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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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econom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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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미
2. 구체적인 내용
3. 원리



1. 의미[편집]


Comparative advantage

경제 용어. 경제행위자(agent)가 특정 재화를 생산할 때, 다른 자에 비해 자급자족 비용[1]이나 기회비용이 낮으면 비교 우위가 있다고 정의한다. 19세기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에 의해 정립되었다.

아무리 다재다능한 사람/국가라도 기회비용 때문에 결국은 전문화/특화를 추구하게 되며,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교역, 직업의 분화 등이 발생하게 된다. 이 기회비용 문제에 따른 전문화/특화,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의존 관계를 담아내는 개념이 바로 '비교우위'다.

다음의 사례가 있다. 중학교 사회교과서(미래엔 사회2)에 실린 내용이다.[2]

분식집 주인보다 라면을 잘 끓이는 축구선수라 할지라도 축구 시즌에는 축구에만 집중하고 라면은 분식집에서 사 먹는 편이 유리하다. 축구선수가 라면을 끓이는데 소요되는 시간 동안 축구 경기를 통해 벌 수 있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때 축구선수는 축구에 비교우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비교우위를 흔히들 오해하는 이유는 절대우위를 가진 쪽과 기회비용 분석을 바탕으로 비교우위를 가진 쪽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게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것이 1990년경 전국 고등학교경제 교사들을 모은 후 비교우위에 대한 에세이를 받았는데 80%에 해당하는 교사들이 비교우위와 절대우위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결과를 받아본 경제학 교수들이 어이가 없어했다는 일화가 있다.

흔히 이해하는 '산촌에선 석탄을 캐고, 어촌에선 고기를 잡아서 서로 교환한다.'라는 아이디어는 절대우위를 설명하는 개념이고 유치원생도 손쉽게 이해할 수 있으므로 고대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리카르도가 정리한 비교우위는 다음과 같은 반직관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때문에 경제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닌 한 현대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1. 모든 것이 풍부한 옥토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사막도 서로 교역하면 서로 이익이 생긴다.[3]
2. 교역은 생산력이 넘쳐나서 남아도는 것을 서로 바꾸는 사치품으로서 국력을 낭비하는 게 아니라, 상업 자체가 산업적 기초적인 생산력을 창출한다.[4]
3. 대개의 경우 산촌에서 물고기를 잡아 어촌에 파는 게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다.[5]

비교우위는 비로소 국가의 지배권력자들에게 자유무역의 가치를 깨닫게 했으며, 그로 인해 산업혁명이 발생하고 이를 깨닫지 못한 문명에 대해 제국주의가 발생하고[6] 국제적 교역질서가 성립하게 만든 이론이다. 이 이론 덕분에 농사 짓기도 힘들고 모두가 탐내는 자원도 없는 한국이 역사 이래 최대의 부흥을 맞게 만들어주었다.

리카도가 예로 든 것에 따르면 포르투갈은 밀을 재배할 때도 영국보다 나으며 포도를 재배할 때도 영국보다 나은 농업대국이다. 그런데 영국에서 포도를 생산해서 포르투갈로 수출해서 밀을 수입하자면서 이 이론을 이야기했는데 비교를 A국과 B국으로 하는 게 아니라 A국의 (c, d)생산비와 B국의 (c, d)비를 비교하면 반드시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교역은 반드시 효율을 가져온다는 이론이었다. 따라서 적절한 상업과 교역은 언제나 이익을 보며 실질적 생산을 한다는 증명인 것임을 주장했다. 리카도는 포도를 밀과 비교한 것은 꼭 포도 재배하자는 말은 아니었고 "포도마저도 밀보다는 나으니 중상주의적 경제이해로 포르투갈과 프랑스의 곡물을 수입금지하는 내용의 곡물수입금지법은 영국의 국익을 저해하는 법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 것이다.

결국 따져보면 영국이 타국에 비해 비교우위한 상품을 찾자는 이야기였다. 실제 그 상품을 뒤져보니 양털이 가장 비교비가 높은 상품이었고 그에 따라 리카도 사후 20년 뒤[7] 곡물수입금지법이 폐지되고 양털 수출을 위한 인클로저 운동[8]이 발발하게 된다. 양털을 단순히 수출하는데 그치지 않고 모직물 산업이 크게 성장하게 되고[9] 방직기계의 동력 문제로 고민하던 엔지니어에 의해 증기기관이 크게 발전하였다. 이에 반발한 사람들의 러다이트 운동에도 불구하고 강경한 자유무역정책을 밀어붙인 영국은 전 유럽 석탄 소비량의 50%, 철강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등 생산력이 폭발하여 산업 혁명이 종주국이 된다.

한편으로 종교인들과 공산주의자들은 이 개념을 철저히 부정한다. 그들은 상업을 중심으로 한 문명이 번영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으며 부덕착취의 결과물로 인식했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자본가와 기업가 국가가 이토록 번영한 것은 농업공업을 담당하는 국가들의 정당한 부를 약탈한 결과물로 인식하고 상업이 번영한 곳은 의 구렁텅이 정도로 인식했다.

원래 경제학적 이론과 담쌓고 사는 종교인들은 그렇다쳐도 나름 자기들이 과학적이라고 자부하는 공산주의자들이 비교우위에 대한 몰이해를 관철하는 건 공산주의의 교조성 덕분이다. 18세기 이론을 20세기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부정한 이유는 오로지 마르크스의 무식함과 편협함에 기인한다. 공산주의는 유사종교처럼 교조성이 강하기 때문에 자본론을 부정하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영국에 망명해서 살고 있는 독일인이었지만 그는 영국이 그렇게 번화하고 강대한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영국이 제국주의로 전세계의 피를 빠는 흡혈귀 국가라는 것이었다. 이는 후대 공산주의 실험이 망했던 중요한 원인으로 작동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교역권을 형성했지만 이들 국가들 사이에 사회주의 형제교역이라 칭했던 것들은 대부분 소련의 무상기부를 의미했다. 스탈린 시기에 매우 활발했던 이 교역의 탈을 쓴 기부행위는 소련에 막대한 부담이 되었고 우크라이나 대기근의 원인이 되는 등 애초에 유지불가능한 방안이었다.

흐루쇼프 이후 무상기부가 감소하면서 공산주의권도 소련을 중심으로한 수직계열화가 이루어졌는데 이는 공산권 내에 막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공산주의는 국제적 분업시스템을 착취-피착취의 개념으로 받아들였으므로 소련의 새로운 무역정책에 모두가 반발하였다. 이후 모든 공산주의 국가가 다 중공업, 특히 군수공업 육성에 비효율적인 투자를 반복하였다. 이 형제교역의 쇠퇴를 공산주의 멸망의 원인으로 비난하는 후대 공산주의자들이 있는 것처럼, 공산주의는 망할 때까지, 아니 망하고나서도 비교우위를 철저히 부정하였다. 그나마 감소되면서도 유지되었던 소련의 형제교역은 소련의 붕괴 이후 완전히 중단되었으며 이후 전세계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붕괴하거나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착취-피착취 관점을 포기하고 무역개방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집요하게 이를 따르지 않는, 혹은 미국의 제제로 못하는 국가는 남았는데 이런 국가들은 북한이나 쿠바처럼 고난의 행군을 겪는 등 극단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도 극도로 빈곤한 지역으로 남아있다.

2. 구체적인 내용[편집]


당장 데이비드 리카도 본인이 사용한 예시를 보면,
  • 영국은 100시간의 작업량을 가지고 직물 1포대를 짜며, 120시간의 작업량을 가지고 포도주 1포대를 양조한다.
  • 포르투갈은 90시간의 작업량을 가지고 직물 1포대를 짜며, 80시간의 작업량을 가지고 포도주 1포대를 양조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포르투갈이 절대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직물과 포도주 모두 자급자족을 하지, 굳이 영국과 교류할 이유가 없어보인다. 하지만 기회비용을 따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 영국은 120시간의 작업량을 가지고 포도주 1포대를 양조하는 시간에 120/100 = 6/5 포대의 직물을 짤 수 있는 데 반해, 포르투갈은 80시간의 작업량을 가지고 포도주 1포대를 양조하는 시간에 고작 80/90 = 8/9 포대의 직물을 짤 뿐이다.
  • 따라서 포르투갈 입장에서는 굳이 '자급자족'을 하느니 영국에게 포도주를 팔고 직물을 사 오는 편이 훨씬 더 경제적이라 볼 수 있다.


다른 예시를 들어 보자.
A국과 B국이 있고, 두 나라는 각각 버터와 자동차를 생산한다고 하자. 이 때 모든 자원은 두 재화의 생산에 쓰이며, 두 나라 모두 완전고용 상태이며, 가격은 시장가격과 동일하며, 모든 생산 요소는 국내에 국한되어 있으며 국외로 유출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두 나라의 자원을 모두 버터 생산에 쓸 때, 산출량은 다음과 같다고 가정하자:
A국: 50
B국: 150

또한 두 나라가 모든 자원을 자동차의 생산에 투입할 때, 산출량은 다음과 같다고 가정하자:
A국: 50
B국: 50

이 때 각 나라가 자원을 각각 절반씩 투입해서 교역 없이 두 재화 모두를 생산한다고 가정하자:[10]
A국: 버터 25 자동차 25
B국: 버터 75 자동차 25

그런데 기회비용을 따져 볼 때, A국은 버터 1: 자동차 1의 기회비용을 가지고, B국은 버터 약 0.32 : 자동차 3의 기회비용을 가진다. 그러므로 A국은 자동차에서, B국은 버터에서 비교우위를 가지는 것이다.

이제 A국이 자동차를, B국이 버터를 생산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A국: 자동차 50
B국: 버터 150

이제 그것을 어떤 가격으로 교역할지가 가장 중요한데, 두 재화의 교환비율은 각 나라에서 재화를 생산하는 기회비용의 비율이다.

A국은 버터 1당 자동차 1을 포기해야 하며, B국은 버터 1당 자동차 1/3을 포기해야 하므로 교환비율은 두 나라의 기회비용의 비율, 즉 [자동차 1: 버터 1] ~ [자동차 1: 버터 3] 사이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만약 교환비율을 자동차 1: 버터 2로 가정한다면 이렇게 된다:
A국: 버터 50 자동차 25
B국: 버터 100 자동차 25

이렇게 두 나라 모두 소비량이 늘었다! = (상업도 농업처럼 무에서 유를 창출했다.)


3. 원리[편집]


사실 이 이론은 같은 자원으로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보다 단순한 원리에 입각한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양의 토지에는 밀을 재배하는 동시에 포도를 재배할 수 없고 같은 양의 비료는 두 군데 뿌릴수 없으며 같은 인력으로는 두 군데 다 농사를 짓지 못한다. 리카도는 딱 여기까지만 이야기했는데 후학자들이 이런식으로 자본, 에너지, 기타 등등 투입가능한 자원들을 추가하다보니 결국 한정된 '시간'에 제약된 '자원'이라는 기회비용이라는 결론에 치닫게 되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비교우위는 원칙적으로 고정된 것은 아니며,[11] 그 때 그 때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따라서 비교우위의 법칙의 결과 한 나라가 평생 그것만 생산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 데이비드 리카도노동가치설에 입각하여 비교우위론을 주장하였으나 현대 주류경제학에선 노동가치설을 부정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기회비용을 이용한 비교우위론은 1936년 고트프리트 하벌러의 증명이다.

[1] 폐쇄 경제를 버리고 무역을 시작하기 직전의 비용[2] 사실 맨큐의 경제학에 '타이거 우즈가 자기 집 잔디를 안 깎는 이유'로 실린 예시를 변형한 내용이다. 참고로 타이거 우즈 이전엔 마이클 조던이었고, 우즈의 불륜 스캔들이 터진 이후에는 또 톰 브래디이름이 수 차례 바뀌었다.[3] "조선은 산업생산력이 딸리므로, 외국과 무역을 해도 팔 것이 없습니다."라는 주장을 하던 위정척사파의 전근대적 경제이해는 1번부터 망했다.[4] 농업생산력이 딸릴수록 더더욱 무역말고는 생산력이 나올 게 없으니 무역에 목을 매야한다. 농경이 불가능한 지역에 살던 사막의 베두인이나 초원의 유목민들은 무역의 생산력으로 먹고 살았다.[5] 실제의 경제상황은 이런 경로를 따른다. 해안의 대도시는 바다물고기뿐만 아니라 민물고기도 받아먹고 소금이나 원양무역을 통한 곡물을 산촌으로 운송해준다. 종교인이나 공산주의자들은 어촌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착취한다고 비난하겠지만 산촌 입장에서만 봐도 스스로 자급자족 하는 것보다는 어촌에게 의미있는 일을 해주고 콩고물인 곡물을 받아먹는 게 훨씬 풍요로워진다는 뜻이다.[6] 이들이 비문명국들에게 요구했던 것은 개항, 교역이었다. 침략당한 입장에서는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와서 고작 그걸 요구하는 걸 이해를 하지 못해서 무언가 음모가 뒤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개는 없었다. 교역하다보다 정치적 취약점을 보고 영토적 욕심을 부릴 수도 있었지만 그건 교역하다보니 정보를 얻어 발생하는 일이고, 정말 1차원적인 목표는 어디까지나 교역이었다. [7] 너무 획기적인 이론이다보니 당대 영국인들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생전에 변화를 이끌어내진 못했다. 하지만 공자처럼 리카르도의 제자들이 관료 자리와 학계를 점령하면서 정책을 변화시켰고 이는 유럽의 변방이던 영국의 운명을 갈랐다.[8] 이때도 비교우위론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양이 사람을 잡아 먹는다면서 극렬하게 반발한다.[9] 영국은 전통적으로 모직물을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 양 목장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양털 운송비를 적게들여도 된다는 이점, 양털 수출을 위한 항만과 도로 개척,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해 농토에서 쫒겨난 농민실업자들이 모직물 산업의 비교비를 결정적으로 영국에게 유리하도록 움직였다. 한편으로 이 농민들이 도시로 이동했다는 뜻은 아니다. 농노로 살던 이들에게 타지역으로 이주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고 처음에는 영농단지같은 양털생산지에서 작은 공방에 취직해 살았다. 이런 작업공방은 대개 그 지역 전직 영주들이었는데 농장을 밀어버리고 목장을 만들었으니 농노들에게 굶어죽으라고 할 수는 없어서 일을 준다는 느낌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돈을 잘 굴려 자본을 축적한 일부 귀족들은 연합해서 그리고 은행에 대출을 받아 자본가로 변신해서 거대한 기계를 쓴 공장을 건설했는데 이런 공장을 돌리기에는 한 마을 정도의 양털가지고는 어림도 없으니 여러 마을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 즉 교통의 요지에 건설했다. 맨체스터 같은 공업도시가 시작되었고 이들 전직 영주들이 직접 자기마을의 농노들를 이동시키고 이들이 앵커가 되어 인구 유입이 지속되면서 도시가 성장한다. 무역인프라를 건설하고 보니 지중해 항로로 대량의 면화가 들어왔는데 모직물 공장에 면직물 기계만 놓으면 되니 직물 노하우를 전용할 수 있었고 목화의 물량은 아메리카 아프리카에서도 지속적으로 증가해서 이후엔 면직물 산업이 영국을 이끌게 된다. [10] 리카도 모형에서 노동생산성은 일정하므로 생산가능곡선은 우하향의 직선이다.[11] 리카도의 비교우위 원리에서는 일단은 노동의 기술적 생산성만을 비교우위의 발생 원인으로 고려하고 있다. 이 외에 헥셔-올린 정리 등에서는 요소의 부존상태 역시 비교우위의 발생 원인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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