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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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원인
3. 관련 사고
4. 외국의 비슷한 사례
5. 기타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김영삼이 집권하던 문민정부 시절에 안전불감증에 의한 각종 사건/사고가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하면서 당시에 생겼던 조롱 섞인 표현이다. 이 시기에 사망한 피해자의 수만 해도 총 1,385명이다.

2. 원인[편집]


사실 문민정부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억울하다 할 수 있는 게, 사고라는 게 특정 정부 시기에 몰아서 난다고 해도 꼭 그 정부 탓만은 아니다. 특히 건물이나 구조물 붕괴 사고는 대부분의 경우 아무리 날림으로 지어져도 몇 개월도 못 버티고 무너지는 경우는 드물다. 당장 성수대교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9년 완공된 교량이고 삼풍백화점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7년에 착공했으며 붕괴 원인으로 지목받는 부실 시공은 당시 날림에 가까웠던 건축 방식과 이를 묵인한 담당 공무원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관리가 겹쳐서 일어난 참사였고 그럼에도 1989년 개장 후 무려 6년씩이나 버틴 끝에야 무너진 것이었다. 즉, 사고의 원인은 대체적으로 5공화국이나 그 전 시기에 제공되었다가 그것이 쌓여져 시간이 흐른 후에 폭발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전 정부 시절 심어진 시한폭탄이 하필 재수없게 지금 정부에 터졌다고 하더라도 관리 등의 면에서 보면 책임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려우며 사고 이후의 뒷수습이나 향후 대책 같은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당장은 현 정부가 감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성수대교 붕괴 사고 당시 과거 정부에 시공된 건축물이 무너진 것을 두고 김영삼이 23일 "부실기업 인수"나 "5000년 쌓인 부정의 결과" 등 책임을 이전 정부에 돌리는 발언을 했다가[1] 국회의원이던 박지원에게 '그럼 경복궁이 무너지면 흥선대원군 책임이냐?'라는 일갈을 들어야 했다. 즉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억울해도 어쩔 수 없이 참고 그냥 전 정부 탓 없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대책마련 등에만 집중했다면 욕을 덜 먹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자연스레 '문민정부 문제보다는 그동안 쌓인 폐단이 터진 것이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왔을 것이고 말이다.

게다가 연이은 사고에 대한 문민정부의 대처는 빈말로도 옳다고 하기 어려웠다. 우암 상가아파트 붕괴사고 때는 애꿎은 소방관들에게 책임을 돌렸고,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때는 철로 근처에서 통보도 없이 발파라는 테러 행위나 다름없는 짓을 저지른 삼성종합건설과 한진건설의 운영진에게 면죄부나 다를 바 없는 솜방망이 처벌만 했으며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때는 앞에서는 최선의 조치를 약속했으나 뒤로는 정부 관계자가 유가족을 협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심지어 백서 역시 일부를 빼고 편찬되지 않거나 내부 보고용/지자체 홍보용으로 쓰여졌다.

그리고 사고들의 규모가 너무 컸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 대부분 대한민국 역사상으로도 봐도 꽤나 큰 규모의 사고들인데다가 연달아 터지기까지 했다. 그렇다 보니 워낙 임팩트가 커서 사고 공화국이라는 표현이 생겨나고 이 말이 널리 퍼진 것.


3. 관련 사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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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월 7일, 청주 우암 상가아파트 붕괴사고 (29명 사망, 48명 부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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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3월 28일,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78명 사망, 140여명 부상)
1993년 6월 10일, 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 사고 (20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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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7월 26일, 목포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68명 사망, 5명 부상)
파일:external/pds19.egloos.com/a0002301_4c621d0d05aad.jpg
1993년 10월 10일,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292명 사망)
파일:external/pds21.egloos.com/d0013015_4e594284aa05a.jpg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고 (32명 사망, 17명 부상)
파일:external/pds20.egloos.com/a0002301_4c621d8b13e60.jpg
1994년 10월 24일, 충주 제5호 화재사고 (25명 사망, 33명 부상, 1명 실종)
파일:external/pds19.egloos.com/a0002301_4c621cc568f26.gif
1994년 12월 7일, 서울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사고 (12명 사망, 65명 부상, 1명 실종)
파일:/pds/201008/11/01/a0002301_4c621bedeea9b.jpg
1995년 4월 28일,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 (101명 사망, 202명 부상)
파일:external/www.redian.org/sampung.jpg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502명 사망, 937명 부상, 20명 실종)[3]
파일:korean 801.jpg
1997년 8월 6일,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4] (228명 사망, 26명 부상)

위 사례들을 보면 알겠지만 저 5년밖에 안 되는 시간에 일어난 수 많은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만 1300명을 훌쩍 넘긴다. 애초에 재산피해만 났거나 인명피해가 저렇게 절망스러운 정도가 아니었다면 사고 공화국이란 말이 안 생겼을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연말 건배사가 "내년엔 살아서 만납시다"였다

이외에도 1996년에도 고성 산불, 신촌 롤링스톤즈 카페 화재 등 사고가 발생했다.


4. 외국의 비슷한 사례[편집]


비슷하게 대형 사건사고가 짧은 시기에 여러 번 일어난 사례를 적는다.


  • 일본의 경우 1963년 11월 9일 츠루미 사고미이케 탄광 폭발사고로 각각 161명과 458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동시에 일어나 그 날을 피로 물든 토요일(血塗られた土曜日)이라 부르게 됐다.





5. 기타[편집]


1995년경에 건대노래패연합이 낸 민중가요 음반 <아침햇살 3집>에도 동명의 곡이 수록되어 있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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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인사
여당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정책 및 방향
금융실명제 · 역사바로세우기 (12.12 군사반란 · 5.18 민주화운동 재조사 ·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 하나회 해체
평가
긍정적 평가 · 부정적 평가 · 논란이 있는 평가
타임라인
1993년
역사바로세우기 운동 · 하나회 숙청 · 금융실명제 실시 · 1993 대전 엑스포 · 한총련 출범 · 정부 제3청사 착공 ·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 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 사고 · 한강 영화촬영 헬기 추락 사고 ·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 제1회 대학수학능력시험 실시 ·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1994년
1994년 재보궐선거 · 교육개혁위원회 구성 · 북미 제네바 합의 · 서울불바다 망언 · 1994년 주사파 파동 · 대한항공 2033편 활주로 이탈 사고 · 성수대교 붕괴 사고 ·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건 ·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사고 · 분당선 개통 · 환경부 개청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출범 ·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 · 1995년 한국통신 파업 사태 ·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 씨 프린스호 좌초사고 ·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 도로명주소 시범사업 · 금산분리 도입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 2002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 확정 · 일산선 개통 · 해양수산부 개청 · 중소기업청 설립 · 연세대 사태 ·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 전두환 사형, 노태우 무기징역 선고 · OECD 가입 · 노동법 날치기
1997년
1997년 재보궐선거 · 제15대 대통령 선거 · 외환 위기 발생 · IMF 구제 금융 신청 · 전두환, 노태우 특별사면 · 1997 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 대구 도시철도 1호선 개통 · 황장엽 망명 사건 · 이한영 암살 사건 · 청소년보호법 제정 · 청소년보호법 파동 · 공덕동 도시가스 폭발 사고 · 청주국제공항 개항 · 이석 치사 사건 ·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 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 살인 사건 · 이태원 살인 사건 · 울산 광역시 승격 · 한일어업협정
1998년
노사정위원회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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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겨레신문 1994년 10월 23일자에 "잘되면 문민 덕 못되면 과거 탓"[2] 사건 자체는 아직 취임식 전, 즉 노태우 정부 때의 일이지만 김영삼이 당선인 신분이라 사고공화국의 시발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취임식 전의 대형사고의 비슷한 예로 참여정부 직전의 국민의 정부 말기인 대구 지하철 참사이명박 정부 직전의 참여정부 말기인 숭례문 방화 사건 등이 있다.[3] 1953년 6.25 전쟁 정전 협정 체결 이후 지금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사고들 중에서 가장 사망자가 많은 사고다. 참고로 두번째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사고는 창경호 침몰 사고(사망자 330명)다.[4]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은 아니지만 한국 국적기가 에서 추락해 많은 인명 피해가 났던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