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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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언어별 표기
3. 역사
4. 볼거리
5. 경제와 산업
6. 기타



1. 개요[편집]


러시아 레닌그라드 주에 위치한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30km가량 떨어져있으며 핀란드 국경과 매우 가깝다. 인구는 2021년 기준 72,530명.

본래 핀란드의 유서 깊은 제2의 도시이자 카리알라 지역의 요충지였으나, 이오시프 스탈린겨울전쟁으로 빼앗아 소련 러시아 SFSR에 편입시켰고 현재는 전쟁의 피해를 회복하지 못한 채 철저하게 몰락했다.

2. 언어별 표기[편집]


러시아어
Выборг
핀란드어
Viipuri(비푸리)
스웨덴어
Viborg(비보리)

3. 역사[편집]


1293년에 스웨덴의 토르길스 크누트손(Torgils Knutsson ?~1306)이 핀란드 십자군을 위해 쌓은 비보리 성(Viipurin linna/Viborgs slott)으로부터 역사가 시작된다. 스웨덴의 대 러시아 방어 거점이자 무역 기지였고, 서방 가톨릭 세계의 최동단이었다. 스웨덴 국왕 망누스 4세노브고로드 공작을 역임한 모스크바 공작 유리 3세와 1323년 뇌테보리[1] 조약을 체결하면서 스웨덴의 영토로 확정되었으며, 1404년 칼마르 연합의 국왕 에리크 13세가 도시 헌장을 내주면서 중세 핀란드의 6대 도시[2]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나중에 스웨덴 국왕 칼 8세 크누트손이 되는 칼 크누트손은 이곳 성주로 있으면서 경험을 쌓기도 했다.

대북방전쟁 시기 폴타바 전투에서 스웨덴군이 궤멸당한 후 1710년에 벌어진 표트르 대제[3]의 비보리 포위전때 루스 차르국 군대에게 함락당했다. 1721년 뉘스타드 조약이 체결되면서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고, 이때 비보리의 주교구는 포르보(Porvoo/Borgå)로 이관되었다. 스웨덴은 1741~43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또 졌고, 오보 조약으로 퀴미강 동쪽에서 사이마 호에 인접한 사본린나(Savonlinna/Nyslott)에 이르는 영토를 추가로 할양하면서 1744년에 비보르크 현(Выборгская губерния)이 탄생했다. 1790년 4월, 스웨덴 해군러시아 제국 해군발트함대가 이 도시 앞바다에서 해전을 치렀다.

1809년, 스웨덴은 러시아에게 완전히 굴복했고 프레드릭스함[4] 조약으로 핀란드 전역을 할양했다. 새로이 핀란드의 지배자가 된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812년 비보르크 현을 핀란드에 되돌려주었다. 핀란드의 새로운 비푸리 주(Viipurin Lääni/Viborgs Län)의 주도가 된 비푸리는 1856년 라펜란타(Lappeenranta/Villmanstrand)와 이어지는 사이마 운하가 개통되면서 경제적인 요충지로 떠올랐다. 19세기 말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비푸리는 핀란드 남동부의 산업과 교통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917년, 핀란드가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핀란드 내전이 벌어졌다. 비푸리는 적위대에게 점령당했으나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 장군의 백위대가 비푸리를 탈환했고, 1918년 4~5월 사이에 360~420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학살당했다.

독립 이후에도 비푸리의 지위는 굳건했으나 탐페레 등이 성장하면서 인구가 4번째로 많은 도시로 내려왔다.[5] 이 시기에 지어진 알바 알토도서관은 기능주의 건축의 정수로 손꼽혔다.

하지만 러시아 제국의 영토를 복원하려던 스탈린은 핀란드를 완전히 먹어치울 목적으로 겨울전쟁을 일으켰고, 비푸리는 이 시기 벌어진 일련의 전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1940년 모스크바 조약으로 소련에 할양되었으나 1941년 핀란드가 재탈환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1944년 모스크바 휴전협정으로 최종적으로는 소련으로 귀속되었고 러시아 제국 시대의 이름인 비보르크로 바뀌었다. 1947년 핀란드는 파리 평화조약으로 비보르크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했다. 민족적 구성도 완전히 뒤바뀌어 2010년 기준으로는 러시아인을 비롯한 동슬라브인이 94%를 차지하게 됐고, 이전에 거주하던 핀인들은 실향민이 되어 대부분 인접한 퀴멘락소 일대 등으로 이주했다.

4. 볼거리[편집]


스웨덴이 세운 성이 사실상 유일한 볼거리. 그나마 볼만한 건물들은 겨울전쟁과 계속전쟁으로 다 박살났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분관이 있긴 하나 규모는 크지 않다.

앞서 언급한 알바 알토의 도서관도 겨울전쟁으로 다 박살났으나 알토 사후 두번째 부인 엘리사 알토의 노력으로 2014년에 겨우 복원했다.

도시를 둘러보는 방법으로 '폐허 투허'라는게 있다. 전쟁으로 얼마나 몰락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

5. 경제와 산업[편집]


사실상 이웃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밀려 찬밥 신세나 다름없다. 핀란드령 시절에는 국내 인구 4위였지만 현재는 레닌그라드주 인구 4위 도시다(...).[6] 그나마 종이 생산이 이 몰락한 소도시의 주력 산업이다.

독일은 이곳에서 노르트스트림-1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는다. 2021년 우크라이나 위기에서 논란이 되었던 노르트스트림-2는 발트해를 관통하여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의 루프민(Lubmin)으로 이어지는건 똑같으나 출발점이 우스티루가(Усть-Луга)로 달라진다.

6. 기타[편집]


핀란드 전 대통령 마르티 아티사리가 이 곳에서 태어났다. 물론 실향민.

전략적 요충지로 러시아 군부대가 상주하고 있다. 간혹 시내나 비보르크 기차역에서는 불심검문이 있다.

핀란드인은 러시아 방문을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지만 여름철 한정으로 라펜란타에서 사이마 운하를 이용한 페리를 타면 무비자로 비보르크를 방문할 수 있다보니, 본인들의 땅이었던 역사적인 이유도 있어 많이들 찾는다.

실시간 전술 게임 스틸 디비전 2카렐리아 캠페인에서 등장한다. 소련군은 라펜란타를 점령해야 승리하고 핀란드군은 비보르크를 점령하면 완전 승리를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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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 러시아 실리셀부르크(Шлиссельбург). 스웨덴어로 뇌테보리(Nöteborg)라고 부른다. 1617~1702년 사이에 스웨덴의 영토였다.[2] 나머지 5곳은 투르쿠, 난탈리, 라우마, 울빌라, 포르보[3] 실제 지휘는 표도르 아프락신(Фёдор Матве́евич Апра́ксин 1661~1728)이 했고 표트르 대제는 얼굴마담이었다. 그래서 성 뒤편에는 아프락신의 동상이 세워져있다.[4] 현 핀란드 하미나.[5] 1939년 기준 인구수는 75,000명 남짓했고 핀인이 대다수를 차지했다.[6] 가치나, 무리노, 프세볼로시스크 다음이다. 핀란드령 시절이나 지금이나 절대 인구는 비슷하지만, 5백만 국가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1억 5천만 국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를 수밖에 없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