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두정치 (r2020030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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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역사
Historia Romae
Ἡ Ἱστορία τῶν Ῥωμαίω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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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정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
네 황제의 해
갈바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비텔리우스
플라비우스 왕조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도미티아누스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공동 즉위 루키우스 베루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다섯 황제의 해
페르티낙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세베루스 왕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공동 즉위 게타 · 카라칼라 마크리누스 엘라가발루스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군인 황제 시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공동 즉위 고르디아누스 1세 · 고르디아누스 2세 공동 즉위 푸피에누스 · 발비누스 고르디아누스 3세 필리푸스 아라부스 데키우스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아이밀리아누스 공동 즉위 발레리아누스 · 갈리에누스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퀸틸루스 아우렐리아누스 타키투스 플로리아누스 프로부스 카루스 공동 즉위 누메리아누스 · 카리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등장
-
카리누스 · 디오클레티아누스
서방
동방
양두정치
막시미아누스
양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사두정치

막시미아누스 콘스탄티우스 1세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막센티우스 2차 재위 막시미아누스 콘스탄티누스 1세
사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갈레리우스 리키니우스 막시미누스 다이아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누스 1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공동 즉위 콘스탄티누스 2세 · 콘스탄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
요비아누스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서방
동방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그라티아누스 발렌티니아누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마그누스 막시무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통일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서방
동방
테오도시우스 왕조
호노리우스 콘스탄티우스 3세 발렌티니아누스 3세
테오도시우스 왕조
아르카디우스 테오도시우스 2세 마르키아누스
최후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아비투스 마요리아누스 리비우스 세베루스 안테미우스 올리브리우스 글리케리우스 율리우스 네포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레오 왕조
레오 1세 레오 2세 제노 바실리스쿠스 2차 재위 제노
동방
레오 왕조
2차 재위 제노 아나스타시우스 1세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유스티누스 1세 유스티니아누스 1세 유스티누스 2세 티베리우스 2세 마우리키우스
-
포카스
이라클리오스 왕조
이라클리오스 공동 즉위 콘스탄티노스 3세 · 이라클로나스 콘스탄스 2세 콘스탄티노스 4세 유스티니아노스 2세
20년간의 혼란
레온티오스 티베리오스 3세 2차 재위 유스티니아노스 2세 필리피코스 아나스타시오스 2세 테오도시오스 3세
이사브리아 왕조
레온 3세 콘스탄티노스 5세 아르타바스도스 2차 재위 콘스탄티노스 5세 레온 4세 콘스탄티노스 6세 이리니
니키포로스 왕조
니키포로스 1세 스타브라키오스 미하일 1세 랑가베스
-
레온 5세
아모리아 왕조
미하일 2세 테오필로스 미하일 3세
마케도니아 왕조
바실리오스 1세 레온 6세 알렉산드로스 2세 콘스탄티노스 7세 로마노스 1세 로마노스 2세 니키포로스 2세 요안니스 1세 바실리오스 2세 콘스탄티노스 8세 로마노스 3세 미하일 4세 미하일 5세 공동 즉위 조이 · 테오도라 콘스탄티노스 9세 2차 재위 테오도라
-
미하일 6세
콤니노스 왕조
이사키오스 1세
두카스 왕조
콘스탄티노스 10세 미하일 7세 로마노스 4세 니키포로스 3세
콤니노스 왕조
알렉시오스 1세 요안니스 2세 마누일 1세 알렉시오스 2세 안드로니코스 1세
앙겔로스 왕조
이사키오스 2세 알렉시오스 3세 2차 재위 이사키오스 2세 알렉시오스 4세 알렉시오스 5세
니케아
라스카리스 왕조
테오도로스 1세 요안니스 3세 테오도로스 2세 요안니스 4세
팔레올로고스 왕조
미하일 8세
동방
팔레올로고스 왕조
미하일 8세 안드로니코스 2세 미하일 9세 안드로니코스 3세 요안니스 5세 공동 즉위 요안니스 6세 · 마테오스 2차 재위 요안니스 5세 공동 즉위 안드로니코스 4세 · 요안니스 7세 3차 재위 요안니스 5세 2차 재위 요안니스 7세 4차 재위 요안니스 5세 마누일 2세 요안니스 8세 콘스탄티노스 11세
제위 요구자(멸망 이후)
팔레올로고스 왕조
공동 즉위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 · 토마스 팔레올로고스 안드레아스 팔레올로고스



로마 제국의 전제정과 동서 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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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황제
양두정치
제1차 사두정치
제2차 사두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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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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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부제
막시미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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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우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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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사두정치
제3차 사두정치
동방 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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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리우스
리키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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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미누스 다이아
서방 정제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콘스탄티누스 1세
막시미아누스
막센티우스
서방 부제
콘스탄티누스 1세
콘스탄티누스 1세
-
막센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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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기
동방 정제
갈레리우스
리키니우스
리키니우스
리키니우스
막시미누스 다이아
동방 부제
-
서방 정제
콘스탄티누스 1세
콘스탄티누스 1세
막센티우스
서방 부제
-
바시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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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기
동방 정제
리키니우스
리키니우스
리키니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우스 발렌스
마르티니아누스
동방 부제
발레리우스 발렌스
-
리키니우스 2세
서방 정제
콘스탄티누스 1세
서방 부제
-
크리스푸스
콘스탄티누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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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왕조
동방
콘스탄티누스 1세
콘스탄티우스 2세
콘스탄티우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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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스
콘스탄스
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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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왕조
-
동방
콘스탄티우스 2세
콘스탄티우스 2세
율리아누스
요비아누스
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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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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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티니아누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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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티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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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티니아누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왕조
동방
테오도시우스 1세
테오도시우스 1세
서방
발렌티니아누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 2세
그라티아누스
마그누스 막시무스
플라비우스 빅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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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동로마 제국
서방
서로마 제국



사두정치
Tetrarchia

285/293년 ~ 311년
창건자
디오클레티아누스 (284-305)
주요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막시미아누스
갈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
막센티우스
리키니우스

로마 제국의 왕조
3세기의 위기
콘스탄티누스 왕조
1. 개요
2. 시기
2.1. 제1차 사두정치
2.2. 제2차, 제3차 사두정치
3. 구조
4. 장점
5. 문제점
6.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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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의 정치체제. 사두정치, 테트라키아[1]라고도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치세인 284~305년 중 293~305년까지 12년간 계속된 제1차 사두정치와, 305~307년 이어진 제2차 사두정치 308~311년까지 이어진 제3차 사두정치로 나뉜다. 중국 주나라의 봉건제와 비슷한 부분도 있으나 다른 부분도 있다.

2. 시기



2.1. 제1차 사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자신의 친구였던 막시미아누스를 286년 서방의 공동황제로 올리면서 분할통치를 시작했으며 293년부터 동시에 부장들이었던 갈레리우스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를 각각 동방과 서방의 부제로 삼으면서 사두정치의 서막을 열게 된다.
  • 동방 정제[S]: 디오클레티아누스 (본부: 니코메디아)
    • 아나톨리아, 오리엔스, 폰투스, 이집트
  • 동방 부제: 갈레리우스 (본부: 시르미움)
    • 판노니아, 모이시아, 트라키아, 일리리아
  • 서방 정제: 막시미아누스 (본부: 메디올라눔)
    • 이탈리아, 가까운 아프리카, 먼 아프리카, 히스파니아
  • 서방 부제: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 (본부: 아우구스타 트레베로룸)
    • 브리타니아, 갈리아, 비네엔시스
제1차 사두정치 동안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독자적인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으며, 로마 제국을 전제군주국 비슷하게 개조하고 네 명의 황제가 담당구역을 나눠 게르만족의 침입에 대항해 국방을 유지하도록 했다.
따라서 제1차 사두정치는 이름만 '사두'정치이지 국방을 제외한 부분에서는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거의 단독으로 통치하고 다른 황제들을 지도했다. 스스로를 선임황제라는 뜻의 세니오르(SENIOR)[2]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역사상 유명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대탄압(Diocletianic Persecution)'도 제1차 사두정치 시기에 시행되었다. 제1차 사두정치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로마 황제 역사상 최초로 자의에 따른 퇴위로 305년 끝나고, 각각 서방 부제인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와 동방 부제인 갈레리우스가 서방 정제와 동방 정제로 즉위하면서 제2차 사두정치 시기로 접어든다.

2.2. 제2차, 제3차 사두정치


제2차 사두정치와 제3차 사두정치는 동방의 정제였던 갈레리우스에 의해 주도되었다. 서방의 부제였던 발레리우스 세베루스가 갈레리우스의 부장 출신이었고, 동방의 부제 막시미누스 다이아는 갈레리우스의 외조카[3]였던 것이다.
  • 동방 정제: 갈레리우스 (본부: 시르미움 → 니코메디아)
    • 판노니아, 모이시아, 트라키아, 일리리아, 아나톨리아, 폰투스
  • 동방 부제: 막시미누스 다이아 (본부: 타르수스)
    • 오리엔스, 이집트
  • 서방 정제[S]: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 (본부: 아우구스타 트레베로룸)
    • 브리타니아, 갈리아, 비네엔시스, 히스파니아
  • 서방 부제: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본부: 메디올라눔)
    • 이탈리아, 가까운 아프리카, 먼 아프리카
이렇게 잘 돌아가던 제2차 사두정치는 서방 정제였던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의 병사로 흔들리게 된다.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의 군대가 원래 부제가 정제로 올라와야 했던 계승순위는 개나 주고, 그의 서자[4]였던 콘스탄티누스를 정제로 추대하면서[6] 혼란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자 갈레리우스는 서방 부제였던 발레리우스 세베루스를 서방의 정제로 올리고, 콘스탄티누스를 서방의 부제로 삼으면서 콘스탄티누스의 불만을 잠재웠다. 콘스탄티누스는 여기에 순응하고 부제직을 받아들였으나 문제는 퇴위한 선제 막시미아누스의 아들 막센티우스에게 있었다.[7] 결국 막센티우스는 로마에서 원로원과 일반 시민[8], 프라이토리아니(근위병)[9] 등의 도움을 받아 황제를 칭하게 되었고, 아버지 막시미아누스도 다시 황제자리에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막센티우스는 서방 정제 발레리우스 세베루스를 제압하면서 제2차 사두정치는 완전히 붕괴하게 된다.
  • 동방 정제[S]: 갈레리우스 (본부: 시르미움 → 니코메디아)
    • 모이시아, 마케도니아, 트라키아, 아나톨리아, 폰투스
  • 동방 부제: 막시미누스 다이아 (본부: 타르수스)
    • 오리엔스, 이집트
  • 서방 정제: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본부: 메디올라눔)
    • 이탈리아, 가까운 아프리카, 먼 아프리카, 판노니아, 일리리아, 히스파니아
  • 서방 부제: 콘스탄티누스 (본부: 아우구스타 트레베로룸)
    • 브리타니아, 갈리아, 비네엔시스
  • 찬탈 황제: 막센티우스, 막시미아누스 (본부: 로마)
    • 이탈리아, 가까운 아프리카, 먼 아프리카
하지만 막시미아누스가 아들과의 불화로 인해 떨어져 나갔고, 결국 이 틈을 타서 갈레리우스가 308년 다시금 상황을 정리하게 된다.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를 불러모은 갈레리우스는 이 자리에서 막시미아누스를 다시금 은퇴시키고, 막센티우스를 공동의 적으로 선포한다.[10] 그리고 자신의 친구였던 리키니우스를 서방의 정제로 삼고, 서방과 동방의 부제로 각각 콘스탄티누스와 막시미누스 다이아를 유임시킨다. 이때가 제3차 사두정치다.[11] 하지만 무명이었던 리키니우스의 정제 즉위는 서방과 동방의 부제였던 콘스탄티누스와 막시미누스 다이아의 불만을 야기시켰다. 그리고 311년 갈레리우스가 죽게 되자 결국 제3차 사두정치는 서로의 불신, 불만이 생기면서 무너지게 된다.
  • 동방 정제[S]: 갈레리우스 (본부: 니코메디아)
    • 모이시아, 마케도니아, 트라키아, 아나톨리아, 폰투스
  • 동방 부제: 막시미누스 다이아 (본부: 타르수스)
    • 오리엔스, 이집트
  • 서방 정제: 리키니우스 (본부: 시르미움)
    • 판노니아, 일리리아
  • 서방 부제[12]: 콘스탄티누스 (본부: 아우구스타 트레베로룸)
    • 브리타니아, 갈리아, 비네엔시스, 히스파니아
  • 찬탈 황제: 막센티우스 (본부: 로마)
    • 이탈리아, 가까운 아프리카, 먼 아프리카
311년 갈레리우스의 사후 리키니우스는 동방에서 정제를 칭한 막시미누스 다이아를 정복하기 위해 동방으로 향하게 되고 대신에 서방의 부제였던 콘스탄티누스와 혼인동맹을 맺게 된다. 이에 대항하여 막센티우스막시미누스 다이아 역시 서로 동맹을 맺으면서 2:2 구도의 양상이 펼쳐진다.
  • 동방 정제1[13]: 리키니우스 (본부: 시르미움)
    • 판노니아, 일리리아, 모이시아, 마케도니아, 트라키아
  • 동방 정제2[14]: 막시미누스 다이아 (본부: 타르수스)
    • 아나톨리아, 폰투스, 오리엔스, 이집트
  • 서방 부제: 콘스탄티누스 (본부: 아우구스타 트레베로룸)
    • 브리타니아, 갈리아, 비네엔시스, 히스파니아
  • 찬탈 황제: 막센티우스 (본부: 로마)
    • 이탈리아, 가까운 아프리카, 먼 아프리카
312년 콘스탄티누스가 막센티우스를 격파하고, 313년에는 리키니우스가 막시미누스 다이아를 격파함에 따라 양두정치로 변화가 되었고, 이후 리키니우스와 콘스탄티누스 사이의 내전 끝에 콘스탄티누스가 유일한 황제가 되면서 로마는 다시금 통일황제의 휘하에 들어가게 된다.
  • 서방 정제[15]: 콘스탄티누스 (본부: 아우구스타 트레베로룸메디올라눔니코메디아)
  • 서방 부제: 크리스푸스[16], 콘스탄티누스 2세
  • 동방 정제: 리키니우스, 발레리우스 발렌스[17] (본부: 시르미움 → 니코메디아)
  • 동방 부제: 리키니우스 2세[18]

3. 구조


사두 정치는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진다.
  • 황제는 정제와 부제로 나누어지며, 정제는 부제보다 높고, 부제를 원칙적으로 지휘통솔할 수 있다.
  • 전체 구성은 정제 2명, 부제 2명이며, 제국 전체를 4분해서 서방 정제, 서방 부제, 동방 정제, 동방 부제로 나눈다. 다만 제국을 정식으로 분할하는 것이 아니라, 담당 구역을 지정하는 것이다.[19][20]
  • 황제는 일정 기간 동안 통치한 다음에 정제들은 은퇴하고, 부제가 정제 자리로 승격되며, 새로운 부제를 임명한다. 단, 여기서 일정 기간은 딱 정해진 기간이 아니라 정제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적절한... 기간[21]이다.
  • 각 황제들은 자신이 담당한 구역내의 군사적 지휘권을 가지며, 해당 방면의 방어를 책임진다. 대규모 전면전 같은 사태가 나면 황제들간에 회의를 거치는 등의 과정을 통해 다른 황제의 군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 1차 사두정치에 한해서, 동방 정제가 가장 우월하며, 군사적 측면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 대한 전체 권리를 가진다. 군사적 측면에서도 대규모 전면전을 위해 다른 황제와 군대를 동원하거나, 황제임명권등을 가진다.

4. 장점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사두정치를 만든 이유는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 방어의 효율성 증가. 황제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여러 대책을 동시에 수행해 방어의 효율성을 높인다. 한마디로 말해서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공격이 들어와도 즉시 대처가 가능하다.
  • 내란의 조기진압. 네 명의 황제가 상대적으로 좁아진 자신의 관할구역을 철저히 감시해 내란의 가능성을 줄이고 내란이 일어난다 해도 이를 조기에 진압한다. 종합하자면 내란이 단순한 소란으로 끝나며, 내란이 길게 이어지거나 확대되어서 내전이 되는 것을 막는다.
  • 능력 위주의 황제 즉위. 방어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임명되므로 다른 건 몰라도 군사적 능력 하나는 우수한 인물들이 혈통에 관계 없이 황제위에 오를 수 있다. 이에 따라 로마군의 전투능력을 높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5. 문제점


그러나 사두정치가 존속력이 강하지 못하고 대규모 내전으로 끝난 이유는 아래와 같다.
  • 황제가 여러 명이다. 즉 국가에 최고 지도자가 여러 명이라는 이야기인데,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 곧 단일황제로 통합되기까지 내전이 발생하거나, 각자 국가를 찢어서 나누어 가지는 분할상태가 돼버린다.
  • 1차 사두정치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 원래부터 단독황제고 모든 권력을 가진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직접 유능한 장수와 동료를 골라서 황제로 임명한 것이므로 이 경우에는 군사력만 대여형식으로 배분한 것이기 때문에 오래 유지가 가능하다. 즉 1차 사두정치는 말만 사두일 뿐, 실제로는 황제 한 명과 3인의 부하다. 페르시아에서도 첫 사두정치 당시 전투에서 승리한 후 동방부제였던 갈레리우스 측을 군주의 예로 대하지 않았다는 면에서 이런 포인트를 확실히 알고 있었고, 로마 측도 처음에 그렇게 '부제는 군주 비슷한 무언가지만 실제 군주는 아니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공포했거나, 내지는 페르시아의 그런 시각을 묵인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건 1차 사두정치 때만 가능한 이야기므로 2차 때에 이르면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 실력 위주로 황제를 선발하다보니, 사람들이 보통 인정하는 왕위 계승의 법칙에서 중요한 왕위계승권이 있는 황제의 아들을 제외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당장 내란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제위에 오르지 못한 황제의 아들이라는 점만 생각해봐도 답이 나온다. 사실 오현제 시대에서도 다들 아들이나 손자가 없었기에 양자로 다른 유능한 사람을 후계자로 삼을 수 있었으며,[22] 최후의 오현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아들이 있었으므로 부자상속이 이루어져서 최악의 암군인 콤모두스가 황제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6. 영향


이런 문제점으로 인해 이후의 황제들도 공동황제제도를 활용하긴 했으나, 그 대상을 황제의 자식이나 황제의 형제 등 친족으로 한정했으며, 일시적인 제도로 유지했다. 하지만 이렇게 하더라도 서로 내전이 발생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아서 항구적인 제도로 존속하지는 못했다.[23] 하지만 사두정치는 향후 본격적으로 심화되는 동서 분열의 시초가 되었으며, 제국의 중심지가 본래의 이탈리아 반도에서 에게 해 주변의 동방[24]으로 완전히 옮겨지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1] 테트라(tetra-)는 그리스어로 4를 뜻하는 접두사이다.[S] A B C D 선임 황제[2] 영단어의 그 시니어 맞는다.[3] 누나의 아들이었다고 한다.[4] 정략결혼을 위해 본처였던 플라비아 율리아 헬레나를 버렸으므로.[5] 브리타니아 원정 중이었으므로 전시였기에, 실력이 있다면 그걸 드러내기는 평시보다 훨씬 좋은 환경이다. 더구나 내전이라면 정치적 부담이 있지만, 대외전쟁이면 부담이 전혀 없다.[6] 아버지와 같이 있었던 1년간[5], 휘하 군인들에게 모범을 보여 천천히 군심을 모으다가, 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아져 타계가 가시권에 보이자, 여차하면 추대해달라고 미리 뒷공작을 했을 확률이 높다. 콘스탄티누스가 무슨 억울한 조선 왕족 A도 아니고,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 추대를 한다는 것이 혈통적 요소가 약하고 군사적 실력주의 문화가 강한 로마에서는 어려웠으니까.[7] 막시미아누스는 서방정제로만 286~305로 20년 가까이 있었고, 자기는 그 적자이지만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에 비해 콘스탄티우스는 그 20년 내내 아버지의 부하인 부제였고, 정제는 꼴랑 1년 하고 죽었는데(그것마저도 막시미아누스가 죽은 것도 아니었고, 자의로 물러나고 싶지도 않았는데,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물귀신마냥 같이 용퇴하자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내려간 결과인데) 그의 서자인 콘스탄티누스는 그 1년 사이에 아버지 군대 안에서 뒷공작과 큰 그림을 그려 추대받아서, 먼저 정제로 흥정을 했고 결국 정제는 아니지만 부제를 받아냈으니까. 흥정은 처음에 일부러 세게 불러야지 빡치려면 빡칠 만하다. 사두정치에 내재된 문제점이 이것이다.[8] 원로원 의원들에게는, 정제 및 부제위를 장군, 총독들끼리만 주거니 받거니 하니까. 시민들에게는, 디오클레티아누스 문서에 써 있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탈리아를 본국의 위치에서 격하시켜 일반 속주와 동등하게 했고, 면제되던 세금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서도 로마 시는 예외라 계속 면세의 특권이 남아 있었는데, 갑자기 정부(발레리우스 세베루스)가 로마 시에서마저도 특권을 폐지해 세금을 걷으려는 소문이 났다고 한다.[9] 프라이토리아니의 로마 시내 주둔기지를 정리하는 작업도 디오클레티아누스 이래로 계속 차근차근 시행되고 있었다.[10] 정제 발레리우스 세베루스를 죽였다는 팩트가 확고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11] 저 회동 자체가, 사두정치를 지키는 의도였겠지만, 오히려 스스로 사두정치를 파괴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정제를 부제에서 올려야지, 웬 듣보잡을 자기 친구라고 바로 정제로 올렸기 때문이다.[12] 막시미아누스에 의해 정제로 추대받으나 진짜 정제는 312년부터 시작[13] 서방 정제에서 동방 정제로 이동[14] 동방 부제에서 동방 정제로 계승[15] 선임 황제(317~324) → 단독 황제(324~)[16] 콘스탄티누스를 단독황제로 만든 1등 공신이나 326년 처형당함[17] 317년 처형[18] 리키니우스의 아들이자 콘스탄티누스의 조카, 326년 크리스푸스와 같이 처형당함[19] 몇 십 년 후 테오도시우스 1세가 395년에 타계하고 나서 그의 아들들인 아르카디우스호노리우스에 의한 소위 동서로마 분할도 이것과 같지만, 그 이후 다시 합쳐지지 못한 채 서방이 망했기에, 이 '마지막' '구역 지정'을 그냥 '분할'이라고 후대에서 부르는 것일 뿐이다.[20] 영어로는 영어 위키백과 등 여러 자료에서 just an administrative division, 즉 행정구역 분할이라고 칭한다.[21] 정확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를 제외하고는 죽은 다음[22] 하드리아누스는 트라야누스의 5촌 조카이긴 했다. 하드리아누스의 아버지의 외사촌이 트라야누스다. 반대로 말하면 트라야누스의 고종사촌의 아들이 하드리아누스다. 부자상속이 아니라고 해서, 5현제끼리 전부 혈연이 서로 없었던 것은 아니다.[23] 특히 팔레올로고스 왕조가 이게 심하다 : 부자 간, 심하면 까지(...) 할아버지뻘(종조부 등)과 손자뻘이 아니라 진짜 친할아버지와 친손자다![24] 발칸 반도(그중에서도 그리스와 트라키아)-소아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