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구스틀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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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helm Gustloff

1. 인물
1.1. 암살범
2. 위의 인물의 이름을 딴 여객선


1. 인물[편집]


파일:external/olodogma.com/Wilhelm-GustloffF%C3%BChrer-der-schweizerischen-Landesgruppe-der-Nationalsozialistischen-Deutschen-Arbeiterpartei-NSDAP.jpg
(1895.1.30. – 1936.2.4.)

스위스에서 활동한 나치당의 간부로 나치의 외무선전국장으로 활동하며, 스위스에서 나치 하부조직을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895년 1월 30일에 독일 슈베린에서 태어났다. 그후 스위스로 이주해 스위스 기상청 소속 기상학로 근무하던 도중 1927년 나치당에 입당하여 스위스에서 나치 하부조직을 만드는데 참여한다. 나치 하부조직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기상학자로 스위스 전국을 돌아다닌 경험이 있어서였다.

그는 생전에 공공연히

자기 어머니와 아내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지만 총통이 그들을 죽이라고 명령하면 복종하겠노라

고 말하던 극단적인 나치주의자였다.

이런 그였지만 개인적인 삶을 보면, 은퇴 후 아내와 살 벽돌집을 마련하기도 했고 경비를 아껴 저축도 하는, 은근히 작지만 인간적인 면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스위스 나치당의 당수로 활동하다가 1936년 2월 4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유대인 의대생인 다비드 프랑크푸르터(1909~1982)에 의해 암살당했다.


1.1. 암살범[편집]


프랑크푸르터는 만성골수염에 시달리면서 성적도 별로고 아버지한테 용돈이나 타 쓰는 그저 그런 의대생이었다. 그런데 히틀러 집권 후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런저런 박해를 겪으면서 여러모로 상황이 여의치 않자 자살을 하려 했다. 그러던 중 특별한 신념이나 의도도 없이 돌연 나치당의 간부를 암살하는 정치적인 행동을 감행해 버렸다.#

프랑크푸르터는 스위스 법정에서 1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후 2차대전이 끝나고 석방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로 가서 영웅이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 국방부에 특채돼 군무원으로 일하다 이스라엘군육군 장교로 임관했고, 이후 직장을 옮겨 천수를 누렸다. 그가 죽은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의 몇몇 거리공원이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독일에서 저랬다면 진작에 죽었겠지만, 스위스에서 단 1명만 살해한 덕에 목숨은 부지했고, 교도소에서 18년간 젊은 시절 고생하긴 했어도 석방된 뒤 이스라엘에서 영웅 대우 받고 천수를 누렸으니, 나름대로 인생 역전에 성공한 셈이다.


2. 위의 인물의 이름을 딴 여객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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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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