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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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사보이아 공국 공작이자 사르데냐 왕국 초대 국왕.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여 사보이아 공국을 생존시켰고 왕위에 올라 사보이아 가문의 위상을 높였다.
2. 생애[편집]
아버지 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가 1675년 6월 12일 40살에 승하하자 9살의 어린 나이에 사보이아 공작으로 즉위하였고 어머니 사부아느무르[2] 의 마리 잔의 섭정을 받았다. 1684년 베르사유 궁전에서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1세와 잉글랜드의 헨리에타 앤의 차녀 안 마리 도를레앙과 결혼했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일어나자 처음에는 처가인 프랑스 편으로 참전했으나 6촌인 사부아 공자 외젠이 오스트리아군을 이끌고 진입하자 오스트리아 편으로 갈아탔고 토리노 공방전에서 프랑스군을 상대로 승리하여 사보이아 공국의 독립을 지켜냈다.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이 체결되면서 시칠리아를 획득하여 시칠리아 국왕이 되었으나, 사국 동맹 전쟁으로 스페인에게 시칠리아를 빼앗겼다. 시칠리아를 되찾기 위해 참전했지만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6세의 반강제적인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1720년 사르데냐와 교환하여 사르데냐 왕국을 선포하였다.
이후 토리노 대학교를 부흥시키는 한편 팔레르모에서 데려온 건축가 필리포 유바라(Filippo Juvarra 1678~1736)로 하여금 베나리아 궁전을 재단장하고 수페르가 성당을 짓게 하였다. 그러나 맏아들 비토리오 아메데오의 사망으로 우울증에 빠져 말년으로 갈수록 가톨릭에 빠졌고 왕비 안 마리 도를레앙마저 사망하자 1730년 후계자 카를로 에마누엘레에게 양위하고 샹베리로 퇴위하였다. 자신의 성에 차지 않는 카를로 에마누엘레 3세에게 양위한 것을 후회하여 복위를 시도하다가 신하들의 반대로 실패한 끝에 유폐되었고 1732년 사망하였다. 유해는 본인이 지은 토리노의 수페르가 성당에 안장되었다.
3. 가족 관계[편집]
- 마리아 아델라이데 : 1685년 12월 6일 ~ 1712년 2월 12일 - 프티 도팽 루이와 결혼.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어머니.
- 마리아 안나 : 1687년 8월 14일 ~ 1690년 8월 5일
- 마리아 루이사 : 1688년 9월 17일 ~ 1714년 2월 14일 - 스페인 국왕 펠리페 5세와 결혼. 스페인 국왕 루이스 1세와 페르난도 6세의 어머니
- 피에몬테 공 비토리오 아메데오 : 1699년 5월 6일 ~ 1715년 3월 22일
- 카를로 에마누엘레 3세 : 1701년 4월 27일 ~ 1773년 3월 20일
-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 1705년 12월 1일 ~ 1705년 12월 19일
이 외에도 정부와의 사이에서 낳은 2명의 사생아가 더 있다. 그 중 한 명인 마리아 비토리아는 사보이아 가문의 직계가 단절된 후 사르데냐 왕위를 계승한 카를로 알베르토의 고조할머니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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