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이븐 아비 와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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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둔 칼리파국의 명장
사아드 빈 아비 와카스
سعد بن أبي وقاص


파일:سعد_بن_أبي_وقاص.png

본명
سعد بن أبي وقاص
Saʿd bin Abī Waqqās
사아드 빈 아비 와카스
출생
595년 아라비아 메카
사망
674년 우마이야 왕조 메디나
복무 기간
636년~644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이슬람 제국의 명장.

시리아 전선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 이집트 전선아므르 이븐 알 아스가 있었다면 페르시아 전선에는 그가 있었다.

636년 카디시야 전투와 642년 니하완드 전투를 대승으로 이끈 것으로 유명하다. 무함마드가 그를 당대 최고의 궁수로 칭찬할만큼 명궁으로도 이름을 떨쳤다. 이라크 정복 이후 사아드는 병영도시(암사르)이자 행정 치소인 쿠파를 건설하고 그 곳의 총독을 지냈다. 650년대 해상으로 벵골을 거쳐 중국 당나라에 처음으로 이슬람을 전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후 천수를 누리다가 674년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수니파의 전승에 따르면 그는 《하디스》에 언급된 천국이 보장된 10인 중 한 명이다.[1]

2. 생애[편집]


파일:قوس_سعد_بن_أبي_وقاص.jpg
사아드 이븐 아비 와카스가 사용한 활.[2] 메디나 철도 박물관 소장.

595년 쿠라이쉬 연맹의 방계인 주흐라 가문 출신인 아부 와카스 말리크와 우마이야 가문의 하므나 사이에서 태어났다.(사아드 빈 말리크로도 불림) 친가인 주흐라 가문은 무함마드의 외가였으며, 그녀와 사아드는 서로 5촌지간이었다. 또한 무함마드의 첫 번째 부인인 카디자와도 10촌 관계였다. 사아드는 불과 17세에 이슬람으로 개종했는데, (하심 가문 밖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첫 7인 중 한 명이었다. 정의감이 투철했던 그는 614년 무함마드 일행을 조롱하고 때리던 메카인들을 때려눕혀 손에 피를 묻혔다. 그는 이슬람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한 첫 무슬림이었다. 또한 본래 이슬람을 적대하던 우마르가 이슬람으로 회심하게 된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헤지라에 함께한 사아드는 바드르 전투에 참가했다. 이때 어린 동생 우마이르 이븐 아비 와카스가 무함마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전했다가 무슬림측 14인의 전사자들 중 한 명이 되기도 했다. 이후 우후드 전투 때 사아드는 궁수로 활약하며 무함마드를 지켰는데, 전투 후 그에게서 이 시대 최고의 궁수들 중 한 명으로 선포되는 영광을 얻었다. 630년 무함마드의 고별 순례에서 중병에 걸린 사아드는 당시 딸 하나만 있었고, 무함마드에게 얼마만큼의 재산을 사다카(기부)에 돌릴 지를 문의하여 1/3이 적당할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3]

다만 곧 회복하여 칼리파 우마르 시대에 군사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가 시리아에 집중하는 동안 사산 제국군의 반격에 직면한 이라크 전선을 맡은 사아드는 연거푸 대승을 거두며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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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아파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를 제외한 나머지 9명의 천국행 보장을 인정하지 않는다.[2]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알라의 검이었다면 사아드 빈 아비 와카스는 알라의 화살이었다고 회자되었다.[3] 처음엔 1/3만을 딸에게 주고 나머지를 기부하려 했으나 무함마드가 거부했고, 절반씩의 제안도 거부했다. 1/3 기부에 2/3의 재산이면 그녀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 것이라며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