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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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馬徽
(? ~ 208년?)
1. 개요
2. 정사
3. 민간 전승
4. 연의


1. 개요[편집]


후한 말의 인물이며 는 덕조(德操)로 호는 수경(水鏡). 예주 영천군 양적현(現 허난성 쉬창시(지급시) 위저우시(현급시) 인근) 사람.


2. 정사[편집]


방덕공보다 열 살 정도 어려서 그를 형으로 모셨고 수경이라는 호는 방덕공이 지어준 것이다.[1] 사마휘는 방통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거나,[2] 유비에게 복룡봉추를 알려주었다는 기록도 있다.[3]

문하생을 여럿 가르쳤는데 정사 삼국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마휘의 제자들로는, 본인들의 열전에 사마휘의 제자라는 기록이 있는 유이·윤묵·이선·상랑, 상랑전 주석 양양기에 상랑의 학우라는 기록이 있는 서서·한숭·방통, 제갈량전 주석 위략에 서서의 학우라는 기록이 있는 제갈량·맹건·석도까지 총 10명이 있다.

좋건 나쁘건 "좋아(好)"라는 말을 자주해 '호호선생(好好先生)'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명나라 시대의 야사 고금담개(古今譚槩) 9권에 이에 대한 기록이 있다.

후한의 사마휘는 사람의 단점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람의 단점보다는 좋음과 나쁨 다 좋다고 말했다. 사마휘에게 안부를 묻는 사람이 있어 답하길 "좋아."라고 했다. 자식이 죽었다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이 있어 답하길 "매우 좋아."라고 했다. 아내가 그를 꾸짖으며 말하길 "사람은 당신이 덕이 있다고 여겨 이 까닭에 아뢰었는데, 어찌 사람의 자식의 죽음을 듣고도 반대로 또 좋다고 말하십니까?"라고 하자 사마휘가 말하길 "그대의 말도 또한 매우 좋아!"라고 했다. 오늘날의 사람이 '호호선생'이라 칭함은 이에 근거한다.

後漢司馬徽不談人短。與人短,美惡皆言好。有人問徽:「安否?」答曰:「好。」有人自陳子死,答曰:「大好。」妻責之曰:「人以君有德,故此相告,何聞人子死,反亦言好?」微曰:「如卿之言,亦大好!」今人稱「好好先生」,本此。

고금담개 9권


세설신어에 인용된 사마휘별전에 그에 관한 기록이 더 있다.

사람들을 감식하는 안목을 지니고 있었지만 형주에 있을 때 자사 유표가 성격이 음험해 반드시 착한 사람을 해칠 것임을 알아차리고 입을 다문 채 담론하지 않았으며, 당시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인물에 대해 사마휘에게 묻는 자가 있으면 조금도 그 사람의 고하를 비평하지 않고 매번 훌륭하다고만 했다. 그래서 아내가 이를 탓하면서 "사람들이 의심나는 바를 질문하면 마땅히 토론해 판단해야 하는데, 한결같이 훌륭하다고만 하시니 그것이 어찌 사람들이 당신에게 물어보려던 의도이겠습니까?"라고 하자 사마휘는 "당신이 말한 것도 또한 훌륭하오."라고 했다.

한번은 사마휘의 돼지를 잘못 알고 자기 것이라고 하는 자가 있자 그냥 그에게 줬으며, 나중에 그 사람이 자기 돼지를 찾게 되어 미안함에 머리를 조아리고 다시 가져오자 사마휘는 공손한 말로 그에게 감사했다.

유표의 아들 유종이 사람을 보내 그가 있는지 확인하게 했는데, 때마침 사마휘는 채마밭을 김매고 오던 길이라 유종의 시종이 "사마군은 계시는가?"라고 묻자 자신이라 대답했지만 유종의 시종이 그의 누추함을 보고 "이런 무식한 하인 놈! 장군의 아드님께서 사마군을 만나보고자 하시는데, 너 같은 농부 주제에 스스로 사마군이라고 하다니!"라고 했다.

사마휘가 집으로 돌아가 머리를 빗고 두건을 쓰고 나오자 유종의 시종이 사마휘를 보니 바로 조금 전의 그 노인으로 유종의 시종이 깜짝 놀라 이 일을 말하자 유종이 일어나 머리를 조아리면서 사과했으며, 사마휘가 "그대는 정말 이러지 마시오, 이러면 내가 정말 부끄럽소. 내가 직접 채마밭을 김매는 것은 오직 그대만 알고 있을 뿐이오."라고 했다.

누에를 치면서 누에밭을 구하는 사람이 있자 자기 누에를 버려두고 그 사람에게 줬으며, 어떤 사람이 "무릇 사람이란 자기 것을 덜어서 남을 넉넉하게 해주는 것은 남이 절박하고 여유있을 때 하는 것인데, 지금 처지가 같은데 어찌 그 사람에게 주는 거냐고 묻자 어 사마휘는 "사람이 구하지 않으면 그뿐이지만 구하는데도 주지 않는다면 장차 부끄러울 것"이라고 하면서 "어찌 재물이 사람을 부끄럽게 할 수 있겠소?"라고 했다.

사람들이 유표에게 사마휘는 훌륭한 선비이지만 때를 못 만났을 뿐이라고 하자 유표가 사마휘를 만나고 나서 세상 사람들이 망령된 말을 했다면서 보잘 것 없는 서생에 불과하다고 했으며, 지혜로우면서도 어리석게 보이도록 할 수 있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고 한다. 나중에 형주가 함락되자 조조가 그를 크게 기용하려고 했지만 때마침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대략 208년)

더불어 당시 사마휘가 늙었다고 하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는데 노인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마휘가 워낙 세속을 떠난 신선처럼 묘사되다 보니 신선은 곧 노인이라는 고정관념이 작용해서 생긴 오류이다. 사실 생몰년은 명확하게 알려진 바 없다.[4] 그나마 정사에서 사마휘의 나이에 대한 기록이라면 방통의 숙부인 방덕공보다 10살 정도 아래라는 언급이 양양기구기에 나온다는 것 정도. 방덕공의 생년을 알 수는 없지만 방통이 178/179년생이라는 것으로부터 그래도 약간의 정보는 얻을 수 있다.[5] 세설신어에 따르면 208년에 병사했다고 한다.

또한 제갈충무후문집 인용 역대신선통감에 따르면 그의 재능을 높이 사 예주 여남군에 사는 풍구라는 이를 스승으로 모셔와 제갈량을 지도했다고 한다.


3. 민간 전승[편집]


중국의 수경장에서 전해지는 삼국지 관련 전설이 있다.출처

제갈량, 서서, 방통이 제자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수경선생이 자기 문하 제자들을 불러다 놓고 "나와 토론을 하여 나를 논파하여 내가 나가라고 하게 만드는 게 오늘의 시험이다. 내가 나가라고 말한 사람이 시험 합격이다" 라고 말했다. 이에 제갈량이 그 이야기를 듣고 이딴 꼰대질을 들으려고 내가 공부를 하나, 학비가 아깝다며 돈을 돌려내라고 욕설을 하며 행패를 부렸다.

수경선생은 화가 나서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고. 이에 방통과 서서가 재빨리 일어나서 "저희가 끌고 나갈까요?"하자 둘보고 빨리 쟤 끌고 '나가' 라는 말을 하자 냉큼 제갈량을 좌우에서 말리며 밖으로 끌어내 나갔다.

그리고 마당에서 셋이 "저희는 방 밖을 나왔으니, 시험에 합격했습니다!"라고 소리를 치자 그제서야 한방 먹었다는 걸 깨달은 수경선생이 셋을 다시 불렀고, 그때부터 셋을 눈여겨 봤다고 한다.


4. 연의[편집]


삼국지연의에서도 등장.

유비유표에게 의지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유표의 처제이자 유비를 몹시 싫어한 장수 채모가 음모를 꾸미는 바람[6]에 자칫하면 죽게 될 뻔 했지만, 명사 이적과 명마 적로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탈출하고 어느 농촌 지방으로 달아났다. 그때 그 농촌의 한 목동이 유비를 알아보고 자신의 스승에게 유비를 소개했는데, 이 스승이 바로 사마휘였다. 연의에서 유비가 처음 만났던 목동의 말에 의하면 사마휘는 방통보다 5살 연상이라고 한다.[7] 흔히 '수경선생'이라고 불린다.

사마휘는 유비에게 계속 그런 수난을 당하는 건 밑에 쓸 만한 인재가 없어서 그렇다고 얘기했는데, 유비는 이에 놀라면서 비록 세력이 큰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게도 관우, 장비, 조운, 간옹, 손건, 미축 같은 수많은 인재들이 여럿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사마휘는 이에 대해 관우장비, 조운은 분명 만 명의 적군을 능히 당해낼 만한 용맹한 장수들이지만 그들을 제대로 부릴 인재가 없다고 했고, 간옹, 손건, 미축[8]시무에는 능하나 군략은 부족한 이들이라 가장 중요한 군사(軍師)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와룡봉추 같은 인재를 얻어야 하며, 이들 중 한 명만 얻어도 천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때 유비는 그게 누구냐고 물었지만 사마휘는 그저 "좋소!"라고 대답만 할 뿐이었다[9][10].

이날 밤 사마휘는 유비를 본인의 집에 재웠고, 유비는 자신의 침소에서 자는 도중 밤중에 어떤 인물이 사마휘와 대화하는 걸 듣는다. 들어보니 그 인물은 유표에게 가서 일했지만 실망을 느껴서 글 하나 남기고 도망왔다고 사마휘에게 얘기를 했다. 사마휘가 말하길 "자네같이 뛰어난 인재가 어찌 유표 같은 용렬한 자를 위해서 일하려 하는가? 지금 자네의 진정한 주인이 될 사람이 자네 앞에 있는데 왜 몰라보는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유비는 이에 기대감을 갖고 다음 날 그 인물이 누구냐고 물었느나, 사마휘는 끝끝내 가르쳐주지 않았고, 유비는 그냥 형주로 돌아간다.

나중에 이 인물이 누군지 알려지는데, 그는 바로 서서였다.

하지만 서서는 조조의 모사 정욱의 계책으로 유비를 떠나게 되고, 유비는 이후 서서가 알려준 복룡 제갈량을 찾으려고 애쓰게 되는데, 이때쯤 사마휘가 재등장한다. 본인이 추천한 서서가 과연 어떻게 지내는지도 보고 얼굴도 한 번 터 볼 목적으로 유비를 찾아온 것이다.

사마휘는 유비에게 서서가 조조에게서 본인을 좀 구해달라는 노모의 편지를 보고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서서가 안타깝게도 조조의 계략에 떨어져버렸다고 탄식한다. 말인즉슨 서서의 노모는 여중장부[11]로 결코 불의에 굴복해 목숨을 구걸할 인물이 아니고, 편지도 100% 가짜일 것이며, 그의 모친도 현 시점에서는 고인일 거라고 간파했다.[12] 그리고 서서가 제갈량을 추천하자 껄껄 웃으며 '서서가 가려면 지 혼자 갈 것이지 왜 제갈량을 추천해 제갈량이 세상에 나와 피를 토하도록 일하게 하려는 것이냐?'라고 중얼거렸다.[13] 덧붙여 제갈량이 세상에 나오면 우리 같은 도우(도 닦는 사람)들이 심심해지겠다고 한탄.

유비가 제갈량에 대해 묻자 사마휘는 제갈량은 항상 본인을 관중악의를 비교하곤 한다 하고 얘기했다. 이에 옆에서 듣던 관우가 "제가 알기로 관중과 악의는 그 공이 막대했는데, 자신을 거기에 비교한다는 것은 좀 지나친 게 아닙니까?"라고 끼어들었다. 사마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하는데 그 답변이 강렬하다.

"이 사람이 보기에도 공명을 그 두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확실히 무리가 있는 것 같소이다. 다른 두 사람과 비교해야 될 것 같습니다만."
이에 관우가 다시 물었다.
"다른 두 사람이라면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에 사마휘가 대답했다.
"공명은 능히 주문왕을 도와 주나라의 팔백년 사직을 일으킨 강자아나 사백년 한실을 일으키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장자방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외다."
그 말을 듣자 모두가 놀라고 있는데 사마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비가 좀 더 쉬다 가시라고 말했지만, 사마휘는 무시하더니 갑자기 하늘을 보며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아, 공명 선생. 주군을 얻었으나 그 때를 얻지는 못했도다!"[14]

여담이지만, 유비는 사마휘에게 자신을 도와 일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사마휘는 자신은 초야에서 지낸 사람이라 나라를 다스릴 재능이 없다며 거절했다.[15]

이후 사마휘의 얘기는 연의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사실상 유비의 성공을 위한 계기를 제공한 점에서 중요하다면 중요한 인물.


5. 기타 창작물[편집]


사마휘/기타 창작물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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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 양양기구기 방덕공전.[2] 출처: 삼국지 촉서 방통전[3] 출처: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 주석 양양기.[4] 173년생이라는 말도 있지만 뚜렷한 근거가 없다. 이는 방통보다 5살 위라는 연의의 언급을 토대로 추산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언급은 연의에서만 나오는 창작으로 정사에서의 사마휘 나이와는 관련 없다.[5] 방덕공이 방통의 숙부면 방통의 부친보다 어리다는 소리니 방통의 부친 나이를 대충 유추하면 사마휘의 나이도 유추 가능해진다. 만약 방통의 아버지가 방통보다 30살이 많고 동생과 한 살 차이라고 치면 사마휘의 나이는 159년생 정도가 된다.(물론 방통과 아버지의 나이 차이, 방덕공과 형과 나이차이에 따라 훨씬 더 젊어질 수도, 저보다도 많아질 수도 있다.) 참고로 유비가 161년생, 조조, 손견이 155년생이다. 어쨌거나 대충 삼국지 1세대 영웅들과 비슷하거나 좀 어릴 확률이 높다.[6] 연의에서는 채모가 "잔치를 벌입시다. 그리고 손님 접대를 유비에게 맡기죠."라고 해 끌어들였다.[7] 이는 연의에서만 언급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사의 사마휘 나이와는 관련없이 지어낸 것이다.[8] 간손미가 한꺼번에 언급되는 최초의 장면이다.[9] 이 부분이 정사와 연의의 차이인데, 정사에서는 사마휘가 와룡봉추가 누군지 분명히 알려줬지만, 연의에서는 알려주지 않는다.[10] 결국 유비는 와룡으로 인해 형주를 얻었고, 봉추로 인해 촉나라까지 얻게 되지만, 그건 아시다시피 나중의 이야기.[11] 여자 중의 대장부다.[12] 과연 사마휘의 모든 것들은 정확히 들어맞아서 서서의 모친은 본인의 아들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버린다면서 조조의 면전 앞에서 조조를 마구마구 디스하면서 벼루까지 집어던졌고, 나중에 본인을 찾아온 서서를 보자마자 반가워하기는 커녕 여태 조조란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도 모르고 찾아왔냐면서 거짓 편지 한 통에 속아 유비 같은 어진 분을 배반했다고 대판 꾸중했고, 잠시 후 목을 매 자살했다.[13] 열심히 한다라는 뜻이겠지만,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이때부터 제갈량은 피를 토하는 병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로 그려놨다.[14] 다른 판본에서는 "드디어 공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군. 하지만 세상은 지금 크게 어지럽고, 어느 정도 대업을 이루려면 피를 댓 말 정도는 토해야겠구나!"라고 말했다고도 한다.[15] 이는 삼국지 시리즈에서도 이어진다. 참모 맡겨주면 바람 따라 움직인다며 휭하고 떠나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