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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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초대 황제
세조 무황제 | 世祖 武皇帝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56px-Jin_Wu_Di.jpg

사마염 어진 (역대제왕도권)
출생
236년
조위 하남군 낙양
(現 허난성 뤄양시)
즉위
265년 12월 13일[1]
조위 하남군 낙양
(現 허난성 뤄양시)
사망
290년 5월 16일 (향년 54세)
서진 하남군 낙양
(現 허난성 뤄양시)
능묘
준양릉(峻陽陵)
재위기간
조위의 진왕晉王
265년 8월 ~ 265년 12월 13일
서진 초대 황제
265년 12월 13일 ~ 290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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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하내 사마씨

염(炎)
부모
부황 태조
모후 문명황후
형제자매
9남 2녀 중 장남
배우자
정실 무원황후, 무도황후, 효회태후
후궁 좌분, 호방, 제갈완
자녀
18남 12녀

안세(安世)
작호
진왕(晉王)
묘호
세조(世祖)
시호
무황제(武皇帝)
연호
태시(泰始, 265년 ~ 274년)
함령(咸寧, 275년 ~ 280년)
태강(太康, 280년 ~ 289년)
태희(太熙, 290년 ~ 290년)


1. 개요
2. 외모
3. 생애
3.1. 초기
3.2. 나라의 초대 황제
3.3. 삼국 통일
3.4. 긴장감을 놔버리다
3.5. 연이은 실정
3.6. 각종 일화
3.6.1. 태자 책봉 문제
3.6.2. 환령
3.6.3. 번건
3.6.4. 기타
3.6.5. 말년
4. 평가
5. 번외: 부여재조지은
6. 가족 관계
7. 기타
8. 미디어 믹스
9. 둘러보기(계보)



1. 개요[편집]


서진(西晉)의 초대 황제. 자는 안세(安世). 대신 사마의의 손자이며 사마소의 장남이었다. 어머니는 왕원희다.[2] 묘호는 세조(世祖), 시호는 무황제(武皇帝).

삼국지》의 끝을 장식한 인물이며, 중국 역대 통일왕조의 초대 군주 중 집안 덕을 가장 많이 본 인물이기도 하다.[3] 즉, 역대 통일 왕조의 초대 군주 중에서 가장 저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반대로 자수성가의 대표격 인물은 빈농 고아 출신의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다.

사마염처럼 통일왕조를 거저먹은 군주도 없다. 역시나 부친 조조의 죽음 이후에 마치 당연한 절차를 밟듯이 선양받은 조비는 10살에 종군했다가 죽을 뻔했던 적이 있었고[4], 한참 뒤에 본인이 20대에 들어설 때에야 조씨가 패권을 잡지만, 사마염은 11살 때 조부 사마의가 고평릉 사변을 일으켜서 사마씨가 실권을 틀어잡는다.[5] 조비는 이릉대전을 겪고 골골대는 손오와 촉한을 무찌르지 못했지만 사마염은 독발수기능의 난까지 진압하고 오나라도 무찔러 천하통일을 이뤘다. 하지만 말년에 사치와 향략으로 다 말아먹었다.

다만 비슷한 상황에서 통일을 앞두고 나라를 말아먹은 전진부견을 생각하면 그가 단순히 천하를 거저 먹었다고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아무리 유리한 상황이라 해도 전쟁이란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멸망전도 양호라는 명장이 10년 가까이 철저히 준비한 전략을 통해 성공한 것이었다.

2. 외모[편집]


머리카락이 땅까지 닿을 만큼 길고 두 팔이 무릎까지 왔다고 한다. 머리카락 묘사로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계속 장발 일러스트로 등장한다. 당시에는 팔이 길어야 제왕에 걸맞는다 생각했는지 후연의 창업자 모용수도 이런 묘사가 있다.


3. 생애[편집]



3.1. 초기[편집]


위나라 가평 연간에 북평정후에 봉해졌다가 급사중, 봉군도위를 지내고 여러 차례 승진해 장군이 되었다가 산기상시가 더해졌다. 또 여러 차례 승진해 호군이 되어 가절을 받았다가 동무양에서 조환이 즉위하기 전에 영접해 중무군으로 승진하면서 신창향후로 진봉되었다.


3.2. 나라의 초대 황제[편집]


아버지 사마소가 진왕이 되자 세자가 되어 무군대장군에 임명되었다가 사마소가 사망한 뒤, 사마염은 황제 조환을 폐위하고 자신이 제위에 오른 뒤 국호를 ()으로 바꾸어 서진을 건국한다. 여기서 웃기는 게 등장하는데 사마소 사망 후 3년상 문제가 거론되었다. 이때 사마염이 '내가 이래 봬도 (백성들을)예()로 교화해 온 집안 사람인데 3년상 해야지' 하며 강행.[6] 선양 문제 등으로 상복을 벗었다가, 이듬해 여름 숭양릉 방문건으로 상복 문제가 불거지자 사마염은 '나만 입을 테니 늬들은 괜찮다' 하고 상복을 다시 입는다. 그러니 제일 찬탈에 앞장섰던 인간이 꼭 효 관련으로 뭔가 어필을 했다.[7]

특히 사마염의 발상 해프닝은 당시는 물론이고 북송대의 사마광조차도 '한 문제가 폐한 것을 진 무제가 다시 살렸는데, 이건 꽤 잘했음' 이라고 크게 칭찬했을 정도니 상당히 큰 의미가 있었나 본데, 어쩌면 이게 쓸만한 공적들은 선대들이 다 먹튀하고 마지막 카드인 손오 정벌은 한참 후에나 이룰 수 있었던 사마염의 체면을 세워준 '껀수'는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거나 이것이 진나라의 건국으로 왕년에 조비헌제로부터 선양받은 것을 그대로 똑같이 따라했다.

3.3. 삼국 통일[편집]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오멸망전

15년 뒤인 280년에 독발수기능의 난이 진압되자, 까지 멸망시키면서 삼국시대를 마감한다. 이것이 《삼국지》의 끝. 하지만 말년에는 부패했고, 거기다 아들며느리가 나란히 막장이었다. 끝내 그가 죽은 뒤 진나라는 팔왕의 난으로 종친끼리 골육상쟁을 벌인 다음, 영가의 난으로 이민족들에게 쫓겨나서 관중과 중원을 이민족에게 뺏기고 한족은 남쪽에서 동진으로 존속한 오호십육국시대를 맞이하였다.


3.4. 긴장감을 놔버리다[편집]


천하 통일을 하기 전이었던 즉위 초반에는 태의령 정거가 바친 의 머리 가죽을 이어 만든 호화스러운 모자 또는 가죽 옷인 치두구를 대주전 앞에서 불태우고, 다시는 이런 걸 바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을 정도로 청렴하고 유능한 이미지였다. 사마염이 즉위했을 당시에는 현명하고 덕이 있는 여성으로 이름 높았던 사마소의 아내 문명황후 왕원희가 태후로 있었으니, 사마염도 '엄마 눈치'를 보았을 것이다.

태후가 직접 베를 짜고 진수성찬을 멀리하며 몸소 검소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니, 아무리 황제라도 아들이 돼서 치두구 같은 사치품을 가까이 하기에는 눈치보일 만도 하다. 하지만 문명황후 왕씨가 진나라가 건국되고 3년 만에 52세 나이로 죽자 사마염은 곧 '엄마 눈치'를 안 보고 황제답게 마음대로 살 수 있게 되었다.


3.5. 연이은 실정[편집]


특히 당시 서진의 호구상 파악 인구가 1,600만 명 정도인데 10,000여 명의 처녀를 잡아와서는 몽땅 후궁으로 만들고, 누구를 골라잡아 밤을 즐길지가 애매하니 이 끄는 수레에 타고 '니들 맘대로 가라'라고 한 뒤 멈추는 데를 골라잡아 그 후궁과 동침한 것이 유명. 일부 후궁은 자기 방 앞에 양이 좋아하는 소금물을 뿌리거나 잎사귀를 꽂아놔서 자기 방만 찾아가게 만들었다고 한다. 궁궐 전각 앞에서 화롯불에 태워버렸던 치두구도 나중에 가면 여섯 벌이나 갖고 있었다고 한다.


3.6. 각종 일화[편집]


사마염의 사치와 관련된 일화가 몇 있는데 신하를 지방관에 임명할 때 후보 한 사람은 사치벽이 심한 사람(당빈)이고 한 사람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양종)이었다. 이에 사마염은 '사치가 심하면 좋지만 술병은 평생 못 고친다.'라며 사치벽이 심한 신하를 임명했다.

중국사 최악의 사치 낭비로 악명높은 석숭왕개의 돈지랄도 이 시대였지만 때려잡기는 커녕 허허 하면서 구경만 했다.

예를 들어 왕개석숭의 산호수 일화를 보더라도 값의 높고 낮음을 떠나 무려 '황제의 하사품'을 고작 돈지랄 한번 하겠다고 고의로 때려부수고도 별 탈 없이 그냥 지나갔을 정도였다. 다른 왕조 같으면 황제의 하사품을 실수나 부주의로 잃어버리거나 파손해도 큰 죄고, 하물며 일부러 때려부술 정도면 황제에 대한 불경, 불충이라고 당사자는 목이 날아가고 온 집안이 패가망신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이 정도까지 대놓고 황제의 권위를 무시해도 별 탈 없을 정도로 황제의 권위가 바닥을 친 상황에서 직언이라는 명분까지 가진 신하를 황제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처벌한다면? 일단 사마염에게 그 정도까지 강력한 권력과 권위가 없었을 가능성도 높고, 설령 할 수 있어서 한다고 하더라도 '대놓고 자기를 무시하는 놈은 무서워서 가만 놔두고 나름 자기를 위해서 충언하는 놈은 만만하니까 귀에 거슬린다고 처벌하냐?'고 병신 취급이나 받기 딱 좋은 일이다.

다만, 이 일화 자체는 애초에 후세의 주작일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이 기록이 좀 애매한 게, 일단 정사에 실려있는 글이긴 하지만 이 사건은 원강 초, 그러니까 사마충 시기에 산호수 사건이 있었다고 적혀있다. 더군다나 석숭 열전에 따르면 석숭이 형주에서 탐관오리 짓으로 치부하여 부자가 된 시기는 사마염의 시대가 아니라 원강 초 사마충의 시대이다. 즉 어리석은 백치 황제가 즉위하면서 벌어진 통치력 등의 부재로 지방관들의 기강이 약화되어 이를 통해 부를 쌓은 탐관오리들을 비판하는 일화로는 볼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게 통일제국을 이룩한 황제 사마염의 권위 약화를 증명하는 일화라기엔 기록 자체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 차라리 이 일화 자체가 원래 사마충의 일화라, 사마충이 뭘 모르거나 해서 석숭의 행위를 용납했거나, 아예 일화 자체가 후대의 가필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애시당초 황제의 하사물을 부숴버리는 일은 전근대 사회에서 어떤 핑계로도 저렇게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보니 일화 자체가 신빙성을 의심받게 되는 것... 진서라는 사서가 각종 기담이나 증권가 찌라시 수준의 카더라들도 많이 인용하다 보니 저런류의 신빙성없을 이야기들도 많다.


3.6.1. 태자 책봉 문제[편집]


한번은 노신이었던 사도 위관이 술자리에서 옥좌를 어루만지며 '이 자리가 너무 과분합니다'라고 했을 때도 술에 취해서 헛소리를 한다고 했지만 그의 뜻을 알아챘다. 한마디로 사마충의 자질이 개판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돌려 말한 것으로 황제 자리가 사마충에게 너무 과분하니 황태자를 바꿔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문제를 만들어 사마충에게 문제를 던져 주었는데 그걸 가남풍이 가로채서 학자를 매수해 답변을 쓰게 했다. 처음에는 아버지인 가충에게 부탁해서 답안지를 받았으나 '이렇게 훌륭한 변려문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이 나라에 몇명 없으니 나중에 다른 사람이 대신 써준 것을 황제께서 아신다면 뒷감당이 어렵습니다. 문장력이 평범한 사람을 골라서 답안을 쓰게 하고 태자께서 베끼도록 하십시오.'란 조언을 듣고 가남풍은 잘 쓴 것도 아니고 못쓴 것도 아닌 중간 수준으로 사마충에게 받아쓰게 했다. 사마염은 이것만 믿고 사마충을 인정하고 말았다.


3.6.2. 환령[편집]


심지어 이런 일화도 있는데, 태묘에서 제사를 지내고 나오면서 "나는 어떤 군주인가?"라고 묻자 사례 교위로 있던 유의"폐하는 후한환제영제와 같사옵니다."라고 폭풍디스를 했다. 이에 사마염이 "아니, 환제와 영제는 매관매직으로 부를 축적한 황제들이 아니오? 짐이 그들과 동급이란 말인가?!"라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이에 유의는 "환제와 영제는 매관매직을 해서 국고라도 충당했지 폐하께서는 매관매직을 하여 폐하의 살림만 채우시니 환제와 영제보다도 못하옵니다!"라며 대놓고 그에 대한 비판을 하였다. 이에 사마염은 대노했지만 모가지를 날려버리는 대신 "환제와 영제는 이런 말을 듣지 못했는데 짐에게는 직언하는 신하가 있으니 내가 그들보다 낫다."라고 웃어 넘겼다고 한다.

더구나 서진 시대보다 후한 말기 시대가 더 개념 있는 신하들이 많았다. 영가의 난 당시에 숙청당한 청류파 인사들만 봐도 그렇다. 그래도 사마염이 더 낫다고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환제나 영제는 이런 직언을 훨씬 더 많이 들었는데 그 직언을 나오는 족족 씹어버리면 다행이지 직언을 한 신하들의 목을 날리거나 유배를 보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욕을 먹은 통일군주가 사마염이 유일한 건 아니고 그 한 고제주창이라는 신하에게 "이 같은 양반아"라는 소릴 듣기도 했다. 다만 이는 본래 유협집단 출신인 한 고제와 측근들의 특수성에 기인한 면이 있고, 개인적인 인간성이야 어쨌든 통일 과정에서의 역할과 군주로서 보여준 수완으로는 사마염보다 훨씬 높게 평가받는다.

어쨌든 신하들로부터 군주로서의 능력에 대해 독설을 먹는 모습이 수 차례 보이는 꽤나 드문 케이스다. 좀 좋게 보자면 저렇게 극딜을 당하고도 피 보는 일은 또 별로 없었다는 점에서도 좀 특이한 인물이다. 누울자리 보고 발 뻗는다고 사마염의 그런 성품을 알기에 더 저런 일들이 잦았겠지만서도 욕은 먹었어도 최소한 그렇게 말하는 신하들을 존중은 해 줬었다. 자기가 하기 싫은건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으니 문제였지만 그래도 시황제후한, 조조, 조비 등 권력자들의 집단 학살, 암투의 꼴을 본다면 사마염이 그래도 훨씬 초대 황제의 치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3.6.3. 번건[편집]


다른 예를 하나 들자면 망국인 촉한의 신하였던 번건에게 "왜 짐의 주변에는 제갈량과 같은 신하가 없는가?" 라고 묻자 "폐하께서는 등애도 똑바로 못 보시면서 어찌 제갈량을 찾으십니까." 라고 까이기도 했다. 왜 등애가 나왔는고 하니 종회의 난 당시 억울하게 일족이 주륙당한 등애의 신원도 못하는데 제갈량 같은 신하가 있어 제대로 쓰여지겠느냔 뜻이다. 이에 사마염이 등애의 신원을 해주었고 자손들도 억울함을 풀 수 있었다. 어찌보면 선제[8]의 실책을 인정하는 셈이니 굉장히 위험할 수 있는 발언이었지만, 들어주었다.

3.6.4. 기타[편집]


사마염은 통일 과정을 주도해 실적을 쌓았다. 오를 병탄해서 삼국통일을 완수한 건 어디까지나 사마염이었다. 보기에 따라선 중국 역대 통일 왕조 초대 황제 중 가장 천하를 거저먹은 케이스로 보이겠지만, 후세 남북조 시대가 진행된 경과를 보면 강동 지역 병탄이 그렇게까지 마냥 쉬운 일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그렇게 놀고먹는 순간에 있어서도 사마염은 병탄한 강동 지역의 행정,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꽤나 신경을 쓰고 있었고, 이때 행한 행정, 경제적인 배려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후세들이 북조에게 대항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사마염이 이 부분까지 내팽개쳐두고 신경쓰지 않았다면 남조는 그렇게까지 오래 버틸 수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9][10]

다만 몇 가지 해프닝을 보면 사마염이 리더십과 행정력, 위엄은 있었지만 책임감은 꽤 부족했다. 손오의 대도독인 육손의 아들 육항이 죽자 그 틈을 노리자고 한 진나라의 충신 양호의 상소대로 일찍이 손오를 정벌했다면 280년이 아닌 몇 년 전에 달성을 했을 것이고, 양호의 상소대로 따르지 않았다면 천하 통일은 커녕 천하 통일 직후처럼 똑같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 밖에도 오나라 국경을 지키던 대사마 석포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의심해 전 군에 동원령을 내려서 석포를 잡아들이려 했다. 그러기 전 마지막으로 석포를 소환했는데, 이때 석포가 뜻밖에 순순히 오자 석포의 관직을 사도로 올려버렸다는 미담도 있다.

3.6.5. 말년[편집]


그래도 사마염에게 가장 빛나는 군사적 승리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그것은 독발수기능의 난이었다. 호열견홍이 서량 통치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진건의 간언을 씹어서 1차적인 원인 중 하나를 제공했으나 견홍의 전사한 책임으로 억울하게 경질되었던 사마준에게 다시 기회를 주어 독발수기능을 약화시켰고, 당시 무명에 불과했던 마륭의 호기로운 제안을 받아들여 그 후에도 신하들의 온갖 모함을 무시하며 끝까지 마륭을 지지한 끝에 독발수기능의 난을 손오 정벌 이전에 종결시킬 수 있었다. 《진서》 <마륭전>만 참조한다면 사마염은 아예 성군으로 보인다. 양호와 두예를 기용한 점도 그렇고 사마염은 적어도 능력과 재능은 있었다. 이 순간의 사마염이 꾸준히 이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심정이 들긴 한다.

통일 뒤에는 강동 지역에 대해 한 배려 외엔 완전히 마음을 놓아버려 후대가 고생하게 만든 경우다. 사마염은 그래도 능력이 있어서 황제 노릇은 제대로 하고 살았으며, 그 생전에는 서진이 막장 부패를 달렸어도 큰 문제는 없이 나라를 유지했다.


4. 평가[편집]


진(晉) 나라 무제(武帝)가 주군(州郡)의 군병 제도를 없앤 것은 ‘무()는 억누르고 문()을 닦는다.’라는 뜻을 모방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서주 무왕(武王)의 덕이 없으면서 무왕의 사업을 본받으려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덕과 인()을 쌓은 공이 없을 뿐더러 음탕하고 시기하는 정사(政事)를 가지고 나라에 임했던 것이니, 그의 몸이 죽자 나라도 따라서 혼란해지게 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진 무제(晉武帝)는 혜제(惠帝)의 혼약(昏弱)함에 대해서는 알면서도 교체시키지 않았고, 가후(賈后)의 악함에 대해서는 몰라서 폐위시키지 못했으며, 양준(楊駿)이 제 마음대로 정권을 뒤흔들었어도 물리치지 아니하였으니, 스스로 난을 끼친 것이라고 하겠다.

홍대용


홍대용 평가의 마지막 줄은 제대로 핵심을 찌른 건데, 당시 서진의 상황으로 볼 때 이런저런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냥 사마염 수준 정도는 되는 황제가 후대에 왕위에 올랐거나, 혹은 양준이 제대로 깡과 능력이 있는 권신이 되어서 반대자들을 적당히 찍어누르고 포섭해 가면서 혜제를 바지 황제로 만들고 전횡을 할 만한 정치력이 있었거나[11], 아니면 사마염의 유언에 맞도록 사마염 자신이 애시당초 위관과 사마량에게 힘을 좀 실어줬거나, 혹은 가남풍 대신 위관의 딸이 혜제의 황후가 되었거나 해서 가남풍이 설치지 못하게 했거나, 이도저도 아니었으면 가남풍이 사마휼을 죽인다는 선택지만 아니었어도 팔왕의 난이 영가의 난으로 이어질 정도로 서진이 개막장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점에서 사마충과 가남풍, 그리고 양준을 막지 못한 사마염의 처신은 서진 왕조의 아킬레스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마염 입장에서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팔왕의 난에서의 왕들의 행보만 봐도 사마염의 아들인 장사왕 사마예나 성도왕 사마영, 혹은 회제 사마치 정도만 해도 대단한 능력자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국가가 어느 정도 안정적일 때 사마염 수준의 통치력을 발휘할 수준의 인물은 되었으나 이들은 사마염이 죽을때는 나이들이 너무 어렸다. 사실 사마염이 죽을때는 보면 사마간이나 사마윤 같은 나이가 적당히 차고 무난한 이들도 있었으니 황태자를 바꾸고자 하면 인물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기는 하고, 사마염도 사마충이 어리석은 인물이고 통일 제국의 2대 황제가 되기엔 바람직 하지 못하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말년 시점까지도 장자를 태자에서 폐하고 태자를 바꾸면서 바뀔 혼란이나 뒷정리에 대해서 결단하기엔 사마염의 성정이 너무 물렀다는 단점이 있었다. 물론 인간적으로는 재능이 떨어지는 아들을 단지 그 이유로 태자에서 폐하면, 본인이 가진 그 종법 상 정통성 때문에 그 최후가 필시 좋지 못할것이라는 것을 알고 주저한 것이겠지만[12] 결과물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는 것. 이런면에서 사마염의 평가는 군주로써는 인간적으로 무른 성격이었다는 것 때문에, 후계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아들 하나 잘못 낳았다는 것 때문에, 다른 영명한 후계자로 바꿀만한 대안들이 충분히 더 성장할 시간이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억까를 당하는 면도 꽤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까놓고 사마충 시대에서도 장화나 배외, 하다못해 가남풍의 사촌오빠 가모 정도만 되어도 나라를 다스려 갈 능력과 사직을 보존할 수 있는 충성심 정도는 충분히 있는 인물들이어서 가남풍이 나대던 시절에도 나라가 그런대로 평온하게 굴러갈 수준은 만들어 놓은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하다못해 사마휼만 안 죽었어도 자기가 혜제의 후계자가 되겠다고 개싸움을 벌이는 일까진 없었을 테니 뭐 그냥 나라가 굴러는 가는 수준인 중기 이후의 후한같이[13] 통일 왕조가 그럭저럭 이어져 나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고 사마예 같은 유능한 황족들이 하다못해서 명나라 영락제 급의 능력과 세력만 있었어도 팔왕의 난은 조기제압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사마염 입장에선 안 좋은 후대 if가 줄줄이 터지는 바람에 망한 감도 없잖아 있다는 것이다.

사실 위관의 딸은 성정이 어질고 후덕했다고는 하나 그것은 당대 전근대 부녀의 덕이고, 가남풍만한 정치력이 있는지도 고려해봐야 하는 일일것이다. 그나마 가남풍은 양준을 처리해 10년간은 안정적으로 나라를 이끌었다지만 위관의 딸이 그만한 정치력이 없다면 결국 나라를 망치는 게 가남풍에서 양준이 되는 것 뿐이다. 물론 위관의 딸이 황후가 될 경우 위관에게도 좀 더 권력이 주어지겠지만 그가 양준과 전면승부를 벌일지 사마량처럼 회피할 지는 모를 일이긴 하다. 하지만 위관 정도면 보신주의자 기질이 있기는 해도 나라를 안정적으로 굴려가면서 혜제를 적당히 보필해 갈 수준은 되는 인물이었으니 가충이나 양준과는 비교할 수 없었고, 사마량도 사마의의 아들로 황실에서 촌수도 꽤 높은 축에 들어갔던 데다, 성인군자는 아니어도[14] 다른 원로인 사마륜이나 사마융 수준의 찌질이나 병신은 아니었기 때문에 황족들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물론 사마염이 말년에 정신이 오락가락 할 때 황후와 양준이 조서를 조작해서 사마량을 쫓아내기는 했다. 사마염은 죽기 직전까지 사마량을 찾았지만 좀 더 정신이 멀쩡했을 때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건 아쉬운 점이다. 중요한 것은 사마염의 이런 결정이 분명히 아쉬운 면이 꽤나 있지만, 이해를 아예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총체적으로 보면, 사마염은 후대의 악평들과는 달리 한 나라의 군주로서는 무난한 인물이었다. 중국사의 역대 통일왕조 초대 군주 중에 가장 관대한 인물이기도 했고, 군주라는 시각을 잠시 내려놓고 보면 개인으로서는 인간적으로 호감이 갈만한 일화들도 제법 있는 사람이다. 노는걸 좋아하고 여색을 밝혔던거 같기는 하지만 비슷하게 여러 인간적인 일화로 민간의 호감을 산 건륭제가 보여준 실제의 인성적인 결함에 비하면 결함이라고 할 것도 못 된다.[15] 다만 후계자 선정을 잘못한 것이 시발점이 되어 모든 IF들이 죄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터지면서 영가의 난이란 비극이 생긴 것은 운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일단 사마염이 황태자를 바꾸면서 생길 피바람을 감당하기엔 너무 건국 군주치고는 성정이 물렀기도 했고 때문에 몇가지는 충분히 사전에 예측 가능한 일이었던 데다가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기회와 힘이 사마염에게 충분히 있었으나 자의반, 타의반으로 후대가 어떻게 잘 해주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미처 손을 쓰지 못한 감이 있는데, 이런 인간적인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후대에 죄다 안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바람에 사마염에 대한 악평으로 돌아온 감도 없잖아 있다.

5. 번외: 부여재조지은[편집]


夫餘國 在玄菟北千餘里, 南接鮮卑, 北有弱水, 地方二千里, 戶八萬, 有城邑宮室, 地宜五穀.

부여국은 현도 북쪽 1천여 리에 있으며, 남쪽으로는 선비(鮮卑)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약수가 있으며, 땅의 둘레가 2,000리인데, 호()는 80,000이고, 성읍(城邑)과 궁실(宮室)이 있으며, 땅은 5곡에 마땅하다.

(중략)

武帝時, 頻來朝貢, 至太康六年, 爲慕容廆所襲破, 其王依慮自殺, 子弟走保沃沮. 帝爲下詔曰:「夫餘王世守忠孝, 爲惡虜所滅, 甚愍念之. 若其遺類足以復國者, 當爲之方計, 使得存立.」 有司奏護東夷校尉鮮于嬰不救夫餘, 失於機略. 詔免嬰, 以何龕代之.

무제(武帝) 때에 자주 와서 조공하였는데, 태강(太康) 6년(285) 때에 모용외(慕容廆)에게 습파(襲破)당한 바가 되어, 그 왕 의려(依慮)가 자살하였고, (의려의) 자제들은 옥저(沃沮)로 달아나 지켰다. 황제가 조를 내리기를, "부여왕은 세세로 충효를 지켜 왔는데, 못된 오랑캐들에게 멸망당한 바가 되었으니 심히 가엾게 생각한다. 만일 그 남은 무리 중에 족히 나라를 회복할 자라면, 마땅히 이를 위해 방계를 세우고, (나라를) 존립(存立)할 수 있게 하라." 하였다. 유사(有司)가 아뢰기를, 호동이교위(護東夷校尉) 선우영(鮮于嬰)이 부여를 구하지 않아 빠르게 대처함을 잃었다 하였다. (이에) 조를 내려 영을 파면하고, 하감(何龕)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明年, 夫餘後王依羅遣詣龕, 求率見人還復舊國, 仍請援. 龕上列, 遣督郵賈沈以兵送之. 廆又要之於路, 沈與戰, 大敗之, 廆衆退, 羅得復國. 爾後每爲廆掠其種人, 賣於中國. 帝愍之, 又發詔以官物贖還, 下司·冀二州, 禁市夫餘之口.

이듬해(286), 부여의 후왕(後王) 의라(依羅)가 감에게 사람을 보내어 지금 남은 사람[見人]들을 거느리고 돌아와 옛 나라를 회복할 것을 구하며, 이에 (지원을) 청원하였다. 하감은 상열(上列)하고, 독우(督郵) 가심(賈沈)을 보내 군사로서 (부여 사람을) 호송하도록 하였다. 모용외[廆] 또한 길에서 이를 기다리고 있다가 하감과 더불어 싸웠다가 크게 패하였다. 모용외의 무리가 물러나자 의라는 다시 나라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후에 늘 모영외가 그 종인(種人)들을 노략질하고는, 중국에 팔았다. 황제가 이를 가엾게 여기니, 또 조를 내려 관청의 재물로써 (팔려온 부여 사람들을) 속환하게 하였고, 사주(司州)·기주(冀州)의 2주에 명을 내려 부여의 인구의 거래를 금하였다.

《진서》 <동이전> 부여조[16]

이리저리 까이는 사마염이지만 의외의 면모가 존재하는데, 바로 한국사에 재조지은을 행했다는 점이다. 부여가 모용선비부의 모용외에게 털리자 호동이교위 선우영이 부여를 구하지 않았다고 파면하고, 모용외로부터 부여를 구하여 나라를 회복시켰으며, 사주(司州)·기주(冀州)의 2주에 명을 내려, 중국으로 인신매매 당한 부여인들을 속환시켰다. 자국에서의 암군이 한국에 재조지은을 행했다는 점에서 명 신종 만력제와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6. 가족 관계[편집]


아내
자녀
봉작
이름
탄생
사망
무원황후(武元皇后) 양염(楊艷)
장남
비릉도왕(毗陵悼王)
사마궤(司馬軌)[17]
?
?
차남
혜제(惠帝)
사마충(司馬衷)
259
306
3남
진헌왕(秦獻王)
사마간(司馬柬)
262
291
7녀
평양공주(平陽公主)
?
?
?
8녀
신풍공주(新豊公主)
?
?
?
9녀
양평공주(陽平公主)
?
?
?
무도황후(武悼皇后) 양지(楊芷)[18]
16남
발해상왕(渤海殤王)
사마회(司馬恢)
283
284
효회태후(孝懷太后)
왕원희(王媛姬)[19]
17남
회제(懷帝)
사마치(司馬熾)
284
313
귀인(貴人) 좌분(左棻)[20]
자식 없음.
귀빈(貴嬪) 호방(胡芳)[21]
11녀
무안공주(武安公主)
?
?
?
부인(夫人) 제갈완(諸葛婉)[22]
자식 없음.
미인(美人) 심씨(審氏)
4남
성양회왕(城陽懐王)
사마경(司馬景)
?
270
8남
초은왕(楚隠王)
사마위(司馬瑋)
271
291
16남
장사려왕(長沙厲王)
사마예(司馬乂)
277
304
재인(才人) 서씨(徐氏)
5남
성양상왕(城陽殤王)
사마헌(司馬憲)
270
271
재인(才人) 궤씨(匱氏)
6남
동해충왕(東海沖王)
사마지(司馬祗)
271
273
재인(才人) 조씨(趙氏)
7남
시평애왕(始平哀王)
사마유(司馬裕)
271
277
미인(美人) 조씨(趙氏)
18남
대애왕(代哀王)
사마연(司馬演)
?
?
부인(夫人) 이씨(李氏)
9남
회남충장왕
(淮南忠莊王)
사마윤(司馬允)
272
300
15남
오효왕(呉孝王)
사마안(司馬晏)
281
311
보림(保林) 엄씨(嚴氏)
10남
신도회왕(新都懐王)
사마해(司馬該)
272
283
미인(美人) 진씨(陳氏)
11남
청하강왕(淸河康王)
사마하(司馬遐)
273
300
제희(諸姫)
13남
여음애왕(汝陰哀王)
사마모(司馬謨)
276
311
재인(才人) 정씨(程氏)
14남
성도왕(成都王)
사마영(司馬穎)
279
306
생모 미상
장녀
상산공주(常山公主)[23]
?
?
?
생모 미상
차녀
장광공주(長廣公主)[24]
?
?
?
생모 미상
3녀
형양공주(滎陽公主)[25]
?
?
?
생모 미상
4녀
형양장공주
(滎陽長公主)[26]
?
?
?
생모 미상
5녀
번창공주(繁昌公主)[27]
?
?
?
생모 미상
6녀
양성공주(襄城公主)[28]
?
?
?
생모 미상
10녀
만안공주(萬安公主)
?
?
?
생모 미상
12녀
영천공주(潁川公主)[29]
?
?
?
생모 미상
?
영수공주
사마수려
?
?

  • 18남 7녀로 총 25인. 그러나 이 많은 자식들은 지들끼리 죽고 죽이면서 사마치와 사마안 둘만 남는다. 그리고 이마저도 영가의 난으로 몰살당했다. 가장 오래 산 아들이 48세에 죽은 혜제 사마충으로, 30세를 넘긴 아들도 사마충, 사마간, 사마치, 사마안, 사마해 5명이 전부이며 사마충만 빼면 이들마저도 전부 30대 초반에 죽었다.
  • 이들 빼고도 역사에 기록한 첩은 10여 명이 더 있다. 또 못 기록한 수천여 명의 첩들도 있으며 이들은 모두 자녀가 없었다.
  • 또한, 서진에서 정상적인 권력을 누린 유일한 황제이다. 사마충은 가남풍의 꼭두각시 신세로 전락했고 팔왕의 난에 휩싸여 죽고 만다. 진 회제, 진 민제는 전조의 포로 신세가 되어 비참하게 죽는다. 진나라가 남쪽으로 이동한 후에 즉위한 진 원제왕돈의 꼭두각시 신세로 전락하였다. 진 명제 때 황제권을 되찾는 것 같았지만 요절하고 이후 황제들은 어린 나이에 즉위하면서 환온, 환현 같은 신하의 꼭두각시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효무제 때 잠시 황제권을 되찾는 듯 싶었으나 효무제가 어이없이 죽고 난 후 진 안제와 진 공제는 유유의 꼭두각시 신세가 되어 유유에 의해 살해당하고 결국 진나라는 멸망당한다. 그리고 진나라 황족인 하내 사마씨들은 유유에 의해 거의 몰살당한다.


7. 기타[편집]


고려의 8대 군주인 현종과 자가 같다.

8. 미디어 믹스[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무제(서진)/기타 창작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둘러보기(계보)[편집]



서진의 계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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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부군[추존][1]
사마랑
창무정후 유
하간평왕 홍
의양왕
장무왕
의양성왕 망
하간평왕 홍[2]
동평왕
고조 선황제[추존]
세종 경황제[추존]
제헌왕 유
동래왕 [3]
북해왕 [4]
제무민왕
태조 문황제[추존]
세조 무황제(1)
비릉도왕 궤[5]
효혜황제(2)
민회태자 휼
진헌왕
효민황제(4)[6]
성양회왕 경
초은왕
동해충왕 지
시평애왕 유
회남충장왕
청하강왕 [7]
장사려왕 예(혹은 애)
성도왕
오효왕
효민황제[8]
발해상왕 회[9]
예장왕→효회황제(3)[10]
대애왕 연[11]
제헌왕 유[12]
성양애왕 조
청하강왕
요동도혜왕 정국
동래왕
광한상왕 광덕
북해왕
낙안평왕
연왕 [13]
사마영조
낙평왕 연조
여남문성왕 [14]
사마수
회왕
낭야무왕 주
낭야공왕 근
중종 원황제(5)[15]
무릉장왕
동안왕
회릉원왕
연왕 경
연왕
부풍무왕 준
순양왕
신야장왕
평원왕
양효왕
조왕 [16]
안평헌왕 부
안평정왕 옹
남궁현왕 승[17]
안평왕 돈[18]
의양성왕 망[19]
사마익
남궁현왕 승
안평왕 [20]
태원열왕 괴
하간왕
상산왕 형
안평왕 돈
안평왕
동무대후 규
팽성목왕 권
팽성원왕
고밀문헌왕
동해효헌왕
신채무애왕
고밀효왕
남양왕
원황제[21]
범양왕 수
사마순
제남왕 수
중산왕
사마진
성양정후 손
단수현후 목
안평정후 표[22]
안성정후 통
임성왕 릉
임성왕
안평정후 민
안평정후 표[23]
경조부군 이전[추존][24]
정서부군 - 예장부군 - 영천부군
※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황제 및 추존 황제는 굵게 쓰고 8왕은 작위를 빨갛게 썼다. 그리고 8왕의 난에 관련된 자들은 작위를 갈색으로 썼다. 종친의 이름은 뒤에 쓴다. 그리고 종친은 작위 뒤에 성씨를 생략한다.

각주 [ 펼치기 · 접기 ]
[각주]



진문제 사마소의 아들들

[ 펼치기 · 접기 ]
,무황제(武皇帝),
사마염
,제헌왕(齊獻王),
사마유
,성양애왕(城陽哀王),
사마조
,요동도혜왕(遼東悼惠王),
사마정국
,광한상왕(廣漢殤王),
사마광덕
,낙안평왕(樂安平王),
사마감
,연왕(燕王),
사마기
,황자,
사마영조
,낙평왕(樂平王),
사마연조
帝표는 황제
사마기, 사마연조, 사마영조는 시호가 없다.



진서(晉書)

[ 제기(帝紀) ]

||<-2><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권 「선제기(宣帝紀)」 ||<-2><width=33%>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2><width=33%> 3권 「무제기(武帝紀)」 ||
||<-2><rowbgcolor=#fff,#191919> 사마의 ||<-2> 사마사 · 사마소(昭) ||<-2> 사마염 ||
||<-2> 4권 「혜제기(惠帝紀)」 ||<-2>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2>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
||<-2><rowbgcolor=#fff,#191919> 사마충(衷) ||<-2> 사마치 · 사마업 ||<-2> 사마예 · 사마소(紹) ||
||<-3><width=50%>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3><width=50%>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
||<-3><rowbgcolor=#fff,#191919> 사마연(衍) · 사마악 ||<-3>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
||<-3>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3>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
||<-3><rowbgcolor=#fff,#191919> 사마욱 · 사마요 ||<-3> 사마덕종 · 사마덕문 ||
||<-6><width=1000> ||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 열전(列傳) ]
#181818,#e5e5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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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 {{{#ffffff 37권}}}}}} {{{-2 {{{#fff 「종실전(宗室傳)」}}} }}} ||
||<-6><rowbgcolor=#fff,#191919> [[사마부|{{{#000,#e5e5e5 사마부(孚)}}}]] ,,,[[사마옹#s-3|{{{#000,#e5e5e5 사마옹(邕)}}}]] [[사마숭|{{{#999,#666666 사마숭}}}]] [[사마망|{{{#000,#e5e5e5 사마망}}}]] [[사마무|{{{#000,#e5e5e5 사마무}}}]] [[사마보|{{{#999,#666666 사마보}}}]] [[사마익|{{{#000,#e5e5e5 사마익}}}]] [[사마황|{{{#999,#666666 사마황}}}]] [[사마부(서진)|{{{#999,#666666 사마부(裒)}}}]] [[사마작|{{{#999,#666666 사마작}}}]] [[사마위#s-3|{{{#000,#e5e5e5 사마위(韡)}}}]] [[사마소(서진)|{{{#999,#666666 사마소(韶)}}}]] [[사마괴|{{{#000,#e5e5e5 사마괴}}}]],,, ,,,[[사마규|{{{#999,#666666 사마규}}}]] [[사마송|{{{#999,#666666 사마송}}}]] [[사마형|{{{#000,#e5e5e5 사마형}}}]] [[사마돈|{{{#000,#e5e5e5 사마돈}}}]] [[사마경(패왕)|{{{#999,#666666 사마경}}}]] [[사마도|{{{#999,#666666 사마도}}}]],,, · [[사마권|{{{#000,#e5e5e5 사마권}}}]] ,,,[[사마식|{{{#000,#e5e5e5 사마식}}}]] [[사마석|{{{#999,#666666 사마석}}}]] [[사마웅|{{{#999,#666666 사마웅}}}]],,, ,,,[[사마굉|{{{#999,#666666 사마굉}}}]] [[사마홍|{{{#999,#666666 사마홍}}}]] [[사마소(서진)|{{{#999,#666666 사마소(邵)}}}]] [[사마숭|{{{#999,#666666 사마숭}}}]] [[사마집|{{{#999,#666666 사마집}}}]] [[사마준(동명이인)|{{{#999,#666666 사마준(俊)}}}]] [[사마순(서진)|{{{#999,#666666 사마순}}}]] [[사마회|{{{#000,#e5e5e5 사마회}}}]],,, · [[사마태|{{{#000,#e5e5e5 사마태}}}]] ,,,[[사마략|{{{#000,#e5e5e5 사마략}}}]] [[사마등|{{{#000,#e5e5e5 사마등}}}]] [[사마모|{{{#000,#e5e5e5 사마모}}}]],,, · [[사마수(범양왕)|{{{#000,#e5e5e5 사마수(綏)}}}]] ,,,[[사마효|{{{#999,#666666 사마효}}}]],,, · [[사마수|{{{#000,#e5e5e5 사마수(遂)}}}]] ,,,[[사마훈|{{{#000,#e5e5e5 사마훈}}}]],,, · [[사마손|{{{#000,#e5e5e5 사마손}}}]] ,,,[[사마승|{{{#000,#e5e5e5 사마승}}}]] [[사마무기|{{{#999,#666666 사마무기}}}]] [[사마념|{{{#999,#666666 사마념}}}]] [[사마상지|{{{#999,#666666 사마상지}}}]] [[사마회지|{{{#999,#666666 사마회지}}}]] [[사마휴지|{{{#999,#666666 사마휴지}}}]] [[사마윤지|{{{#999,#666666 사마윤지}}}]] [[한연지|{{{#999,#666666 한연지}}}]],,, · [[사마목|{{{#000,#e5e5e5 사마목}}}]] · [[사마릉|{{{#000,#e5e5e5 사마릉}}}]] ,,,[[사마순|{{{#000,#e5e5e5 사마순}}}]] [[사마빈|{{{#000,#e5e5e5 사마빈}}}]],,, ||
||<-6> {{{-1 {{{#ffffff 38권}}}}}} {{{-2 {{{#fff 「선오왕문육왕전(宣五王文六王傳)」}}} }}} ||
||<-6><rowbgcolor=#fff,#191919> [[사마간|{{{#000,#e5e5e5 사마간(榦)}}}]] · [[사마주|{{{#000,#e5e5e5 사마주}}}]] ,,,[[사마근|{{{#000,#e5e5e5 사마근}}}]] [[사마담|{{{#000,#e5e5e5 사마담}}}]] [[사마요|{{{#000,#e5e5e5 사마요}}}]] [[사마최|{{{#000,#e5e5e5 사마최}}}]],,, · [[사마경|{{{#000,#e5e5e5 사마경(京)}}}]] · [[사마준|{{{#000,#e5e5e5 사마준(駿)}}}]] ,,,[[사마흠|{{{#000,#e5e5e5 사마흠}}}]],,, · [[사마융|{{{#000,#e5e5e5 사마융}}}]] · [[사마유|{{{#000,#e5e5e5 사마유(攸)}}}]] ,,,[[사마유(동래왕)|{{{#000,#e5e5e5 사마유(蕤)}}}]],,, · [[사마조#s-1|{{{#000,#e5e5e5 사마조}}}]] · [[사마정국|{{{#000,#e5e5e5 사마정국}}}]] · [[사마광덕|{{{#000,#e5e5e5 사마광덕}}}]] · [[사마감|{{{#000,#e5e5e5 사마감}}}]] · [[사마연조|{{{#000,#e5e5e5 사마연조}}}]] ||
||<-2><width=33%> {{{-1 {{{#ffffff 39권}}}}}} {{{-2 {{{#fff 「왕침등전(王沈等傳)」}}} }}} ||<-2><width=33%> {{{-1 {{{#ffffff 40권}}}}}} {{{-2 {{{#fff 「가충등전(賈充等傳)」}}} }}} ||<-2><width=33%> {{{-1 {{{#ffffff 41권}}}}}} {{{-2 {{{#fff 「위서등전(魏舒等傳)」}}} }}} ||
||<-2><rowbgcolor=#fff,#191919> [[왕침#s-1|{{{#000,#e5e5e5 왕침(王沈)}}}]] ,,,[[왕준(표기대장군)|{{{#000,#e5e5e5 왕준(浚)}}}]],,, · [[순의|{{{#000,#e5e5e5 순의}}}]] · [[순욱(서진)|{{{#000,#e5e5e5 순욱}}}]] ,,,[[순번|{{{#999,#666666 순번}}}]] [[순조(서진)|{{{#999,#666666 순조}}}]] [[순혁|{{{#999,#666666 순혁}}}]],,, · [[풍담|{{{#000,#e5e5e5 풍담}}}]] ||<-2> [[가충|{{{#000,#e5e5e5 가충}}}]] · [[양준(서진)|{{{#000,#e5e5e5 양준}}}]] ,,,[[양요|{{{#000,#e5e5e5 양요}}}]] [[양제|{{{#000,#e5e5e5 양제}}}]],,, ||<-2> [[위서(삼국지)|{{{#000,#e5e5e5 위서}}}]] · [[이희(서진)|{{{#000,#e5e5e5 이희}}}]] · [[유식#s-2|{{{#000,#e5e5e5 유식}}}]] · [[고광|{{{#000,#e5e5e5 고광}}}]] ||
||<-3> {{{-1 {{{#ffffff 42권}}}}}} {{{-2 {{{#fff 「왕혼등전(王渾等傳)」}}} }}} ||<-3> {{{-1 {{{#ffffff 43권}}}}}} {{{-2 {{{#fff 「산도등전(山濤等傳)」}}} }}} ||
||<-3><rowbgcolor=#fff,#191919> [[왕혼#s-1|{{{#000,#e5e5e5 왕혼}}}]] ,,,[[왕제|{{{#000,#e5e5e5 왕제}}}]],,, · [[왕준(무군대장군)|{{{#000,#e5e5e5 왕준(濬)}}}]] · [[당빈|{{{#000,#e5e5e5 당빈}}}]] ||<-3> [[산도(서진)|{{{#000,#e5e5e5 산도}}}]] ,,,[[산간|{{{#000,#e5e5e5 산간}}}]] [[산하|{{{#000,#e5e5e5 산하}}}]],,, · [[왕융|{{{#000,#e5e5e5 왕융}}}]] ,,,[[왕연|{{{#000,#e5e5e5 왕연}}}]] [[왕징|{{{#000,#e5e5e5 왕징}}}]] [[곽서|{{{#000,#e5e5e5 곽서}}}]],,, · [[악광|{{{#000,#e5e5e5 악광}}}]] ||
||<-3> {{{-1 {{{#ffffff 44권}}}}}} {{{-2 {{{#fff 「정무등전(鄭袤等傳)」}}} }}} ||<-3> {{{-1 {{{#ffffff 45권}}}}}} {{{-2 {{{#fff 「유의등전(劉毅等傳)」}}} }}} ||
||<-3><rowbgcolor=#fff,#191919> [[정무#s-3|{{{#000,#e5e5e5 정무}}}]] ,,,[[정묵|{{{#000,#e5e5e5 정묵}}}]],,, · [[이윤(서진)|{{{#000,#e5e5e5 이윤}}}]] · [[노흠|{{{#000,#e5e5e5 노흠}}}]] ,,,[[노지(서진)|{{{#000,#e5e5e5 노지(盧志)}}}]] [[노심|{{{#000,#e5e5e5 노심}}}]],,, · [[화표|{{{#000,#e5e5e5 화표}}}]] ,,,[[화이|{{{#000,#e5e5e5 화이}}}]] [[화항|{{{#000,#e5e5e5 화항}}}]] [[화교(서진)|{{{#000,#e5e5e5 화교}}}]],,, · [[석감#s-1|{{{#000,#e5e5e5 석감}}}]] · [[온선|{{{#000,#e5e5e5 온선}}}]] ||<-3> [[유의(서진)|{{{#000,#e5e5e5 유의}}}]] ,,,[[유돈|{{{#000,#e5e5e5 유돈}}}]],,, · [[화교(삼국지)#s-1|{{{#000,#e5e5e5 화교}}}]] · [[무해|{{{#000,#e5e5e5 무해}}}]] · [[임개|{{{#000,#e5e5e5 임개}}}]] · [[최홍(서진)|{{{#000,#e5e5e5 최홍}}}]] · [[곽혁(서진)|{{{#000,#e5e5e5 곽혁}}}]] · [[후사광|{{{#000,#e5e5e5 후사광}}}]] · [[하반|{{{#000,#e5e5e5 하반}}}]] ||
||<-2> {{{-1 {{{#ffffff 46권}}}}}} {{{-2 {{{#fff 「유송등전(劉頌等傳)」}}} }}} ||<-2> {{{-1 {{{#ffffff 47권}}}}}} {{{-2 {{{#fff 「부현전(傅玄傳)」}}} }}} ||<-2> {{{-1 {{{#ffffff 48권}}}}}} {{{-2 {{{#fff 「상웅등전(向雄等傳)」}}} }}} ||
||<-2><rowbgcolor=#fff,#191919> [[유송|{{{#000,#e5e5e5 유송}}}]] · [[이중|{{{#000,#e5e5e5 이중}}}]] ||<-2> [[부현|{{{#000,#e5e5e5 부현}}}]] · [[부함|{{{#000,#e5e5e5 부함}}}]] · [[부지|{{{#000,#e5e5e5 부지}}}]] ||<-2> [[상웅|{{{#000,#e5e5e5 상웅}}}]] · [[단작|{{{#000,#e5e5e5 단작}}}]] · [[염찬|{{{#000,#e5e5e5 염찬}}}]] ||
||<-6> {{{-1 {{{#ffffff 49권}}}}}} {{{-2 {{{#fff 「완적등전(阮籍等傳)」}}} }}} ||
||<-6><rowbgcolor=#fff,#191919> [[완적|{{{#000,#e5e5e5 완적}}}]] · [[혜강|{{{#000,#e5e5e5 혜강}}}]] · [[상수(삼국지)|{{{#000,#e5e5e5 상수}}}]] · [[유영(서진)|{{{#000,#e5e5e5 유영}}}]] · [[사곤|{{{#000,#e5e5e5 사곤}}}]] · [[호무보지|{{{#000,#e5e5e5 호무보지}}}]] · [[필탁|{{{#000,#e5e5e5 필탁}}}]] · [[왕니|{{{#000,#e5e5e5 왕니}}}]] · [[양만|{{{#000,#e5e5e5 양만}}}]] · [[광일|{{{#000,#e5e5e5 광일}}}]] ||
||<-6> {{{-1 {{{#ffffff 50권}}}}}} {{{-2 {{{#fff 「조지등전(曹志等傳)」}}} }}} ||
||<-6><rowbgcolor=#fff,#191919> [[조지(서진)|{{{#000,#e5e5e5 조지(曹志)}}}]] · [[유준(삼국지)#s-3|{{{#000,#e5e5e5 유준}}}]] · [[곽상#s-1|{{{#000,#e5e5e5 곽상}}}]] · [[유순(서진)|{{{#000,#e5e5e5 유순}}}]] · [[진수(서진)|{{{#000,#e5e5e5 진수(秦秀)}}}]] ||
||<-2> {{{-1 {{{#ffffff 51권}}}}}} {{{-2 {{{#fff 「황보밀등전(皇甫謐等傳)」}}} }}} ||<-2> {{{-1 {{{#ffffff 52권}}}}}} {{{-2 {{{#fff 「극선등전(郤詵等傳)」}}} }}} ||<-2> {{{-1 {{{#ffffff 53권}}}}}} {{{-2 {{{#fff 「민회태자전(愍懷太子傳)」}}} }}} ||
||<-2><rowbgcolor=#fff,#191919> [[황보밀|{{{#000,#e5e5e5 황보밀}}}]] · [[지우(삼국지)|{{{#000,#e5e5e5 지우}}}]] · [[속석|{{{#000,#e5e5e5 속석}}}]] · [[왕접|{{{#000,#e5e5e5 왕접}}}]] ||<-2> [[극선|{{{#000,#e5e5e5 극선}}}]] · [[완충|{{{#999,#666666 완충}}}]] · [[화담|{{{#999,#666666 화담}}}]] ||<-2> [[사마휼|{{{#000,#e5e5e5 민회태자}}}]] ||
||<-2> {{{-1 {{{#ffffff 54권}}}}}} {{{-2 {{{#fff 「육기등전(陸機等傳)」}}} }}} ||<-2> {{{-1 {{{#ffffff 55권}}}}}} {{{-2 {{{#fff 「하후담등전(夏侯湛等傳)」}}} }}} ||<-2> {{{-1 {{{#ffffff 56권}}}}}} {{{-2 {{{#fff 「강통등전(江統等傳)」}}} }}} ||
||<-2><rowbgcolor=#fff,#191919> [[육기|{{{#000,#e5e5e5 육기}}}]] · [[육운|{{{#000,#e5e5e5 육운}}}]] ||<-2> [[하후담|{{{#000,#e5e5e5 하후담}}}]] · [[반악|{{{#000,#e5e5e5 반악}}}]] · [[장재|{{{#000,#e5e5e5 장재}}}]] ||<-2> [[강통|{{{#999,#666666 강통}}}]] · [[손초|{{{#000,#e5e5e5 손초}}}]] ||
||<-4> {{{-1 {{{#ffffff 57권}}}}}} {{{-2 {{{#fff 「나헌등전(羅憲等傳)」}}} }}} ||<-2> {{{-1 {{{#ffffff 58권}}}}}} {{{-2 {{{#fff 「주처등전(周處等傳)」}}} }}} ||
||<-4><rowbgcolor=#fff,#191919> [[나헌|{{{#000,#e5e5e5 나헌}}}]] ,,,[[나상|{{{#000,#e5e5e5 나상}}}]],,, · [[등수#s-2|{{{#000,#e5e5e5 등수}}}]] · [[마륭|{{{#000,#e5e5e5 마륭}}}]] · [[호분#s-1|{{{#000,#e5e5e5 호분}}}]] · [[오언(삼국지)|{{{#000,#e5e5e5 오언}}}]] · [[장광(서진)|{{{#000,#e5e5e5 장광}}}]] · [[조유|{{{#000,#e5e5e5 조유}}}]] ||<-2> [[주처|{{{#000,#e5e5e5 주처}}}]] · [[주방(서진)|{{{#000,#e5e5e5 주방}}}]] ,,,[[주무|{{{#999,#666666 주무}}}]] [[주초|{{{#999,#666666 주초}}}]] [[주효|{{{#999,#666666 주효}}}]],,, ||
||<-6> {{{-1 {{{#ffffff 59권}}}}}} {{{-2 {{{#fff 「여남왕량등전(汝南王亮等傳)」}}} }}} ||
||<-6><rowbgcolor=#fff,#191919> [[사마량|{{{#000,#e5e5e5 사마량}}}]] · [[사마위|{{{#000,#e5e5e5 사마위(瑋)}}}]] · [[사마륜|{{{#000,#e5e5e5 사마륜}}}]] · [[사마경|{{{#000,#e5e5e5 사마경(冏)}}}]] · [[사마예|{{{#000,#e5e5e5 사마예}}}]] · [[사마영|{{{#000,#e5e5e5 사마영}}}]] · [[사마옹|{{{#000,#e5e5e5 사마옹}}}]] · [[사마월|{{{#000,#e5e5e5 사마월}}}]] ||
||<-6> {{{-1 {{{#ffffff 60권}}}}}} {{{-2 {{{#fff 「해계등전(解系等傳)」}}} }}} ||
||<-6><rowbgcolor=#fff,#191919> [[해계|{{{#000,#e5e5e5 해계}}}]] · [[손기(서진)|{{{#000,#e5e5e5 손기}}}]] · [[맹관|{{{#000,#e5e5e5 맹관}}}]] · [[견수|{{{#000,#e5e5e5 견수}}}]] · [[무파|{{{#000,#e5e5e5 무파}}}]] · [[황보중|{{{#000,#e5e5e5 황보중}}}]] · [[장보(서진)|{{{#000,#e5e5e5 장보}}}]] · [[이함(서진)|{{{#000,#e5e5e5 이함}}}]] · [[장방(서진)|{{{#000,#e5e5e5 장방}}}]] · [[염정|{{{#000,#e5e5e5 염정}}}]] · [[색정|{{{#000,#e5e5e5 색정}}}]] ,,,[[색침|{{{#000,#e5e5e5 색침}}}]],,, · [[가필(서진)|{{{#000,#e5e5e5 가필}}}]] ||
||<-2> {{{-1 {{{#ffffff 61권}}}}}} {{{-2 {{{#fff 「주준등전(周浚等傳)」}}} }}} ||<-2> {{{-1 {{{#ffffff 62권}}}}}} {{{-2 {{{#fff 「유곤등전(劉琨等傳)」}}} }}} ||<-2> {{{-1 {{{#ffffff 63권}}}}}} {{{-2 {{{#fff 「소속등전(邵續等傳)」}}} }}} ||
||<-2><rowbgcolor=#fff,#191919> [[주준(서진)|{{{#000,#e5e5e5 주준}}}]] ,,,[[주복|{{{#000,#e5e5e5 주복}}}]],,, · [[성공간|{{{#000,#e5e5e5 성공간}}}]] · [[구희(서진)|{{{#000,#e5e5e5 구희}}}]] · [[화질(서진)|{{{#999,#666666 화질}}}]] · [[유교(삼국지)|{{{#000,#e5e5e5 유교}}}]] ||<-2> [[유곤(서진)|{{{#000,#e5e5e5 유곤(劉琨)}}}]] · [[조적|{{{#000,#e5e5e5 조적}}}]] ||<-2> [[소속(동진)|{{{#000,#e5e5e5 소속}}}]] · [[이구(서진)|{{{#999,#666666 이구}}}]] · [[단필제|{{{#000,#e5e5e5 단필제}}}]] · [[위준|{{{#999,#666666 위준}}}]] ,,,[[위해|{{{#000,#e5e5e5 위해}}}]],,, · [[곽묵|{{{#999,#666666 곽묵}}}]] ||
||<-6> {{{-1 {{{#ffffff 64권}}}}}} {{{-2 {{{#fff 「무십삼왕원사왕간문삼자전(武十三王元四王簡文三子傳)」}}} }}} ||
||<-6><rowbgcolor=#fff,#191919> [[사마궤|{{{#000,#e5e5e5 사마궤}}}]] · [[사마간|{{{#000,#e5e5e5 사마간(柬)}}}]] · [[사마경|{{{#000,#e5e5e5 사마경(景)}}}]] · [[사마지(서진)|{{{#000,#e5e5e5 사마지}}}]] · [[사마유(시평왕)|{{{#000,#e5e5e5 사마유(裕)}}}]] · [[사마윤|{{{#000,#e5e5e5 사마윤}}}]] · [[사마연|{{{#000,#e5e5e5 사마연(演)}}}]] · [[사마해|{{{#000,#e5e5e5 사마해}}}]] · [[사마하|{{{#000,#e5e5e5 사마하}}}]] · [[사마모|{{{#000,#e5e5e5 사마모(謨)}}}]] · [[사마안|{{{#000,#e5e5e5 사마안}}}]] · [[사마회|{{{#000,#e5e5e5 사마회}}}]] · [[사마부(동진)|{{{#000,#e5e5e5 사마부(裒)}}}]] · [[사마충(동진)|{{{#000,#e5e5e5 사마충(沖)}}}]] · [[사마희|{{{#999,#666666 사마희}}}]] · [[사마환|{{{#999,#666666 사마환}}}]] · [[사마도생|{{{#000,#e5e5e5 사마도생}}}]] · [[사마욱|{{{#000,#e5e5e5 사마욱(郁)}}}]] · [[사마도자|{{{#000,#e5e5e5 사마도자}}}]] ||
||<-6> {{{-1 {{{#ffffff 65권}}}}}} {{{-2 {{{#fff 「왕도전(王導傳)」}}} }}} ||
||<-6><rowbgcolor=#fff,#191919> [[왕도(동진)|{{{#000,#e5e5e5 왕도}}}]] ||
||<-2> {{{-1 {{{#ffffff 66권}}}}}} {{{-2 {{{#fff 「유홍등전(劉弘等傳)」}}} }}} ||<-2> {{{-1 {{{#ffffff 67권}}}}}} {{{-2 {{{#fff 「온교등전(溫嶠等傳)」}}} }}} ||<-2> {{{-1 {{{#ffffff 68권}}}}}} {{{-2 {{{#fff 「고영등전(顧榮等傳)」}}} }}} ||
||<-2><rowbgcolor=#fff,#191919> [[유홍(서진)|{{{#000,#e5e5e5 유홍}}}]] · [[도간|{{{#000,#e5e5e5 도간}}}]] ||<-2> [[온교|{{{#999,#666666 온교}}}]] · [[치감|{{{#999,#666666 치감}}}]] ||<-2> [[고영|{{{#000,#e5e5e5 고영}}}]] · [[기첨|{{{#999,#666666 기첨}}}]] · [[하순|{{{#000,#e5e5e5 하순}}}]] · [[설겸|{{{#999,#666666 설겸}}}]] ||
||<-2> {{{-1 {{{#ffffff 69권}}}}}} {{{-2 {{{#fff 「유외등전(劉隗等傳)」}}} }}} ||<-2> {{{-1 {{{#ffffff 70권}}}}}} {{{-2 {{{#fff 「응첨등전(應詹等傳)」}}} }}} ||<-2> {{{-1 {{{#ffffff 71권}}}}}} {{{-2 {{{#fff 「손혜등전(孫惠等傳)」}}} }}} ||
||<-2><rowbgcolor=#fff,#191919> [[유외(동진)|{{{#000,#e5e5e5 유외}}}]] ,,,[[유파(동진)|{{{#000,#e5e5e5 유파}}}]],,, · [[조협|{{{#000,#e5e5e5 조협}}}]] · [[대연|{{{#999,#666666 대약사}}}]] · [[주의(동진)|{{{#999,#666666 주의}}}]] ||<-2> [[응첨|{{{#999,#666666 응첨}}}]] · [[감탁|{{{#999,#666666 감탁}}}]] · [[변곤|{{{#999,#666666 변곤}}}]] · [[유초(동진)|{{{#999,#666666 유초}}}]] · [[종아|{{{#999,#666666 종아}}}]] ||<-2> [[손혜|{{{#999,#666666 손혜}}}]] · [[웅원|{{{#999,#666666 웅원}}}]] · [[왕감|{{{#999,#666666 왕감}}}]] · [[진군(동진)|{{{#999,#666666 진군}}}]] · [[고송|{{{#999,#666666 고송}}}]] ||
||<-2> {{{-1 {{{#ffffff 72권}}}}}} {{{-2 {{{#fff 「곽박등전(郭璞等傳)」}}} }}} ||<-2> {{{-1 {{{#ffffff 73권}}}}}} {{{-2 {{{#fff 「유량전(庾亮傳)」}}} }}} ||<-2> {{{-1 {{{#ffffff 74권}}}}}} {{{-2 {{{#fff 「환이전(桓彝傳)」}}} }}} ||
||<-2><rowbgcolor=#fff,#191919> [[곽박|{{{#999,#666666 곽박}}}]] · [[갈홍|{{{#000,#e5e5e5 갈홍}}}]] ||<-2> [[유량|{{{#999,#666666 유량}}}]] · [[유역|{{{#999,#666666 유역}}}]] · [[유빙|{{{#999,#666666 유빙}}}]] · [[유익|{{{#999,#666666 유익}}}]] ||<-2> [[환이(동진)|{{{#000,#e5e5e5 환이}}}]] ,,,[[환운|{{{#999,#666666 환운}}}]] [[환활|{{{#999,#666666 환활}}}]] [[환비|{{{#999,#666666 환비}}}]] [[환충|{{{#999,#666666 환충}}}]],,, ||
||<-2> {{{-1 {{{#ffffff 75권}}}}}} {{{-2 {{{#fff 「왕담등전(王湛等傳)」}}} }}} ||<-2> {{{-1 {{{#ffffff 76권}}}}}} {{{-2 {{{#fff 「왕서등전(王舒等傳)」}}} }}} ||<-2> {{{-1 {{{#ffffff 77권}}}}}} {{{-2 {{{#fff 「육엽등전(陸曄等傳)」}}} }}} ||
||<-2><rowbgcolor=#fff,#191919> [[왕담|{{{#000,#e5e5e5 왕담}}}]] · [[순숭|{{{#999,#666666 순숭}}}]] · [[범왕(동진)|{{{#999,#666666 범왕}}}]] · [[유담(동진)|{{{#999,#666666 유담}}}]] · [[장빙|{{{#999,#666666 장빙}}}]] · [[한백(동진)|{{{#999,#666666 한백}}}]] ||<-2> [[왕서|{{{#999,#666666 왕서}}}]] · [[왕이(동진)|{{{#999,#666666 왕이}}}]] · [[우담|{{{#999,#666666 우담}}}]] · [[고중|{{{#999,#666666 고중}}}]] · [[장개(동진)|{{{#999,#666666 장개}}}]] ||<-2> [[육엽|{{{#999,#666666 육엽}}}]] · [[하충|{{{#999,#666666 하충}}}]] · [[저삽|{{{#999,#666666 저삽}}}]] · [[채모(동진)|{{{#999,#666666 채모}}}]] · [[제갈회|{{{#000,#e5e5e5 제갈회}}}]] · [[은호(동진)|{{{#999,#666666 은호}}}]] ||
||<-2> {{{-1 {{{#ffffff 78권}}}}}} {{{-2 {{{#fff 「공유등전(孔愉等傳)」}}} }}} ||<-2> {{{-1 {{{#ffffff 79권}}}}}} {{{-2 {{{#fff 「사상등전(謝尙等傳)」}}} }}} ||<-2> {{{-1 {{{#ffffff 80권}}}}}} {{{-2 {{{#fff 「왕희지전(王羲之等傳)」}}} }}} ||
||<-2><rowbgcolor=#fff,#191919> [[공유(동진)|{{{#999,#666666 공유}}}]] · [[정담(동진)|{{{#999,#666666 정담}}}]] · [[도회(동진)|{{{#999,#666666 도회}}}]] ||<-2> [[사상(동진)|{{{#999,#666666 사상}}}]] · [[사안(동진)|{{{#000,#e5e5e5 사안}}}]] ,,,[[사염|{{{#000,#e5e5e5 사염}}}]] · [[사혼|{{{#000,#e5e5e5 사혼}}}]] · [[사현|{{{#000,#e5e5e5 사현}}}]] · [[사만|{{{#000,#e5e5e5 사만}}}]] · [[사랑(동진)|{{{#000,#e5e5e5 사랑}}}]] · [[사석|{{{#000,#e5e5e5 사석}}}]] · [[사막(동진)|{{{#000,#e5e5e5 사막}}}]],,, ||<-2> [[왕희지|{{{#000,#e5e5e5 왕희지}}}]] ||
||<-6> {{{-1 {{{#ffffff 81권}}}}}} {{{-2 {{{#fff 「왕손등전(王遜等傳)」}}} }}} ||
||<-6><rowbgcolor=#fff,#191919> [[왕손(동진)|{{{#000,#e5e5e5 왕손}}}]] · [[채표|{{{#999,#666666 채표}}}]] · [[양감|{{{#999,#666666 양감}}}]] · [[유윤|{{{#999,#666666 유윤}}}]] · [[환선|{{{#999,#666666 환선}}}]] ,,,[[환이|{{{#999,#666666 환이(伊)}}}]],,, · [[주사(동진)|{{{#999,#666666 주사}}}]] · [[모보|{{{#999,#666666 모보}}}]] · [[유하(동진)|{{{#999,#666666 유하}}}]] · [[등옥|{{{#999,#666666 등옥}}}]] · [[주서(동진)|{{{#999,#666666 주서}}}]] ||
||<-6> {{{-1 {{{#ffffff 82권}}}}}} {{{-2 {{{#fff 「진수등전(陳壽等傳)」}}} }}} ||
||<-6><rowbgcolor=#fff,#191919> [[진수(역사가)|{{{#000,#e5e5e5 진수(陳壽)}}}]] · [[왕장문|{{{#000,#e5e5e5 왕장문}}}]] · [[우부(삼국지)|{{{#000,#e5e5e5 우부}}}]] · [[사마표|{{{#000,#e5e5e5 사마표}}}]] · [[왕은|{{{#000,#e5e5e5 왕은}}}]] · [[우예|{{{#999,#666666 우예}}}]] · [[손성|{{{#000,#e5e5e5 손성}}}]] · [[간보|{{{#000,#e5e5e5 간보}}}]] · [[등찬|{{{#999,#666666 등찬}}}]] · [[사침|{{{#999,#666666 사침}}}]] · [[습착치|{{{#000,#e5e5e5 습착치}}}]] · [[서광(유송)|{{{#000,#e5e5e5 서광}}}]] ||
||<-2> {{{-1 {{{#ffffff 83권}}}}}} {{{-2 {{{#fff 「고화등전(顧和等傳)」}}} }}} ||<-2> {{{-1 {{{#ffffff 84권}}}}}} {{{-2 {{{#fff 「왕공등전(王恭等傳)」}}} }}} ||<-2> {{{-1 {{{#ffffff 85권}}}}}} {{{-2 {{{#fff 「유의등전(劉毅等傳)」}}} }}} ||
||<-2><rowbgcolor=#fff,#191919> [[고화|{{{#999,#666666 고화}}}]] · [[원괴|{{{#999,#666666 원괴}}}]] · [[강유(동진)|{{{#999,#666666 강유}}}]] · [[차윤(동진)|{{{#000,#e5e5e5 차윤}}}]] · [[은의|{{{#999,#666666 은의}}}]] · [[왕아|{{{#000,#e5e5e5 왕아}}}]] ||<-2> [[왕공(동진)|{{{#000,#e5e5e5 왕공}}}]] · [[유해(동진)|{{{#000,#e5e5e5 유해}}}]] · [[유뢰지|{{{#000,#e5e5e5 유뢰지}}}]] · [[은중감|{{{#999,#666666 은중감}}}]] · [[양전기|{{{#999,#666666 양전기}}}]] ||<-2> [[유의(동진)|{{{#999,#666666 유의}}}]] · [[제갈장민|{{{#999,#666666 제갈장민}}}]] · [[하무기|{{{#999,#666666 하무기}}}]] · [[단빙지|{{{#999,#666666 단빙지}}}]] · [[위영지|{{{#999,#666666 위영지}}}]] ||
||<-3> {{{-1 {{{#ffffff 86권}}}}}} {{{-2 {{{#fff 「장궤전(張軌傳)」}}} }}} ||<-3> {{{-1 {{{#ffffff 87권}}}}}} {{{-2 {{{#fff 「양무소왕전(涼武昭王傳)」}}} }}} ||
||<-3><rowbgcolor=#fff,#191919> [[장궤|{{{#000,#e5e5e5 장궤}}}]] ||<-3> [[이고(서량)|{{{#000,#e5e5e5 양무소왕}}}]] · [[이흠(서량)|{{{#000,#e5e5e5 양후주}}}]] ||
||<-6> {{{-1 {{{#ffffff 88권}}}}}} {{{-2 {{{#fff 「효우전(孝友傳)」}}} }}} ||
||<-6><rowbgcolor=#fff,#191919> [[이밀(촉한)|{{{#000,#e5e5e5 이밀}}}]] · [[성언|{{{#000,#e5e5e5 성언}}}]] · [[하방|{{{#000,#e5e5e5 하방}}}]] · [[왕부#s-2|{{{#000,#e5e5e5 왕부}}}]] · [[허자(서진)|{{{#999,#666666 허자}}}]] · [[유곤(서진)|{{{#000,#e5e5e5 유곤(庾袞)}}}]] · [[손구|{{{#999,#666666 손구}}}]] · [[안함(서진)|{{{#999,#666666 안함}}}]] · [[유은(서진)|{{{#999,#666666 유은}}}]] · [[왕연(전조)|{{{#999,#666666 왕연}}}]] · [[왕담(동진)|{{{#999,#666666 왕담}}}]] · [[상우(동진)|{{{#999,#666666 상우}}}]] · [[하기(동진)|{{{#999,#666666 하기}}}]] · [[오규|{{{#999,#666666 오규}}}]] ||
||<-6> {{{-1 {{{#ffffff 89권}}}}}} {{{-2 {{{#fff 「충의전(忠義傳)」}}} }}} ||
||<-6><rowbgcolor=#fff,#191919> [[혜소|{{{#000,#e5e5e5 혜소}}}]] · [[왕표|{{{#000,#e5e5e5 왕표}}}]] · [[유심(서진)|{{{#999,#666666 유심}}}]] · [[국윤|{{{#999,#666666 국윤}}}]] · [[초숭|{{{#999,#666666 초숭}}}]] · [[가혼|{{{#000,#e5e5e5 가혼}}}]] · [[왕육|{{{#999,#666666 왕육}}}]] · [[위충#s-2|{{{#000,#e5e5e5 위충}}}]] · [[신면|{{{#999,#666666 신면}}}]] · [[유민원|{{{#999,#666666 유민원}}}]] · [[주해(동진)|{{{#999,#666666 주해}}}]] · [[환웅#s-3|{{{#000,#e5e5e5 환웅}}}]] · [[한계|{{{#999,#666666 한계}}}]] · [[주기(동진)|{{{#999,#666666 주기}}}]] · [[역웅|{{{#999,#666666 역웅}}}]] · [[악도윤|{{{#999,#666666 악도윤}}}]] · [[우회|{{{#999,#666666 우회}}}]] · [[심경(동진)|{{{#999,#666666 심경}}}]] · [[길읍|{{{#999,#666666 길읍}}}]] · [[왕량|{{{#999,#666666 왕량}}}]] · [[송구|{{{#999,#666666 송구}}}]] · [[차제|{{{#999,#666666 차제}}}]] · [[정목(동진)|{{{#999,#666666 정목}}}]] · [[신공정|{{{#999,#666666 신공정}}}]] · [[나기생|{{{#999,#666666 나기생}}}]] · [[장의(동진)|{{{#000,#e5e5e5 장의}}}]] ||
||<-6> {{{-1 {{{#ffffff 90권}}}}}} {{{-2 {{{#fff 「양리전(良吏傳)」}}} }}} ||
||<-6><rowbgcolor=#fff,#191919> [[노지(서진)|{{{#000,#e5e5e5 노지(魯芝)}}}]] · [[호위#s-3|{{{#000,#e5e5e5 호위}}}]] · [[두진|{{{#000,#e5e5e5 두진}}}]] · [[두윤|{{{#000,#e5e5e5 두윤}}}]] · [[왕굉(서진)|{{{#000,#e5e5e5 왕굉}}}]] · [[조터|{{{#000,#e5e5e5 조터}}}]] · [[반경|{{{#999,#666666 반경}}}]] · [[범귀|{{{#000,#e5e5e5 범귀}}}]] · [[정소(서진)|{{{#999,#666666 정소}}}]] · [[교지명|{{{#999,#666666 교지명}}}]] · [[등유(동진)|{{{#999,#666666 등유}}}]] · [[오은지|{{{#999,#666666 오은지}}}]] ||
||<-6> {{{-1 {{{#ffffff 91권}}}}}} {{{-2 {{{#fff 「유림전(儒林傳)」}}} }}} ||
||<-6><rowbgcolor=#fff,#191919> [[범평|{{{#000,#e5e5e5 범평}}}]] · [[문립|{{{#000,#e5e5e5 문립}}}]] · [[진소#s-3|{{{#000,#e5e5e5 진소}}}]] · [[우희(동진)|{{{#999,#666666 우희}}}]] · [[유조(동진)|{{{#999,#666666 유조}}}]] · [[범육|{{{#999,#666666 범육}}}]] · [[서묘|{{{#999,#666666 서묘}}}]] · [[최유|{{{#000,#e5e5e5 최유}}}]] · [[범륭|{{{#000,#e5e5e5 범륭}}}]] · [[두이|{{{#999,#666666 두이}}}]] · [[동영도|{{{#999,#666666 동영도}}}]] · [[속감|{{{#999,#666666 속감}}}]] · [[서막(동진)|{{{#999,#666666 서막}}}]] · [[공연#s-2|{{{#000,#e5e5e5 공연}}}]] · [[범선(동진)|{{{#999,#666666 범선}}}]] · [[위소(동진)|{{{#999,#666666 위소}}}]] · [[범홍지|{{{#999,#666666 범홍지}}}]] · [[왕환(동진)|{{{#999,#666666 왕환}}}]] ||
||<-6> {{{-1 {{{#ffffff 92권}}}}}} {{{-2 {{{#fff 「문원전(文苑傳)」}}} }}} ||
||<-6><rowbgcolor=#fff,#191919> [[응정|{{{#000,#e5e5e5 응정}}}]] · [[성공수|{{{#000,#e5e5e5 성공수}}}]] · [[좌사|{{{#000,#e5e5e5 좌사}}}]] · [[조지(서진)|{{{#000,#e5e5e5 조지(趙至)}}}]] · [[추담|{{{#000,#e5e5e5 추담}}}]] · [[조거(서진)|{{{#000,#e5e5e5 조거}}}]] · [[저도#s-2|{{{#000,#e5e5e5 저도}}}]] · [[왕침#s-3|{{{#999,#666666 왕침(王沉)}}}]] · [[장한(서진)|{{{#999,#666666 장한}}}]] · [[유천(동진)|{{{#999,#666666 유천}}}]] · [[조비(동진)|{{{#999,#666666 조비}}}]] · [[이충(동진)|{{{#999,#666666 이충}}}]] · [[원굉(동진)|{{{#000,#e5e5e5 원굉}}}]] · [[복도(동진)|{{{#999,#666666 복도}}}]] · [[나함(서진)|{{{#999,#666666 나함}}}]] · [[고개지|{{{#999,#666666 고개지}}}]] · [[곽징지|{{{#999,#666666 곽징지}}}]] ||
||<-6> {{{-1 {{{#ffffff 93권}}}}}} {{{-2 {{{#fff 「외척전(外戚傳)」}}} }}} ||
||<-6><rowbgcolor=#fff,#191919> [[양수(서진)|{{{#000,#e5e5e5 양수}}}]] · [[왕순(서진)|{{{#000,#e5e5e5 왕순}}}]] · [[양병|{{{#000,#e5e5e5 양문종}}}]] · [[양현지|{{{#999,#666666 양현지}}}]] · [[우예|{{{#999,#666666 우예}}}]] · [[유침|{{{#000,#e5e5e5 유침}}}]] · [[두예#s-2|{{{#999,#666666 두예}}}]] · [[저부|{{{#999,#666666 저부}}}]] · [[하준|{{{#000,#e5e5e5 하준}}}]] · [[왕몽#s-3|{{{#999,#666666 왕몽}}}]] · [[왕하|{{{#999,#666666 왕하}}}]] · [[왕온|{{{#999,#666666 왕온}}}]] · [[저상|{{{#000,#e5e5e5 저상}}}]] ||
||<-6><width=1000> {{{-1 {{{#ffffff 94권}}}}}} {{{-2 {{{#fff 「은일전(隠逸傳)」}}} }}} ||
||<-6><bgcolor=#fff,#191919> [[손등#s-3|{{{#000,#e5e5e5 손등}}}]] · [[동경(삼국지)|{{{#000,#e5e5e5 동경}}}]] · [[하통|{{{#999,#666666 하통}}}]] · [[주충|{{{#000,#e5e5e5 주충}}}]] · [[범찬|{{{#000,#e5e5e5 범찬}}}]] · [[노성|{{{#999,#666666 노성}}}]] · [[동양(삼국지)|{{{#000,#e5e5e5 동양}}}]] · [[곽원(서진)|{{{#999,#666666 곽원}}}]] · [[곽기|{{{#999,#666666 곽기}}}]] · [[오주(서진)|{{{#999,#666666 오주}}}]] · [[노포(서진)|{{{#999,#666666 노포}}}]] · [[범등|{{{#999,#666666 범등}}}]] · [[임욱|{{{#999,#666666 임욱}}}]] · [[곽문|{{{#999,#666666 곽문}}}]] · [[공장(동진)|{{{#999,#666666 공장}}}]] · [[맹루|{{{#999,#666666 맹루}}}]] · [[한적|{{{#999,#666666 한적}}}]] · [[초수#s-4|{{{#000,#e5e5e5 초수}}}]] · [[적탕|{{{#999,#666666 적탕}}}]] · [[곽번|{{{#999,#666666 곽번}}}]] · [[신밀|{{{#999,#666666 신밀}}}]] · [[유린지|{{{#999,#666666 유린지}}}]] [br] [[색습|{{{#999,#666666 색습}}}]] · [[양가|{{{#999,#666666 양가}}}]] · [[공손봉|{{{#999,#666666 공손봉}}}]] · [[공손영|{{{#999,#666666 공손영}}}]] · [[장충|{{{#999,#666666 장충}}}]] · [[석원|{{{#999,#666666 석원}}}]] · [[송견|{{{#999,#666666 송견}}}]] · [[곽하|{{{#999,#666666 곽하}}}]] · [[곽우|{{{#999,#666666 곽우}}}]] · [[기가(동진)|{{{#999,#666666 기가}}}]] · [[구형선생|{{{#999,#666666 구형}}}]] · [[사부(동진)|{{{#999,#666666 사부}}}]] · [[대규|{{{#999,#666666 대규}}}]] · [[공현지|{{{#999,#666666 공현지}}}]] · [[도담(동진)|{{{#999,#666666 도담}}}]] · [[도연명|{{{#000,#e5e5e5 도연명}}}]] ||
||<-6> {{{-1 {{{#ffffff 95권}}}}}} {{{-2 {{{#fff 「예술전(藝術傳)」}}} }}} ||
||<-6><rowbgcolor=#fff,#191919> [[진훈|{{{#000,#e5e5e5 진훈}}}]] · [[대양(서진)|{{{#999,#666666 대양}}}]] · [[한우(서진)|{{{#999,#666666 한우}}}]] · [[순우지|{{{#999,#666666 순우지}}}]] · [[보웅|{{{#999,#666666 보웅}}}]] · [[두불건|{{{#999,#666666 두불건}}}]] · [[엄경(서진)|{{{#999,#666666 엄경}}}]] · [[외소|{{{#999,#666666 외소}}}]] · [[복후|{{{#999,#666666 복후}}}]] · [[포정(서진)|{{{#999,#666666 포정}}}]] · [[오맹|{{{#999,#666666 오맹}}}]] · [[행령|{{{#999,#666666 행령}}}]] · [[불도징|{{{#999,#666666 불도징}}}]] · [[마유(동진)|{{{#999,#666666 마유}}}]] · [[선도개|{{{#999,#666666 선도개}}}]] · [[황홍|{{{#999,#666666 황홍}}}]] · [[색담|{{{#999,#666666 색담}}}]] · [[맹흠|{{{#999,#666666 맹흠}}}]] · [[왕가|{{{#000,#e5e5e5 왕가}}}]] · [[승섭|{{{#999,#666666 승섭}}}]] · [[곽논|{{{#999,#666666 곽논}}}]] · [[쿠마라지바|{{{#000,#e5e5e5 나습}}}]] · [[욕곽|{{{#999,#666666 욕곽}}}]] · [[태산(동진)|{{{#999,#666666 태산}}}]] ||
||<-6> {{{-1 {{{#ffffff 96권}}}}}} {{{-2 {{{#fff 「열녀전(列女傳)」}}} }}} ||
||<-6><rowbgcolor=#fff,#191919> [[신헌영|{{{#000,#e5e5e5 신헌영}}}]] · [[엄헌|{{{#000,#e5e5e5 엄헌}}}]] · [[종염|{{{#000,#e5e5e5 종염}}}]] · [[왕혜풍|{{{#999,#666666 왕혜풍}}}]] · [[이락수|{{{#999,#666666 이락수}}}]] · [[순관|{{{#000,#e5e5e5 순관}}}]] · [[사도온|{{{#999,#666666 사도온}}}]] · [[용린|{{{#999,#666666 용린}}}]] · [[유아(전조)|{{{#999,#666666 유아}}}]] · [[염부인(전량)|{{{#999,#666666 염부인}}}]] · [[소혜(전진)|{{{#999,#666666 소혜}}}]] · [[모황후(전진)|{{{#999,#666666 모황후}}}]] · [[단원비|{{{#999,#666666 단원비}}}]] · [[양황후(후량)|{{{#999,#666666 양황후}}}]] · [[윤태후(서량)|{{{#999,#666666 윤태후}}}]] ||
||<-6> {{{-1 {{{#ffffff 97권}}}}}} {{{-2 {{{#fff 「사이전(四夷傳)」}}} }}} ||
||<-6><bgcolor=#fff,#191919> [[부여|{{{#000,#e5e5e5 부여}}}]] · [[숙신|{{{#000,#e5e5e5 숙신}}}]] · [[마한|{{{#000,#e5e5e5 마한}}}]] · [[진한|{{{#000,#e5e5e5 진한}}}]] · [[왜국|{{{#000,#e5e5e5 왜}}}]] · [[토욕혼|{{{#000,#e5e5e5 토욕혼}}}]] · [[카라샤르|{{{#999,#666666 언기국}}}]] · [[쿠처시|{{{#000,#e5e5e5 구자국}}}]] · [[페르가나|{{{#000,#e5e5e5 대완국}}}]] · [[동투르키스탄|{{{#000,#e5e5e5 강거국}}}]] · [[로마 제국|{{{#000,#e5e5e5 대진국}}}]] · [[참파|{{{#000,#e5e5e5 임읍국}}}]] · [[부남|{{{#000,#e5e5e5 부남국}}}]] · [[흉노|{{{#000,#e5e5e5 흉노}}}]] ||
||<-3> {{{-1 {{{#ffffff 98권}}}}}} {{{-2 {{{#fff 「왕돈등전(王敦等傳)」}}} }}} ||<-3> {{{-1 {{{#ffffff 99권}}}}}} {{{-2 {{{#fff 「환현등전(桓玄等傳)」}}} }}} ||
||<-3><rowbgcolor=#fff,#191919> [[왕돈(동진)|{{{#000,#e5e5e5 왕돈}}}]] · [[환온|{{{#000,#e5e5e5 환온}}}]] ||<-3> [[환현|{{{#000,#e5e5e5 환현}}}]] · [[변범지|{{{#999,#666666 변범지}}}]] · [[은중문|{{{#999,#666666 은중문}}}]] ||
||<-6> {{{-1 {{{#ffffff 100권}}}}}} {{{-2 {{{#fff 「왕미등전(王彌等傳)」}}} }}} ||
||<-6><rowbgcolor=#fff,#191919> [[왕미(전조)|{{{#000,#e5e5e5 왕미}}}]] · [[장창(서진)|{{{#999,#666666 장창}}}]] · [[진민#s-2|{{{#000,#e5e5e5 진민}}}]] · [[왕여(서진)|{{{#999,#666666 왕여}}}]] · [[두증|{{{#999,#666666 두증}}}]] · [[두도(서진)|{{{#999,#666666 두도}}}]] · [[왕기(서진)|{{{#999,#666666 왕기}}}]] · [[조약(동진)|{{{#999,#666666 조약}}}]] · [[소준(동진)|{{{#000,#e5e5e5 소준}}}]] · [[손은(동진)|{{{#000,#e5e5e5 손은}}}]] · [[노순|{{{#000,#e5e5e5 노순}}}]] · [[초종|{{{#000,#e5e5e5 초종}}}]] ||
{{{#!wiki style="margin-top: -30px"
{{{#e7cee7 {{{-2 (1) 사마소 부인 왕원희와는 다른 인물로 효회태후로 추존된 사마치의 어머니.}}}}}}}}}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 재기(戴記) ]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유원해 ,유화 · 유선,
유총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석홍 · 장빈,
석계룡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배억 · 고첨,
모용황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왕타,
부견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1] 현대에 표준으로 쓰는 그레고리우스력 기준으로는 266년이기 때문에 이것을 265년으로 간주해야 할지 266년으로 간주해야 할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2] 단, 첫 번째로 낳은 자식은 아니다. 먼저 태어난 이는 경조공주[3] 이미 조부인 사마의때 정변이 일어나 사마씨 일가가 위나라의 최고 실세가 되었고, 백부 사마사와 아버지 사마소는 조씨 황제들을 마음대로 바꾸거나 죽이면서 진공, 진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하던 터에 사마소가 늙어 죽은 시점에서 30세에 진왕의 자리를 물려받은 사마염이 해야 할 일이라고는 조환을 내쫓고 자신이 황제에 오르는 것뿐이었다. 한마디로 사마소의 행보는 예전에 위공, 위왕에 오르면서 한나라 헌제를 가지고 놀았던 조조와 비슷했다. 그야말로 역대 중국 통일왕조의 창업군주 중 가장 제 힘을 안 들이고 천하를 거저먹은 작자라고 할 수 있다.[4] 당장 이 전투에서 조비의 하고 사촌 형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5] 그래서 진시황, 한고제, 수문제, 홍무제, 송태조, 칭기즈 칸, 청태조와 같이 중국을 통일한 영웅의 반열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신 조조나 유비, 할아버지 사마의를 넣기도 한다.[6] 한문제 이후 군주의 상례는 이일역월(以日易月) 즉, 하루를 한 달로 치는 변칙을 취하였다.[7] 여기서 3년상을 주장해 밀어붙인 인물이 양호였으며, 반대한 사람은 부현이었다.[8] 자기 아버지인 사마소[9] 단적으로 동진 초기의 인사들 중에는 오나라 때 명문가들의 자손들이 많았다. 감녕의 증손자 감탁이랄지, 주환의 손자이자 주처의 아들인 주기, 고옹의 손자인 고영 등이 있다. 사마염이 어느 정도 강동 지역의 민심을 잡아놓지 않았다면 저 어지러운 시대에 강동이라고 오나라 부활 세력 따위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었다. 당장 주기가 아버지의 죽음이 어떠했는지 알면서도 끝까지 사마씨를 따르며 진민에게 호응하지 않고 엿먹인 걸 생각해보자. 그렇기는 한데 장창, 두도, 진민의 반란 쓰리콤보가 터졌던 거 보면 그쪽이라고 민심이 좋았던 건 아니었다.[10] 사마염이 했다는 강동지역에 대한 배려라는게 말하자면 아무것도 안 하기였다. 그 지역의 호족이나 유력자들을 꽤나 적극적으로 등용은 했지만 지역 자체에 대한 통제는 강하게 하지 않았던 방식이었는데 이 때문에 혜제 때 일어난 장창의 난에서 진압병력이 없어 전전긍긍하다가 제대로 준비 못 하고 나선 신야군왕 사마흠이 전사해버린다던가 혹은 회제 때의 진민의 난 진압에 시간이 꽤 걸리는 문제들이 훗날 생기기는 했었다. 다만 강남의 호족이란 세력들은 오나라때부터 자기들의 기득권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어느정도는 안정적으로 보호를 해 줄 수 있는 세력에 대해서는 후하게 평가하다보니 사마염의 저런 정책을 꽤 좋게 본 모양이다. 진민이 난을 일으켰을 때 간을 보던 감탁이나 고영이 그 동네에서 진민이 적극적으로 왕 노릇 하려던 걸 보자 그대로 배신한 것도 그런 일들의 연장선상이었다. 저런 난의 와중에도 강남지역의 호족들 사이에서는 "이런저런 놈들보단 그래도 사마씨가 우리를 안정적으로 지켜줄 수 있는 세력이다"라는 인식이 생기기는 했었던 것이다. 이 분위기는 훗날 동진으로 그대로 이어져서 비수대전같은 큰 승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11] 후한의 양기나 동진의 환온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실권은 가지되 찬탈하기는 힘든 정도다. 여기서 좀 더 나가면 조조 정도인데 황제를 조조 정도까지 쥐락펴락하기엔 견제 세력은 있는 정도다. 양준의 경우는 의뢰로 사람이 잔인하고 악랄한 구석은 없는 편이었는데 욕심은 많은 대신에 좀 비겁하고 옹졸해서 용렬한 구석이 있다보니 좋은 쪽으로나 나쁜 쪽으로나 권력을 움켜쥐고 농단할만한 그릇이 못 되었고, 양준의 동생들은 의외로 행동거지가 괜찮다는 평을 받는 사람들이라서 권력을 농단할 만한 인격들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가남풍의 공격에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12] 동아시아사 어디를 둘러봐도 재질이 떨어지거나 군주가 택현하는 과정에서 폐태자가 된 이들은 근본적으로는 후계자로 내세워진 이들의 정통성 정립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제거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비슷한 시기에 폐태자가 되었다고 살해당한 오나라 손화의 예도 있었고 말이다.[13] 혹은 동진처럼 황권은 약하지만 황가의 연속성은 가진 통일왕조일수도 있었다.[14] 사실 이 사람은 성인군자라서 문제가 된 케이스이다. 현실정치의 시궁창에서 자기 길을 제대로 만들기엔 너무 무른 인물이었던 것이다.[15] 일만 궁녀니 사치가 심했느니 하는 진서의 서술도 약간 걸러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진서의 서술 자체가 썩 신뢰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지라...[16] 원문과 번역 출처: #[17] 2세에 요절해서 차남인 사마충이 사실상 적장남이었다.[18] 양준의 딸로 무원황후의 당질녀이며 사마충의 계모다. 가남풍쿠데타를 일으켜 양준 일족을 처리할 때 무도황후는 그의 어머니 방씨를 살리려고 황태후 체면에 며느리 앞에서 무릎꿇고 싹싹 빌었다. 그러나 가남풍은 방씨를 죽였으므로 이에 절망해 스스로 굶어죽었다. 참고로 그녀는 259년생으로 256년생인 며느리 가남풍보다 3살 연하다.[19] 원래는 사마염의 첩 중에서 재인에 불과했으나, 나중에 아들 사마치가 황제를 하자 효회태후로 추증되었다. 사마소의 아내 왕원희(王元姬)와는 다른 인물이다.[20] 좌분 또는 좌빈. 좌옹의 딸이자 좌사의 누이.[21] 호분의 딸.[22] 제갈충의 딸.[23] 두 눈이 먼 장님. 남편은 '사람 젖을 먹여서 키운 돼지'를 사마염에게 대접하기로 유명한 왕제(王濟).[24] 남편은 진덕(甄德).[25] 남편은 노심(盧諶).[26] 언니 형양공주와 작위가 같은 걸 보면 동복 자매일 수도 있다. 참고로 '공주'는 황제의 딸에게, '장공주'는 황제의 누이에게, '대장공주'는 황제의 고모에게 붙여지는 칭호. 남편은 화항(華恒).[27] 남편은 위선(衛宣). 하지만 이혼했다.[28] 남편은 동진 초기의 권력자이자 반역자인 왕돈(王敦).[29] 남편은 왕수(王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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