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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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808080
[ 전 멤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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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io Album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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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d817ypd61vbww.cloudfront.net/AHardsDays.jpg


파일:external/d817ypd61vbww.cloudfront.net/BeatlesForSale.jpg


파일:external/d817ypd61vbww.cloudfront.net/Help.jpg


1963

1963

1964

1964

1965

파일:Rubber Soul Album.jpg


파일:91AL-aLarsL._SL1500_.jpg


파일:SgtPepper.jpg


파일:매미투.jpg


파일:beatles_1968_transparent.png


1965

1966

1967

1967

1968

파일:external/d817ypd61vbww.cloudfront.net/YellowSub.jpg


파일:external/d817ypd61vbww.cloudfront.net/AbbeyRoad.jpg


파일:external/d817ypd61vbww.cloudfront.net/LetItBe_0.jpg



1969

1969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00000; font-size: .8em"
Let It Be
1970

}}}
[ US Albums ]
[ Live Albums ]
[ Compilati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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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주요 저널·여론조사 선정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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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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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로큰롤 명예의 전당 로고.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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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비틀즈
THE BEATLES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입성 연도
1988년
후보자격 연도
1988년
후보선정 연도
1988년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파일:oscar_logo.svg
음악상 수상작
제43회
(1970년)

비틀즈
(렛잇비)


역대 그래미 시상식
파일:external/www.brooklynvegan.com/grammy.jpg
올해의 노래
제8회
(1966년)


제9회
(1967년)


제10회
(1968년)

토니 베넷
“The Shadow of Your Smile”

비틀즈
“Michelle”
[1]

피프스 디멘션
“Up, Up and Away”
최고의 신인상
제6회
(1964년)


제7회
(1965년)


제8회
(1966년)

스윙글 싱어즈

비틀즈

톰 존스





비틀즈의 주요 등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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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음반 산업 협회
파일:3C33F99B-797F-4AB9-B8FC-147421D8A6EF.png
Best-Selling musician In America
역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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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자
수치
장소
출처
비틀즈
약 1억 8,300만
미국
#















비틀즈의 기네스북 등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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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ness World Records
파일:기네스 세계기록 로고.svg
Best-selling musician of all time.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 음악가


[ 펼치기 · 접기 ]
기록자
수치
날짜
출처
비틀즈
약 10억장
2001년 3월 19일
#


Guiness World Records
파일:기네스 세계기록 로고.svg
Most Recorded Song
역사상 가장 많이 녹음된 노래


[ 펼치기 · 접기 ]
기록자
수치
날짜
출처
비틀즈, Yesterday
약 1,600회
1986년 1월 1일
#





비틀즈
The Beatles

[1]빨간옷부터 시계방향으로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존 레논

▼ 다른 사진 보기
파일:The-Beatles-Ringo-Starr-Paul-McCartney-George.jpg}}}
Beatles for Sale이 발매될 쯤인 1964년 말에 촬영된 사진
Revolver가 발매될 쯤인 1966년에 촬영된 사진
파일:sgt pepper.jpg}}}
1967년,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 동봉 사진
파일:비틀즈.png}}}
1967년, Magical Mystery Tour 촬영 도중
파일:abbey_road_cover.jpg}}}
1969년, Abbey Road 앨범 커버

국적
[[영국|
파일:영국 국기.svg
]]



결성
1960년 8월 중순[2]
잉글랜드 랭커셔 리버풀[3]
데뷔
1962년 10월 5일 (Love Me Do / P.S. I Love You)
데뷔일로부터 21906일 | 59주년
데뷔 앨범
해체
1970년 4월 9일[4]
멤버
존 레논 (보컬, 리듬 기타, 키보드, 1957 - 1970)
폴 매카트니 (보컬, 베이스, 키보드, 1958 - 1970)
조지 해리슨 (리드 기타, 보컬, 1958 - 1970)
링고 스타 (드럼, 보컬, 1962 - 1970)
전 멤버
스튜어트 서트클리프 (베이스, 1957 - 1962)
피트 베스트 (드럼, 1960 - 1962)
장르
, 로큰롤[5], 포크, 블루스 록, 팝 록, 포크 록, 사이키델릭 록, 하드 록[6]
레이블
파일:Apple_Corps_logo.png}}}[7]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7FF17EF7-7612-4390-BF5C-B00EF61850AD.jpg[8]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캐피톨 레코즈 로고.svg[9]
링크
파일:비틀즈 로고.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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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멤버
5.1. 싱글
5.1.1. 빌보드 1위
5.1.2. 빌보드 2위
5.1.3. 빌보드 3위~10위
5.1.4. 빌보드 11위~20위
5.1.5. 해체 후 멤버별 빌보드 성적(싱글)
5.2. 앨범
5.2.1. 빌보드 1위
5.2.2. 빌보드 2위
5.2.3. 빌보드 3위~10위
5.2.4. 빌보드 11위~20위
5.3. 문서가 분리된 비틀즈 노래들
8. 롤링 스톤스와의 라이벌리
9. 인기
9.1. 한국에서의 인지도
10. 음악적 성향
11. 저작권 논란
12. 기타
12.1. 비틀즈 관계자들
12.2. 대한민국에서의 비틀즈
12.3. 기타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비틀즈는 1962년에 데뷔, 1970년에 해체된 영국록밴드이다.


2. 상세[편집]


비틀즈는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록밴드이자 록 음악의 상징과도 같은 4인조 밴드이다. 1957년 존 레논이 조직한 고교 밴드 쿼리멘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몇번의 밴드 멤버 교체를 겪다가, 폴 매카트니와 그의 친구 조지 해리슨이 가입하였으며, 1962년 최종적으로 링고 스타가 영입되면서 밴드가 완성되었다. 1960년대 초반에는 함부르크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이후 방화 혐의로 추방 당하는 등 고된 시간을 보냈지만,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프로듀서 조지 마틴을 만나면서 Love Me Do라는 첫 싱글을 발매할 수 있게 되었다. 첫 싱글의 성공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비틀즈는 1963년 1집을 냈으며, 1집과 2집이 미국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어 1964년 미국 콘서트 이후 미국의 음반 시장을 점령하면서 소위 말하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선봉장이 되었다. 이후 비틀즈는 1969년까지 13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였다. 그러나 1967~1968년경부터 존 레논폴 매카트니의 음악적 갈등으로 밴드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1969년을 마지막으로 음악 활동을 하지 않았다. 1년 뒤인 1970년 폴 매카트니가 밴드를 탈퇴하면서 비틀즈는 공식적으로 8년만에 해체를 선언했다.

해체한지 50년이 넘어가는 밴드이고, 활동 기간도 겨우 7~8년으로 유명 록밴드들 중 굉장히 짧은 축에 들지만[10], 비틀즈는 비단 록 뿐만이 아닌 비틀즈 이후의 대중음악의 여러 장르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솔로-그룹 불문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11]

1960년대 초반에는 척 베리리틀 리처드, 엘비스 프레슬리를 위시로한 로큰롤에 큰 영향을 받은 전형적인 로큰롤 아이돌 밴드였다. 그러나 1966년 이후 리코더, 하프시코드, 시타르, 역재생 등 다양한 악기와 소리들을 사용한 다채로운 사운드를 선보였으며, 사이키델릭 록, 하드 록, 포크 록, 헤비 메탈, 아방가르드 등 실험적인 장르들을 시도했다. 너바나와 같은 얼터너티브 록 밴드는 물론 빌리 조엘 같은 팝 록 아티스트까지도 비틀즈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으며, 심지어 헤비 메탈펑크 록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고 있다. 비틀즈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음악가만 해도 핑크 플로이드, 주다스 프리스트, 블랙 사바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라몬즈, , 라디오헤드, 오아시스, 너바나, 카펜터스[12] 등 셀 수 없을정도로 많다.[13]

이러한 점으로 인하여 음악 평론가들 사이에서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록밴드로 평가받는다.[14]

비틀즈는 대중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우선 대한민국의 일반 대중들이 알고 있는 해외 음악가들 중 마이클 잭슨과 함께 대중적 인지도가 제일 높다. 다른 동시대의 록밴드인 레드 제플린, 롤링 스톤스, 더 후 등이 1960~70년대의 록 음악이 성공하지 못한 대한민국에서 매니아층만 알고 있고, 대중적인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비틀즈는 당연히 예외이다.[15] 대한민국 광고 혹은 예능에서 나오는 곡들 중에서 이거 들어봤는데 하는 곡들 중에서 꽤 많은 곡들이 비틀즈의 곡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비틀즈의 곡들의 저작권이 온갖 곳에 다 퍼져있어[16] 저작권료가 골때리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대단하다고도 볼 수 있다.

음반 판매량으로 보아도 막대한 성공을 이루어냈다. 2000년대 이후 가장 많이 팔린 앨범도 비틀즈의 앨범인 "1"이다.[17] 정규 앨범도 아닌 컴필레이션 앨범으로만 2000년대에 가장 많은 앨범을 판 것이다. 1960년대에 그 인기는 엄청나서 1965년 미국에서 판매된 음반의 60%가 비틀즈의 음반이었으며, 비틀즈의 라이브 공연이 있는 날에는 청소년들이 모조리 비틀즈의 공연을 보러가 청소년 범죄가 단 한건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믿기 힘든 일도 있었을 정도였다. 요즘 세대에게도 인기가 당연히 매우 높은데 가장 인기 있는 록밴드 투표를 하면 거의 1위로 꼽힌다.[18] 또한, 비틀즈는 역대 음반 판매량 1위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는데, 약 6억 장 정도를 판 것으로 추정되며, 무려 10억 장을 팔았다는 자료도 있다. 이는 2위인 엘비스 프레슬리를 1억 장 차이로 상회하는 것이며, 록밴드로만 따질 시 약 3억 장 이상을 팔아 2위를 차지한 레드 제플린을 2배 이상의 압도적인 차이로 따돌리는 것이다.[19][20] 비틀즈는 사실상 하나의 사회 현상[21]이었으며 어느 나라에서간에 반체제의 상징으로 떠받들여져, 히피 운동에 큰 영향을 줬다. 1967년 사랑의 봄에서 All You Need Is Love가 히피의 상징곡으로 꼽히기도 했고, 히피들의 패션인 히피룩 역시 비틀즈 멤버들의 패션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비단 서구권 뿐만 아니라 소련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는데, 프라하의 봄 당시 시민들이 Hey Jude를 시위대의 상징 곡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서구권에서는 젊은이들의 반항으로 여겨져 신좌파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동구권에서는 "서구권 자유주의 문화"의 위대한 사례로 알려져 공산권의 반서구적이고 폐쇄적인 체제를 무너트리는데 일조했다. 혹자는 "소련은 비틀즈 때문에 무너졌다"라고 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즉 비틀즈는 음악적, 대중적, 사회적인 면에서 모두 영향력을 행사했다. 타임에서는 비틀즈를 "20세기의 중요한 인물 100인"중 한명으로 선정했으며, 롤링 스톤은 비틀즈를 역대 최고의 아티스트 1위로 선정했다.[22] 앞으로도 큰 이변이 없는 한 비틀즈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밴드로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한국에 알려진 유명한 노래로는 몇 개 꼽자면 Yesterday, Let It Be, Hey Jude, All You Need Is Love, I Will, Ob-La-Di, Ob-La-Da 등이 있다. 물론 이 노래들 말고도 유명한 노래들이 많긴 하지만, 특히 유명한 곡들은 이 정도다.[23]

3. 멤버[편집]


비틀즈의 구성 멤버

존 레논 John Lennon
생몰
1940년 10월 9일 - 1980년 12월 8일 (향년 40세)
출신지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잉글랜드 랭커셔 리버풀
활동
1956년 - 1970년
포지션
보컬, 리듬 기타

폴 매카트니 Paul McCartney
생몰
1942년 6월 18일 ~ (80세)
출신지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잉글랜드 랭커셔 리버풀
활동
1957년 - 1970년
포지션
보컬, 베이스[24]

조지 해리슨 George Harrison
생몰
1943년 2월 25일 - 2001년 11월 29일 (향년 58세)
출신지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잉글랜드 랭커셔 리버풀
활동
1958년 - 1970년
포지션
리드 기타, 보컬

링고 스타 Ringo Starr
생몰
1940년 7월 7일 ~ (82세)
출신지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잉글랜드 랭커셔 리버풀
활동
1962년 - 1970년
포지션
드럼, 보컬

구 멤버들

스튜어트 서트클리프, 피트 베스트
파일:비틀즈 로고 반전.png
[25]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밴드답게 각 밴드의 멤버 4인방 모두 역사상 유명한 싱어송라이터들이다. 레드 제플린이 각 멤버의 연주력으로 유명하다면 비틀즈는 각 멤버가 대중음악사에 큰 영향을 미친 싱어송라이터들이라는 점에서 유명하다.[26] 존 레논이 쿼리멘을 결성한 1957년에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는 멤버가 아니었으나, 1958년 폴 매카트니가 쿼리멘에 가입하고, 이후 자신의 학교 친구였던 조지 해리슨을 존 레논에게 소개시켜주면서 조지가 합류했다. 중간에 존 레논의 미대 친구였던 스튜어트 서트클리프와 클럽 주인의 아들 피트 베스트가 급하게 합류하기도 했으나, 음악이 소질에 안맞았던 스튜어트 서트클리프는 중간에 밴드를 탈퇴하고 얼마 안가 급사했으며, 피트 베스트는 멤버들간에 불화를 겪다가 밴드에서 쫓겨났다. 이때 피트 베스트를 대체하기 위해 들여온 드러머가 링고 스타이다.

많은 4인조 밴드가 그렇듯이 리더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멤버들이 나름대로의 존재감과 상업성, 작품성을 갖추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각 분야에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폴 매카트니는 비틀즈 해체 이후로 올린 빌보드 1위곡만 해도 역대 12위일 정도로 높은 상업성과 작품성을 지닌 음악가였으며, 존 레논,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역시 비틀즈 해체 이후에도 꾸준한 음악 활동으로 모두 자작곡을 빌보드 1위에 올렸다. '''

현재 멤버들 중 2명은 사망했다. 존 레논1980년에 정신병자 마크 채프먼으로부터 저격을 당해 과다출혈로 절명했으며, 조지 해리슨은 잦은 흡연으로 인한 후두암이 뇌종양으로 전이되어 2001년에 사망했다.

그래도 나머지 2명 폴 매카트니링고 스타는 살아 있으며, 80대에 접어들은 고령에도 아직도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당연하게도 전설 대우를 받는다. 살아 있는 두 멤버인 링고 스타폴 매카트니는 밴드 해체 50년이 다 되어가는 최근에도 자주 만나며, 가끔에는 같이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4. 역사[편집]



파일:external/static.wixstatic.com/b25b1a_6d2daa2f2564474cba6cba73074e6caf.jpg


파일:external/images4.alphacoders.com/247756.jpg

비틀즈의 전반기[27] 모습
비틀즈의 후반기[28] 모습[29]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he_Beatles_in_America.jpg


파일:external/a365bf2d673d33ee41494341de9ac5360099a1e7171dc47d8e165387677ea393.jpg

에드 설리반 쇼(Ed Sullivan Shows)에 출연하기 위해 그 이틀 전인 1964년 2월 7일 미국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상륙한 비틀즈.
역사적인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시작을 상징하는 사진이다.
1969년 8월 22일 비틀즈 멤버들이 모여 찍은 사진.
이것이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들 모두가 모여있는 마지막 모습이다.[30]




1964년 2월 9일 에드 설리반 쇼(Ed Sullivan Shows)에서의 첫 미국 라이브 공연 중[31]
1969년 1월 30일 애플 레코드 사 옥상에서 진행한 마지막 라이브 공연 중[32]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비틀즈/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디스코그래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비틀즈/음반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1. 싱글[편집]


(괄호 안은 발매년도)

순서는 차트 달성일 순.


5.1.1. 빌보드 1위[편집]


비틀즈의 빌보드 1위 싱글들을 합치면 총 20곡(더블 A 포함 시 22곡)이 나온다. 이는 역대 가수를 통틀어서 1위이다.[33] 또한 유일하게 활동기간동안 매년마다 빌보드 1위를 차지했다. 비틀즈의 컴필레이션 앨범인 1은 영국 차트 1위와 미국 차트 1위의 합집합을 한 앨범에 수록했다.

  • I Want To Hold Your Hand (1963)[34]
  • She Loves You (1963)[35]
  • Can't Buy Me Love (1964)
  • Love Me Do (1964)[36]
  • A Hard Day's Night (1964)
  • I Feel Fine (1964)
  • Eight Days a Week (1965)
  • Ticket To Ride (1965)
  • Help! (1965)
  • Yesterday (1965)
  • We Can Work It Out[37] (1965)
  • Paperback Writer (1966)
  • Penny Lane (1967)
  • All You Need Is Love (1967)
  • Hello, Goodbye (1967)
  • Hey Jude (1968)
  • Get Back (1969)
  • Something[38] / Come Together (1969)
  • Let It Be (1970)
  • The Long and Winding Road / For You Blue[39] (1970)


5.1.2. 빌보드 2위[편집]




5.1.3. 빌보드 3위~10위[편집]


  • Please Please Me (1964)
  • P.S. I Love You (1964)
  • She's A Woman (1964)
  • Day Tripper (1965)
  • Nowhere Man (1966)
  • Strawberry Fields Forever (1967)
  • Lady Madonna (1968)
  • The Ballad Of John And Yoko (1969)
  • Got To Get You Into My Life (1976)[40]
  • Free as a Bird (1995)


5.1.4. 빌보드 11위~20위[편집]


  • I Saw Her Standing There (1963)
  • Ain't She Sweet (1964)[41]
  • And I Love Her (1964)
  • Matchbox (1964)
  • Eleanor Rigby (1966)[42]
  • Revolution (1968)
  • The Beatles Movie Medley (1982)
  • Real Love (1996)


5.1.5. 해체 후 멤버별 빌보드 성적(싱글)[편집]


비틀즈는 해체 후에도 4명 모두 빌보드 Hot 100 1위를 한 번 이상 해봤다. 이렇게 활동 중에도 1위를 하고 해체 후에 멤버들 모두 1위를 한 밴드는 비틀즈가 유일하다.

Hot 100 1위만 소개한다.

  • 존 레논(2곡)
    • Whatever Gets You thru the Night (1974)
    • (Just Like) Starting Over (1980)[43]

폴 매카트니는 70년대 빌보드 총 결산에서 솔로 아티스트 중 엘튼 존 다음인 2위로 쳐준다.(엘튼 존은 15주, 폴은 13주를 랭크시켰다.)[44]

  • 조지 해리슨(3곡)
    • My Sweet Lord / Isn't It a Pity (1970)[45]
    • Give Me Love (Give Me Peace on Earth) (1973)
    • Got My Mind Set on You (1987)


해체 이전에 스무 곡을 1위에 올렸고, 해체 후에는 16곡을 1위에 올렸다.


5.2. 앨범[편집]


"비틀즈는 해마다 신곡이다."[46]

신해철


(괄호 안은 발매년도) 순서는 빌보드 앨범 차트 달성일 순.


5.2.1. 빌보드 1위[편집]




5.2.2. 빌보드 2위[편집]


  • Introducing... The Beatles (1964)[48]
  • Something New (1964)[49]
  • Yellow Submarine (1969)
  • Hey Jude (1970)
  • Rock 'n' Roll Music (1976)
  • The Beatles at the Hollywood Bowl (1977)


5.2.3. 빌보드 3위~10위[편집]


  • The Beatles' Story (1964)[50]
  • 1962-1966 (일명 레드 앨범) (1973)
  • Live at the BBC (1994)
  • Let It Be... Naked (2003)
  • Love (2006)
  • On Air – Live at the BBC Volume 2 (2013)


5.2.4. 빌보드 11위~20위[편집]


사실 비틀즈의 모든 정규 앨범들과 대부분의 라이브 앨범들이 10위 안에 들어서 11위 밖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 더구나 그냥 앨범도 아니고 박스 셋이 20위 안에 들었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


5.3. 문서가 분리된 비틀즈 노래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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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평가와 영향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비틀즈/평가와 영향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비틀매니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비틀매니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롤링 스톤스와의 라이벌리[편집]


비틀즈의 라이벌을 꼽으라면 팬들이나 평론가들이나 이구동성으로 동시대에 활약했던 롤링 스톤스를 꼽는다. 이러한 라이벌리는 1965년 경부터 시작되었으며,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이자 가장 유명한 라이벌리로 뽑힌다.[51] 실제로 롤링 스톤스는 비틀즈가 1960년대 유럽과 북미를 휩쓸고 다닐 때 대중적 인기나 비평적 성과로 대항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밴드였다.[52]

이 두 밴드가 라이벌로 꼽혔던 이유는 인기 뿐만 아니라 대조되는 이미지와 특성 탓도 있었다. 먼저 비틀즈가 신사나 모범생의 이미지로 유명했다면 롤링 스톤스는 악동이라는 대조되는 이미지로 유명했다.[53] 그리고 비틀즈가 다소 팝적인 음악을 발매하거나 스튜디오에서의 실험에 집중한 반면, 롤링 스톤스는 블루스와 로큰롤에 기반한 정통 하드 록블루스 록적인 음악을 발매하거나 라이브 투어를 중시했다.

이렇게 라이벌리가 유명하지만 밴드 멤버들끼리는 서로 음악적인 영향도 자주 주고받고 서로 교류도 자주하는 친한 사이이다.[54] 하지만 라이벌답게 서로 은근히 디스를 주고받은 적도 많은데, 몇 가지 사례로 존 레논믹 재거의 춤이 Faggot스럽다고(…) 디스를 한 적도 있고, 키스 리처즈페퍼 상사가 똥같다고 디스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2020년에도 폴 매카트니가 롤링 스톤스는 블루스 커버 밴드라는 묘한 말을 남겼고, 이에 대응해 믹 재거는 비틀즈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같은 큰 규모의 공연장에서 공연한 적이 없고 투어 비즈니스가 자리를 잡기 전에 해체를 했기 때문에 롤링 스톤스와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라는 묘한 말을 남겼다.

팬들끼리의 관계는 두 밴드의 음악을 같이 향유하는 팬들이 가장 많지만, 가끔 나이가 지긋이 든 팬들끼리는 서로 싸우기도 한다.[55]

이렇듯 이들의 라이벌리가 너무 유명하다보니까 현재에도 라이벌을 표현할때 비틀즈와 롤링 스톤스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9. 인기[편집]



인기의 절정을 구가하던 1965년의 셰어 콘서트 당시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록밴드답게 인기도 엄청나다. 사실상 록의 아이콘으로서 1960년대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가진 밴드였고 해체된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마이클 잭슨과 함께 모두가 알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지닌 밴드이다. 비틀즈는 세대와 시대, 지역[56]을 가리지 않고 큰 인기를 누려왔다. 심지어는 폐쇄적이었던 구 공산권에서도 비틀즈의 인기를 막을 수 없어, "소련이 무너진 이유는 비틀즈 때문이다"라고 할 정도로 비틀즈의 인기는 높았다.[57]

1960년대 브리티시 인베이전 당시의 열풍은 말할 것도 없고[58], 해체 이후에도 비틀즈는 가장 인기 있던 록 밴드로 자주 꼽히곤 했다. Come Together, Yesterday, Hey Jude 등은 1960년대의 음악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노래로 최고의 명곡으로 평가받는다. 2012 런던 올림픽 개회식 당시 비틀즈의 노래만 2곡[59]이 연주되었는데, 상당수의 현대 음악가들이 폐회식에서 공연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비틀즈가 가진 인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빌보드 순위권 역시 비틀즈가 가진 인기를 알려주는 지표다. 비틀즈가 발매한 앨범은 거의 빌보드 1위에 올랐고, 해체 이후 발표한 컴필레이션 앨범도 20위권에 올랐고 일부는 1위에까지 올랐다. 심지어 2009년 발매한 모노 CD 세트까지, 비틀즈가 발매한 모든 컴필레이션, 정규, 라이브 앨범들은 빌보드 20위권에 올랐는데, 이는 롤링 스톤스나 레드 제플린조차 이루지 못한 엄청난 기록이다.

음반 총판매량도 모든 분야에서 1위. 추측 판매량이 무려 약 10억 장 이상이며, 인증 판매량만 해도 6억 장이다. 이는 2위인 엘비스 프레슬리와 1억 장 가까이 차이나는 양이다. 음반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비틀즈의 음반 판매량 기록은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받는다. 록으로만 분야를 좁혀봐도, 음반 판매량 2위, 3위, 4위, 5위인 밴드들을 전부 합쳐도 비틀즈의 음반 판매량에 못 미친다는 점에서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60]

높은 인기 역시 주목할만 하다. , 레드 제플린, 롤링 스톤스, 핑크 플로이드와 함께 서구권 20대들에게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고전 록밴드이며, 굳이 고전 록밴드로만 한정하지 않더라도 요즘 20대~30대들에게 인기 있는 음악가 순위를 꼽더라도 10위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중 지역별로 보자면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이나 핑크 플로이드는 아시아 지역에서 인기가 덜하고, 은 북미 지역에서 인기가 덜하다는 점을 보면 지역과 세대를 가리지 않고 매우 높은 인기를 얻는 록밴드로는 비틀즈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한 대학교에서 미국인들을 상대로 설문한 "최고의 록밴드" 투표 결과에서도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2018년 조사 결과 비틀즈는 23%로 1위를 차지했으며 8%를 얻는데 그친 롤링 스톤스를 15%p차로 상회했다.[61] 인터넷 인기 투표에서도 비틀즈는 언제나 상위권인데, 팬층이 매우 두터운 레드 제플린이나 핑크 플로이드, 을 제외하면 비틀즈와 경합을 치루는 밴드도 없을 정도다. 그 유명한 AC/DC이글스, 라디오헤드도 비틀즈와는 비교가 안되게 적은 표를 받는다. 평론적으로든, 인기로든간에 비틀즈는 압도적인 록밴드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후대 음악가들에게서 받는 인기는 정말 이루어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블랙 사바스 같은 헤비 메탈 밴드부터, 에드 시런 같은 팝 아티스트까지 가장 좋아하는 밴드로 비틀즈를 꼽을 정도였다. 하드 록부터 소프트 록까지, 아트 팝에서 사이키델릭 록까지, 그리고 발라드부터 헤비 메탈까지 장르와 세대를 가르지 않고 음악가들로부터 비틀즈는 무한한 존경을 받고 있다.

2018년 월스트리트 저널의 통계 산출에 의해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록 밴드' 순위를 매겼는데, 비틀즈는 당연히 1위를 기록했다.[62]#


9.1. 한국에서의 인지도[편집]


록 음악이 비주류인 한국에서도 비틀즈는 모든 분야의 본좌로 평가받는 뮤지션이기에 밴드 자체는 매우 유명하다. 국내에서는 록의 입지가 굉장히 좁기에 전 세계적으로 대성공한 레드 제플린, AC/DC등의 밴드들과, 비틀즈와 동시대에 활동하여 이들의 라이벌이라고 평가받는 롤링 스톤스의 인지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3]과 함께 세대를 막론하고 가장 유명한 록밴드로 꼽힌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팝송 순위에서도 YesterdayLet It Be가 각각 1위와 4위를 차지했다.

다만 국내 대중들에게 비틀즈의 이미지는 록밴드가 아니라 올드 팝 그룹으로 받아들여지는 면이 강하다. 전술했듯이 한국인들은 누구나 비틀즈를 알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비틀즈의 곡은 소프트한 몇 곡만 알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렇기에 비틀즈가 록밴드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 편.[64] 중기~후기 비틀즈의 사이키델릭 록, 블루스 록, 하드 록 넘버들은 록덕후들을 제외하면 인지도가 극히 안습일 정도이다. 게다가 페퍼 상사화이트 앨범에 수록된 여러 곡들을 들어도 이게 록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다. 이는 국내에서 록 음악은 곧 헤비 메탈이라는 편견이 많아서이기도 하다.

그래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대 최고의 록밴드로 꼽히는 밴드답게 록덕후들은 뼛속까지 자세히 알고 있는 밴드이며, 이들 사이에서는 비틀즈 중후기의 곡들을 안 들어봤으면 간첩 취급을 받는 밴드이기도 하다.


10. 음악적 성향[편집]


여기서는 비틀즈의 음반과 작곡 성향을 중점으로 다룬다. 아래 내용의 상세한 내용은 비틀즈/평가와 영향력, 또는 비틀즈/역사 문서로 이동할 것.


10.1. 음악의 변화[편집]








초기 (1963, Love Me Do)
중기 (1966, Rain)
후기 (1968, Helter Skelter)

들어보면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의 스타일이 확연하게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비틀즈는 한국에서는 평범한, 인기 많은 로큰롤, 팝밴드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로큰롤 밴드로서의 비틀즈의 정체성[65]은 1965년까지만 국한되는 것이며 중기와 후기의 비틀즈는 사이키델릭 록, 하드 록, 아방가르드 등 과격한 노래들이 주를 이룬다. 보통 시대별로 나누어 성향이 두드러지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비틀즈는 핑크 플로이드만큼이나 음악적인 성향에서 많은 변화를 거친 록밴드였다. 다만 핑크 플로이드는 활동 기간만 30년이 넘고, 시드 바렛 체제 / 로저 워터스 체제 / 데이비드 길모어 체제로 나뉘어 음악적인 성향이 변했던 반면, 비틀즈는 데뷔부터 해체까지 겨우 8년동안에 한명의 리더도 교체되지 않았음에도 변화무쌍한 음악적 성향을 보였기에 매우 특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술한 핑크 플로이드를 비롯해 라디오헤드,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플리트우드 맥 등 극소수를 제외한다면 이렇게 다양한 변화를 거친 밴드는 찾기 어렵다.

구분
음반
장르
초기
(1962 - 1964)




로큰롤
과도기
(1965)



포크 록
중기
(1966 - 1967)



사이키델릭 록
후기
(1968 -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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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 Subma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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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bey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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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Be
모든 장르

비틀즈의 연대 구분은 흔히 위의 표와 같이 나타난다.

더 간단하게는 1966년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는데, 1966년에 일종의 인식론적인 단절이 일어났다고 보는 시각에 기초한다. 이러한 구분법의 가장 큰 근거는 이 해에 비틀즈가 무대 생활을 그만두었다는 점이다. 투어밴드로서의 생명을 포기하고 스튜디오 밴드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는 1966년을 기점으로 잡은 것. 또한 Revolver페퍼상사 이후 비틀즈의 앨범이 통일성과 자기완결성을 지니게 된 것을 근거로 삼기도 한다. 각 나라마다 중구난방으로 발매되던 음반들도 점차 동일한 규격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구분은 1973년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1962-19661967-1970이 발매되면서 공식적으로도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Love Me DoTomorrow Never Knows를 같은 시기로 묶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기 때문에 사이키델릭 록 성향이 짙게 드러나는 1966년부터 1967년까지의 시기를 중기로 새롭게 분류해 초기-중기-후기라는 시대 구분을 만들어 냈다. 실제 비틀즈의 음악을 들어보면 Revolver와 초기 비틀즈 음반의 성향은 매우 다르고[66] 마찬가지로 The Beatles의 곡들도 사이키델릭한 성향이 매우 옅어지고 블루스 록하드 록 등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져 페퍼상사 음반과 같은 시기로 묶기 어렵다. 또, 멤버들의 음악적 관계 역시 초기와 후기로만 묶기에는 중기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비틀즈는 초기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척 베리, 리틀 리처드, 버디 홀리의 영향을 받은 로큰롤팝 음악 밴드로 시작했다. Please Please Me 음반과 With the Beatles 등 비틀즈의 초기 앨범에서 팝과 로큰롤의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편이며, 이후 이런 경향은 5집 Help!까지 이어졌다.

여기까지가 한국인들이 비틀즈에게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이미지이지만, 1965년 이후로는 비틀즈의 팝, 로큰롤 성향이 거의 사라졌다. 1965년 미국의 시인이자 포크 뮤지션이었던 밥 딜런의 영향으로 마약을 접하고, 작사의 중요성을 알게되었으며, 또 밥 딜런의 포크송 성향에 감명을 받게 되었다. 조지 해리슨은 밥 딜런과 사적으로도 친한 관계가 되었고 존 레논폴 매카트니도 밥 딜런의 영향을 받아 작사에 신경을 쓰게 되었고 이후 나온 작품이 Rubber Soul이었다. 러버 소울은 전 앨범을 통일된 구성으로 채운 최초의 "명반"[67]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때문에 러버 소울 이후로 비틀즈의 중기 음악이 시작된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다만 비틀즈의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에 중점을 두는 사람들은 Revolver를 중기 음악의 시작으로 보기도 하는데, 어차피 공식화된 기준은 아니기 때문에 Rubber Soul은 보통 과도기 앨범으로 여겨진다.

러버 소울 앨범 발매 이후 마약의 영향을 받은 록 장르, 즉 사이키델릭 록이 비틀즈 내에서 적극적으로 시도됨에 따라 사이키델릭이 주를 차지하는 비틀즈의 중기 음악이 시작되었다. Revolver 음반의 발매로 비틀즈는 기존의 로큰롤 아이돌 밴드에서 벗어난 가장 실험적인 록밴드로 거듭났다. 리볼버 내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는 단 3개 뿐이었고, 현대인의 고독함,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등을 다룬 진지한 노래가 음반의 주를 이뤘다. 또 Yellow Submarine과 같은 동요나, Taxman 같은 사회 비판적인 음악, Love You To 등의 인도 음악도 수록되었다. 기존 존 레논폴 매카트니에 밀려 많은 노래를 작곡하지 못했던 조지 해리슨은 이 앨범에 처음으로 3곡을 수록하면서 밴드의 주요 작곡가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1967년 발매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은 3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비틀즈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고, 클래식부터 진보적인 록 음악가까지 거의 모든 평론가들에게서 호평을 받으며 록 음악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존 레논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의 갈등으로 사이키델릭 록이 주가 되던 성향이 무너졌고, 영화 Magical Mystery Tour의 실패로 폴 매카트니 주도 체제가 붕괴하면서 이후로는 각 멤버들이 자유분방하게 거의 모든 장르를 시도하는 가장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밴드가 되었다. 사이키델릭 록에서 탈피해 각 멤버들이 자유롭게 만든 곡을 컴필레이션 앨범마냥 꽉꽉 집어넣은 앨범인 The Beatles바로크 팝부터 하드 록까지 기존에 존재했던 거의 모든 대중음악 장르들을 수록했으며, 또 후기의 음악들에도 영향을 줬다. 헤비 메탈, 펑크 록, 프로그레시브 록, 심지어는 30년 뒤에야 주류를 차지하는 얼터너티브 록의 시초가 되는 등[68] 대중문화 역사상 전무후무한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다. 앨범 발매 직후부터 1990년대까지는 산만한 구성 때문에 혹평이 주를 이었으나, 얼터너티브 록의 부상 이후 The Beatles 앨범이 가진 혜안이 재평가를 받으면서 점점 평가가 상승했다.

그러나 이토록 자유롭고 다양했던 음악적 성향은 그만큼 비틀즈 멤버들간의 음악적 교감이 떨어지고 있었던 것을 의미했고 결국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은 각각 솔로 앨범들을 준비하면서 밴드가 와해되게 된다. 1969년 마지막 역작인 Abbey Road를 완성한 이후 비틀즈는 1970년 4월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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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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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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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후기의 악기 사용도 주목할만한데, 초기에는 베이스 기타, 어쿠스틱 기타, 드럼에 가끔 피아노를 치거나 하모니카를 부르는 수준이었지만 1966년 이후로는 현재 기준으로도 매우 혁신적인 다양한 악기를 시도하였다. Revolver 음반에서 역재생과 같은 신기술과, 갈매기 우는 소리 등 다양한 사운드를 시도한 이후, 1967년에는 트럼펫에 리코더, 시타르 등 다양한 악기를 들고와 곡을 만들었다. The Beatles 세션때에는 일부러 망가진 어쿠스틱 기타를 사용하는가하면 새소리, 구두소리까지 음악에 포함시켜 다채로운 악기 성향을 보여줬다.

곡의 구성에서도 비틀즈는 매우 혁신적인 성향을 보였다. 페퍼 상사와 The Beatles 앨범에서 한두곡 정도를 바로 이어지는 형식으로 만들었는데, 애비로드 앨범에서는 아예 여러곡을 이어붙여 하나의 음악으로 만드는 메들리 구성을 보여줬다. 이는 당대 대중문화에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고 로저 워터스 등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10.2. 시도한 음악 장르[편집]



10.2.1. 로큰롤[편집]





대부분의 비틀즈 초반기 음악이 포함된다. 버디 홀리,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등 1950년대 로큰롤 음악가들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비틀즈 초반기에는 그저 흥겨운 로큰롤[69] 만을 작곡했지만, 후반기에 가서는 점차적으로 로큰롤을 하드 록과 융합시키거나, 혹은 아예 연주 방식을 바꿔버리는 식으로 고전적인 로큰롤의 재해석을 이끌었다. 또 페퍼 상사 음반에서는 사이키델릭 록로큰롤을 하나의 음악에 담아내는 신선한 시도로 로큰롤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도 했다. 단순한 로큰롤에서만 그친게 아니라 정말 여러가지 시도로 마개조를 해버렸다. 이 때문에 후반기 비틀즈 음악들은 정통적인 로큰롤로는 분류되지 않고, 대체로 "로큰롤" 밴드로서의 비틀즈는 비틀즈 초반기에 국한된다고 보는 의견이 많다.


10.2.2. , 팝 록, 소프트 록[편집]





대표곡으로는 Here Comes the Sun, Hey Jude, Yesterday, All You Need Is Love가 있다. 한국에서 보통 "비틀즈"의 이미지는 이 장르로 국한되어있고 실제로 비틀즈의 음악에서 팝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 역시 사실이다. 단순한 공장형 팝 음악을 시도한게 아니라 파워 팝, 팝 록의 형성에서도 큰 영향을 줬고 빌리 조엘 같은 후대의 팝 록 아티스트들도 비틀즈의 영향력을 언급할정도로 이 분야에서 비틀즈는 꽤나 많은 성취를 이뤘다.

비틀즈가 시대에 구분짓지 않고 꾸준하게 추구해온 장르로 폴 매카트니의 팝록들이 여럿 알려져있지만 존 레논 역시 팝에 가까운 음악들을 많이 작곡했다. 또 조지 해리슨Something 등의 팝록들을 제작해 큰 인기를 얻었다.


10.2.3. 사이키델릭 록[편집]





사이키델릭 록의 대부분은 Revolver부터 Magical Mystery Tour에 분포되어있다. 1966년부터 1967년까지 수많은 사이키델릭 곡들이 제작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곡은 Strawberry Fields ForeverA Day in the Life가 있다.

밥 딜런과의 만남 이후 처음으로 마약을 접한 비틀즈 멤버들은 마약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곡에 담아내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의 산물이 Revolver였다. 신나는 로큰롤 음악을 베이스로 깔고 있으면서도 몽환적인 가사와 멜로디를 사용했으며, 또 역재생 등 신기술들을 이용해 신비한 분위기의 노래들을 만들어냈다. 시드 바렛 등 여러 사이키델릭 아티스트들이 이 시기 비틀즈 노래들의 영향을 받았다.

다만 1968년 이후로 사이키델릭 록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폭 줄어들고 대신 하드 록을 비롯한 여러 새로운 장르가 사이키델릭 록을 대체했다. 다만 Abbey Road까지 사이키델릭 록은 비틀즈 멤버들에게 어느정도의 영향을 미쳤고, 또 1968년 이후 작곡한 몇몇 곡들은 사이키델릭으로 분류되기도한다.


10.2.4. 하드 록, 헤비 메탈[편집]





비틀즈는 로큰롤 밴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흥겹고 비트가 빠른 하드 록적인 성향을 일찍이 보였으며, 사람에 따라서는 1965년 비틀즈의 여러 로큰롤들이 파워 팝하드 록의 모태가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다만 비틀즈가 본격적으로 하드 록을 시도한것은 1968년 The Beatles 세션 이후이다.

1965년 영국의 록밴드 더 후가 전설적인 명반인 My Generation을 발표했고, 이후 크림, 지미 헨드릭스에 의해 하드 록이 점차적으로 록 음악계의 주류 음악으로 떠오르고 있던 시점에서 키스 문, 에릭 클랩튼 등 여러 하드 록 아티스트들과 친분을 맺고 있던 비틀즈 멤버들도 시대의 흐름을 타고 하드 록 대열에 편승하였다. 단순히 하드 록을 연주하는 것을 넘어 헤비 메탈 등의 새로운 장르로 하드 록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하드 록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음악가이다. 특히 화이트 앨범에 수록된 Helter Skelter아이언 버터플라이In-A-Gadda-Da-Vida, 레드 제플린Good Times Bad Times-Communication Breakdown과 함께 세계 최초의 헤비 메탈 음악으로 꼽히며 후대의 블랙 사바스 등 여러 메탈 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처음에는 She Loves You에서 보여준 파워 팝으로 시작했지만, Good Morning Good Morning 등의 곡을 거치면서 점점 하드 록의 성향을 보이더니 Revolution, Helter Skelter, Oh! Darling 같은 곡에서는 본격적으로 뛰어난 하드 록의 정수를 보였다.

비틀즈가 록 밴드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인들에게 비틀즈가 록밴드였다는 점을 알려주기에 좋은 곡들이 많다.


10.2.5. 바로크 팝[편집]





기본적으로 비치 보이스Pet Sounds의 영향을 받았다. 폴 매카트니Pet Sounds가 없었다면 페퍼 상사 앨범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페퍼 상사 앨범에는 She's Leaving Home클래식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은듯한 바로크 팝 곡들이 여럿 수록되었다.

Pet Sounds에서 보여준 바로크 팝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색다른 바로크 팝의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서 바로크 팝이 대중 음악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의 융합으로 기성 세대들의 록 음악, 대중음악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낮추는데에도 기여하였다.

다만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 이후로 특별히 바로크 팝의 가능성을 보여주지는 않았고 Piggies 같은 일부 곡을 제외한다면 비틀즈에게 바로크 팝이 주류 장르가 되지는 못했다.


10.2.6. 블루스, 블루스 록[편집]





에릭 클랩튼을 비롯한 여러 블루스 음악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블루스 록 장르는 1968년 이후 하드 록과 함께 비틀즈의 음악 세계에서 두드러지게 비중이 늘어난 장르였는데, The Beatles 앨범에 수록된 대다수의 곡들이 블루스의 형태를 띄고 있다. Yer Blues 등 정통 블루스에 가까운 음악 역시 여럿 존재한다. 한편으로 비틀즈는 블루스 록헤비 메탈하드 록으로 넘어가는데에 큰 영향을 미친 밴드이기도 한데, I Want You (She's So Heavy)블루스헤비 메탈프로그레시브 록의 색채를 집어넣은 것이다.


10.2.7. 포크 록[편집]





1965년 밥 딜런의 영향으로 포크 록Rubber Soul 앨범에서 시도한 바 있다. 이 시기 In My Life를 비롯한 여러 곡들이 작곡되었다. 비록 Revolver의 영향으로 비틀즈 내에서 포크송의 영향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여러 악기들을 포크송에 도입하면서 포크 록의 형성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하나의 통일된 음반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Rubber Soul 앨범의 가치 때문에 포크 록 역시 비틀즈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장르이다.

밥 딜런 역시 비틀즈의 영향을 받아 포크송과 록 음악의 융합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그런만큼 비틀즈가 포크록 역사에 기여한 부분 역시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10.2.8. 아방가르드[편집]





사이키델릭 록 성향이 강했던 시절에서부터 곡의 가사를 알 수 없게 꼬아놓는 식으로 아방가르드한 모습을 보였다가,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존 케이지의 영향을 받아 1968년에는 본격적인 정통 아방가르드 음악을 선보이기도했다. 오노 요코의 영향 역시 컸던 것으로 보인다. Revolution 9Wild Honey Pie가 대표적인 전위 음악이다. Abbey Road 세션 당시에는 아방가르드의 영향력이 약간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아방가르드 음악과 록 음악의 융합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10.2.9. 동요[편집]





동요 역사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아티스트다이쯤 되면 뭐 안다룬 장르가 있는지도 의문. All Together Now, Yellow Submarine, Octopus's Garden 등 동요 스타일의 곡을 여럿 제작했고 중독적인 멜로디에 부르기 쉬운 가사로 만들어, 동요가 대중음악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크게 공헌한 아티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여러 음악가들에 의해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기 좋은 대중음악"으로 비틀즈가 굉장히 많이 꼽힌다. 데이브 그롤은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기 좋은 음반" 3장중 하나로 비틀즈의 페퍼 상사 음반을 꼽았다.#


10.2.10. 기타 장르[편집]





라가 록 역시 처음 시도했는데 여기엔 조지 해리슨의 영향이 컸다. 시타르를 처음으로 서양 대중음악에 도입해서 대중음악 악기의 범위를 크게 넓혔다. 대체로 몽환적인 분위기이며 이 때문에 사이키델릭 록과 인도 음악을 융합하는 독특한 시도 역시 Magical Mystery Tour 세션 당시 이뤄졌다.
  • 펑크 록도 시도했는데, 더 후의 영향을 받아 단순한 코드와 과격한 음악을 만들어 펑크에 가까운 음악들을 만들어냈다. 특히 The Beatles 앨범에서 비틀즈가 시도한 펑크 록들을 여럿 감상할 수 있다.
  • 프로그레시브 록도 시도했다. 핑크 플로이드에 매우 큰 영향력을 줬다.
  • 얼터너티브 록을 시도해본적은 없지만[70] 너바나 등 얼터너티브 록 밴드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자장가 역시 비틀즈가 시도한 장르였다.


10.3. 레논-매카트니[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레논-매카트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저작권 논란[편집]


많은 노래가 저작권 문제랑 직접 맞물리기 때문에[71] 2010년 말까지 전세계적으로 합법적인 온라인 다운로드가 매우 어려웠다.[72] 곡들의 저작권은 비틀즈 멤버 4명뿐만 아니라 곳곳의 기업, 개인이 나누어 갖고 있다. 마이클 잭슨도 비틀즈 곡 저작권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오노 요코폴 매카트니는 이 저작권을 되찾기 위해 손잡고 법정투쟁까지 벌였으나 결국 판결은 마이클 잭슨의 손을 들어줬다. 이 일 때문에 폴과 마이클의 관계가 나빠지기도 했다고.

사실 마이클 잭슨도 저작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볼 여지가 있었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이클 잭슨은 비틀즈 곡 그 자체의 저작권은 가지고 있었지만, 곡의 음원의 저작권은 차마 구매할 엄두를 못 냈던것(...). 곡과 음원의 저작권자가 다른 사례는 대중음악 역사상 전무후무할 것이다. 참고로 현재 비틀즈 음악들의 음원은 대부분 애비 로드 스튜디오가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비틀즈 음악을 사용하려면 복잡한 방식으로 처리를 해야한다. 더군다나 마이클 잭슨이 가지고 있던 비틀즈 곡의 저작권은 결국 마이클 잭슨이 나중에 모두 팔아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2016년 2월 22일 유니버설 뮤직에 따르면 29일부터 한국 음원사이트에서 비틀즈의 음반을 스트리밍하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다고 한다.

칼 세이건보이저에 관련해서 밝힌 일화에서 보이저 호에 실으려고[73] 조지 해리슨의 곡인 'Here Comes the Sun'의 저작권을 사러 멤버 4명에게 문의했더니 4명 모두에게 저작권이 없었다고. 물론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법률적 문제를 해결하려니 골치가 아파져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지구를 대표하는 곡이 될 수도 있었음에도 결국 저작권 때문에 못 넣은 것인지라 팬들의 아쉬움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대신 NASA는 2008년 북극성으로 존 레논의 곡인 Across the Universe를 쏘아올렸다.

이 저작권료는 현재 엄청나게 비싸진 상태로, 대한민국 최초로 광고 음악에 비틀즈 음악 'I Will'을 사서 쓴 결과 4개월에 4만 달러를 지불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건 특별히 싸게 준 거라고 한다.[74]

비틀즈의 첫 싱글 Love Me Do는 사정상 링고 스타가 아닌 앤디 화이트라는 사람의 드럼이 들어갔는데, 이 사람이 저작권료를 받지 못하다가 2천년대에 들어서 한꺼번에 몰아서 받았는데, 그 사람이 평생동안 번 돈보다 노래 하나 참여해서 나온 저작권료가 더 많았다고 한다.

이런 막대한 저작권료 때문에 위에서 설명한 두 영화에서도 모두 커버 곡을 사용했다. 커버 곡이 훨씬 싸서 원곡을 넣으면 제작비가 몇 배로 늘어난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비틀즈의 트리뷰트 밴드인 'The Mentles'의 커버 곡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12. 기타[편집]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공식적으로 Beatles[bi:tlz]를 비틀스라고 표기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s[z]는 '스'로 적는다.'라는 규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75] 존 레논도 "존 레넌"이라고 적는다. 그러나 팬들 사이에서는 비틀"즈"와 존 레"논"이 압도적으로 더 많이 쓰인다.

특유의 바가지 머리가 비틀즈 초창기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데, 바가지 머리를 영어로 하면 Mop(대걸레) Top였기에 헤어스타일로 인해 종종 개그소재가 되곤 했다.

존 : (대걸래를 흔들며) 폴, 너 어떻게 된거야? 뼈만 남아버렸잖아!

폴 : 그건 대걸레야. 나 여기 있다구!



파일:external/www.hollywoodreporter.com/Beatles_Royal_Honor_Queen.jpg


본의 아니게 영국 재정에 보탬이 되었다. 당시 영국이 고세율 정책을 취해 수익의 96~97%를 세금으로 냈다고. 이 점을 리볼버 1번 곡인 'Taxman'에서 깠다. 이 덕분에 영국 왕실로부터 훈장을 받기까지 했는데, 당사자나 보는 사람들이나 여간 고깝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받은 이유가 외화를 많이 벌어서였다. 즉 문화 활동(음악) 때문에 준 게 아니란 얘기. 게다가 영국의 높으신 분들은 "망나니같은 대중 음악 가수에게 훈장이 웬 말이냐"라며 반발했다고. 존 레논은 반전 운동 등 사회 활동을 하던 중 이 때 받았던 훈장을 반납했다. 전쟁이나 지원하는 왕실이 준 거라서 싫다고 했다. 물론 비틀즈 해체 후에도 음악 활동을 계속했으니 그런 것이겠지만, 그 3~4%인 수익이 지금 가치로 수천억에 달한다.

의학계에도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CT를 만든 사람(Godgrey Hounsfield, 후에 노벨상을 탄다.)이 비틀즈의 레코딩 회사인 EMI 소속이었다. EMI는 Electric and Music Industries의 약자로, 전자제품 및 음악관련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EMI가 돈이 넘쳐나서 CT 만드는데에 투자를 했다고 한다. CT는 1960년 경에 연구를 시작하여 1970년대 초에 시제품이 나왔으니 비틀즈가 활동한 시기와 일치한다.

시그내처라기보단 대부분 릭켄베커 혹은 에피폰 기타베이스를 애용하였는데 투어 시기에는 존 레논은 릭켄베커의 325모델을, 폴 매카트니는 호프너의 바이올린 베이스를 조지 해리슨은 그래치의 듀오 모델을 링고 스타는 블루 옥토퍼스 색상의 루딕 드럼세트를 메인으로 사용했다.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은 1964년 미국 방문 시 릭켄베커사로 부터 선물받은 기타를 사용하기도 했다. 폴 매카트니가 공연 때 바이올린 베이스를 애용한 것은 여타 베이스들 보다 무게가 가벼워서 휴대가 간편하고 왼손잡이인 자신에게 좌우대칭인 바디모양이 연주하기에 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러버 소울 레코딩 시점 부터 존 레논은 에피폰의 카지노 모델을 폴 매카트니는 릭켄베커의 베이스 4001S를 메인으로 사용하였다. 메탈리카의 클리프 버튼이 애용한 것도 같은 모델. 그러나 렛잇비/애비로드 시점의 후반기에는 폴은 호프너 바이올린 베이스로 돌아가고, 현재도 호프너 베이스를 가지고 투어한다.

워낙 유명한 존재이다 보니 비틀즈와 관련된 음모론 및 황당한 루머들도 많다. 대표적인게 "존 레논 살해 배후설"과 "폴 매카트니 사망설"이다. 전자의 경우 극우파 세력이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한때 좌파성향이었던 존 레논 살해를 조종했다는 건데, 명확한 증거가 있는 얘기가 아니라 단지 몇몇 호사가들의 상상에 불과하다. 후자의 경우 비틀즈 곡들 사이사이에 흩어진 실마리를 모아 짜맞추면 "폴 매카트니는 1966년 말에 이미 죽었고, 지금 그의 자리는 폴 매카트니 닮은 꼴 찾기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거두었던 윌리엄 캠벨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란 말인데, 당연히 뻥이다. 음모론자들은 몇몇 증거도 들이밀지만 어거지성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외에 알레이스터 크로울리와 연관이 있다는 둥 요상한 밑밥이 많다.

비틀즈 멤버들 주연으로 반지의 제왕이 영화화될 뻔했었다. 반지의 제왕을 인상깊게 읽은 존 레논의 제안으로 1969년에 계획된 프로젝트였다. 존은 골룸, 폴은 프로도, 조지는 간달프, 링고는 역할로 나올 예정이었고 감독은 스탠리 큐브릭으로 정해졌으나, 원작자인 J. R. R. 톨킨이 자기 작품을 영화화하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계획단계에서 무산됐다. 또한 큐브릭 감독도 반지의 제왕을 읽은 뒤 영화화하는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고,[76] 비틀즈와 만남을 가져 그들에게 영화화가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하여 멤버들 역시 이 프로젝트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해당 프로젝트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로 (회원가입 필요)

존 레논을 제외한 나머지 비틀즈 멤버들은 심슨 가족에서 각자 본인 역할로 목소리 출연을 한 적이 있다.# 존 레논은 심슨 가족이 나오기 전에 사망했기에 안타깝게도 그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다. 만약 그가 생존해있었다면 심슨에서 존 레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존과 폴이 비틀즈 시절때 무심코 머릿속에 떠오르다가 녹음하기도 전에 까먹어서 노래로 만들지 못한 멜로디만 수십개가 된다고 한다.

비틀즈의 트리뷰트 밴드 중 하나가 내한 공연을 한적도 있다.

레고에서 비틀즈 가수들의 얼굴을 담은 레고 아트 비틀즈 31198를 출시했다. 무려 2,933조각이다.

영화 아이 엠 샘과 'Across the Universe'는 비틀즈 곡으로 OST 전곡을 채운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Across the Universe'는 작중 등장하는 인물 이름까지 전부 비틀즈 음악 관련으로 해놓아서 비틀즈 들을 설레게 했다.

뮤지션들에게 워낙 영향력이 큰 밴드이다 보니 어느 시대의 뮤지션들간에 비틀즈 팬들이 엄청나게 많다. 오아시스같은 경우는 단지 팬 수준을 넘어서 빠돌이 느낌이 날 정도다. 아이러니한 것은 조지 해리슨이 오아시스를 30년 지나면 잊힐 밴드라고 혹평하자 리암 갤러거도 지지 않고 조지 해리슨을 깠다.

1967년 페퍼상사 세션 당시 한 무명 사이키델릭 밴드와 EMI 스튜디오에서 잠깐 만나서 대화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밴드가 다름 아닌 핑크 플로이드. 그런데 비틀즈 멤버들은 데뷔조차 하지 않았던 당시의 핑플에 별로 큰 호기심을 가지지 못해서 그렇게 긴 시간동안 만나지는 않았다고 한다. 비슷한 사례로 1969년 1월 비틀즈 멤버들이 스튜디오 내에서 데뷔도 안했던 한 하드 록 밴드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다만 이건 조지 해리슨의 절친인 에릭 클랩튼과 레드 제플린의 리더였던 지미 페이지야드버즈 소속으로 서로 아는 사이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74~1982년까지 일본에서도 비틀즈 아류 밴드 '즈틀비(ずうとるび)'가 활동했는데, 쇼텐 방석 나르미 야마다 타카오가 데뷔해 1977년까지 활동했다. 애니 <마루코는 아홉살>에도 언급되었다.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굴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AL 288-1에게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 따온 '루시'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77] 1993년에는 새롭게 발견된 삼엽충 종들에게 비틀즈의 멤버들의 이름을 딴 학명이 지어졌다.

현재 비틀즈 멤버 4명의 이름을 딴 소행성이 소행성대의 궤도를 돌고 있다. 2008년 2월 4일에는 NASA가 "Across the Universe"를 전파 형태로 바꾸어 우주로 쏘아올리기도 했다.

2009년 3월, 리버풀 호프 대학 석사과정에 '비틀즈 학과'가 개설됐다. 또한 리버풀 알버트 독에는 The Beatles Story라는 비틀즈 박물관이 있다.

몬티 파이선의 에릭 아이들과 닐 인스가 The Rutles라는 이름으로 비틀즈를 패러디한 개그 소재를 사용 한 적이 있는데 이것을 계기로 실제로 러틀즈라는 밴드를 만들게 되었고 앨범도 여러장 발매했다. 특히 조지 해리슨이 좋아해서 러틀즈의 Roof Top Concert 촬영에 BBC 기자 역할로 까메오 출연했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동인게임인 디아볼로의 대모험에 등장하는 스탠드 중 착용시 비틀즈의 음악이 나오는 스탠드는 화이트 앨범, 데스 13, 옐로 템퍼런스, 허밋 퍼플의 4개이다. 참고로 이 스탠드들은 메이드 인 헤븐을 합성하는 데 필요하다. 자세한 건 메이드 인 헤븐 문서로.

명탐정 코난 극장판 '칠흑의 추적자'에서도 후반부에 중요한 밑밥의 단서가 되었다. 앨범 커버까지도 저작권료가 비쌌는지 비틀즈 앨범 커버의 등장인물들을 몽땅 소년 탐정단 멤버로 바꿔치기했다. 이 사진은 아가사 히로시 문서에서 볼 수 있다.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에서 신문 기사로 짤막하게 언급되는데 이름은 모두 독일식으로 바뀌어있다. 밴드 이름도 '디 케퍼'(Die Käfer, 독일어로 딱정벌레라는 뜻)로 바뀌어있다. 나치가 공연을 허가해주려고 하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이름을 개명했다고. 작중에서 Mond Mond ja ja와 Change over day가 디 케퍼의 인기 곡으로 등장하는데, 그중 Mond Mond ja ja는 A Hard Day's Night와 비슷한 느낌이 나게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78] 다만 수집 요소에 따르면 앨범에 이스터 에그 형식으로 저항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들어가있다는 소문이 있다고 한다.

나치 독일이 2차대전에서 승리한 대체 역사 소설 당신들의 조국에서는 "흑인 풍의 해로운 울부짖음"이라며 주류 언론들의 비난을 받는다.

파일:hWPujBG.jpg
호주 멜버른에서 나치식 경례를 한 적이 있다.

방일 공연을 했을 때 당시 국민애니였던 오소마츠 군의 캐릭터 이야미의 셰에에~ 포즈를 했다고 한다.



비틀즈를 소재로 한 더 비틀즈: 락 밴드(The Beatles: Rock Band)라는 게임이 2008년에 발매되었다. 하모닉스가 제작하고 MTV가 배급을 맡았다. 비틀즈의 곡을 연주할 수 있는 리듬 게임이다. 적절한 비틀즈 곡 선곡[79]과 전기 영화 같은 현실적인 풍경에서 몽환적인 스타일로 넘어가는 인트로가 인상적이다. 비틀즈가 추구한 음악세계의 변화를 따라가는 듯 하다.

BBC 드라마 닥터 후의 11대 닥터는 이들 중 하나가 되고 싶어 했다. 비틀즈에 들어가야 되니까 죽을 수 없다나?

2013년 5월 23일, 링고 스타Ringo 2012 앨범 문서화를 끝으로 비틀즈 모든 멤버들의 솔로 정규 앨범이 문서화되었다. 그에 따라 모든 멤버의 음반 목록 문서가 분리되었다.

프로필을 보면 알겠지만 비틀즈 멤버 전원의 혈액형이 RH-이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중에 비틀즈의 노래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애니메이션이 있다. 이름은 비트 벅스.

존 레논의 집에 모인 비틀즈 멤버들이 할일이 없자 다같이 집단자위(!)를 한적이 있다고 한다. 자위하면서 영감을 주는 사람을 서로 외치는데 존 레논이 윈스턴 처칠이라고 외쳤다고한다.#

침착해! 스쿠비 두에서는 비틀즈의 폰트로 이루어진 팀 비들스의 보석상이라는 가게가 시즌 1 9화에서 등장했으며, 25화에서는 섀기스쿠비가 역관광을 시전하는데, 해체 과정이 섀기가 존 레논 포지션, 스쿠비가 음반 회사 사장, 오노 요코 포지션을 맡아 제대로 역괸광을 시전한다.



4인조 팝밴드 비틀즈의 모습.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얼마나 품위있게 생겼는가?
하지만 그들이 비틀즈를 결성했을때는 반바지 수영복을 입고 변기를 목에 건 채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가 그들은 친절한 천사인 런던의 사업가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만났다.
그는 이 재능있는 젊은이들이 그에게 돈이 될 것임을 알았다.
정신병에 걸린듯한 팬들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히스테리, 비명... 사람들은 완전히 사로잡혀있고, 반달리즘폭동은 공연의 말미를 흔히 장식한다.
긴 머리를 한 4명의 사진으로 벽의 4면을 도배하기도 한다.
그래, 춤춰라, 계속 춤춰라! 사회 문제는 다 잊어버리고! 팬들은 세상에서 뭐가 일어나는지 관심조차 없다.
더 빠르고 더 시끄럽게!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도 마라!

1966년 소련의 선전 영화 中

소련에서도 아주 인기있었던 밴드인지라 소련 정부에서 비틀즈를 비난하는 프로파간다 영화를 만들 정도였다. 내용은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음악으로 돈 버는 장사꾼 취급하고 비틀즈 팬들을 사회 문제에 전혀 관심 없는 정치적 무관심의 극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80]. 그러거나 말거나 소련 팬들이 너무나도 열광적으로 비틀즈를 사랑한 덕분에 자유주의, 히피 물결이 소련에 많이 유입되었다는게 아이러니다.


파일:롤링 스톤 로고.svg
롤링 스톤 선정 비틀즈 10대 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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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2위
3위
4위
5위
Revolver
Abbey Road
The Beatles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Rubber Soul
6위
7위
8위
9위
10위
Magical Mystery Tour
Help!
Let It Be
A Hard Day's Night
With The Beatles
※ 2011년 롤링 스톤지가 독자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를 토대로 'Top 10 Beatles Albums'를 선정.




롤링 스톤에서 비틀즈 최고의 명곡과 10대 명반을 선정한 적이 있었다. 비틀즈 입문자라면 참고하면 좋을듯 하다. 10대 명반은 독자 투표로 치뤄졌는데 1위는 당연히 Revolver. 다만 Abbey Road와는 경합이었다고. 최고의 명곡은 A Day in the Life가 차지했다. 그런데 명곡 리스트는 롤링 스톤의 취향대로 브리티시 인베이전 초기의 로큰롤 음악들이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한계라고 할만하다. 나무위키에 개별 문서도 만들어지지 않은 You're Going to Lose That Girl같은 노래가 Penny Lane, I Am the Walrus, Helter Skelter 등 비틀즈 중후반기를 대표하는 명곡들보다도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레딧 r/indieheads 이용자 투표
Our top ten Beatles songs
순위
곡명
작사/작곡
표수
1위
A Day in the Life
존 레논, 폴 매카트니[A][B]
1,167표
2위
Strawberry Fields Forever
존 레논[A]
609표
3위
Tomorrow Never Knows
존 레논[A]
499표
4위
Happiness Is a Warm Gun
존 레논[A]
496표
5위
In My Life
존 레논[A]
437표
6위
Something
조지 해리슨
431표
7위
Eleanor Rigby
폴 매카트니[A]
369표
8위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조지 해리슨
341표
9위
Across the Universe
존 레논[A]
289표
10위
I Want You (She's So Heavy)
존 레논[A]
286표
출처

레딧의 r/indieheads에서 사용자들이 뽑은 "최고의 비틀즈 곡" 순위에서는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비틀즈 초기의 음악은 In My Life 단 한곡밖에 순위에 못올렸고, 중후반기의 음악들이 9곡을 차지했다. 또 롤링 스톤에서는 18위에 그쳤던 Tomorrow Never Knows가 이 투표에서는 3위로 올랐다는 점 역시 주목할만하다. 1위와 2위는 롤링 스톤과 비슷한 결과가 나왔는데, 그중에서도 A Day in the Life는 2위와 2배에 가까운 차이로 1위를 차지했다. 비틀즈 팬들과 평론가들에게서 암묵적으로 A Day in the Life가 최고의 비틀즈 곡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조지 해리슨폴 매카트니보다도 더 많은 곡을 10위권에 올렸다는 것 역시 놀라운 점이다.

TheTopTens 투표
Best Beatles Songs
순위
곡명
작사/작곡
득표율
1위
Hey Jude
폴 매카트니[A]
10%
2위
A Day in the Life
존 레논, 폴 매카트니[A][B]
9%
3위
Let It Be
폴 매카트니[A]
7%
4위
Here Comes the Sun
조지 해리슨
6%
5위
Yesterday
폴 매카트니[A]
6%
6위
Strawberry Fields Forever
존 레논[A]
5%
7위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조지 해리슨
4%
8위
In My Life
존 레논[A]
4%
9위
Eleanor Rigby
폴 매카트니[A]
4%
10위
Something
조지 해리슨
3%
출처

TheTopTens라는 인터넷 투표 사이트에서 진행한 투표도 있는데, 이것은 비틀즈 팬들 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청취자들도 투표한 것이기 때문에 레딧의 팬층 중심 투표 결과와는 또다른 결과가 나왔다. 대체로 일반인들에게도 유명한 곡들이 많은 표를 얻었으며, 팬층들에게 잘 알려진 매니악한 노래들은 순위가 다소 떨어졌다.[81] 그럼에도 불구하고 A Day in the Life는 근소한 표차로 2위를 차지했다. 또 특기할만한 점은 바로 조지 해리슨인데, 조지 해리슨은 10개 곡중 무려 3개의 곡을 랭크시켰다.

한국에서는 Let It Be가 대체로 가장 인기가 많고, 그 다음을 Yesterday, Hey Jude, All You Need Is Love 등이 잇는다. 한국에서는 폴 매카트니의 팝송이 인기가 많은 대신 비틀즈 중후반기 대부분을 차지하는 록 음악들은 인지도가 매우 낮다.

남성 보이밴드라는 점과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서 방탄소년단과 비교되기도 한다. 다만 BTS와 비틀즈는 음악적 성향[82]은 물론 상업적인 성공, 음악적 업적 등에서 비틀즈가 워낙 넘사벽이라 진지하게 비틀즈와 BTS를 비교하는 사람은 일부 극성 아미를 제외하면 없다. 비틀즈가 "성공한 대중음악 밴드"의 지표가 되면서 발생한 일일 뿐이다. 후일 더 스미스와 오아시스 역시 비틀즈와 비교를 당했다는 점을 본다면 BTS가 특출나게 성공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83]

2021년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의하면 레논-매카트니 듀오의 음악 저작권 가치는 5억 달러로, 전체 뮤지션 중에서 1위로 조사되었다.


12.1. 비틀즈 관계자들[편집]


※ 위에서 조금밖에 언급되지 않은 서트클리프와 베스트, 매니저 엡스타인, 그리고 기타 인물들에 대해선 요약해서 여기에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 스튜어트 서트클리프 - 비틀즈의 전 베이시스트.
  • 아스트리드 키르헤 - 스튜어트의 애인이자, 비틀즈의 초기 모습을 찍었던 사진가.
  • 피트 베스트 - 비틀즈의 전 드러머.
  • 브라이언 엡스타인 - 1967년까지 비틀즈의 매니저.
  • 오노 요코 - 존 레논의 부인. 일본계 전위예술가. 비틀즈 말기 녹음까지 관연하고 존 레논과 함께 음반까지 발표. 존 레논이 밴드 활동보다는 좌파운동 등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데 영향을 미쳤고, 여기에 인종차별적인 편견이 덧붙여져 비틀즈 해체의 원흉으로 일컬어기도 하였다. 물론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겠지만, 그녀가 비틀즈 해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 패티 보이드 - 모델. 조지 해리슨의 전 부인. 에릭 클랩튼까지 포함된 3각관계가 유명.
  • 린다 매카트니 - 폴 매카트니의 아내로 비틀즈 해체 이후 매카트니와 함께 윙스의 멤버로 활동하였다.
  • 조지 마틴 - 프로듀서. Let It Be를 제외한 모든 비틀즈 음반을 프로듀스했다.
  • 필 스펙터 - 프로듀서. 'Let It Be' 음반에서 오케스트라 위주의 사운드를 만들었지만 폴 매카트니와 마찰이 심했다. 2000년대 들어서 폴 매카트니는 필 스펙터가 덧입힌 사운드를 모두 제거한 'Let It Be...Naked'라는 음반을 발매하였다.
  • 빌리 프레스턴 - Get Back 세션에 키보디스트로 참여했던 흑인 키보디스트. 원래 비틀즈 곡들의 키보드 연주 녹음은 주로 폴 매카트니가 맡았었지만, Get Back 세션에선 라이브 연주를 원했기 때문에 베이스기타를 연주해야 하는 폴 매카트니 대신 키보드를 연주할 세션맨이 필요해서 선택된 뮤지션이었다. 프레스턴의 키보드 연주에 만족한 비틀즈는 그를 세션맨 이상가는 대접을 해주어 싱글 Get back에서는 비틀즈와 함께 공동 뮤지션으로도 이름을 올려주었다. 이 뮤지션의 솔로 대표곡으로는 'Outa-Space', ‘Nothing from nothing’ 등이 있다. 훗날 링고 스타의 백밴드인 올스타밴드의 일원으로 링고 스타의 순회 공연에 자주 참여하기도 했다.
  • 알란 파슨스 - 페퍼 상사 앨범의 사운드 엔지니어였다. 앨범에 표기는 안돼있지만 'White Album'과 'Abbey Road' 음반에도 참여하였다. 이런 중요한 명반들의 작업에서 얻는 노하우와 실력을 바탕으로 핑크 플로이드The Dark Side of the Moon에서 혁신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었고,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라는 독자적인 프로젝트 음악 활동도 하였다.
  • 에릭 클랩튼 - 조지 해리슨과 친구였다. 조지 해리슨이 작곡한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 기타를 치기도 하였으며 Here Comes the Sun의 작곡의 동기부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패티 보이드라는 여자를 두고 개막장 사랑싸움을 벌인 적이 있다.
  • 롤링 스톤즈 - 비틀즈와 함께 60년대 락음악계의 쌍두마차. 언론에 의해 라이벌 관계가 부각됐었고 실제로도 서로 라이벌 의식도 어느 정도는 있었던 걸로 알려졌으나, 사적으론 꽤 친한 사이였다. 롤링스톤즈의 첫 히트곡I Wanna Be Your Man은 레논-매카트니가 써 준 곡이고, 그 후로도 서로의 레코딩에 게스트로 우정 참여하기도 했었다.
  • 밥 딜런 - 밥 딜런과 비틀즈는 서로 창조적인 영향을 주고 받은 사이였다. 원래는 어쿠스틱 포크 뮤지션이었던 밥 딜런은 비틀즈의 로큰롤 음악이 가진 활력에 매료되어 기존의 포크에 락을 접목시킨 포크락으로 음악 인생을 전환하게 된다. 비틀즈도 밥 딜런에 자극을 받아 자의식이 강하고 보다 깊이 있는 가사를 쓰기 시작한다. 마리화나도 밥 딜런이 선물로 준걸 계기로 접하게 된다.
  • 브라이언 윌슨 - 비치 보이스 역시 비틀즈와 서로 창조적인 영향을 주고 받은 관계다. 특히 폴 매카트니와 브라이언 윌슨이 그러한 관계였다. 초창기엔 서프음악 전문이었던 비치 보이스는 비틀즈의 러버소울 앨범을 듣고 그 완성도와 예술성에 감명과 자극을 받아 자신들도 단순한 서프음악을 넘어선 그러한 명작을 만들어 보겠다고 작정하고 만든게 바로 명반 Pet Sounds 앨범이다. 이 앨범은 다시 비틀즈에 영향을 줘서, 폴 매카트니가 주도한 앨범인 Sgt. Pepper앨범의 사운드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비치 보이스의 불운의 명작 SMiLE에 관한 사연도 비틀즈와 얽힌 것이 많다.
  • 마하리시 - 비틀즈가 인도 여행을 하면서 만난 인물. 비틀즈는 명상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고 싶어 했지만, 마하리시는 이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The Beatles 앨범의 Sexy Sadie는 마하라시를 까는 곡이다. 마하라시는 UV의 뮤직비디오에 나왔던 요기 다니엘의 스승이기도 했다.
  • 클라우스 부어만 - 함부르크 시절 만난 동료 뮤지션. Revolver 앨범 표지 드로잉이 이 사람의 그림이다. 비틀즈 해체 이후 존, 조지, 링고의 솔로 작업에도 참여했다.
  • 빌 해리 - 존 레논의 예술학교 친구로 'Mersey Beat'란 음악 잡지를 만들었다. 비틀즈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만든 잡지였고, 이걸 읽은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연결되어 비틀즈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비틀즈의 탄생과 해체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지켜본 증언자로서 비틀즈 관련 다큐멘터리나 영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살아있는 비틀즈 사전이다. 학교서 남들과 전혀 다른 차림새와 행동거지로 다니던 존 레논이 마음에 들어 친해졌다고 한다.


12.2. 대한민국에서의 비틀즈[편집]


보통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비틀즈의 곡은 'Let It Be', 'Yesterday', 'Hey Jude', 좀 더 덧붙이자면 'Ob-La-Di, Ob-La-Da', 'I Will', 'All You Need Is Love'[84] 정도라서 예전에 KBS '신발장'에 비틀즈 신동(하영웅군)이 나왔을 때 비틀즈 곡이 200곡이 된다고 하자 "그렇게 많아?"라고 하는 패널도 있었다. 냉정히 말해 대한민국 일반 대중들이 인식하는 비틀즈는 '옛날에 유명했던, 달달한 선율의 러브송을 부르는 서양 팝송 밴드' 딱 여기까지다. 비틀즈가 록 음악을 한다는 사실에도 어색해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85]

한국 케이블 방송사에서 HBO '밴드 오브 브라더스'라는 제목으로 이들을 재현한다는 주제의 방송을 한 적이 있는데, 'Hey Jude'를 부르면서 'Hey Jude ~ 나나나나 ~ 나나나나 나나나나나 ~' 등의 가사만 읊는다든지, 멤버 이름으로 매카트니를 댄다든지, 초기 프로필만을 참고해 '폴 매카트니는 구운 돼지고기를 좋아했다고 한다'는 내용을 방송했다든지(폴 매카트니는 현재 채식주의자이다.), 전혀 사전 조사를 하지 않은 듯한 내용만을 내보내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한 마디로, 비틀즈라는 이름과 대표적인 히트곡 몇 곡 정도는 유명하지만 정작 비틀즈 음악의 핵심인 정규앨범들을 알고 찾아 들을 정도의 진짜 팬은 별로 없는 실정이다. 근데 이건 비틀즈 뿐 아니라 다른 60년대 뮤지션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한국에서 서양 록/팝 음악이 본격적으로 들어와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게 70년대부터였기 때문에 그 전인 60년대의 밴드들은 한국의 음악팬들에게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왔다.

애초에부터 한국이 록의 불모지라고 불릴정도로 록의 인기가 없는 나라다. 한국 내에서 록 밴드/록 뮤지션은 영화로 유명해진 , 50년대 대중 문화의 상징인 엘비스 프레슬리 정도만이 인지도 있는 편이고, U2, 레드 제플린, 엘튼 존, 척 베리, 블랙 사바스, 핑크 플로이드, AC/DC, 너바나, 지미 헨드릭스, 섹스 피스톨즈, 롤링 스톤스,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등 전설적인 록 아티스트들의 인지도는 밑바닥을 치는게 한국 음악계의 현실이다. 그나마도 비틀즈는 록밴드가 아니라 팝 밴드로 사실상 인지도가 더 높고, Helter Skelter 같은 노래를 듣기 전까지는 비틀즈가 락 밴드라는 사실도 어색해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렇기 때문에 비틀즈의 곡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록 음악이 인기를 얻지 못한 것은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다.

디시인사이드에서는 왜인지 남자 연예인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래도 남자 연예인은 거시적 관점에서는 맞으니까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음악으로 분류된 건 잘못. 비틀즈는 영국 밴드이다. 비틀즈 갤러리에서도 가끔씩 나오는 불평이다.

비틀즈 멤버 중에서 공식적인 내한공연을 한 멤버는 아무도 없었으나, 2014년 5월 28일 폴 매카트니의 내한이 결정되면서 처음(이자 사실상 마지막)으로 비틀즈 멤버가 내한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건강문제로 2014년 내한공연이 취소되었다. 그러나 2015년, 다시 내한 소식이 들려왔고 내한공연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자세한건 폴 매카트니/내한 문서로. 이듬해인 2016년 11월 5일 링고 스타도 내한공연을 가짐으로써 한국은 비틀즈 멤버의 공연 불모지에서 완벽히 벗어났다. 원래는 JTBC 뉴스룸에도 출연해 인터뷰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촛불집회 열기가 한창일 때라 인터뷰는 무산되었다.

비틀즈 곡의 무지막지한 저작권으로[86] 인해 한국에서는 아이튠즈를 빼고는 음원 스트리밍&다운로드 서비스가 불가능했다. 2015년 크리스마스부터 iTunes, Spotify를 비롯한 여러 음원 사이트에서 비틀즈의 음반을 스트리밍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한국에서는 어떤 서비스도 지원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먼나라 이야기인줄만 알았다...였는데 하지만 2016년 2월 29일부터 한국의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 비틀즈의 17개의 앨범을 서비스 시작한다고 한다. 포함되는 음반은 정규 음반 13개를 포함하고 1, 1962-1966, 1967-1970, Past Masters 이렇게 17개의 음반이라 한다. 비틀즈 커뮤니티는 당연히 흥분모드에 들어갔고, 많은 젊은 층에게 비틀즈를 홍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단, 음원 서비스가 풀리면서 유튜브에 있던 비틀즈 노래들과 라이브 영상들 대부분이 유니버설 뮤직의 요청으로 삭제되는 큰 단점도 생겼다.

그런데 2018년 6월 17일, 유튜브 공식 채널에 모든 앨범이 무료 스트리밍으로 업로드되었다. 이로 인해 비틀즈에 대한 접근성이 훨씬 높아지게 되었다.

2018년 4월부터 2020년 5월 11일까지 MBC 라디오를 통해 조PD의 비틀즈 라디오가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은 비틀즈 전문 방송으로 비틀즈 노래는 물론 비틀즈 멤버들이 개인 활동으로 발표한 곡이나, 다양한 버전의 비틀즈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들 혹은 비틀즈에 영향을 받은 곡 등을 소개하는 방송이었다.


12.3. 기타 관련 문서[편집]



[1]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 작업 당시인 1967년 2월 28일에 촬영된 사진이다.[2] 쿼리멘 결성 이후인 1960년 7월 초에 이름을 실버 비틀즈(Silver Beatles)로 변경했고 8월 중순에 비틀즈(The Beatles)로 줄였다. 쿼리멘의 결성 년도인 1957년을 비틀즈 결성 년도로 보기도 한다. 애초에 이름을 바꾼 것 외에는 밴드 구성에 변화가 없었기 때문. 다만 1960년함부르크 공연을 거치며 아마추어 밴드가 아닌 어엿한 프로 밴드로 자리매김한 상징적인 년도로서의 의미가 있다.[3]잉글랜드 머지사이드 리버풀.[4] 언론 공식 발표 기준, 데뷔로부터 2743일[5] 머시 비트[6] 시도했던 장르가 원최 많아서 여기에 다 기재하기 어렵지만 밴드의 주류 음악은 포크와 로큰롤을 기반으로 한 뉴 록 음악이었다. 블루스 록은 1968년부터, 사이키델릭 록은 1966년부터 시도했다.[7] 자체 설립[8] 팔로폰 레코드. 영국 음반. 그러나 2012년 이후 EMI 매각 과정에서 비틀즈 및 존 레논,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의 Apple 레코드 레이블 솔로 음반에 대한 권리를 제외한 팔로폰 레코드 전체가 워너 뮤직 그룹으로 편입되면서 재발매가 아닌 비틀즈 앨범에 대해서는 더 이상 팔로폰 레이블을 붙일 수 없게 되었다. 현재 비틀즈 녹음물에 대한 발매 권리는 유니버설 뮤직 그룹과 그 자회사 Calderstone Productions가 갖고 있다. Apple 레이블을 달고 나왔던 폴 매카트니의 솔로 음반들, 그리고 비틀즈의 데뷔 싱글인 Love Me Do/P.S. I Love You는 예외적으로 폴 매카트니가 설립한 MPL Communications가 갖고 있다.[9] 캐피톨 레코드. 미국 음반[10] 역사상 족적이 크다고 평가받는 대다수의 록밴드들은 활동을 굉장히 길게 한 편이다. 롤링 스톤스, 더 후, 핑크 플로이드 등의 밴드들은 거의 30년 넘게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롤링 스톤스와 더 후는 현재까지도 현역이다. 비틀즈와 레드 제플린 정도가 이례적으로 활동 기간이 짧은데, 재미있는 점은 이 두 밴드가 각각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밴드 1, 2위라는 것.[11] 전체 2위-솔로 1위는 엘비스 프레슬리. 그러나 비틀즈와 차이가 매우 많이 난다.[12] 록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밴드들은 전부 성향이 천차만별이다. 블랙 사바스는 헤비 메탈, 너바나는 그런지, 마블발은 슈게이징, 라디오헤드는 본인 특유의 진취적인 음악, 오아시스는 팝이나 얼터너티브에 가까운데, 이 모든 밴드들에게 비틀즈가 일정 부분의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특히나 오아시스의 경우 비틀즈의 영향을 앞의 밴드들과 비견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받은지라 거의 비틀즈를 신에 가깝게 대접한다.[13] 심지어 뿌리가 비틀즈 데뷔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레드 제플린 또한 밴드 관리 구조는 비틀즈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14] 기타계에서 지미 헨드릭스가, 드럼계에서 존 본햄이 항상 고정 1위로 꼽히는 것처럼, 록밴드계에서는 비틀즈가 항상 고정 1위로 꼽힌다.[15] 단, 대한민국에서는 비틀즈의 이미지 중 60년대 초의 팝, 로큰롤 이미지가 다소 강하고, 비틀즈의 노래들 중에서도 Yesterday가 압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최고의 걸작들이 모여 있는 60년대 후반 앨범들의 인지도는 영미권과 정반대로 비교적 낮은 편이다. 아무래도 비틀즈가 순회 공연을 통한 대중적 전성기를 이뤘던 건 엄연히 1960년대 중반이고, 무엇보다도 당시 대한민국은 검열이 심했던 편이라 마약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1960년대 후반 당시 유행했던 장르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비교적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비틀즈의 60년대 후반 앨범들조차 다른 60년대 음악가들의 앨범보다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건 변치 않는다.[16] 당장 마이클 잭슨이 비틀즈의 곡의 저작권을 갖고 있다 알려져있는데 실제로 마이클 잭슨이 소유한 비틀즈 음악 저작권은 일부이며 어떤 곡은 비틀즈 4인방 모두가 곡의 저작권을 갖고 있지 않을 정도이기도 하다. 당장 빌보드 역사상 가장 제목 길이가 긴 1위곡인 메들리 Stars on 45의 제목이 그렇게 된 이유가 비틀즈의 골때리는 저작권 때문이었는데 심지어 저때는 그나마 비틀즈 곡들의 저작권이 지금보다는 덜 퍼져있었을 때였다.[17] 즉 콜드플레이, 에미넴, 테일러 스위프트의 수많은 히트작 음반들보다 해체된지 30년이 넘은 비틀즈의 베스트 앨범이 더 많이 팔려서 2000년대 통산 앨범 판매량 1위를 기록한 것으로, 이는 전례가 없는 엄청난 기록이다. 다만 2000년은 21세기에 포함되지 않아 21세기 통산 1위는 아델의 21이다.[18] 한국에서 2등은 보통 이 꼽히며, 서구권에서는 레드 제플린이 2등으로 꼽힌다.[19] 개인차에 따라 일부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유행하던 1950년대 말부터 대중문화계의 클래식 시대는 끝이 났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보통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1950년대 중후반부터 비틀즈가 나오던 1960년대 초중반까지를 완벽한 현대적인 시기가 아니라 과도기로 인식하며, 이 사이 시기는 대중음악계의 암흑기로 꼽혔다. 그리고 비틀즈가 본격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과도기적 시기인 1963~1964년 영화계에서 가장 인기있던 배우는 고전 배우에 준하는 인식을 받는 폴 뉴먼과 고전 배우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오드리 헵번이었다. 즉, 비틀즈가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일으키던 시기는 과도기에 가깝기는 하지만 클래식 시대의 막바지라고 볼 수도 있는 것. 비틀즈가 나오고 나서 대중음악계를 포함한 대중문화 전반이 급격하게 격변했고, 비틀즈 유행의 후반기에는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가 시작되어 영화계도 현대적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비틀즈가 만든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가 큰 영향을 미쳤다. 비틀즈가 없었더라도 1960년대 초중반의 과도기를 거쳐 1960년대 후반으로 넘어가며 클래식 시대가 종결되고 대중문화계가 현대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로 넘어갔을 것이지만, 비틀즈가 이러한 변화의 구심점이자 강력한 촉매제 역할을 했음은 자명하다.[20] 보통 영화계에서는 말론 브란도나 오드리 헵번 등이 자주 언급되는데, 대중음악계에서는 비틀즈 외에도 프랭크 시나트라, 마이클 잭슨, 엘비스 프레슬리 등이 가장 자주 언급된다.[21] 비틀즈의 결성은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의 등장과 함께 대중문화의 중요한 사건으로 꼽히며 그 중에서도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발매와 함께 대중음악이 대중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례로 꼽힌다.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발매는 TV로부터 촉발된 본격적인 시각적 엔터테인먼트의 활성화를 촉진했다는 점에서 고평가받는데, 비틀즈는 록밴드로서 이전의 검열이 심하고 보수적이던 대중문화계를 몇 년 만에 자유롭게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고평가 받는다.[22] 선정내역을 보면 알겠지만, 많은, 역대 아티스트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23] 하필 알려진 곡들이 전부 소프트 록 성향의 곡이다 보니 유독 한국에서는 "비틀즈 그거 그냥 아이돌 팝 밴드 아닌가?" 하는 반응들이 많다. 더군다나 국내에서 록 음악은 무조건 헤비 메탈일 것이라는 편견이 존재하기도 하기에, 비틀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속터지는 상황이다.[24] 스튜어트 서트클리프가 탈퇴하기 전까지는 리듬 기타를 맡았다.[25] 사진은 1968년 The Beatles 앨범 당시 촬영된 것으로 앨범 안에 저 4장이 분리되어 들어가 있다. 2018년 50주년 기념반 슈퍼 디럭스/디지털 음원 버전의 커버로도 쓰였다.[26] 하다못해 가장 묻힌다는 링고조차 'Octopus Garden'이라는 좋은 노래를 만드는 등 음악적으로는 훌륭했다. 그런데 나머지 3인방은 솔로 시절에도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명곡이라는 Imagine이나 My Sweet Lord, 역사상 최고의 히트곡으로 꼽히는 Say Say Say, Silly Love Songs, Ebony and Ivory, Coming Up, (Just Like) Starting Over, Got My Mind Set on You 모두 비틀즈의 멤버들이 솔로활동으로 발표한 곡들이며, 이들은 전부 80년대까지 대중음악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27] 1962년부터 1966년까지를 말한다. 콘서트 투어를 진행하고 특유의 정장 차림, 바가지 머리가 특징이었던 시기다. 다만 음악적 성향에 초점을 두어 1962년~1964년 까지만 초기로 보고 1965년부터 1967년 까지는 중기로 보는 시각도 많다.#[28] 1967년부터 1970년 까지. 투어를 중단하고 히피 열풍의 영향으로 멤버들의 스타일도 크게 변한 시기다. 상술했듯 1967년을 중기에 포함시키고 1968년부터 1970년 까지를 후기로 보는 경우도 있다.[29] 초기, 후기로 나누기는 하나 사실 4-5년 정도 차이밖에 되지 않는다.[30] 이 사진을 찍고 얼마 안 가 비틀즈는 거의 해체하다시피 했으며, 이후 1970년대에는 멤버들 간의 사이가 영 좋지 않았기 때문에 1980년 존 레논이 사망할 때까지는 다함께 모여서 사진을 찍는 일은 없었다. 다만 존 레논 사후에 남은 세 명이 같이 모여 찍은 사진은 꽤 많다. 대표적으로 이 사진.[31] 영상의 곡은 싱글로 나온 I Want To Hold Your Hand이다.[32] 영상의 곡은 싱글로 나온 Don't Let Me Down이다. 정식으로 발매되기 약 2-3개월 전에 이 공연을 통해 첫 공개했다.[33] 2위는 19곡의 머라이어 캐리[34] 이 곡을 시작으로 비틀즈의 미국 음악 시장 정복이 시작되었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시작을 알린 대표곡이다.[35] 영국 차트 1960년대 결산 1위.[36] 물론 이 곡의 원래 발매년도는 1962년이며, 미국에서 1위를 한 버전은 1962년 싱글 버전이 아닌 1963년 발표된 Please Please Me 앨범 버전이다.[37] Day Tripper와 힘께 더블 A사이드 싱글로 발매. 둘 다 1위로 치는 경우도 있지만 당시 빌보드 핫 100 규정은 더블 A사이드 싱글은 따로 집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We Can Work It Out만이 1위를 기록했고 Day Tripper는 최고 순위 5위를 기록했다.[38] Something이 빌보드 넘버 1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원래는 Come Together와 같이 더블 A사이드 싱글로 발매되었기 때문. 빌보드는 원래 더블 A사이드라 할지라도 각 곡을 따로 매겼었다. 실제로 이 싱글이 발매될 때만 해도 따로 매겼는데, 몇 주 뒤에 더블 A사이드 싱글은 하나로 묶어서 차리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현재는 둘 다 1위로 보는게 일반적이고, 실제로 영미 싱글 차트 1위 곡들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 1에도 두 곡이 모두 수록되었지만 반론의 여지가 남아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로.[39] 더블 A사이드 싱글로 발매되었고 공식 기록상으로는 For You Blue도 빌보드 핫 100 1위 곡이다. 하지만 보통은 The Long and Winding Road만 1위로 간주하며, 실제로 영미 싱글 차트 1위 곡들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 1에는 For You Blue가 수록되지 않았다.[40] 싱글 발매일이 1976년이라는 것이지 곡 자체는 1966년 Revolver를 통해 발매된, 당시로서는 10년이 된 노래다.[41] 토니 셰리든과 함께 한 싱글로 19위에 올랐다.[42] 영국에서는 1위까지 오른 노래다.[43] 이 싱글을 발매하고 며칠 뒤에 존 레논이 피살당했다. 1위에 오른 것도 존 레논 사후의 일이라 존 레논은 생전에 이 곡이 1위하는 것을 못 보고 죽었다.[44] 그룹까지 포함할 시 70년대 1위는 9개의 싱글을 27주동안 1위에 랭크시킨 비 지스이다.[45] 더블 A 싱글[46] 사실 신해철이 처음 했던 말은 아니라 신해철의 지인이 말했던 걸 본인의 라디오에서 대신 언급한 것. 세월이 얼마나 흐르던 처음 듣는 대중들을 팬으로 만드는, 그만큼 그들의 히트곡들이 첨단적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47] 제목은 비틀즈 65면서 64년 발매인 이유는 연말에 발매되었기 때문이다.[48] 자신들의 앨범 Meet the Beatles!에 밀려 2위를 기록했다.[49] 자신들의 앨범 A Hard Day's Night에 밀려 2위를 기록했다.[50] 일반적인 앨범도 아니고 단지 해설과 인터뷰가 수록된 오디오 다큐멘터리 앨범이었는데도 7위에 올랐다. 그만큼 비틀즈의 인기가 상상을 초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51] 보통 1970년대의 레드 제플린 VS 핑크 플로이드, 1980년대의 마이클 잭슨 VS 프린스, 1990년대의 투팍 VS 비기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라이벌리로 꼽힌다.[52] 당시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이끌었던 밴드 중 비틀즈만큼 빌보드와 UK 차트 1위를 밥 먹듯이 차지했단 밴드는 롤링 스톤스밖에 없었다.[53] 아이러니하게도 비틀즈는 노동 계급 출신이지만 롤링 스톤스는 유복한 중산층 출신이다. 특히 스톤스의 보컬인 믹 재거는 그 유명한 런던 정경대의 경영대학 출신으로, 브라이언 메이, 존 디콘, 로저 테일러와 더불어 록 아티스트 중에서 학력이 가장 높은 사람이다. 어째 이 세 명이 같은 밴드 소속인 것 같지만 넘어가자[54] 사실 60~70년대 영국 음악계는 매우 좁아서 웬만한 뮤지션들은 서로 다 안면이 있거나 친한 사이였다.[55] 국내 록 커뮤니티에서 나이가 지긋이 든 레드 제플린 팬과 딥 퍼플 팬의 키배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56] 가령 의 경우 미국 음반 판매량으로만 따지면 U2에도 밀리지만, 영국 내에서의 인기는 비틀즈 다음간다.[57] 서구권의 자유주의적인 문화가 유입되어 공산주의가 붕괴되었다는 소리다. 당시 비틀즈는 자유진영 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로 여겨져왔고, 197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공산권에서 록 음악이 반항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었다.[58] 당시 미국에서 판매되는 음반의 60%가 비틀즈 앨범이었다.[59] Come Together, Hey Jude[60] 특히나 2위인 레드 제플린과 3위인 핑크 플로이드는 록뿐만 아니라 전체 아티스트 6위8위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차이가 나는 것이다.[61] 3위는 레드 제플린(4%), 4위는 AC/DC(4%), 5위는 이글스(3%)[62] 2위는 레드 제플린, 3위는 , 4위는 핑크 플로이드, 5위는 롤링 스톤스.[63]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의 흥행 이후 인기가 특히 높아지긴 했지만 영화 이전에도 동아시아에서는 매우 인기 있었던 밴드였다.[64] 그렇기에 국내 음악 관련 커뮤니티들에서는 비틀즈가 록밴드냐고 묻는 사람들도 꽤 있으며, 이러한 사람들에게 Helter Skelter를 들려주면 바로 납득한다는 후문도 있다.[65] 머시 사운드[66] 조지 마틴이 리볼버의 데모 버전을 들어보고 깜짝 놀라 아무말도 못했다는 일화도 있다.[67] 러버 소울 이전까지만 해도 히트곡 위주 감상이 일반적이었으나 이후로는 앨범 위주의 감상이 새로운 감상 방식으로 떠올랐고, 후일 핑크 플로이드, 더 후 등의 밴드에게도 큰 영향을 줬다.[68] 커트 코베인Nevermind 앨범 제작 당시 이 앨범을 듣고 감명을 얻었다고 한다.[69] 스키플에 기반을 둔 리버풀 사운드 또는 머시 사운드를 말하는데 이는 미국의 정통 로큰롤과 구분한다.[70] 애초에 당시에는 얼터너티브 장르가 등장하지도 않았던 때였다.[71] 한 예로, 비틀즈의 흩어진 저작권 중 하나를 가지고 있는 소니뮤직은 비틀즈와 메탈리카를 카피/패러디 한 밴드인 비탈리카가 데뷔앨범을 발매할 즈음에 거액의 저작권 소송을 걸기도 했다. 다행히 메탈리카가 나선 덕에 이 문제는 원만하게 해결하긴 했지만 앞으로도 비탈리카 같은 사례가 반복될 것이라는 건 뻔한 사실이다.[72] 그래서 음원 파일을 가지려면 직접 음반을 사다가 Windows Media Player 등의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CD를 복사한 뒤 음원을 추출해내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73] 먼 미래에라도 보이저호를 발견하게 될지 모르는 외계인에게 지구의 소리를 알려주려고 보이저 호에 탑재된 오디오 속의 음반에 지구의 각종 자연음과 여러 나라 사람들의 말소리 등과 함께 음악도 넣었는데, 주로 클래식 음악들이었고 대중음악 중에선 비틀즈의 곡을 넣으려고 했던 것. 척 베리의 명곡인 Johnny B. Goode도 골든 디스크에 수록된 바 있다.[74] 저작권료가 보편화된 현재는 한 곡당 기본 1억원 이상으로 저작권료를 줘야 하는데, 이 당시는 저작권 초창기였던지라 저작권료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75] 관련 사이트[76] 이 당시는 1960년대다. 2000년대 그 반지의 제왕을 생각하면 안된다. 그때는 변변한 그래픽조차 없었으며, 따라서 일반인보다 훨씬 작은 호빗들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77] 루시를 발견한 날 고인류학자들이 이 노래를 반복적으로 들었다고 한다.[78] 참고로 작중에는 The comet tails가 작곡한 Weltraumsurfen(벨트라움서펜, 우주 서핑)이라는 곡도 인기 곡으로 등장하는데, 곡 이름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비치 보이스의 Surfin USA를 패러디한 것이다.[79] 순서대로 A Hard Day's Night(1964), Paperback Writer(1966), Here Comes the Sun(1969), I Am the Walrus(1967). 초반에 지나가듯 Maxwell's Silver Hammer가 옷 드라이 가게 이름으로, Back in the U.S.S.R.가 노래 안의 비행기 구동음으로 등장한다. 초반 연출은 영화 A Hard Day's Night의 장면을 그대로 오마쥬하였다.[80] 정작 비틀즈 멤버들은 정치, 환경, 종교 등 여러 분야에서의 사회 운동으로 유명하다. 특히나 존 레논은 현재까지도 아나키즘평화주의의 대명사로 꼽힐 정도다.[A]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레논-매카트니 명의.[B] A B 존 레논의 비중이 더 높다.[81] 가령 Tomorrow Never Knows는 레딧에서는 3위였지만 여기서는 22위로 떨어졌고 Happiness Is a Warm Gun은 순위권에조차 들지 못했다. 반면 Penny Lane, I Am the Walrus 등 해외에서 유명한 비틀즈 곡들은 높은 표를 받았다.[82] 비틀즈는 로큰롤 밴드에서 시작해 포크 록, 사이키델릭 록을 거쳐서 하드 록, 헤비 메탈, 펑크 록 등 매우 많은 록 장르를 시도한 반면 BTS는 상대적으로 R&B와 힙합에 치중되어있는 모습을 보인다.[83] 다만 동양인 음악 밴드로서는 전례 없는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한국에서 매우 주목받는 면이 있다.[84] 이마저도 비틀즈 버전이 아니라 커버 곡인 러브 액츄얼리 버전을 많이 안다.[85] 소위 '록 스타' 하면 생각나는 반항적이고 과격하게 소리지르는 이미지와 국내에서 인식되는 비틀즈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86] 이에 대해+N.ex.T가 표절시비에 휩싸였을때 신해철은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음악의 역사에서 오선지에 적을수 있는 모든 좋은 멜로디는 비틀즈가 싹 긁어가서 더이상 좋은 멜로디가 나올수 없다."라는 발언까지 한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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