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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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Y GUNN

1. 프로필
2. 개요
3. 커리어
4. 경기 스타일
5. 둘러보기



1. 프로필[편집]




파일:billy_gunn_2014_png_by_ambriegnsasylum16_dantvwz-fullview.png

AEW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본명
Monty Kip Sopp
별칭
Mr.Ass
Bad Ass
Daddy Ass
생년월일
1963년 11월 11일 (60세)
신장
193cm
체중
121kg
출생지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
피니쉬 무브
파일 드라이버
페임 애써
원 앤드 온리[1]
유형
파워하우스 + 올라운더
주요 커리어
AEW 월드 트리오스 챔피언 1회
WWF/E 태그팀 챔피언 10회
WWF 하드코어 챔피언 2회
WWF 인터콘티넨탈 챔피언 1회
MCW 태그팀 챔피언 1회
APWA 아메리칸 챔피언 1회
BBWF 아루바 챔피언 1회[2]
WWE 태그팀 챔피언 1회
MCW 레이지 텔레비전 챔피언 1회
IWF 태그팀 챔피언 2회
TWA 태그팀 챔피언 1회
WP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1999 킹 오브 더 링 우승
NSW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팬이 만든 타이탄트론.


2. 개요[편집]


뉴 에이지 아웃로즈 파트너 로드 독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태그 팀 스페셜 리스트이다. TNA에서는 킵 제임스라는 링 네임으로 활동했었다.


3. 커리어[편집]


WWE 커리어 시작부터 태그 팀이었다. 스모킹 건스라는 카우보이 기믹이었고 바트 건과 함께 형제 기믹을 수행하며 태그 팀 챔피언에 3번 올랐다. 하지만 이 때는 태그 팀 디비전이 침체기였던 때이고, 어느날 뉴 락커스와의 경기에서 이 형제간에 트러블이 생겼는데 빌리 건이 바트를 놓고 혼자 링을 떠나버려 뉴 락커스가 이겨버렸고, 그 후 빌리 건이 악역으로, 바트 건이 선역을 유지하면서 스모킹 건스가 분열한 다음[3] 라커빌리라는 기믹으로 홍키 통크 맨의 서포트를 받으며 싱글로 활동했지만 이 역시 신통치 않았다.

그러자 곧 홍키 통크 맨을 때려 눕히고 서로 퓨드를 맺던 로드 독과 뉴 에이지 아웃로즈라는 태그 팀을 결성한다. Mr. Ass라는 명칭답게 당시 엉덩이를 강조하는 의상과[4] 제스쳐를 통해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Mr. Ass 기믹은 브루투스 비프케익WCW에서 사용한 기믹중 하나인 부티맨과 비슷했는데 Mr. Ass 기믹이 부티맨을 참고했다는 얘기가 있다.

시그네쳐 무브는 점프해서 상대의 목에 레그 드롭을 먹이는 페임 애서. (Fame Asser) DX 해체 이후엔 척 팔럼보와 함께 척 & 빌리라는 게이 기믹 태그팀으로 활동하다 팀이 해체되었다.

매니아들이 안타까운 유망주를 꼽을 때 발 비너스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데 실제로 킹 오브 더 링까지 차지하고, 당시 스티브 오스틴과 투 탑이었던 더 락과 섬머 슬램에서 1대 1 경기를 치르는등 WWE에서 작정하고 밀어 줬으나 부족한 마이크 웍[5]과 푸시를 받을만 하면 자주 부상을 당함으로써 결국 메인 이벤터로 올라 가진 못하고 되려 자버에 가깝게까지 추락한다. 공교롭게도 추락하는 과정과 기믹 또한 빌리 건이나 발 비너스나 비슷했다. 심지어는 1선급 타이틀만 획득했으면 WWE 그랜드 슬램 달성이 가능했을 정도로 푸쉬를 많이 받았기에 WWE에서 작정하고 밀어준 것이 맞다. 다만 발 비너스와의 차이점이라면 비너스는 데뷔한지 1년만에 메인급으로 올라갈 기회가 생기기 시작한 반면, 빌리 건은 데뷔 후 6년이 지나서야 메인급으로 올라갈 기회가 생기기 시작했다. 2001년 로얄럼블에서는 파이널 4에 들어감으로써 이때만 해도 앞으로 메인이벤터가 될것이 확실했으나, 불과 1년만에 메인이벤터와는 거리가 멀어진 모습이 되었다.

그가 추락하게된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강제로 기믹을 바꿔야만 했던 일인데 당시 시민 단체와 학부모들이 WWE의 선정성에 많은 질타를 가했고 빌리 건은 Mr. Ass라는 기믹을 강제로 포기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후 기믹이 너무나도 밋밋한 그냥 'The One' 빌리 건에 개성 넘치던 복장과 헤어 스타일도 바꿔야 해서 레슬러로서 매력을 잃고 만다. 이 때 에디 게레로를 누르고 인터 챔을 따기도 했지만 곧 크리스 벤와에게 패해 타이틀을 잃었고, 에디 게레로와 깨진 차이나와 연인 관계가 진행되나 했으나 이것도 흐지부지되었다. 인베이전 시기에는 완전히 자버로 떨어지고, 이후 척 팔럼보와 게이 기믹으로 다시 한 번 태그팀 챔피언을 따내며 수명을 연장하는듯 했으나 태그팀 해체후 다시 이성애자로 돌아온후 한동안 토리 윌슨을 매니저로 데리고 다녔고, 이때 제이미 노블, 니디아랑 잠시 대립하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토리랑 조용히 갈라선뒤 잠시동안 하드코어 할리와 태그팀으로도 활동했으나 결국 방출당한다. 그래도 한때 유망주였던 선수답게 2003~2004년에도 팬들의 호응은 엄청났고, 잘만하면 뒤늦게나마 메인이벤터가 될 가능성도 있었으나, 정작 2004년에는 경기 자체가 잘 안잡혔다.[6]

뉴 에이지 아웃로즈에서는 로드 독이 말빨을 책임지고 기믹이 인기를 얻으면서 그런 문제점을 보완했지만 싱글 레슬러로는 그런 부분이 끝까지 발목을 잡았다. 실제로 경기력은 대단히 좋았고, 기술 폭도 넓은데다 힘도 엄청 장사여서 고릴라 프레스나 잭 해머, 파워 슬램 등을 구사하기도 했다.[7] 그래서 과소평가를 받는 레슬러 순위권에 항상 들었지만, 결정적으로 마이크 웍이 부족했고 나이가 좀 많았다. 애티튜드 시기의 방송을 보면 짐 로스나 제리 롤러가 작정하고 빨아 주는데 빌리 건은 최고의 슈퍼 스타가 될 유망주라 자주 칭한다. 헌데 유망주라 칭했던 빌리 건은 언더테이커보다도 나이가 많다![8]

이후 2014년 컴백해서 다시 태그 팀 타이틀을 차지함으로써, WWE 태그 팀 타이틀과 월드 태그 팀 타이틀을 합쳐 총 952일로, 역대 태그 팀 타이틀을 가장 오래 보유한 선수가 되었지만 4년 뒤인 2018년, 코피 킹스턴이 기록을 갱신했다.

그러나 파워 리프트 대회에 나갔다가 테스트스테론 양성 반응이 뜨는 바람에 4년간 파워 리프트 대회 출장 정지는 물론 WWE에서도 해고되었다.

빈스 회장이 좋아하는 잘생기고 힘좋은 장신이지만 많은 푸시를 받지는 못했다.

이후 독립 단체를 전전하며 활동하다가, 2016년 11월 18일 부터 12월 10일 까지 열리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월드 태그 리그 2016에 요시 타츠의 파트너로 참전하면서 나이가 무색하게 압도적인 기량을 펼쳤고 3승 4패를 기록하였다. 2017년 1월 4일 레슬킹덤 11에 배틀 로얄에 참가하였고 마이클 엘긴에 의해 탈락하였다. 다음 날 뉴 이어 대시 흥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7월 1,2일 이틀간 신일본의 미국 흥행대회인 G1 스페셜 in USA에 참전하며, 2일째 대회에서 IWGP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타나하시 히로시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패배하고 만다.

2019년 창설된 올 엘리트 레슬링의 첫 공식 프로듀서가 되었다. 이후 더블 오어 나씽 배틀로얄에 참가한다. 그리고 11월 20일, 다이아몬드 배틀 로얄에 참가했다. 이때 오렌지 캐시디의 무자비한 킥을 맞기도 했다.

아버지를 동경해 레슬러가 될 결심한 둘째아들 오스틴 건과 같이 때때로 태그팀을 결성해 인디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아들은 2020년 1월 8일 올 엘리트 레슬링과 계약을 하게 된다. 나중에는 레슬러가 된 첫째아들 콜튼 건도 데뷔하게 된다.

10월엔 코디 로즈의 스테이블 나이트메어 패밀리에 합류했으며, 장남인 콜튼 건까지 레슬러 활동을 시작하며 건 클럽을 꾸려 활동하고 있다.

아들들과 같이 경기에 출전하면서 매 경기마다 승리를 거두면 아들들보다 담당 심판인 여성심판에게 추근덕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그러다가 나이트메어 펙토리를 배신한 QT 마샬을 향해 경고를 보내면서 격돌하지만 패한다.

계속 선역으로 활동할 줄 알았으나 폴 와이트를 공격하며 악역전환하고 아들들마저 아버지를 따라 악역으로 돌아선다.

이후 아들들과 함께 건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데,아버지가 Mr.ASS니 아들들은 ASS boys라고 놀리는 밈이 생겼다. 이 밈을 ROH 소속 레슬러 댄하우젠이 한 팟캐스트에서 써먹었고 건 클럽에 X자를 긋고 ASS boys라고 쓰인 티셔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해당 밈에 대해 아들들은 SNS를 통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이 둘의 의지와 상관 없이 관중들이 ASS boys라는 챈트도 나왔고 아버지는 마음에 들었는지 그 티셔츠를 입고 나오기도 하고 있다. 아예 공식 티셔츠로 만들어 졌고 두 아들들만 이 밈을 부정하는 재미있는 상황이 되고 있다.

매주마다 아들들이 승리를 하면 여성심판에게 추근덕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가 아들들과 같이 디 어클레임드(맥스 캐스터 & 앤서니 보웬스)과 같이 다니는데, 포비든 도어 2022에서 자신의 두아들과 맥스 캐스터와 팀을 이뤄 우에무라 유야 & 알렉스 코글린 & THE DKC & 케빈 나이트를 상대하는데, 두아들은 댄하우젠을 찾으러 쫓아가면서 경기는 빌리 건 & 맥스 캐스터 둘이서 하는 상황임에도 승리를 거둔다.

매주마다 아들들과 같이 디 어클레임드과 다니는데, 빌리 건은 아들들이 갈수록 자신을 따르지 않다가 7월 6일에 벌어진 경기에서 아들들이 디 어클레임드과 팀을 짜서 베어 컨트리 & 푸에고 델 솔 & 리온 루핀을 상대하는데, 아들들이 디 어클레임드과 경기 중 마찰이 생기며 경기는 승리를 거두나 경기 후에 두아들이 디 어클레임드과 싸우며 빌리 건은 불편한 심정에도 아들들을 버릴 수 없어 아들들의 편을 들어주며 디 어클레임드를 공격하고 건 클럽은 여전히 악역을 유지하고 다닌다.

아들들을 교훈삼아 훈계하며 계속 가르치지만 빌리 건의 아들들은 이전부터 빌리 건의 행동에 더더욱 반항적으로 변했고, 스토켈리 해서웨이가 등장하며 빌리 건의 두 아들은 빌리 건을 공격하는 패륜을 벌이고, 디 어클레임드이 나오자 콜튼 건 & 오스틴 건을 도망가고, 빌리 건은 디 어클레임드과 연합하며 선역이 되며 아들들과 대립을 피할 수 없게된다.

콜튼 건과 경기를 가지지만 여전히 실력에선 빌리 건이 더 앞섰고, 경기를 지켜본 스토켈리 헤서웨이가 오스틴 건과 같이 디 어클레임드을 공격해 시선을 방해하고 심판이 안볼 때 콜튼 건이 아버지 빌리 건에게 로우 블로우를 날려 피니쉬를 사용해 빌리 건이 패하게 되고, 경기 후에 콜튼 건 & 오스틴 건은 스토켈리 헤서웨이 밑으로 들어가면서 또다시 패륜을 저지르며 빌리 건을 구타하고, 디 어클레임드가 나서서 빌리 건을 구하려고 나서지만 당하고, 키스 리 & 스워브 스트릭랜드가 나오자 콜튼 건 & 오스틴 건은 관중석으로 도망간다.

이후 건 클럽이 ASS boys라고 불리는것에 착안해서 보웬스도 Daddy Ass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본인도 즐기면서 디 어클레임드와의 케미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그리고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하는데 도움을 줬다.

빌리 건은 디 어클레임드과 같이 다녀도 더 펌에 가입한 두 아들인 콜튼 건 & 오스틴 건과는 대립하고 다닌다.

4. 경기 스타일[편집]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손가락안에 들 정도로 기술 접수능력이 뛰어나기로 정평이 났다. 그래서인지 푸쉬를 크게 받는 선수들의 잡을 많이 해준편.

장난스러워 보이는 외모나 느끼한 기믹 때문에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힘도 엄청나서 슬램류의 기술을 쓸 때는 상당히 호쾌하게 꽂아넣는다. 기본적으로 파워하우스 유형의 레슬러이지만 올라운더에 가까운 편.

상당한 파워를 기반으로 훌륭하게 경기를 수행하며 말빨이 미흡하다는 점에서 클라우디오 카스타뇰리와 공통점이 많다. 다만 카스타뇰리 수준의 테크니션까지는 못되는 편.


5. 둘러보기[편집]


파일:PWI 로고.png PWI 선정 올해의 태그팀
디 아웃사이더즈
(1997)

뉴 에이지 아웃로즈
(1998)


케인
X-PAC
(1999)
더들리 보이즈
(2001)

빌리 &
(2002)


월드 그레이티스트 태그팀
(2003)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WE_HOF_logo.png
2019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www.steelchairmag.com/KingoftheRing2015.jpg
1999년 WWF 킹 오브 더 링 우승자
켄 샴락

빌리 건

커트 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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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브라 클러치 슬램. 클러치 자세에서 들어 올린 후에 그대로 떨어뜨린다. 주로 경량급 선수들에게 애용하는 기술로 떨어뜨리는 낙차가 매우 임팩트있다.[2] 초대 챔피언[3] 한번은 분열한 직후 TL 호퍼와 함께 2대2로 바트 건, 프레디 조 플로이드를 상대하기도 했는데 경기에서 일일 파트너인 호퍼가 바트 건한테 3카운트를 당하는바람에 패한후 빌리 건은 바트한테 화해의 악수를 청하나 싶더니 이내 바트를 때려눕히고 TL 호퍼는 옆에서 제지하려던 프레디를 때려눕히곤 빌리 건한테 잘했다며 박수쳤지만 빌리 건은 TL 호퍼에 대해서도 마치 "너 때문에 경기에서 졌고 그래서 괘씸하다"는듯이 벗은 부츠로 때려눕혔다. 그 뒤 바트 건과 프레디 조 플로이드를 차례대로 부츠로 때려눕혔다.[4] 망사 팬츠까지 입었다.[5] 이 당시에 나온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더 락의 'It doesn't matter what your name is!'이다. 그 당시의 프로모는 가히 '빌리 건의 싱글 커리어를 끝내버렸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더 락의 미친 말빨을 볼 수 있다.[6] 오히려 빌리 건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WWE에 입성해서 활동기간이 비슷하지만 빌리 건과는 달리 차후 메인이벤터가 될만한 유망주로 부류되지는 않았던 JBL이 기믹 체인지 후에 메인이벤터가 되었다.[7] 트리플 H같은 헤비급에게도 밀리터리 프레스 슬램을 구사하고, 엑스팍 같은 경량급 선수는 한손으로 밀리터리 프레스 슬램으로 집어 던질만큼의 괴력을 지녔다.[8] 언더테이커가 1962년생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그 경우는 언더테이커가 1살 연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