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 기수

최근 편집일시 :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기수제, 법조인/목록, 사법연수원


1. 개요
2. 사법연수원 기수별 유명 인물
3. 변호사시험 횟수별 유명 인물



1. 개요[편집]


대한민국에서는 법조인들끼리(아니, 일반인을 상대할 때에도) 관등성명을 묻거나 답할 때 사법연수원 몇 기인지를 거론하는 관행이 있다. 동성동본끼리 서로 몇세손이냐고 묻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관행인 듯하나, 혹시 외국에도 이런 관행이 있는 예가 있다면 추가 바람.

사법연수원이 생기기 전에는 사법대학원이 있었고,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된 후로는 사법연수원을 나오지 않은 법조인들이 배출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사법연수원 출신이 대한민국 법조인의 다수이다 보니, 한국 법조계에서 '기수'라고 하면 보통 사법연수원 기수가 문제된다.

어느 정도로 문제되냐면, 군사정권 당시 육군사관학교 기수와 똑같다 보면 된다. 물론 공군사관학교 출신 민항기 조종사도 기수를 따지긴 하나[1] 사법연수원 기수에 비하면 약과이며, 해병대 기수 따위는 소꿉장난으로 보일 정도로 기수를 따지는 곳이 법조계다. 물론 물리적인 구타 등 똥군기는 없지만 그런 구타보다 더욱 강력한 똥군기가 얼마든 나올 수 있다. 법조계에서도 기수열외, 왕따 등의 방식으로 당연히 나온다. 평검사 시절 홍준표가 왕따를 당해서 검찰 수위조차 인사하지 않았던 일화는 유명하다.

사법시험 몇 회 합격인지는 굳이 묻지 않는 것이 일반인데(그런데 이는 후술하는 로스쿨 체제의 경우에도 같다),[2]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대체로 '사법시험 회수-10'이 그 사람의 사법연수원 기수에 해당한다. 졸업, 병역 등으로 합격 이듬해에 바로 사법연수생 임명이 되지 않은 경우 등이 그러한 특별한 사정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경우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듬해에 사법연수생으로 임명되지만, 학업, 병역 등의 이후로 나중에야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는 예도 가끔 있다. 사법연수원이 2년제이므로 연수생으로 임명되고서 2년 후에 연수원을 마치게 되지만, 휴학을 하거나[3] 정직을 당한(...) 경우는 예외이다.

고위직 판사나 검사, 특히 검사의 경우에는 연수원 기수가 사실상 일종의 계급정년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이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되자 기수파괴 야당에서 이를 반대하면서 내세운 중요한 논거 중 하나가 '김 후보자보다 더 기수가 높은 현직 판사가 수두룩하다.'였고, 법원 내에서 "변시 1회·사법연수원 42기 누가 선배?"라는 논란병림픽이 있었는데, 이는 한국 법조계에서 '기수'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가 하는 사실의 방증이다.

'합격자 300명 시대' 이후에는 인원이 많다 보니 기수가 같다고 해서 특별히 면식이 있거나 어떤 유대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수를 따지는 정도도 개인차가 있어서, 아는 사람이나 유명인의 기수가 몇 기인지를 귀신같이 다 기억하는 법조인이 있는가 하면(재능낭비?), 그런 것 알아서 뭣하느냐는 식으로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법조인도 없지 않다. 다만, 다른 법조인의 약력을 찾아보면서 그 사람의 '기수'가 몇 기인지 전혀 궁금해 하지 않는 한국 법조인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출신 법조인의 경우에도 '로스쿨 기수'를 따지는 것이 관행이 되어 있다(변호사시험 몇 회 합격인지는 굳이 묻지 않으며, 대학원이랍시고 학번을 따지지도 않는다). 2009년에 로스쿨에 입학한 사람이 로스쿨 1기이다.

하여간 기수를 따지는 것이 관행이다 보니, 사법연수원의 '기수문화'라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 그러면 로스쿨은 그런 게 있느냐 없느냐에 관해 논란이 있으나, '기수문화'의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 보니 논의가 겉도는 것을 볼 수 있다.

왠지 동명이인 구분에 사용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한변호사협회서울지방변호사회 등지에서 동명이인을 구분할 때에는 생년월일을 활용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기수에 동명이인이 있는 예가 있다.

사법시험 폐지에 따라 49기가 이론적으로 마지막 기수여야 하나, 50기로 입소해야 하는 인원이 아직 1명 남아 있어서, 사법연수원 측이 연수를 어떻게할지 고심하다가,# 결국 마지막 연수생인 조우상[4] 씨를 50기 연수생으로 입소시키기로 하였다.

2. 사법연수원 기수별 유명 인물[편집]


기수
입소연도
임명인원
주요 수료생
1기[5]
1971
32
김경한, 오탄, 이치호, 채이식
2기[6]
1971
49
강재섭, 김승규, 김일수, 양승태, 정호영, 황산성
3기
1972
81
김상철, 송광수, 서석구
4기
1973
79
김황식, 이경재, 이범관, 이영애, 장윤석, 정홍원, 최연희
5기
1974
59
김종빈, 윤재기, 이동흡
6기
1975
58
김성호, 박주선, 양창수, 이사철, 임내현
7기
1976
58
노무현, 송훈석, 안대희, 안상수, 정상명, 정인봉, 진영, 차한성
8기
1977
58
고영주, 김희옥, 신영철, 정동기, 천정배, 홍석조
9기
1978
74
김이수, 임채진, 이교림
10기
1979
98
고조흥, 권재진, 김용원, 김회선, 목영준, 박영수, 여상규, 이상수, 이주영, 이진성, 조용호, 황우여
11기
1980
112
경대수, 고영한, 김영란, 박상옥, 서기석, 이인복, 이인제
12기[7]
1981
150
고승덕, 김창종, 문재인, 박병대, 박원순, 심장수, 이귀남, 이한성, 이진성, 조배숙, 조영래, 조재연, 천성관, 함승희, 황찬현
13기
1982
273
강금실, 김창석, 김학근, 문석호, 박한철, 성윤환, 신평, 안홍렬, 유남석, 윤형모, 조대환, 최성준, 최재형, 한상대, 황교안, 김문석, 허익범
14기
1983
311
강일원, 권순일, 김영한, 김제식, 김진태, 김학의, 신기남, 안창호, 엄호성, 이범래, 이상권, 이상열, 이석태, 이인규, 이인기, 정종섭, 주호영, 채동욱, 추미애, 홍일표, 홍준표
15기
1984
301
곽상도, 권영세, 김기현, 김명수, 김상도, 김용철, 김학원, 석동현, 송철호, 안철상, 유기준, 이원영, 이종석, 이중환, 정종복, 주철현, 최교일, 하창우
16기[8]
1985
307
강희락, 김수남, 김현웅, 박보영, 윤경식, 이성재, 이정미, 임종헌, 정장현, 조영곤, 최인석, 이영대
17기
1986
309
권성동, 김삼화, 김선수, 김수천, 박승환, 박요찬, 박주현, 박충근, 오세훈, 이동원, 이상인, 이석연, 이승채, 이용삼, 정형식, 최용규, 최재경, 홍만표
18기
1987
297
강지원, 김영덕, 김재형, 김주현, 김진태, 문무일, 문병호, 민유숙, 박세환, 송기헌, 심규철, 이석수, 이영렬, 이용복, 이재명, 정성호, 조응천, 최원식
19기
1988
305
김상헌, 김수창, 김소영, 김재경, 김진모, 노정희, 봉욱, 신광렬, 우병우, 윤갑근, 이은애, 이춘석, 전해철, 조은석, 조희진, 주성영, 최재천
20기
1989
304
김상환, 김영선, 김오수, 박정식, 박정화, 안태근, 오시영, 이금로, 이명규, 이종걸, 이춘석, 전현준, 정점식
21기
1990
300
김경진, 김기동, 김외숙, 김인원, 김정훈, 노승권, 박균택, 양재식, 유상범, 이선애, 진경준
22기
1991
297
권익환, 김기영, 우윤근, 이규철, 이동열, 이상경(1964), 이영진, 전병관, 최윤수
23기
1992
289
강용석, 김두식, 박범계, 박성수, 변창훈, 송옥렬, 윤석열, 이유정, 이정렬, 조윤선, 조진래, 주광덕
24기
1993
293
금태섭, 김귀옥, 김용남, 나경원, 노관규, 박준선, 송호창, 원희룡, 유영하, 이상민, 이용주, 조의연, 차맹기
25기
1994
284
곽규택, 김도읍, 김세윤, 김종률, 김진동, 김형준, 박민식, 박형철, 성창호, 송기석, 안호영, 이두아, 정수봉, 정준길
26기
1995
292
권순호, 김동성, 김명주, 김재원, 도진기, 문유석, 송영길, 오민석, 임관혁, 천종호, 최강욱
27기
1996
315
박민수, 박재영, 양승조, 최유정
28기
1997
496
손범규, 이재범, 전현희, 정미경, 진선미
29기
1998
592
권순정, 김병준, 김형연, 박길배, 백혜련, 서기호, 손영배, 이언주, 이정희, 정영훈, 조재빈
30기
1999
694
구희승, 김종천, 손금주, 엄태준, 임은정
31기
2000
717
김관영, 김정일, 박훈, 송호창
32기[9]
2001
800
강부영, 서향희, 하귀남, 한정석
33기[10]
2002
976
권은희, 맹준호, 서지현, 송행수
34기
2003
972
김미애, 김진규, 박춘희, 이영욱, 이인철, 정관주, 최수진
35기
2004
887
김정철, 나승철, 박주민, 박준영, 안미령, 이성문, 이재정, 장덕천, 장승수
36기
2005
998
변환봉, 장진영, 채명성
37기
2006
977
손정혜, 신광은, 윤우혁, 임윤선
38기
2007
971
김동욱, 조원룡
39기
2008
1,001
전효진
40기
2009
969

41기
2010
986
김해영
42기
2011
974
홍성균, 황성욱
43기
2012
723

44기
2013
509
정진섭[11]
45기
2014
298

46기
2015
221

47기
2016
161

48기
2017
114

49기
2018
61[12]

50기
2019
1



3. 변호사시험 횟수별 유명 인물[편집]


사법시험-사법연수원 체제가 법학전문대학원 체제로 전환되면서, 법학전문대학원 출신 유명인도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변호사시험 출신은 '변호사시험 횟수+40'에 해당하는 사법연수원 기수와 같은 해에 법조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12년에 첫 로스쿨 변호사가 배출되어 아직까지는 나무위키에 등재된 인물이 몇 사람 없으므로, 일단 편의상 이 문서에 함께 기재한다. 토막글을 면할 정도로 인물이 늘어나면 문서 분리 요망.
횟수
시험연도
주요 합격생
1회
2012
손수호, 정소연
2회
2013
신장식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2 04:40:58에 나무위키 사법연수원 기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이것 때문에 사고가 자주 났다(...)[2] 굳이 묻지는 않으나 약력 기재시 병기한다. 즉, 연수원 출신 법조인은 제XX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제OO기라고 쓰고 로스쿨 역시 마찬가지로 XX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 A기, 제O회 변호사시험 합격이라고 병기한다[3] 왠지 "휴직"일 것 같지만, '사법연수원 운영규칙'에는 "휴학"으로 되어 있다.[4] 게이오대 법률학-도쿄대 로스쿨 졸업 후 일본의 신 사법시험 합격[5] 사법대학원 14기생(제11회 사법시험 합격자)을 사법연수생으로 임명하였다.[6] 제12회 사법시험 합격자를 사법연수생으로 임명하였다. 황윤석 판사(고등고시 제3회) 이래 이 기수 전까지는 여성이 합격한 예가 없었다. 즉, 18년간 여성 법조인이 배출되지 못하고 있었다.[7] 유독 이 기수에서 인권 변호사 등 재야에서 민주화 운동으로 명망이 높은 인사들이 많은데 이유가 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반대 세력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여기고 유화책을 폈는데 그 중 하나가 정치범 전력이 있는 사법고시 합격자들에 대한 사법연수원 입학 규제를 해제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문재인과 조영래도 이 혜택을 받아서 사법연수원에 입학할 수 있었다. [8] 오늘날에는 실감이 안 나는 이야기이지만, 이 기수, 즉 사시 26회에 여성 합격자가 5명'씩이나' 나와서 당시 화제가 되었다. 이때까지 한국에는 여성법조인이 18명(고인이 된 황윤석까지 포함하면 19명)밖에 없었다. 한국 최초의 여성법조인인 이태영도 '이제야말로 여성법우회를 조직할 수 있겠다'라고 반색했다고(동아일보 1984. 10. 30.자 참조).[9] 서울특별시 서초동에 있던 연수원에 입소하였으나 2년차 수습은 지금의 고양시 일산동구(당시는 일산구) 소재 연수원에서 하게 된 기수이다.[10] 지금의 고양시 일산동구(당시는 일산구) 소재 연수원에 입소한 기수이다.[11] 만 61세의 고령임에도 연수원에 입소했는데, 5공 시절에 사법고시 면접에 떨어졌다가, 2008년에 합격처리가 된 케이스. 17~18대 국회의원을 하다가 때 마침 19대 총선 공천에서 떨어지면서 공백기간에 사법연수원에 입소했고 변호사가 되었다.[12] 49기는 여연수생이 42.62%로 역대 가장 높은 비율이며, 평균 연령도 33.85세로 역대 가장 높은 연령대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