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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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사무엘 에투의 역임 직책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리고베르 송
(2000~2009)

사무엘 에투
(2009~2014)


스테판 음비아
(2014~2017)


사무엘 에투의 수상 이력



사무엘 에투의 기타 정보






카메룬 축구 협회

Équipe du Cameroun de football

파일:SA_SFA.jpg

이름
사무엘 에투
Samuel Eto'o

본명
사뮈엘 에토 피스[1]
Samuel Eto'o Fils
출생
1981년 3월 10일 (43세)
카메룬 두알라
국적
[[카메룬|

카메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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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 [[스페인|

스페인
display: none; display: 스페인"
행정구
]]
[2]
신체
180cm / 체중 75kg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3] / 은퇴)
축구 행정가
주발
오른발[4]
소속
선수
카지 스포츠 아카데미 (1992~1996 / 유스)
라 파브리카 (1996~1997 / 유스)
레알 마드리드 CF (1997~2000)
CD 레가네스 (1997~1998 / 임대)
RCD 에스파뇰 (1999 / 임대)
RCD 마요르카 (2000 / 임대)
RCD 마요르카 (2000~2004)
FC 바르셀로나 (2004~2009)
인테르나치오날레 (2009~2011)
FC 안지 마하치칼라 (2011~2013)
첼시 FC (2013~2014)
에버튼 FC (2014~2015)
UC 삼프도리아 (2015)
안탈리아스포르 (2015~2018)
콘야스포르 (2018)
카타르 SC (2018~2019)
감독
안탈리아스포르 (2015~2016 / 감독 대행)
행정
카메룬 축구 협회 (2021~ / 회장)
국가대표
118경기 56골[5] (카메룬 / 1997~2014)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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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3. 플레이 스타일
4. 은퇴 후 행보
5. 기록
5.1. 출전 기록
5.2. 대회 기록
5.3. 개인 수상
5.4. 개인 기록
6. 에투에 대한 헌사
7. 나이 논란
8. 여담



1. 개요[편집]


카메룬축구 선수 출신 행정가. 선수 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현재 카메룬 축구 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현역 시절 바르셀로나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2회의 트레블을 포함해 UCL 3회 우승, 라리가 3회 우승, 세리에 A 1회 우승을 견인했고, 카메룬 대표팀에서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2회 우승과 올림픽 축구 1회 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축구 역사상 최초로 2시즌 연속 트레블 및 2개 클럽 트레블[6]을 달성한 선수이다.[7]


2. 선수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사무엘 에투/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완벽한 위치 선정,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골 결정력, 폭발적인 스피드, 우수한 테크닉, 타고난 유연성, 윙 포지션도 소화할 수 있는 전술 이해도까지 모두 갖췄던 다재다능한 스트라이커.

일단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8] 슈팅력이 뛰어나서 페널티 에어리어 안이라면 어느 위치에 있든 강력하고 정확한 슈팅을 날릴 수 있었으며,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서도 위협적인 중거리 슛을 쏘고는 했다. 그리고 킥력이 뛰어났던 만큼 페널티킥에도 매우 강했으며 프리킥 또한 많이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제법 잘 차는 편이었다.

무엇보다 순간적으로 상대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고 뒷공간으로 침투하여 득점을 올리는 플레이는 동시대 어느 스트라이커들보다도 탁월했는데[9], 데쿠, 사비, 이니에스타가 있던 바르셀로나와 전성기의 스네이더가 있던 인테르에서처럼 창의성이 높은 미드필더들과 최상의 시너지를 보여줬다. 비단 상대 수비 라인을 찢어버리며 득점을 올리는 걸 제외하더라도 윙포워드들의 돌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스위칭하던 모습, 중앙 미드필더들이 유기적으로 판을 짜올 때 대응해주는 예민함은 왜 에투에게 흑표범이란 별명이 붙었는지 알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수 년 간 바르셀로나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한 선수답게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연계 능력과 패싱력이 준수하고,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리는 솜씨도 일품이었다.[10] 또한 포지션 상 장거리 드리블을 자주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수비 1~2명쯤은 간단히 벗겨내고 돌파해 들어가 동료에게 찬스를 제공하거나 직접 슈팅으로 이어가는 등 수준급의 테크닉을 보유하고 있었다.

전술 이해도가 높았던 만큼 멀티 포지션 능력 역시 에투의 장점 중 하나였다. 원톱과 투톱을 모두 능숙하게 소화했고, 팀의 상황, 감독의 요구에 따라 윙어세컨드 스트라이커 역할까지 모두 훌륭하게 수행해 낼 정도로 전술 적응 능력이 몹시 빼어났다. 특히 바르사에서의 2008-09 시즌과 인테르에서의 2009-10 시즌이 대표적.[11]

수비력 역시 뛰어난 편에 속했다. 체력이 좋았고 수비 가담에 아주 헌신적인데다 활동 반경도 넓기 때문에 이 활동량을 이용한 특유의 전방 압박으로 상대 수비수들과 골키퍼의 실수를 유발하는 플레이를 즐겼다. 간혹 골키퍼에게 백패스로 가는 공을 가로채 득점으로 연결하기도 했으며 골킥같은 상황에서조차 그냥 넘어가지 않고 골키퍼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한편으로 큰 경기나 클러치 상황에 강했던 빅게임 플레이어이기도 해서 트로피가 걸린 경기때마다 매번 엄청난 활약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우승 청부사라 불렸다.[12]

이런 에투에게 굳이 단점을 찾는다면 피지컬적으로 뛰어난 선수는 아닌 터라 상대 선수와의 거친 몸싸움에 다소 약점을 보였다는 것 정도가 있다. 결국 이 점이 첼시에서 노쇠화와 함께 토에바로 묶이면서 부진한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13]


4. 은퇴 후 행보[편집]


2021년 12월 11일, 카메룬 축구 협회 회장 선거에서 아프리카 축구 연맹 부회장인 세이두 음봄보 은조야를 제치고 카메룬 축구 협회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카메룬 대표팀의 여러 성과를 이끌고 있는데, 2021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3위,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비록 16강 진출은 실패했지만 조별 리그에서 무려 브라질을 잡아내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만들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 청소년 국가대표팀에서 항상 문제가 되었던 선수단 나이 의혹에도 엄정하게 대처할 것을 천명해 카메룬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이 소집되었을때 선제적으로 MRI 검사를 실시해 적발 된 선수들을 전원 퇴출시키는데에 앞장서는 등 적극적인 쇄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선수 시절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5. 기록[편집]



5.1. 출전 기록[편집]


시즌
클럽
소속 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기타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7-98
레가네스[A]
세군다 디비시온
30
4
0
0
0
0
-
-
1998-99
레알 마드리드
라리가
1
0
0
0
0
0
-
-
1998-99
에스파뇰[A]
라리가
0
0
0
0
0
0
-
-
1999-00
레알 마드리드
라리가
2
0
0
0
3
0
1
0
마요르카[A]
라리가
13
6
0
0
-
-
-
-
2000-01
마요르카
라리가
28
11
5
2
-
-
-
-
2001-02
마요르카
라리가
30
6
1
1
9
3
-
-
2002-03
마요르카
라리가
32
14
6
5
0
0
-
-
2003-04
마요르카
라리가
32
17
2
0
7
4
2
1
2004-05
바르셀로나
라리가
37
25
1
0
7
4
-
-
2005-06
바르셀로나
라리가
34
26
0
0
11
6
2
2
2006-07
바르셀로나
라리가
19
11
2
1
4
1
3
0
2007-08
바르셀로나
라리가
18
16
3
1
7
1
-
-
2008-09
바르셀로나
라리가
36
30
4
0
12
6
-
-
2009-10
인테르나치오날레
세리에 A
32
12
2
1
13
2
1
1
2010-11
인테르나치오날레
세리에 A
35
21
4
5
10
8
4
3
2011-12
인테르나치오날레
세리에 A
-
-
-
-
-
-
1
0
안지 마하치칼라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22
13
1
0
0
0
-
-
2012-13
안지 마하치칼라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25
10
3
2
16
9
-
-
2013-14
안지 마하치칼라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4
2
0
0
0
0
-
-
2013-14
첼시
프리미어 리그
21
9
5
0
9
3
2
0
2014-15
에버튼
프리미어 리그
14
3
2
0
4
1
1
0
삼프도리아
세리에 A
18
2
0
0
-
-
-
-
2015-16
안탈리아스포르
쉬페르리그
31
20
1
0
-
-
-
-
2016-17
안탈리아스포르
쉬페르리그
30
18
0
0
-
-
-
-
2017-18
안탈리아스포르
쉬페르리그
15
6
0
0
-
-
-
-
코니아스포르
쉬페르리그
17
6
1
0
-
-
-
-
2018-19
카타르 SC
카타르 스타스 리그
17
6
3
3
-
-
3
1

  •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리그 최고 기록.


5.2. 대회 기록[편집]







  • 카메룬 U-23 축구 국가대표팀


5.3. 개인 수상[편집]


  • FIFA 올해의 선수 3위: 2005
  • FIFPro 월드 XI: 2005, 2006
  • UEFA 올해의 공격수: 2005-06
  • UEFA 올해의 팀: 2005, 2006
  •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2위: 2006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올스타팀: 2001
  • UEFA 챔피언스 리그 도움왕: 2005-06
  •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2006
  • FIFA 클럽 월드컵 골든볼: 2010
  • FIFA 클럽 월드컵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2010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득점왕: 2006, 2008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토너먼트의 팀: 2000, 2006, 2008
  • 라리가 득점왕: 2004-05, 2005-06
  • 세리에 A 올해의 팀: 2010-11
  •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톱 33: 2011-12 (RF 2위), 2012-13 (RF 1위)
  •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012년 9월
  • 쉬페르리그 올해의 팀: 2015-16
  •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 2010-11
  •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2011
  •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2003, 2004, 2005, 2010
  • 아프리카 올해의 영플레이어: 2000
  • CAF 올해의 팀: 2005, 2006, 2008, 2009, 2010, 2011
  • ESM 올해의 팀: 2004-05, 2005-06, 2008-09, 2010-11
  • IFFHS 올타임 아프리카 드림팀: 2021
  • IFFHS 올타임 카메룬 드림팀: 2021
  • 옹즈 드 옹즈: 2005, 2006
  • 레키프 올해의 팀: 2005, 2006
  • 골든풋: 2015
  • 글로브 사커 어워즈 플레이어 커리어 어워드: 2016
  • 돈 발롱 21세기 드림팀: 2010[14]
  •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2020 (RW 6위)
  • 인테르 명예의 전당: 2021


5.4. 개인 기록[편집]


  • 2시즌 연속 트레블: 2008-09 ~ 2009-10
  • 2개 클럽 트레블: FC 바르셀로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3개 클럽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15]: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르셀로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통산 최다 득점: 18골
  • RCD 마요르카 통산 최다 득점: 70골
  • RCD 마요르카 라리가 통산 최다 득점: 54골
  •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 통산 최다 득점: 56골
  •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최다 수상: 4회[16]


6. 에투에 대한 헌사[편집]


에투는 호나우두를 따돌릴 수 있다.

호나우지뉴


호나우두는 그가 위대한 선수라는 것을 증명해왔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와 브라질에게 중요한 존재다. 그는 경기를 통해 많은 것들을 이룩했다. 그러나 에투는 지금이 전성기다. 그는 이미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다. 현재 에투가 더 뛰어난 선수다.

데쿠


에투는 수준 높은 선수인 동시에 스페인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입증해왔다. 그는 경험있는 선수고, 다재다능하며, 훌륭한 센터 포워드다.

카를레스 푸욜


에투는 현대 축구에서 구별되는 특별한 스트라이커다.

사비 에르난데스


바르셀로나는 에투의 동상을 세워야 한다. 에투가 바르셀로나에 남겨준 것들을 가슴에 세겨야 한다. 그는 보기 드문 최고의 공격수였다. 에투가 뛰어난 공격수였다는 것은 바르셀로나의 역사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에투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동안 팀의 기둥이었고 수많은 우승 타이틀 획득에 공헌했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에투는 세계 최고의 리그의 최고의 팀에서 뛰었다. 그 곳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골을 넣었다. 그 이전 다른 리그에서도 성공 가도를 달렸다. 유럽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세 번, 올라 바르셀로나에서 두 번, 인터 밀란에서 한 번 우승했다.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두 번의 결승전에서 모두 득점했다. 수 년간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았다. 발롱도르를 수상했어야 마땅하지만, 그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뛰어난 개인 기량을 지닌 에투는 팀 플레이어이기도 했다.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한 명이 퇴장 당해 수적 열세에 놓였을 때, 에투는 남은 경기를 라이트백으로 뛰었다. 그 자리에서도 팀 승리를 위해 헌신 했다. 이렇게 에투는 팀의 승리와 우승을 위해 언제나 전력을 다했다.

주제 무리뉴


에투의 이적은 팀으로서 힘든 결정이었다. 트레블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에투의 공이다.

펩 과르디올라


나는 팀원 중에 한 명을 특정지어 칭찬하지 않지만 사무엘 에투만큼은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 빈센트 세퍼 (2002 월드컵 카메룬 대표팀 감독)


에투는 공격수가 지녀야할 모든 자질을 갖춘 선수이다. 투지와 근성 영리함과 빠른 두뇌회전, 드리블 능력,문전에서의 냉철함, 스피드, 결정력 이 모든 것을 지닌 완벽한 선수다.

– 르샹트르 (전 카메룬 대표팀 감독)


에투와 메시 중 한 명을 골라야 한다면 나는 에투를 선택하겠다. 그는 나와 같은 진정한 공격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날두와 메시를 비교한다면 나의 선택은 의심의 여지도 없이 메시다.

미르코 부치니치


메시와 에투는 경기의 흐름을 단 1분 만에 바꿔놓을 수 있다.

– 래안드로 로마놀리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


에투는 축구 역사에 한 페이지에 이름을 남길 공격수다.

마르셀리노


에투는 내게 있어 악몽같은 존재다. 올 시즌엔 그가 없어 다행이다. 그는 나와 상대할 때마다 늘 경이로운 플레이를 보였다.

이케르 카시야스


상대한 골잡이 중 최고를 꼽는 건 매우 어렵다. 프리미어 리그에는 골을 잘 넣는 선수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에투를 선택하겠다.

다비드 데 헤아 (상대한 공격수 중에 누가 가장 어려웠냐는 질문에)


에투는 골키퍼를 죽이는 기계였다.

다니 알베스 (바르셀로나 포지션별 역대 최고의 선수를 선정하며)



7. 나이 논란[편집]


다른 아프리카 선수들처럼 나이를 속이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에투의 경우 논란을 유발한 사람이 소속팀 감독이었던 주제 무리뉴였다. 이 논란은 무리뉴가 2014년 2월, 한 인터뷰에서 "(현재)첼시에는 도무지 믿을만한 공격수가 없다. 한 명 있긴 한데 나이가 32세인지, 35세인지 잘 모르겠다"라는 말을 하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에투의 전 여자친구 안나 바란카가 에투의 실제 출생연도가 1974년, 즉 2013-14 시즌 기준으로 39세라는 인터뷰를 하면서 커져나갔다. # 특히 바란카의 말대로라면 바르사인테르에서 2년 연속 트레블을 했을 때의 나이가 35세라는 얘기니 사실이라면 이건 뭐 충공깽. 그러니 실제로 에투가 나이를 속였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런 세계적인 선수가 20대에 레알 마드리드 유스에 있었다는 건데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낮다. 어쨌든 자신이 한 인터뷰 때문에 난처해진 무리뉴는 공식적으로 한 말이 아니고 농담삼아 한 말인데 그걸 보도하는 것은 언론 윤리에 어긋난다며, 에투는 세계적인 클럽들에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만 4번 한 선수라고 칭찬하며 수습을 시도했다.

논란의 당사자인 에투는 자신을 향한 논란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하지 않다가 3월 9일 29R 토트넘전에서 선제골을 넣자 코너 플래그로 달려가 허리를 부여잡고 걷는 일명 노인 세리머니로 자신의 생각을 유쾌하게 표현하였다. 이 세리머니를 본 무리뉴는 논란을 잠재우는 데 좋은 세리머니였고 지금 상황을 재미있게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6월 2일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독일과의 평가전에서도 골을 넣고 또 한 번 노인 세리머니를 보여주었다.

한편 시즌 종료 후 무리뉴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에는 "난 오늘 33세가 됐다.[17] 어떤 멍청이가 날 늙었다고 했지만 그 말을 믿을 필요는 없다. 실제로 이번 시즌에는 늙은 내가 젊은 선수들(토레스, 뎀바 바)보다 더 나았다. 사람들은 내가 미국이나 중동에서 은퇴할거라 생각하지만 다음 시즌에도 챔스에 나가는 클럽에서 뛸 것이다. 현재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주 좋은 상태이기 때문에 계속 뛸 생각이며 37세가 되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도 참가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때 좋았던 무리뉴와의 관계가 악화되나 싶었지만 에버튼으로 이적할 때 인터뷰에서 "무리뉴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말밖에 없다. PL에 입성하게 된 것이나 엄청난 경기들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전부 무리뉴 덕분이었다"고 말해 둘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음을 확인해주었다. 은퇴 후에도 가장 먼저 축하를 해준 사람이 무리뉴였다면서 무리뉴는 축구를 하며 만난 사람들 중 최고 중 하나이며 위너이자, 타고난 리더라고 극찬하였다.


8. 여담[편집]


  • 200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같은 아프리카 출신의 스트라이커 디디에 드록바에게 인기가 밀리거나 저평가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는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누구냐는 논쟁에 잘 끼지 않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이는 에투의 전성기였던 시절 EPL에 비해 라리가가 거의 인기를 끌지 못했던 데다, 그의 국적이 다름아닌 카메룬인 탓이 크다.[18][19]

  • 바르셀로나 시절 호나우지뉴와의 불화설이 매우 유명했다. 두 선수의 불화설이 돌던 시기가 당시 바르사의 침체기와 맞물리면서 팀 분위기가 더 혼란해진 면이 있었다. 그래도 잘 화해했기에 후일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에서 마주쳤을 때도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으며, 지금은 공개적으로 생일 축하 영상편지를 띄울 정도로 친하다.

  • 리오넬 메시와도 친분이 깊다. 굉장히 어린 시절부터 본 선수라서 아들처럼 생각하는지 에투가 메시를 가리켜 "내 친아들만큼 사랑한다"거나 "내 아들같은 선수"라고 수시로 발언할 정도이다. 메시가 갓 데뷔했을 무렵 에투의 조언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고 고마움을 표현한 적도 있다.

  • 후배 선수들에게 노력의 중요성에 대해 애정어린 충고를 많이 남기곤 한다. 대상은 주로 에덴 아자르마리오 발로텔리. 해당 선수의 팬들에게는 에투의 조언이 희대의 명언으로 취급받는다. 특히 아자르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과체중 논란에 시달리며 먹튀로 전락하자 다시 한 번 재조명받고 있다.[20]


  • 유명하게 떠돌아다니는 '가짜 일화'가 하나 있다. 삼프도리아와의 경기 전 당시 감독이던 주제 무리뉴가 에투에게 "넌 소심해서 시뮬레이션 액션을 절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자 에투는 발끈해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로 500달러를 걸고 내기했다. 그리고 박스 안에서 에투는 삼프도리아 수비수의 차징을 받는 순간 곧바로 시뮬레이션을 시전, 하지만 바로 옆에서 보고 있던 심판에게 딱 걸리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벤치에 앉아 있던 무리뉴는 대 폭소, 에투는 어필을 해보고 주변의 삼돌이 선수들 역시 뭐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지만 에투의 표정을 보면 삐질거리는 게 눈에 보인다. 결국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에투는 심판 조롱죄로 2경기 추가 출전정지 징계를 받게 된다라는 것이 내용. 그러나 인테르 시절 에투는 2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은 적이 없다. 헐리우드 영상, 해당 일화에 대한 팩트체크

  • 팀 동료들을 위해 뽕따를 사온 적이 있다.[21]



파일:골닷컴 선정 시대별 공격수 5인.jpg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공격수 5인을 선정했는데, 2000년대 공격수들 중 3위에 이름을 올렸다.

  • 발롱도르 드림팀에 라이트 윙어 부문 후보로 포함되었다. 하지만 에투는 SNS로 "후보에 포함돼 감사하다. 그런데 나는 한 두 시즌만 오른쪽에서 뛰었다. 센터포워드로 25년 경력을 보냈다. 프랑스 풋볼은 존중이 부족하다"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

  • RCD 마요르카에서도 레전드로 인정받고 있는데, 구단 최다 골 기록을 다름 아닌 에투가 보유하고 있으며 마요르카의 유일한 메이저 대회 우승인 코파 델 레이 트로피도 에투가 안겨줬기 때문이다. #

[1] 프랑스어 발음은 /samɥɛl eto fis/. 'fils'는 프랑스어로 '아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영어의 '주니어(junior, jr)'와 동일한 의미이다. 그래서 본명을 해석하면 '사뮈엘 에토 2세'가 된다.[2] 에토는 1997년부터 레알 마드리드 CF 유스 생활을 시작하여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이적한 2009년까지 스페인에서 거주했다. 스페인 국적 취득은 FC 바르셀로나 소속이던 2007년에 이루어졌다.[3] 윙어세컨드 스트라이커도 소화할 수 있었다.[4] 왼발도 매우 능숙하게 다뤘다.[5]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출전 공동 2위 및 역대 최다 득점자.[6] 트레블을 2번 달성한 선수는 에투를 포함해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제라르 피케, 세르히오 부스케츠, 다니 알베스, 페드로 로드리게스, 바이에른 뮌헨의 마누엘 노이어, 토마스 뮐러, 제롬 보아텡, 데이비드 알라바, 하비 마르티네스까지 총 13명이 있다. 그러나 2년 연속 트레블과 2개 클럽에서의 트레블은 오직 에투만 보유한 기록. 참고로 에투를 제외한 12명은 각각 바르셀로나에서 7명이 2008-09 시즌과 2014-15 시즌, 뮌헨에서 5명이 2012-13 시즌과 2019-20 시즌에 트레블을 달성했다.[7] 이외에도 잘 안알려져 있지만 클라렌스 세이도르프에 이어 3개 팀에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한 두 번째 선수이기도 하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 1999-00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3경기에 출전했는데 레알 마드리드가 그 시즌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 UEFA 규정은 챔피언스 리그 본선에 1경기만 나와도 우승멤버로 인정한다.[8] 우스만 뎀벨레, 이반 페리시치처럼 완벽한 양발잡이라는 뜻이 아니라 주발은 오른발이지만 왼발도 충분히 능숙하게 사용했다는 정도다.[9] 이 분야에서 동시대 에투에 비견될 만한 스트라이커는 페르난도 토레스 정도인데, 볼 터치가 상당히 투박했던 토레스에 비해 에투의 볼 터치는 섬세한 편이었다.[10] 가끔씩 후방까지 내려와 날카로운 롱패스를 뿌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11] 과르디올라가 처음으로 메시 폴스 나인을 활용한 것으로 잘 알려진 2008-09 시즌 엘클라시코에서도 오른쪽 윙포워드로 선발 출전한 메시와 스위칭하면서 윙포워드 역할을 잘 수행해 냈다. 인테르 시절 첫 시즌인 2009-10 시즌 수비적인 임무도 상당히 부여받았고 챔스 토너먼트에서 4-2-3-1 포메이션이 자리잡힌 후에는 우측면에서 거의 수비형 윙어 수준의 역할을 담당해 아주 헌신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며 트레블의 숨은 공신이 되었다. 2010-11 시즌에는 왼쪽 사이드에서 플레이를 시작하는 경우가 좀 더 많아졌는데 부진의 늪에 빠진 공격진을 하드캐리하며 흑마법에 빠진 팀을 홀로 구해내곤 했다.[12] 2000 올림픽 결승전 동점골, 2000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결승전 1골 1어시스트, 2002-03 코파 델 레이 결승전 결승골 포함 2골, 2005-06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동점골, 2008-09 코파 델 레이 결승전 결승골 어시스트, 2008-09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결승골, 2009-10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쐐기골 어시스트, 2010 클럽 월드컵 결승전 1골 1어시스트, 2010-11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 결승골 포함 2골.[13] 토에바 중에서 그나마 에투가 가장 나은 활약을 보였다.[A] A B C 임대[14] #[15] 클라렌스 세이도르프와 유이한 기록.[16] 야야 투레와 동률.[17] 생일 기념 인터뷰였다.[18] 비단 에투뿐만이 아니라 몇몇 스타 플레이어를 제외하고는 당시의 라리가 선수들 중 국내에서 저평가를 받은 인물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같은 시기 사라고사에서 뛰었던 디에고 밀리토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뛰었던 디에고 포를란. 게다가 같은 라리가 출신이라 해도 페르난도 토레스다비드 비야와 같은 스페인 국적의 선수들에 비하면 이들의 인지도는 거의 공기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월드컵에서의 활약이나 인테르의 트레블이 없었다면 국내에서 이들을 월드클래스의 스트라이커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꼭 저 시절까지 가지 않아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르히오 아구에로다비드 실바와 같은 선수들 역시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하기 전까지는 무시당하기 일쑤였던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 게다가 페르난도 토레스, 다비드 비야, 세르히오 아구에로는 외모 때문에라도 인지도가 어느정도 있었는데 에투는 얼빠마저 없었다. 한국에서 축구선수를 평가하는데엔 은근히 얼굴이나 이미지가 비중을 꽤 차지하는데 에투는 둘 다 좋지 않았다. 혹자는 차라리 국적이라도 프랑스나 독일에 이름이라도 간지나는 카이저였다면 발롱도르도 받았을 거라고 한다.[19] 이를 메시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메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에투에 대한 저평가는 리오넬 메시가 아직 전성기에 접어들기 전부터 있어왔으며, 오히려 에투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메시가 한창 잘나가기 시작하던 시절인 08-09 시즌의 일이다. 오히려 에투는 메시가 떠오르기 전부터 라리가 탑급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피치치까지 차지해본 선수다.[20] 에투는 이러한 조언을 할 때 바르셀로나에서 같이 뛰었던 호나우지뉴가 자기관리에 실패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는 점을 언급하곤 했다.[21] 합성인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 세리머니다. 2010 클럽 월드컵 결승전에서 골을 넣은 뒤 팀 동료가 건네준 비닐봉지를 들고 춤을 추며 세리머니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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