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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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드 제국의 왕
사르곤

파일:head-king-Sargon-of-Akkad-Nineveh-Akkadian-c-2300-bce.jpg

니네베에서 발굴된 사르곤의 청동 두상.[1]
아카드 제국 초대 국왕
이름
사르곤(𒊬𒊒𒄀, Sargon)[2]
칭호
세계의 군주,[3] 수메르와 아카드의 임금[4][5]
왕조
사르곤 왕조
후임자
리무쉬
부친
라이붐
모후
에니툼
생몰 기간
? ~ BCE 2279년
재위 기간
BCE 2334년 ~ BCE 2279년

1. 개요
2. 생애
3. 특징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처음으로 통일한 인류 최초의 제국아카드 제국의 초대 제왕.


2. 생애[편집]


수메르 전설과 기원전 8~7세기경 신아시리아 시기 때 정립된 사르곤 탄생 전설에서는 아주피라누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어머니는 대제사장이고 사르곤을 낳은 후 바구니에 넣어 유프라테스강으로 흘려 보냈다고 한다.[6] 정원사였던 아키에게 발견되어 아키는 사르곤을 양자로 삼고 '진정한'이라는 의미를 가진 샤르루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사르곤은 자라서 정원사[7]로 일했고 여신 이슈타르의 총애를 받았다.

키쉬의 왕 우르자바바는 사르곤을 방으로 초대하여 여신 이슈타르에 관한 사르곤의 꿈에 대해 얘기했는데 꿈의 내용이 이슈타르가 사르곤에게 우르자바바를 죽이고 진정한 왕이 되라고 하고 우르자바바는 이슈타르에 의해 익사하게 되는 꿈이었다. 우르자바바는 두려움을 느껴 대장장이에게 사르곤을 살해하도록 명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사르곤은 우르자바바를 죽이고 권력을 얻는다.

이후 키쉬를 기반으로 세력을 키워 움마의 왕 루갈작게시가 통합하였던 수메르를 공략해 도시들을 하나씩 함락시키고 결국 통합된 수메르의 수도인 우루크마저 정복하면서 수메르 전체를 정복하였다. 이때 패배한 루갈작게시를 산 채로 붙잡아 목줄에 묶은 채로 엔릴의 문으로 끌고 가는 치욕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수메르를 정복한 후에도 여러 전투를 치러 지중해 연안과 엘람을 정복하였다.

정복 외에도 비문에 아카드어 사용을 장려하여 아카드어의 입지를 확대시켰는데 이 덕에 아카드어는 아카드 제국 시기 뿐 아니라 후대의 메소포타미아 국가에서도 계속 사용되었고 오랫동안 오리엔트 지역에서 외교표준어로 사용되었다. 이집트 왕조의 전성기 중 한 시대였던 이집트 제18왕조조차도 아마르나 문서를 보면 국제 관계에서 아카드어를 사용했을 정도로 아카드어의 위상은 높았다.

사르곤은 자신의 딸인 엔헤두안나를 우르이난나 여신을 모시는 대사제로 임명하여 교권과 속권의 동시 장악을 꾀했다.

많은 업적을 세운 군주였기에 사르곤이 죽은 후에도 메소포타미아의 군주들은 사르곤을 롤모델로 여겼다. 후대의 아시리아에서는 사르곤 1세와 사르곤 2세가 아카드의 사르곤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기도 했다.

그의 손자 나람신은 왕위에 올라 사르곤의 업적을 이어 받아 아카드 제국의 최전성기를 구가했지만 나람신 사후에는 쇠퇴하다가 구티족의 침략으로 아카드는 멸망했다.


3. 특징[편집]


파일:FM2jwK5XMAMOdHU.jpg

청동 두상을 바탕으로 사르곤 대왕의 생전 모습을 재현한 것. 다만 상술했듯이 저 청동 두상은 사르곤의 것이 아닌 나람신의 것이라는 주장도 있기 때문에 실제 사르곤의 모습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래도 전통적으로 사르곤의 것으로 여겨져왔기에 사르곤의 외모를 묘사한 대부분의 그림이 저 청동 두상을 기반으로 그린다.

사르곤의 이름은 아카드어로 '참된 임금'이란 뜻인데, 이 이름에는 수상한 점이 있다. 보통 임금의 이름은 그가 섬기는 신의 이름을 따며, 그 신의 이름은 주로 그 임금이 다스리는 도시국가에서 숭배되는 신이다. 앞서 언급된 전설에 따르면, 사르곤은 이슈타르의 총애를 받았는데, 정작 사르곤의 이름에는 이슈타르가 없다. 즉 그의 이름에서는 왕권 정당화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사르곤은 최초로 연호를 사용했다. 그는 멀리 시리아까지 원정해 마리(Mari)를 정복했는데, 이후 '마리 정복 다음 해'와 같은 연호를 썼다. 이런 식의 '사건 연호'는 이후 1000년 정도 메소포타미아의 임금들이 따라했다.

기원전 19세기 고아시리아의 사르곤 1세와 혼동되는 경우도 있지만 별개의 인물이다. 두 사람의 시대 차이는 400년 이상 난다.

굉장히 장수한 편인데 기원전 24세기경의 인물임에도 재위기간이 55년에 달한다. 명확한 생년이 미상이지만 대략 80세쯤은 산 것으로 보인다.

문명 5의 플레이어가 제작한 모드 문명 중에 하나인 아카드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정복군주로서의 행적이 반영되어 정복에 특화된 특성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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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umer.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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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 사르곤의 것으로 여겨졌지만 손자이자 4대 왕인 나람신 대왕의 것이라는 말도 있다. 본래 이라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었지만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약탈되어 현재 행방이 불분명하다.[2] 아카드어로 합법적 왕 또는 진정한 왕이라는 뜻이다.[3]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강력한 세력을 가진 군주들이 흔하게 쓰던 칭호였다.[4] 수메르어: lugal ki-en-giki-uri, 아카드어: šar māt Šumeri u Akkadi[5] 수메르 시대 메소포타미아에는 수메르인과 아카드인(셈족)이 섞여 살았다. 본래는 수메르인이 문화, 정치,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었으나, 사르곤 시대부터는 아카드인이 우위를 점했다. 즉 사르곤은 고대근동 세계의 두 중심인 수메르와 아카드를 통치하는 유일한 군주가 된 것이다. 이 칭호는 후대의 정복자들이 대를 이어 사용했고,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키루스 2세도 이 칭호를 사용했다.[6] 이는 모세의 이야기의 모티프로 여겨진다. 다만 사르곤은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 관리의 자식이 된 반면 모세는 낮은 신분으로 태어나 공주의 양자가 되는 정반대의 운명으로 이어졌다는게 차이.[7] 당시 사르곤이 우르자바바 왕 아래에서 맡고 있던 관직의 명칭은 '랍샤케'로, 번역하자면 '정원사'라는 뜻이다. 그러나 관직의 명칭과는 달리 랍샤케는 단순히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 따위가 아니라 도시의 수로를 관리하는 대단히 중요한 자리였으며, 수로 개수와 정비에 많은 인력이 필요했던만큼 사르곤은 이 관직을 통하여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휘하에 만들 수 있었다. 이는 순 임금 밑에서 치수 일을 맡아보다가 왕위를 넘겨받은 우 임금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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