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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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 만화가 하세가와 마치코(長谷川町子)[1] 가 지은 4컷 신문 만화이자 이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제목은 '사자에 씨'라는 뜻으로, 주인공 후구타 사자에를 뜻한다.
원작 만화의 판매부수는 8,600만부 이상이며, 이 판매부수는 일본의 신문 연재 만화로는 최대의 베스트셀러이다. 만화의 인기 상승에 따라 애니메이션, 영화, TV 드라마, 연극 등으로 각색됐다.
2. 등장인물[편집]
자세한 내용은 사자에상/등장인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특징[편집]
1946년 4월 22일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2] 의 지방신문 <석간 후쿠니치>[3] 에 연재를 시작하여 중간에 <신석간(현 도쿄 스포츠)>에서도 연재됐고, 1951년 4월 16일부터 아사히 신문에 연재를 시작, 1974년 2월 21일까지 연재되었다. 초기에는 하카타를 배경으로 했다가 연재 도중에 작가의 가족들이 도쿄도 사쿠라신마치로 이사가면서 배경 역시 도쿄로 바꿨다. 작가 측의 건강 이상으로 1951년 및 1953년에 각각 휴재된 바 있었다.
단행본은 원래 언니 마리코(1917~2012), 여동생 요코(1925~)와 함께 세운 '시마이샤'에서 발행했지만, 1993년 폐업된 뒤부터 아사히 신문사에서 발행하였다. 총 45권이며 작중 내내 배급 이야기와 전쟁 고아가 나오고, 당대의 유행어도 나오는 등 전후기부터 1970년대 전반기까지의 일본의 시대상을 알수있는 작품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초창기와 후기의 노선이 다른 편으로 초창기에는 일상적인 내용이 주 소재가 되고 있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연재 종료 때까지는 사회풍자적인 내용이 주 소재가 된다.
4. 미디어 믹스[편집]
4.1. 애니메이션[편집]
1969년부터 방영되기 시작한 일본 애니메이션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 장수작품. 단일 작품으로 장기간 방영한 TV 애니메이션으로 기네스북에도 실려있다. 물론 미국에서는 루니 툰, 톰과 제리, 펠릭스 더 캣, 뽀빠이, 스쿠비 두 시리즈 등 사골처럼 우려먹는 애니메이션 작품은 많지만, 이들 애니메이션은 스쿠비 두를 제외하면 원래 TV 방송이라는 개념이 없거나 TV라는 물건 자체가 사치품이었던 시절에 제작을 시작한지라 처음에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했다가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자 TV로도 방영을 시작한 것들이고, 시작 년도가 1969년으로 같은 스쿠비 두 또한 중간중간에 제작을 중단한 시기도 있기 때문에 본방송으로만 치면 사자에상이 훨씬 오래 제작되었다.
방송 초기에는 톰과 제리를 의식해서 슬랩스틱 개그를 넣는 등 코미디물이었지만 방송장기화에 따라 1975년부터 홈드라마로 노선을 변경해서 코미디적인 색체가 약화되었다.
현재까지 방영한 에피소드는 총 7500화가 넘으며, 지금도 매주 일요일 저녁 6시 30분에서 7시까지 후지 테레비에서 방영하고 있다. 여담으로 오프닝, 엔딩이 첫방송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4] 단, 과거에 했던 화요일 재방송은 주제가가 따로 존재한다.
2019년 11월에 사자에상 방영 50주년을 맞아 후지 테레비에서 방영중인 각종 예능, CF등과 콜라보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때문에 이 시기에 후지 테레비를 보면 예능에서도, 광고에서도 사자에상밖에 안나오는 기염을 토해냈으며 의외로 반응은 뜨거웠다. 콜라보 이벤트 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사자에상의 시대에서 좀 더 미래를 배경 삼은 실사 드라마를 방영하기도 하였다.
2020년 초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 여파로 에피 제작 차질이 생겨서 4월 17일부터 6월 말까지 45년 만에 재방송 태세로 전환했다.#
시리즈의 장기화에 따라 스태프진이 많이 바뀌는데, 감독은 와타나베 요네히코부터 모리타 히로미츠까지 5명이나 거쳤고, 각본가는 유키무로 슌이치 등 10명[5] , 캐릭터 디자인은 모나이 세츠오[6] 부터 코이케 타츠야까지 6명, 음악은 코시베 노부요시부터 카와노 쿠니히로-케이 부자까지 3명이 각각 거쳤다.
4.1.1. 주제가[편집]
4.1.1.1. 본방송판[편집]
오프닝 영상은 3개월마다 바뀐다. 1974년부터 일본 각지의 관광지를 소개하는 컨셉으로 변경되었는데, 배경미술팀을 갈아넣은 영상미가 일품이다.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소를 소개하는 것이 원칙이라 주로 지방 위주로 나오며, 오사카부,교토부,나라현 등 안 그래도 관광객이 차고 넘치는 곳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국민 애니메이션의 오프닝이라는 귀중한 자리이다보니 각 지방끼리의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소개비용으로는 600만 내지 900만엔이 매겨진다고 한다.
TV판 엔딩곡은 2절로 시작해서 3절의 후렴구로 마무리하는 특이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1절이 아닌 2절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애니메이션 상에서 1절에 언급되는 '2층'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 원작 속 사자에 일가의 주택은 2층이 맞는데, 애니메이션 설정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채 작사하다가 이런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엔딩 영상은 원작 4컷만화를 영상화한 짧은 애니메이션이 몇 편 이어지는 형태를 띄고 있는데, 계절에 맞는 만화를 고를 것, 가급적 온 가족을 골고루 등장시킬 것을 원칙으로 선정된다. 또한 첫번째 4컷 만화에는 무조건 사자에가 등장하게끔 되어 있다.
초창기에는 간주 구간에 가족들이 서로 대화하는 음성이 짤막하게 나오는데, 1974년 이후로 TV판 엔딩에서 이 음성은 없어졌다. 풀버전 음원 또는 1974년 이전 방송분의 엔딩에서는 들을 수 있다.
엔딩곡은 1968년에 발표된 1910 Fruitgum Company의 Bubble gum World의 표절이다. 멜로디 일부, 특히 전주 부분은 박자나 곡조나 완전히 똑같다.
4.1.1.2. 재방송판[편집]
화요일 사자에상 주제가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곡들이다. 화요일 첫 방송에 한 차례 사용되었고, 이후 한 차례 더 사용되어 마지막을 장식했다.
가사가 온통 말장난으로 도배되어있다(...) 동요 풍의 곡조와 크레용으로 그린 듯한 화면 연출이 특징이다.
중간에 OP3과 ED3이 생략되어있다. 각각 미즈모리 아도와 코오로기'73이 부른 '너무 사랑하는 사자에상(愛しすぎてるサザエさん)'과 '사자에상 출발신호(サザエさん出発進行)'인데, 저작권자 측의 항의로 인해 3회만에 송출중단되고 음반까지 전량회수되어 완전히 묻혀버렸기 때문. 구체적인 경위는 확실하지 않으나, 에이켄측 프로듀서는 원작자 하세가와 마치코가 "이런 건 사자에상이 아니다"며 분개했기 때문이라고 증언했고, 후지테레비측 프로듀서는 원작자의 언니 하세가와 마리코가 "미즈모리의 목소리가 사자에상과 안어울린다"며 격하게 항의한 것이 그 이유라고 증언한 바 있다. 이후 발매된 음악전집CD에서 이 두 곡이 수록될 예정이었으나, 결국 삭제된 채 발매되었다. 종종 미처 회수되지 못한 음반이 야후옥션에 올라오곤 하는데, 그 때마다 치열한 경쟁률을 보이며 낙찰가가 3만엔을 넘어가곤 한다.
4.1.2. 특징[편집]
약 6분 47초[8] 간 스토리 하나를 잡고 원작 4컷만화의 내용을 곳곳에 끼워넣어 엮은 에피소드를 3회씩 묶어 방영한다. 에피소드마다 작품번호가 붙어있는데 순서대로 방영되는건 아니고 상당히 뒤죽박죽이다. 원작 4컷 만화는 한 번 쓰면 최소 2년은 쓰지 않기로 정해두고 있지만, 방영기간이 장난 아니게 길다 보니 같은 내용이 몇번이고 나오고 비슷한 에피소드도 많이 나온다. 두 에피소드짜리 특별편이 나올 때도 있지만 평상시에는 작은 에피소드 3개 한 묶음을 기본 포맷으로 방송한다. 특별하게 연속되는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모든 에피소드가 전혀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다. 바로 직전의 에피소드에서 나온 소재라도 절대 언급되지도, 기억하지도 않는다.
에피소드마다 원작 4컷만화의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가 잘 이어지다가 갑자기 뜬금없는 장면이 튀어나오곤 한다. 중간에 뭔가 뜬금없다 싶으면 열에 아홉은 원작 내용일 정도. 원작이 장기연재된 작품이라 분량 자체는 많지만, 시대가 오래되다보니 21세기에 맞지 않는 소재는 빼기때문에 스토리 짜는 데 꽤 애먹는다고 한다. 조연,주연의 캐릭터성에 변화를 주는 등 약간의 시도를 하고 있긴 하다. 참고로 성우들은 하나같이 거물이지만 녹음시 애드립은 절대 엄금이고 무조건 대본대로 연기해야 한다고 한다. 다만, 성우가 의견을 제시해서 대본에 적힌 대사를 더 해당 캐릭터와 어울리는 대사로 약간 수정하는 일은 있다고. 방영 초반에는 등장인물들이 시청자에게 감사 인사를 하거나 제작진을 디스하거나 원작자 하세가와 마치코가 등장하는 등 제4의 벽을 넘는 시도도 있었으나 홈드라마 노선으로 고정된 이후로는 전무하다.
또다른 특징으로는 계절감을 굉장히 중시한다는 점이 있다. 원작이 일일 신문연재였던 만큼 일본의 연례행사나 계절에 관한거나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으며, 애니메이션도 이에 따라서 항상 방영 시기와 관련된 내용이 등장하며 지금은 일본인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연례행사까지 꼼꼼히 챙기는 에피소드가 많이 등장한다. 등장인물의 복장이나 배경 등도 계절에 따라 분위기가 바뀌며, 오프닝과 엔딩 영상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맞추어서 바뀐다.
사자에상의 시청률은 일본의 경기지표가 되기도 하는데, 이유인 즉슨 호경기에는 외식을 하기 때문에 사자에상의 시청률이 낮지만 불경기가 계속되면 사람들이 집에서 주말 저녁식사를 먹으면서 TV를 보기 때문에 사자에상의 시청률이 높게 나와서라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 설은 통용되지 않게 되었는데 우선 TV의 영향력이 예전만하지 않은데다 불경기가 지속되는데도 사자에상의 시청률은 나날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요일 저녁 방송이라서 사자에상을 시청하고 나서 다음날부터 또 회사나 학교에 가야한다는 생각에 우울해지는 현상이 있는데 이를 '사자에상 증후군'이라고 한다. 일종의 월요병.[9]
이소노 일가의 구성원들과 몇몇 주변 인물들은 모두 바다와 관련된 단어가 이름에 들어가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인공 이름이 이소노 카오리(바닷가의 향기)→이소노 사자에(바닷가의 소라)로 정한 다음 다른 이름들을 주인공에 맞추어 지었기 때문. 해산물 가족이라며 자주 유머 소재가 되곤 한다.
- 이소노 - 이소(磯)는 갯바위가 있는 물가, 해변
- 나미헤이(波平)&우미헤이(海平)[10] - '파도'와 '바다'
- 후네 - 배(舟)
- 사자에 - 소라
- 카츠오 - 가다랑어
- 와카메 - 미역
- 타라오 - 대구
- 노리스케 - 김(노리)
- 타이코 - 도미(타이)
- 이쿠라 - 연어알
- 후구타 마스오 - 복어(성씨인 '후구타'의 '후구'가 일본어로 복어), 송어(마스)
- 아나고[11] - 붕장어
- 인물의 이름은 아니지만 작중 카츠오와 와카메가 다니는 학교인 카모메 초등학교의 '카모메'는 갈매기
종종 쿠지라(고래), 히지키(톳) 등 1회 등장 엑스트라의 이름에까지 바다와 관련된 키워드가 들어가기도 한다. 항상 이런 것은 아니고 평범한 이름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이소노가의 식탁에는 해산물(또는 가족 이름에 쓰이는 해산물 한정)이 오르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지만 그런 건 없고 심지어 소라도 먹은 적이 있다.
등장인물의 연령은 대체로 젊은 데에 비해 성우진은 전부 다 장년층 및 노년층이라는 특징이 있다. 방송 초기에는 성우들도 젊었으나 성우진이 크게 바뀌지 않은채 장기 방영이 이어지면서 생긴 현상으로 갈수록 성우의 노화로 인해 하차하거나 사망하면서 교체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방송 초기부터 50주년이 지나간 현재까지 성우가 바뀌지 않은 캐릭터는 주인공 후구타 사자에 뿐이다. 원로 애니메이션 전문가 야마구치 야스오 측은 후술할 저서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를 통해 도중에 스태프나 성우진이 바뀌어도 일반 시청자들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언급했으나, 워낙 국민적인 애니메이션이라 주연 성우진의 대부분이 고령화, 사망으로 교체된 2000~2010년대 이후에도 성우 교체 소식이 뜰 때마다 이슈가 되곤 한다.
4.1.3. 인기[편집]
일본의 진정한 국민 애니메이션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정도로 애니 뿐만 아니라 전 프로그램 대상으로도 일본 TV시청률 상위권을 자랑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일본인들과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사자에상은 어지간하면 다들 봤기 때문에 알고 있다. 작중 등장인물들은 거의 일반명사처럼 통할 정도. 또한 현대 일본인들조차도 지키지 않는 각종 명절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고, 전통적인 일본인의 생활을 잘 묘사하고 있어 일본 문화를 습득하기에 좋다. 등장인물 모두가 하나같이 올바르고 정확한 일본어를 구사하며 신조어나 유행어도 전혀 등장하지 않고, 어휘 난이도도 높지 않아서 일본어 회화 습득에도 도움이 된다.
역대 최고 시청률은 1979년 9월 16일의 기록인 39.4%이다. 도라에몽, 마루코는 아홉살, 크레용 신짱과 함께 일본 4대 국민 애니메이션의 위치에 군림하고 있다.[12] 특히 마루코는 아홉살과 같은 방송국에서 일요일 6시~7시에 연달아 방영하기 때문에 두 애니는 라이벌이자 콤비 관계로 여겨지며 우스갯소리로 서로의 시간대를 호시탐탐 노리고 경쟁한다는 이미지로 묘사될 때가 많다. 실제 어느 한 쪽에서 연장 특별편을 방영하면 한 쪽은 쉬게 되기 때문에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전 토에이 동화 프로듀서 야마구치 야스오는 저서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를 통해 "작품 자체가 위대한 프로듀서"라 극찬하는데, 재미있는 극화물의 요소인 '울다', '웃다', '(손에 땀을)쥐다' 3개 요소가 없고, 부산한 카메라 워크나 투과광 같은 어지러운 연출 기법이 없고, 해외판매 및 머천다이징이 없음에도 충성스러운 시청자와 흑자 기록을 보유해서 수많은 대중매체 평론가들이 분석할 정도다.
일본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프로그램이지만 한국을 포함한 해외로 수출된 적이 없기 때문에 지명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사자에상을 언급하면 골수 오덕 취급받기도 한다. 실제로 현재 방영 중인 500회 이상의 장편 일본 애니메이션 중 해외에 수출되거나 방영된 적이 없는 작품은 사자에상이 유일하다. 작가/판권사의 의도인지 몰라도 영상 매체로 발매된 적도 없기 때문에 해외에서의 접근이 매우 힘드니 인지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역대 제작진들의 정확한 근속일자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이렇게 해외 수출에 적극적이지 않는 이유에는 지극히 일본정서에 가까운 작품이란 점이 작용했고, 홈드라마 컨셉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마루코는 아홉살이나 도라에몽, 짱구는 못말려와 달리 코미디적인 색채가 약한 작품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작품 전반적으로 일본적인 정서가 매우 강해 일본 문화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 데다가 전체적으로 잔잔하고 정적인 분위기다. 그래서 일본인이 아니거나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재미를 크게 못느낄 내용이다.[13][14]
4.1.4. 회차 목록[편집]
자세한 내용은 사자에상/애니메이션/회차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1.5. 기네스북 등재[편집]
4.1.6. 기타[편집]
작중인물이 나이도 먹지 않고, 가족 구성도 바뀌지 않는 상태로 비슷한 에피소드만 계속 반복되는데, 이것과 비슷한 경우의 작품을 사자에상 시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초기에 신문만화로 연재될 때는 사자에상도 시간 흐름에 따른 캐릭터 변화가 있었지만 애니화 이후로는 시간이 멈췄다. 대표적인 예로 본래 주인공 사자에는 미혼이였지만 연재 중반에 결혼을 한 점이 있다.[15]
사자에상은 시간이 멈춘 세계관은 아니라 단순히 사자에상 시공=불로는 아니다. 제작진 왈 "작중 공간은 현대이지만 쇼와 시대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따라서 쇼와의 분위기를 살리는 게 중점이다." 작중 시간적 배경은 1960년대가 아니라 현실과 동일한 현대이지만 이소노가 가족들과 주변인물들은 시대에 뒤처진 쇼와 시대의 삶을 살아가기를 택했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실제로 이소노가가 핸드폰도 있고 컴퓨터도 있는 최신식 집에 잠시 머무르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온다는 에피소드도 존재한다. 집에 컴퓨터도 핸드폰도 없는데다, 등장인물의 윤리관, 가치관까지 심히 쇼와 시대같은데도 불구하고 가끔씩 현대적인 소재가 섞여들어와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그냥 그러려니 해야 속이 편한 세계관. 반면 마루코는 아홉살은 본래 작가의 어린시절이라는 배경이기 때문에 사자에상과는 대조적으로 일관적인 과거 세계관을 유지하고 있다.
전세계 TV 애니메이션 중 본편 셀 작업으로 제작된 최후의 애니메이션이다[16] . 유명 연예인도 가끔 카메오로 출연한다. 아카시야 산마를 비롯해 SMAP, 츠루노 타케시, 카미지 유스케, 시마다 신스케, 아라카와 시즈카 등이 출연한 적이 있다.
황당한 에피소드 중 하나로, 넷 우익에게 애니메이션까지 이용해서 한류를 세뇌한다며 공격받아, 후지TV 방송국 앞에서 시위를 벌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뒷편 배경의의 DBSK라고 쓰인 동방신기를 연상케 하는 포스터를 보고 넷 우익이 발끈한 것인데, 배경 미술을 담당한 직원이 소소하게 집어넣은 것에 불과하지만, 혐한의 피해망상이 극에 달해 국민 애니메이션 사자에상마저 한류에 침식당했다고 여겨지고 만 것이다.
한 에피소드에서 사자에 일가가 평소와 다르게 토시바 가전제품 홍보를 했다가 시청자들의 무수한 항의가 쏟아진 이후로 이와 관련된 내용은 제작되지 않으며, 어느 에피소드에선 산타클로스의 정체가 마스오라는 결말에 일부 시청자들이 아이들의 동심을 망가뜨리지 말라며 항의하는 바람에 한동안 크리스마스 소재는 전혀 다루지 않기도 했었다. 한편 예전에는 사자에와 마스오 부부의 방에 곽티슈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시청자의 항의로 사라졌다는 믿기 힘든 사실도 존재한다. 말을 똑바로 하지 못한다는 설정의 캐릭터 나미노 이쿠라가 한 에피소드에서 제대로 말을 했다가 시청자 항의로 원래대로 돌아간 일도 있었다.
상술했듯이 비디오나 DVD 등 영상 매체로 발매된 적이 한번도 없었지만, 2018년부터 방영 50주년을 기념하여 드디어 초기 방영분을 VOD로 서비스하기 시작하였다. 서비스 업체는 FOD와 프라임 비디오.
2020년에 2달동안 코로나19 영향으로 녹음이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했다.#[17] 사자에 역 카토 미도리에 의하면 출연진들을 여러 그룹으로 분리해 따로 녹음하고 있으며 원래 3시간 정도 걸리던 녹음 작업에 6시간이나 걸리고 있다고 한다.
4.1.7. 시청률 하락[편집]
이러한 긴 세월의 아성을 두고도 2010년대 이후로 시청률이 떨어져 기본 시청률 20% 이상에서 10% 초반대까지 폭락하는 처지를 보이고 있다.여전히 애니메이션 시청률 1위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사자에상의 시청률 급락을 두고 이슈가 되기도 하는 등 사자에상의 위기가 거론되고 있다. TV의 영향력 하락, 동 시간대의 경쟁 격화 등을 이유로 꼽기도 하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일본 사회의 침체와 저출산, 1인가구 증가로 사자에상식의 쇼와시대 대가족 이야기에 공감하는 시청자들이 감소한 점이 가장 커 보인다. 3대가 함께 보던 작품이 전통적 사회의 완전한 붕괴로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 같은 방송사의 비슷한 작품인 마루코는 아홉살도 처지가 비슷하나 사자에상의 임팩트에 상대적으로 덜 조명되고 있다.
그리고 결국, 2016년 5월 16일부터 5월 22일까지 집계된 시청률 순위에서 잠시 2위로 밀려나기도 했다. 1위는 바로 짱구는 못말려. 이후 다시 순위를 되찾아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이번에는 2017년 5월 28일에 최초로 시청률 두자릿수가 깨지고 9.9%를 기록했다.그리고 2018년 5월 말에는 9.4%의 저시청률을 기록하며 2020년 8월에는 9% 시청률이 이어진다.
마냥 떨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여름에는 가끔식 한자리수로 떨어졌다가 가을, 겨울, 봄에 시청률이 회복되는 등, 하락-상승이 반복되고 있다. 2020년 겨울부터 두자릿수 시청률을 회복했으나 21년 3~4월부터 다시 9% 시청률로 떨어졌다. 3분기 들어서는 9% 시청률 벽이 무너지기도 했다. 게다가 21년 9월에는 귀멸의 칼날에게 밀려 2주 연속으로 3위로 밀려났으며, 3주 연속으로 1위 자리를 뺏겼다. 단 사자에상은 21년 8월 들어서 9% 시청률을 회복했다. 처음으로 3위를 했을때는 11.2%를 기록하며 몇달만에 11%를 넘겼으나, 하필 그 주에 귀멸의 칼날 1기 총집편 2개가 방송하는 바람에 3위로 밀려난 것. 나름 반등했던 시기에 상대가 강했을 뿐이다.
물론 시청률 하락은 비단 사자에상만의 현상은 아니다. 시청률 하락을 겪으면서도 단발적으로 1위 자리를 뺏기는 것을 제외하면 2020년대 초반까지도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4.1.8. 수상[편집]
4.2. 실사 작품[편집]
애니메이션의 아성에 묻혀서 그렇지 실사 작품 또한 다수 존재한다.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먼저 실사 영화가 제작되었고, 그 중 에리 치에미 주연작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사자에상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할 때 사자에 역에 카토 미도리가 발탁된 것도 에리 치에미의 영향이라는 설이 있으며 실제로 초창기 연기톤을 들어보면 에리 치에미와 흡사하다. 그런데 애니메이션화된 뒤에 나온 실사 작품들은 애니메이션이 워낙 유명해진 탓인지 딱 한 작품을 제외하고 전부 원작만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을 기준 삼아 따라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 아즈마야 톤코 주연 실사 영화
첫 작품이 무려 1948년에 나왔다. 기념비적인 첫 미디어믹스이자 실사화인데, 문제는 원작자의 허락도 안 받고 멋대로 영화화시킨 것이었다. 상술했듯이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희박했던 시대였던 탓에 어영부영 넘어갔고, 후에 에리 치에미 주연작에 밀려 묻혔다. 총 세 작품이 나왔는데, 당시 뮤지컬 영화가 유행했던 영향으로 세 작 모두 뮤지컬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무단도용작이라는 점 때문인지 세 작품 다 저작권이 만료됐고 필름 또한 온전하게 남아있는데도 공개되지 않았다.
- 사자에상 칠전팔기의 권(1948)
- 사자에상 춤추는 탐정의 권(1949)
- 사자에상 노래자랑 가합전(1950)
- 타카스기 타에코 주연 실사 드라마(1955~1957)
KRT(현 TBS)에서 일요일을 제외하고 주 6회씩 약 5분 가량 짤막한 콩트에 가까운 형태로 방송되었다. 당시에는 비디오테이프가 보급화되지 않았기에 녹화방식이 아닌 생방송으로 송출되었다. 자료 보존 여부는 알 수 없으며 당시 방송환경 특성상 녹화필름은 남아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 에리 치에미 주연 실사 영화
시대가 지나 현재는 실사영화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졌지만 이 당시에는 사자에상=에리 치에미일 정도로 에리 치에미 주연작이 큰 히트를 쳤다. 실사영화만 1년에 몇 편씩 만들어졌고, 후에 드라마와 연극이 제작될 때에도 다른 캐스팅은 다 바뀌는 와중에 주연 에리 치에미만은 그대로 유지될 정도로 그 명성은 어마어마했었다.
- 사자에상(1956)
- 속·사자에상(1957)
- 사자에상의 청춘(1957)[18]
- 사자에상의 약혼 여행(1958)
- 사자에상의 결혼(1959)
- 사자에상의 신혼가정(1959)
- 사자에상의 탈선주부(1959)
- 사자에상의 아기 탄생(1960)
- 사자에상과 에이프런 아줌마(1960)[19]
- 복의 신 사자에상 일가(1961)
- 에리 치에미 주연 실사 드라마(1965~1967)
- 에리 치에미 주연 실사 연극
- 에리 치에미 특별공연 사자에상(1966)
- 치에미 희극 결정판 사자에상(1975)
- 코마 패밀리 극장 여름방학이다!! 사자에상(1978)
- 호시노 토모코 주연 실사 드라마
1981년부터 1985년까지 후지 테레비에서 봄, 가을에 한 번씩 특별드라마 형식으로 방송되었다. 총 9편. 최초로 원작만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을 따라 실사화된 작품이며, 이 작품을 기점으로 후술할 음악극 사자에상을 제외한 모든 실사 작품이 애니메이션의 설정을 따라가게 되었다. 이 당시만 해도 사자에=에리 치에미라는 인식이 강했던 탓에 시청자들로부터 왜 주연이 에리 치에미가 아니냐는 불평이 쏟아졌었는데, 이 때 치에미는 40대를 넘은지 한참 되어서 사자에상 시공을 깨지 않는 이상 젊은 주부를 연기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데다가, 결정적으로 이듬해에 사망해서 출연시키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다.
- 사자에상(1981)
- 가을이네요, 사자에상(1981)
- 봄 최고야! 사자에상(1982)
- 가을 축제다! 사자에상(1982)
- 홈 드라마 스페셜 '83기차 출발한다! 사자에상(1983)
- 축하해! 사자에의 결혼 5주년 사랑의 계절이야! 사자에상(1983)
- 사자에상 PARTVII(1983)
- 후지 테레비 개국 25주년 기념 하세가와 마치코 스페셜 사자에상VS심술쟁이 할머니VS심술쟁이 간호사(1984)
- 사자에상 열심히 일하는 주부들의 전쟁사(1985)
- 아사노 아츠코 주연 실사 드라마
1992년부터 1996년까지 후지테레비에서 특별드라마 형식으로 방송되었다. 총 5편.
- 사자에상(1992)
- 사자에상2(1993)
- 사자에상3(1993)
- 사자에상(1995)
- 사자에상(1996)
- 미타니 코키 각본 실사 연극
미타니 코키는 이전에 애니메이션 사자에상의 각본을 수 차례 쓴 적이 있는데, 타라오가 근육증강제를 먹고 근육질이 돼서 올림픽에 나가는 꿈을 꾼다는 황당한 내용의 각본을 썼다가 프로듀서에게 욕먹고 짤렸다. 그 때문인지 애니메이션화된 뒤에 나온 실사 작품 중 유일하게 애니메이션에서 변화된 설정을 일절 따라가지 않고 철저히 원작만화만을 기반 삼은 작품이 나왔다.
- 음악극 사자에상(1994)
- 음악극 사자에상 재연(1995)
- 미즈키 아리사 주연 실사 드라마
후지테레비 개국 50주년&애니메이션 40주년 기념으로 방송되었다. 총 4편. 사자에 역의 카토 미도리와 나미헤이 역의 나가이 이치로가 특별출연했고, 이외에도 당시 잘나가는 연예인들이 까메오 출연했다. 3편에서는 무려 소녀시대가 출연했을 정도.
- 사자에상 파트1(2009)
- 사자에상 파트2(2010)
- 사자에상 파트3(2011)
- 사자에상 애니메이션&드라마로 2시간 스페셜(2013)
- 후지와라 노리카 주연 실사 연극
애니메이션 50주년 기념으로 기획되었으며, 사자에상 본편 시간대가 아닌 10년 뒤를 다룬 작품이다. 최초로 사자에상 시공을 깬다는 시도를 한 작품이다. 무대를 입체적으로 활용한 연출과 뛰어난 완급조절의 각본이 어우러져 호평받았고, 준수한 흥행을 기록한 덕에 속편이 제작되었다. 이 당시 마스오 역에 하라다 류지가 출연할 예정이었다가 불륜 스캔들이 터지는 바람에 상연 직전에 급히 변경되었는데, 대타로 들어간 카츠라야마 신고가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어 별 탈 없이 넘어갔다.
- 무대 사자에상(2019)
- 무대 사자에상(2022)
- 아마노 유키 주연 실사 드라마(2019)
무대 사자에상과 함께 애니메이션 5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작품으로, 이 쪽은 본편에서 20년 뒤를 다룬 작품이나 무대 사자에상과 연관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별드라마 형식으로 한 차례 방영되었고, 현재까지 후속편 소식은 없는 상태이다.
- 이소노가의 사람들 ~20년 뒤의 사자에상~
4.3. 라디오 드라마[편집]
1955년부터 10년간 닛폰 방송을 통해 라디오 드라마판이 방송된 적이 있는데, 극본은 오자와 후지코&야마시타 요시이치, 연출은 몬마 타케시 PD이며 1963년부터 스폰서의 교체로 인해 스탭진과 성우들이 바뀐 적이 있다. 이후 1977~1987년까지 분카 방송, 2013년 10월 11일 닛폰 방송 <올나이트 닛폰>에서도 두 차례 더 각각 드라마화됐는데 애니판 성우들이 그대로 출연했다.
4.4. 광고[편집]
2008년 에자키 글리코의 캠페인성 초콜릿 광고 '오토나 글리코'에선 애니판 세계관 기준으로 25년 뒤의 이소노 집안을 다룬 바 있는데, 배우 아사노 타다노부와 미야자와 리에, 나가야마 에이타, 오구리 슌 등 4명이 이소노 집안 자식들 4명을 연기했다. 그리고 반려묘 '타마'는 3대로 설정됐다.
2017년 11월 닛신 컵누들 CF인 HUNGRY DAYS 프로젝트 3편에서 '만약 사자에와 마스오가 현대의 고등학생이라면'이라는 IF설정을 바탕으로 오리지널 에피소드가 만들어졌다. 사자에와 마스오의 공개 맞선 결혼 설정을 어레인지해서, 두 사람이 21세기의 고등학교 동급생이라는 설정으로 학교 축제의 무대에서 마스오가 사자에에게 고백을 한다는 내용. 도둑고양이나 가위바위보 상징물, 지갑을 잃어버리는 일 등 사자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콘텐츠들이 깨알같이 압축 정리되어 있다.제작진 측에서는 어디까지나 또 다른 세계관이라고 밝혔지만 이무래도 인지도가 매우 높고 오래된 작품인 만큼 일부 일본인들은 원작 파괴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캐릭터 디자인은 쿠보노우치 에이사쿠가 담당했다.
5. 저작권 관리[편집]
사자에상의 저작권은 미친듯이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그 수준은 가히 '일본의 디즈니'라고 불릴 정도이다. 한동안 시마이샤가 권리를 지녔으나 1993년 폐업 이후 '하세가와 마치코 미술관'으로 넘어갔다.
저작권 개념이 뚜렷하지 않던 시절 일본에도 만화책 단행본을 무단으로 복사해서 내다 파는 해적판이 판쳤고, 원작자 하세가와 마치코도 해적판으로 인해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특히 사자에상의 캐릭터를 무단 도용해서 관광상품으로 내놓아 팔다가 법정까지 간 사자에상 버스 사건 이후로 저작권 관리가 엄격해졌는데, 도용은 물론이고 패러디까지 일절 금지시켰으며 심지어 정식 이용 요청까지 모조리 거절해서 소개문에 삽화 한 장 실을 수 없었고, 상품화의 경우 거액의 사용료를 요구하곤 했으며 심지어 반다이를 문전박대하는 위엄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나마 캐릭터들이 외부에 등장한 건 도시바와 일본 농업협동조합, 일본 코카콜라 등 스폰서들의 애니메이션 광고에 등장하는 것뿐이었다.
어떤 의도이든 이득이 있든 없든간에 사자에상이 조금이라도 나오기만 하면 무자비로 철퇴를 때려대던 수준의 저작권 관리는 원작자 하세가와 마치코가 사망한 이후로 패러디 정도는 허락하는 수준으로 한층 약해졌으며, 원작자의 친언니인 하세가와 마리코가 사망한 이후로는 정식 이용도 어느 정도 허용하고 상품화나 콜라보도 적극적으로 진행되는 등 많이 유연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6. 기타[편집]
도쿄도 세타가야구와 후쿠오카시에 사자에상 거리가 하나씩 있다. 후쿠오카시의 사자에상 거리는 이소노 일가의 고향이자 사자에상이 처음 만들어진 발양지로서, 도쿄도의 사자에상 거리는 이소노 일가의 현재 거주지이자 원작자가 살았던 곳으로서 관광지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사자에상 머리스타일은 무스 없이(…) 만들어낼 수 없어, 그야말로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특이한 헤어. 때문에 모에화에도 제한이 따른다. 사자에의 헤어스타일 자체는 언뜻 보면 특이하게 여겨지지만, 사실은 원작 연재 시작 당시(1946년)의 최신 유행 스타일을 반영한 결과라고 한다.
정운경의 신문만화 왈순아지매(블로그)가 그림체를 비롯하여 컨셉, 소재 등에서 사자에상을 베꼈다는 이야기가 있다.[20]
7. 관련 문서[편집]
8. 참고 문헌[편집]
-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 - 야마구치 야스오 저 / 김기민-황소연 역. 미술문화. 2005.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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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20~1992. 사가현 오기군 히가시타쿠촌(현 타쿠시)에서 태어나 어릴 적 하루요시 심상소학교(현 하루요시 소학교)를 다닌 후 1933년 현립 후쿠오카 고등여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잃었다. 1934년에 도쿄로 상경하여 야마와키 고등여학교로 전학한 뒤 <노라쿠로> 작가 타가와 스이호(1899~1989)에게 만화를 배워 대일본웅변회강담사(현 코단샤)의 <소녀구락부(훗날의 소녀 클럽)> 1935년 10월호를 통해 '너구리 가면(狸の面)'으로 데뷔했다. 일본 최초의 여성 프로 만화가로 알려져 있으며 연재한 작품이 두 개 더 있다.작품 1990년, 일본 황실에서 보관장 4등급을 수훈했으며 1992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후, 국민영예상(1992년 10호)을 추서받았다.[2] 현재 사와라구에 가면 사자에상 길이나 관련 테마 공원등이 있다.[3] 발행처는 후쿠니치신문사로, 1978년 조간으로 전환하며 <후쿠니치 신문>이 됐다가 1992년 폐간. 현 니시닛폰 신문의 전신인 후쿠오카일일신문이나 1877~1942년에 발행한 같은 이름의 신문하곤 관계없다.[4] 단 배경은 바뀐다.[5] 2019년 기준 현역 각본가는 9명.[6] 애니메이션판 작화는 원작과는 전혀 다르면서도 독특한 개성을 지닌 그림체로 변화했는데, 이 화풍을 정립한 것이 모나이이다.[7] 토에이 아카데미 소속 아역배우들로 구성된 코러스 그룹.[8] 과거에는 7분이 넘어가거나 6분 55초가 채 안되는 등 들쭉날쭉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6분 55초로 고정되었다. 이후 도시바가 스폰서에서 하차하고 아마존, 니시마츠야, 다이와하우스가 새로 합류한 뒤 CM 길이가 늘어나 6분 47초로 약간 줄어들었다.[9] 한국식으로 치면 일요일 저녁에 개그콘서트를 보고 나서 엔딩곡이 흐르면 월요병이 찾아오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10] 나미헤이의 쌍둥이 형[11] 마스오의 직장 동료[12] 50년 넘게 계속 에이켄이라는 제작사에서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이 회사의 역사도 오래되어서 회사 홈페이지의 작품소개 최상단에 흑백 애니메이션이 올라와있는 비범함을 자랑한다(...). 사자에상 이외에 국내에 알려진 작품으로는 미소의 세상, 아빠는 요리사, 유리가면 등이 있다. 자세히 알고 싶으면 이 곳을 참조.[13] 그래도 잔잔한 만큼 화목하고 훈훈한 가족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 작품으로, 아따맘마 같은 가족물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다.[14] 한국의 최정상 예능인 무한도전이 한류 붐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는 인기가 다소 없고 심지어는 게스트로 출연한 영국의 채널4 채널의 기자에게 처참한 혹평을 들은 것과 일맥상통하다.[15]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처음부터 기혼이었기 때문에 미혼 시절 이야기는 짧은 회상 정도로만 등장한다.[16] 2000년대 후반부터 오프닝과 엔딩, 예고 영상 등에서 디지털 작화가 쓰였으며, 2013년 10월을 기점으로 현재는 완전한 디지털 제작으로 넘어갔다.[17] 기존 방영분을 재방송 중이였다.[18] 이 작품 이후로 컬러영화로 제작되었다.[19] 원작자의 다른 작품 '에이프런 아줌마'와 크로스오버한 작품이다.[20] 네이버 연재로 익숙한 진진돌이 레볼루션 원작인 진진돌이를 연재하던 그 만화가이다. 왈순 아지매도 1950년대부터 연재했고 정감어린 서민 모습이라고 하여 1960년대 영화화도 되었다. 하지만 작가가 중앙일보로 간 뒤로 특정 정당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면서 비난도 많아졌다. 정치 소재는 일절 넣지 않은 사자에상과 여러 모로 비교된다.