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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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7호

8호

11호[1]
성제묘
사육신묘[2]
양녕대군 이제 묘역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호
사육신묘
死六臣墓


소재지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 191 사육신묘지공원
(노량진동 152-3)
분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역사사건
수량 / 면적
분묘 4基, 묘표 4基, 토지 90.4㎡
지정연도
1972년 5월 25일
시대
조선 숙종 7년 (16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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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공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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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현대 HCN에서 제작한 〈[우리 동네 속으로] 충절의 상징 '사육신공원'〉 영상
1. 개요
2. 설명


1. 개요[편집]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에 위치한 사육신의 묘역 및 그 일대에 조성된 시립 공원이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8호로 지정. 서울 지하철 9호선 노들역에서 내리면 된다. 예전 이름은 '사육신묘'였다.

조선 단종 대의 관료이자 복위 운동을 계획하다 사형된 다섯 충신들인 성삼문, 유응부, 박팽년, 하위지, 이개와 자살한 충신 유성원의 6인의 묘소 및 가묘(假墓)가 있다. 후에 추가로 김문기의 가묘도 추가되어 현재는 모두 7개 묘역이 있지만, 명칭은 그대로 유지되어 사칠신묘가 되지는 않았다.

2. 설명[편집]


어린 나이에 왕좌에 올랐지만 숙부세조에게 강제로 양위한 조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김질의 밀고로 실패하여 1456년 6월, 군기감[3] 앞에서 거열형에 처해진 사육신의 시신(박팽년은 옥사 후 육시)을 매월당 김시습[4]이 어두운 새벽을 이용해 한강을 건너서 지금의 노량진에 이들의 시신을 안장시킨 것이 시초였다[5]. 후에 1681년 숙종 때 '민절서원'이 세워졌고, 정조 때에 와서 신도비를 세웠으며 1978년 서울특별시가 묘역을 확장하였고 후에 사육신의 업적과 충성심 등을 전시해 놓은 사육신역사관이 설립되었다.

위의 사진에서도 보이듯 평지가 아닌 언덕 위에 있는 공원이다 보니 모든 출입로가 전부 경사져있다. 그것도 어떤 출입로는 차량 출입용으로 만들어서 비교적 완만하지만 길이 길고, 어떤 출입로는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길이 짧지만, 대신 계단이 엄청 많다. 때문에 처음 왔다면 출입로는 미리 다 파악해두고 들어가도록 하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육신의 묘지는 공원 구석에 있다. 위의 사진의 오른쪽 위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낮은 높이의 조선식 담벼락이 보일 텐데 그 안이 묘지 구역이다. 관련 자료는 상기한 사육신역사관에 다 있으니 묘지는 '그냥 그런 게 있구나.' 하는 정도. 입장하면 방명록과 향을 피울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으니 관심 있으면 들어가서 향에 불도 피워보고(여분의 향과 성냥이 있다) 묘지를 한바퀴 돌고 오는 것도 가능하다. 묘지는 공원과는 달리 오전 9시부터 동절기에는 오후 5시까지, 하절기에는 오후 5시 반까지 개방되는데, 이는 후술할 역사관 개방 시간과 일치한다. 즉, 역사관 문 닫으면 묘지 개방도 끝. 물론 여기와는 별개로 공원 자체는 계속 개방하니 이용은 아무때든 이용 가능하다.

사육신역사관은 이름 그대로 사육신과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해놓은 곳인데, 이 역사관 1층 안쪽에 있는 학습실을 평일에는 무료 자습실로 개방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쓰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우선 위치 자체가 언덕 위의 공원이라 올라가기도 귀찮고, 주변에 편의 시설이 전혀 없기 때문에 오래 머물기도 어렵다. 때문에 외지인이 굳이 여기까지 와서 공부할 이유는 없다. 노량진 학원에 등록한 사람이라면 학원의 자습실을 이용하는게 접근성도 더 좋고, 편의시설도 더 많고, 개방 시간이 더 길기 때문에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이용할 메리트가 없다. 정 학원을 등록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자기 집 주변의 구립도서관이나 자습실 혹은 독서실을 이용하는 게 더 편할 것이다. 그러면 남는 건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수험생들이라는 건데, 정작 이들이 이용하기에도 문제가 있다. 상기했듯 평일에 개방하기 때문에 주말에는 이용 불가이고, 그나마도 개방 시간이 하루에 4시간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화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6]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고, 수요일만 유독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로 시간이 서로 다른데,[7] 공통적으로는 학교 수업 시간과 겹치기 때문에 인근 거주 수험생들도 올 수가 없다. 때문에 실제로 가 보면 아무도 없이 텅텅 비어있는 상황. 게다가 이 곳은 말 그대로 공원이라서 놀 요량으로 여기에 오는 거지 누가 공부하러 오겠나? 그나마 좋은 점은 서울시 공용 와이파이(PublicWiFi@Seoul)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 정도. 참고로, 사육신 관련 자료들은 2층에 전시되어 있다.

역사관 뒤편에 여러 정자들이 있다. 그 중 한 정자는 태양광발전을 설치해 놓아서 그 정자 기둥에 있는 USB 포트를 통해 기기 충전을 할 수 있다. 다만, 단자만 있어서 케이블을 알아서 지참해야 한다. 게다가 한강 근처 + 높은 지대 특성 상 바람이 좀이 아니라 많이 불기 때문에 근처의 흙먼지가 흩날려서 벤치 자체도 흙이 잔뜩 쌓여있는 등 여러모로 관리는 잘 안 되는 모양새. 다른 한 정자는 공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경치는 좋은데, 문제는 미세먼지 절감 목적이랍시고 쿨링포그, 즉 천장에서 수증기를 발산해서 공기 속 미세먼지를 물로 씻어내는 장치가 있는데, 앞서 서술했듯 한강 근처에 높은 지대 특성상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이 쿨링포그가 바람에 흩날려서 물이 사방팔방으로 튄다는 거다. 이것 또한 오후 5시 전후로 작동 중단된다.

때문에 조망을 바란다면 공원 측에서 지정해 준 '전망대'들보다는, 한쪽 구석에 위치한 화단 쪽으로 가는 것이 훨씬 더 낫다. 흙먼지나 거슬리는 이상한 장치 없이 그냥 무난한 화단 겸 전망대이기 때문에 부담없이 머무르기 딱 좋다.

사실 인근 주민들도 그다지 많이 찾는 곳은 아니다.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코앞에 노들나루공원과 한강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시원한 강바람과 뷰를 지닌 한강공원과 여러 근린시설과 편의시설들이 모여있는 노들나루공원을 놔두고, 이렇다 할 좋은 시설도 별로 없고 올라오기도 까다로운 사육신공원을 찾을만한 메리트는 거의 없다. 이 외에도 이 일대는 유독 다른 더 좋은 공원들이 많이 밀집해있다. 그나마 사육신공원만의 역사적 가치 정도는 기념할 수 있겠다.

평상시에는 한산하지만, 가을마다 열리는 서울세계불꽃축제 때만 되면 여의도와 가까우면서도 지대가 높아 전망이 좋다는 특징 때문에 어마어마한 인파가 운집한다. 이 공원이 결코 좁은 곳은 아닌데도 공원 전체가 마치 출근길 2호선, 9호선 전동차마냥 정말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도 없을만큼 사람으로 가득차므로 주의 바람.

노량진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이 공원을 방문하면 시험에서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돈다. 사육신이 관직에 있다가 사형되었기 때문에 관운을 뺏는다는 속설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제대로 놀 데도 없고 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별로 없는 수험생 커플들이 이 공원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공부할 시간에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공원에서 놀기나 하니까 시험에서 물먹는 것이지만... 그러니 애먼 조상들 탓하지 말자

참고로 숙종 때의 문신박태보귀양을 가던 중에 고문 후유증으로 이 사육신묘 앞에서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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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호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은 2021년 12월 27일에, 10호 '한우물'은 1991년 2월 26일 해제 후 각각 보물과 사적 343호로 승격했다. 한우물의 경우,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서 '한우물및주변산성지'를 거쳐 2011년 7월 28일 '서울 호암산성'으로 명칭을 변경했다.[2]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에 등재된 명칭.[3] 현재의 서울시청 앞[4] 일설로는 김시습이 아닌 승려 출신이라는 성삼문의 사위가 안장했다는 일설도 있다.[5] 당시에는 시신 4구만 안장했다. 나머지는 1977년에 가묘로 처리했는데 이 때부터 원안상 6구가 아닌 7구로 늘게 되었다.[6] 한때는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 금요일이었지만 2019년 10월 부로 바뀌어서 월요일 대신 토요일이 되었다.[7] 수요일만 시간이 다른 이유는 매주 수요일 오후에 해당 장소에서 무료 영화 상영이나 무료 강의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영화는 당연하지만 고전 명작 위주고, 제일 빨라도 몇년 이상 된 것들인데, 대표적으로 2019년 9월 중순에는 신과함께를 상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