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른 안드레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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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른 안드레센
Björn Andrésen

파일:bjornandresen2018.jpg
본명
비요른 요한 안드레센
Björn Johan Andrésen
출생
1955년 1월 26일 (69세)
스톡홀름
국적
[[스웨덴|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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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직업
배우, 음악가
활동
1970년 ~ 현재
신체
173cm[1]
배우자
수잔나 로만(1985년 – 1997년)
자녀
장녀 로빈 안드레센(1984년생)
장남 엘빈 안드레센(1987–1987)[2]
형제
안니케 안드레센(1955년생)[3]
1. 개요
2. 상세
3. 여담



1. 개요[편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 출연했던 것을 후회하진 않아요. 하지만 누가 “15살로 돌아갈래?” 라고 물어보면 “아니” 라고 대답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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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른 안드레센

스웨덴배우이자 음악가.

2. 상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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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표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中

다큐멘터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The Most Beautiful Boy in the World)(2021)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기구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1955년 1월 스웨덴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머니가 친부에 대해 죽을때까지 함구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고 한다.[4] 같은 해 12월에 이부 여동생인 안니케 안데르센이 태어나며, 마치 쌍둥이처럼 친구로 자랐다.[5]

탐색 기자였던 어머니 바르보로 엘리사베트 안드레센은 자유로운 예술가적 성향이였으며, 실제로 미술 갤러리를 운영하거나 디올의 모델로도 일했다고 한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아이들을 데리고 1년동안 유럽 전역을 여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에른이 11살때 실종된 후 이듬해 숲에서 시체로 발견됐고, 정황상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에른은 그로부터 55년만인 2020년에 유언장과 함께 사망 증명서를 확인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는 여동생과 조부모의 집에서 지내기 시작했는데, 집안 환경은 나름 유복했지만 잘생긴 손자를 유명인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할머니에 의해 아역배우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6]

파일:IMG_6148.jpg
촬영장에서 루키노 비스콘티와 함께
데뷔하자마자[7] 1971년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통해 처음 배우로 알려졌다. 당시 비스콘티는 영화에 출연할 가장 완벽한 미소년을 찾기위해 몇년동안 동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캐스팅에 매진했는데, 비에른을 보자마자 주인공보다 나이가 많고 키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캐스팅한다. 당시의 오디션 영상을 보면 그전까진 자리에 앉아 참가자인 소년들을 바라만보고 내보내던 비스콘티가 비에른이 오디션장으로 들어오자마자 얼굴에 화색이 돌며 앞전 참가자들에겐 요구하지 않던 포징 같은것을 이것저것 시킨다. 말끝마다 잘생겼다며 찬사를 보내는건 덤. 이윽고 스태프들에게 ’얘 사진 좀 찍어라! 어깨 나오게 얼굴 찍고 옆모습도 찍어놔‘ 라고 지시하며 사실상 캐스팅 확정을 내린다. 《베니치아에서의 죽음》은 예술성이 강한 예술영화여서 대중적 으로 큰 흥행은 거두지 못했지만, 이 영화에 등장한 비에른의 이미지는 희대의 미소년으로서 전설이 되어버렸다.

영화 단 한 편으로 이름을 알렸기에 서양에서 인기를 끌진 못했지만 유달리 일본에서 큰 인기가 있어서 일본을 2번 방문하며 음반을 내기도 하였다.[8] 일본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의 오스칼과《오르페우스의 창》의 유리우스의 모델이라고도 한다. 《은하영웅전설》이 실사화 되면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역으로 가장 잘 어울릴 얼굴일거라는 찬사까지 있을 정도. 파타리로에서는 이름까지 그대로 쓰였다. 일본인들이 장발 꽃미남을 선호하는 데에는 이 사람도 본의 아니게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10대 중후반에 씌워진 환상적인 미소년이라는 이미지가 본인에겐 상당히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미성년자 착취라고 느꼈을 정도.[9] 그래서인지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음에도 자국 스웨덴 지역 작품 위주로 활동해왔다.

3. 여담[편집]


  • 아름다운 외모로 동성애자냐는 소문도 났으나, 본인이 확고하게 부정하였다. 굳이 따지자면 동성애자에게 좋지 못한 기억 때문에 호모포비아에 가까운 쪽이다. 한 번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사회운동가이자 작가인 저메인 그리어(Germaine Greer) 가 저서인 《아름다운 소년 The Beautiful Boy》에 그의 사진을 표지로 사용하는 바람에 크게 분개한 적도 있다. 그리어는 그 사진을 찍은(= 판권을 소유한) 사진사에게 허락을 받았다지만, 안드레센은 사진을 사용할 때는 거기 담긴 사람의 허락을 받는 것이 상식이 아니냐며 항의했다고.

  • 불우한 유년기, 그리고 베니스에서 죽음 이후 아름다움이 불러온 또 다른 불행으로 삶이 불행했던 스타로 꼽힌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 다큐멘터리를 보면 이해가 쉽다.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그 어떤 사랑도 받지 못한 소년. 가장 아름다웠지만 가장 외로웠던 소년.

  • 한국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기네스북꽃미남으로 올라있다는 문구가 널려 있는데, 공식적인 인물정보 등에는 이런 자료가 전혀 없다. 외국 사이트에도 이런 언급이 없는 걸 보면 기네스북 얘기는 사실무근일 가능성이 높다. 기네스북은 정량적으로 순위를 매길 수 있는 것만 기록한다. 세계 3대 미남으로 선정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해외에서 그 정도로 인지도가 높지 않은 배우이므로[10] 사실무근이다.[11]

  • 나이가 든 지금은 배우업과 함께[12] 음악교사를 하고 있다 한다. 어린 시절 사진은 많이 찾아볼 수 있어도 나이 든 사진은 찾기 어렵다는 말도 있지만 그냥 조금만 검색하면 얼마든지나온다. 옛날만큼의 미모는 아니지만 상당히 품위있게 나이가 들었다. 마치 윌렘 대포빌 나이를 연상케 한다.

  • 영화 미드소마에 잠시 출연한다. 비중은 끔살당하는 단역 1 수준이긴 하지만 죽기 전에 고통에 몸부림치는 장면에서 보여준 열연이 상당해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 어린시절 사망한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그의 필름카메라에는 젊은 시절 어머니의 생전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데, 이목구비와 웃는 모습이 판박이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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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젊은 시절엔 170 후반으로 추정. 노년에는 173cm로 줄었다.[2] 생후 8개월때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사망했으며, 아들이 영아돌연사가 아닌 애정결핍으로 사망한 것이라는 자책감에 괴로워하다 결국 아내와는 별거이혼했다고 한다. 2019년 인터뷰에서는 죽은 후에 아들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3] 같은 해 12월 생으로, 비에른과는 아버지가 다른 이부형제다. 어머니가 비에른을 출산한 후 곧바로 임신해 태어났기 때문에 사실상 쌍둥이처럼 자랐다고. 실제로 덴마크에서는 이를 ’반쪽 쌍둥이‘라고 부른다고 한다.[4] 친정가족과 어머니의 친구들조차 몰랐으며, 비에른의 필름카메라에 남아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친부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형에 금발 남성으로 추측될 뿐이다.[5] 실제로 덴마크에서는 쌍둥이가 아닌데 동갑인 형제를 두고 ‘반쪽 쌍둥이’라 칭한다고.[6] 낯을 많이 가렸고 본인이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7] 데뷔작은 훗날 스웨덴 영화계의 거장으로 성장하는 로이 앤더슨의 <스웨덴 러브 스토리> 주인공 친구 역이었다.[8] 미소년/소녀를 선호하는 일본의 취향 덕분에 그 인기에 힘입어 일본에서 음반을 낸 외국 배우들이 꽤 있다. 한 예로 에드워드 펄롱도 일본에서 광고를 찍거나 앨범을 발매한 적 있다.[9] 이외에도 베니스에서의 죽음 촬영 도중 비스콘티가 억지로 게이 바에 데려갔는데, 늙은 게이들에게 추파를 받아 상당히 불편했다고 한다. 비스콘티에 대한 감정은 여전히 좋지 않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에 출연했을 때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한 유독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할머니에게 언어도 문화도 완전히 다른 일본에서 활동하도록 종용받았다고 한다. 다만 일본 활동은 새로운 나라에서 방학숙제를 하는 느낌이라 즐거웠던 경험도 있었다고.[10] 비에른의 해외 인지도 대다수는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비롯된다. 연기력은 괜찮은 편이지만, 비스콘티와의 3년 계약으로 전성기때 크게 해외 활동을 하지 못했고 노년에 조단역으로 출연한 영화들이 유명세를 타면서 알려진 정도.[11] 이 모든 루머는 2010년대 초반 네이트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네이트판의 한 유저가 '세계 3대 미남' 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올렸고 안드레센을 설명하는 단락에서 세계 최고의 꽃미남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고 거짓 서술한 것이 인터넷상에 퍼지면서 사실인냥 받아들여진 것이다. 앤디 워홀이 말했다고 잘못 알려진 '일단 유명해져라. 그럼 당신이 똥을 싸더라도 사람들이 박수를 칠 것이다.'와 같은 맥락이다. 커뮤니티에서 그럴듯 하게 쓰여진 낚시성 게시글이 사실인냥 인터넷상으로 널리 퍼진 케이스인 것이다. 하지만 안드레센이 잘생겨서 아무도 의심을 안한다.[12] 1990년대 초 9년동안 공백 기간이 있었지만, 스웨덴 TV 드라마 위주로 복귀했다. 최근 출연작으로는 경계선으로 유명해진 알리 압바시셸리가 있다. 유전 감독 아리 애스터의 신작 미드소마에도 조연으로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