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산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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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산체스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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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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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대






스페인의 축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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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빅토르 산체스
Víctor Sánchez
본명
빅토르 산체스 델 아모
Víctor Sánchez del Amo
출생
1976년 2월 23일 (48세)
스페인 마드리드
국적
[[스페인|

스페인
display: none; display: 스페인"
행정구
]]

신체
183cm
직업
축구선수 (미드필더[1]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레알 마드리드 CF (1987~1994 / 유스)
레알 마드리드 CF C (1994~1995)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 (1995~1996)
레알 마드리드 CF (1996~1998)
라싱 데 산탄데르 (1998~1999)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999~2006)
파나티나이코스 FC (2006~2007)
엘체 CF (2007~2008)
감독
헤타페 CF (2010~2011 / 수석 코치)
세비야 FC (2012~2013 / 수석 코치)
올림피아코스 FC (2013~2014 / 수석 코치)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2015~2016)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2016~2017)
말라가 CF (2019~2020)
FC 카르타헤나 (2023)
국가대표
8경기 (스페인 / 2000~2004)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선수 경력
4. 지도자 경력
5. 대회 기록
6.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애증?



1. 개요[편집]


전 축구선수이자 리아소르의 기적의 일원. 선수 시절 스페인 국가대표팀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었으나 루이스 피구, 호아킨 산체스과 함께 라리가 최고의 라이트 윙어로 평가 받았다. 데포르티보 시절 유독 친정팀 레알 마드리드만 만나면 강한 모습을 보였다.


2. 플레이 스타일[편집]


라리가 탑클래스 윙어 답게 윙어가 갖춰야할 덕목들을 두루 갖춘 선수였다. 그러면서도 기술적인 루이스 피구나 폭발적이었던 호아킨 산체스와는 다르게 실속 있는 플레이가 돋보이는 스타일이었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플레이라 보면 된다.

빅토르의 최대 장점은 바로 킥 능력이었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크로스와 통쾌한 중거리 슛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99/00 시즌 캄 노우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중거리 포로 골망을 두 번이나 흔든 것은 매우 유명하다.


3. 선수 경력[편집]


레알 마드리드 유스 출신으로 1군에서도 제법 활약했고,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도 경험했다. 당시 빅토르는 제2의 미첼이라 불리며 촉망받는 유망주 중 하나였다. 레알 유스 팀 시절 감독은 라파엘 베니테스로, 둘의 인연은 각별하다고 한다. 베니테스는 유독 빅토르를 챙겼고, 비디오 분석을 통해 그를 지도했다. [2]

98/99 시즌을 앞두고 라싱 데 산탄데르로 이적한 빅토르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유망주 레벨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99/00 시즌이 시작되기 전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시킨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로 이적했다.

당시 데포르티보는 프리메라 리가에서 베베투, 마우로 실바, 미로슬라프 주키치를 앞세워 라 리가의 신흥 강호로 급부상하다가 세대 교체에 실패하며 잠시 주춤하던 시기였다. 98/99 시즌 이루레타 감독은 팀을 6위로 끌어올리며 다시금 신흥 명문으로의 도약을 준비했고 이 과정에서 로이 마카이, 마누엘 파블로 그리고 빅토르 산체스 등등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을 영입한다.

그리고 대망의 99/00 시즌, 데포르티보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프리메라 리가 우승을 일궈낸다. 프란 곤살레스, 자우밍야, 빅토르 산체스의 삼각 편대 그리고 최전방의 로이 마카이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빅토르 산체스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친정팀에게 5:2 충격적인 대패를 선사했다. 또한 캄 노우에선 통쾌한 중거리포로 2골을 몰아치며 팀이 무승부를 거두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시즌을 기점으로 빅토르는 라 리가 정상급 라이트 윙어로 떠올랐다.

이후에도 라 리가UEFA 챔피언스 리그의 중요 경기에서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다만 악연이면 악연이랄까 메이저 대회때 마다 호아킨 산체스에게 밀리며 스페인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했다. 감독들에겐 팀 플레이에 능한 빅토르보다 폭발적인 호아킨이 더 끌리는 옵션이었다.

03/04 시즌에는 그 유명한 리아소르의 기적을 일으키는데 다른 누구도 아닌 파올로 말디니를 상대로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다.

04/05 시즌 데포르티보의 황금기가 끝난 후 고액 주급자였던 빅토르는 입지가 서서히 흔들렸다. 활약상은 좋았지만 구단의 재정이 빅토르의 주급을 감당하기 버거웠던 것. 결국 2006년 여름 데포르티보를 떠나 그리스의 파나티나이코스로 이적했다. 당시 리버풀의 지휘봉을 잡고 있던 라파엘 베니테스가 빅토르의 영입을 간절히 원했으나 이적료 차이로 불발되었다. 그리스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은 빅토르는 세군다 디비시온엘체에서 한 시즌 뛴 후 30대 초반의 나이에 일찌감치 은퇴한다. 전성기 때 생각하면 상당히 초라했던 말년.


4.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후 그는 감독을 막 시작했던 미첼의 부름을 받아 그의 수석 코치가 됐다. 헤타페, 세비야 그리고 올림피아코스에서 수석 코치로 경험을 쌓은 빅토르 산체스는 14년 여름 미첼과 작별했고 감독 제의를 기다린다. 하지만 선수 시절 스타 플레이어이긴 했으나 감독 경험이 없는 빅토르 산체스를 불러줄 팀은 라 리가세군다 디비시온에도 찾기 어려웠다. 보통 수석 코치 신분에서 감독이 경질된 후 대행으로 감독 커리어를 시작하거나 혹은 3부나 4부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

반년을 넘게 무직으로 보내다가 그가 부임하게 된 팀은 다름 아닌 데포르티보였다. 스토리가 되게 짠하다. 데포르티보는 소문난 거지 구단이라 돈도 적게 주고 8경기 남은 상태인데 상대들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아틀레틱 빌바오, 비야레알 거기다 최종전은 바르셀로나 원정이니.. 괜히 지휘봉을 잡았다간 자기 커리어 깎아먹는 일 밖에 안되는거라 아무도 오지 않을려 했다.

그랬기에 데포르티보는 새로운 감독을 구하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빅토르 산체스에게 감독직을 제안하게 된다. 감독 경험이 전무했던 빅토르 산체스였지만 데포르티보 팬들은 그의 능력을 의심하기 보단 9년 만에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 돌아온 레전드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3]

당시 팀은 30라운드 기준 6승 9무 15패 승점 27점으로 잔류 마지노선인 17위로 18위 알메리아와 2점차에 불과했다.

거기다 8경기가 남은 시점에서 데포르티보는 레알 소시에다드(원정), 아틀레티코 마드리드(홈), 아틀레틱 빌바오(원정), 비야레알(홈) 그리고 최종전은 바르셀로나(원정) 같이 상위권 클럽들을 상대해야했기 때문. 하지만 그는 데포르티보의 기적 같은 잔류를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 받았다.

그리고 15/16 시즌 조직적인 압박 & 빠른 역습이라는 팀 컬러를 데포르티보에 담아내며 팀을 쉽게 지지 않는 팀으로 변화시켰다. 18라운드까지 데포르티보는 단지 2패를 기록하며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함께 리그 최소패를 기록했으며 리그 최소 슈팅 허용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특히 최소 슈팅 부분은 유럽 빅 리그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빅토르는 구단의 레전드 답게 데포르티보의 상황에 빠삭했기에 적응 기간이 필요없었다. 더군다나 팀에는 자신과 함께 선수 시절 데포르의 오른쪽 측면을 책임졌던 마누엘 파블로가 주장으로 든든히 버티고 있었으니.. 부임 후 빅토르는 전술적으로 큰 변화를 주기 보단 패배감에 젖어있던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는데 초점을 두었다. 한편 SNS를 적극 활용해 팬들과 소통하며 응원을 유도했다. 그 결과 어려운 일정에도 불구하고 데포르티보를 강등에서 구해내며 팬들의 믿음에 보답했다.

그리고 2015/16 시즌 발렌시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세비야 같은 강팀들을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며 팀을 쉽게 지지 않는 팀으로 변화시켰다. 이결과 라 리가 측은 15/16 시즌 전반기 최우수 감독으로 빅토르 산체스를 선정했다.

언론 대응 스타일은 매우 깔끔하다. 특정 선수에 대한 이적설이나 의견 등 언론에 의해 왜곡될 소지가 있는 소재에 대해선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재치 있게 넘어간다. 훈남인데 말도 잘한다.

전술적으로는 조직적인 압박 & 빠른 압박이라는 큰 틀 하에 상대에 따라 4-4-2, 4-2-3-1 그리고 4-3-3 포메이션을 번갈아가며 사용한다. 물론 선수 기용도 때에 따라 다르다. 그러면서도 성적이 준수한 것은 그의 훈련 일정이나 전술적 역량이 초짜 감독치고 우수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전술적 특징이라면 윙어들이 다소 중앙 지향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상대 풀백들을 중앙으로 끌어들인 후 생긴 공간을 공격수나 측면 수비수들이 침투해 공격 작업을 펼친다. 허나 주전 공격수인 루카스 페레스루이스 알베르토가 상대 수비의 몸싸움을 견디면서 포스트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선수들이 아니기에 지공 상황에선 공격이 답답할 때가 있다. 이는 상대가 수비 라인을 낮게 가져가는 팀일 경우 경기력은 똥망 수준이 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수비적이기 보단 공격적으로 나서는 팀, 즉 한 수위 클럽들을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 또한 여기있다. 왜냐면 쉽게 말해 1.뒷공간이 넘쳐나고 2.상대 수비수 숫자가 적다보니 3.역습하기 쉬우니까.

용병술은 노답이다. 주로 수비적인 교체를 많이 하는데 이 것까진 괜찮다. 다만 공격적인 교체가 필요할 때 타이밍이 너무 늦다.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교체도 있다. 유일하게 성공한 것은 바르사 원정. 발이 빠른 2군 출신 윙어 미구엘 카르도소를 발이 느린 제레미 마티유을 집중 공략해 0:2 상황에서 2:2 동점을 만들었다.

시즌이 끝나고 팀이 부진끝에 15위에 그치자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되었다.

16/17 시즌 구스 포옛 감독을 경질한 레알 베티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2019년 말라가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2020년 1월 7일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구단으로부터 직무정지를 받았고 이에 사임했다. 팀을 말아먹은것도 아니고 자위행위하던 동영상이 유출된, 축구 역사상 가장 황당하고 어이없는 경질 사유로 훗날에도 회자될것이 매우매우 유력하다. 게다가 하필 말라가 로고가 떡하니 박힌 트레이닝 복을 입고 동영상을 찍었다. 자신의 명예실추는 물론이고 팀에서 소송을 걸어도 할말이 없는 수준. 하지만 이에 대해 스페인 축구계에서는 산체스는 범죄의 피해자라는 의견이 다수며 유명인사들 특히 말라가 구단주와 아내도 위로하고있다.


5. 대회 기록[편집]





6.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애증?[편집]


빅토르는 레알 마드리드 CF 유스 출신이고 1군에서도 적지 않게 활약했다. 라울, 카시야스, 구티처럼 1군에 오랜 기간 자리 잡진 못했으나 1990년대 레알 유스가 배출한 재능 중 정상급임에는 틀림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을 키워준 레알 마드리드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는 한편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빅토르는 과거 인터뷰에서 말하길 확실히 마드리드는 세계 최고의 클럽이며 그로인해 유소년 시절부터 최고의 결과를 기대받는다고 말했다. 특히 라파엘 베니테스파비오 카펠로는 항상 선수들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기대했고 이는 그를 비롯해 동료들이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쥤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레알 마드리드, 즉 플로렌티노 페레스의 갈락티코 1기 시절 지다네스 & 파보네스 정책에 돌직구를 던졌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 정책은 웃음거리에 불과하며 현재 마드리드는 단지 유니폼을 파는데나 관심이 있다. 그 동안 걸출한 유망주가 배출되었는가? 지금 마드리드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선수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르사 유스 출신 셀라데스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빅토르는 당시 마드리드의 상황을 매우 잘 집어냈다. 지나치게 상업적인 부분을 우려한 것이다. 실제로 카시야스 이후 지금까지 레알에서 배출한 재능은 90년대 시절보다 못하다. 그나마 루벤 데 라 레드, 호세 카예혼, 다니 파레호 정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얘들도 타 클럽에서 터진 케이스다. 이후에는 헤세가 있었지만 그도 부상때문에 대선수로 크지 못했다.

[1] 윙어[2] 이에 영향을 받았는지 감독이 되고 종종 비디오 분석을 통해 전술 훈련을 한다.[3] 참고로 라 코루냐는 25만 정도의 소도시인데 나이 많은 팬들에게 빅토르는 자신의 아들과 같은 존재기도 했고 30대 팬들에게는 구단의 전성기를 함께한 친구와도 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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