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 공개수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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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특명 공개수배 당시 타이틀

1. 개요
2. 특징
3. 역대 진행자
4. 여담
5. 방송사고
6. 합성물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KBS에서[1] 방송하였던 대한민국사건사고범죄예방 등의 전폭적인 검거 효과를 노려 제작된 교양 프로그램으로, 생방송 형식이며 3기[2]에 약 1년간에 걸쳐서 방송되었다.

1~2기 때 담당 부서는 제작본부 휘하 교양국(구 TV본부 TV1국)이었다가, 3기 때는 교양정보팀이 차례로 맡은 바가 있었다.

2기 방영 당시의 KBS 뉴스 9 보도 내용


2. 특징[편집]


실제로 우리 주변에 발생한 각종 범죄/실종 사건들을 재연하며 목격자 증언, 전문가 견해, 시청자 제보를 토대로 용의자의 몽타주를 컴퓨터로 작성하여 해당 사건의 범인을 공개수배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도 진짜 사건 용의자의 사진을 방송에 내보내다보니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진행과 분위기는 말 그대로 엄격 진지 근엄. 특히 공개수배할 때의 음악이 워낙에 압권인지라, 수사반장 메인 음악과 더불어 여러 패러디나 개그 코너, 이를테면 개그콘서트 춤추는 대수사선에 사용되기도 했다.

1기 때는 방영 초기 경찰의 비밀주의적 수사관행 등으로 불안한 면이 있었으나, 경찰 측의 인식 변화와 수사관들의 협조로 점차 'TV공개수사' 방식이 정착되기 시작했다. 이 방식을 통한 첫 성과는 제3회 '혀잘린 아이들(1993년 5월 15일 방영분)'에서 드러났는데, 사건현장 재현 당시 범인 정XX의 손가락에 새겨진 '임금 왕(王)' 자 문신, 왼발 용꼬리 문신, 오른다리 장미줄기 문신 등이 포착되자 한 교도소의 모 교도관의 제보로 방영 이틀 만에 범인이 검거되었으며, 피해 아동의 사연이 알려지자 KBS 사원들이 수술비 3백만원을 모금하여 피해자의 가족에게 전달한 바 있다. 1994년 2월 기준으로 '지명수배자 꽃뱀 한○○ 사건'[3], '유가증권 상습사기사건'[4] 등처럼 범인 총 39명을 검거했으며, 방영 시간인 매주 토요일 밤 8시가 주말연속극 시간대라 단점이 있음에도 시청률은 20%대를 웃돌았다.#

2기 시절이던 2001년 당시 KBS 공개수배 사건 25시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수배 음악을 WAV 파일로 공개를 했기 때문에 2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MBC 경찰청 사람들의 종영 시기가 초고속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인 1999년 초였던 탓에 음원이 공개되어 있지 않다가 20여년이 지난 2021년에 비로소 공개된 것을 감안하면, 사건 25시쪽이 시대를 20년이나 앞선 셈. 3기인 특명 공개수배 시절 초반에는 수배음악을 새롭게 리믹스한 NEW 버전을 선보였는데 8회까지 그렇게 나오다가 9회부터 원래대로 바꿨다.[5] 사실 가장 유명하다는 2기 때의 음원 또한 1기 당시의 음악을 리메이크한 것이다.[6]

한편으로는 당시 어린이들에게 어마어마한 공포를 자아내던 프로그램으로 유명한데, 범죄자들을 공개수배할 때 나오는 배경 음악부터가 왠지 모를 공포감을 유발했고 실종자를 찾는 에피소드, 변사자 몽타주가 나오는 에피소드는 평상시의 공개수배 음악이 아닌 1996년 영화 데이라이트의 OST 7번 트랙 Leaving George,[7]# 데이라이트의 OST 2번트랙 Latura's Theme,# 데이라이트의 OST 9번트랙 The Tunnel Claims Its Own,#[8] 영화 더 록의 Hummell Gets The Rockets,#[9] 반젤리스의 Prelude,#[10] 호러영화 나이트메어 1편 프롤로그 음악# 등이 재생되었다. 변사자 공개수배인데 대놓고 호러 영화 음악을 넣었다는 점은 당연히 비판받아 마땅할 일이다. 근데 이게 도리어 범인을 공개수배할 때보다 더 무섭다는 평도 있었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의 방영 시각이 밤 시간대[11]였던 탓에 여운이 남아서 밤잠마저 설친 사람도 적잖게 있었다고 하며, 이쪽에 트라우마가 있는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변사자 공개수배 때 평상시의 음악이 나오는게 덜 무섭다는 평이 있기도. 그나마 변사자/실종자들의 수배 화면에서는 이런 음악이 나오다가 스튜디오로 넘어갈 때 평상시의 공개수배 음악이 나와서 그나마 공포감이 줄어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방영했던 MBC경찰청 사람들과의 비교를 빼놓을 수 없는데, 사실 1기 때는 경찰청 사람들이 과거 실제 사건사례를 각색해서 재연하는 내용밖에 없었기 때문에 차별화되어 있었지만[12] 2기 때는 경찰청 사람들에서도 '용의자를 찾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범인 혹은 변사자 공개수배를 했기 때문에[13] 간혹 양쪽 프로그램에서 모두 공개수배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래서 그 범인이 검거될 경우 서로 자기네 프로그램 덕분이라고 하는 촌극이 발생한 적이 있다.

때로는 신창원[14]이나 이근안[15], 박노항[16] 등 유명세를 타는 범죄자들을 수배했고, 그 결과 해당 범인의 검거 및 자수율이 50%를 육박하는 보람을 거두었다. 심지어 자신이 저지른 사건이 방송될 것임을 신문 등을 통해 접한 범인들이 아예 자수해버리는 경우도 많았는데, 일례로 1999년 4월 7일 방송분에서는 부산 개 절도단과 광주 노숙자 살인 용의자를 공개수배할 예정이었으나 두 사건 범인들이 모두 방송 직전에 자수해버리는 바람에 그냥 사건의 재연 내용만 내보냈고 수배 장면은 편집했다. 이 경우에는 재연 내용 중에 나가는 범인의 얼굴/실명 등을 모조리 편집해야 하는데, 이때 나오는 배경 음악은 편집하지 않은 탓에 간혹 어색한 장면도 있었다.

이는 3기인 <특명 공개수배>에도 이어졌는데, 2007년 6월 21일에 방영된 무등산 교통사고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자신이 수배된 방송을 시청한 뒤 이틀 만에 자수한 것을 시작으로 방송이 종영될 때까지 총 11명의 용의자가 자수하였으며, 방송 전에 자수하거나 검거당하거나, 혹은 심리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2007년 8월에는 울산에서 발생한 270억대 사기사건의 용의자를 검거하기 위해 담당 형사들이 용의자의 지인들에게 해당 프로에 나간다는 소문을 퍼뜨렸기에 소문을 들은 용의자가 스스로 울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를 찾아가 자수하기도 하였으며#[17], 2007년 8월 9일 두 번째 방영분에선 천안의 한 가정집 안에서 베트남 아내를 살해한 남자가 방송 3일 전에 경찰에 의해서 검거가 되었으며 원래 공개수배를 하려던 장○○은[18] 결국 검거가 되어서 사진과 얼굴이 공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18일 방영 예정이었던 춘천 꽃뱀 공갈단 사건의 두 명의 용의자들 역시 자신들이 방송에 나간다는 소식에 방송 전날과 당일 오전에 부산에서 자수하였으며, 이듬해 1월 17일 방영된 인천 중구 CMS 사기사건[19]의 용의자 역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탓에 위조된 신분증에 붙여진 사진과 은행 CCTV를 통해 알아낸 신체적 특징 등을 방송에 내보냈는데, 방송당일 가족들과 함께 자신이 수배된 방송을 본 용의자 최○○가 깜짝 놀라 방송을 보고 2시간 만에 서울노원경찰서를 찾아가 자수하였으며, 두달 후 8명의 조직원들이 추가로 검거되었다. 자살의 경우는 11화에서 나온 울산 신정동 미용실 살인사건[20]과 2화에서 나온 동대문 노파 살인사건[21]이 있는데, 울산 신정동 미용실 살인사건은 방영 당시에는 금은방 CCTV에 찍힌 모습만 나와 신원을 알 수 없었으나, 방송 2주만인 13화에서 추적 끝에 용의자의 이름이 '이○○'이라는 것을 밝혀냈으며, 두달 후인 22화에서 한번 더 수배했지만[22] 2008년 3월 9일에 부산 기장군의 한 야산에서 자살한 채로 발견되었다.[23] 동대문 노파 살인사건의 경우 방영 당시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등 장안의 화제가 되었으나, 7화 방영 초반에 용의자 강씨가 자살한 채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방영시기도 비교적 인터넷이 발달한 2007~8년에 방영되다 보니 TV 방영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도 자신의 모습이 알려지기 쉽다 보니 방송을 본 용의자들을 자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 봐야될 듯.[24]

또한 이 프로그램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한 것은 변사체의 신원을 수배하여 범인 검거로까지 이어진 경우와 범인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목격자를 찾는 방송을 통하여 끝내 범인을 검거한 경우였다. 변사체 신원수배는 2기 기준으로 총 10건이 방영되었는데 무려 5건이 해결되어서 정확히 50%의 해결 확률을 기록했으며, 2000년 2월 23일 방송분에서 다룬 부산 뺑소니 사망 사건과 그 해 12월 2일 방송분에서 다룬 부산 범일역 노숙자 피살 사건이 바로 방송의 힘으로 범인조차 알 수 없던 상황을 반전시킨 사례였다.

부산 뺑소니 사망 사건은 동아대학교에 재학중이던 여학생이 금곡역 앞 횡단보도에서 음주운전 차에 치여 사망한 사연이었는데, 동아대학교 학생들이 사건 25시 제작진에 제보하여 방송이 성사된 것이었다. 사건 발생 시각이 한밤 중이었던 탓에 목격자조차 없던 상황이었지만, 피해자와의 충돌로 현장에 남아있던 박살난 차량 부품 일부를 감식한 결과 1992~1993년식 현대 엑셀로 밝혀졌고 이를 토대로 사고 직전 및 직후 형태를 재구성하여 방송에 내보냈다. 그리고 방송을 본 카센터 사장이 얼마 전 정비했던 차량과 일치한다는 점을 수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하면서 방송 하루만에 범인이 검거되었다.

그리고 부산 범일역 노숙자 피살 사건 역시 결정적인 상황을 목격한 사람도 CCTV도 없던 와중에 유일한 실마리는 피해자가 쥐고 있던 스웨터 한벌이었다. 그래서 방송에서는 이 스웨터를 중점적으로 내보내고 사건 전후로 피해자를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상황을 재연하여 내보냈는데, 방송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한 그 스웨터를 알아본 시청자의 제보로 대구에서 범인을 잡았다.

다른 한편 1999년 5월 19일 방영분에선 5.18 민주화운동 실종자 이야기를 다루거나, 9월 29일 방영분에서는 이내창 의문사 사건을 다루는 등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의문사 및 실종 사건을 다뤘고, 심지어 미국 연방수사국의 의뢰를 받은 적도 있는데[25] 1996년 미국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한국으로 달아난 재미 교포 데이비드 남을 1999년 3월 3일 방송분에서 공개수배해 다음날 새벽 경북 경주시에서 검거했다. 이에 미국 FBI에서도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고. 당시 KBS 뉴스 9 보도 내용[26] 다만 이 때는 한미 범죄인 인도협약이 발효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실제 미국으로 송환되지 않았는데 자세한건 데이비드 남 항목 참고.

이렇듯 이 프로그램은 범죄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고 경찰에게는 말 그대로 오아시스나 다름없었는데, 한편으로는 모방범죄의 가능성을 지적하는 의견도 제기되었고 이따금씩 범인이나 재연 배우, MC, 전/현직 경찰관들의 인권이 침해된다는 비판까지 겹치면서 끝내 종영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2기가 3년 2개월로 가장 길었고 1기와 3기는 1년 남짓밖에 방영되지 못했다. 3기는 1년도 못채운 10개월정도였다.[27] 재연 배우의 경우에는 대체로 한정된 집단 내에서 섭외됨에 따라 이따금씩 재연 배우를 진짜 범인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고 경찰의 잘못된 수사로 인해 무고한 인물이 수배되거나, 잘못된 정보를 유포하면 그만큼 당사자에게 큰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문제점이 컸다

1기의 경우 내용상 문제 탓에 방송위원회로부터 여러 차례 경고 내지 주의 조치를 받았고, 특히 1994년 6월 18일 '가짜수도승 금품사기 사건' 편은 재연 과정에서 사건과 무관한 남매 사진을 무단으로 방송하여 개인 초상권 및 명예를 훼손했다며 '경고' 조치를 받았다.# 또한 서울 미아리 일대 집창촌 거점 폭력조직을 다룬 '텍사스의 황제(1994년 7월 2일 방영분)' 편의 경우, 방영 중 자막으로 '제작 방해 및 중단 사례'를 열거할 당시 8번째 장면에 '6월 28일 모 신문 기자, 사건25시로 찾아와 촬영대본 내용에 문제제기'라는 식으로 해당 기자를 조폭의 동생이라는 식으로 잘못 엮는 바람에 문수복 CP(당시 TV1국 제작1부주간)와 조규진 PD가 당사자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소송당한 바 있었다.

2기의 경우, 수배자가 이후에 무죄판결을 받고 프로그램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28] 이 때문인지 KBS에서는 해당 프로그램의 영상 복사 판매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29] 지금까지도 다시보기는 커녕 KBS 유튜브 공식 계정에도 올리지 않아서 굳이 보려면 인터넷에 떠도는 불법 녹화본/저화질 VOD 추출영상을 봐야 하거나, 아예 KBS에 취직해서 KDAS를 조회하는 방법 외엔 없다. 이는 공개수사 실종이나 소비자 고발도 마찬가지다. MBC가 경찰청 사람들을 현재까지도 다시보기를 지원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반대 여론이 조금 더 높은 편이다. 모방 범죄 같은 경우에는 어차피 인터넷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데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지 않는 현재 범죄 수법들이 오히려 잔인해지면 잔인해졌지 결코 흉악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내용상 부적절하다는 지적 역시 막장 드라마나 영상툰, 썰사연 동영상, 뉴스 프로그램에서 범행 수법 설명을 생각해보면 딱히 이 프로그램을 없앤다고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다. 그나마 범인이나 실종자를 공개수배하는 것 자체는 인터넷을 통해서 어느 정도 커버가 된다쳐도, 신원을 알 수 없는 변사체 사건의 경우에는 이 프로그램이 아니고서는 사실상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프로그램의 부활을 애타게 요구할 정도이다. 사건 25시와는 달리 특명 공개수배는 방송 초반부나 말미에 지난주 수배했던 용의자들을 다시 수배한다.

실제로 변사체가 발견될 경우에는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수배 전단을 뿌리는게 일반적이라 사실상 오프라인에서 진전을 기대할 수가 없거니와 거의 모든 것이 미궁에 빠져 있다는 사건의 특성상 사건 25시나 특명 공개수배 같은 프로그램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다각도로 접근해야 시청자들의 제보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런 특성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사례가 1999년 4월 2일 경북 칠곡 팔공산에서 발생한 토막 변사체 사건인데, 경북도경 칠곡경찰서에서 변사자의 몽타주까지 작성하여 대구/경북 일대에 배포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다가 두 달 후인 6월 30일 사건 25시에서 이 사건을 자세하게 다룬 뒤 결정적인 제보[30]가 들어와 범인을 검거했다.[31] 한마디로 사건 25시가 아니었으면 영영 미궁에 빠졌을 사건. 오죽하면 당시 경북도경 칠곡경찰서장이 정복 차림으로 사건 브리핑을 하면서 공개수배 사건 25시 덕분이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다른 방송사 보도 내용. 이후 1999년 9월 말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발견된 여성 변사체의 신원 확인 및 범인 검거에도 결정적인 공을 세웠는데, 해당 사건은 1999년 11월 17일과 1999년 12월 22일 두 번에 걸쳐 신원 수배되었고 이후 범인이 잡히면서 무기징역형을 받았다고 한다.[32] 범인은 1955년생으로 방송 당시에 40대였는데, 범인은 국과수 직원과 시민의 제보로 경찰에 검거된 후,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었다.[33]

  • 2000년 4월 26일 방송분에서 부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방송하였다. 범인은 택시를 타고 장소까지 도착하려고 하다가 흉기(칼)로 택시기사를 살해하고 택시를 빼앗아 달아났다. 범인은 자신의 집으로 도주를 한 상태였고 몽타주로 공개수배를 했다. 시민의 제보로 범인이 검거되었고, 무기징역 및 사형을 구형받았다.

  • 2000년 5월 6일 방송분에서 대전에서 일어난 변사사건을 수배하였는데,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었다. 저수지에서 발견한 것은 가방이었는데 사람이 들어있어서 뼈는 시컴한 검정색이었다. 범인은 남성 2명인데 여성을 살해해서 비닐봉지와 수건을 사용했고, 가방에다 사람을 넣고 저수지에다 던지고 달아났다. 검정 원피스를 입은 여성의 신원수배를 했고, 국과수에다가 갖다놓고 범인이 누구인지는 국과수 직원이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국과수 직원과 시민의 제보로 범인 남성 2명을 검거를 했다. 대전○○경찰서는 범인 남성 2명은 나이가 20~30대사이로 보였고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조사를 받았지만 빨간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추정되었고 범인 2명은 범행도구를 가방과 비닐봉지, 수건을 준비했던 것이다. 충남도경 대전○○경찰서[34]는 범인 2명이 잡히다가 조사를 받고 경찰에 구속되었고 무기징역을 받았다.

주요 지역을 순회하여 전국 지역 소속 대원 형사에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재연배우들이 이후 지상파 드라마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 측면도 있다.


3. 역대 진행자[편집]


당시의 직위로 기재했다.

프로그램명
진행자
당시 직위
진행기간
비고
사건 25시
이윤성
前 보도위원
1993.05.01 ~ 07.03
[35]
김성환
TV1국 PD
1993.07.10 ~ 31

조순용
보도제작국 차장
1993.08.07 ~ 1994.04.30

이강균
뉴스편집부 기자
1994.05.07 ~ 09.24

공개수배 사건 25시[36]
백운기
前 사회부 기자
1998.02.18 ~ 1999.04.28

박선규(14기)
前 기자
1999.05.05 ~ 2000.07.22

배종호(14기)
前 사회부 기자
2000.07.29 ~ 2001.04.28

표영준
前 아나운서실 팀장
1999.07.14 ~ 07.21
임시진행[37]
김영미
서울마포경찰서 조사반장
2000.06.03
임시진행[38]
특명 공개수배
고민정(30기)
前 아나운서
2007.05.03 ~ 2008.03.27

이창진(23기)
아나운서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아나운서/기자들이 대부분 출세(?)한 편이다. 1993년 1기 '사건 25시'의 진행자였던 이윤성은 훗날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여 인천 남동구 갑에서 4선 국회의원, 국회부의장을 지냈고, MBN 고정앵커로 진행했다. 조순용 역시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냈다. 1기 진행자 백운기 前 사회부 기자는 공채 12기 광주총국 기자이자 본사 이직 후 보도국 정치부-통일부 차장과 방곡지부 특파원, 광주총국장, 보도국작을 역임한 후 2018년 말 정년퇴임 후, MBN 뉴스와이드의 앵커로 활동했으며, kbc my fm '백운기의 시사1번지'를 진행하고 있다.

2기 진행자였던 박선규 前 기자는 익산시 출신, 남강고, 고려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공채 14기 기자로 입사하여 정치부, 사회부, 특집부 역임, 걸프전, 소말리아 내전, 수단 내전, 유고슬라비아 내전, 카슈미르 지역 등 종군 기자로 활동했으며, 2006년 1월 초 퇴사 후 이명박 정부 청와대 대변인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지냈다.

3기 최후의 진행자였던 배종호 前 기자는 목포시 출신, 목포고, 한국외대 노어(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1987년 공채 14기 기자로 KBS기자협회 회장, 한국기자협회 부회장, 라디오뉴스제작팀 팀장, 미국 뉴욕 특파원, 사회부, 정치부 기자로 거친 뒤 이후 2006년 8월 31일 KBS 보도국에서 퇴사한 후 한양대학교 객원교수를 거친 후, 세한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중인데,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고향인 전라남도 목포시 국회의원 출마를 시도해왔으나 번번이 공천을 받지 못하고 YTN 등의 뉴스 채널 및 종편 뉴스 정치 패널로 자주 등장하는 중.

임시로 진행한 표영준 前 아나운서실 팀장은 주로 스포츠 중계와 뉴스 및 내레이션을 했으며, 2014년 정년퇴직하여 퇴사 후 케이블 채널 스포츠 중계로 활동했다.

'특명 공개수배' 3기 공동 진행자였던 공채 30기 고민정 前 아나운서는 매 방영할때마다 안경을 착용하여 여자MC에 진행했으며, 결혼 전 한 서울 광진구의 자택에서 살았으나[39] 성남시 분당고, 경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40] 주로 TV 연예,시사,뉴스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으며, 2017년 1월 초 새해 KBS 아나운서실에서 사직서를 낸 후 퇴사하여 청와대[41] 부대변인[42]과 대변인을 거쳐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구 을에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같이 진행하던 이창진(30기) 아나운서는 현재 주로 KBS의 뉴스 프로그램 또는 각종 TV 프로그램 내레이션/라디오 프로그램 등을 진행 중이다.


4. 여담[편집]


  • 제목이 패러디 요소로도 많이 쓰인다.[43] 심지어 '공개수배 사건 25분'이라는 모바일 게임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OBS경인TV에선 경찰 25시란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정확히는 1997~2004년 폐국 시까지 iTV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던 <리얼TV 경찰 24시>의 후속작이지만, 사건25시와는 달리 실제 경찰 업무를 그대로 취재하는 프로그램이다.

  • 1기 제작진들은 '어린이 혀 절단사건(1993년 5월 15일 방영분)' 해결의 성과로 황인성 국무총리로부터 격려를 받았고, 2기 제작진들은 1999년 경찰청장 감사패와 행정자치부장관 표창, 2001년 국무총리표창 및 대통령표창을 각각 받았으며 2000년 10월 20일에는 경찰청으로부터 명예경찰로 위촉되었다.[44]

  • 1기 방영분 중 1993년 8월 14일 회차는 <특별대탐사 독도 365일> 2부 편성, 12월 25일엔 '무의탁 노인을 도웁시다' 편성, 1994년 1월 1일엔 신년기획 <1994년의 세계와 한국> 편성, 2월 9일 설날특집 드라마 <너의 뺨에 입맞추리> 편성 등으로 각각 쉬었다.

  • 이 프로그램에서 간혹 실종자를 찾는 내용이 있었는데, 아예 이 컨셉으로 제작한 '공개수사 실종'[45]이라는 프로그램이 2004년 ~ 2005년 사이에 잠깐 하다가 사라졌다. 이것은 범죄자를 수배하는 것이 아니라 실종자를 찾는 프로그램이었다.[46]이후 케이블 방송 티캐스트 계열에서 '사라진 가족'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했다. 19년이 지난 지금 현재도 그 프로그램의 오프닝 BGM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오프닝 곡을 떠올리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47][48]

  • <경찰청 사람들>과 달리 크레딧상에선 대체로 재연배우들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으며, 1기 초반에는 실제 용의자와 얼굴이 비슷한 재연 배우들을 고용하는 바람에 범인으로 오인신고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후부터는 얼굴은 달라도 어느 정도 연기력은 되는 배우들을 고용했다. 이러한 재연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로 심지어 재연 배우를 범인으로 오인해서 신고하는 촌극도 흔했다. 이 당시 가장 유명했던 재연 배우가 예명 '배달부'로 가수 활동을 병행했던 조용수였는데[49], 1994년 7월 기준으로 56회 중 40여회나 출연했다. 정작 본인은 사건 25시 출연으로 인해 인지도가 높아져 방송 및 가수 활동에 도움이 되었다면서 고마워했다고 하며, 그의 사연은 1994년 7월 31일자 KBS1 <사람과 사람들>에서 소개되었다.(조선일보, 중앙일보) 2001년 1월 31일자 <뉴스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2기 재연배우 중 알려진 인물은 전해룡[50] 정도며, <경찰청 사람들>처럼 사실성을 높이고자 담당 형사들이 직접 재연 과정을 연기했다. 다만 도저히 연기가 어렵거나 이미 퇴직한 경우 등은 어쩔 수 없이 재연배우가 경찰로 등장하기도 한다.[51]

  • 공영방송에서 정규 편성된 프로그램이다보니 실제 범죄를 다루는데도 불구하고 수위 조절 때문에 각색된 측면이 많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간혹 과한 장면이 방영되기도 했다. 일례로 2기에서는 여성의 가슴에 담뱃불 화상자국을 놓는 충격적인 장면이 여과없이[52] 나왔다.

  • 드라마 <추노>, <보좌관>, <날아라 개천용> 등을 연출한 곽정환 PD가 KBS 입사 후 새내기 시절 연출에 참여한 적이 있었고, <추적 60분> MC로 알려진 강희중 KBS 편성본부장도 이 프로그램에서 프로듀서로 근무했다.

  • 이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에피소드 중에서 미제로 남았다가 10여 년이 넘게 지나서 해결된 사례가 2가지 있는데, 2000년 8월 19일 방영된 부산 오락실 살인사건과 1998년 12월 2일 방영된 서울 노원구 주부 피살사건이다.

  • 2000년 부산 온천동 오락실 살인사건의 경우 애초부터 범인을 알 수가 없고 보안업체 직원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내보내는 바람에 수사에 어려움을 겪자 목격자를 찾는 내용이 나왔는데, 14년 가까이 지난 2014년 2월에 범인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10:48분 영상부터) 당시 사건이 터진 변소 화변기칸 문에서 발견되었던 지문 일부를 2012년에 새로 개발한 지문인식 시스템으로 분석하여 범인을 검거한 것이다. 당시 사건 현장이었던 오락실 건물#은 금강공원로 (구)안경박사 동래점 옆에 있었으며 2019년에 철거 후 재건축되었으며 S&C메디컬 빌딩으로 바뀌었다.


물론 위의 두 사건 모두 이 프로그램 덕분에 해결된게 아니라, 세월이 흘러서 발달한 첨단 수사 기법으로 해결된 것이지만 오랜만에 이 방송이 회자되었다는 의의는 있었다. 특히 노원 가정주부 살인 사건의 경우 진행을 맡았던 백운기 기자가 "이 용의자는 꼭 잡아야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이 꼭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강조했는데 18년 후 기어이 해결된 것을 보면 뭔가 짠하다.

  • 2기의 경우 MBC 경찰청 사람들과 방송 시기가 약 1년 정도 겹쳤는데, 이 과정에서 범인을 중복으로 공개수배하는 바람에 그 범인이 잡혔을 때 서로 자기네 프로그램 덕분에 검거되었다는 식으로 방송하는 촌극이 있었다. 일례로 1998년 3월 31일 경찰청 사람들과 4월 22일 사건 25시에서는 경기 광명시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용의자를 공개수배했는데, 이후로도 잡히지 않다가 10월 7일에 사건 25시에서 한 번 더 공개수배한 것을 본 형사가 구파발역에서 노숙하던 범인을 잡았다. 이 과정을 사건 25시에서 경찰의 설명까지 곁들여서 내보냈지만 정작 경찰청 사람들에서는 자기네 방송을 본 시청자의 제보로 검거했다는 소리를 했다.

  • 물론 반대의 사례도 있는데, 1998년 4월 29일 사건 25시에서 다뤘던 경기도 양평군 남한강변 10대 소녀 변사체 사건의 경우 해결되긴 했지만 결정적인 해결은 경찰청 사람들 몫이었다. 사건 25시에서 방송한 양평 소녀 변사체 사건의 경우 제보는 많이 들어왔지만 결정적인 단서를 못 찾아서 후속 방송으로만 심층 분석하던 와중이었던 6월 23일에 경찰청 사람들 프로그램이 56번 국도 강원도 춘천시 구간 배수로에서 5월 말에 발견된 40대 여성 변사체의 신원을 찾는 방송을 했고, 그 다음날 이쪽으로 결정적인 제보가 들어와서 범인을 검거했는데..... 양평에서 발견된 소녀 변사체와 춘천에서 발견된 40대 여성 변사체가 모녀 관계였던 것이다.

  •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범인 J는 동거녀 S와 평소 다툼이 잦았는데 1998년 1월 S가 가출하자 그녀의 딸인 B에게 S의 행방을 물었지만 모른다면서 반항했고, 이에 B를 양평 남한강변으로 끌고 가 죽인 뒤 유기했으며[53] 얼마 후 집에 돌아온 S 또한 다툼 끝에 죽인 후 56번 국도 춘천 구간 배수로에 유기한 뒤 달아난 것이다. 그 뒤 3월 14일에 남한강변에서 B가, 5월 27일에 춘천시 56번 국도 배수로에서 S가 발견되었고 각각 사건 25시와 경찰청 사람들을 통해 신원수배 방송이 나갔다. 그런데 S의 언니가 마침 6월 23일자 경찰청 사람들 방송을 봤고, 변사체의 신체적 특징중에서 뇌수술 흔적이 5개월 전부터 연락이 끊긴 동생과 유사한다는 점을 수상히 여겨서 춘천경찰서에 제보해온 것이다. 수사 결과 S와 동거하다가 잠적한 J의 신원이 파악되었고, J의 행방을 추적한 끝에 경찰청 사람들 방송 이틀만인 6월 25일에 춘천시 석사동에서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J를 검거했다.

  • 사건 25시에서는 1998년 7월 8일자 방송분에서 후속 내용을 다뤘는데, 춘천에서 S가 발견된 것까지는 제대로 내보냈지만 이후 춘천경찰서가 자체적으로 변사체 신원 수배 전단을 배포한 뒤 경기도 오산시에서 피해자의 언니가 연락을 해왔다는 모순된 내용에다가[54]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한 결정적인 단서가 피해자의 외투였다는 식으로 대충 내보내서 왜곡을 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모녀 살해 사건이 해결된건 어디까지나 경찰청 사람들에서 내보낸 춘천 변사체 신원수배 방송을 본 언니의 제보에서 비롯된 거였고, 특히 춘천 변사자의 신체적 특징을 언니가 정확히 진술한 덕분에 피해자 신원 파악 → 범인 검거 → 양평 변사자인 딸의 신원 파악으로 이어져서 완전히 해결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건 25시에서는 모든 내용을 대놓고 왜곡했다. 몇 안되는 흑역사인 셈.

  • 1998년 4월 22일 방송분에서는 형제서로 다른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공개수배되는 촌극이 있었다. 형쪽은 경기 광명시에서 옛 애인을 살해했고[55], 동생쪽은 전남 화순군에서 택시기사를 살해한 것이다.[56] 형은 그 해 10월 7일자 방송분에서 다시 한 번 공개수배되어 다음날 구파발역 근처에서 검거되었고, 동생은 10월 21일자 방송분에서 다시 공개수배되어 4일 뒤인 10월 25일에 검거되었다.

  • 1998년 8월 26일 방송분에서는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서 구의원을 지냈던 사기 용의자 서상수를 공개수배하였다. 서상수는 동료 구의원과 주민들에게 무려 100억원에 달하는 돈을 빌린 후 그대로 잠적해버렸다. 이에 3월부터 경찰 수사에 나섰지만 행방이 묘연해지자 수배에 들어갔고 수배 일주일만인 9월 2일에 검거되었다.

  • 1999년 3월 24일 방송분에서는 서울 독산동의 한 공터[57]에 놓여있던 냉장고 안에서 발견된 변사체의 신원을 수배하였다. 시신의 부패는 심하지 않았으나 얼굴 부위에 멍이 심해 얼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서울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조모 교수[58]가 몽타주를 작성했고 입고 있던 옷과 가방 등의 유류품을 방송하였다. 평소 피해자와 알고 지내던 인근 주민의 제보로 피해자가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해 불법 체류중인 재중동포 전 모씨라는 것을 밝혀냈고, 전 모씨와 같이 동거하던 불법체류자 재중동포 최 모씨가 최근 잠적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서울특별시경 서울금천경찰서는 그의 행적을 조사하여 마침내 4월 14일 경기도 북부 양주에서 검거하였다.[59]

  • 사소한 술값 시비 때문에 벌어진 사건도 있었다. 바로 2000년 2월 17일 새벽 3시 40분경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3동 당시 카니발 주점 앞에서 남자가 피를 흘린 채 바닥에 누워 있었고, 이걸 새벽에 퇴근하던 행인이 발견 뒤 신고하였다. 발견 당시 남자는 신발이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고 호주머니에서 나온 찢겨진 신용카드를 통해 신원을 확보했는데 피해자는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33살 박모 씨였다. 사건 당시의 행적으로 추적해보면 전날 16일 오전 8시 30분경 피해자가 몰았던 흰색 포터[60] 트럭의 뒷바퀴 판스프링이 고장난 걸 발견한데다, 마침 피해자의 아버지도 영천시내에 있는 병원에 가려던 상황이어서 두 사람은 같이 트럭에 타고 시내로 향하였고 피해자는 망정동에 있는 카센터에 들러 차 수리를 맡겼다고 한다. 그후 오후 늦게 수리가 끝나고 차 열쇠를 넘겨받은 피해자는 카센터 노상에 차를 세워둔 뒤 근처 식당에서 친구랑 같이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피해자는 아버지에게 술한잔 하고 금방 들어가겠다고 전화를 하였는데[61], 피해자는 2차로 완산동에 있는 모 주점에 가서 술을 마시고 밤 11시에 가게를 나선 뒤 변사체로 발견된 새벽 3시 30분까지 그의 행방이 묘연했다. 그런데 정작 영천 카센터 앞에 있어야 할 피해자의 트럭이 어째서인지 범어3동 대구동천초등학교 뒷골목에서 발견되었는데[62] 경찰은 트럭의 차문이 열린 걸 확인하고 차 안을 수색하자 운전석 아래에 피해자의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곧바로 차량에 혈흔반응검사를 해본 결과 차안 곳곳에 핏자국이 발견되었는데, 이상한 건 운전석과 피해자의 운동화에선 핏자국이 안 나온 것이다.[63] 또한 피해자는 가슴에 칼 한 방 맞고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과일칼로 추정되고 계획적인 살인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현장사진을 보면 핏자국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거기에 피해자가 발견된 지점엔 피해자가 입고 나갔던 가죽점퍼도 없었는데 이는 피해자가 면식범에 의해 실내에서 다투다가 살해된 걸로 볼 수 있다. 그 후에 밝혀진 사건의 전말은 피해자가 사건 전날 16일 밤 11시경 완산동 주점에서 계산을 하고 카센터에 맡겼던 트럭을 찾으러 가기 위해 택시비 빌려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그때 우연히 가해자와 만난 피해자는 같이 택시를 타고 망정동으로 간 것으로 보이며 거기서 술값 문제로 다투다가 가해자가 우발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한 것이었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조수석에 태운 뒤 영천시 망정동에서 대구시 수성구 범어3동까지 자신이 몰고 질주한 것으로 밝혀졌다.[64] 대구에 도착하여 범어3동 카니발 주점 앞 골목에 피해자를 유기하고 달아났던 가해자는 트럭을 동천초 뒷골목에 버리고 달아났다가 방송이 나가고 몇 개월 후 같은 해 4월 대구에서 검거되었다고 한다.[65]

  • 그런가 하면 2000년 1월 5일 방송분에서는 대전에서 발생한 정신건강의학병원 감금 용의자를 공개수배하였다. 기막힌건 용의자가 친누나였고 피해자가 남동생인게 밝혀졌고 방송을 본 용의자가 충남도경(현.대전광역시경) 대전중부경찰서에 그 날 자수했다. 당시 용의자는 피해자에게 진 채무를 안 갚으려고 저지른게 드러났다.

  • 1기와 2기에서 똑같은 범인을 수배한 적도 있다. 1기 시절이었던 1993년 9월 11일 방송분에서 마작 빙자 사기단이 공개수배되었고[66] 11월 27일 방송분에서 한 번 더 다룬 뒤 범인들이 잡혔는데[67] 출소한 뒤 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하는 바람에 2기 시절인 1998년 10월 7일자 방송분에서 또 다시 공개수배 된 것이다.

  • 3기(특명 공개수배)에서는 신고자의 목소리를 수배한 경우도 있었는데, 2007년 9월 19일 수원에서 발생한 30대 남성 피살 사건[68]으로 피해자는 사건 전날 밤부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서 술을 마셨는데 새벽 3시 30분에 친구들과 헤어진 후 행방불명되었다. 그런데 50분 정도 지난 후 수원소방서[69]에는 장안구 송죽동 수일여중 인근의 도로변에 주차 된 차량에 사람이 쓰러져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출동한 소방관과 경찰관들이 차량 문을 따서 확인해보니 뒷좌석에 넥타이로 양발이 묶인 채 사망해 있었다고 하였다. 이후 수사를 통해 피해자가 최종 목격된 인계동을 기준으로 송죽동은 피해자의 집과는 반대 방향인데다가 피해자는 만취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자의 차량은 범인이 운전했다는 것과 피해자의 차량 예상 이동 경로에서 피해자의 차량 뒤로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뒤따르고 있었는데 이 차량의 운전자는 피해자의 차량을 운전한 범인과 최소 2명 이상의 공범이라는 점[70], 그리고 피해자의 최종 목격 후 차량이 도로 상 CCTV에 포착되기까지 30분의 공백이 있는데 이 시간에 인계동 유흥가에서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였는데 피해자의 차량은 물론 이후 발견된 용의 차량에서조차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고[71], 신고자 역시 공중전화를 통해 1분여의 신고 내용이 담긴 목소리를 남기고 사라졌으나 성문 분석을 통해 170cm 전후의 키에 다부진 체격의 20대 후반~30대 초반의 남성이며, 경북 지방 말씨가 섞여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러나 신고자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아 어떻게 피해자가 차량 안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는지 알 수 없어 신고자가 단순 목격자이거나 범행 현장을 목격한 경우, 그리고 신고자가 용의자 중 한 명일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는데 당시 피해자의 차량은 문이 잠겨있는데다 썬팅이 짙었기에 낮에도 내부 식별이 되지 않았으며[72] 신고 당시 공중전화를 이용한데다 자신이 잘 알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73] 그렇게 같은 해 10월 11일 방송을 통해 수배 되었지만 방송 종영 후에도 검거되지 않았는데 2009년 6월 말 쯤, 사건의 용의자를 알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어 수사가 재개되었다. 이 사건의 주범 이○○는 방송 한 달 후인 2007년 11월, 절도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되었는데 수감 생활을 하던 도중 다른 수감자에게 자신의 살인을 털어놓았고, 이후 이 사실을 전해 들은 또 다른 수감자가 2009년 6월 출소 후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이후 경찰은 성문 분석을 통해 신고자의 목소리가 특수 절도 혐의로 수감 중인 전○○의 목소리와 일치한다는 점을 추궁한 끝에 전○○에게 자백을 받아 전○○을 포함한 공범 3명을 검거하였으며 2009년 5월 출소 후 대구 등지를 전전하던 주범 이○○ 역시 같은 해 7월 검거하였다.

  • 특명 공개수배에서는 같은 경찰서의 같은 팀에서 서로 다른 사건의 용의자를 방송에 수배하였는데 두 사건 모두 용의자가 자신이 수배 된 방송을 보고 5일 만에 자수하기도 하였다. 첫 번째 사건(2007년 10월 4일 방영)은 시골에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용한 점쟁이를 소개 시켜주겠다며 액땜 비용으로 거액을 찾게 한 뒤 양말 속에 넣어 신문지가 든 양말과 바꿔치기한 사기 용의자[74]였으며, 두 번째 사건(2007년 11월 1일 방영)은 문중 묘지를 돌며 문화재 절도를 저지른 용의자[75]였는데 두 용의자 모두 경북도경 상주경찰서 강력팀에서 수배한 용의자들이었으며, 용의자 자수 후 담당 형사의 브리핑에서 용의자가 해당 프로를 시청한 후 심리적 압박감 속에 자수를 결심한 것 같다고 말하였다.[76]

  • 경북 영주에서 발생한 2건의 사건은 초기 수사에서는 진전을 보여 공범들은 검거하였으나 주범은 검거하지 못해 특명 공개수배 방송을 통해 용의자들을 수배하였는데 첫 번째 사건(2007년 8월 16일 방영)은 영주의 재력 있는 소 장수에게 소 판매를 명목으로 접근하여 꽃뱀과 만나게 한 뒤 성폭행을 당했다고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려 한 꽃뱀 공갈단 사건이었으며[77], 2번째 사건(2008년 2월 28일 방영)은 영주의 한 장례식장에 문상객을 가장하여 들어간 뒤 발인 날 새벽에 부의금을 훔쳐간 사건이었다.[78]

전자는 일당 중 한 명이 영주에서 소를 사육하는 자신의 친구를 범행 대상으로 삼고 소를 거래하자며 접근한 다음 또다른 일당과 만나 예천의 다방에서 가격이 맞지 않다며 거래를 무산시켜 자리를 뜨면서 꽃뱀과 만나도록 유도하여 식당, 노래방까지 함께한 뒤 배가 아프다며 피해자와 꽃뱀 둘만 남게 하여 피해자를 유혹해 정신을 잃게 한 뒤 나머지 일당들이 나타나 성폭행범으로 고발할 테니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하여 차용증을 받아 챙겼다.[79]
그러나 피해자가 약속한 날짜에 돈을 갚지 않자[80] 일당이 피해자의 집으로 찾아가는데 피해자의 아내가 저항을 하며 일당을 내쫓자[81] 피해자를 경찰서에 고소하였는데[82] 피해를 주장하는 꽃뱀의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83]과 사건이 일어난 노래방의 구조[84] 등으로 인해 돈은 한 푼도 못 뜯어내고 들통난 사건이었다.[85]
후자는 용의자들이 영주의 한 장례식장에 다음날 발인을 앞두고 있는 빈소에 문상객을 가장해 조문을 하는 척 하며 빈소 내부를 둘러본 뒤[86] 유가족들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발인 날 새벽에 유가족들이 잠든 틈을 타 부의함을 들고 도주하였는데, 그로부터 몇시간이 지난 후 잠에서 깬 유가족들은 부의금을 도난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경찰에 신고하였다.[87]
그렇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피해자의 진술을 확보함과 동시에 장례식장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하는데, 수사 초기 CCTV 화면에는 최소 3명의 남성으로 추정되는 용의자들이 부의함을 들고 나가는 장면과 공범 중 1명은 뒷머리에 원형 탈모가 있다는 것 외에는 단서가 없었지만 새벽 시간 대에 부의함을 통째로 들고 갔다는 점에서 용의자들이 자동차를 이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용의 차량을 찾기 위해 영주 시내를 탐문하던 중[88] 장례식장에서 1km 떨어진 골목에서 부의함을 발견하면서 용의자들의 예상 이동 경로를 추정한 결과 영주 톨게이트를 이용해 영주를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높아 톨게이트 CCTV를 통해 영주를 빠져나간 차량들을 확인한 끝에 용의 차량을 특정하여 차적 조회를 한 끝에 공범들을 검거한 사건이었다.[89]
방송에 수배 된 용의자들 중 첫 번째 사건은 방송 3일 만에 시청자의 제보로 대구에서 검거되었으며, 두 번째 사건은 방송 한 달 후인 2008년 3월 27일 마지막 방송에서 한 번 더 수배 된 후 같은 해 5월 3일 방송을 기억하고 있던 시청자의 제보로 검거되었다.[90]

  • 이런 공개수사 프로그램의 원조로 독일 ZDF미해결 서류번호 XY(Aktenzeichen XY … ungelöst)가 뽑힌다. 1967년 10월 20일 처음으로 방영#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엄청난 장수 프로그램이다.

  • 미성년자는 공개수배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미성년자 용의자는 공개수배 하지 않았다.

  • 수배 용의자가 검거되었다고 공지할 때는 검거된 용의자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다. 단 1기는 검거된 용의자의 얼굴을 그대로 드러냈다.

  • 충청남도 천안에서 발생한 자칭 도인 사기 사건의 혐의자를 수배하는 에피소드에서 MBC기인열전SBS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자료를 썼는데 이는 수배 용의자가 그 프로그램에 출연했었기 때문이다. 그 혐의자는 2000년에 강원도 원주에서 검거되었다. 수배혐의자 사진이 특이한 자세로 찍혀 있다.

  • '강남 고액과외 사기사건'의 용의자 김○○과 9년 뒤 '특명 공개수배'에 수배 된 '광명 채무자 살인사건'의 용의자 임○○를 수배했는데 놀랍게도 이 둘은 전직 경찰관이었다. 김○○은 뇌물 문제로 해고됐고, 임○○는 정년 퇴직하였다.[91]

  •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특명 공개수배 방영 이후 검거된 용의자들 가운데는 용의자를 수배한 경찰서와 가까운 곳에 숨어 지낸 경우도 꽤 많았다. 2화의 동대문 노파 살인사건의 용의자 강씨는 서울동대문경찰서에 수배되었는데 방영 1달 만인 2007년 6월 3일, 서울 중랑구의 한 아파트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채로 발견되었으며 같은 날 수배 된 부산 중학생 납치사건의 범인 성○○은 부산남부경찰서에 수배되어 방송 3달 만인 2007년 8월 15일에 부산에서 검거되었다. 4화의 인천 모래내시장 사기 사건[92]의 범인 오○○(女) 역시 인천의 아들 집에서 숨어 지내다가 검거되었으며[93], 11화의 울산 미용실 강도 살인사건의 범인 이○○는 상술한 대로 2008년 3월 9일, 부산의 한 야산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채로 발견되었다. 16화의 진주 부녀자 납치 사건[94]의 범인 안○○는 상술한 대로 도피 중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진주로 잠입했다가 잠복 중이던 진주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검거되었다. 그리고 21화의 수원 가정집 침입 강도 사건[95]의 용의자는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채 수원남부경찰서에 수배되었지만 방송 1달 반만인 2007년 11월 8일, 서울성북경찰서 형사에 의해 수원에서 검거되었으며[96] 며칠 뒤 방송에 나오지 않았던 공범 역시 검거되었다. 24화의 성남 지입차 사기 사건[97]의 용의자 2명은 성남중원경찰서에 수배되었는데 이들 중 김○○는 2008년 3월 4일에 경기도 용인에서, 방○○은 같은 해 3월 21일에 경기도 성남의 한 모텔에서 검거되었다. 25화의 대전 노래방 살인사건[98]의 범인 김○○ 역시 방송 종영 후인 2008년 5월 1일 자신을 수배한 대전둔산경찰서와 가까운 서구 갈마동의 한 원룸에서 검거되었으며, 26화의 시흥 편의점 강도사건[99]의 3인조 강도단 역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채[100]로 경기시흥경찰서에 수배되었지만 방송 하루 만에 경기도 시흥에서 서울동대문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용의자 지○○(갑)이 검거되었으며, 여자친구의 집에 은신 중이던 용의자 한○○(병) 역시 검거되었다.[101] 31화의 용인 5천만원대 통장 절도사건[102] 용의자 역시 서울강남경찰서에 수배되었는데 방송 다음 날 강남의 한 건물 주차장에서 검거되었으며 같은 날 방영된 예천 차용 사기사건[103] 용의자 이○○(女) 역시 경북 예천경찰서에 수배되었는데 방송 3일 만에 경북 안동에서 검거되었다. 그리고 35화의 부산 소매치기 절도 사건[104]의 범인 최○○(女)은 부산북부경찰서에 수배되었으나 남장여장을 번갈아가며 하였기에 검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서울과 부산 일대에서 활동한다는 제보 덕분에 부산에서 검거되었다. 그리고 38화의 부산 동래 후배 살인사건[105]의 용의자 안○○은 방송 종영 후인 2008년 5월 16일 중국으로 밀항을 시도하였으나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부산해경과 공조수사한 끝에 통영 인근의 해상에서 검거되어 부산동래경찰서로 인계되었다. 인천 뺑소니 치사 사건[106]의 혐의자 이○○은 2013년에 강원도의 공사장에서 검거되었다.[107]

  • 사건 25시와 특명 공개수배에서 공개수배를 했어도 용의자가 현재까지 검거되지 않고 미해결 사건이 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경남 고성군 하일면 소녀 유기사건, 자양면 영천호 토막 살인사건, 제천 컨테이너 방화 살인 사건, 통영시 광도면 매립지 살인사건, 분당 여자 변사체 전소사건, 천안 토막 살인 사건, 최용배최해문이 있고, 신명호는 11년 간 미제 사건이었다가 2018년에 지병으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으며, 서울 지하철역 연쇄 납치 살인사건의 용의자와 인천 계양구 놀이터 살인 사건의 용의자[108], 전주 택시회사 경비원 살인 사건의 용의자[109], 서산 여인숙 업주 살인사건#[110], 인천 구월동 호프집 강도 살인사건의 강도 2인조[111], 특명 공개수배 10화의 청와대 사칭 사기사건의 사기꾼 유창무[112]와 같은 날 방영된 포항 축의금 강도 사건의 용의자 박종대[113], 특명 공개수배 36화의 익산 찜질방 절도사건의 용의자 김기문[114] 역시 마찬가지이다.

  • 경북도경 경산경찰서가 수사한 막띠미산 변사체 사건도 영구미제 사건이다. 이 사건은 1999년 9월 28일 경상북도 경산시 막띠미산 정상에서 변사체가 발견되었는데 양팔이 결박되어 있고 발목에 테이프가 묶여있는체 발견되었다. 피해자 주변에 샌들과 귀금속이 발견된걸 봤을땐 피해자는 맨발로 쫒기다가 살해당했거나 혹은 피해자랑 가까운 범인하고 둘이 같이 있다가 싸우던 도중 목졸라 살해당하고 산 정상까지 시신을 업고 올라가 매장한걸로 보인다. 국과수가 복원한 변사자의 몽타주 복원본을 방송에 나갔는데 특이사항은 치과치료를 받은 흔적이 있는데 1991년부터 살해 당한 1999년까지 30대 초반의 젊은 치과의사에게 치료를 받았다는 이력이 있다고 한다. 현재 막띠미산은 어느 산인지 위치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 2기 시절 마지막으로 방영된 미제 살인사건은 2001년 4월 14일에 방영된 춘천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남성 노인 변사체 사건으로 당시 <침낭 속의 남자>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 3월 16일 오전 10시30분쯤 춘천시 동면 감정2리 홍천방면 느랏재 터널 전방 900m지점 길 옆 야산에서 얼룩무늬에 금색 PASAR란 글씨가 새겨진 야전용 침낭 속에 70대로 추정되는 남자가 숨져있는 것을 당시 48세의 박 모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목격자 박씨의 진술에 따르면 이날 홍천방면 느랏재터널을 운행하던 중 차가 고장 나 길옆에 차를 세운 뒤 바퀴에 고정시키기 위한 돌을 찾으러 길옆 10m 아래 계곡쪽으로 내려가다보니 이상한 얼룩무늬 침낭이 있어 경찰에 신고한 것. 발견 당시 변사체는 165cm 정도의 키에 아래앞니 2개가 빠져 있었으며 상의는 회색 줄무늬 남방과 진남색 작업복 잠바 차림에 진남색 세로 줄무늬가 있는 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우측 가슴 등 3군데에 깊은 상처가 있는 것으로 보아 다른 곳에서 살해된 뒤 유기된 것으로 보이고 사체의 부패 정도와 변사자가 가을 옷을 입고 있는 점으로 지난해 9∼10월쯤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신원파악 등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했지만 혈액형이 O형이라는 것 외엔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 1999년 12월 15일에 서울 양천구에서 발생한 강도 살인사건도 영구미제다.

  • 실종자를 찾기도 했는데 대표 사례로 경남 마산(현. 창원 마산합포구)에서 1998년 3월 25일 오전에 대학 야구부 숙소를 나간 뒤 실종된 대학 야구선수를 수배했었다.[115]

  • 이 프로그램의 후속으로는 특종! 사건파일이 제작되었으며 2001년 5월 2일부터 10월 31일까지 5개월간 방영되었다.

  • 2기 사회자 중 박선규 前 기자는 마지막 엔딩(ED) 클로징 멘트시 "감사합니다." 라는 단어를 썼다.[116]


  • 1999년 2월 15일 TV내무반 신고합니다 졸병수첩 두 번째 재연 에피소드에서 32분 41초에 본 프로그램의 로고가 드러났고 #, 2000년 3월 6일 (구)제20기계화보병사단 편 병영수첩 코너의 재연 에피소드에서 21분 14초에 공개수배 사건 25시 오프닝 브금과 혐의자 수배시 등장하는 브금을 사용해서 사건 25시 배경을 섞어놓기도 했다. # 공개수배 사건 25시와 TV내무반 신고합니다가 같은 교양국(당시 TV1국) 담당이라서 가능했다.

  • 2기 시절 초창기에는 팩스로도 제보를 받았는데 이후에는 전화로만 제보를 받았다.

  • 2기 시절에는 재연 과정을 추가 설명하는 보조 MC가 있었는데, 1999년까지는 KBS 아나운서인 이성민(21기), 백정원 아나운서실 라디오팀장이 맡았다가 이후에는 프리랜서인 정연수 前 기자[117]가 맡았다. 다만 정연수는 이때의 경험을 부풀려(?) KBS 기자로 불려서 지역내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2019년 MBC 실화탐사대에서 방송되었다.

  • 탈영병은 2기(1998년 4월 8일 방영분)에서 딱 한 번 수배한 적이 있었다. 1997년 11월 14일 인천의 한 여관에서 여관주인이 강도인 탈영병 김00 일병에게 금품을 강취당하고 살해, 약 2주뒤인 11월 26일 김00은 부산에 있는 교회에서 신도들에게 상해를 입히고 금품을 강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더군다나 김00은 약물(본드)중독자에 절도전과가 있었지만 징역 1년 6개월 이하의 형을 받아서 현역 적합판정을 받았고 결국 군복무를 하게 되어 1차 정기휴가를 나와 부대로 복귀하지 않고 위 내용의 사건을 저지르고 5개월간의 도피를 하다 1998년 4월 29일 방송 3주만에 서울노량진경찰서에서 검거되었다. 다만, 내용을 보다시피 강도살인이라는 혐의로 수배된 케이스이며, 탈영병이라는 내용은 방송 중에 전혀 언급이 되지 않았다.

  • 2023년 10월 15일 역사저널 그날 통일민주당 창당방해 사건 편에 현역경찰 이대우가 게스트로 출연하였으며 공개수배 사건25시 패러디 코너 진행을 담당했다.#

5. 방송사고[편집]


인터넷 포털 등에 방송사고 장면이 도는데 이것은 당시 생방송으로 나갔던 장면을 나중에 NG 영상을 소개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편집 방송한 것이다. 뺑소니 사건을 전담하는 뺑소니 사고 전담 반장과 인터뷰를 하는데, 의자가 뒤로 밀려서 뺑소니 사고 전담 반장이 의자에 앉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어버린 것이다.



6. 합성물[편집]




7. 관련 문서[편집]


1.(괄호) : 해당 사건이 발생한 기간
2.각주A: 해당 사건의 피의자가 경찰청 중요지명 피의자로 수배 된 적이 있음
3.각주B: 미제 사건

  • 신창원
  • 이근안
  • 박노항
  • 강호순 - 특명 공개수배 1화에서 방영된 '화성 연쇄 부녀자 실종 피살 사건'[118]을 자신이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 정두영 - '부산 서대신동 강도살인 사건'으로 2000년 4월 12일에 용의자 몽타주로 수배 및 방영, 방영 당일 천안동남경찰서에서 강도 혐의로 조사 받던 정두영이 이 사건의 진범이라고 자백했다.
  • 데이비드 남
  • 이내창 의문사 사건(1989)[B]
  • 대구 성서 초등학생 살인 암매장 사건(1991)[119][B]
  • 지한별 실종 사건(1993)[B][120]
  • 대천 영유아 연쇄유괴살인 사건(1994)[121][B]
  • 영주 공기총 살인사건(1996)[A][B]
  • 경남 고성군 하일면 소녀 유기사건(1997)[B]
  • 신안 예비신부 살인사건(1997)[A][122]
  • 제천 노인 살인사건(1997)[A]
  • 화순 택시기사 강도살인 사건(1997)[A]
  • 자양면 영천호 토막 살인사건(1998)[B]
  • 광명 30대 여성 살인사건(1998)
  • 노원 가정주부 살인 사건(1998)
  • 울산 살충제 요구르트 사건(1998)[A][B]
  • 화곡동 다세대주택 살인사건(1998)[B]
  • 재야정치인 안희대 피살사건(1998)[B]
  • 송혜희 실종 사건(1999)[B][123]
  • 양천 채무자 폭행치사 사건(1999)[A]
  • 제천 컨테이너 방화 살인 사건(1999)[B]
  • 통영시 광도면 매립지 살인사건(1999)[B]
  • 전주 택시회사 경비원 살인 사건(2000)[B]
  • 분당 여자 변사체 전소사건(2000)[B]
  • 부산 미용사 살인사건(2000)[B]
  • 인천 계양구 놀이터 살인 사건(2000)[B]
  • 청주 일호장여관 살인사건(2001)[B]
  • 제천 독신녀 토막 살인사건(2002)[A]
  • 무등산 교통사고 살인사건(2003)[A]
  • 봉천동 주택가 살인사건(2003)[A][B]
  • 서울 지하철역 연쇄 납치 살인사건(2003)[B]
  • 충북 영동 40대 주부 살인사건(2004)[A][B]
  • 인천 보복 살인사건(2005)[A]
  • 김포 가정주부 피살사건(2006)[A][B]
  • 대구 식당 살인사건(2006)[A]
  • 천안 토막 살인 사건(2006)[B]
  • 제주 노형동 원룸 살인사건(2006)[A]
  • 김천 송유관 기름 절도사건(2006~2007)[A][B]
  • 광명 채무자 살인사건(2007)
  • 이기영 연쇄 살인사건(2007)[124]
  • 안양 초등생 유괴 살인 사건(2007)
  • 천안 중식당 살인사건(2007)[A]

[1] 1기 때에만 1TV였고, 2기부터 2TV에서 방영하였다.[2] 1기: 1993년 ~ 1994년 - 사건 25시, 2기: 1998년 ~ 2001년 - 공개수배 사건 25시, 3기: 2007년 ~ 2008년 - '특명 공개수배'라고 하는 새로운 명칭으로도 방송된 바 있다.[3] 1993년 6월 12일 방영분.[4] 1993년 7월 31일 방영분.[5] 사실 8회본편에서는 원래버전으로 쓰다가 방송말미에 재수배했을때만 리믹스버전을 썼으며 9회부터는 완전히 원래버전으로 바꿨다.[6] 다만 MBC 경찰청 사람들 시즌 1이 종영한지 9개월이 지난 1999년 10월 10일에 종영한 KBS 긴급구조 119 시즌1은 소방대원들이 출동, 화재진압, 구조, 구급활동을 할 때 나오는 BGM 음원들(시즌1)은 20년 가까이 지나도 완전히 듣기 어렵다.[7] 실종자, 변사자 신원수배 에피소드는 높은 확률로 이 음악이 재생되었을 정도로 대표적인 배경음악이다.[8] 1999년 경산시 막띠미산 살인사건 신원수배 때 사용되었다.[9] 1999년 독산동 살인 유기사건 신원수배 때 사용되었으나 끝까지 잘 들어본다면 후술할 M본부 기인열전의 오프닝으로 이어지며 1998년 TV내무반 신고합니다 육군 71항공정비대편과 2015년 5월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해군교육사령부 신병교육대대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던 샘 오취리가 소대장님 목소리가 그것밖에 안됩니까 라고 하는 데서 사용되었다.[10] 1997년 경남 고성군 하일면 소녀 유기사건 신원수배 때 사용되었다.[11] 공개수배 사건 25시는 수요일(2000년 5월 6일부터 종영시까지는 토요일)밤 쯤 10시나 11시 사이, 특명 공개수배는 목요일 밤 9시 방영.[12] 보통은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게 제작 목적이었지만, 간혹 황당 범죄같은 코믹한 일화도 다루었다.[13] 아이러니하게도 1994년 사건 25시가 종영되고 나서 경찰청 사람들 쪽이 유일한 범죄 예방 프로그램이 됨에 따라 '용의자를 찾습니다' 코너가 1995년 4월부터 생겼다.[14] 1998년 2월 18일 및 7월 22일 방영분.[15] 1993년 12월 18일 방영분.[16] 1999년 1월 22일 방영분.[17] 이 사건은 방송 계획이 없었던지라 예고조차 나가지 않았으며, 2007년 8월 30일 방송을 시작하면서 진행자인 고민정, 이창진 아나운서가 오프닝 멘트로 설명하였다.[18] 방영 당시 그녀의 마지막 편지라는 부제가 붙어 방영되었으나 재연 장면과 용의자 검거 후 현장검증 장면만 방영되었다. 만약에 수배가 되었다면 죽은 베트남 아내랑 같이 찍은 결혼사진이 수배되었을 것이다.[19] 방영 당시 당신의 신분증을 가진 남자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20] 방영 당시 살인의 대가 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21] 방영 당시 준비된 살인이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22] 이때 함께 재수배된 용의자는 충북 영동 40대 주부 살인사건의 용의자 최용배와 제천 독신녀 토막 살인 사건의 용의자 신명호, 김포 가정주부 피살사건의 용의자 홍덕표이다.홍덕표와 신명호는 초창기때부터 항상 재수배되었다.[23] 용의자 이○○의 신원이 밝혀질 당시 사건을 담당한 울산남부경찰서 형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가 주변 지인들에게 "내가 죽였다, 나는 죽고싶다."라는 말을 했던 것과 22화 재수배에서 기장 누나집 앞산이라는 메모를 남긴 채 잠적한 사실이 밝혀졌으며, 용의자의 사체 발견 당시 여름옷을 입고 있었다는 점에서 2007년 여름 또는 초가을 무렵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였으나 정확한 사망시기는 확인되지 않았다.[24] 실제 특명 공개수배 방송 후 검거되거나 자수한 용의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대부분의 용의자들이 자신을 수배한 방송을 보았거나 가족 또는 주변 지인들을 통해 수배된 사실을 들었다고 하였으며, 그후 아예 숨어 지내야겠다고 마음 먹거나 아예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도피생활을 이어갔던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7화의 경기 연쇄 침입 강도 강간 사건의 범인 허○(1965년생)은 자신이 수배된 방송을 본 이후 성형수술을 한 채로 3년 간 도피생활을 이어가다가 2010년 4월 검거되었고, 20억대 종합 사기 사건의 용의자 이○○은 자신이 방송에 수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방송을 챙겨봤으며, 방송 당일 자신이 수배되는걸 보고 자포 자기하는 심정으로 도망다니다가 검거되었다.[25] 한국계 FBI 요원인 이승규 전 워싱턴 지부장이 방한해서 요청한 것이었다.[26] 보도 내용을 보면 사건 25시 방송 화면도 나오는데, FBI의 수배 전단을 그대로 걸어놓은게 평상시보다 이례적인 광경이었다. 그리고 해당 보도는 당시 사건 25시 진행자였던 백운기 기자가 직접 나와서 보도하였다.[27] 경찰청 사람들이 5년 6개월, 긴급구조 119 시즌 1이 5년동안 방송된걸 보면 짧다.[28] 다만 이 부분은 다소 와전된 건데, 정확히는 2000년 10월 28일자 방송에서 여권 위조단을 수배할 때 애초 범인들이 다른사람의 명의를 도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도용 피해자 조모씨를 사건 혐의자로 단정짓는 실수를 저지른 것도 모자라 이 사람의 신원을 방송에 내보내면서 발생한 불상사. 그래서 이 날 방송분은 아예 다시보기가 되지 않았다.[29] VOD 서비스는 2001년 종영 이후 중지했으며, 이에 따라 '다시보기' 버튼을 누를 시 "범인 및 출연자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다시보기를 제공하지 않으며, 사건 관련 문의는 용의자 제보 혹은 제작팀에 얘기할 것" 이라고 고지했다. 그러나 미국 로스앤젤레스 등지의 코리아타운 내 비디오 대여점에선 교포들이 자체 녹화한 해당 프로의 비디오테이프가 비공식적으로 팔렸는데, 2000년에 신안 예비신부 살인사건 용의자 최○○과 애인 정○○이 LA에서 검거된 것도 해당 프로 녹화본을 본 교포의 제보 덕이었다.[30] 방송에서 언급한 내용 가운데 부검 결과 토란대가 들어간 음식을 사망 직전 먹었다는 언급이 있었는데, 대구에 살던 한 주부가 경북도경 칠곡경찰서를 찾아와 자신의 동생이 1998년 10월 실종되었으며 마지막으로 목격된 계모임에서 먹은 매운탕에 토란 종류가 들어있었다는 증언을 했고 DNA 분석 결과 피해자의 언니임이 밝혀졌다.[31]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지면서 주변 인물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었고 남편의 행적이 수상해서 자택을 수색한 결과 피해자의 혈흔이 발견되어 검거.[32] 여성 신원이 땅 속에 있는 뼈에서 나오는 것은 속옷(팬티)과 팬티스타킹을 착용한 것으로 밝혀졌고 신발은 구두슬리퍼였다. 여성 신원은 머리가 염색머리인 것으로 밝혀졌고 팬티스타킹(살색 팬티스타킹)이었다. 범인은 여성을 살해하고 달아났지만 1999년 12월 22일에 다시 한 번 신원수배를 했는데 국과수의 직원과 시청자의 제보로 범인을 검거를 했다. 경찰에 검거된 범인을 경북도경 칠곡경찰서에 데려와서 조사를 받게 한 후 구속되었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33] 국과수에서는 국과수 직원이 여성이 신고있는 속옷(팬티)과 팬티스타킹(살색 팬티스타킹)까지 착용한 것을 보고 흰색 엘란트라 승용차를 탄 사람이 범인이라고 지목을 했다. 여성 신원은 사망한 뒤라 유골로 나온 상태로 밝혀졌고 팬티스타킹(살색 팬티스타킹)이 왼쪽에서 찢어져 나가 구멍이 났다. 여성 신원의 뼈는 국과수에 반납되었고 여성 신원의 신발은 흰색 구두 슬리퍼였다.[34] 2007년에 대전지방경찰청 예하로 이관.[35] KBS 뉴스 9 앵커로 발탁되면서 하차했다.[36] 공통점이라면 진행자 3명 모두가 호남이며, 광주/전남 출신. 백운기는 광주광역시, 박선규는 전북 익산, 배종호는 전남 목포 출신.[37] KBS 파업에 따른 임시 진행.[38] KBS 파업에 따른 임시 진행. 방영 초기부터 현직 경찰로서 수배 안내를 전담했고, 간간이 출연하기도 했다. 당시의 계급은 경위로 경찰대 14기 출신이다.[39] 인간극장 공채30기 시절 당시 마이크의 전사들에서 잠시 출연함[40] 남편 조기영 시인은 11세 연상(1968년생)으로 정읍시 출생으로 같은 대학 및 같은 전공으로 출신이다.[41] 2022년 5월부터 대통령실로 승계.[42] 아나운서(방송인 출신 포함) 출신 일반인 인재 1호, 문재인 대선캠프를 참여하기 위해 영입함[43] 감자탕 25시 등.[44] 이들 중 배종호 MC는 명예 경감으로 위촉.[45] 탤런트 박상원이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46] 이 프로그램에서 방영한 실종자들은 박수진양, 우정선양, 백민주양, 송혜희양, 모영광군, 최복임 할머니(조충훈 전 전남 순천시장의 어머니이다.), 장윤정양, 강송이양, 조상묵씨, 조금선씨, 김성주양이 있다.[47] 무서운 여자의 귀신 같은 허밍소리라서 소름끼치고 섬뜩한 느낌의 노래이다. 이 곡의 정체는 아직까지도 불명이다.[48] 공개수배 사건 25시의 충주호 변사체 사건 편과 미성년자 연쇄성폭행 사건인 "야수의 미소"편 중간에 쓰던 BGM 으로 이후 특명 공개수배에서도 썼다.[49] 경희대학교 체육학과 출신으로 1983년 졸업 후 유산으로 물려받은 수원 땅 4천평을 판 돈 3,700만원으로 상경하여 1984년 1집 <몹시 궁금해>로 가수 데뷔를 하였으며, 1985년에 후속 앨범을 제작하여 노래를 불렀으나, 번번이 실패하여 유흥업소를 전전하며 밤무대 가수, MC, 각설이 등을 맡다가 1989년 이후 방송계에 진출했고, 열전! 달리는 일요일에서는 게임 참가자들의 도전을 방해하는 괴물군단 중 하나인 인디언 추장(초기에는 삐에로) 역을 맡기도 했다.[50] 긴급구조 119, 경찰청 사람들 등지에서 출연한 경력이 있으며, 그 외 드라마, 시트콤에서 단역으로 얼굴을 알렸다.[51] 대표적으로 2000년 방영된 개 절도 사건에서 배우 신신범이 담당 형사를 연기했다.[52] 정확하게는 그림자 실루엣으로 처리했지만.[53] 검거된 이후 사건 25시 제작진이 춘천경찰서를 찾아가 인터뷰했는데, 본인의 기억으로는 B를 산채로 결박해 남한강에 던진 것 같다고 밝혔다. 이게 사실이라면 죽인 뒤 유기한게 아니라 애초부터 강물 속에 산채로 던지는 인면수심의 짓을 한 것이다.[54] 애초에 변사체 신원 수배 전단은 해당 지역 내에서 배포되는게 일반적이지, 강원도 춘천시에서 경기도 오산시라는 먼 곳까지 배포되지는 않는다.[55] 상기했듯이 형은 경찰청 사람들 232회(1998년 3월 31일 방영) 에서도 수배됐다.[56] 동생은 1998년 하반기 중요 지명 피의자 종합수배 전단지 3번에 수배됐다.[57] 서해안고속도로 금천IC 종점 근처 경부선 철도와 사이에 두고 있던 곳으로 지금은 인근에 공장 및 고물상이 많아 인적이 있는 편이나 그 당시에는 접근이 불편해 한산한 곳 이었다.[58] 1997년 경남 고성군 하일면 소녀 유기사건 몽타주를 작성해준 전문가이다.[59] 동거 중 폭력 등으로 인해 피해자가 만나주려 하지 않자 범행을 계획하였다.[60] 1993년에 출시된 현대 포터이다.[61] 그러나 이게 피해자의 생전 마지막 통화가 되었다.[62] 그곳은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된 곳에서 불과 900m 떨어진 곳이었다.[63]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고 차를 몰아서 발견된 지점에 차를 세운뒤 수건으로 핏자국을 닦아 증거인멸을 하려고 한 걸로 추정된다. 특히 남에 눈에 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핏자국을 닦은 걸 보면 대담한 성격이고 범어3동 일대를 잘 아는 사람으로 보인다.[64] 피해자는 평소 트럭에 기름을 가득 채우면 계기판의 미터기를 0으로 맞춰놓는 습관이 있었는데, 사건 직후 발견된 미터기엔 17km라고 적혀 있었으며, 이는 영천에서 대구까지 빨리 밟았을 경우에 가능하기에 피해자는 대구가 아닌 영천에서 살해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65] 술값 문제 때문에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범어3동에 시신을 유기했다고 진술했다.[66] 수법을 보면, 사기단이 사업가 모임을 핑계로 여관에 방을 잡아 마작 도박판을 벌이고는 여관 주인에게 여관비 이외의 수고비를 건네 환심을 산 뒤 나중에 거액을 빌려 달아나는 방식이었다.[67] 검거 과정에 대해서는 12월 4일 방송분에서 소개되었다.[68] 방영 당시 어둠 속의 목소리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69] 사건 당시에는 수원 중부소방서였으며 2009년에 수원 남부소방서와 통폐합되어 수원소방서로 개칭되었다가 2019년에 수원 남부소방서가 재분리되었다.[70] 당시 피해자의 차량은 사건 당일 새벽 4시경 수원 인계 사거리 CCTV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때 피해자의 차량이 신호 위반을 하면서 뒤따르는 차량에게 깜빡이로 신호를 주자 뒤따르던 차량 역시 신호 위반을 하였으며, 피해자가 건장한 체격이었다는 점 역시 이 사건의 범인은 최소 2명 이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71] 용의 차량 역시 도난 차량으로 확인되었다.[72] 사건을 담당한 수원중부경찰서 형사의 인터뷰에 의하면 최초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들조차 짙은 썬팅이 되어있어 내부 식별이 힘들었다고 하였으며, 이후 차 문을 따서 확인한 후에야 피해자의 사체를 확인했다고 말했다.[73] 당시 신고 내용 중 "흰색 차 안에 사람이 쓰러져있는 것 같거든요.", "뒤에 누워있는 것 같거든요.", "서류 같은 게 흩어져 있고" 라는 내용이 있었으며 상술한 대로 차량 문은 잠겨있고 썬팅이 짙었기에 외부에서는 차량 내부를 보기 힘들었을 텐데 이러한 것을 알고 있다면 신고자는 사체 유기 현장을 목격했거나 용의자 중 한 명이라는 것인데 전자라면 보통 공중전화로 신고했다 할지라도 다시 현장에 가서 출동한 경찰관 또는 소방관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는게 일반적인데 경찰조사를 통해 신고자 본인의 신원을 경찰에게 말해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통화가 끝나자마자 종적을 감추었으니 자신의 신원을 노출시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뜻이며, 결국 후자일 가능성이 더욱 높은 셈이다.[74] 방영 당시 위험한 여자들이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75] 방영 당시 한밤 중의 손님들이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76] 두 사건의 용의자들 모두 인터뷰에서 방송 이전부터 자수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방송을 통해 수배된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반성 후 자수를 결심했다고 말했다.[77] 방영 당시 소 사세요!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78] 방영 당시 장례식장의 검은 손이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79] 당시 피해자의 인터뷰에 의하면 노래방에서 꽃뱀이 자신을 유혹할 때는 정신이 있었는데 자신의 술에 약을 탔는지 그걸 마신 뒤로 정신을 잃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젊은 남성이 와서는 욕을 하면서 폭행을 하더니 차용증을 쓰게 하였다고 말했다.[80] 이어진 피해자의 인터뷰에 의하면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화해서 협박을 했다고 하였으며, 한번 당해보니까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조차 못할 정도였다고 말했다.[81] 당시 피해자 아내의 인터뷰에 의하면 처음에 남편이 이 사실을 들키고는 발뺌을 했는데 남편의 머리와 멱살을 잡으며 사실대로 말하라고 하자 그제서야 아무래도 어디 엮인 것 같다고 사실대로 말했다고 하였으며, 자신이 있을 때 사건을 종말을 짓지 않으면 일당들이 남편을 납치한 다음 협박하여 돈을 뜯어낼 수도 있기에 집에 찾아온 일당들에게 "내가 경찰서에서 물어주라면 물어주지 당신들은 못 물어주니까 당장 나가!" 라며 억세게 소리치면서 쫓아냈다고 말했다.[82] 당시 재연장면에서 일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꽃뱀 역할을 한 여성은 경찰에 고소를 하면 자신들의 범행이 들통날 수 있으니 그만하자고 했지만 오히려 용의자들과 다른 일당들은 피해자를 성폭행범으로 고소하라고 윽박질렀다.[83] 당시 일당들은 피해자를 경북 예천경찰서에 거짓 고소했는데 경북도경 예천경찰서 형사의 인터뷰에 의하면 당시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꽃뱀)은 함께있던 남성(피해자)이 강간을 완성하기 까지 3분도 안되었다고 진술했는데 상식적으로 청바지 같은 경우에는 조금만 발버둥 쳐도 벗기기 힘든 상태라고 하였다. 이후 피해자가 영주경찰서에 일당들을 고소하자 이들은 증거물이랍시고 정액을 제출하였는데 국과수 검사 결과 피해자의 것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으며, 경찰 조사를 받는 재연장면에서 이에 대해 묻는 형사의 질문에 그녀는 자신의 남자친구의 것일 거라며 둘러대었다.[84] 특명 공개수배 진행자인 고민정 아나운서가 실제 사건이 발생한 노래방에서 설명한 바에 의하면 계산대와 노래방 사이는 불과 3m인데다, 방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문이었다는 점, 그리고 저녁 6시 무렵이라 손님이 거의 없는 조용한 시간대였으며, 노래방 주인은 계산대에 계속 앉아있었지만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하였다.[85] 사건을 담당한 경북도경 영주경찰서 형사의 인터뷰에 의하면 꽃뱀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점과 피해자가 일당들의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기고 그녀의 통화 내역을 조사해보니 피해자를 처음 만난 장소인 다방부터 식당, 그리고 노래방에서 범행을 벌일 때까지 일당들과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하였으며 이어진 재연 장면에서도 조사를 받는 와중에도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일당들과 문자를 주고받았다.[86] 이들은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검은 양복에 넥타이까지 갖춰 입고 장례식장을 찾아갔다.[87] 방영 당시 피해자의 인터뷰에 의하면 부의금이 사라진 것을 알고난 후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분하고 전신이 떨린데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이런 짓을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남의 일로만 알고 있었던 일을 직접 당하고 보니까 세상에는 몹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88] 당시 담당 형사의 인터뷰에 의하면 장례식장 CCTV를 확인해보니 새벽 시간 대에 영주가 아닌 다른 지역 사람의 원정 절도로 추정되었으며 그 시간대에 차량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사건 직전에 영주 시내와 장례식장 인근에 수상한 차량이 없었는지 탐문하면서 사건 직후 영주를 빠져나간 차량들을 상대로 조사했다고 말했다.[89] 사건을 담당한 또 다른 형사의 인터뷰에 따르면 톨게이트 CCTV에 찍힌 용의 차량의 운전자는 안전벨트를 착용 후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얼굴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지만 조수석에 탄 남성이 양복에 넥타이까지 갖춰 입고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밑으로 대고 돈을 세는 듯한 인상을 풍겼기에 잘 찾은 것이라고 하였으며, 용의 차량의 차적 조회를 한 뒤 차주의 가족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차주의 남편이 수많은 절도 전과가 있고, 이번 사건과 비슷한 절도 전과도 많았기에 거의 90% 이상 용의자로 특정했다고 하였다. 나머지 10%는 장례식장 CCTV의 영상대로 용의자의 뒷머리가 원형 탈모라는 점과 용의자 검거 후 용의 차량을 수색한 끝에 영주 소재 주유소의 사은품과 사건 전날 밤 발행된 영주 톨게이트 영수증을 통해 범인으로 확정되었다. 이 사건의 범인들은 도주 과정에서 많은 단서를 남겼기에 쉽게 해결할 수 있었는데 장례식장의 CCTV에 부의함을 들고 도주하는 장면과 부의금을 빼낸 후 골목길에 버린 부의함, 톨게이트 CCTV에 돈을 세는 장면 등 단서가 한 가지라도 없었다면 미궁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은 사건이었다.[90] 두 사건은 같은 날 방영된 사건들 역시 용의자가 검거되거나 자수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전자는 경남 진주에서 보험 설계사를 납치하여 금품을 갈취하고 서울의 택시 기사를 진주의 외진 곳으로 유인하여 살해한 뒤 부산의 노상에 유기하는 등 여러 건의 살인, 강도 행각을 벌인 용의자였는데, 방송 일주일 만인 2007년 8월 23일 방송에서도 재수배 된 후 9일만인 2007년 9월 1일 밤, 친구를 만나기 위해 김해에서 진주로 간다는 제보를 받은 경찰이 진주 시내에서 잠복한 끝에 검거하였으며, 후자는 부녀자 또는 노인이 관리하는 영세 슈퍼마켓에 몸이 불편한 사람을 행세하며 들어가 물건을 꺼내달라고 요청한 뒤 주인이 물건을 꺼내주는 동안 또 다른 공범이 계산대의 돈을 훔친 2인조 절도 사건의 용의자였는데 이 용의자 역시 방송 1달 후인 2008년 3월 27일 마지막 방송에서 함께 재수배 된 후 같은 해 10월 2일 경찰에 자수하였다. 참고로 두 번째 사건의 부제는 위험한 손님인데, 4화에서 소개된 인천 구월동 호프집 강도 살인사건 때와 같은 부제를 썼다.[91] 혐의자 김○○이 검거된 곳은 강릉의 모 아파트인데 강원강릉경찰서가 아닌 서울강남경찰서가 직접 검거했다.[92] 방영 당시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93] 용의자 검거 후 사건을 담당한 인천남동경찰서 형사의 인터뷰에 의하면 용의자가 아들의 집에 숨어 지낸다는 제보를 받고 출동했지만 그곳에서 만난 용의자의 며느리는 용의자가 이 집에 살고 있지 않다고 말했는데 방문으로 한 여성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을 찾아내 검거하게 되었다고 말했으며, 용의자 역시 인터뷰에서 자신이 수배 된 방송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으며, 방송 시청 직후 곧바로 자수하지 못 한게 후회된다고 말했다.[94] 방영 당시 위험한 동행이라는 부제로 방영되었으며 일주일 만인 17화에서도 재수배 되었다.[95] 방영 당시 악몽의 10분이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96] 용의자 검거 후 서울성북경찰서 형사의 인터뷰에 의하면 해당 사건이 방영된 회차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사건 발생 이전에 다른 사건과 관련해 내사를 받았다가 혐의점이 없어 종결되었던 용의자와 얼굴이 비슷한 것 같아 수사를 진행한 결과 동일인으로 확인되었다고 말했다. 용의자 박 모씨는 사건 이후 수원 일대의 여관과 친구 집을 전전하며 도피했는데 그 역시 인터뷰에서 친구들을 통해 자신이 수배 된 사실을 듣고 인터넷으로 재방송을 본 뒤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불안감 속에 숨어 지냈다고 말했다.[97] 방영 당시 지입차주로 모십니다 라는 부제로 방영되었으며, 27화와 32화에서도 재수배 되었다.[98] 방영 당시 그 남자의 두 얼굴이라는 부제로 방영되었으며, 4개월 후 37화에서도 재수배 되었다.[99] 방영 당시 통째로 털어라! 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100] 그나마 용의자 갑은 나름 머리를 쓴다고 CCTV를 망치로 부수다가 얼굴이 제대로 찍히는 바람에 유일하게 방송에 수배되었다.[101] 당시 서울동대문경찰서 형사의 인터뷰에 의하면 사건이 방영된 날 당직 근무 중에 자신의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그 지인은 자신이 아는 사람과 동일 인물인 것 같다고 제보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2번째로 들어온 용의자 조○○(을)은 다른 곳에서 범행을 저지르다가 방영되기 1달 전에 검거되었음을 확인하였다.[102] 방영 당시 CCTV 속의 남자 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103] 방영 당시 엄마와 딸이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104] 방영 당시 검은 손이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105] 방영 당시 상해치사 사건으로 다뤄졌으며, 한밤의 복수극이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106] 방영 당시 48시간의 추적이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107] 당시에는 다른 사람의 차를 빌려 운전하다가 사고를 내고 달아났으며 내연녀와 같이 술을 마신 상태였다. 내연녀도 범인도피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다.[108] 공교롭게도 두 사건 모두 방영 당시 이유 없는 죽음이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109] 방영 당시 칠순경비원의 죽음이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110] 방영 당시 살인의 시작이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111] 특명 공개수배 4화 방영 당시 위험한 손님이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의 강도 2인조는 플스방에서도 강도짓을 하려고 한 전적이 있었다.[112] 방영 당시 실장님 납시오 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113] 방영 당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는 부제로 방영되었으며, 방영 이전인 2006년 상반기 중요지명 피의자 종합수배에 수배번호 8번으로 등록된 기록이 있다.[114] 방영 당시 옷장이 털렸어요 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115] 그 실종자는 고등학교 시절 야구부 활동을 했었으며 전문선수 못지 않은 실력으로 대학 야구부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올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였다.[116] 그에 비해 전임 백운기 前 기자, 후임인 배종호 前 기자는 ''고맙습니다," 단어를 쓰며, 이외 반대로 "감사합니다." 단어를 전혀 쓰지 않는다.[117] KBS에서 고용했던 용역직이었지 정식 기자는 아니다.[118] 1화 방영 당시에는 그냥 실종 사건이었으나, 2화 방영 시작 때 4명의 실종자 중 한 명이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와 피살 사건이 되었다. 당시 피해 여성들의 신상은 살해된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2006년 12월 13일에 실종된 배 모씨, 2007년 1월 3일에 실종된 박 모씨, 그리고 2007년 1월 7일에 실종된 연 모씨.[B]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R S T U V W X [119] 1993년 6월 26일 방영분 수록.[120] 1993년 5월 1일 제1회에서 다뤘다.[121] 1994년 8월 27일 방영분 수록.[A]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122] 해당 사건의 여자 용의자 1인만 1998년 상반기 중요 지명 피의자 종합 수배 전단지에 수배[123] 2004년에 같은 방송사에서 방영된 공개수사 실종에도 방영되었다.[124] 2007년 7월 26일 방송 말미에 긴급수배로 방영되었으며, 방송 다음날 검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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