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안드레아스 (r2020030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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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안드레아스
그리스어: Ανδρέας
라틴어: Andreas
예수 그리스도12사도 중 한 명인 기독교성인. 형제인 베드로와 더불어 예수의 첫 제자이다.
공동번역성서가톨릭 성경에서는 안드레아, 개역 성경에서는 안드레라고 표기한다.[1] 그리고 '첫 번째로 제자로 불린 자'라는 뜻으로 '프로토클레토스(Πρωτόκλητος, Prōtoklētos)'라고도 한다. 사도 성 베드로의 동생이며 역시 어부였고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 출신지는 복음서에 따라 언급이 엇갈리는데, 공관 복음서[2]에 따르면 갈릴래아 카파르나움,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갈릴래아 벳사이다이다. 대체로 벳사이다에서 태어나 카파르나움에서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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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은 11월 30일. 어부, 생선 장수, 밧줄 만드는 사람, 우크라이나, 그리스, 스코틀랜드수호성인이며, 러시아에 가서 선교했다는 전승 때문에 러시아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러시아 최고 훈장 이름이 사도 성 안드레이훈장이다. 하지만 순교는 러시아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했는데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그가 순교한 곳은 그리스 아카이아 지역의 파트라이라고 하며, X자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했기 때문에 스코틀랜드국기에도 새겨진 X자 십자가(Saltire)를 성 안드레아 십자가라고도 부른다. 십자가가 X자인 이유는, 안드레아가 그리스도(Χριστός)의 첫 글자 모양에 못박히길 원했기 때문이다.
본인이 활동한 지역은 아니지만 스코틀랜드에서도 수호성인이다. 따라서 스코틀랜드국기도 파란 바탕에 흰색의 X자형 십자가를 사용하는 것. 아일랜드가톨릭 신자들이 성 파트리치오의 축일인 3월 17일에 축제를 벌이는 것처럼, 스코틀랜드가톨릭 신자들도 안드레아의 축일인 11월 30일에 소규모지만 축제를 벌인다. 이는 안드레아가 자신의 활동 지역에서 한참 떨어진 스코틀랜드에까지도 선교하러 갔다는 전승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 반대로 종교개혁 이후에는 가장 급진적인 칼뱅파 세력들 중 하나인 언약파(covenanters)들의 상징으로 쓰인 적이 있다.
네덜란드에서도 안드레아 십자를 쓰는 곳들이 존재한다. 암스테르담부터 시 문장이 XXX로 되어있는데, 흔히 생각하는 애먼 뜻이 아니라 종교개혁 이전 홀란드의 영주였던 페르세인(Persijn) 가문의 수호성인과 상징이 안드레아였기 때문이다.(#) 남부 브레다의 깃발도 비슷하다.
안드레아는 형 베드로와는 달리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이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성경에서의 언급도 별로 없다.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아는 스승과 함께 지나가던 예수를 목격하고 스토커 그의 뒤를 밟다가 들켜(…) 아예 예수의 거처까지 안내받았다. 안드레아는 형 시몬(베드로)에게 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증언했고, 그를 예수에게 데려가 모두 제자가 되었다.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예수의 제자가 된 첫 번째 인물들이다.
사도가 된 이후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예수에게 "어떤 아이가 보리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져왔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은 것(요한 복음서 6장 8절), 그리스에서 온 이방인들이 예수를 찾아왔을 때 예수에게 그 사실을 알린 것(요한 복음서 12장 22절), 베드로 및 야고보와 함께 올리브 산에 있던 예수를 찾아와 재난이 언제 시작될지 물은 것(마르코 복음서 13장 3절) 외의 몇몇 간접적인 언급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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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에 의하면 예수부활해 승천한 뒤에는 그리스 지방으로 전교 여행을 갔고, 콘스탄티노폴리스(당시에는 비잔티움)에 가 제자인 사도 스타키스(Απόστολος Στάχυς, 축일 10월 31일)를 초대 주교로 임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안드레아를 초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로 보고 있다.
하지만 당시 비잔티움은 주변 대도시들에 비하면 중소도시 규모였다는 점, 로마나 에페소, 스미르나 등과 달리 성경에 비잔티움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성경에 안드레아스의 이후 행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 등에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시각도 있다. 후일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새로운 로마로 제국 유수의 도시가 되자 그 중요성에 어울리는 사도전승을 창작해 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실제로 콘스탄티누스 1세의 천도 이전인 3세기 초에는 비잔티움 교회가 트라키아의 헤라클레아 관할이었다는 전승이 존재한다. 5세기에는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창립자가 사도 안드레아스라는 티레의 주교 도로테우스(Dorotheus) 명의의 위조문서가 발견되는데,[3] 안드레아스가 베드로보다 예수의 제자로 먼저 불렸다는 점에서 이를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로마에 대한 대등성, 또는 우위를 보이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확실히 알려진 비잔티움 주교가 등장하는 것은 4세기 초의 일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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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바티칸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안드레아의 머리가 성유물로 봉안되어 있었다. 원래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었으나 357년 콘스탄티우스 2세그리스 파트라이로 옮겨졌고,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콘스탄티노스 11세의 동생이자 모레아의 전제군주였던 토마스 팔라이올로고스가 1461년 로마로 망명하면서 안드레아의 머리를 가져가 교황 비오 2세에게 선사했다.[5] 그때부터 줄곧 성 베드로 대성당에 모셔졌던 두개골은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정교회와의 공존과 화해를 위해 그리스 파트라이로 반환해 지금은 바티칸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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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받치는 남동쪽 기둥의 벽감에 있는 성 안드레아의 5m 높이 성상.
벽감 윗부분과 조각상 기단부에 각각 라틴어 명문이 새겨져 있다.
벽감 윗부분
SANCTI·ANDREAE·CAPVT·QVOD·PIVS·SECVNDVS
EX·ACHAIA·IN·VATICANVM·ASPORTANDVM·CVRAVIT
VRBANVS VIII·NOVIS·HIC·ORNMENTIS·DECORATVM
SACRISQVE·STATVAE·AC·SACELLI·HONORIBVS·COLI·VOLVIT
(우르바노 8세그리스에서 바티칸으로 옮겨져 비오 2세가 맡았던
성 안드레아의 머리가 이곳에서 공경받아야 하며,
장식 및 성상과 성당의 성스러운 영광으로 치장되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조각상 기단부
SANCTVS ANDREAS APOSTOLVS
(성 안드레아 사도 )

[1] 본 문서에서는 위키방 합의에 따라 '사도 안드레아스'로 표기한다. 링크 [2] 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루카 복음서.[3] Peter Megill Peterson, Andrew, Brother of Simon Peter: His History and His Legends, Brill, 1958, p.17[4] (Vailhé S. Transcribed by Douglas J. Potter. Constantinople. The Catholic Encyclopedia, Volume IV. Published 1908. New York: Robert Appleton Company. Nihil Obstat. Remy Lafort, Censor. Imprimatur. +John M. Farley, Archbishop of New York). 가톨릭 측의 입장에 해당한다.[5] 이슬람에게 넘어가서 훼손당하는 것 보다는 낫긴 하지만. 문제는 엄연히 안전 보관이 가능한 러시아 정교회가 있음에도 안 돌려 주었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