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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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알폰소 13세의 왕비
빅토리아 유지니 줄리아 에나
Victoria Eugenie of Batte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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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영어
빅토리아 유지니 줄리아 에나
(Victoria Eugenie Julia Ena)
스페인어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훌리아 에나
(Victoria Eugenia Julia Ena)
출생
1887년 10월 24일
스코틀랜드 밸모럴 성
사망
1969년 4월 15일 (향년 81세)
스위스 로잔
배우자
알폰소 13세 (1906년 결혼 / 1941년 사망)
자녀
알폰소, 하이메, 베아트리스, 마리아 크리스티나, 후안, 곤살로
아버지
바텐베르크의 하인리히 공자
어머니
영국의 베아트리스 공주
형제
알렉산더, 레오폴드, 모리스
종교
성공회가톨릭
1. 개요
2. 작위
3. 생애
3.1. 어린 시절
3.2. 혼담
3.3. 스페인 왕비
3.4. 망명
3.5. 사망
4. 가족관계
4.1. 조상
4.2. 자녀
5. 여담



1. 개요[편집]


스페인 알폰소 13세의 아내이자 후안 카를로스 1세의 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 베아트리스 공주의 유일한 딸이다. 재밌게도 반대로 남편 알폰소 13세는 알폰소 12세의 유일한 아들이였다.


2. 작위[편집]


  •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지니 공녀 저하 Her Highness Princess Victoria Eugenie of Battenberg (1887년 10월 24일 ~ 1906년 4월 3일)
  •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지니 공녀 전하 Her Royal Highness[1] Victoria Eugenie of Battenberg (1906년 4월 3일 ~ 1906년 5월 31일)
  • 스페인의 왕비 폐하 Her Majesty The Queen of Spain (1906년 5월 31일 ~ 1931년 4월 14일)
  • 스페인의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왕비 폐하 Her Majesty Queen Victoria Eugenia of Spain (1931년 4월 14일 ~ 1969년 4월 15일)


3. 생애[편집]



3.1. 어린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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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1887년 10월 24일 스코틀랜드 밸모럴 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바텐베르크 가문의 하인리히 공자이고, 어머니는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 베아트리스 공주다. 베아트리스 공주는 결혼 후에도 빅토리아 여왕 곁에 자주 머물곤 했었는데, 진통이 왔을 때 마침 밸모럴 성에 머물고 있어서 그곳에서 빅토리아 유지니를 낳았다. 빅토리아 유지니는 마거릿 공주가 태어나기 이전까지 마지막으로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왕녀였다.[2]

친가인 바텐베르크 가문은 귀천상혼으로 생겼기 때문에 빅토리아 유지니는 전하(Her Royal Highness) 칭호를 받을 수 없었으나, 빅토리아 여왕의 특명으로 Her Highness 칭호를 받게 되었다. 이름은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과 프랑스 황후이자 대모인 외제니 드 몽티조로부터 따와 빅토리아 유지니로 지어졌고, 가족들과 대중들에게는 미들 네임중 마지막 이름인 '에나(Ena)'로 불렸다. 또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50주년인 골든 주빌리에 태어나서 주빌리 베이비(Jubilee baby)라고 불리기도 했다.

어머니 베아트리스 공주빅토리아 여왕의 비서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빅토리아 유지니는 어린 시절을 대부분 영국윈저 성이나 밸모럴 성에서 보냈다. 1893년에는 외사촌오빠 요크 공작 조지 왕자테크의 메리의 결혼식에 화동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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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유지니와 빅토리아 여왕
빅토리아 유지니는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을 매우 좋아했고, 여왕 또한 손녀를 '작은 보물'이라고 말할 정도로 예뻐했다고 한다. 빅토리아 유지니에게는 빅토리아 여왕이 두 번째 엄마일 정도였다고.

그러나 1896년 하인리히 공자가 복무를 하던 중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하고,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이 사망하자 베아트리스 공주는 아이들과 함께 켄싱턴 궁전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3.2. 혼담[편집]


1905년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영국을 방문했다. 알폰소 13세는 스페인의 왕비가 될 신붓감을 찾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코넛 공작 아서 왕자의 차녀인 패트리샤 공녀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패트리샤 공녀가 알폰소 13세에게 관심이 없자, 그는 빅토리아 유지니에게 구애를 했다. 이에 대해 알폰소 13세의 어머니인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대비는 그리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는데, 빅토리아 유지니는 귀천상혼 가문의 공녀였고, 가톨릭이 아닌 성공회인데다, 혈우병 보인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3]

그러나 1년 뒤인 1906년 1월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대비는 아들의 선택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결혼을 승낙하였다. 빅토리아 유지니와 베아트리스 공주스페인으로 떠나 알폰소 13세와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대비를 만났다. 그곳에서 빅토리아 유지니는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가톨릭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상 영국의 왕위 계승권은 유지할 수 없었다.


3.3. 스페인 왕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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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유지니와 알폰소 13세
1906년 5월 31일 빅토리아 유지니와 알폰소 13세마드리드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이 끝나고 궁으로 돌아가던 중 무정부주의자가 던진 폭탄으로 암살당할 뻔하였는데, 다행이 국왕 부부는 살아남았다. 그 와중에 빅토리아 유지니의 웨딩 드레스는 피로 물들었다.

이후 빅토리아 유지니는 스페인식 이름인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왕비로 불렸다. 안타깝게도 빅토리아 에우헤니아는 대중에게 인기가 없는 왕비였는데, 첫 아들이자 후계자인 아스투리아스 공 알폰소를 낳으면서 드디어 빛을 보는 듯 했다. 그러나 알폰소 왕세자는 빅토리아 에우헤니아로부터 물려받은 혈우병 환자였고, 이에 대해 알폰소 13세는 아내를 평생 비난하며 용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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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진
아이들을 낳은 후 빅토리아 에우헤니아와 알폰소 13세의 관계는 끝없이 악화되었다. 알폰소 13세는 빅토리아 에우헤니아의 외사촌인 갈리에라 공작부인 베아트리스[4]와 바람을 피운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에 대해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왕비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그녀는 다른 왕비들처럼 의료와 교육,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돕는 자선 사업을 하는 것에 집중했다.


3.4. 망명[편집]


1931년 4월 14일 공화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아 스페인 제2공화국을 선포하면서 스페인 왕족들은 프랑스로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 이탈리아로 이동한 빅토리아 에우헤니아는 알폰소 13세와 떨어져 영국스위스에서 거주했다.

흩어져있던 스페인 왕족들은 1938년 알폰소 13세의 손자 후안 카를로스의 세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에 모였다. 그러나 1941년 알폰소 13세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끼고, 스페인 왕위 계승권을 4남 후안에게 넘겼다. 결국 1941년 2월 12일 알폰소 13세는 사망하였고 빅토리아 에우헤니아는 로마를 떠났다. 이후 1968년에 빅토리아 에우헤니아는 잠시 스페인에 귀국해 증손자 펠리페 왕자의 대모가 되어주기도 했다.


3.5. 사망[편집]


말년의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망명으로 스페인을 떠난 지 정확히 38년이 된 1969년 4월 15일 스위스 로잔에서 눈을 감았다. 빅토리아 에우헤니아는 베아트리스 공주와 바텐베르크의 하인리히 공자의 자녀들 중 가장 장수했다. 장례식은 스위스 로잔에서 열렸으나 1985년 4월 25일 스페인 엘 에스코리알로 이장되어 남편과 자녀들 곁에 안장됐다.


4. 가족관계[편집]



4.1. 조상[편집]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지니 공녀
(Princess Victoria Eugenie of Battenberg)
바텐베르크의 하인리히 공자
(Prince Henry of Battenberg)
헤센 대공국의 알렉산더 공자
(Prince Alexander of Hesse and by Rhine)
헤센 대공 루트비히 2세
(Louis II, Grand Duke of Hesse and by Rhine)
바덴의 빌헬미네 공녀
(Princess Wilhelmine of Baden)
율리아 폰 하우케 여백작
(Countess Julia von Hauke)
요한 모리츠 폰 하우케 백작
(Count John Maurice von Hauke)
소피 라퐁텐
(Sophie Lafontaine)
영국의 베아트리스 공주
(Princess Beatrice of the United Kingdom)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베르트 공자
(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에른스트 1세
(Ernest I, Duke of Saxe-Coburg and Gotha)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루이제 공녀
(Princess Louise of Saxe-Gotha-Altenburg)
빅토리아 여왕
(Victoria)
켄트와 스트래선 공작 에드워드 왕자[5]
(Prince Edward, Duke of Kent and Strathearn)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빅토리아 공녀
(Princess Victoria of Saxe-Coburg-Saalfeld)


4.2. 자녀[편집]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남
아스투리아스 공 알폰소
(Alfonso, Prince of Asturias)
1907년 5월 10일
1938년 9월 6일
에델미라 삼페드로 이 로바토
마르타 에스테르 로카포르트알투사라
2남
세고비아 공작 하이메 왕자
(Infante Jaime, Duke of Segovia)
1908년 6월 23일
1975년 3월 20일
에마누엘라 데 담피에레
슬하 2남
샤를로테 티데만
1녀
치비텔라체시 공비 베아트리체 공주
(Infanta Beatriz, Princess of Civitella-Cesi)
1909년 6월 22일
2002년 11월 22일
제5대 치비텔라체시 공 알레산드로 톨로니아
슬하 2남 2녀
2녀
마로네 백작부인 마리아 크리스티나 공주
(Infanta María Cristina, Countess Marone)
1911년 12월 12일
1996년 12월 23일
제1대 마로네 백작 엔리코 마로네친차노
슬하 4녀
3남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 왕자
(Infante Juan, Count of Barcelona)
1913년 6월 20일
1993년 4월 1일
양시칠리아의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공주
슬하 2남 2녀[6]
4남
곤살로 왕자
(Infante Gonzalo)
1914년 10월 24일
1934년 8월 13일



5. 여담[편집]


  • 슬하에 5남 2녀를 두었다. 빅토리아의 손주들 중 아들수로는 외사촌오빠인 조지 5세와 공동 2등이고, 자녀수로는 이종사촌오빠인 빌헬름 2세와 공동 1등이다. 참고로 아들을 제일 많이 낳은 빅토리아 여왕의 손주는 빌헬름 2세[7]와 그의 막내 여동생인 프로이센의 마르가레테 공주[8]다.

  • 외사촌오빠 조지 5세의 왕비인 테크의 메리와 공통점이 많은데, 둘 다 귀천상혼한 귀족가문 출신이고, 3남 1녀 중 고명딸이었으며, 빅토리아 여왕의 혈우병의 영향[9]으로 나머지 남자형제들이 요절하거나 아들을 못낳고 죽었으며, 슬하에 아들 5명을 낳았고, 남편은 왕이다. 둘 다 보석에 관심이 많고 안목이 있었던 것도 비슷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조지 5세와 메리는 정략결혼을 이어졌지만 금슬이 좋았던 반면, 알폰소 13세와 빅토리아 유지니는 연애결혼으로 이어졌음에도 부부 사이가 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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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숙부 에드워드 7세의 명으로 왕족이 쓰는 전하를 허락했다.[2] 마거릿 공주는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친정인 글래미스 성에서 태어났다.[3] 빅토리아 유지니의 어머니 베아트리스 공주가 혈우병 보인자였고, 남동생 레오폴드는 혈우병 환자였다. 당시 빅토리아 유지니가 혈우병 보인자일 확률은 반반이었던 것이다.[4] 알프레드 왕자의 4녀이다.[5] 조지 3세의 4남이다.[6] 후안 카를로스 1세[7]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아우구스테 빅토리아와 결혼해 6남 1녀를 낳았다.[8] 프리드리히 3세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의 막내딸. 헤센카셀 백작 프리드리히 카를과 결혼해 6남을 낳았다.[9] 빅토리아 유지니의 경우 본인이 혈우병 보인자였으나 테크 가문의 경우에는 메리의 올케인 올버니의 앨리스 공녀가 혈우병 보인자였던 영향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