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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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table width=100%><tablebgcolor=#FFFFFF,#6E6D6D><tablecolor=#1d1d1d><bgcolor=#FFFFFF,#1F2023> 2006~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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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불의가 고패치며(세차게 굽이치며) 쌓아온 역사. 당대에 역적의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그대들은 생을 마친 후에 사육신, 죽은 여섯 신하라 불리우며 230년 후에는 충신의 명예를 되찾게 된다. 육체는 도려지되 칼로도 보일 수 없고 불로도 태울 수 없는 그대들의 높은 절기와 의기는 과연 이 나라 후손들의 넋 속에 살아있지 않은가. 찬탈자의 용상 밑에서 권세와 영화를 누린 역신, 간신배들의 명이 길었다면 얼마나 길었으랴. 역사는 주의치사들의 솟구치는 피로 이 땅에 길이길이 정의를 외치는 것이다!

사육신 마지막회에 흘러나온 내레이션 전문


사육신(문화어 : 사'륙'신).
1. 개요
2. 특징



1. 개요[편집]



2007년 8월 8일부터 동년 11월 1일까지 총 24부작[1]으로 KBS 2TV에서 방영되었던 최초의 남북 합작 사극.

남측 한국방송공사하드웨어(자본, 장비 등)와 북측 조선중앙방송소프트웨어(배우, 극본 등)로 제작된 작품으로, 사육신의 충절을 보여주는 것을 제작 의도로 삼았다. 남한에서는 KBS 2TV에서 방영되었고 북한에선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 방영되었다.[2]


2. 특징[편집]


기획부터 3년, 이후 총 제작 기간 2년에 제작비 20억여 원(210만 달러)이 소요되었다. 제작비의 3분의 2 가량은 발전차나 조명차 등의 현물로 지급되었다. 즉위식 묘사 등을 위해 1만여 명이 동원됐으며, 전투 장면에서는 300여 필의 말이 등장했다. 북한으로서는 엄청난 스케일의 드라마인 셈이다.[3]

제작사가 북한 측이며 연출, 각본, 배우 등의 제작자들이 전부 북측 인물이다. 그러다보니 껍데기만 남북합작이지 내용물은 실질적으로 북한 작품이나 다름없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발연기가 없다고 하여 훌륭한 평가를 받지만, 엑스트라 배우들의 연기는 영 좋지 못하다.[4] 북한 드라마라 그런지 화면이 KBS의 일반적인 느낌과는 매우 다르며[5] 특히 한국에서는 이미 10년도 더 전에 사라진 후시녹음을 했기 때문에 실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이질감이 꽤 컸다는 반응이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남성우[6] 당시 편성본부장이 질문에 답했다.

후시녹음의 이질감과 더불어 남한에서는 70-80년대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질질 늘어지는 대사들과 구식 연출 때문에 시청률이 매우 부진하였다. 첫 화 시청률은 남북 화해 무드와 화제성 등을 타고서 7.3%로 시작했지만, 이내 2화 시청률은 4.7%로 떨어졌다. 이후 시청률은 더 떨어져 애국가(3%)만도 못한 1.9%[7]를 기록하여 당시 역대 최저 시청률 드라마 2위에 올랐다. 참고로 같은 시간대에 M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가 바로 그 유명한 태왕사신기였다.[8]#

촌스러운 연출의 예로 오프닝 영상이나 엔딩 영상을 보자면, 성악으로 구성된 주제가와 함께 타이틀에 사용된 북한 서체들이 압권이다. 한국야쿠르트하이마트가 북한 진출하면.jpg 특히 엔딩에 보이는 씬마다 스톱 컷 연출 이거는 남한에서는 1983년도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당시에나 보이던 연출이다. 근데 이 드라마는 그로부터 24년이나 지난 2007년작인 것이다. 게다가 남한에서는 이미 이 방송보다 10여 년 전 용의 눈물 같은 정통사극에서도 김재형 PD가 슈퍼 핀업[9] 등 여러가지 연출 기법을 도입해서 시청자들의 눈이 높아졌던 상황이었다.

사실 북한 TV극의 연출이 이렇게 촌스러운 건 연출 이론 자체가 50년대 말에 정립된 구 소련식 연출기법을 답습한 것에서 비롯되며, 당시 북한에서 전국적인 TV채널도 조선중앙텔레비죤 하나 뿐이었고 그나마도 예산문제 때문에 방송기술 또한 심각하게 낙후된 상태였다. 그 시대 기준으로는 최신이었다지만 제반사정 문제로 계속 우려먹은 것이다.

파일:attachment/사육신/sayuksin1.jpg
특히 세조를 시종일관 "수양"이란 이름으로 표현한 게 특징. 세조로 분한 북한 배우 최봉식이 세조 어진에 묘사된 모습과 잘 맞는다는 평도 있었다.

참고로 방송 80주년 드라마다. 방송 60주년(1987년)을 잘못 쓴 게 아니다. 상술하였다시피 북한의 드라마 제작 방식이 당시 남한 기준(2007년)으로도 구식이었기에 이런 농담이 생겼다.[10] 여러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에 KBS 연기대상 특별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북한 최초로 조선 시대의 정사를 다룬 TV 드라마[11]이자 조선중앙텔레비죤이 제작한 첫 정통사극이라는 의미가 있다.# 실록 자체는 남한보다 일찍 완역되었지만 사극 소재로는 잘 사용하지 않았다.

"아기씨" 등 그 전에는 북한 사극에서 나오지 않았던 남한 말투가 등장했다는 평가도 있었다고 한다. 남한 사람들에게는 별로 재미없는 사극이 북한에선 컬처 쇼크가 된 것이다. 이후 북한은 이를 바탕으로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임진년의 심마니들'같은 사극 드라마[12]를 내놓기는 하는데, 연출은 나아졌지만 이런 물건들 또한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상한 CG를 써서 키치스럽게 보인다(...)

파일:attachment/사육신/sayuksin2.jpg

이효리애니콜 광고를 찍기도 했던 무용수 조명애는 KBS의 요청으로 야사의 인물인 히로인 "솔매"로 캐스팅 되었다.# 첫 연기 캐스팅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뭐가 돌아오는 건 아니라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새터민들에게는 "저기 조맹원[13]이다. 저 배우는 정말 명배우야.”, “막봉[14]이도 나오더라, 여전히 막봉이 답다.”, “붉은 흙의 도위원장도 나왔어.[15]”, “배우들은 배급을 주는 모양이지, 전에 보다 얼굴이 보기 좋은 걸 보니.” 등의 평가가 있었다고 한다.

방영 당시 KBS 홈페이지를 통해 다시보기 서비스를 실시했지만 2018년 홈페이지 개편 후 내려갔다가, 2022년 10월 20일부터 유튜브 KBS Drama Classic 채널을 통해 유료로 다시보기 서비스를 시작했으나 2023년 6월 29일 비공개 처리되었다.

[1] 초반에 북한에서 제작한 대본은 50부작이었으나 중국 베이징에서 사육신 집필 작가들의 수정 협의로 24부작으로 줄여젔다.[2] 물론, 동시 방영은 아니다. 관련 기사(삭제됨).[3] 참고로, 북한의 1년 예산이 울산광역시 1년 예산 보다도 적다고 한다(...)[4] 이 작품뿐만 아니라 북한, 중국 등 공산권 대작 드라마들 특징으로, 엑스트라들이 전문 배우인 경우도 있지만 머릿수 채우는 엑스트라(군졸 등)의 경우는 실제 현역 군인들을 무보수로 부려먹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다만 한국도 한일합작드라마 프렌즈(2002년작)의 경우에도 포항에 주둔하던 해병 1사단을 동원했었는데, 전혀 그런 옥의 티 장면이 없다는 점에서 볼 때 그냥 북한 제작진의 현장 통제 실패라고 봐도 좋다.[5] KBS는 2000년 하반기 무렵부터 이미 SD(720*480)와 HD(1920*1080) 녹화/편집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이 당시의 조선중앙TV는 아직 디지털 방송 시작전이라 PAL방식(576i/25fps) 아날로그 녹화/편집 장비를 사용했다.[6] 기획제작국 국장, 심의평가실 실장, 광복 60년 프로젝트 팀장 역임[7] TNS미디어코리아 집계.[8] 1위는 KBS2에서 허준과 경쟁했던 바보같은 사랑(1.8%). 다만 2020년대에는 OTT 등의 발달로 인해 시청률이 1% 이하인 드라마도 간간이 나온다.[9] 인물의 얼굴을 줌으로 확 당겨잡는 촬영 기법.[10] 한국방송공사에서는 JODK를 기점으로 방송 XX년, KBS(1961년 KBS1 TV 중앙방송국) 기점으로 KBS XX년으로 계산한다.[11] 이전에도 ‘림꺽정’ 등 서민들의 이야기나 민중항쟁을 다룬 드라마는 몇 차례 제작된 적이 있다.[12] 북측 표현으로는 텔레비죤련속극[13] '석개울의 새봄'(1992년 작)에서 협동 농장의 간첩 조맹원 역할을 맡았던 배우 방석운(유응부 역)을 말한다.[14] 림꺽정에 출연한 길막봉 역으로 출연한 최봉식(수양대군 역)을 말한다.[15] 성삼문 역의 박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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