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한국 영화)

덤프버전 : r20190312


1. 소개
2.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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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곳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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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편집]


1997년 5월 3일 개봉한 한국의 영화. 동명의 만화 비트를 원작으로 했다.

김성수 감독. 정우성, 고소영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다. 유오성, 임창정 등도 조연으로 출연했으며, 정우성과 고소영의 몇 안되는 성공작이다. 지금도 주인공 정우성이 CBR 600F2 모터사이클을 최대속력으로 유지하고 타면서 눈을 감고 양 팔을 양 옆으로 활짝 펼치는 장면은 남자의 로망이자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의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다만, 모터사이클 씬이나 액션씬에서 사용된 촬영기법은 그 당시 엄청난 인기였던 왕가위 감독 특유의 핸드 헬드와 스텝 프린팅 촬영 기법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원작이 없었다면 왕가위의 아류작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1997년 외환 위기가 현실화되어 혼돈의 시기를 보내던 그시기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불안감을 제대로 자극하여 정우성을 한국의 제임스 딘으로 만들고, 당시 수많은 중고딩 양아치 남학생들에게 말보로 레드와 지포라이터를 가르친 영화이자, "남자에게 간지나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것을 일깨워준 문제작이다. "나에겐 꿈이 없었어"나 "17대 1"같은 전설적인 명대사도 많이 만들어냈다. 이후 담배를 피우는 양아치들은 싸구려 1회용 라이터가 아니라, 모두 지포라이터를 사용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 영화로 정우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미남배우로 인정받게 되었으나, 비트 이후 2004년작인 내 머릿속의 지우개를 찍을때까지 비트의 후광을 벗어나지 못해서 흥행실적이 저조한 편이었는데, 정우성의 절친한 한 친구는 "너는 비트만 찍고, 마약이나 오토바이 사고로 죽어서 한국의 전설로 남았어야 된다"라고 독한 농담을 했었다고 한다.

물론 이후 흥행도 어느 정도 되면서 "옛날에는 이랬지?"라고 웃으며 할 농담이 되긴 했다. 연예인들의 연예인 소리들을 정도로 빼어난 외모에 비트 때부터 연기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던 걸 감안하면 지금도 작품복이 아주 좋은 배우는 아니다. 정우성의 흥행작들은 놈놈놈, 신의 한수 처럼 배우들 개개인의 역량과 비주얼로 흥행한 작품 제외하고 작품성으로도 높게 평가받는 작품은 감시자들과 강철비 정도 밖에 없다.

고소영의 친구가 자살하는 장면은 3호선 무악재역에서 찍었으며, 1997년에 나온 영화다보니 지하철 행선기가 플랩식 방식이다.

작중에 정우성이 싸움장면에서 그립력을 늘리기 위해서 지포라이터를 잡고 싸우는 장면이 있다. 수많은 중고등학생들이 후에 싸움이 났다 하면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비슷한 짓을 따라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오성이 자신이 소속된 조직으로부터 배신을 당해서 숨을 거둘 때 오열하는 장면과 말보로 레드를 유오성의 입에 물려주고 복수를 하기 위해 CBR 600F2을 최대속력으로 타고 가는 장면도 역시 희대의 명장면이다.

서울관객 35만 관객이 관람[1]하며 그 해 한국 영화 흥행작이었다. 김성수는 이 다음 작품인 태양은 없다로도 서울 33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감독이 되는가 했으나... 문서 참조.

원작도 그렇지만 영화도 조폭 세계의 현시창스러움을 그려냈다. 그나마 원작에서는 여주인공과 맺어지지 않고 웬 엑스트라급 여캐와 결혼하여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허무한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살아남는 엔딩이지만 영화판은 정우성이 연기한 주인공 이민이 유오성이 연기한 명태수의 복수를 하겠다며 혼자서 조폭들과 싸우다가 결국은 치명상을 입고 길가에 내버려지며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배드 엔딩이다. 참고로 원작 작화를 담당한 허영만은 원래 영화판 결말이 의도했던 엔딩이라고 한다.

2. 그 외[편집]


비틀즈의 Let It Be를 무단으로 썼다가 소송을 비롯한 큰 곤욕을 치른 것으로도 유명하며 이후 2차 매체에서는 빠졌다.

여담으로 충무로 심산스쿨의 시나리오 작가, 심산의 첫 작품이기도 하며 이후 '태양은 없다'를 마지막으로 본격 충무로 작가 학원강사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감기(영화)로 다시 복귀했다.

디시인사이드 바이크 갤러리에서 영화의 바이크를 재현한 사람이 나타났다.

이 작품으로 인해 정우성 본인은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세상에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한다.영화 상영 당시 오토바이 훔쳐타고,영화를 통해 담배를 배우게 됐다는 청소년들의 말을 듣고 영화의 파급력이 크다는 것을 느꼈고,그 후에는 나쁜 영향을 끼치는 배역은 될 수 있으면 거절했다고.여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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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에는 단관극장이라 이 정도로도 대박이었고 서울관객만 집계했기 때문에 정확한 전국관객 집계는 불명, 전국 100만 이상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