탈퇴한 빌워드 대신 매니저 돈 아든[22]의 또 다른 슈퍼그룹이었던 ELO의 베브 베번이 참여하였다. 하지만 이안 길런은 투어를 위해 오지 오스본과 로니 제임스 디오 시절의 노래들을 모두 외워야 했고, 투어가 거듭 될 수록 이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다. 또 이런 이안 길런을 달래기 위해 나머지 멤버들은, 매 회 공연 앵콜곡으로 딥퍼플 시절의 명곡 Smoke on the water를 연주해야 했다. 결국 이 무렵 딥 퍼플의 재결성이 논의되었고, 이안 길런은 미련없이 재결성 되는 딥 퍼플로 떠나버린다. 곧 이어 원년 멤버 기저의 탈퇴로 밴드에는 토니 아이오미만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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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 본 어게인 투어 당시 기저 버틀러, 이안 길런, 토니 아이오미

이후 토니 아이오미는 블랙 사바스를 해체하고 솔로 앨범 <Seventh Star>의 제작 준비를 한다. 본래 앨범의 보컬로 오지 오스본, 로니 제임스 디오, 이안 길런 등 블랙 사바스를 거쳐간 보컬리스트와 오디션으로 뽑은 신인 보컬리스트 등 7명의 보컬리스트들을 기용하려 하였으나 스케줄과 비용 문제로 무산되었다. 대신 딥 퍼플 의 멤버였던 베이시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인 글렌 휴즈를 영입하여 앨범을 제작했다. 그러나 앨범 녹음이 끝난 후 돈독 오른 음반사에서 다시 블랙 사바스의 이름으로 앨범을 발매하라며 압박, 앨범은 블랙 사바스의 이름으로 발매된다.[23] (커버에도 Black Sabbath Featuring.Tony Iommi 라고 써져있다...) 결국 앨범은 블랙 사바스의 사운드가 아니라는 팬들의 반발로 흥행에 실패하고 만다. 사실 <Seventh Star>는 블랙 사바스 앨범이라는 이름을 건 것 때문에 너무 평가 절하되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의외로 무시못할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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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휴즈 와 토니 아이오미

사실 전성기가 지난 뮤지션들끼리의 슈퍼밴드 결성은 지금은 흔한 일이지만 이 당시 아직 현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안 길런, 글렌 휴즈 그리고 블랙사바스의 합작은 충분히 센세이셔널 한 일이었다.
40여년이 훌쩍 지난 현재 유튜브 등에서는 딥퍼플 멤버들이 참여한 이 시절 2장의 블랙사바스 앨범에 대한 호평이 주를 이룬다.

3.4. 토니 마틴 보컬[편집]


<Seventh Star>가 혹평을 듣자 토니 아이오미는 본격적으로 블랙 사바스를 재결성하기 위해 멤버들을 모집하여 <Eternal Idol>의 녹음을 시작한다. 원래 보컬리스트는 Seventh Star 투어 때 글렌 휴즈가 건강 사정으로 중도하차한 후 [24] 대타로 뛰었던 신인 보컬리스트 레이 길런이었지만 레이가 멤버들간의 불화로 앨범의 믹싱만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탈퇴했다.[25] 결국 아이오미는 또다른 신인 보컬인 토니 마틴을 급히 영입하여 앨범을 재녹음했다. 1987년 발매된 Eternal Idol은 로버트 플랜트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고음이 매력적인 레이 길런에 최적화된 곡들을 디오를 연상시키는 토니 마틴이 노래했기에 그리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1989년 발매된 앨범인 Headless Cross에서는 거물 드러머인 코지 파웰의 영입과 더불어 토니 아이오미의 독재체제였던 작곡노선을 벗어나 코지 파웰, 토니 마틴, 제프 니콜슨 등이 골고루 참여하였다. 수록곡 <When Death Calls>에는 브라이언 메이가 기타 솔로로 참여하기도 했다. 동시에 보컬이 토니 마틴에 최적화된 곡들로 채워지면서 앨범 완성도가 전성기에 근접한 수준으로 올라갔다.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팬들 사이에서도 블랙사바스 후기 2대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뒤이어 1990년에 발매된 Tyr도 전작 못지 않은 완성도로 호평받아 영국내에서는 전작을 잇는 흥행을 하였다. 팬들 사이에서 블랙 사바스 후기 2대 명반이라고 불릴 정도. 그러나 미국 시장에서는 흥행에 실패한다.


3.5. 디오의 복귀, 토니 마틴의 복귀 그러나...[편집]


1992년 디오와 기저 버틀러, 드러머 비니 어피스 등 Mob Rules 당시의 멤버들이 다시 모여서 앨범 Dehumanizer를 발매한다. 디오의 복귀 이전 Headless Cross, Tyr 앨범 성공의 주역이었던 코지 파웰이 디오와 사이가 나빠서 탈퇴해버리는 등 앨범 작업 와중에 이런저런 잡음이 있었다고 한다. 흥행은 괜찮았지만 평단에서는 80년대 록을 그대로 다시 가지고 왔다며 혹평했다. 팬들은 평단과 달리 괜찮은 음반이라고 평한다. 다만 코지 파웰이 빠진 이유로 토니 마틴 시절의 Headless Cross와 Tyr에 못미치는 느낌이다.

이후 토니 마틴이 재가입하여 Cross Purposes, 라이브 앨범 Cross Purposes Live, Forbidden을 발매하지만 계속 보컬이 변경되던 것에다가, 너바나로 인한 얼터너티브 록 열풍이 불고 기존 헤비메탈 밴드들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악재까지 작용하여 별 반응을 못 일으키고 잊혀졌다. 밴드 최악의 성적을 낸 Forbidden 앨범 자체는 참여한 멤버들이 워낙 쟁쟁하다보니 들을 만 하다. 토니의 실력 자체는 죽지 않았다. 이후 토니 아이오니가 앨범을 리믹스하여 재발매했다.


3.6. 20년 만의 재결합[편집]


1997년 드디어 오지가 참여한 오리지널 멤버로 재결성하여 1998년에 라이브 앨범 Reunion을 내놓았다.[26] 이 앨범에는 오리지널 멤버로는 무려 20년 만에 발표하는 신곡들인 Psycho Man과 Selling My Soul이 들어있기도 하다.

이후 밴드는 오지 오스본이 주최하는 락 페스티벌 오즈페스트(Ozzfest) 등에서 라이브 공연을 선보이며 활동을 이어나가다가 본격적으로 새 정규앨범을 준비하던 중 오지의 솔로 활동으로 작업이 중단되어 버렸고[27], 2006년 부터 별개의 프로젝트로 Dehumanizer에 이어 다시 한번 로니 제임스 디오와 만나서 Heaven And Hell이라는 이름 아래 정규 앨범과 라이브 앨범을 발표하며 활발히 활동했으나 2010년 디오의 사망으로 해산하게 되었다.

Heaven And Hell이라는 이름은 오지 오스본과 재결성하여 활동하고 있는 Black Sabbath와 혼동되지 않도록 밴드 이름을 따로 정했다고 한다. (이름의 유래는 물론 1980년의 동명 앨범이다.)

잠시 공백기가 있은 후인 2011년 11월 11일에 오리지널 멤버로 Black Sabbath의 재결합을 선언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빌 워드의 건강이 나빠져 드럼 파트를 RATM, Audioslave 출신의 드러머 브래드 월크가 대신하게 되었다.

라이브때는 오지가 참여했던 곡들 위주로 공연되었고, 디오가 했던 곡들은 연주되지 않았다.


3.7. 인고의 끝에 나온 신보[편집]


그리고 2013년 6월 10일 25년만에 원년 라인업으로 새 정규작 '13'이 발매되었다. 2월 '13'일에 데뷔작이 발매되었고, 앨범을 발표한 해가 20'13'년이니 의미심장한 타이틀이다. 그리고... 빌보드 200 차트에서 Hot Shot Debut[28]를 이루어냈다. 싱글커트된 곡들인 'God is Dead?와 'End of the Beginning'이 또한 뮤직비디오와 함께 공개되어 호평일색. End of the Beginning 뮤직 비디오는 미국의 인기 드라마 CSI : 라스베가스 시즌 "13"의 마지막 화 오프닝 촬영된 라이브 씬을 편집해서 제작되었다.[29] 그리고 드라마에서 콘서트 직후 오지가 기자와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지는 이번 앨범은 현대적인 사운드가 들어있으나 이것은 여전히 블랙 사바스의 정신이 깃들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토니 아이오미가 림프암(Lymphoma) 진단을 받는다.

2015년 일본 치바에서 다시 열리게 될 Ozzfest Japan에서 해체 직전 마지막 공연을 갖는다고 했지만, Ozzfest 공식 해외 트위터에서 Ozzy Osbourne만 공연한다는 정보를 올렸다가 Ozzfest 공식 일본 트위터에서 이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다는 등 페스티벌 운영에 잡음이 생기면서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3.8. 공식 해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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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블랙 사바스는 2017년 3월 9일 자신들의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공식 해체를 발표했다. 멤버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재결합 할 가능성은 없고, 무엇보다 상징이나 다름없던 보컬들 중 디오는 세상을 떠났고, 오지와 토니 역시 투병중이다. 헤비메탈의 역사의 거대한 대들보였던 블랙 사바스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투어로 The End: 4 February 2017 Birmingham 2017년 11월 17일 정말로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공식 해체하게 된다.

4. 멤버[편집]


블랙 사바스의 클래식 라인업

파일:ozzypic.jpg

오지 오스본 Ozzy Osbourne
출생
1948년 12월 3일 (75세)
출신지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잉글랜드 마스턴 그린
활동
1967년 -
포지션
보컬

파일:external/img2.ruliweb.daum.net/6260_1.png

토니 아이오미 Tony Iommi
출생
1948년 2월 19일 (76세)
출신지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잉글랜드 버밍엄
활동
1964년 -
포지션
기타

기저 버틀러 Geezer Butler
출생
1949년 7월 17일 (74세)
출신지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잉글랜드 버밍엄
활동
1967년 -
포지션
베이스 기타

파일:Bill-Ward.jpg

빌 워드 Bill Ward
출생
1948년 5월 5일 (75세)
출신지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잉글랜드 버밍엄
활동
1966년 - 1984년, 1989년 -
포지션
드럼
파일:blacksabbath logo.png

이외에 멤버는 많기 때문에 아래에 기술.


나머지 멤버는 이후 추가 예정.

5. 디스코그래피[편집]



5.1. 정규 앨범[편집]


  • Black Sabbath (1970)
  • Paranoid (1970)
  • Master of Reality (1971)
  • Vol. 4 (1972)
  • Sabbath Bloody Sabbath (1973)
  • Sabotage (1975)
  • Technical Ecstacy (1976)
  • Never Say Die! (1978)
  • Heaven and Hell (1980)
  • Mob Rules (1981)
  • Born Again (1983)
  • Seventh Star (1986)
  • The Eternal Idol (1987)
  • Headless Cross (1989)
  • Tyr (1990)
  • Dehumanizer (1992)
  • Cross Purposes (1994)
  • Forbidden (1995)
  • The Devil You Know (2009) - Heaven & Hell 명의
  • 13 (2013)

5.2. 라이브 앨범[편집]




6. 여담[편집]



6.1. 블랙 사바스의 비틀즈 사랑[편집]


내 커리어 전체는 비틀즈에게 빚을 지고 있다.

오지 오스본


비틀즈가 내 인생을 바꿨다.

기저 버틀러


블랙 사바스 멤버들은 비틀즈 광팬인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이 때문에 '비틀즈에 영향받은 밴드'를 언급할 때 블랙 사바스는 오아시스배드핑거 등과 함께 결코 빠지지 않는 밴드이기도 하다.

특히 클래식 라인업에 소속된 멤버들이 비틀즈를 향한 애정은 남다르다. 오죽하면 인터뷰 때마다 매번 비틀즈 관련 장광설을 늘어놓을 정도. 오지 오스본은 "비틀즈가 존재하기 전에는 흑백이었는데 비틀즈 이후는 컬러 TV를 보는 느낌이었다." "내 커리어 전체가 비틀즈에게 빚을 지고 있다." "비틀즈는 세상을 바꾼 밴드다." 등 비틀즈에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며 이는 기저 버틀러토니 아이오미도 그러하다. 기저 버틀러는 "비틀즈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때 "빵!"하는 소리가 내 귀에서 터지는 것 같았다."고 당시 기분을 소회했으며, 사실 오지 오스본이나 토니 아이오미와 같이 밴드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비틀즈 팬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폴 매카트니오지 오스본과 직접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오지 오스본조차 폴 매카트니 앞에서는 한 마리 순한 양이 되었다고 한다. 또 오지 오스본은 링고 스타의 앨범에 참여한 적도 있다.


6.2. 기독교와 사이가 나쁘다?[편집]


요즘엔 훨씬 막나가는 놈들(예를 들자면 마릴린 맨슨)등이 많아 큰 센세이션은 안되지만 초창기의 악마적인 기믹때문에 기독교와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 사실 이들은 기독교 신자로서,[30][31] 1집때는 대장장이인 오지 오스본의 아버지가 만들어준 십자가 목걸이를 멤버들이 나눠가지기도 했고 오지 오스본 본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광고를 한다.(공연 끝나고 툭하면 God Bless you all이라고 한다) 3집에서는 사이비 예수쟁이들을 까며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믿음을 가져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곡도(After Forever)있었다.(물론 기독교에선 마약을 신에 비교한다고 까댔다).

뒤집어서 들으면 악마의 소리가 들린다느니, 앨범 인쇄 잉크에 피가 섞여있다느니, 모두가 사타니스트라느니 하는 소문은 전부 기획사와 멤버들이 상업적 목적으로 퍼뜨린 소문이다. 실제로 멤버들은 녹음 중에 마이크에 대고 방귀를 뀌거나 드러머 빌 워드의 수염이 불에 잘 탈것 같다고(...) 수염에 라이터로 불을 지르거나(결국 빌 워드는 얼굴 전체에 2도 화상을 입었다.) 라이브 투어 중에 호텔에서 배게싸움을 하거나 퍼포먼스 중에 뒤에 다가가서 미트스핀흉내를 내는 약간 껄렁껄렁하고 유쾌한 사람들이다. 실제로 토니 아이오미는 인터뷰에서 블랙 사바스, 즉 검은 안식일의 밴드명을 짓게 된 것도 사타니즘이니 안티크라이스트를 모방하거나 사탄 숭배가 아니라 그저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서 지은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기믹수준이 아닌, 진짜로 사탄숭배와 반기독교 성향을 띄며 범죄에까지 연루된 밴드들이 나오기 시작한건 의외로 80년대 후반~90년대에 블랙 메탈이라는 장르가 나오면서부터이다. 대표적으로 그 유명한 버줌의 카운트 그리쉬나크[32] , 메이헴의 유로니무스 등.

실제로는 사이가 매우매우 좋다 카더라 링크


6.3. 대중 매체에서 나온 그들의 노래들[편집]


2집 Paranoid에 들어 있는 Iron Man은 그 곡명 때문인지 마블 코믹스사의 아이언맨 애니나 영화의 주제곡 혹은 샘플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이언맨 실사영화 시리즈 1편 마지막 부분에서, 토니 스타크내가 아이언맨이요할 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나오는 곡이 바로 이 곡에서 보컬을 뺀 것. 하지만 2010년 4월 국내 개봉한 영화판 아이언맨 2의 OST는 AC/DC가 담당했다(...)[33] 그 뒤로 음악이 직접 나오진 않앗으나, 토니가 어벤져스에서 평상복으로 블랙 사바스의 머천다이스 티셔츠(8집 Never Say Die 관련)를 입고 나왔다.사진을 클릭

CSI 시즌13 마지막 에피소드 오프닝에서 투어콘서트로 등장. 에피소드 초반 등장한 기자와 인터뷰 씬에서 오지 오스본이 등장했다. 그리고 신곡 'End of the Beginning'을 선보였다.

곡이 등장하진 않으나 주토피아에 ‘Black Sables’라는 밴드로 패러디되어 나온다.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의 챔피언 모데카이저의 스킬인 철인(Iron man)과 무덤의 자식들(Children of the Graves)이 밴드의 노래 제목을 붙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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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문 : Every cool riff has already been written by Black Sabbath. You're either playing it faster or slower or backwards, but they wrote it first.[2] 록 음악을 잘 모르는 일반 대중들에게 헤비 메탈 밴드로서의 입지는 레드 제플린이 가장 높으나, 사실 레드 제플린은 세 밴드 중 헤비 메탈의 색이 가장 옅은 밴드였다. 당장 레드 제플린 보컬인 로버트 플랜트는 밴드 곡의 1/3 이상이 포크 송이라며 레드 제플린이 헤비 메탈 밴드로 규정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직접 말한 바 있다.[3] 실제로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은 헤비 메탈인지 하드 록인지 논란이 있으며, 어클레임드 뮤직에서는 아예 헤비 메탈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블랙 사바스는 논란의 여지가 없이 헤비 메탈 음악가로 꼽히며, 어클레임드 뮤직에서도 이들의 음반은 헤비 메탈로 분류되어 있다.[4] 하지만 그 딥 퍼플의 기타리스트였던 리치 블랙모어는 이 밴드의 결과물들을 매우 부러워했고 질투했었다. 왜냐하면, 이미 명성을 쌓을대로 쌓은 슈퍼밴드인 딥 퍼플과 달리 블랙 사바스는 자기보다 한참 어린 후배들이지만, 짧은 기간안에 밴드의 정체성을 확실하고 철저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거기다 성격도 까탈스런 완벽주의자에 이안 길런, 존 로드 같은 거물들과 한 팀이다보니 자신이 밴드를 이끈다는 느낌보다는 경쟁관계에 놓여 있어서 한 방향으로 쭉 나가던 블랙 사바스의 음악을 부러워했던 것. 딥 퍼플이 멤버 교체도 잦고, 그로 인한 음악성 변화도 여러번 겪은 것과 대비되는 면모. 블랙 사바스 역시 멤버 변화를 꽤 많이 겪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헤비메탈'이라는 음악적 정체성을 유지하였다.[5] 원래 초창기 록/메탈 밴드들은 블루스 밴드였던 사람들이 많다. 레드 제플린도 본디 블루스 밴드의 멤버들. 하드락 자체가 어쿠스틱 사운드를 탈피한 하이템포의 블루스에서 출발했다.[6] 훗날 토니 아이오미의 인터뷰에서 블랙 사바스란 밴드명은 사탄을 신봉하고 안티 기독교를 표방한 것이 아닌, 그저 눈에띄는 이름을 통해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서 탄생하게 되었다고 언급한다.[7] 곡의 제목은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닌 수염이 뻣뻣하게 자란다는 의미를 지닌 빌 워드의 별명이었다고 한다. 멤버들이 이 제목의 뜻을 밝히기 전까지는 Nativity in Black(검은 성탄(聖誕))의 약자로 추측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듯.(나중에 동명의 블랙 사바스 트리뷰트 앨범이 나왔다.) 여담으로,프라이머스(밴드)의 리더 레스 클레이풀이 어릴적 가장 즐겨들으며 열심히 카피했던 곡들중 하나라고 한다.덕분에 레스 본인이 베이스 솔로 메이킹이나 작곡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밝히기도.[8] 앨범 크레딧에는 항상 모든 멤버의 작곡으로 표기 되긴 하지만 실제로는 토니 아이오미의 단독 작곡인 경우가 많았다.[9] 아이오미는 왼손잡이라서 기타의 넥을 오른손으로 잡는다.[10] 70년대 블랙 사바스의 음반에는 그의 플룻이나 피아노, 신디사이저 연주를 들을수 있는 곡들이 많다.[11] Technical Ecstacy 앨범에 수록된 자신이 작곡한 It's Alright 에서 오지의 동물적인 목소리와 반대로 인간적이고 지적으로 들리는 매력적인 빌의 보컬을 감상할 수 있다. [12] 원래 Walpurgis라는 제목의 매우 음침하고 사악한 가사를 가진 곡이었으나 매니지먼트가 블랙 사바스의 악마주의 이미지를 벗고자 같은 연주에 제목과 가사만 다시 써서 녹음시켰다. 원곡인 Walpurgis는 1997년에 발매한 오지 오스본의 컴필레이션 앨범 The Ozzman Cometh에서 들을 수 있으며 가사가 굉장히 인상적이다.[13] 인트로가 끝나고 오지의 첫 보컬 8소절은 블랙 사바스곡 중에서도 가장 떼창하기 좋은 구성이다. 그래서 매번 라이브때 오지와 떼창하는 관객들이 보컬을 주고받는다.[14] 동명의 마블 코믹스 슈퍼 히어로와 관계없이 만든 곡이다. 다만 수십 년 후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출연한 실사판 영화 엔드 크레딧에 배경 음악으로 깔렸다.[15] 토니 아이오미는 훗날 인터뷰에서 "밴드가 인기를 얻기 시작할 때 코카인은 그저 공연이 끝난 뒤에도 공연의 흥분감을 지속시켜주고 허무감을 잊게 해주는 좋은 유흥거리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들은 코카인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라고 말했다.[16] 1973년 기나긴 투어를 마치고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 휴가를 내서 시골 농장에서 요양을 하던 오지는 휴가가 끝나가면서 다시 투어를 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농장에서 기르고 있던 닭들을 총으로 다 쏘아서 죽였다고 한다.[17] <Mob Rules> 시절의 드러머로 바닐라 퍼지, 블루머더 등으로 유명한 카마인 어피스의 동생이다.[18] 오지 시절은 보컬이 호불호가 갈리지만 어두운 분위기와 함께 헤비메탈의 장르의 토대가 되었다는 혁신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면, 디오 시절은 뛰어난 가창력의 보컬과 함께 곡이 다소 밝아졌지만 웅장하면서 거기에 앨범에 수록된 곡들간의 조화와 완성도가 높게 평가받는다. 허나 오지 시절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디오의 보컬은 진정한 블랙 사바스의 앨범이 아니라는 불만이 있다. 즉 취향차이[19] 디오는 온화한 인품이지만 확고한 음악적 색깔이 있고, 고집도 있다. 그런데 디오는 보컬적 역량과 작곡 능력도 엄청나게 뛰어나기 때문에 디오가 몸담은 밴드는 디오화되는 성향이 있다. 실제로 레인보우, 사바스, 밴드 디오는 전혀 다른 밴드고 디오 빼곤 겹치는 멤버가 많지 않은데 디오 특유의 색깔이 확연하다.(레인보우 시절 전곡을 디오와 리치 블랙무어가 공동 작곡했고, 1,2집 당시는 프로듀싱도 같이 할 정도로 영향이 컸다) 리치 블랙무어는 딥 퍼플 시절 워낙 성깔로 악명이 높았지만, 이 때 디오와 마찰은 순수하게 음악성 때문이라고 봐야한다. 디오의 레인보우 시절 곡들은 그가 밴드 디오 시절에도 즐겨부를 정도로 본인의 색깔이 짙다.(자기가 작곡한 거니 당연할 수 있지만) 이 때문인지 밴드 디오의 멤버들은 그 자체만으로 굉장히 거물 뮤지션들임에도 리더인 디오가 앨범의 전곡을 항상 작사/작곡한다. (정확히는 멜로디 부분만 작곡하고 연주 부분은 당연히 연주자들에게 맡긴다)[20] 이안 길런과 토니 아이오미는 절친 관계로 2010 년에도 Whocares 라는 프로젝트 밴드를 함께 하기도 한다[21] 이 앨범과 공연 부틀렉 실황은 40년이 지난 지금의 평가가 훨씬 좋다.[22] 오지의 아내 샤론의 아버지, 7,80년대 매니저계의 전설로 이 당시는 부녀가 서로 의절 상태였다.[23] 글렌 휴즈 또한 이에 대해 영 좋지만은 않은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24] 글렌 휴즈의 약물중독이 심해지면서 투어 중반에 라이브를 할 목상태가 아니었다.[25] 이후 레이 길런은 후에 오지 오스본의 기타리스트 자리에서 해고된 제이크 E. 리와 함께 Badlands라는 밴드를 결성하였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1993년 이른 나이에 AIDS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한다.[26] 80년대 중반 이후 계속 하락세를 보였던 블랙 사바스와 달리 오지는 랜디 로즈, 제이크 이 리, 잭 와일드 등 불세출의 기타리스트들을 기용하며 동시에 엽기적인 퍼포먼스로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메탈계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자리 잡은 상태였다. 결국 이런 저런 사정으로 다시 모인 것[27] 당시 작업중이던 곡 가운데 하나인 Scary Dreams라는 곡이 공연에서 여러 차례 연주된 적은 있다.[28] 차트 진입하자마자 1위를 차하는것.[29] 당연히 시즌 13 파이널 화는 20'13'년에 방영됐다. [30] 대표적인 악마주의 테마 밴드인 디어사이드의 글렌 벤튼은 결혼식을 성당에서 하는 충공깽을 선사하기도 했다(...) [31] 토니 아이오미는 부모님이 카톨릭 신자이시고, 따라서 본인도 카톨릭 신자라고 한다. 다만 종교활동을 그리 성실히 하지는 않았다고..[32] 그러나 카운트 그리쉬나크의 말로는 자기 자신은 악마주의가 아니고 북유럽 신들을 섬긴다고 하였다[33] 사실 AC/DC는 아이언맨 1에서도 초반부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