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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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夫仇
생몰연대 미상

1. 개요
2. 생애
3. 드라마 대조영에서


1. 개요[편집]


고구려 말기의 장군이자 매국노. 신성, 연남생, 고요묘 등과 함께 고구려 멸망의 원흉이다.


2. 생애[편집]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조에 언급된다. 보장왕 26년인 667년에 당나라 장군 이세적이 고구려의 신성(新城)을 공격했을 때 전세가 불리하다고 본 사부구는 성주를 포박한 다음 성문을 열어 항복했다. 고구려의 전략적인 요충지인 신성이 무너진 후 주변 16개 성도 일제히 무너졌다. 고구려의 요동 방어선의 붕괴 이후 금산 전투에서 고구려 정예군 5만 명까지 전사하여 고구려 패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679년 보덕국에서 일본에 사신으로 간 사수루(師需婁)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름의 첫 글자가 사부구와 같다. 이는 고구려에 사(師)씨가 존재했었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3. 드라마 대조영에서[편집]


파일:대조영사부구.jpg

배우 정호근이 배역을 맡아 열연했다. 역적 사부구를 널리 알린 일등공신.

신성이 아닌 평양성을 수비하는 도성 수비대의 모달 직책으로 나온다. 5부가 귀족 대신들, 그 중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희대의 간신 부기원의 앞잡이로 온갖 더러운 짓을 하고 다니는 인간말종. 나라의 최고권력자인 연개소문 암살을 시도했고[1] 수시로 놀러오는 당나라 첩자들을 못 본척 하거나 숨겨주는가 하면 군부의 수장인 양만춘을 직접 암살한다. 나중에는 당나라와 내통하여 내부에서 평양성 문을 여는 짓까지 저질러 고구려의 멸망에 매우 큰 공헌을 한다.

고구려 멸망 이후에는 설인귀에게 붙어 고구려 부흥운동 세력 소탕에 일조하고 고구려 백성들을 노예로 팔아넘겨 거액의 재물을 착복하는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연이어 저질렀다. 대조영에게도 그의 어머니를 체포해 죽게 만들고 대중상에게도 치명상을 입혀 사경을 헤매게 만든 개인적인 원수가 있었기 때문에 대조영이 일선에 복귀하면서 시작한 비밀 결사 활동의 첫 표적이 되었다. 대조영이 직접 사부구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분노한 고구려 유민들이 사부구를 각목으로 구타하면서 죽인다. 사부구의 죽음

이름은 사부구지만 현실의 사부구가 갖다바친 요동의 신성과는 전혀 관계없고 내부에서 평양성 성문을 열어 고구려 멸망에 기여한 고요묘[2]와 행적이 유사하다. 삼국사기에는 요묘가 연남건의 심복인 승려 신성 등 몇몇과 결탁하여 성문을 열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대조영에서는 사부구가 성문 수비대를 제압하고 신성이 직접 성문을 연 것으로 묘사되었다. 작가들이 매국노 장군 캐릭터를 하나 만들면서 이름은 사부구에서 따왔으나 우연의 일치로 행적은 고요묘와 유사하게 되었다.

고구려가 망하자 잽싸게 당나라에 붙는 모습은 현실의 이해고와도 닮았다. 이해고는 측천무후의 권세가 약해지자마자 중종의 편을 드는 등[3] 상당히 기회주의자이자 정치철새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는데, 정사의 이해고가 하는 짓을 드라마에서는 사부구가 보여준다.
[1] 당나라와 결탁해 신라 자객을 잠입시켰다.[2] 대조영 종영 후 중국에서 기록이 발굴되어 그 행적이 보다 자세하게 알려졌는데, 여기에 따르면 평양성 성문을 열었다는 요묘의 풀네임은 고요묘이고 당나라에서 출세해 고위 관직에 올랐다가 의문사했다. 마침 대조영의 사부구도 당나라에서 출세했다가 고구려 백성들에게 원한을 사 대조영과 백성들에게 맞아죽어서 졸지에 스토리가 들어맞게 되었다.[3] 측천이 하사한 무씨 성을 버리고 자신의 본래 성씨인 이씨로 성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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