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앙카 마리아 스포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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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로마 제국 막시밀리안 1세의 황후
비앙카 마리아 스포르차
Bianca Maria Sforza


파일:Bernhard_Strigel_009.jpg

이름
비앙카 마리아 스포르차
(Bianca Maria Sforza)
출생
1472년 4월 5일
밀라노 공국 파비아
사망
1510년 12월 31일 (향년 38세)
오스트리아 대공국 티롤 인스부르크
배우자
사보이아 공작 필리베르토 1세 (1474 결혼 / 1482년 사망)
막시밀리안 1세 (1494년 결혼)
아버지
밀라노 공작 갈레아초 마리아 스포르차
어머니
사보이아의 보나
형제
잔 갈레아초, 에르메스, 안나
종교
가톨릭
1. 개요
2. 생애
3. 가족관계
3.1. 조상



1. 개요[편집]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황후. 막시밀리안 1세의 3번째 아내지만 비앙카 마리아와 결혼한 후에 막시밀리안 1세가 황제가 되면서 그의 유일한 황후가 되었다.


2. 생애[편집]


1472년 4월 5일 밀라노의 공작 갈레아초 마리아 스포르차와 사보이아의 보나의 장녀로 태어났다. 난폭하기로 유명했던 갈레아초 마리아 스포르차는 비앙카 마리아가 어릴 때 암살당했다.

1474년에 사촌 사보이아의 필리베르토와 결혼했다.[1] 그러나 필리베르토가 요절하면서 10살의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비앙카 마리아는 기억이 거의 없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당시 오빠 잔 갈레아초가 밀라노의 공작이었으나, 삼촌 루도비코가 섭정인 어머니를 누르고 권력을 차지한 상태였다. 비앙카 마리아는 삼촌의 방임 아래서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1485년, 헝가리 왕국 마차시 1세의 사생아 아들 코르빈 야노시와 약혼했다. 그러나 마차시 1세의 왕비 나폴리의 베아트리체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후 스코틀랜드 왕국제임스 4세와도 혼담이 오갔지만 역시 무산되었다.

1494년 3월 16일에 신성 로마 제국의 후계자인 독일왕 막시밀리안 1세와 결혼했다. 비앙카 마리아는 매우 아름다웠지만 인문주의자였던 막시밀리안 1세는 그녀를 전처와 비교하면서 똑똑하지 않고 말이 많으며, 사치스럽기만 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비앙카 마리아는 몇차례 임신했으나 모두 유산되었다. 1499년, 프랑스가 밀라노를 정복하면서 비앙카 마리아는 정치적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후 부부는 별거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막시밀리안 1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선포되는 순간에도 비앙카 마리아는 그의 곁에 있지 못했다.

말년에는 신경성 식욕부진 등의 이유로 오랫동안 앓아누웠다. 막시밀리안 1세는 의사를 보내주었지만 치료에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비앙카 마리아는 인스부르크에서 향년 38세로 숨을 거두었다. 장례식은 간소하게 치루어졌다.


3. 가족관계[편집]



3.1. 조상[편집]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비앙카 마리아 스포르차
(Bianca Maria Sforza)
갈레아초 마리아 스포르차
(Galeazzo Maria Sforza)
프란체스코 1세 스포르차
(Francesco I Sforza)
무치오 아텐돌로 스포르차
(Muzio Attendolo Sforza)
루치아 다 토르사노
(Lucia da Torsano)
비앙카 마리아 비스콘티
(Bianca Maria Visconti)
필리포 마리아 비스콘티
(Filippo Maria Visconti)
아그네스 델 마이노
(Agnese del Maino)
사보이아의 보나
(Bona of Savoy)
사보이아 공작 루도비코
(Ludovico, Duke of Savoy)
사보이아 공작 아메데오 8세
(Amadeus VIII, Duke of Savoy)
부르고뉴의 마리
(Mary of Burgundy)
안 드 뤼지냥
(Anne of Lusignan)
야뉘 드 뤼지냥
(Janus of Lusignan)
부르봉의 샤를로트
(Charlotte of Bour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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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476년에 결혼했다는 주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