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로잡힌 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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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잡힌 악령
장르
단편소설
작가
이문열
출판사
둥지
발매일
1994. 12. 01.

1. 개요
2. 줄거리
3. 출판·수록
4. 특징
5. 평가
5.1. 재평가



1. 개요[편집]


이문열단편소설. 한 시인1960년대~1980년대의 행보를 다룬 소설이다. 그 시인은 정황상 고은이 연상되는 인물이다.


2. 줄거리[편집]


사로잡힌 악령 전문

30대 초중반쯤 나이의 검사인 서술자에게 주인공이자 '악령'이라고 지칭되는 그 시인승려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에서 망나니나 다름없이 행동하면서도 폭음을 일삼던 문인이었다. 유명 원로 스님인 효봉 스님의 수제자라는 명성을 이용해 문화예술계의 고위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문학계의 중심인물로 군림하게 되자 이후 주인공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여성 문학 지망생들을 농락하는 등 추잡하고 방탕한 생활을 여전히 지속해 악마성을 드러낸다.

시인이 지나친 악행을 일삼자, 일부 문인들은 그를 문학계에서 배척하려고 시도한다. 이에 주인공인 시인은 살길을 모색하기 위해 이번에는 민주투사로 변모해 대외적으로는 진보적인 지식인으로서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오히려 더욱 유명 인사가 되어 자신의 권력으로 예전보다 더 심한 악행을 일삼으며 살아간다. 결국 운동권이었으면서도 더 이상 진보적인 인사로 자신을 포장할 필요가 없어지자 기득권층이 되어 여생을 보낸다.

소설 속에서 또 다른 효봉스님의 문도의 입을 빌려, 그가 무턱대고 계속해서 스승님을 찾아 어찌어찌 상좌가 되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또한 문단에 데뷔한 후 자칭 효봉 스님의 상좌(수제자)라고 말하는 등 효봉 스님의 명성을 이용하여 문화예술계의 고위 인사들과 쉽게 교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소설에서는 명사 사냥꾼으로 표현되었다. 한 예로 겨우 말 몇 번 섞어본 것이, 몇 년 뒤에는 아주 잘 아는 사이로, 또 몇 년 뒤에는 죽마고우로 포장되어 사람들을 현혹했다는 대목이다.

남북작가회담을 추진하다가 구속된 일도 소설 속에서는 방북을 선수치고 싶었으나 빼앗긴 것에 대한 분, 그러나 이러한 일로 또다시 추앙받게 되고 떠받들어 받게 된 씁쓸한 현실에 대한 비난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총무 스님은 그래 놓고 무언가를 머뭇거리다가 결심하듯 말을 이었다. "업(業) 중에서도 구업(口業)이 가장 무섭다지만, 그날 큰스님께서 그에게 맞대 놓고 꾸짖듯 하신 말씀은 이랬대. '놈, 네 꼬리가 하마 여덟 발은 되는구나. 한 발만 더 자라면 요사 둔갑을 떨다가 무간지옥에 떨어질 터인데 때맞추어 잘 왔다. 네가 여기서 끝내 배겨나면 그 꼬리가 떨어질 것이요, 이 산문을 나서면 그날로 무간지옥이 너를 기다릴 것이니라.'"


그의 악이 번성하는 한 파렴치한 엽색(獵色)의 식단도 풍성했다. 자랑스레 휘젓고 다니는 색주가는 기본이었고 손쉽고 뒷말없는 유부녀는 속되게 표현해 간식이었다. 더욱 악의 섞어 말하자면 신선한 후식도 그 무렵에는 그에게는 흔했다. 시인의 허명에 조금했다가 화대도 없이 몇 달 침실봉사만 한 신출내기 여류시인이 있는가 하면, 뜻도 모르고 관중의 갈채에만 홀려 있다가 느닷없이 그의 침실로 끌려가 눈물과 후회 속의 아침을 맞는 얼치기 문학소녀가 있었고, 그 자신이 과장하는 시인이란 호칭에 눈부셔 옷 벗기는 줄도 모르다가 살이 살을 비집고 들어서야 놀라 때늦은 비명을 지르는 철없는 여대생도 있었다.


그는 이제 거짓, 뻔뻔스러움, 천박, 비열 따위 다분히 감정적인 험구의 사정권을 가뿐히 벗어나 거창한 반독재의 대의 뒤에 숨어 버렸다. 그리고 뒤이은 유신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더욱 휘황한 빛을 뿜기 시작한 반독재의 대의는 그의 지난 행적에 대해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이 거짓과 위선은 폭로되어야 하고 이 허영과 뻔뻔스러움은 벌받아야 한다. 이 악은 파괴되고 절멸되어야 한다... 그런데 다음 일년이 다해 갈 무렵부터 나는 차츰 그 열정에 지치고 절망적이 되어 갔다. (중략) 그러다가 그 절망감과 무력감은 마침내 그의 악에 대한 엉뚱한 축원으로 변해 갔다. 이 악을 지울 수 있는 길은 이 세상에 없다. 그의 죄가 탕감받을 수 있는 벌은 없다. 있다면 오직 하나 그가 자신의 악 속에서 영원히 번성하는 것이다. 자신의 악 속에 영원히 갇히는 일이다. 너는 너의 악 속에서 영원하라.


힘이 없는 악은 의미가 없다 . 악이 악다워지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권력이든 물리적 폭력이든 재력이든, 지식이나 기술 혹은 특수한 재능이든 상대를 강제하거나 마비시킬 수 있는 힘을 지녀야만 악은 악답게 자랄 수가 있다. 그의 악이 의지해 자란 힘은 말과 글을 다루는 재능이었다. 말의 재능은 그의 '명사(名士) 사냥' 시절에 이미 충분하게 발휘되었다.


"글세, 얄팍한 속임수랄까, 거짓이랄까 뭐 그런 것인데 …… 옳지, 미당의 시와 비교하면 설명이 쉽겠군. 미당도 그처럼 거지고 광대지. 속임수도 쓰고. 그런데 말이오. 미당의 시를 읽으면 그 영감이 장난을 치거나 속임수를 쓴 것에도 그중에 한 줄은 반드시 미당이 아니면 못해내는 진짜 시가 있단 말이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정반대요.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쓴 것도 읽다 보면 참지 못할 속임수나 거짓이 끼어 있단 말이야. 나나 저나 나이 먹고 점잖아진 처지에 나쁘게 말할 수도 없고 …… 그렇다고 마음에 없는 말로 들러리 서기도 싫고. 그래서 일껀 그 사람의 시집을 빼들었다가도 일을 손을 못 대고 다시 꽂게 되고 말아요. 말이 났으니까 하는 소린데 시집 후기(後記)까지 그래요. 그 사람의 시집은 내게 여러 판이 있는데 판마다 후기가 달라진단 말이야. 초판에는 아무개 선생님이라고 깍듯이 경의를 표했던 사람이 재판에는 아무개씨가 되고 삼판이 되면 아예 존칭이 날아가 버리는 식으로."



3. 출판·수록[편집]


1994년에 출간된 '이문열 중단편전집 5'(표제작: '아우와의 만남') 초판과 2쇄에만 수록되었다.

원래는 이문열 중단편 전집 5권(표제작은 '아우와의 만남')에 수록되어 있었지만 유통되고 있는 저 단편집에서는 이 작품이 없다. 1994년 12월 발행한 1판 1쇄와 1995년 1월 발행된 1판 2쇄에는 실려있으니 읽으려면 중고책 시장에서 해당 판본을 구하거나 도서관을 찾아야 한다.


4. 특징[편집]


저자는 진보를 자처하면서 윗자리에 오르니 자기가 욕했던 옛 기득권층보다 더 추해지는 운동권위선과, 같은 진영 사람이라고 범죄를 옹호하는 그들의 연희단거리패 패거리 의식까지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이런 운동권의 난잡함과 패거리 문화에 대한 비판은 이문열의 또 다른 소설 <달아난 악령>에서도 강도 높게 행해진다. <달아난 악령>은 문단 거물이 아니라 전교조를 비판한 작품이라 봉인을 피할 수 있었다.

"해방 뒤 이 나라에는 가짜 백작사건까지 있었지만 가짜 문인이 있었다는 말은 그의 연보나 자서전 이외에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거기다 그 소동이 있었다는 60년대 중반만 해도 그의 지명도는 전국적으로 가짜가 돌아다닐만큼 높지도 못했다. 그 전에도 그 뒤에도 그보다 지명도 높은 사람이 수없이 많았는데 어째서 그들에게는 한 번도 그같은 가짜 소동이 없고 그때만 해도 그리 대중적이지 못하던 그에게만 집중적으로 가짜 소동이 일어난 것일까."고 꼬집는 부분이 있다.

당시 고은이 좌장으로 있던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을 비롯해 진보 계열 문인들이 집단으로 들고 일어나 이문열을 공격했다. 당시 진보 문인들은 민주투사 출신이며, 진보 계열 문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고은을 의도적으로 비방하고 있다며 이문열을 맹비난했다. 당시 고은은 김영삼 정권이 자신을 표적으로 삼아 음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맹공에 밀린 이문열 작가는 "이 작품을 보면 어떤 시인의 행보가 연상되겠지만 그를 개인적으로 공격하는 작품이 아닌 1980년대의 시대상을 담아내는 작품으로 봐 달라."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비난이 수그러들지 않자 자신의 출간 단편집에서 제외했으며 이 책에 대해 절판 조치까지 취했다. 때문에 이 작품은 1994년 출간된 중단편집 '아우와의 만남' 초판에서만 볼 수 있다.


5. 평가[편집]


이문열은 이 작품을 작품 목록에서 제외한 이후에도 어느 지면에서 '나는 그 시대의 한 특이한 개성을 소설적으로 형성화했을 뿐, 특정 인물을 공격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경력을 내세운 고은의 입지가 워낙 견고했던 당시에는 특정 인물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이문열의 항변이 당사자로 지목된 인물의 반론 기회를 봉쇄하기에 더 큰 문제라는 반응이 주류였다.

원래 이문열은 전업 작가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고은을 상당히 존중했다. 이문구의 <산 너머 남촌>에 실린 송기숙의 발문, 시골 밭둑의 싱싱한 수풀을 보면 1982년, 1979년 지미 카터 내한 반대시위에 대한 재판을 받기 위해 대구교도소로 이감되어 있던 고은을 면회하기 위해 송기숙, 이문구, 황석영, 김지하 등이 대구로 왔는데 대구에 살던 이문열도 찾아와 함께 면회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해당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구에서 문인들을 그렇게 많이 만나게 된 것은 고은 재판 때문이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을 살다가 그리 이감을 간 고은의 재판이 있었다. 이문구, 김지하, 황석영, 이시영, 김종철, 정해렴, 그리고 그때 거기 살고 있던 이문열도 함께 했다.

그랬던 이문열이 어째서 10여 년 뒤에 <사로잡힌 악령>을 썼을까 관심을 갖는 사람이 그때는 없었다. 이러한 평가는 일반인들에게도 고은의 성폭행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유지되어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의 본 문서 내용에도 해당 시각이 유지된채 서술되었다.

당시 대중은 고은이 어느 정도로 기득권층인지 얼마나 강력한 문단권력인지 의식이 전혀 없었다. 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13>비운의 시인 구자운. 이 글 중간에 "그의 아내는 그 전부터 눈이 맞았던 어느 시인을 따라 노모와 취학 전의 어린 두 아들을 내팽개치고 출분한 뒤였다."라는 대목이 있다. 2009년 5월 실린 글인데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만큼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대놓고 언급할 수 있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고은과 그를 둘러싼 소위 진보문단의 위세는 대단했다.

시인이자 러시아어, 일어 번역가였던 구자운은 환속하여 세상에 나온 고은에게 호의를 베풀어 그를 자기 집에서 먹고 자게 해줬는데 고은은 그 은혜를 구자운의 아내와 간통함으로써 갚았다. 구자운의 부인은 자녀들을 버리고 야반도주해버렸고 본래 다리에 장애가 있었던 구자운은 홀로 남겨진채 폭음으로 고통을 달래다 1972년 위암으로 숨을 거두었다. 진짜 사이코 스릴러는 이 다음인데 문상객들이 찾아가 보니 고은은 자기 때문에 가정이 박살나고 요절한 시인의 시신 옆에서 사발에 막걸리 부어 놓고 젓가락으로 두들기며 반야심경을 읊고 있었다고 한다.

사로잡힌 악령을 빌미로 한 진보문인, 진보언론의 이문열 공격은 2000년대 까지도 계속되었다.#[1]#


5.1. 재평가[편집]


2017년 12월에 최영미 시인이 종합인문계간지 황해문화에 '괴물'이라는 시를 내면서 성추행 상습범으로 En을 말했고, 2018년 2월 6일이 문제가 불거지자 최영미는 언론에 En은 꼭 고은을 특정 지은 것이 아니고 En도 '은'이 아닌 '이은'이라고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노벨상을 사람들이 단번에 알아볼 듯한 노털상이라고 썼다.

이렇게 최영미도 이문열처럼 비판 대상으로 고은을 사실상 연상하게 했음에도 고은을 특정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에 관해 여론에서 별 비판이 없어 기존의 이문열이 고은을 연상하도록 글을 쓴 것이 비겁한 행위라는 비난도 힘을 잃었다. 2018년 2월 6일 네이버-머니투데이 문화계도 '미투(Me Too)'…최영미 詩 '괴물' 재조명.

이로써 이문열고은 비판은 2018년 2월에 들어 재평가를 받아, 오히려 문단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고은의 성추문에 대한 이문열의 내부고발을 민족문학작가회의를 비롯한 좌파 문단세력의 주류가 진영논리로 묵살했음이 명백해졌다. 이후 20년 이상 이문열이 추가로 이에 대해 언급한 사실은 없다.

이문열고은의 면모를 조중동 등 언론에 폭로하면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하지 않았냐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그 시절 고은은 정계에도 줄이 닿아 있었고 진보 예술단체를 총망라한 민예총 수장으로 권력과 위세가 등등했다. 80년대 최고 작가라곤 하나 어디까지나 개인이었던 이문열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문열은 진보의 위선 못지않게 천민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도 싫어해서 이를 비판하는 작품도 썼기 때문에 보수에도 적이 상당했다. 내부고발에 필수적인 지원세력이 어디에도 없었던 것. 이문열이 작품속에서 비판한 대상을 꼽아보면 《미로의 날들》에서 자본가, 《사람의 아들》에서 해방신학, 《영웅시대》에서 (자기 아버지 모델로) 이데올로기, 《변경》에서 4.19와 5.16 사이의 정치싸움, 《구로 아리랑》에서 좌파 노동운동가, 《사로잡힌 악령》에서 문단, 《달아난 악령》에서 전교조, 《오디세이아 서울》에서 서민 속물,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에서 경제인과 지식인 사회 전반 등 이문열 펜대에서 안 까인 부류가 거의 없다.

게다가 이미 내부고발을 했다가 그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 사람에게 왜 더 집요하게 내부고발하지 않았냐고 하는 것은 가해자의 책임을 오히려 고발자에게 전가하는 부당한 비난이다. 또 조중동에 폭로했다고 진영논리에 빠진 사람들이 조중동의 말을 믿는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조중동의 음모라면서 고은의 성추행조차 진실을 묻어버리고 역공하여 이문열을 더욱 비난했을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 위선자들의 진영논리에 당해왔던 이문열 본인이 이러한 사실을 더 잘 알기에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한편으로 이문열이 성적인 문제에서 보수적으로 마광수 교수를 공격하였다면서 물타기를 하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별개의 문제이다. 게다가 이문열과 앙숙지간이었던 마광수 교수조차도 우파 진영보다 좌파 진영이 더 위선자이라는 촌평을 날린 바 있다. 고은을 비판했던 사람들 중에는 생전의 마광수도 있었다.

고은에 대한 고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서울신문에서는 작가인 이문열과 전화통화를 해 기사를 실었다. 이문열은 "지인에게 들었던 이야기 중 일부를 모티브로 삼았고, 직접적인 사실관계로부터 벗어난 상황에서 자유롭게 창작한 작품이다. 어떤 특정인을 공격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닌데 그 작품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소지가 있다면 작가가 가해자가 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 때문에 출판사 쪽에 다시는 작품을 재수록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고 밝혔으며, "이미 20여 년 전 폐기하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는 데다 작품 원고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면서 "이번 사태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작품이기에 더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 말하고 선을 그었다. 기사

사실 그간 여러 작품 속에서 꾸준히 드러낸 이문열의 인생관을 생각하면 재평가 운운도 그의 입장에선 우스운 일이다. 온갖 볼 꼴 못 볼 꼴 다보며 대중과 여론이란게 얼마나 휙휙 바뀌는지 경험했던 이문열 작가의 시각에선 지금까지 실컷 욕하더니 이제와서 분개하며 그의 편을 들어주는 대중들이, 충실히 복종하고 동조한 주제에 나중엔 엄석대를 고발하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속 초등학생들 수준으로 보일 것이다. 고은의 엽색 행각은 결코 비밀이 아니었다. 문인들과 업계 관련자들은 모를 수가 없었고, 일반인들 있는 강연 자리에서도 부적절한 행실을 여러 번 한 데다 그가 주장한 가짜 고은 일화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모순 투성이라 그쪽과 관련없는 일반인들도 의구심 정도는 품었어야 했다.

고은고발최영미 시인도 경제개념이 전무한데다, 학사 학위 하나 들고 시간강사 자리 청탁했던 일화나 호텔 발언 같이 부적절한 언사가 다소 있었다. 하지만 그런 최영미에게 '네가 행실을 잘 못해서 그런 일 당한 거 아니냐'고 따지고 드는 사람은 없다. 서로 별개의 일이기때문이다.

월간조선에서 '사로잡힌 악령'의 전문을 무단으로 올렸다. 일베저장소의 한 유저가 올린 텍스트였다. 이 전문은 곧 삭제하였다. 위 링크는 아카이브 버전.

[1] 유시춘유시민의 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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